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건축을 잘못 이해했다."
- 워싱턴 포스트"건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냥 아카데미용 미끼일 뿐."
- 캐롤라이나 미란다 (LA타임즈 미술평론가)"영화는 흡입력 있는 인간 드라마지만 건축적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 Dezeen"건축과 공간을 마법처럼 활용하는 영화가 정작 건축을 이렇게 잘못 이해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파이낸셜 리뷰"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물은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도 없다"
- 빅토리아 영 (Univ. of St. Thomas 건축교수)"완전 터무니없는 소리야!"
- 저명한 20세기 유산 보존 운동가가 인터미션에서 분노하며 외친 말 (Guardian)"만약 [피아니스트]와 [파운틴헤드]가 섹스를 했다면 이 영화가 자식일 것이다"
- 마크 램스터 (달라스 모닝 포스트 건축 평론가 )"2010년대 브루탈리즘 붐에 영향을 받은 밀레니얼 감독이 "브루탈리즘은 멋지고 쿨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 같다."
- 일반 댓글 (Dezeen)
건축계는 대체 왜 이렇게 흥분했을까?
『더 브루탈리스트』는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개봉 이후 영화계와 건축계는 극명히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영화계는 이 작품의 뛰어난 연출과 연기, 시각적 스타일을 극찬한 반면, 건축계는 브루탈리즘에 대한 몰이해와 역사적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먼저 밝혀둘 것은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평소 스포일러를 극도로 피하는 성격이지만 건축계의 강렬한 반응에 흥미가 생겨 관련 평론들을 찾아 읽었다. 이 글은 무작정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계를 매혹시킨 작품이 왜 건축 전문가들에게는 이토록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지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물론 모든 건축계가 비판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영화에 좋은 평들은 수 없이 나와 있기에 비판적인 시각의 소스만을 다룬 것은 참고를 바람.
📌 건축계의 비판과 배경
건축 전문가들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며 비판한 이유는 뭘까? 위 코멘트들을 소스 매체 내용에 따라 정리해보았다.
1️⃣ "영화는 건축을 잘못 이해했다." —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의 건축평론가 필립 케니컷(Philip Kennicott)에 따르면 영화는 표면적으로 건축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유대주의, 난민의 삶, 문화적 단절, 정신질환, 성폭력,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질 등 훨씬 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야심 찬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가 건축을 표현한 방식은 피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건축가를 현실의 제약이나 사회적 협력을 무시한 채 개인적이고 영웅적인 천재로 과장하며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케니컷은 이러한 접근이 오래된 건축가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건축이 현실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사회적 협력, 실용성, 지속가능성과 같은 핵심적 가치들을 완전히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영화는 건축이 때로는 정치적 권력이나 폭력에 악용되는 등 어두운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중요한 현실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니컷은 영화가 담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주목한다. 비록 건축이라는 주제를 구시대적이고 과장된 방식으로 다루긴 했지만 오늘날의 사회적 혼란과 분열 속에서도 창의성과 이상주의적 열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워싱턴 포스트는 『더 브루탈리스트』가 건축에 대한 현실성 있는 고증이나 깊이 있는 이해의 측면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지만, 창의성과 이상주의가 가진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Washington Post)
2️⃣ "건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냥 아카데미용 미끼일 뿐." — 캐롤라이나 미란다 (LA타임즈 미술평론가) 외
영화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야심 찬 주제를 다루지만 건축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디자인 평론가들인 미란다 캐롤라이나(LA 타임즈 미술평론가), 마크 램스터(댈러스 모닝 뉴스 건축평론가), 알렉산드라 랭(디자인 비평가)이 진행한 팟캐스트『더 브루탈리스트는 왜 망작인가? Why the Brutalist is a Terrible Movie』의 주요 비판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에 대한 묘사가 피상적이고 불충분하다. 영화는 주인공 라슬로 토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을 추구하는지, 설계 과정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끝에 급조된 듯 삽입된 베니스 비엔날레 발표는 영화 내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건축을 갑자기 억지로 정당화하려는 장치라고 비판한다.
둘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시대착오적인 천재 신화를 반복한다. 실제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은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난민 건축가가 미국에 현대 건축을 처음 소개한 것처럼 잘못 묘사한다. 또한 주인공이 개인적 천재성만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한다는 비현실적 서사는 현대 건축이 가진 협업적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1인의 천재건축가라는 오래된 클리셰를 재반복한다. 추가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태동이 핵심 주제였고 브루탈리즘은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재조명받았기 때문에 시대적 맥락에서도 잘못된 접근이다. (특히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마셀 브로이어의 전기 형식을 채용하면서 역사 왜곡이 들어간 점이 더 비판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실제적 역할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점. 영화 속 건축물인 커뮤니티 센터는 실제 지역사회의 필요나 의견과 무관한 채 지어져 건축이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현대 건축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Architectural Newspaper), (Podcast)
3️⃣ "영화는 흡입력 있는 인간 드라마지만 건축적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 Dezeen
Dezeen은 영화가 건축가 개인의 고통과 갈등 등 드라마적인 요소는 효과적으로 묘사했지만 정작 '건축'이라는 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자동차의 겉모습은 화려하게 보여주면서도 실제 그 자동차의 안전성이나 기능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영화는 건축을 단지 시각적이고 화려한 외관으로만 표현했을 뿐, 정작 사람들이 건축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가치를 얻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Dezeen)
4️⃣ "건축과 공간을 마법처럼 활용하는 영화가 정작 건축을 이렇게 잘못 이해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파이낸셜 리뷰
영화는 건축가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독한 천재로 묘사하는 오래된 클리셰를 반복하고 있다. 영화 속 건축가는 개인적 비전을 위해 주변의 현실을 무시하고 투쟁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실제 건축은 클라이언트, 지역사회,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의 협력을 통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완성된다. 특히 영화는 건축물을 개인의 트라우마와 창작욕의 표현으로 미화하면서도 정작 실제 사용자와의 관계나 건축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 건축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외면한 채 마치 불멸의 예술작품인 것처럼 잘못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영화는 현실의 건축물보다 더 오래 공간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실제 건축의 본질을 왜곡하여 전달할 위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평가하고 있다.(Financial Review)
5️⃣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물은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도 없다." — 빅토리아 영 (Univ. of St. Thomas 건축교수)
6️⃣ "완전 터무니없는 소리야!" — 한 미국 건축 유산 보존 운동가가 인터미션에서 분노하며 외친 말 (Guardian)
5,6번은 가디언 아티클의 내용이라 하나로 묶는다. 『더 브루탈리스트』가 묘사한 건축물은 브루탈리즘의 핵심인 기능적이고 공공적인 본질과 동떨어진 채 단지 거대한 기념비로만 표현되어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논란이 된 '나치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커뮤니티 센터'는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지적된다.
이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마르셀 브로이어의 미네소타 교회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수도원과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된 현실과도 크게 대조된다. 가디언지는 감독의 얕은 건축 이해를 비꼬며, 건축계는 향후 감독이 내놓을지도 모를 다섯 시간짜리 대작 『더 포스트모더니스트』, 『더 해체주의자』, 『더 파라메트리시스트』를 기다리겠지만, "시대에 맞는 장비를 동원해 커피 테이블 위의 건축책을 한번 훑어보고 만드는 수준일 것"이라고 신랄하게 평가했다. (The Guardian)
TMI: 오히려 모더니즘의 초창기 양식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굳이 평가 하자면 루이 칸의 건축을 참고 했다면 모르겠으나 안도 타타오의 건축을 참고 했다면 이건 좀 시대착오적이 아닌가라는 비평도 있었다.
7️⃣ "만약 [피아니스트]와 [파운틴헤드]가 섹스를 했다면 이 영화가 자식일 것이다." — 마크 램스터 (달라스 모닝 포스트 건축 평론가)
AN에서는 마크 램스터의 팟캐스트 내용을 인용했는데 영화가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묘사하고 신화화한 점을 두 편의 유명 영화에 빗대어 신랄하게 표현한 코멘트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전쟁 트라우마를 비극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린 영화『피아니스트』와 천재 건축가가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위해 사회적 타협을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화『파운틴헤드』가 결합된 듯한 과장된 드라마가 바로 『더 브루탈리스트』라는 것이다.
이외 AN의 리차드 마틴의 비판을 살펴보면, 영화는 건축적 묘사에서도 비현실적이고 피상적인 표현으로 비판한다. 작품 속 설계 방식은 "핀터레스트 수준의 브루탈리즘 이해"라는 비아냥을 하며, 특히 감독 브래디 코벳이 영화 속 건축물과 도면 일부를 AI 기술로 구현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무감각함도 언급한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에 유대인 주인공의 이주 서사를 통해 '시오니즘적' 맥락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영화의 정치적 무신경함을 지적했다.
결국 AN의 리뷰는 이 영화가 상업적·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건축이라는 주제를 피상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전문가들로부터는 깊은 실망과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Architectural Newspaper)
8️⃣ "2010년대 브루탈리즘 붐에 영향을 받은 밀레니얼 감독이 '브루탈리즘은 멋지고 쿨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 같다." — 일반 댓글
Dezeen에 달린 이 댓글은 The Guardian에서 비꼰 커피 테이블 북 등을 통해 유행한 브루탈리즘을 얄팍한 트렌드로만 소비했다는 시선과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 같다. 브루탈리즘이 단순히 "멋지고 쿨한" 미학적 코드로 축소되면서 본래의 사회적, 기능적 맥락과 철학적 깊이가 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건축이라는 복합적이고 의미 있는 분야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벼운 스타일이나 유행의 소재로 전락했음을 일반 관객의 시선에서도 냉철히 비판한 셈이다.
이 외 TMI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USM Haller 가구, 주인공이 쓰는 건축용 펜슬이 영화 배경보다 10년 후에 나온 것에 대한 고증 오류 등도 자세하게 파고드는 타 매체들의 댓글들도 볼 수 있었다.
📌 쉽게 보는 총평:
결국 『더 브루탈리스트』는 영화적으로는 매우 훌륭하지만, 건축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건축 본연의 의미와 철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건축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반 관객들이 건축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어 전문가들이 더 강하게 반응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브루탈리즘이라는 조금은 낯선 건축 양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더 브루탈리스트』에 대한 건축계의 평가는 공통적으로 '본질에 대한 몰이해', '피상적 스타일화', 그리고 '역사적 사실 왜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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