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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alians Do it Better , 마이크 시모네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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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candy-I Always Say Yes





코즈믹 디스코 블로그 (http://www.cosmicdisco.co.uk) 2008년 4월18일자로 올라온 Mike Simonetti 인터뷰를 대충 번역해서 올림..  워낙 주시하고 싶은 레이블이라..
Cosmic disco revival / death disco / italo / icey 등 여러 개의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는 Troubleman United의 서브 레이블 Italians Do it Better에 포진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현재 favorite들이라...

인디레이블인 트러블맨 언리미티드와 댄스쪽의 포커스를 둔 사이드 레이블인 이탈리언즈 두 잇 베터 레이블 (cosmic disco)의 사장이자 매니져겸 디제이로 IDB 유럽투어를 앞두고 있는 그를 만나 현재 뉴욕의 댄스 뮤직 씬과 그의 레이블의 향후 방향에 대해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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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즈믹디스코(이하 코): 트러블맨 유나이티드 블로그에서 당신은 이태리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충성도가 괴장히 높다고 얘기했는데 이러한 측면이 당신의 레이블과 소속 아티스트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시모네티(이하 -): 아뇨. 이태리인들은 밴드들보다 훨씬 충성도가 높죠. 밴드들은 항상 무언가 더 낫고 큰것을 지향해요. 그들이 행복한 순간을 볼수가 없어요.. 인기가 좋아도 그들에게는 항상 모자르죠. 밴드를 만족시킨다는 것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죠.. 저도 왜 제가 이걸 시작했는지 조차 이해가 안가요.. 매일 생각하죠.."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하고요...


코: 소속 아티스트들의 프로모션을 위해 어떤 방법을 쓰죠?

-투어(Tour)요. 레코드를 팔기 위해 그것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습니다. 하입(Hype: 과대선전)을 통해서는 레코드를 판매할 수 없습니다. 광고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지요. 전문가들의 리뷰는 아예 상관도 안합니다. 투어, 투어, 투어... 오직 투어! 요즘은 옛날 처럼 레코드가 팔리지 않죠.. 대부분의 밴드들은 라이센싱과 투어를 통해 수입을 가져갑니다.


코: 당신의 레코드 수집은 뉴욕에서도 정평이 나있을 정도 입니다. 새로운 트랙을 발매할 때 바이닐의 발매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워우, 딥한 콜렉션을 자랑한다고요? Danny Krivit한테 가서 물어보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CD에 대해서 별 흥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 정도입니다. 밴드 투어 중에 팔기에는 CD가 딱 안성맞춤이죠. 하지만 전 CD를 구입하지 않습니다. 요즘 어떤 DJ들은 CD를 가지고 DJing도 한다면서요? ㅋㅋㅋ

코: Italians Do it Better 레이블의 시작해 대해 좀 알려주시져 (주인장: 기다리던 질문이었음 ㅋ)
-공짜로 밴드들의 음악을 제공하고 그들에게 투어하라고 강요하다가 태어났는데요...

코: 2007은 IDB에게 굉장히 성공적인 해였습니다. 2008년의 계획은 뭔가요?
-간단해요, 더 많은 레코드, 더 많은 투어와 기그(Gig)죠.
  (주인장: 그래도 한국엔 오지 않겠지 ㅜㅜㅋ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사표를 내는 시점에 후지락 페스티벌 같은 근처 나라 (일본이 가장 가능성이 높으므로)에 이 인간들 소속 밴드, 특히 크로마틱스나 글라스 캔디가 라인업에 확정돼고 회사에서 나오는 퇴직금으로 바로 일본으로 날라가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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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당신은 80년대 중반 뉴욕의 하드코어 씬을 겪으며 자라났잖아요? 그럼 그 시절 당신이 경험한 파티, 베뉴, 시니스터 혹은 음악들에 대해 말해줄 수 있겠어요?
-전 1987년부터 쇼같은데 기웃거리기 시작 했어요.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서 가짜 ID도 만들고 집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왔죠.. 저는 CBGB의 전성기 시절에 Gorilla Biscuits나 Youth of Today같은 밴드들을 보며 자랐어요. 물론 랩(Rap)도 들었죠.,,그 시절 대세였거든요.. 그리고 나이트클럽은 한 80년대 후반정도부터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Mars 클럽에서 한 도어맨을 만났는데 그 사람덕분에 프로모터 일을 시작하게 됬어요..

코: 당신의 음악적 영향을 어디에서 온건지요?
-모든 음악이요... 말하기엔 너무 많아요.

코: 당신이 가본 Gig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1987년 CBGB 하드코어 마티니에 기억이 남아요... 데이빗 만쿠소의 로프트 파티에 처음으로 갔을때도 기억에 남고요... 쇼를 너무 많이 다녀서 하나 고르기가 뭐해요... 내 생애의 최고의 쇼 100!이라는 리스트를 작성해드릴가요?

코:마르스에서 프로모터로 활동할 때 함께한 DJ나 뮤지션은 누가 있나요?

-앞장선 주류에서 활발히 활동한 사람이 아네요 저는. DJ들이랑 그렇게 많이 일해본적도 없구요. 걍 다른 클럽들 프로모션일을 하거나 회사 전화받거나 뭐 그랬죠... 그래도 제가 프로모트한 몇몇 파티를 말하자면.. Moby, Funkmaster Flex, Frankie Knuckle, Tony Humphries, Red Alert, Bobby Knoders, Duke of Denmark 등이 있구요.. 종종 그들과 놀기도 했습니다.. 헌데 일때문에 모든 클럽들을 다 돌아다녀야 했었는데 제 인생을 바꾼 경험이었죠. 그 클럽들을 열거하자면, 레드존, 사운드 팩토리, 나사, 팔라디엄, 월드, 마르스, 빌딩, 디스코 2000, 뉴아크의 잔지바 등이 있어요..

코:당신이 DJing을 시작한것도 이때즘인걸로 아는데 어떤 음악들을 주로 틀었나요?
-당시 저는 프로패셔널 Dj가 아니었어요. 장비도 없었고 테크닉도 없었죠. 전 그저 레코드 모으고 그 것들을 친구들 앞에서 틀어주는 걸 좋아했어요. 제가 심각하게 Djing을 시작한 건 훨씬 후의 얘깁니다. 제가 주로 모은 콜렉션은 대부분 Funk (Rare Groove)와 펑크였어요.

코: 당신은 브루클린의 "Happy Birthday Hideout" 로프트 파티 레지던트로 있으면서  Control Yourself같은 자신만의 파티를 열기도 했었는데요, 어떤 장소에서 열렸는지, 어떤 음악이 흘러나왔는지, 그리고 규모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이 모였는지 말해줘요.
-웅.. 그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긴 한데요, Control Yourself 파티를 시작한건 90년대 후반이었어요...아마 1997년 즈음해서요..  Knitting factory 지하에서 열린 아주 소규모의 파티였습니다. 제가 튼건 주로 Disco였구요 약간의 Funk, Old School, Post PUnk등을 틀었죠. Happy Birthday Hideout은 브루클린에서 열린 세미 레귤러 로프트 파티였는데 전 거기서 DJ로서 "chop"을 익혔어요... 다음 날 아침 10까지 7시간이 넘는 마라톤 DJing을 하기도 했죠. 여기서는 디스코와 하우스를 메인으로 약간의 Rap음악도 틀었었습니다.

코: 당신의 파티는 주로 옛 디스코와 포스트 펑크 레코드의 리바이벌에 포커스를 두었었습니다. 요즘 터져나오는 이 음악들의 리-에딧(re-edit) 버젼들이 오리지널 디스코의 유산을 망친다고 생각하나요?
-뭐.. 쓰레기 사운드에 한해서만요.

코: 당신이 초기 디스코의 DJ 파이오니어들이 이태리계 미국인들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해본적은 한번도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되는 건 아마도 그들이 (이태리계 미국 DJ들) 모두 뉴욕을 근거지로 삼고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당시 뉴욕 브룩클린, 베이 리지와 다른 보로우들은 상당수 이태리계들이 점령하다시피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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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당신의 DJ Set은 상당히 폭넓은 음악 장르를 소화하고 레코드의 피치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건 자신만의 스타일인가요 아니면 이태리 코즈믹과 로다&발델리 같은 70,80년대 애프로 DJ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건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Baldelli를 제가 처음으로 들어본건 몇 년전의 일입니다.  제가 음악의 피치를 내리는 이유는 그 사운드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또한 제 나름대로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발델리를 듣고 나서 깨달은건 그들이 오래전에 하고 있었던일을 전 반복만 하고 있었다는 거죠!! 하지만 전 무작정 피칭 다운 (pitching down)을 하는게 아네요 - 전 그냥 순간의 느낌대로 가는겁니다. 비트 매치를 해야하는 상황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는데 유일한 방법은 음악을 느리게 하는거에요 근데 이걸 하다보니 정말 쿨한 사운드가 나온다는 걸 알아버린거죠! 아마도 제 몸안에 흐르는 이태리의 피가 저절로 절 그렇게 만들어버린게 아닐까요?

코: 당신이 DJ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파티나 베뉴는 뭔가요?
-작년 여름 PS1 파티가 아주 좋았어요. 스웨덴과 오즐로에서의 플레잉도 좋아하구요. 스칸디나비아 지방은 뭔가 달라요... 좀더 높거나 혹은 다른 레벨이라고 해야 하나...

코: 요즘 뉴욕시티에서 잘나가는 파티는 뭐가 있나요/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no Ordinary Monkey가 아직도 건재한 것 같구요. Studio B도 괜찮아요.

코: 요즘 당신에게 찰싹 달라붙는  레코드는 뭐가 있어요?
-스웨덴에서 나온 Tiedye edits가 좀 쩔어요. 노르웨이인들은 항상 좋은 걸 들고 나오는 것 같아요..

코: 요즘 당신의 Dj 스케쥴이 굉장히 빡빡해지는 것 같습니다. DJing과 레이블일을 겸하는데 있어서 시간 매니지는 어케 하세요/
-음.. 보통 DJing은 주말에, 주중에는 레이블일을 해요. 회사에 뛰어난 인턴들이 있어서 아주 도움이 되죠.

코: 당신의 레이블 음악도 트나요?
-당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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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뉴욕시티에서 레코드 찾기에 가장 괜찮은 곳은 어디에요?

-뉴욕시티에서요? 뉴욕시티에는 그리 좋은 스팟이 많지 않아요. 좋은 스팟들은 모두 시티 밖에 있습니다.

코: 가장 최근에 산 레코드는 뭐죠?
-음... 아마 mp3로 다운로드 받을 걸텐데요.. 토렌트를 통해 받은 Eddie Murphy의 "Raw" 입니다.

코: DJing할 때 주로 어떤 포멧을 쓰죠?
-당근 레코드죠! 근데 좀 익스클루시브 한 놈들은 한두어개 CD를 사용할 때도 있어요.

코: 좋은 DJ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신의 이고를 버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레코드를 틀때 댄스플로어를 읽을 줄 아는 기술이죠. 좋은 트랙 설렉션은 물론이구요. 다른 Dj들도 다 트는 그런 트랙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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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발레릭 (Balearic)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가 있나요?

-발레릭이란 소프트 락이고, 오래된거고, 이베이 골드입니다.

코: 혹시 밴드에 있었거나 악기를 연주해본적이 있나요?
-네 밴드에 있었던적이 있는데... 쪽팔려서 그 정보는 못주겠어요..

코: 영국 출신 Punk/Post Punk 밴드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누구에요? {코즈믹디스코 블로그는 맨체스터 베이스임.,,}
-단연 Homosexuals입니다.. 그들의 사이드 프로젝트도요. 전 열혈 UK DIY팬입니다. 또한 요즘 호주 DIY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미니멀 웨이브 스터프도 좋아해요.

코: 이태리계 아티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이는?
-마틴 스콜세시 {영화감독}이요.

코: 만약 당신에게 전지전능한 힘이 있어 수퍼그룹을 만들수 있다면 누구를 밴드에 투입하겠어요.. 죽은 사람도 상관 없어요..
-레드 제플린이요.. 멤버 전부 다!

코: 당신은 죽을 때까지도 항상 펑크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거라고 생각하나요/
-예라고 대답하려 합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힘들어지는군요..ㅜㅜㅋ

코: 요즘 당신의 Dj set에 자주 포함되는 트랙이 있다면?
-없어요.. 상황마다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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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당신은 어린 시절 아이리쉬계, 이태리계, 폴란드계 미국인들의 커뮤니티 사이에서 자랐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듣는 음악성향에 영향을 어떻게 미쳤나요?

-그 시절 정말 많은 종류의 음악들이 터져나왔죠. 메탈, 랩, 펑크... 뭐 이런 음악들을 듣고 자랐어요. 우리는 상당히 열려있는 마인드의 커뮤니티였죠. 뉴욕 하드코어 시절에도 음악속에 랩이 들어가 있었어요. 우리의 백그라운드의 영향이죠. 그 음악들은 신호등에 정지하고 있는 차 속에서 그리고 라디오에서 모두 흘러나왔습니다. Bayonne에서 자랐는데 제 어머니 집에서 세 채 떨어진 곳에서 Attackers라는 밴드가 항상 연습을 했었어요. 그들은 Metal Blade 레이블과 사인하고 몇개의 음반을 냈었습니다. 이건 모두 80년대 초반 이야기에요. 또 하나의 메탈 블레이드 레이블 소속이었던 Bloodfeast 밴드의 드러머와 BMX 자전거를 즐기던 기억도 나는 군요. Bayonne은 80년대 초반 메탈의 성지나 다름없었어요. 집 근처의 바에서 항상 Overkill이 술을 마시고 있곤 했죠.. 근데도 우린 모두 Rap 음악도 즐겼어요.. 상당히 괴상한 커넥션이 만들어지죠..?

코: 당신이 음악을 자신의 커리어로 삼겠다고 결정했을 때의 초기 시점에 대한 기억을 말해줘요.
-아마도 90년대 초반 펑크 마티니 시절 ABC No Rio 경험을 쌓을 때였을 겁니다. 정말 좋은 시절이였어요! "Scene"에 이바지하고 새로운 일을 하기에 모두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죠. 그 때 전는 fazine을 시작했고 그게 지금의 레이블이 된거죠... 그 시절이 제게는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코: 당신은 내이티브 뉴요커고 아직도 어린시절 살던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뉴욕말고 딴 곳에 산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있나요?
-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합니다. 뉴욕은 예전의 뉴욕이 아니에요. 아마도 외부에서도 이런 소릴 많이 들을 겁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가고 있어요. 아예 딴 나라로 가고 싶은데... 아마도 스웨덴 정도? 아님 걍 시골로 내려가버러셔 농장도 가지고 염소랑 강아지들도 키우고 싶네요..

코: 음악적으로 말고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이 있나요?
-밀하우스, 부리또, 카우치, ....그리고 이번에 태어날 나의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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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음악 안했으면 지금 쯤 뭐하고 있을 것 같아요?

-강아지 산책 시키고 레코드 모으고....

코: 당신 강아지 이름들은 어서 따왔어요?
-밀하우스는 심슨즈(Simpson's)에서 따왔구요, 샐리라는 이름은 Nightmare before Christmas라는 영화의 샐리 캐릭터랑 강아지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붙여줬어요.

코: 당신의 커리어 상 하이라이트는 언젠가요?
-내 맘대로 내가 틀고 싶은 음악을 틀수 있을때!

코: 당신에게 "완벽한 행복감"이란 어디서 오는가요?
-좋은 음식이요..

코: 젤 좋아하는 음식은?
-파스타

코: 마지막으로 이탈리언이 잘하는게 대체 뭡니까? {Italians do it better 레이블의 의미를 물어보는 듯}
-모두 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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