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자꾸 생각나는 김밥 한 줄, ‘서문김밥’ 후기
그런 김밥이 있다. 소위 ‘마약 김밥’이라 불리는 김밥.
먹을 땐 그냥저냥 했는데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며 식욕을 자극하는 김밥.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맛본 강화도의 서문김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이번엔 먹을 때도 맛있었다. 물론 잠들기 전 여운도 컸다.
김밥은 워낙 일상적인 음식이라 파는 곳도 종류도 많다.
그 와중에 이렇게 은은하게 기억에 남는 맛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다.
그날 오전 10시 반, 강화도의 센터, 강화읍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정식을 브런치로 배불~리 먹었다.
소식좌라 사실상 저녁 식사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 상태 찍음.
펜션 입실까지 시간이 남아 마트와 박물관을 들르기로 했고,
마침 그 근처에 서문김밥이 있어 줄만 너무 길지 않으면 먹어보자 하고 들렀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인터넷에서 보던 웨이팅은 없었고 오히려 옆 육갈탕집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배가 부른 상태라 "밤에 좀 출출해지면 먹자"는 생각으로 한 줄만 사기로 했다.
“혹시 몇 줄부터 주문 가능한가요?” 여쭤보니,
사장님은 웃으며 “한 줄도 됩니다. 편하신 대로 시키세요”라고.
맛만큼 기본 예의와 친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 한마디에 녹아내렸다.
“그럼, 한 줄 부탁드립니다.”
“네~”
4,000원에 한 줄 포장. 여긴 포장 전문이라 당연히 은박지에 싸여 나왔다.
검은 비닐에서 꺼내 손에 쥐자마자 느껴지는 갓 만든 듯한 따끈함.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포만감을 싫어하지만, 결론은 하나 — ‘이건 바로 먹어야 한다.’
방문 예정이던 강화역사(자연사) 박물관까지는 차로 15분 거리, 주차장에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강화역사박물관 바로 옆 강화자연사박물관 쪽 주차장으로 와보니 봉천산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들어선 주택촌의 뷰가 좋아보여 정차하기로 한다.
은박지를 연다.
김밥의 비주얼은 소박하다.
회사 근처 길거리에서 보던 딱 그 옛날 김밥 같은 모습.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자,
“아~ 괜찮네!”
갓 지은 밥, 찰기 있으면서 알알이 씹히는데 특히 간이 잘 되어 있다.
손끝에 살짝 묻는 야채기름(으로 추정되는)의 고소함.
혀와 목, 위장을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
한 줄을 둘이 나눠 먹기에 양도 딱 좋았다.
디저트처럼 먹는 김밥,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포만감에 더한 포만감을 채운 후 강화자연사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여유롭게 구경했다.
좋은 첫경험은 늘 선명하게 남는다.
서문김밥도 그렇게, 기분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여행 동안 매일 아침이나 간식으로 하나씩 사 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 중엔 늘 또 다른 좋은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결국 실행하긴 어렵다.
게다가 서문김밥은 동검도 숙소에서 약 20여 킬로, 차로 30~40분쯤 걸리는 거리다.
여담이지만, 이 구간은 해안도로가 쭉 이어지진 않지만 달리는 내내 강화해협의 수면이 틈틈이 시야에 들어오는 괜찮은 드라이브 코스다. 마침 꽃도 피기 시작한 시점이라 더 예뻤다.
📍강화해협 & 호국돈대길
좋은 풍경과 동시에 격렬한 역사를 가진 이 구간은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의 일부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좁고 긴 바다인 강화해협을 따라 19세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갑곶돈대 - 용진진 - 광성보 - 초지진 등이 줄지어 위치한다.
강화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7시, 전등사 앞에서 산채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동검도 펜션에서 짐을 정리하고 퇴실했다.
뭔가 조금 아쉬워졌고,
며칠 동안 자꾸 이야기하던 서문김밥을 다시 포장하기로 했다.
이번엔 마음먹고 4줄을 사기로.
당일 점심용 두 줄, 저녁용 두 줄.
10시 30분쯤 도착. 오늘은 줄이 좀 있었다.
5~6분 대기 후 주문.
오늘은 당당하게 네 줄 주문!
도미노처럼 내 뒤에 있던 모녀 커플도 원래 두 줄만 사려다
내 주문을 보고 짧게 상의 후 따블로 상향주문 ㅋㅋ
(속으로 엄지 척 해드림)
칠판엔 예약 주문이 가득.
“아… 이래서 재료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구나…”
김밥을 받아 들고,
근처에서 집에 가며 마실 커피 한 잔도 샀다
(4박 동안 두 번째이자 마지막 커피).
강화도를 떠나며 차 안에서 은박지 속 온기를 다시 느끼자,
아침부터 산채정식을 먹은 배부른 상태인데도 참을 수 없었다.
시동이 걸린다. 먹기로 한다.
여행 마지막 날이 다시 여행 첫 날로 타임루프 ..
차 안에서 먹는 음식은 또 묘한 맛이 있다.
운전 중 짬 나면 한 입,
짬 없는데 먹고 싶으면 “한 입만…” 하는 그 맛.
그렇게 가는 길에 한 줄이 사라졌다
집에 도착해서는 남은 두 줄을 저녁 즈음 다시 꺼냈다.
(사실 한 줄은 집 도착하자마자 또 먹음)
이젠 식어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온기의 감촉은 사라졌지만 야채기름의 고소함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아... 맛있네. 마약김밥 인정.
특히 밥만 먹어도 좋을 마냥 간이 잘 된 이 맛이 참 좋다.
강화도 서문김밥.
다음 강화도 여행에서도
전채음이자 후식 같고,
사이드킥 같기도 한,
꼭 다시 먹고 싶은 김밥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또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