[강화도] 오래된 한옥만큼 깊은 붕어찜의 맛 - 돌기와집
강화군 숭뢰리에 자리한 1938년생 돌기와 한옥 ‘돌기와집’은 납작한 석와 지붕과 중정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이다. 1994년 식당으로 문을 연 뒤 압력솥에 잔가시까지 부드럽게 녹여 내는 달큼·매콤한 붕어찜으로 30년째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강화도에서 흔히 만나는 논두렁 길 따라 崇雷里 (숭뢰리)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숙소인 남단끝 동검도에서 강화도 북단 끝으로 32km 약 50분. 민간 마을에 자리 잡은 곳이라 도로에서 벗어나 시골길을 쭉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이런 곳에 정말 음식점이 있다고?"를 남발했다.
| 외부
도착하면 누가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옛 근대 한옥이 맞이해준다. 고택 바로 앞마당과 길건너에 주차자리가 있다. 한옥은 1938년에 지어졌으니 올해(2025년)로 87년째를 맞는다.
건너편 주차장 공간엔 붉은 글씨로 '돌기와집'이라 쓰인 투박한 입간판이 수줍게 구석에 서있다. 받치고 있는 낡은 고철과 글씨가 뭔가 무림의 맛집 분위기를 풍긴다.
상도숭뢰길 - 오솔길처럼 아담하고 예뻐보여 카메라를 꺼냈다. 꽤 좁은데도 불구하고 덤프트럭이 후드득 나무들을 쳐대며 지나가는 장면이 신기했다. 암튼 차 세우고 이 작은 폭의 길을 너면 음식점 입구다. 쭉 길을 따라가면 음식점이 원래 붕어와 메기를 공수했던 숭뢰지(대산저수지)가 나온다.
오랜 세월의 맛을 더해주듯 나무 덩굴에 휩싸여 있는 굴뚝 모양의 구조가 눈에 띄었는데 붕어찜을 끓이는 주방과 이어져 있다.
1930년대는 개량한옥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절이라고 하는데 콘크리트/시멘트 같은 현대 재료들과 섞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이 화장실인데 들어가 보진 않았다.
입구부터 입식 타일 바닥·노출 배선·개방 통로가 겹겹이 보인다. 여러 세월에 걸쳐 전통 한옥 원형에 덫대진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긴 입구 공간이 계절에 따라 바람-온도-시선 등에서 잘 지켜줄 것 같다.
깊다 싶은 입구를 지나면 가운데가 하늘로 향해 ㅁ자(정사각형으)로 뻥 뚫려있는 중정 공간이 나오는데 개방감이 굉장히 좋다. 낯에는 이렇게 자연광, 밤엔 또 달빛이 스며들어 이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엌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좌측에 보이는 공간은 곳간이나 외양간 같은 곳이었을까? 암튼 사면이 이렇게 둘려 싸여 있으니 문만 꽁꽁 닫아두면 추운 겨울바람도 잘 막아줄 것 같다.
입구를 통과하면 정중앙에 식사 공간이 있고 우측에는 맛있는 붕어찜을 삶는 재래식 부엌이 보인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고택 구조를 보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 내부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오면 마루와 안방 모두 식사하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활짝 열려 있어 개방감이 유지된다. 문틀들 사이 비닐발이 보이는데 90년대 느낌도 난다. 시간 여행 온 느낌이랄까.
원래 좌식이었을텐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테이블식으로 바뀌었다 (몸이 안 좋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좌식이 참 힘들긴 하다).
여름 초입 날씨가 참 좋았던 날이라 뒷뜰로 보이는 공간으로 이어진 문이 달린 곳에 자리를 잡았다. 통창이 있으니 개방감도 좋고 시골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도 같이 안겨준다.
메뉴는 간단하다. 시그니처인 붕어찜과 새우매운탕. 민물새우튀김이 궁금했는데 소식좌라 붕어찜만 시켰다. 이 집은 원래 인근 대산저수지 (숭뢰지)에서 들여온 민물고기 매운탕집이었는데 우연히 내놓은 붕어찜 맛에 손님들이 매료되며 오늘날 붕어찜 전문집에 이르렀다고 한다. 참고로 여럿 온 테이블들은 우렁무침도 사이드로 시켜 먹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식사 - 주옥같은 반찬들
정갈해 보이는 비주얼의 반찬들이 정성스럽게 세팅된다. 이 집은 음식과 대응 자체에 예의 스러움이 스며들어 있다. 반찬들 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맛있다. 갠적으론 3,6,7(깻잎),9시(무채) 방향 반찬들이 특히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사장님 바쁘시고 정신 없으셔서 그냥 챗GPT한테 물어봤다. 각각 미나리(6시)와 열무(3시) 나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듣고 식감과 비주얼을 비교해 보니 그럴싸하다.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오래된 한옥에서 가장 최첨단 기술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니.
시큼 새콤한 무채 절임은 약간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붕어찜과 먹기 굉장히 좋았다.
깻잎은 짜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마지막 한 장까지 알토란 하게 강화섬쌀밥에 맛있게 싸 먹었다.
| 붕어찜
드디어 붕어찜 등장. 이렇게 한상이 완성되었다.
반찬들이 워낙 맛있어서 원래도 높았던 메인 요리의 기대치가 더 올라갔던 붕어찜이었다. 찜에서 우러나온 국물과 통통한 붕어 위에 올려진 양념 건더기들의 비주얼이 식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시래기가 주조연처럼 올라간 점이 눈에 띄었다. 붕어는 원래 인근 숭뢰지에서 가져왔지만 퀄리티가 떨어지면서 지금은 충청 예당 저수지에서 공급한다고 한다.
해체를 시작한다. 돌기와집 리뷰에서 다들 말하듯 붕어의 가장 힘든 점인 잔가시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뭐 꽁치조림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압력솥에 푹 고아 내놓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붕어 고유의 형태를 해치지 않는 것도 이 집만의 실력이겠지.
원래 붕어의 잔가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붕어찜은 달짝지근하고 매콤하다. 매콤은 매운 매콤이 아니라 미디엄 정도다. 부드럽다. 생선 잔가시 정말 세상 귀찮아하는 나도 그냥 먹어도 될 정도다. 특히 갓지은 요리의 따듯함과 깊은 풍미가 돋보인다. 붕어 특유의 흙냄새 비린내도 느끼질 못했다.
시래기와 아주 찰떡궁합이다. 계속먹다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기름지고 달짝지근함을 중화해 준다 (그렇다고 이 기름짐과 달짝지근함은 전혀 자극적이거나 과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시래기도 모자르다면 이 시큼 새콤 무채와 곁들이면 입 안이 끊임없이 중화된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계속 먹게 된다.
살면서 아주아주 가끔, 손에 꼽을 만큼 음식을 먹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평생 못 잊을 맛 같은 거. 돌기와집이 그랬다. 찬 하나하나 내어줌과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성스러움과 대접받는다는 느낌. 음식이고 찬이고 어느 하나 거르기 힘든 맛과 분위기.
이 행복하고 감사한 경험은 1시간 정도가 지나 끝이 났다. 이처럼 홀린 듯 먹어본게 얼마만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감사하며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맛의 폭풍이 휩쓸고 간 후 이제 끝났나 싶더니 식혜를 내어 주신다. 술은 밥과 누룩을 섞어서 발효시켜 만들지만 누룩 대신 엿기름을 사용하면 알코올 없이 단맛 강한 음료로 탄생한다는 식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조상님들의 디저트맛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걸 쭉 내려가게 만들어주는 식혜와 함께 정말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저녁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배터지게 먹었다. 감동적인 한 끼였다. 오후 1시 20분경의 모습이다.
| TRIVIA
붕어요리는 강화도의 향토음식이 아니다. 옛 임산부들의 특식이었던 잉어와는 별개로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국적 흔한 식재료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옛 시절 서민들의 영양섭취를 책임져 줬다 (둘의 차이는 크기와 수염이 있냐 없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도까지 와서 굳이 향토음식을 맛보지 않고 이 집을 찾아가는 이유를 비로소 나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큰 감동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이런 별 하나짜리 리뷰를 발견했다. 듣고보니 맞다. 이건 조림에 가깝다. 하지만 그리 짜고 맵지 않은 조림.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저 유저가 처음 맛봤을 때의 그 맛은 또 얼마나 맛있었길래 이런 리뷰를 남겼을까 하며 그 옛 경험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산을 하고 걸어나오는 길. 6만원 돈이 단 한 푼도 안 아까웠던 한 끼였다.
이건 전경
강화도는 실향민들의 흔적이 특히 많다. 이 집도 원래 주인이 황해도에서 남으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백두산 등지에서 공수하여 직접 실은 돌들로 쌓은 기와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집은 '돌기와집'이 아닌 '널 기와집'이라고 불려야 한다고도 하는데 돌너와, 널기와, 돌기와, 석와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요리를 먹고 난 후,
이 집 지붕의 납작한 돌들이 서로 얹혀 자아내는 자태를 보니
비로소 붕어의 비늘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