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9월자 Krautrock과 Kraftwerk: 독일 김치의 유산
1960년대후반의음악씬은히피의문화혁명을겪고프로그레시브락과아트락등이그맥을이어가고있었다. 그리고죠지해리슨에의한후기비틀즈사운드(‘I am a Warlus’ 등), 벨벳언더그라운드, 롤링스톤즈등이그선봉장을맡았었다. 이들의 Hedonistic 헤도니스틱 (쾌락주의적)한사운드는아직도기존락음악이가지고있던 (히피의뿌리를벗어나지못한) LSD의영향과정치적성향을극적으로극복하지는못한상태였다. (혹은논외대상이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그들의사운드는어느정도엠비언스와기계음의미학이가지고있는가능성을인지하고있었다는것을보여주고있었다. 그리고한편에서는 Stockhauzen 쉬톡하우젠과같은전위음악가들이에드가바레즈의바톤을이어받아좀더깊이있고자유로운, 하지만아직엘리트적인틀에갇혀있는전자음악사운드의실험을추구해나갔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2: 이 시대의 디지털 좀비를 위한 사운드트랙 ,
Nu-Italo Disco
요즘 유행이란 너무 빨리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이게 유행이다 싶어 좀 맛보려 하면 벌써 한물가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트렌드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정말 정신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 바삐 변하는 유행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발을 동동 구른다 . 따지고 보면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유행'이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정 세대가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지 않았던 과거의 무언가를 미디어가 억지로 끄집어내어 세련되고 그럴듯한 포장을 하는 것뿐이다. 블링 독자들이 몸담고 있는 클럽 문화도 별 다를 것 없다. 최근 2년 사이에 세계 클럽 /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계는 벌써 두 세가지 이상의 유행의 파도를 맞았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회들에서 언급했던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 뉴레이브 Nu-Rave, 블로고하우스 Blog-house 등이 있다 .
이미 미국에서는 락 밴드를 위주로 한 댄스펑크 Dance Punk의 화려한 크루세이드가 진행 중이었고 이에 질세라 영국도 80,90년대 레이브의 재탕인 뉴레이브를 선보였다. 또한 전 세계 mp3 블로그들에 힘입어 다프트펑크 Daft Punk로 대변되는 90년대 프렌치 하우스 French House의 르네상스 제 2기인 신종 프렌치 사운드가 전 세계 언더그라운드 클럽계를 접수했다 . 아니, 아직도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뉴레이브와 블로그하우스들의 열풍이 수면 위에 떠오른 건 1년 남짓한 일인데 또 하나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이탈로디스코 Italo Disco의 재 출현이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뉴이탈로디스코 Nu-Italo Disco? 미국의 클라스캔디 Glass Candy를 필두로 러스 마이어의 <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 인형의 계곡을 넘어서>와 <록키 호러 픽쳐 쇼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를 연상 시키는 camp 캠프 미학에 젖어든 Freak Show 프릭쇼의 경험을 선사하는 이 움직임은 <After Dark> 콤필레이션 앨범 출시와 함께 전 세계 언더 음악 및 클럽계를 술렁거리게 하고 있다.
먼저 떠오르는 느낌을 말하자면 전 세계 어느 곳을 훑어 봐도 미국처럼 하위 문화 (언더 문화)가 다양하고 탄력을 잘 받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들, 노예 시절을 겪은(혹은 겪는) 흑인들, 영국에서 도망 온 백인들, 핍박 받았던 동양인들과 히스패닉들…이렇게 '어둠'과 '고통 '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나라라서 그럴까? 비록 200년 남짓의 역사는 그들로 하여금 유럽처럼 오랜 문명을 가진 나라들을 향해 (혹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유럽의 '것'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열정적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창출해 왔다 . 히피, 레이브, 90년대의 뉴욕 클럽 문화 등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미국 주류 문화는 언제나 이 언더 문화들을 강하게 저지 시켰고 결국은 외국으로 역 수출되어 성공한 케이스가 흔하다 .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흑인 음악이었던 테크노가 유럽으로 건너 간 것이나 레이브 열풍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유럽에서 그 결실은 맺은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움직이고 있던 Dance Punk 문화도 영국에게 빼앗겨(?) Nu Rave 로 포장 된지 얼마 안돼 Nu Italo Disco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70,80년대 조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에 의해 탄생 된 유로 디스코 Euro Disco와 사일베스터 Sylvester로 대변 되는 후기 디스코 사운드인 하이에너지 Hi NRG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움직임은 언더 중에 언더 문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70 년대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가 기계문명을 찬양하며 신스팝 Synth Pop과 테크노Techno 사운드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을 무렵 그들의 업적에 버금가는 사건을 터뜨린 이가 바로 유로디스코의 창시자인 조지오 모로더다 .(이 또한 독일인이다) 무그 Moog, 프로펫5 Prophet5 같은 새로운 신디사이저에 심취해 있던 모로더는 독일의 락 뮤지컬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여가수 도나 섬머Donna Summer를 발탁하여 1975년 수많은 컨트로버시를 낳은 17분짜리의 문제작 ' Love to Love You Baby'를 발표한다 . 섬머의 차가운 목소리와 모로더의 미니멀하고 순수한 일렉트로닉 디스코 사운드의 환상적인 조화는 1977년 'I Feel Love' 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 결실을 맺는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반복과 흑인 특유의 Soul과 Funk의 난해한 리듬을 단순화 시킨 4-to-the-floor 리듬 , 10분이 넘어가는 12" extended 믹스 싱글 그리고 이들의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는 하우스와 테크노의 또 다른 초석인 유로 디스코를 탄생시키고 도나 섬머를 시대 최고의 섹스심벌이자 아이스 퀸으로(기계적 에로티시즘) 등극시켰다 . (모로더와 섬머의 에로틱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성적인 흥분이 얼마나 강했는지 레코드사 사장의 환상적인 ' 밤 생활'을 위해 17 분의 익스텐드 믹스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디스코라는 음악에 기계와 섹스라는 성적인 코드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크래프트베르크 Kraftwerk나 탠져린드림 Tangerine Dream 같은 그룹이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통해 기계 문명 안에서의 스피드 , 사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본 기계 문명으로 인한 불안한 미래 등과 같은 '엘리트'적인 담론을 내포하고 있었던 반면 모로더와 같은 유로디스코의 선봉장들은 신디사이저를 통해 인간 내면의 원초적이고 성적인 페티시즘 /섹슈얼 코드와 기계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70년대 디스코가 지향하던 '기계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사운드와 리듬, 그로 인한 환상과 쾌락의 유토피아 '의 주춧돌이 되었다. 흑인 음악 특유의 Funk, Soul, Groove한 리듬 요소가 드럼 머신에 의해 차갑게 변모하고 '쾌락의 정치학'은 핍박 받던 사회적 마이너들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게이 커뮤니티에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70년대 후반 미국의 ' 디스코 죽이기 운동'의 직격탄은 다시 디스코를 주류에서 지하로 끌어내렸으며 여기서 모로더가 추구하던 기계미학과 마이너들의 '쾌락의 정치학 '의 계승이 사일베스터 Sylvester의 하이에너지 Hi NRG와 함께 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사회에서 버림 받은 외톨이가 더욱 더 삐뚤어지듯이 이 지하 세계의 디스코 사운드는 좀더 괴기해져만 갔다 .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속도는 빨라지고 사운드는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다. 그 후로 피펑크 P-Funk, 하우스 House, 트랜스 Trance, 하드코어 Hard Core의 새로운 장르들이 제각기 옛 유산을 버리고 자신의 개성을 찾아 떠남에 따라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은 점점 잊혀져 갔다 . 그리고 2007년 지금 뜬금 없이 그 오랜 공백을 <After Dark> 앨범이 다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올가즘 Orgasm이나 성적인 코드와는 상관 없이 Hi NRG와 함께 떠오른 유럽의 몽환적인 스페이스 디스코 Space Disco의 코즈믹 Cosmic한 사운드 역시 After Dark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소닉 유스 Sonic Youth로 대변되는) 노웨이브 No Wave 음악 성향에서 어두운 이탈로 디스코 사운드로 변모한 글라스캔디Glass Candy를 주축으로 한 이탈리언즈 두 잇 베터 Italians Do it Better 레이블의 콤필레이션 앨범인 <After Dark>는 확실히 10 년에 나올까 말까 한 명반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뉴이탈로 디스코는 블로그 하우스나 뉴레이브처럼 선동적이거나 대중적이지도 않고 그들만큼 주류로 호응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언더그라운드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이 그러했듯이 언더그라운드의 그 깊고 어둡고 음침한 우물 속에 고여있지 않을까 싶다 . 이 움직임은 포스트 모던 사회 안에서의 극단적 해방, 탈출의 염원과 절망, 그로 인한 변태성의 표출이라는 사회적 마이너의 정신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영원한 언더 중의 언더 씬으로 자리 잡을 운명은 그 시작부터 부여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여기서 이 앨범과 참여 아티스트들이 주목 받아야 하는 것은 단지 앨범 및 각 트랙의 완성도와 더불어 70,80년대 일렉트로의 유행에 힘입어 쏟아져 나오는 현재 복고풍의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사운드적/문화적 어설픔의 충족 뿐만이 아니다 . 전자 댄스 음악 문화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와 옛날 B-급 영화의 캠프 Camp 적인 성향의 귀환이라는 점은 하루의 24시간도 모자라듯 초 급변하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살아가며 비상구를 찾을 수 없어 자포자기 해버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마지막 정신 분열적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 이 움직임의 진정한 의미다 . 지금의 80년대 복고 열풍이 대중문화로서의 랑데부를 가진 것은 몇 년 전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를 통해서 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속도감의 직접적인 차용은 사운드보다 더 빠른 심리적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다지 큰 어필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 오히려 지금 듣기엔 어딘가 너무 느려터진 듯한 Kraftwerk의 '아우토반 Autobhan' 의 사운드가 속도감속의 몽환적 경험을 더욱 깊게 선사하는 것처럼 <After Dark> 앨범의 뉴이탈로 사운드는 일렉트로클래시와 그 잔재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속도감과 거침없음의 직접적 표현을 뒤로 감추고 은유적인 미학을 취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쉽게는 조지 로메로 감독 영화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쇼핑몰에 몰려든 좀비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전진하는 좀비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지도 않고 정체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걸림돌에 계속 걸리며 불편하고 또 그만큼 느리게 전진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극성을 부리는 자본주의 후기의 각박한 삶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오르게 한다 . (같은 시간과 행동을 반복하는 샐러리맨들을 보라!) 더군다나 After dark, 즉 어둠이 사라지며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햇빛 속에 주춤하는 좀비들이 경험하는, 그 짧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 , 바로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여명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After Dark>의 사운드다.물론 이 사운드가 자리잡고 있는 클럽의 물리적 장소와 경험 또한 음침하고 더럽다. 하지만 그런 역겨움과 퇴폐함의 이물질이 현대의 정신분열적 이상인 우리 좀비들에게는 더욱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 Kraftwerk가 현대 기계문명을 찬양하면서도 인간이 기계에 속박되는 어두운 문화를 표현했다면 <After Dark>의 사운드는 그와는 정반대로 기계의 인간화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디지털 사회의 물결 속에 진정한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알지도 못하는 혹은 망각해버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되찾고자 하는 슬프고도 소용없는 몸부림이랄까 ?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면 쉽지 않을까?)
<After Dark>가 추구하는 코즈믹하고도 정신분열적인 포스트 이탈로씬은 그 자체로서 마약이며 알코올이다 . 이들의 사운드와 함께 한다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무언가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직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행복과 희망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설프고 저질적인 경험이겠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차마 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살조장이 아니라 생명이란 한정되어 있기에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현실 도피 성향의 회의주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 혹은 심리적 시간의 '지체'일 뿐 손목에 찬 시계는 0.1초의 흐트러짐 없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보너스 : (언제나) 지면 상의 문제로 못하는 얘기가 있다. 하나만 언급하자면 After Dark의 어두운 사운드와는 반대로 이탈로 사운드의 회귀는 여러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 피치포크미디어가 지적했듯 이탈로의 낭만주의적 인디팝을 표현하는 샐리 셔파이로 Sally Shapiro, 쎄론 Cerrone의 에로티시즘과 비 에로티시즘격인 스페이스 디스코의 접점인 블랙데블디스코클럽 Black Devil Disco Club, 변태적 롤리타 보컬 성향의 Cloeatta Paris, 라이엇걸 Riot Grrrrl 미학에 블루스/소울을 가미한 캐시 다이아몬드 Kathy Diamond또한 뉴이탈로 움직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들이다 .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자동차에 대해 말할 때 요즘은 그저 스포츠카라고 부르는 것을 뛰어 넘어 로드스터와 쿠페를 구분할 줄 아는 세대로 접어 들었다고 한다. (사실 난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것인지) 마찬가지로 그저 ‘파티’가 아니라 자신이 어느 형태의 레이브 혹은 클러빙의 경험을 하고 있는 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웨어하우스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Underground Warehouse Type)
레이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다. 하우스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프랭키 넉클스의 시카고 웨어하우스(창고) 파티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웨어하우스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참여와 준비에 있어 상당히 비밀스러운 과정을 요하며 레이브 시절 초기에 성행했다. 대게 버려진 창고 같은 곳을 찾아 원-샷 이벤트 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경찰의 눈을 잘 피해야 했고 당연히 모이는 사람들도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들이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가 계획되면 지인들이나 동네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가게들을 통한 플라이어를 얻어 (혹은 이메일이나 자동응답을 통해) 날짜와 연락처를 받게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벤트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녹음된 메시지로 장소를 확인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 더욱 비밀스럽게는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레이브 관련자가 그 곳에서 직접 장소를 말해주고 레이버들은 그에 따라 다시 방향을 돌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럽과는 달리 오프닝과 엔딩 세레모니가 따로 마련되어있기도 했다. 이런 비밀스러운 '모임' 의 분위기는 레이버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일종의 '자신들만'의 이벤트로서 일종의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 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벤트 플래너들의 일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 날의 '확실한' 경험을 위해 DJ 부킹은 물론 사운드, 비쥬얼, 데코레이션, 먹거리 (특히 물), 경찰로부터의 안전 보장 등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레이브와 클러빙의 성공여부는 바이브를 끌어낼 수 있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웨어하우스 레이브의 경우 이 '바이브'를 느끼기에 가장 수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 레이브의 첫 경험은 단순한 행복과 쾌감을 뛰어 넘어 인생관의 전환점을 맞게 했다고 많은 1세대 레이버들은 증언하고 있다. (흔히 레이브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It went-Off’란 텀을 쓴다)
대게 밤 10시~12시 이후에 시작되고 피크타임은 새벽 3,4시 정도이다. 레이브가 끝난 후 레이버들은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오후까지 열리는 애프터 파티로 향하기도 한다.
요즈음 국내에서 '클러빙','파티'라고 하는 이벤트의 대부분이 이 분류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이브/클러빙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다. 앞서 말한 웨어하우스 레이브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웨어하우스가 '언더그라운드'인 반면 이들은 어느 정도 혹은 완전히 '오버-그라운드'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승인을 받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만큼 언더그라운드 파티와는 달리 마약이 규제되고 술이 합법적으로 판매된다. 또한 이 곳을 가기 위해 '인사이더'일 필요도, 지인을 알아서 때와 장소를 알아내야 할 필요도 없다. 입장료만 있으면 언제나 '웰컴'이다. (따라서 엄격히 따질 때 요즈음의 클럽을 순수한 차원에서 레이브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상업적 측면은 그만큼 시공간적 접근성을 높이기 때문에 클러빙과 레이빙의 첫 경험을 이곳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주류 레이브보다는 덜 유토피안적이고 타인과의 허물없는 시간을 보내기 힘들기 때문에 레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바이브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엑스터시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재 클럽 씬의 분위기 그 자체의 문제로 보여진다)
클럽 오너가 직접 주기적으로 파티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 이 공간을 빌려 서로 다른 프로모터들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파티를 여는 경우도 있다. 상업적 측면이 강한 유명 DJ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적이고 유대적인 오프닝, 엔딩세레모니, 애프터 파티가 생략되고 새벽 2~5시 사이에 (법적인 문제로) 문을 닫는다.
요즘 대부분의 클럽이 이 형식에 속하며 80년대 후반 애시드 하우스로 물들은 영국 씬은 이른바 클러빙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토니 윌슨의 하씨엔다와 더불어 이비자의 발레릭 씬에 영향을 받은 닉키 할러웨이, 폴 오큰폴드, 대니 램플링의 트립, 스펙트럼, 슘클럽 등이 유명하다. 특히 슘은 영국 최초의 레이브 클럽으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랑과 환희의 바이브는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이 때는 초기 애시드 하우스 시절이었던 만큼 언더그라운드 적 현상으로서 클럽과 레이브에서 엇비슷한 바이브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대규모 상업 레이브 (Massive and Commercial Type)
그 규모가 엄청난 만큼 '매시브'라고도 불린다. 실내/야외 이벤트를 포함하며 몇 백에서 몇 만까지의 인파가 몰려든다. 큰 이벤트인 만큼 기업체의 스폰스를 받기도 하고 매체를 통한 광고도 대대적으로 펼친다. 따라서 장소가 '공개'된다는 측면에서 언더그라운드 레이브와 대립된다. 사운드 시스템, 조명 등 화려하고 압도적인 분위기 연출에 있어서 많은 투자를 하며 주 라인업은 로컬이 아닌 수퍼스타 DJ들이 장식한다. 따라서 일종의 락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레이버들 간의 유대감은 소규모 클럽 보다도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프로모션 또한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레이브 분위기의 연출 보다는 상업적 목적을 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참여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고 비교적 어린 층으로 한정되어 있다.
야외 레이브 (Outdoor Type)
언더그라운드 레이브의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창고라는 갇혀진 공간에서 자연이라는 넓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확대 시킨 개념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야외 레이브 또한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 세계적인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만큼 여느 클러빙이나 레이브처럼 20,30분 운전해서 갈 거리가 아니다. 따라서 각자의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야 하는 만큼 이벤트에 가기 위해서 좀더 많은 시간과 체력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 결과 자동적으로 참여자의 '필터링' 작업이 펼쳐진다. 간단히 말해 이런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진짜 '모일 사람들'만 모이니 그 유대감과 경험의 레벨은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숨막히는 자연경관과 함께 일체감을 느끼는 초월적인 경험은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트라이브의 풀 문 게더링 (Full Moon Gathering)이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다큐멘터리인 '베터 리빙 스루 서키트리 (‘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1999'가 야외 레이브 씬을 잘 묘사하고 있다.
<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 라스트씬>
페스티벌(Festival Type)
야외 레이브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하루가 아닌 2,3일 또는 일주일 동안의 기간 동안 진행되는 일종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녹아 들은 이벤트다. 유명한 페스티벌들인 글라스튼베리, 크림필드, 홈랜드, 코첼라, 버닝맨, 러브 퍼레이드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몇 가지의 성격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우선은 두 가지로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상업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우드스톡적 성격을 어느 정도 계승하는 것 (히피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성향: 스톤헨지)과 그렇지 않은 것 (크림필드).
자연 경관이 뛰어난 사막이나 초원 등지에서 펼쳐 지기 때문에 위에 언급했듯이 장소에 가기 까지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도심지에서 열리기도 한다) 또한 몇 일이 넘도록 수많은 인원들이 같이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하루, 이틀에 불과했던 야외
레이브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좀더 확장된다. 우드스톡도 그러했지만 이런 대규모 야외 음악/예술 페스티벌을 향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오래 전부터 좋지 만은 않았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 포스트 히피 세대들) 테크노와 에시드 하우스, 락이 혼합된 페스티벌의 주역들인 영국의 피스 콘보이 (뉴에이지+히피), 지피(히피+80년대 후반 테크노), 스파이럴 트라이브 등이 정부와 기성 세대에 맞서 스톤헨지, 캐슬모튼, 글라스튼베리 등지에서 때로는 피를 흘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켜 왔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단연 독일의 러브 퍼레이드다. 요번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 왔던 DJ 닥터 모트에 의해서 음악을 통한 평화와 이해라는 모토로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서 (89년 10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해서 2003년엔 75만명, 2006년에 이르러 120만 명을 끌어 모았다) 베를린 전체가 레이버들과 클러버들의 잔치판이 된다. 이는 레이브로 대변되는 전자댄스음악 문화가 얼마나 주류 문화에 깊이 파고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오후, 저녁 시간을 이용한 도심 퍼레이드로 시작해 새벽을 향한 광란의 크고 작은 애프터 파티들로 이어지는 베를린의 러브 퍼레이드는 레이버들에게 일종의 성지 순례이며 정부,시청 입장에서도 나치 국가의 이미지 쇄신과 관광, 문화 수입원이 대단한 만큼 안전, 화장실 제공, 청소 등 아낌 없는 지원을 펼친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일장일단이 있듯 몇 일간 시끄러워지는 이 도시를 견딜 수 없어 시간에 맞추어 딴 곳으로 여행을 떠나버리는 베를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라스튼베리 페스티벌
<Love Parade 2006 Anthem- United States of LOVE by Westbam>
리트리트(Retreats)
지면 상의 문제로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위에 언급한 형태들보다 새로운 개념의 진화된 레이브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 리트릿을 레이브로 부를 수 있는 타당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게더링 오브 트라입스(Gathering of Tribes), 리듬 소사이어티 (Rhythm Society), 트라이벌 하모닉스(Tribal Harmonix)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데 종교적이고 유토피안 커뮤니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음악과 댄스가 난무하는 레이브 뿐만 아니라 워크샵이나 명상 활동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레이브의 원형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개념을 (사랑, 평화, 평등, 존중 등) 가르치고 토론하고 실천한다. 바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로운 ‘건강한 커뮤니티 구축’에 깊은 뜻이 있다. 더 나아가 이 리트릿에 참여 했던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에 이 이상이 녹아 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들 그룹은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으며 참여 또한 추천에 의해 가능한 ‘작고 닫힌’ 사회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에도 민감하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할 줄만 알아도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될까… 정말 이상적이기는 하다…)
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Vol 4:
Bye 80s, Hello 90s part1: Electroclash
2002년모든음악잡지기사들은 Electroclash scene의이야기로가득찼다.90년대말네덜란드에서시작되어 2000년경뉴욕의Larry Tee에의해이른바새로운 '장르'가대중의눈앞에새로이나타난것이다. (이것은최근몇년사이폭풍처럼밀려온 80년대복고유행의시작을의미한다) 하지만Electro 사운드의유행(?)은이미전세계적인언더그라운드문화현상이었다. 장르구분도모호했던(지금도그렇지만)이시기에 80년대 electro와new wave성향을가진음악들은여러가지이름으로불리고있었다; (Nu Nu Wave, Neo-Italo, Nu NRG, Nu Electro 등등) 베를린의DJ Hell을필두로한International DJ Gigolo 레이블, Electro 복고사운드의서막을알린네덜란드의I-F의"Space Invaders are Smoking Grass"등이그예이다. 따라서 Larry Tee는이모든 'ELCTRO' 현상에대한창시자로볼수는없지만가장많은미디어의스포트라이트를받은장본인이라고볼수있다. 그리고지금그가뉴욕을망쳐놓은인간3위로등극하며욕을먹는가장큰이유도그때문이아닐까. (2위는모르겠고 1위는뉴욕시장이라고한다.)
일렉트로니카역사에있어 70년대 Larry Levan의 Garage 씬과 90년대초반 Frankie Bones의레이브씬 (이때 PLUR라는말이처음으로나왔다.) 이후로뉴욕의서브컬쳐씬은이렇다할뉴스거리를만들어내지못하고있었던상황이었기에 Electroclash는뉴욕의힙스터들에게는한없이반가운사건이었을지모른다. 항간에는Velvet Underground와Andy Warhol의 The Factory Years, Sonic Youth와Glenn Branca의 Glitch에이은최고의음악과예술의만남이라는 hype까지조성되었다. 본거지인뉴욕의Williamsburg윌리암즈버그는이미 70, 80년대부터소호에서빠져나온언더문화, 예술가, 음악, 패션관련사람들이모이며 2000년대뉴욕의문화중심지로서이새로운움직임의동지들을얻기에인프라적으로도유리했다. 또한 9/11과맞물려이틀간열린 'The 1st Electroclash Festival'은뉴욕, 미국그리고나아가전세계를향해새로운변화의물결을외치며전략적인타이밍의성공과더불어각종미디어의주목을받기시작한다. 뉴욕에근거지를둔Fischerspooner, A.R.E Weapons, W.I.T, Ladytron, the Soviet 등의아티스트들을중심으로 Larry Tee는Club Luxx에서 (지금은 Trash Bar로 문을 새로 연 상태 임) Berliniamsburg 나이트를열며지속적인 Electroclash의확산을꾀한다. 또한Felix da Housecat 과Miss Kittin and the Hacker의가세로더욱큰탄력을받는다. 2002년에피크를때리지만여기저기서‘Electroclash Sucks!’ 티셔츠들이등장하고결국 Electroclash는몰락하고만다. (Larry Tee는‘Electroclash’에대한저작권을소유하기도했고이는관련아티스트들의반발을사게된다)
Electroclash는현일렉트로니카댄스문화에대한일종의 '발칙한' 쿠데타였다. Larry Tee에게유로트랜스, 하우스그리고Sasha와John Digweed로대변되는 Progressive (혹은 instrumental과미니멀사운드)로일관되는클럽문화는너무지루해보였다. Vibe를이끌어내는가이드라는명분이실종되고엘리티즘과매너리즘에빠진사운드로많은DJ들은그들이만들어낸 'progressive' 세계에클러버들을가두려했다. Techno라는굴레에서벗어나지못하는틀에박힌사운드와댄싱. 거기다가미니멀적인요소까지더해지다니. 이제우리는지난시절 Progressive Rocker들의컨서트를관람하듯 DJ들의예술적인음악성과고상함을즐겨야하는것인가! "이음악과 DJ들은전혀섹시하지않아!"라고외치며 Larry Tee는Techno의종속성에서벗어나지못하는현재 (2000년) 댄스음악문화현상이재미와혁신과상상력을오히려거세하고있다고믿었다. 따라서이를뒤집기위해정면으로승부수를띄운다. 바로전자댄스음악계의판도가 DJ 음악의 instrumental하고미니멀한성향에서밴드위주의퍼포먼스와팝성향으로바뀌게되는흐름에동참한것이다. (그리고이현상은지금까지다른형태로탈바꿈되며현재진행형이다) 그동안볼수없었던전자댄스음악에있어보컬과가사의화려한귀환이었다. 또한전자댄스음악에깊은뿌리를두고있는 80년대 Rave 문화의유산을미련없이던져버렸다. 레이브문화가추구하던인종, 계층, 나이, 성별을초월한평등주의, 음악과춤을통한샤머니즘적트랜스의경험그리고모두가하나됨이라는엑스터시바이브를 80년대 new wave와 new romanticism에근거한기계적이고펑크적이며패셔너블하고슬릭, 럭셔리한코케인바이브로대체하려했다. (80년대후반레이브의문화를접하지않은많은 10,20대들은오히려 Nirvana와같은얼터너티브락이나펑크가더친숙한부류이기때문에이러한환경에쉽게적응하고환영할수있었다.)
Electroclash는음악의장르라기하기에는너무나많은요소들이뒤섞여있다. Synthpop 성향이강한음악이있는가하면 punk rock에더가까운음악들도있다. 굳이이들의공통점을찾자면로봇보컬을떠올리는잦은보코더의사용과New Order의Blue Monday와Giorgio Moroder 식의신스베이스라인이깔려있구나정도다. 따라서 Electroclash 음악은기존의 trance, house 혹은 drum n base처럼 BPM으로정의할수없다. 바로음악이아닌스타일이라는것이다. 어떤음악이던 80년대new wave의성향을어느정도가지고있고춤을출수있고 punk 혹은 glitch스럽고 sexy 하다면 Electroclash라할수있을것이다. 따라서음악의한장르로서이를구분하는것은불가능하다. 굳이음악적인차원에서풀자면초기 electro retro 성향의음악은오히려 techno가가진미니멀적이었다는것. 하지만 Electroclash 가 pop적성향을어필하면서비로소보컬, 가사, 노래, 멜로디라는요소들이부각되었다는것정도다. 일종의록성향을가진사람들을위한댄스음악이라고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