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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9월자
              Krautrock과 Kraftwerk: 독일 김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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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의 음악 씬은 히피의 문화 혁명을 겪고 프로그레시브 락과 아트 등이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죠지 해리슨에 의한 후기 비틀즈 사운드(‘I am a Warlus’ ),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 등이 선봉장을 맡았었다. 이들의 Hedonistic 헤도니스틱 (쾌락주의적) 사운드는 아직도 기존 음악이 가지고 있던 (히피의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 LSD 영향과 정치적 성향을 극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혹은 논외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사운드는 어느 정도 엠비언스와 기계음의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편에서는 Stockhauzen 쉬톡하우젠과 같은 전위 음악가들이 에드가 바레즈의 바톤을 이어 받아 좀더 깊이 있고 자유로운, 하지만 아직 엘리트적인 틀에 갇혀 있는 전자 음악 사운드의 실험을 추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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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맥락을 2 세계 전쟁의 범인이라는 엄청난 죄의식은 자존심과 민족성이 강한 독일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처였다. 또한 전쟁 이후로 세계 1 파워가 미국의 문화적/예술적 식민주의 정책 또한 독일의 아티스트들에게는 뼈저린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60년대가 막을 내리고 있을 무렵 세계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는 독일에서 크라우트락 Krautrock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Faust 파우스트, CAN , Neu! 노이!, Kluster 클러스터, Popul Vuh 포폴 , Tangerine Dream 탠져린 드림,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 등에 의해 주도 흐름은 60,70 Rock 밴드의 형태 (ex. 기타, 드럼, 베이스) 취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에드가 바레즈에서 쉬톡하우젠으로 이어지는 독일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의 실험 정신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열어놓은 -전자음악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을 확장 시켰다. 이들은 주류 시대 정치적/문화적 사상에 반항적이었던 락과는 별개로 테크놀로지에 의해 정의 되는 세상을 직시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해 나갔다. 따라서 이들의 사운드는 미국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맥락에서는 정치적이지만, 음악적으로 좀더 학구적/미학적 이였고 서민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엠비언스가 가득한 '공장 심포니' 가까웠다. (선형적이고 직설적인 기존 락과는 달리 자유롭고 해체주의를 지향하는 Freeform Rock 프리폼 또는 사운드 꼴라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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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의 가장 특징은 전자 음악 평론가 Peter Shapiro <Modulations>에서 묘사하고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나의 손가락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있는지를당신은 나를 보고 감탄 것이다 대해 빠져 있었다면, 크라우트락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내가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보다는 그들을 치유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크라우트락이 200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지를 찾을 있다. 째는 앞으로 (70년대를 기준으로) 다가올 암울하고도 희망적인 모순적 테크놀로지 중심 사회를 인지한 그들만의 외로운 외침이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넘어 랩탑, 핸드폰, Mp3, PDA, PMP 각종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에 의해 네트워크화 지금 디지털 사회에 의해 우리 인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컴퓨터 없이 업무 생활이건 불가능 사회가 왔다.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보여주듯 네트워크가 이상을 일으키면 국가뿐 아니라 세계가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는 사회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까지 변할 것이라 그들 또한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사운드 안에는 충분히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번째 성격으로 말할 있는, 그들이 추구했던 기계적 사운드에 담긴 깊은 엠비언스다. 바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담겨 있던 너무나 완벽한 아트 뮤직의 한계를 소리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선지에서 벗어난 무한한 우주의 세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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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만도 하루에 억만 건이 넘을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에 왔다 갔다 정보들의 흐름에 대해 상상해 있는가? 만년 전과 다를 없이 인간은 신체를 움직여 일하고 있지만 그런 동시에 수많은 정보들의 움직임과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보들의 움직임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받아 들일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건축의 관점에서 월드컵에 의한 시청 앞의 광장화 라던지 운하 건설 계획 같은 당장 앞에 보이는 것만 갈아 치우는 개발주의적 마인드가 낡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 말로 누구를 선동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밝혀두고 싶다) 어차피 땅을 파해 칠수록 지구의 수명을 단축할 뿐이고 좁게는 그루의 나무가 살아 숨쉬는 맑은 공기의 공간을 없어지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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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기회와 성공을 향한 말초적인 본능과 이에 의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소중한 꿈까지 포기하며 매달릴 밖에 없는 사회 그리고 그것이 헛된 병아리의 날갯짓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할 밖에 없는 사회, 바로 이것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현대 사회이며 예술품이다. 그리고 말초적인 사회 안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가벼운 메이져 영화와 대중 음악 속에서 우리는 순간마다 위안을 얻을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음악 가수들의 생명이 짧은 것도 이유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가지지 못한 다수들에게 작위적인 꿈과 희망과 안심을 선사하려면 만큼 분위기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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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이 현대의 우리에게 선물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 만이 빠져들 있는 깊은 공간 ,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떠올려 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칸트.) 처음에 언급 했듯 정형화된 오선지에서 벗어난 자유롭고도 무한한 세계로의 창문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음악에서의 엠비언스다. 엠비언스란 말이 난해하게 들릴 뿐이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이유와 해결을 찾을 있게 도와주는 치유의 음악이고 소리 조합이다. 영화 <라따뚜이> <초밥왕> 같은 만화에서 여러 음식들의 조합을 통해 무한한 우주와 형이상학적인 세상에 눈을 뜨는 것처럼 엠비언스는 소리의 새로운 공간으로 듣는 이를 유도한다- 마치 소시지 맛만 보다 사우어크라우트 (독일 김치) 맥주를 곁들이며 환상적인 조화에 의한 새로운 맛의 공간에 눈을 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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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은 70년대 뉴웨이브와 펑크의 등장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흔적은 훗날 Tortoise Coil 등으로 대변되는 인더스트리얼과 포스트 펑크 뿐만 아니라 뉴에이지, 포스트락 음악 영역 전반을 통해 발견된다. 물론 대부분 크라우트락 밴드의 사운드는 대중 손쉽게 접근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가득한 소음과 난해함으로 여겨질 있었던 사운드가 대중들로 가까이 다가갈 있도록 것은 바로 크라프트베르크가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끌어 안으면서부터 였다. (물론 엄격한 장르적 의미에서는 시점 이후의 크라프트베르크 사운드를 크라우트락이라 부를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미학적 사상과 가치 추구는 크라우트락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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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의 수용은 1972 <아우토반> 세계적 성공으로 들을 훗날 다가올 전자 댄스 음악 문화의 아버지로 만들게 된다. 이후 철저한 과학문화의 수용과 기계 안에서 존재하는 영혼의 믿음 그리고 미래 기계문명 사회의 공허함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었다. 자동차와 라디오의 찬양을 거쳐 인터넷이 나오기도 이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미래 인간의 허무함과 절망감등을 노래한 것이 좋은 예다. 당시 쉽게 없었던 최고의 테크놀로지, 기계음을 통한 미래적 사운드와 그들을 대신하는 로보트 인형의 등장, 미니멀리즘적 전개로 인한 간결함과 몽환적 분위기 등은 그들의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깊은 철학을 배경으로 그들은 미래에 어울리는 음악을 구현하고자 것이다. 그들의 앨범 하나하나는 모두 완벽하리만큼 철저한 컨셉트 앨범이었으며 여기서 기계의 영혼화, 인간의 기계 제어라는 미래 사회의 예시와 지나간 역사의 향수라는 미래에 다가올 테크놀로지 사회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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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이미 70년대 데이빗 보위 등의 당대 내노라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80년대 미국과 영국의 주류 음악인 일렉트로 (Electro) 신스 (Synth Pop)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미래주의적인 기계문명의 미학은 80,90년대를 뒤흔들 디트로이트 테크노(Detroit Techno)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지향적 현대 문명의 사운드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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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거의 모욕에도 가까운 크라우트락의 명명은 역시나 시절 악명 높은 영국의 음악 평론가가 지어준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Krautrock으로 알려지는 것에 꽤나 불쾌해 한다고 한다. (타국인이 '김치음악이라 명명하는 행위 속에 내포될 있는 은근한 조롱의 맥락). 어찌하였건 메탈이나 기존 주류 음악에만 빠져있던 리스너들에게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사할 음악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뉴에이지나 엠비언트,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대한 깊은 포용도 가능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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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Krautrock Music
1. <Neu!2> by Neu!
2. <The Faust Tapes> by Faust
3. <Tago Mago> by CAN
4. <Musik Von Harmonia> by Harmonia

5. <Yeti> by Amon Düül II

Recommended Kraftwerk Music
1.<Autobahn>
2.<Trans-Europe Express>
3.<Computer World>
4.<Radioactivity>

5.<The Man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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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 Vibe Upon the World 12:
이 시대의 디지털 좀비를 위한 사운드트랙 ,

                         Nu-Italo D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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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행이란 너무 빨리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이게 유행이다 싶어 좀 맛보려 하면 벌써 한물가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트렌드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정말 정신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 바삐 변하는 유행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발을 동동 구른다 . 따지고 보면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 유행'이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정 세대가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지 않았던 과거의 무언가를 미디어가 억지로 끄집어내어 세련되고 그럴듯한 포장을 하는 것뿐이다. 블링 독자들이 몸담고 있는 클럽 문화도 별 다를 것 없다. 최근 2년 사이에 세계 클럽 /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계는 벌써 두 세가지 이상의 유행의 파도를 맞았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회들에서 언급했던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 뉴레이브 Nu-Rave, 블로고하우스 Blog-house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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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미국에서는 락 밴드를 위주로 한 댄스펑크 Dance Punk의 화려한 크루세이드가 진행 중이었고 이에 질세라 영국도 80,90년대 레이브의 재탕인 뉴레이브를 선보였다. 또한 전 세계 mp3 블로그들에 힘입어 다프트펑크 Daft Punk로 대변되는 90년대 프렌치 하우스 French House의 르네상스 제 2기인 신종 프렌치 사운드가 전 세계 언더그라운드 클럽계를 접수했다 . 아니, 아직도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뉴레이브와 블로그하우스들의 열풍이 수면 위에 떠오른 건 1년 남짓한 일인데 또 하나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이탈로디스코 Italo Disco의 재 출현이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뉴이탈로디스코 Nu-Italo Disco? 미국의 클라스캔디 Glass Candy를 필두로 러스 마이어의 <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 인형의 계곡을 넘어서> <록키 호러 픽쳐 쇼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를 연상 시키는 camp 캠프 미학에 젖어든 Freak Show 프릭쇼의 경험을 선사하는 이 움직임은 <After Dark> 콤필레이션 앨범 출시와 함께 전 세계 언더 음악 및 클럽계를 술렁거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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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떠오르는 느낌을 말하자면 전 세계 어느 곳을 훑어 봐도 미국처럼 하위 문화 (언더 문화)가 다양하고 탄력을 잘 받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들, 노예 시절을 겪은(혹은 겪는) 흑인들, 영국에서 도망 온 백인들, 핍박 받았던 동양인들과 히스패닉들 이렇게 '어둠' '고통 '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나라라서 그럴까? 비록 200년 남짓의 역사는 그들로 하여금 유럽처럼 오랜 문명을 가진 나라들을 향해 (혹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유럽의 ' '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열정적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창출해 왔다 . 히피, 레이브, 90년대의 뉴욕 클럽 문화 등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미국 주류 문화는 언제나 이 언더 문화들을 강하게 저지 시켰고 결국은 외국으로 역 수출되어 성공한 케이스가 흔하다 .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흑인 음악이었던 테크노가 유럽으로 건너 간 것이나 레이브 열풍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유럽에서 그 결실은 맺은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움직이고 있던 Dance Punk 문화도 영국에게 빼앗겨(?) Nu Rave 로 포장 된지 얼마 안돼 Nu Italo Disco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70,80년대 조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에 의해 탄생 된 유로 디스코 Euro Disco와 사일베스터 Sylvester로 대변 되는 후기 디스코 사운드인 하이에너지 Hi NRG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움직임은 언더 중에 언더 문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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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년대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가 기계문명을 찬양하며 신스팝 Synth Pop과 테크노Techno 사운드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을 무렵 그들의 업적에 버금가는 사건을 터뜨린 이가 바로 유로디스코의 창시자인 조지오 모로더다 .(이 또한 독일인이다) 무그 Moog, 프로펫5 Prophet5 같은 새로운 신디사이저에 심취해 있던 모로더는 독일의 락 뮤지컬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여가수 도나 섬머Donna Summer를 발탁하여 1975년 수많은 컨트로버시를 낳은 17분짜리의 문제작 ' Love to Love You Baby'를 발표한다 . 섬머의 차가운 목소리와 모로더의 미니멀하고 순수한 일렉트로닉 디스코 사운드의 환상적인 조화는 1977' I Feel Love' 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 결실을 맺는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반복과 흑인 특유의 Soul Funk의 난해한 리듬을 단순화 시킨 4-to-the-floor 리듬 , 10분이 넘어가는 12" extended 믹스 싱글 그리고 이들의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는 하우스와 테크노의 또 다른 초석인 유로 디스코를 탄생시키고 도나 섬머를 시대 최고의 섹스심벌이자 아이스 퀸으로(기계적 에로티시즘) 등극시켰다 . (모로더와 섬머의 에로틱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성적인 흥분이 얼마나 강했는지 레코드사 사장의 환상적인 ' 밤 생활'을 위해 17 분의 익스텐드 믹스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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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디스코라는 음악에 기계와 섹스라는 성적인 코드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크래프트베르크 Kraftwerk나 탠져린드림 Tangerine Dream 같은 그룹이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통해 기계 문명 안에서의 스피드 , 사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본 기계 문명으로 인한 불안한 미래 등과 같은 ' 엘리트'적인 담론을 내포하고 있었던 반면 모로더와 같은 유로디스코의 선봉장들은 신디사이저를 통해 인간 내면의 원초적이고 성적인 페티시즘 /섹슈얼 코드와 기계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70년대 디스코가 지향하던 '기계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사운드와 리듬, 그로 인한 환상과 쾌락의 유토피아 '의 주춧돌이 되었다. 흑인 음악 특유의 Funk, Soul, Groove한 리듬 요소가 드럼 머신에 의해 차갑게 변모하고 '쾌락의 정치학' 은 핍박 받던 사회적 마이너들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게이 커뮤니티에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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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년대 후반 미국의
' 디스코 죽이기 운동'의 직격탄은 다시 디스코를 주류에서 지하로 끌어내렸으며 여기서 모로더가 추구하던 기계미학과 마이너들의 '쾌락의 정치학 '의 계승이 사일베스터 Sylvester의 하이에너지 Hi NRG와 함께 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사회에서 버림 받은 외톨이가 더욱 더 삐뚤어지듯이 이 지하 세계의 디스코 사운드는 좀더 괴기해져만 갔다 .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속도는 빨라지고 사운드는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다. 그 후로 피펑크 P-Funk, 하우스 House, 트랜스 Trance, 하드코어 Hard Core의 새로운 장르들이 제각기 옛 유산을 버리고 자신의 개성을 찾아 떠남에 따라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은 점점 잊혀져 갔다 . 그리고 2007년 지금 뜬금 없이 그 오랜 공백을 <After Dark> 앨범이 다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올가즘 Orgasm이나 성적인 코드와는 상관 없이 Hi NRG와 함께 떠오른 유럽의 몽환적인 스페이스 디스코 Space Disco의 코즈믹 Cosmic한 사운드 역시 After Dark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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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닉 유스 Sonic Youth로 대변되는) 노웨이브 No Wave 음악 성향에서 어두운 이탈로 디스코 사운드로 변모한 글라스캔디Glass Candy를 주축으로 한 이탈리언즈 두 잇 베터 Italians Do it Better 레이블의 콤필레이션 앨범인 <After Dark>는 확실히 10 년에 나올까 말까 한 명반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뉴이탈로 디스코는 블로그 하우스나 뉴레이브처럼 선동적이거나 대중적이지도 않고 그들만큼 주류로 호응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언더그라운드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이 그러했듯이 언더그라운드의 그 깊고 어둡고 음침한 우물 속에 고여있지 않을까 싶다 . 이 움직임은 포스트 모던 사회 안에서의 극단적 해방, 탈출의 염원과 절망, 그로 인한 변태성의 표출이라는 사회적 마이너의 정신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영원한 언더 중의 언더 씬으로 자리 잡을 운명은 그 시작부터 부여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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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여기서 이 앨범과 참여 아티스트들이 주목 받아야 하는 것은 단지 앨범 및 각 트랙의 완성도와 더불어 70,80년대 일렉트로의 유행에 힘입어 쏟아져 나오는 현재 복고풍의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사운드적/문화적 어설픔의 충족 뿐만이 아니다 . 전자 댄스 음악 문화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와 옛날 B-급 영화의 캠프 Camp 적인 성향의 귀환이라는 점은 하루의 24시간도 모자라듯 초 급변하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살아가며 비상구를 찾을 수 없어 자포자기 해버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마지막 정신 분열적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 이 움직임의 진정한 의미다 . 지금의 80년대 복고 열풍이 대중문화로서의 랑데부를 가진 것은 몇 년 전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를 통해서 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속도감의 직접적인 차용은 사운드보다 더 빠른 심리적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다지 큰 어필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 오히려 지금 듣기엔 어딘가 너무 느려터진 듯한 Kraftwerk
' 아우토반 Autobhan' 의 사운드가 속도감속의 몽환적 경험을 더욱 깊게 선사하는 것처럼 <After Dark> 앨범의 뉴이탈로 사운드는 일렉트로클래시와 그 잔재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속도감과 거침없음의 직접적 표현을 뒤로 감추고 은유적인 미학을 취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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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는 조지 로메로 감독 영화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쇼핑몰에 몰려든 좀비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전진하는 좀비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지도 않고 정체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걸림돌에 계속 걸리며 불편하고 또 그만큼 느리게 전진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극성을 부리는 자본주의 후기의 각박한 삶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오르게 한다 . (같은 시간과 행동을 반복하는 샐러리맨들을 보라!) 더군다나 After dark, 어둠이 사라지며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햇빛 속에 주춤하는 좀비들이 경험하는, 그 짧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 , 바로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여명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After Dark>의 사운드다. 물론 이 사운드가 자리잡고 있는 클럽의 물리적 장소와 경험 또한 음침하고 더럽다. 하지만 그런 역겨움과 퇴폐함의 이물질이 현대의 정신분열적 이상인 우리 좀비들에게는 더욱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 Kraftwerk가 현대 기계문명을 찬양하면서도 인간이 기계에 속박되는 어두운 문화를 표현했다면 <After Dark>의 사운드는 그와는 정반대로 기계의 인간화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디지털 사회의 물결 속에 진정한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알지도 못하는 혹은 망각해버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되찾고자 하는 슬프고도 소용없는 몸부림이랄까 ?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면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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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Dark>가 추구하는 코즈믹하고도 정신분열적인 포스트 이탈로씬은 그 자체로서 마약이며 알코올이다 . 이들의 사운드와 함께 한다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무언가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직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행복과 희망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설프고 저질적인 경험이겠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차마 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살조장이 아니라 생명이란 한정되어 있기에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현실 도피 성향의 회의주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 혹은 심리적 시간의 '지체' 일 뿐 손목에 찬 시계는 0.1초의 흐트러짐 없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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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언제나) 지면 상의 문제로 못하는 얘기가 있다. 하나만 언급하자면 After Dark의 어두운 사운드와는 반대로 이탈로 사운드의 회귀는 여러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 피치포크미디어가 지적했듯 이탈로의 낭만주의적 인디팝을 표현하는 샐리 셔파이로 Sally Shapiro, 쎄론 Cerrone의 에로티시즘과 비 에로티시즘격인 스페이스 디스코의 접점인 블랙데블디스코클럽 Black Devil Disco Club, 변태적 롤리타 보컬 성향의 Cloeatta Paris, 라이엇걸 Riot Grrrrl 미학에 블루스/소울을 가미한 캐시 다이아몬드 Kathy Diamond 또한 뉴이탈로 움직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들이다 .



Recommended Nu Italo Disco Tracks:

1.    http://www.nowtoronto.com/issues/2005-02-24/music_feature4-1.jpg  Rolling Down the Hills by Glass Candy


2.     photo_128.jpg Night Drive by The Chromatics



3.      You’re the One by Farah


4.     http://www.exclaim.ca/images/up-cloetta_sml.jpg St.Elmos Fire by Cloeatta Paris


5.    http://www.villagevoice.com/blogs/statusainthood/diamond.jpg I need you by Kathy Diamond



6.      Lake of Dreams by Mirage




7.   http://this.bigstereo.net/wp-content/uploads/2006/07/sallyshap.jpg  Anorak Christmas by Sally Shapiro


8.     http://www.almostcool.org/mr/art/1880On Just Foot by Black Devil Disco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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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Candy 공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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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 Vibe Upon the World 11: Rave Typology

* 분류는 로빈 사일비안의 트랜스포메이션 <Trance Formation>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자동차에 대해 말할 때 요즘은 그저 스포츠카라고 부르는 것을 뛰어 넘어 로드스터와 쿠페를 구분할 줄 아는 세대로 접어 들었다고 한다. (사실 난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것인지) 마찬가지로 그저 파티가 아니라 자신이 어느 형태의 레이브 혹은 클러빙의 경험을 하고 있는 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웨어하우스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Underground Warehouse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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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다. 하우스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프랭키 넉클스의 시카고 웨어하우스(창고) 파티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웨어하우스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참여와 준비에 있어 상당히 비밀스러운 과정을 요하며 레이브 시절 초기에 성행했다. 대게 버려진 창고 같은 곳을 찾아 원-샷 이벤트 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경찰의 눈을 잘 피해야 했고 당연히 모이는 사람들도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들이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가 계획되면 지인들이나 동네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가게들을 통한 플라이어를 얻어 (혹은 이메일이나 자동응답을 통해) 날짜와 연락처를 받게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벤트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녹음된 메시지로 장소를 확인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 더욱 비밀스럽게는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레이브 관련자가 그 곳에서 직접 장소를 말해주고 레이버들은 그에 따라 다시 방향을 돌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럽과는 달리 오프닝과 엔딩 세레모니가 따로 마련되어있기도 했다. 이런 비밀스러운 '모임' 의 분위기는 레이버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일종의 '자신들만'의 이벤트로서 일종의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 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벤트 플래너들의 일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 날의 '확실한' 경험을 위해 DJ 부킹은 물론 사운드, 비쥬얼, 데코레이션, 먹거리 (특히 물), 경찰로부터의 안전 보장 등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레이브와 클러빙의 성공여부는 바이브를 끌어낼 수 있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웨어하우스 레이브의 경우 이 '바이브'를 느끼기에 가장 수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 레이브의 첫 경험은 단순한 행복과 쾌감을 뛰어 넘어 인생관의 전환점을 맞게 했다고 많은 1세대 레이버들은 증언하고 있다. (흔히 레이브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It went-Off’란 텀을 쓴다)

대게 밤 10시~12시 이후에 시작되고 피크타임은 새벽 3,4시 정도이다. 레이브가 끝난 후 레이버들은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오후까지 열리는 애프터 파티로 향하기도 한다.

90년 대의 초기 미국 샌프란시스코 레이브 씬이 이 웨어하우스 파티로 유명하다. 그레그 해리슨 감독의 영화, '파티는 시작되었다 (Groove,2000)'이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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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바, 라운지 (Club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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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내에서 '클러빙','파티'라고 하는 이벤트의 대부분이 이 분류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이브/클러빙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다. 앞서 말한 웨어하우스 레이브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웨어하우스가 '언더그라운드'인 반면 이들은 어느 정도 혹은 완전히 '오버-그라운드'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승인을 받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만큼 언더그라운드 파티와는 달리 마약이 규제되고 술이 합법적으로 판매된다. 또한 이 곳을 가기 위해 '인사이더'일 필요도, 지인을 알아서 때와 장소를 알아내야 할 필요도 없다. 입장료만 있으면 언제나 '웰컴'이다. (따라서 엄격히 따질 때 요즈음의 클럽을 순수한 차원에서 레이브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상업적 측면은 그만큼 시공간적 접근성을 높이기 때문에 클러빙과 레이빙의 첫 경험을 이곳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주류 레이브보다는 덜 유토피안적이고 타인과의 허물없는 시간을 보내기 힘들기 때문에 레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바이브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엑스터시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재 클럽 씬의 분위기 그 자체의 문제로 보여진다)

클럽 오너가 직접 주기적으로 파티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 이 공간을 빌려 서로 다른 프로모터들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파티를 여는 경우도 있다. 상업적 측면이 강한 유명 DJ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적이고 유대적인 오프닝, 엔딩세레모니, 애프터 파티가 생략되고 새벽 2~5시 사이에 (법적인 문제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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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부분의 클럽이 이 형식에 속하며 80년대 후반 애시드 하우스로 물들은 영국 씬은 이른바 클러빙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토니 윌슨의 하씨엔다와 더불어 이비자의 발레릭 씬에 영향을 받은 닉키 할러웨이, 폴 오큰폴드, 대니 램플링의 트립, 스펙트럼, 슘  클럽 등이 유명하다. 특히 슘은 영국 최초의 레이브 클럽으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랑과 환희의 바이브는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이 때는 초기 애시드 하우스 시절이었던 만큼 언더그라운드 적 현상으로서 클럽과 레이브에서 엇비슷한 바이브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대규모 상업 레이브 (Massive and Commerci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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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엄청난 만큼 '매시브'라고도 불린다. 실내/야외 이벤트를 포함하며 몇 백에서 몇 만까지의 인파가 몰려든다. 큰 이벤트인 만큼 기업체의 스폰스를 받기도 하고 매체를 통한 광고도 대대적으로 펼친다. 따라서 장소가 '공개'된다는 측면에서 언더그라운드 레이브와 대립된다. 사운드 시스템, 조명 등 화려하고 압도적인 분위기 연출에 있어서 많은 투자를 하며 주 라인업은 로컬이 아닌 수퍼스타 DJ들이 장식한다. 따라서 일종의 락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레이버들 간의 유대감은 소규모 클럽 보다도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프로모션 또한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레이브 분위기의 연출 보다는 상업적 목적을 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참여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고 비교적 어린 층으로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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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레이브 (Outdoor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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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이브의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창고라는 갇혀진 공간에서 자연이라는 넓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확대 시킨 개념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야외 레이브 또한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 세계적인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만큼 여느 클러빙이나 레이브처럼 20,30분 운전해서 갈 거리가 아니다. 따라서 각자의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야 하는 만큼 이벤트에 가기 위해서 좀더 많은 시간과 체력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 결과 자동적으로 참여자의 '필터링' 작업이 펼쳐진다. 간단히 말해 이런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진짜 '모일 사람들'만 모이니 그 유대감과 경험의 레벨은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숨막히는 자연경관과 함께 일체감을 느끼는 초월적인 경험은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트라이브의 풀 문 게더링 (Full Moon Gathering)이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다큐멘터리인 '베터 리빙 스루 서키트리 (‘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1999'가 야외 레이브 씬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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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 라스트씬>


 

페스티벌(Festiv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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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레이브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하루가 아닌 2,3일 또는 일주일 동안의 기간 동안 진행되는 일종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녹아 들은 이벤트다. 유명한 페스티벌들인 글라스튼베리, 크림필드, 홈랜드, 코첼라, 버닝맨, 러브 퍼레이드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몇 가지의 성격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우선은 두 가지로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상업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우드스톡적 성격을 어느 정도 계승하는 것 (히피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성향: 스톤헨지)과 그렇지 않은 것 (크림필드).

자연 경관이 뛰어난 사막이나 초원 등지에서 펼쳐 지기 때문에 위에 언급했듯이 장소에 가기 까지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도심지에서 열리기도 한다) 또한 몇 일이 넘도록 수많은 인원들이 같이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하루, 이틀에 불과했던 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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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좀더 확장된다. 우드스톡도 그러했지만 이런 대규모 야외 음악/예술 페스티벌을 향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오래 전부터 좋지 만은 않았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 포스트 히피 세대들) 테크노와 에시드 하우스, 락이 혼합된 페스티벌의 주역들인 영국의 피스 콘보이 (뉴에이지+히피), 지피(히피+80년대 후반 테크노), 스파이럴 트라이브 등이 정부와 기성 세대에 맞서 스톤헨지, 캐슬모튼, 글라스튼베리 등지에서 때로는 피를 흘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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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할 것은 단연 독일의 러브 퍼레이드다. 요번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 왔던 DJ 닥터 모트에 의해서 음악을 통한 평화와 이해라는 모토로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서 (89년 10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해서 2003년엔 75만명, 2006년에 이르러 120만 명을 끌어 모았다) 베를린 전체가 레이버들과 클러버들의 잔치판이 된다. 이는 레이브로 대변되는 전자댄스음악 문화가 얼마나 주류 문화에 깊이 파고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오후, 저녁 시간을 이용한 도심 퍼레이드로 시작해 새벽을 향한 광란의 크고 작은 애프터 파티들로 이어지는 베를린의 러브 퍼레이드는 레이버들에게 일종의 성지 순례이며 정부,시청 입장에서도 나치 국가의 이미지 쇄신과 관광, 문화 수입원이 대단한 만큼 안전, 화장실 제공, 청소 등 아낌 없는 지원을 펼친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일장일단이 있듯 몇 일간 시끄러워지는 이 도시를 견딜 수 없어 시간에 맞추어 딴 곳으로 여행을 떠나버리는 베를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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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튼베리 페스티벌

 


                        <Love Parade 2006 Anthem- United States of LOVE by Westbam>

리트리트(Retr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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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상의 문제로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위에 언급한 형태들보다 새로운 개념의 진화된 레이브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 리트릿을 레이브로 부를 수 있는 타당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게더링 오브 트라입스(Gathering of Tribes), 리듬 소사이어티 (Rhythm Society), 트라이벌 하모닉스(Tribal Harmonix)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데 종교적이고 유토피안 커뮤니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음악과 댄스가 난무하는 레이브 뿐만 아니라 워크샵이나 명상 활동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레이브의 원형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개념을 (사랑, 평화, 평등, 존중 등) 가르치고 토론하고 실천한다. 바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로운 ‘건강한 커뮤니티 구축’에 깊은 뜻이 있다. 더 나아가 이 리트릿에 참여 했던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에 이 이상이 녹아 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들 그룹은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으며 참여 또한 추천에 의해 가능한 ‘작고 닫힌’ 사회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에도 민감하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할 줄만 알아도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될까… 정말 이상적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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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ntion 6 - Tribal Harmonix Community 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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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워드클라우드 형식으로 표현한 일렉트로니카 타임라인

(Width X Height: 4m X 1m )  1년여에 걸쳐 완성된 것이지만 이미지가 너무 큰 관계로 웹상에서 디테일은 보여드릴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10: ELECTRONICA Timeline

 컬럼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최근 흐름에 (2000년도 이후) 대한 굵직한 요소들은 어느 정도 얘기한 것 같아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로 방향을 수정해 보려 한다. 그리고 뭐부터 시작해야 되나 생각하다 막혀버려서 우선 큰 그림을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이 한정된 지면 안에서 전자 댄스 음악 문화사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어 보여 자세한 디자인 컨셉트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이 연대기는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의 흐름을 봐야 한다' 믿음 하에 전자댄스음악의 큰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두 개의 큰 축으로 그리고 그 안에서 전자댄스 음악의 장르와 문화의 흐름에 따른 일종의 정보 집합의 과정이다. 즉 연대기에 표기된 정보 하나하나가 그 특정 시대에 있어 일렉트로니카 문화와 관계성이 높은 세포들이라고 보면 된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시간이 지날수록)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루는 것처럼 연대기에서 정보들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문화의 확산을 뜻한다. 디자인 설명은 대충 이 정도로 끝내고 역사를 한 번 쓱 훑어 보겠다. 많은 정보가 한 번에 들어가는 만큼 지루하고 숨가쁠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오버뷰라고 생각하면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 피타고라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음악이야 말로 우주와 지구 그리고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원초적인 '언어'와 '조화'라고 생각했다. 음악은 우리네 삶의 애환과 행복을 대변해주는 것 이상이었다. 하지만 18,19세기의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후 신은 곧 인간이었으며 종교란 인간 자신의 의지와 믿음이었다. 그렇게 오늘날까지 앞만 보고 달려온 인간에게 돌아온 것은 더욱더 복잡해진 스트레스, 사회, 사상, 현실 그리고 황폐화 된 지구뿐이다. 어찌하였건 과학기술의 발달이 그 엑셀레이터를 밟는 순간 하나였던 과학은 두 개의 전혀 생소한 분야, 예술과 테크놀로지로 갈리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인간은 (음악적으로만 얘기한다면) 하루가 바삐 생겨나는 새로운 기계들을 통해 기계에 의존하면서도 인간적인 음악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합성이란 현대 문명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하기 시작하게 된다. 한 사람의 일생이라고 할 수 있는 겨우 100년 전에 이렇게 전자음악의 작은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한 엑스터시 마약의 탄생도 그 때 즈음의 이야기다) 벌써부터 이 시절의 음악가들은 소음과 반복이란 요소를 찾아내었고 1920년대에 그 때까지 무성했던 이론을 뛰어 넘어 프랑스의 에드가 바레세가 실질적인 전자음악적 시도를 하며 새로운 활로를 뚫게 된다.

이 탄력은 1950년도까지 올리비에 메시앙이나 존 케이지 같은 (그리고 스톡하우젠으로 이어지는) 전위 음악가들로 하여금 전통적 형식을 대담하게 거부하고 절대적이었던 서양 사상을 벗어나 동양적 사상을 품으며 기계음이 단지 소음이 아닌 새로운 '희망'이라는 이론적 틀을 마련해 주게 되었다. 그리고 테이프의 탄생과 함께 이를 활용한 구체음악이 발달하게 된다. 이 시점 이후로 독일,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각지에 전자음악 연구소들이 생겨나며 새로운 문화의 탄생의 불을 조심스레 부치고 있었다.

 60년대는 그야말로 인간이 만든 새로운 세계관이 질풍노도 같은 발전을 거듭한 숨막히던 시절이었다. 인간이 달 착륙에 성공한 것은 물론 멜로트론과 모그 신디사이저가 탄생했고 마셜 맥루한은 미디어의 시대를 예고했으며 티모시 리어리는 LSD와 마리화나를 찬양하며 앞으로 다가올 사이키델릭하고 영상에 입각한 새로운 세대의 가능성을 외쳤다.

그 뿐 인가. 비로소 '젊음의 문화'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이 시기다. ‘스윙잉 런던’과 ‘우드스톡’으로 대변되는 모드와 히피 문화는 세상 사람들이게 '젊은이'라는 신인류의 출현을 인식시키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공했다. 대중 음악인들의 전자음악적 시도도 이때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밥 딜런은 전자음악을 품기 위해 통기타를 집어 던졌으며 죠지 해리슨은 비틀즈로 하여금 전자음악과 사이키델릭의 세계로 유도했다. 무그 신디사이저를 통해 웬디 카를로스는 바하의 음악을 전자화 시켰다. 재즈의 위기를 일찍이 감지한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를 락과 신디사이저에 접목시키고 자마이카에서는 리 스크래치 페리를 필두로 테크노와 힙합의 모태인 덥과 레게를 탄생시켰다. 락 음악계에서도 지미 헨드릭스는 전자기타를 통한 예술적 퍼포먼스로 세상 사람들을 흥분시켰고 핑크플로이드와 벨벳언더그라운드 또한 소음과 전자 음악기기와의 힘겨운 씨름을 통해 예술적 대중 음악으로의 승화를 성공시켰다. 바로 락 밴드와 신디사이저의 결합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흐름은 마이크 올드필드나 탠져린 드림 같은 아방가르드 신디사이저 및 뉴 에이지 아티스트의 탄생에도 불을 붙이게 된다.

이러한 60년대의 문화적 폭발을 배경으로 70년대에 들어 지금 일렉트로니카로 대변 되는 실질적인 전자댄스음악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의 주역이 바로 신스팝의 대명사인 독일의 크래프트워크다. 이들의 영향은 곧 80년대 일렉트로, 테크노, 애시드 하우스로 이어진다. 이들은 순수한 전자댄스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고 미디어, 전자기기와 하나가 된 인간 사회를 표현하고 있었다. (인터넷이 탄생하기도 전 이들은 컴퓨터를 통해 사랑에 빠진 인간의 삶을 노래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특유의 엠비언스를 강조한 뉴에이지 음악과 소음과 반복의 에센스를 계승하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한 레게 음악의 영향을 받은 힙합을 (그랜드 마스터 플래시의 스크래치의 발견과 함께!) 필두로 한 블록파티와 디스코에 의해 비로소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파티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전자댄스음악 씬의 그 장엄한 서막을 올린 것이다. 60년대 히피에게서 영향을 받은 무정부주의적인 사상은 곧 사회적인 체제와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의 자유를 중요시 여기며 게이와 레즈비언 등의 사회적 마이노리티의 커밍아웃을 유도했다. 그리고 이들, 하위문화 소수들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해 준 것이 바로 디스코 음악이었다.

하지만 디스코가 대중문화의 수면위로 떠오르며 디스코는 만인의 그리고 소위 '골 빈' 연예인들과 부르주아들 및 '잘 나간다는 겉 멋 든 이들'의 잔치판이 된다. 플랫폼 슈즈와 벨벳 자켓 그리고 코케인과 섹스의 문화로 타락해버린 디스코 씬은 (지금 케이블의 부XX비의 씬이 이 것과 꼭 닮았다. 섹스와 마약을 요소를 빼더라도!)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기점으로 미국의 대대적인 '디스코 죽이기' 운동과 함께 일격을 맞게 된다. 그리고 디스코는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그 장소를 옮기게 되고 어둡고 차가워진 소수를 위한 언더그라운드적 요소를 계승하며 프랭키 넉클의 시카고 하우스씬을 탄생시킨다. 또한 디스코의 전통적인 소울과 펑크(Funk)적 요소는 뉴욕의 래리 르반의 천재적 리믹스를 필두로 한 개러지 하우스 씬으로도 이어진다. (디스코의 Funk와 소울적 요소는 훗날 딥하우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 문화적 폭발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디트로이트에서는 데릭메이, 후왕 앳킨스 등이 테크노 사운드를 퍼뜨리고 있었으며 영국 맨체스터의 토니 윌슨은 해피 먼데이즈, 조이 디비젼과 함께 전설의 클럽 하씨엔다를 열며 '매드체스터씬'을 탄생시켰다. 이 때가 애시드 락과 이비자의 발레릭 씬 그리고 폴 오큰폴드와 대니 램플링에 의한 2nd Summer of Love를 이어주는 접점이 되었다. 바로 엑스터시와 사랑으로 대변되는 레이브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 때는 1988년으로 전통에서 노통 시절에 막 접어든 서울올림픽의 시점이다) 이 문화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 해의 영국 축구 훌리건들의 폭력 사건 비율이 몇 십 퍼센트 이상 떨어져 아주 잠시나마 '훌리건'이 아닌 '러브써그'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였다. 클러빙 이외에도 스톤헨지, 글라스튼베리 페스티벌과 같은 우드스톡 이후 대규모 음악 축제가 성행했다.

하지만 엑스터시와 사랑으로 가득했다는 2nd Summer of Love(첫번째는 60년대 히피 문화를 지칭한다)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대규모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태동은 곧 돈 냄새에 민감한 프로모터들과 장사꾼들의 레이더에 재빨리 포착되고 주류 및 대규모 레이브와 클럽들이 성행하게 된다. 지금 대부분 우리가 알고 있는 소위 '파티'라던지 '클러빙'이라는 현상은 이 때 확립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대적인 문화 폭발 현상이 전자댄스음악과 관련된 테크놀로지의 확산과 장르의 다양화를 촉진 시켰다는 것이다. (연대기를 볼 때, 비로소 문화와 장르를 표현한 오렌지와 노란색의 글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며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90년대에 들어 위에서 언급한 대규모 상업적 레이브와 클럽이 그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었다. 또한 하드코어와 애시드가 주를 이루던 거칠고 빠른 음악 성향에 대응해 차분하고 정적인 엠비언트 하우스나 트립합 장르가 태어났다. 이는 곧 미친 듯이 소릴 지르고 몸을 흔들어대기만 하던 전자댄스음악에 '칠아웃'이라는 새로운 '휴식'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는 훗날 라운지 씬 탄생에 영향을 준다)

이 밖에도 이런 '리스너'를 위한 음악지향성은 전자댄스음악의 지나친 상업화와는 다른 노선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비트사이언스 등의 새로운 실험과 음악적 완성도를 추구하며 에이펙스 트윈이나 DJ 스푸키 같은 새로운 실험적 사운드를 구사하는 아티스트 형 DJ들의 출현으로 이어진 것이다. 또한 상업성과 유행성이 강한 트랜스나 하우스에 대응해 드럼엔베이스와 같은 장르들의 출현은 전자댄스음악 씬의 줄기찬 언더그라운드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레이버들은 인터넷, 포토샵과 같은 동시대의 멀티미디어 환경을 적극 수용하며 새로운 B급 디자인 문화와 자신들만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모색하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이 정도로 확산되고 성숙의 조짐을 보이면 당연히 주류로 올라가기 위한 '성인식'을 치러야 한다. 갑작스러운 미디어의 '띄우기' 및 '흠집내기' 그리고 이에 영향 받은 기성세대의 간섭을 뜻한다. 이 정도로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좀 '독한' 문화는 정부의 간섭까지 행해진다. 그 후 적당히 필터링 되어 '모든 이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대중 문화가 되어 예쁜 새 색시/신랑 마냥 때때옷을 입고 사람들을 반긴다. 전자댄스 음악도 이 혹독한 성인식을 치러야 했다. 물론 미디어가 거는 딴지의 원인은 엑스터시 마약으로 시작되었다. (이 영국의 엑스터시 스캔달은 1930년대 미국의 리퍼매드니스로 통하는 마리화나 퇴치 운동과 많이 닮아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다양한 장르는 지금까지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는 것이다. 락이나 클래식처럼 어느 정도 고정된 공식의 해석에 익숙한 평론가들에게 이런 음악의 해석은 거의 불가능이었으며 수십 개가 넘어가는 장르의 개수는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마치 지금의 인터넷 하이퍼 링크 흐름을 보듯 뚜렷한 분류체계 없이 그 '유사함'과 관계만을 강조하며 순식 간에 증식하는 이 현상에 음악 평론가들과 미디어는 난색을 표하며 절대적인 어명을 내린다. 

 

 “이제부터 이 모든 중구난방의 음악들을 일렉트로니카라 명하겠노라.” 

 

 그렇다. 일렉트로니카의 어원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1995년, 암묵적인 전자댄스음악 문화의 죽음이 선포된 해였던 것이다. 전자댄스음악 씬의 ‘공식적인 끝’은 바로 여기까지다. (이 단어의 사용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어쨌든 이 덕분에 레코드샵의 얼터너티브 섹션 안에 모비, 케미컬 브라더스, 사라 맥라클랜 그리고 너바나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현상은 점점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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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09: P2P의 추억 그리고 MP3 블로그까지…

살면서 한 차례 인생의 폭풍이 지나갈 당시엔 정신이 없어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많은 기억과 추억들이 남는다.  P2P 관련 공유 프로그램의 붐 또한 인터넷 역사에 많은 추억을 남겼을 것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문득 이제 사용하지 않는 p2p의 개인적인 추억이 떠올라 몇 자 끄적거려 본다.


Kazaa, StreamRipper & Digitally Imported.com 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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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 프로그램에 빠져 새로운 음악세계를 발견해가던 순수하고 열정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사용하던 P2P 프로그램이 카자(KaZaa)다. 영화 십계명 중 모세가 험난한 바다 한 중앙을 뚫어 내듯이 전 세계 네티즌들에게 '공유'라는 엄청난 '길'을 뚫어준 냅스터(Napster)의 몰락 이후 가장 많이 애용 되었던 카자! 어디선가 신보가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그 제목을 쳐보면 항상 누군가 적어도 1 명씩은 그 파일을 올려 놓았다 (아주 감사하게도). 카자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은 '쪽지' 기능이었다. 요즘 쪽지 기능 없는 사이트가 어디 있겠냐마는 그 당시 내게 '쪽지'기능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어느 정도 보관함에 음악이 쌓이게 되면 그 특정 유저에 대한 음악적 취향을 가늠할 수가 있게 된다. 그 후 취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자연적으로 쪽지를 보내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도 전 세계의 몇 명의 유저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몇은 메신져까지 등록해 놓고 활발한 정보 공유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한나라는 독일 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몰피어스Morpheus (카자의 전신 격)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된 이 친구를 통해 독일 내의 언더그라운드 인터넷 음악 채널이나 DJ들의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며 신기한 것은 그 당시 우린 서로의 얼굴, 연락처도 몰랐다는 것이다. 심지어 서로의 나이에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 우리가 의례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처음 물어보는 것들이 이 세계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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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시간이 지나니 유저들이 나에게서 다운로드 해가는 횟수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큰 맘먹고 산 나의 새 데스크 탑은 불과 몇 달 만에 털털거리는 달구지로 전락해버렸다.  그렇게 P2P의 마력에 빠져 있던 어느 날 또 하나의 메가톤 급 프로그램이 나를 찾아 왔다. 이름하여 스트림립퍼StreamRipper. 말 그대로 윈엠프를 통해 인터넷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들을 통째로 '다운로드'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녀석이 가진 막강한 기능은 혼자 알아서 특정 mp3의 처음과 끝 부분을 감지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능력이 있었으니 50분을 틀어 놓고 있으면 5분짜리의 통짜 mp3 파일이 아닌 50분 분량의 mp3 파일'들'이 제목, 아티스트의 정보와 함께 나의 폴더에 정리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장 잘 어울리는 라디오는 바로 1999년 트랜스 단독 채널로 개설된 디지털리임포티드 라디오(DI FM)였다. 스트림 리퍼가 나왔을 때 즘 DI 라디오 채널은 트랜스에서 하우스, 하드 하우스 등으로 다양한 채널로 늘려가며 스트림리퍼와 카자가 장착된 컴퓨터와 잠들지 않는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mp3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며 상당 수의 유저들이 (나 또한) p2p를 떠났다. 2,3세대 p2p 시절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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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오디오 갤럭시나 소울식 같은 p2p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2002년에 시작된 소울식 같은 경우 p2p의 바람이 빠진 지금에도 심심치 않게 활동하는 유저들을 꽤 볼 수 있을 정도로 음악 매니아 층들을 형성한 p2p로 유명하다.)


Music Services

뒤늦게 발끈한 음악 산업체들은 끊임없는 저작권 관련 소송을 걸어 왔고 p2p 공유에 대한 바람은 어느 정도 잠 재운 듯싶었다. 하지만 한번 인터넷을 통한 음악 유통의 맛을 본 유저들에게는 새로운 음악 산업 시스템이 필요했다.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음반 구입과 TV나 라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 체제로는 음악 산업 또한 비참한 결말을 맞을 것은 뻔한 현실이었기에. 따라서 지금까지 인터넷 상에서는 다양한 음악 서비스 세계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중 판도라와 라스트 에프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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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ora는 현재도 진행 중인 Music Genome Project의 하나인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다. MSN 라디오가 바로 이 판도라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있는데 사용자가 좋아하는 특정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바탕으로 리듬, 싱코페이션, 토날리티, 하모니 등을 분석하여 사용자가 좋아하는 취향의 음악을 선곡해서 들려주는 형식이다. 이는 음악을 분석하는 특정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끼리 모여 분담하여 하나하나의 음악을 분석한 데이터 베이스를 토대로 한 것이다. 이런 노가다 데이터 베이스의 구현은 정말 존경하다 못해 경악할   만하다. (단, 클래식 음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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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FM은 이젠 제법 사용자도 많아지고 그 인터페이스도 많이 발전한 대표적인 웹2.0형 맞춤형 인터넷 라디오 서비스다. 판도라와 비슷하게 사용자의 음악적 취향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판도라가 특정 아티스트나 음악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라스트 애프엠은 사용자가 청취하는 음악들을 분석하여 좋아할만한 취향의 음악을 추천해 줌은 물론이고 비슷한 성향의 유저들을 만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물론 라스트 에프엠에 더욱 많은 자신의 정보를 올릴 수록 시스템이 분석하기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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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c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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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저들이 많은 프로그램에는 그에 따른 여러 해킹 프로그램도 곧 출몰하게 된다. 마이 스페이스도 한창 이 때문에 골치를 썩힌 것으로 안다. 그리고 물론 위에 소개한 두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여러 유명 뮤직 서비스들의 음악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많은 해킹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 또한 구글에서 특정 코드만 입력하면 손쉽게 다운로드 가능한 음악 정보를 알아 낼 수도 있다. 여기서 그 이름들과 방법은 굳이 소개하지 않겠다. 하지만 이는 인터넷 세상에서의 영원한 딜레마인 것은 분명하다. 해킹 툴은 아무리 목을 잘라내도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인터넷 세상의 히드라의 머리와 같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가 아홉 머리를 가진 히드라의 머리 하나를 잘라냈을 때 바로 두 개의 머리가 재생되었다고 한다.)


MP3 BLO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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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뮤직 포스팅 블로그다. 블로거들이 특정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운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 이야기와 음악들을 소개하는 식이다. 물론 다운로드도 가능하다. 하지만 p2p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직접 찾는 방식을 취하는 것에 반해 이는 블로거가 추천하는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취한다. 그리고 이들은 항상 저작권에 침해되는 경우 음악을 내리겠다는 메시지와 이 음악을 구입할 수 있는 링크를 항상 마련해 놓는다. 하지만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100% 저작권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들이 포스팅 하는 음악들은 대부분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의외로 홍보 효과가 많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인디 밴드와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들이 이들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Pitchfork에서 발굴해 이제는 락 음악계의 미래가 되어버린 캐나다 출신 밴드 Arcade Fire다.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음악 블로그는 Pitchfork일 것이다.) 2003년 즈음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이 MP3 블로그들은 이제 수천 개가 넘으므로 일일이 살펴보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 Mp3 블로그의 시초로는 스테레오검Stereogum과 플럭스 블로그 Flux Blog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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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럽 어느 도시의 작은 콘서트에 가지 않아도 한국 내 방안에서 지중해 너머의 실력 있는 신예들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것은 분명 인터넷 세상과 MP3 블로그들에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이 블로그들에도 저작권 관련 외에 문제들이 많다. 이러한 블로그들이 많아 지며 이젠 세계 음악 영역에서 상당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항상 필자가 외치는 것이다. 쪽수가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변한다는) 위에 언급한 피치포크Pitchfork같은 경우 그들의 리뷰 한마디 한마디가 아티스트와 산업계에 큰 힘을 불어 넣을 수도 있고 한 순간에 망쳐 놓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싸구려 저질 대중 음악들이 판치는 상황에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이 블로그들의 힘이 너무 강한 나머지 인터넷을 통해 음악 정보를 얻는 경우 음악적 트렌드가 이들 위주로 난폭하게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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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예가 바로 포스트 펑크, 일렉트로카 류의 음악 장르를 다루는 Bigstereo, Fluokids, Acid Girls, Palms Out Sounds등을 들 수 있다. (팜즈 아웃 사운드의 경우 정기적으로 베이스먼트 잭스나 다프트 펑크등의 유명 하우스 아티스트들이 리믹스한 원곡들을 찾아 올리는 등 인기 상승세에 있다) 이 인기 블로그들은 비슷한 취향의 음악을 제공한다. 바로 요즘 대세라고 할 수 있는 Kitsune, Ed Banger 레이블 등의 신종 French House 사운드다. (물론 100% 프랑스 사운드만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이들 음악은 1996년 즈음 시작되어 눈길을 끈 Daft Punk의 사운드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기존 프랑스 하우스 특유의 (밥 싱클라 등) 세련되고 깔끔한 사운드와는 정반대로 퇴폐하고 거친 데스 디스코Death Disco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블로그들은 서로간의 과열 경쟁에 의해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시기상조의 음악 유출 등으로 인한)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라도 특정 블로그들을 통한 정보에 치우치다 보면 이른바 이들이 ‘밀고 있는’ 특정 소재의 레이블이나 사운드가 정말 대세인양 착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이 미는 음악 성향이 대세일 수 있고 가장 새로운 사운드일 수 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이들의 음악을 제공받고 있는 네티즌들, 또 이들의 음악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클러버들 (포스트락 음악의 영역도 마찬가지다)이 자신의 음악적 주관성과 객관성 모두를 상실하는 ‘다양성의 부재’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NME지가 Nu Rave 장르를 선포했을 때 발끈 했던 이 블로그스피어를 보며 어쩔 때는 이들의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그 안에서 대형 미디어 시스템을 향한 그들의 불필요한 정치적 간섭과 견제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이때가 요즘 Web 2.0 운운하며 인터넷 세상의 진정한 민주화를 외치는 ‘우리들’의 ‘간섭’이 진정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개개인의 음악적 성향과 감수성은 다양하기 때문에 누구는 질이 낮은 음악을 듣고 누구는 질이 높은 음악을 듣는다고 단순히 정의 내리기도 힘들며 서로를 무시할 수도 없다. 어느 무엇도 나로 하여금 ‘음악 좀 들을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 나, 개인의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감성을 건드려 줄 수 있는 음악을 찾아내고 간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진정으로 자신만의 색깔이 담겨 있는 ‘쌔끈한’ 내 생애 최고의 플레이 리스트가 완성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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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MP3 Blogs

1.       www.Bigstereo.com

2.       www.pitchforkmedia.com

3.       www.palmsoutsound.com

4.       http://music.for-robots.com/

5.       http://hype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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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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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and Vibe Upon the World
: 07년 4월자

                                                              T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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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는 전체 전자 댄스 음악 중 가장 '저속한' 음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상업성에 찌든 요즘의 트랜스 음악 파티에서 옛날의 감동은 느껴지지 않는다고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온다.
하지만 " 난 일렉트로니카가 좋다!"하는 이들 중의 대부분이 트랜스 음악에 먼저 빠지는 경우가 많다. 대체 이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듣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테크노 보다는 부드럽고 하우스 보다는 어둡다 . 점점 빨라지다가 또 한없이 조용하고 사람을 점점 달아오르게 만든다 . 마치 우주로의 또는 자신만의 깊은 곳을 향한 정신적 여정과 같다. 서서히 빌드업되는 음악에 자신을 맡기고 흐느적 거리다가 다시 스트링과 엣모스피어릭 사운드로 분위기를 잡는 중간 부분에서 자신의 손을 높이 뻗치고 자유와 평화를 만끽하고 다시 킥 드럼과 시작되는 절정의 피크에 맞추어 온몸을 불살르게 되는 트랜스는 롤로 코스터와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우리가 월드컵 때 그러했듯 이 음악과 함께 클럽과 레이브의 모든 이들이 서로 하나되는 유기적인 일체감의 희열을 느낀다. 신난다면 신나고 한없이 고독하다면 고독한 것이 트랜스 음악이다. 소수가 아닌 전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일렉트로니카의 매력에 빠지게 한 이 음악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지나간 일에 대해 말할 때 가장 난감한 부분이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 된 것이다 '라고 딱 잡아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하나의 사건은 여러 가지 일련의 '사건들' 과의 복잡한 관계들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트랜스의 시작 또한 '바로 이것에서 시작되었다 '라고 정의하기가 애매한 것이다.
 
 
Germany: Trance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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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 음악의 탄생에 영향을 준 흔적을 찾아보면 미국의 대대적인 디스코 죽이기 운동 후 다시 언더그라운드로 들어가 좀더 몽환적인 분위기로 무장하던 디스코의 하이브리드인 Hi-NRG 를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혹은 음악적으로 볼 때 1985년도 즈음 Manuel Gottsching 'E2-E4'리듬에서 볼수도 있을뿐더러 80년대 후반의 애시드 하우스 그리고 Psychic TV와 (Force the Hand of Chance - Message [1982]) 같은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밴드들의 실험에서도 트랜스 음악의 흔적이 보인다. 지역적으로 살펴 볼 때는 이미 독일과 영국 등의 메이저 트랜스 시티들의 태동 전에 이미 이스라엘과 인도에는 각각 싸이키델릭과 고아 트랜스가 유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트랜스' 음악의 정체성은 90 년대 초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확립되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90
년대 초 이미 Dance 2 Trance라는 그룹이 '트랜스 '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고 있었고 (이 그룹의 Jam el Mar는 훗 날 Jam & Spoon이 된다) Age of Love의 'Age of Love'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트랜스 음악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확립한 트랙으로 알려져 있다 .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트랜스 씬은 Sven Vath, Resistance D,Hardfloor, Jam & Spoon 등에 의해 주도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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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경우, 1980
년도 말을 향해 가며 통일 이전의 동독에 심심치 않게 테크노를 중심으로한 언더그라운드 댄스 씬이 펼쳐 졌다 . 이 때 가장 대표적인 DJ 중에 한 명인 폴 반다잌에 따르면 공산 국가 체제 안에서 이들이 하우스 파티를 즐기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레코드 구하기' 였다. 라디오를 녹음해서 테이프로 뜨며 DJ잉을 하던 설움의 시대는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날아갔다. 동독이란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와 함께 언더그라운드 씬은 훨씬 활기에 넘치게 된다 . Dr.Motte가 회고하기를 옛 동독 지역의 파티들이 서독 쪽 보다 훨씬 활기차고 신선했다고 한다 . 그리고 그 옛 동독의 자리에는 전설의 테크노 클럽 E-Werk가 생기고 훗날  PVD는 이 클럽을 위해 영원불멸의 트랜스 앤섬 , 'For an Angel'을 바친다. (실제로 영국 클럽 Cream에서 새벽 3시에 반다잌이 떨어뜨린 'For an Angel'의 튠은 그 날 있었던 클러버들을 감동과 행복의 눈물바다로 만들어 버려 Cream 역사 상 가장 기억되는 순간 중 하나로 회고된다- 물론 그 당시 한창 유행이던 엑스타시의 효과도 있었을 테지만... ) 그리고 E-Werk와 같은 클럽들과 Dr.Motte가 시작한Love Parrade의 (Westbam-United States Of Love-Loveparade 2006 Anthem) 활성화를 통해 독일의 댄스 음악씬은 차차 테크노에서 트랜스로 옮겨간다. 또한 1990년대 말, 전 세계 적인 히트 트랙 '9:00pm(Till I Come)' 의 주인공ATB의 등장과 함께 독일은 트랜스 음악의 탄생지이자 전 세계 대중 앞에 트랜스를 알린 나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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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던 도시가
베를린이 되었건 프랑크푸르트가 되었건 여기서 중요한 것은 테크노도 아니요 그렇다고 하우스도 아닌 이 음악을 들으며 음악인들과 파티고어들이 이 새로운 음악의 출현에 당황하고 흥분하고 빠져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 도대체 이 음악은 어디서 온 것일까 ? 테크노처럼 들리지만 테크노보다는 멜로우하며 리듬의 구조라는 비트 사이언스의 개념에서는 보다 자유롭다. 또 하우스처럼 들리지만 좀더 테크노에 가깝고 보컬에 대한 비중이 보다 높지 않다 . 테크노가 가진 템포와 리듬 구조 그리고 하우스가 가지고 있던 멜로딕 오버톤의 중간 단계를 가지고 있던 이 음악의 확산에 음악가 들은 분명 새로운 혁명이다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깨닫고 있었고 클러버들은 한 없이 트랜스 음악이 제공하는 무한 공간 속에 빠져 들고 있었다 . 초기 트랜스 씬의 DJ들은 트랜스 음악을 가리키며 DJ들 자신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음악 장르로도 꼽는다. 특유의 감성적인 특성이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 껏 집어 넣고 이것을 클러버들과 공유하기가 훨씬 수월 했다는 것이다. (공식은 간단하다. 우울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트랙은 우울하게, 행복한 마음으로 만든 트랙은 클러버들에게 한없이 행복하게 들린다. 또한 제목만 보아도 어떠한  감정을 담고 있는 음악인가를 타 장르보다 알기가 쉽다라는 것. 예를 들어 DJ Johan GielenDestination Sunshine을 들으며 태양 속으로 힘차게 돌진 하는 것 같은 ... 뭐 그런 느낌이랄까?)  



UK: Platipus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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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년대 트랜스 열풍의 주역은 독일 만의 것은 아니었다 . 트랜스의 시작지가 독일이라는 점에 음악적 자존심이 강한 영국인들이 상처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트랜스가 장르로서 인정을 받을 1993년 즈음 영국도 트랜스의 열풍에 동참하게 된다. Platipus Records 레이블의 설립자이자 Union Jack (Art of Trance와 동일 인물)으로 알려진 Simon Berry는 'Two Full Moons and a Trout,'Madagascar' 등 독일 트랜스에서 좀더 발전 한 듯한 프로그레시브하고 무한한 공간감을 선사하는 주옥같은 트랜스 앤섬들을 배출해내며 영국 트랜스 사운드의 시작점이자 중심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 밖에 Sasha & John Digweed 또한 영국 트랜스 씬의 중요 인물들로 꼽힌다. 

   


Dutch Fo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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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즈음 트랜스의 열기가 점차 식는다 싶더니 90년대 후반을 치달으며 다시 앤서믹 트랜스와 프로그레시브 트랜스가 판을 치며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댄스 음악 장르에 등극하기 이른다  . 이와 동시에 유럽의 Cream Ministry of Sound가 문을 열며 트랜스 음악의 대중화와 함께 꽃을 피기 시작했다 . 이를 발판으로 네덜란드의 인재들이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 때의 주역이 바로 Tiesto Ferry Corsten으로 구성된 Gouryella였다. 'Walhalla', 'Tenshi' 등의 주옥 같은 명 트랙 들은 그 특유의 감동 코드와 함께 클러버들을 눈물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 하지만 Tiesto의 솔로 선언과 함께 이들은 해체 되고 자신의 길을 서로 떠나지만 Ferry Corsten은 독자적으로 Gouryella의 이름 안에서 'Ligaya' 라는 트랙으로 팬들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고 Armin Van Burren이라는 걸쭉한 유산을 남긴다. 또한 이 네덜란드 파워들을 발판으로 Trance Energy와 같은 각종 트랜스 위주의 파티들이 생겨났다.

미국: American Summer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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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넘기며 트랜스는 이미 전 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미국도 이 열풍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1999년에 Trance 단독 채널로 시작한 뉴욕의 인터넷 라디오 Digitally Imported는 전 세계 뿐 아니라 미국에도 트랜스 음악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당시 성행하던 카자, 스트림 리퍼, 냅스터 등의 p2p 관련 툴들도 이 흐름에 한 몫 했다) 비로소 Rank1(19세 미만 클릭 금지), Talla 2XLC, Blank & Jones (이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블랭크엔존스 트랙, the Nightfly),  Ferry Corsten (꼭 봐야 하는 뮤직비됴), DJ Johan Gielen (요한 길렁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좀 팝적인 음악), Safri Duo (내가 항상 월드컵 주제가가 되야 한다 외치던 트랙), Above & Beyond 등의 트랜스 아티스트들을 많은 대중들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내새우던 프로그레시브 트랜스는 미국 대중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너무 지루하고 음악성이 짙었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트랜스 상업화의 앞장을 스던 이들의 숨통을 트여 주는 결정적인 요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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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했듯이 미국 음반 시장의 공략은 전 세계의 음반 시장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 . 상업적이건 음악적 자존심이건 영국은 지금까지 줄 곧 미국 공략에 힘써 왔다. 이를 지칭하는 것이 바로 British Invasion이다. 60년대의 비틀즈 그리고 오아시스, 블러 , 펄프 등으로 구성된 90년대의 브릿팝이 끊임없이 미국 음악시장을 공략해 왔지만 미국 음반 시장만의 지독한 텃새에 부딪혀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었다. (Chemical Brothers의 Big Beat 장르를 굳이 자기들 식으로 Rock Techno라 개명까지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브리티시 인베이젼의 성공은 뜻하지 않게도 이 보컬 트랜스 음악이 가져 온다 . 락과 힙합으로 일관했던 미국 대학가 프래터니티 파티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들이 어느새 부턴가 트랜스로 대체되고 있었던 것이다 . Sarah McLachlan 원곡인 Delirium의 'Silence (Tiesto Remix)의 성공을 필두로 Trance Nation America 등의 콤필레이션 음반들이 대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이른바 1980년대 레이브의 피크인 2nd Summer of Love를 잇는 American Summer of Love가 찾아 온 것이다 .  컴퓨터 축구 오락의 대명사인 FIFA는 거리낌 없이 트랜스 음악을 사운드트랙으로 체택했고 급기야 "트랜스 따위는 음악도 아니야"라고 외치던 마돈나 또한 윌리엄 오빗, 폴 오크폴드 등과 함께 자신의 앨범을 트랜스로 도배해 버리기 까지 했다. 또한 최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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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막식도 Trance DJ 티에스토가 장식할 정도로 그 인지도를 높혀 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는 곳 트랜스의 10여년 남짓한 음악적 여정을 종식 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
 가벼운 팝적인 요소 그리고 대중 산업 특유의 여성의 섹슈얼적 어필 등 철저한 상업성으로 무장한 보컬 트랜스는 결국 유럽에서 건너온 엑스터시 팝송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DJ Sammy (UCC 임...그리고 브라이언 아담스의 리믹스 맞습니다.ㅠㅠㅋ), Lasgo, Ian Van Dahl 등의 팝적인 보컬 트랜스를 가리켜 DJ Sasha 는 미키마우스 트랜스라 부르며 경멸을 표하고 트랜스 음악에 대한 안녕을 고하게 된다. 동시에 그 동안 트랜스의 르네상스를 펼쳐 오던 대다수의 DJ들이 트랜스를 버리게 되며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성향의 음악이나 다른 장르로 등을 돌리게 된다.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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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경 1998년도부터 시작된 80년대 복고 유행에 영향을 받아 Marco V를 필두로 한 Electro Trance 가 반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렉트로 사운드의 가미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는 것 정도일 뿐이었다. (이 때부터 거의 모든 장르의 댄스 음악이 일렉트로 사운드를 재 탑재했기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지금의 트랜스는 댄스 음악의 한 장르로서의 음악적 깊이도 잃어버리고 그 열정 또한 사라진 듯 싶다. 이 사라진 열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많은 프로그레시브 류의 트랜스 음악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그 옛날의 감동을 전해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일렉트로니카의 영역에 처음 빠져 드는 이들에게 트랜스의 음악의 발견은 그 옛날의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과 클러빙의 '갱년기'에 접어든 이들에게 언제나 그 때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다 - 물론 한 물간 유행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예외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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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Trance Music


1. Two Full Moons and a Trout (Caspar Pund Remix) by Union Jack

2. Stella by Jam & Spoon

3. Wallhalla by Gouryella

4. For an Angel by Paul Van Dyke

5. L'Esperansa (Airscape Mix) by DJ Johan Gielen

6. In and Out (Signum Remix) by Crispy

7. Back to Cali' (Push Remix) by Mauro Piccoto

8. One in a Million (Divine Inspiration Remix) by Saint 

9. Samb Adagio by Safri Duo

        (항상 이 음악이 월드컵의 주제가였으면 했었다)
10. Age of Love by Age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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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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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and Vibe Upon the World 06:  
                            Coachella will Rock You
  07년 3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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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시작된 코첼라는 매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디오 사막을 주 무대로 열리며 모하비, 사하라 등 음악에 따라 여러 텐트들로 나뉘어 찌는 듯한 더위를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날려버리는 '가장 잘나가는 ' 전 세계적인 대규모 음악 축제다. 우선적으로 말하고 싶은 건 코첼라는 옛날 우드스톡이나 글라스튼베리 음악 축제들과는 달리 상업적 목적이 우선인 행사다. 1일 입장료 약 90 (대략 10만원으로 잡아주자), 3일을 계속 즐기고 싶다면 약 300불 가까이 들어간다. 물론 입장료에 한해서 만이다. ( 세금 계산도 해주는 센스를 발휘하자) 생각을 해보자. 사막에 버스나 지하철이 들어간다는 말 들어보았나? 필자도 들어본 적 없다. 즉 대중교통 수단은 차단 되었다는 것. 그리고 캠핑을 하던 호텔에서 자던 3일 간 묵을 곳은 필요할 것이다. 새벽 사막의 매서운 추위에 얼어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행사는 매일 오전 11시에 시작해 밤 12 시에 끝난다) 또 아침은 거른다 쳐도 이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온갖 열정을 내뿜으려면 ( 6만의 인파와 100개의 밴드 및 아티스트들) 적어도 점심 , 저녁은 챙겨 먹어야 할 것이며 더위와 싸워 이기기 위해 자주 물도 마셔줘야 할 것 이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고 사막이라는 지리, 기후적 특성을 이용해 음식과 물 값은 분명 그 질에 비해 비싼 값을 받을 것은 눈에 훤하다. (그냥 라면이나 끓여 먹지 하고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참고로 외부 음식의 반입은 금지되어 있다 .)
    점점 예산 측정이 희미해지지 않는가? 더군다나 외국에서 날아가는 하드코어 파티고어라면 비행기 값까지 더해주는 센스. 벌써 가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즈음에서 포스터의 라인업을 봐주시길 바란다 . 돈과 시간이 없다면 하염없이 바라만 보며 침만 질질 흘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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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없다.
    너무 많아 세어 보지도 않았지만 약 100개의 밴드 및 아티스트의 리스팅을 보고 유혹을 떨쳐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 진정 음악을 사랑하고 파티를 즐긴다면 말이다.) 글자 크기가 큰 순서부터 행사에서의 아티스트의 중요도가 높은데 자세히 보면 제일 작은 글씨로 써진 아티스트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혼자서도 대규모 행사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고로 이런 라인업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 말 그대로
' 슈퍼 울트라 급 초 대박 '이다. 국내 10대 가수 가요제? 그 옛날 '그날이 오면' 축제? 일본의 홍백전 ? We are the World? 무엇 하나도 코첼라의 라인업에 잽도 안 된다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항상 삶의 중력이 무겁게만 느껴지는 이 비정한 현실을 뒤로하고 필자가 가이드가 되어 여러분을 4월에 열릴 2 3일의 2007년 코첼라 축제로 미리 인도해 보려 한다.
(원고는 코첼라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에 쓰인 것입니다 ㅠㅠ)



Headliners: Rage Against Machine의 재결합과 헤드라이너들에 대한 문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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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젯거리부터 몇 가지 이야기해보자. 리스트에서 '헤드라이너들만' 읽어 보자. 잠깐 혼란스럽지 않은가 ? 비욕, 레이지, 레드핫칠리, 해피먼데이 등 대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90년대인가? 이게 이번 코첼라가 시작하기도 전에 비판 받는 이유 #1이다. 진짜로 작은 글씨를 보지 않는 이라면 아주 오래 전에 열렸던 행사로 착각하는 이도 간혹 있을 것이다. 또한 이른바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이 노땅들의 헤드라이닝은 달갑지 않다 . 이 중에서도 Red Hot Chili Peppers의 둘째 날 헤드라이닝은, " Aero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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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따 두고 왔냐
?
" 라는 등 실제로 수많은 원성을 사고 있다. (골수 팬들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그래서 다시 한번 이들이 얼마나 노땅인지 생각해보더니. 이들은 2009년이면 벌써 Rock 'n ' Roll Hall of Fame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오래된 밴드의 등장은 욕을 먹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울 것 없고 주류와 상업에 찌들대로 찌든 이들을 헤드라이너로까지 등극시켜버린 코첼라의 처사에 대한 반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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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번 행사에는 RHCP보다 더 큰 폭탄 요소가 존재하고 있으니 바로 2007 코첼라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예상되는 Rage Against Machine (이하 RATM)이 등장하는 마지막 날이다 . 물론 1999년부터 코첼라의 라인업을 찬찬히 살펴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 결코 2007년의 라인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 사건'으로 전 세계 매스컴이 코첼라를 'the Next Woodstock'에 비교하며 주목하고 있다 . 이 점은 바로 RATM의 힘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영원한 좌파를 자칭하는 RATM 또한 지난 몇 년간 그들이 뜸한 사이 부시 정부가 미국을 망쳐놓은 것을 괘씸하게 생각하며 정치적 '어퍼컷' 한방을 준비하고 있다고 최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가 가본적도 없는 이 코첼라가 걱정되는 것은 바로 RATM의 광 팬들로 인한 행사 엣모스피어의 붕괴다. 분명 상당수의 표가 RATM의 광 팬들에 의해 팔려나갔을 것이고 많은 코첼리안들이 이들 때문에 2007 년 행사를 포기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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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 하나. RATM 팬과 아닌 팬들로 나뉘기 십상인 이번 행사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 이전에 더 큰 해프닝이 있었으니 그것은 스팅이 몸 담았던 그룹 The Police의 코첼라 재결합 설이었다. 에로스미스는 참아도 폴리스@코첼라는 목숨 걸고 반대하겠다던 전 세계 블로거들 이 루머는 코첼라에 참여할 캐나다 락 그룹, Tokyo Police Club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 ? 이름이 비슷해서 ^^)





Reunion: 코첼라의 전통, 밴드의 재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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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9년 첫 행사는 RATM (Coachella '99 공연실황), 언더월드 , , 케미컬 브라더스 등의 화려한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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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에도 불구하고 금전적으로 실패했다. (2000년엔 금전사정으로 열리지도 않았다) 2001년에 다시 열리게 된 코첼라 행사도 금전적 사정으로 벼랑에 놓일 지경이었지만 코첼라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꿔 놓을 획기적인 기획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Jane 's Addiction의 재결합 @ 코첼라' 였다. 이 행사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2002년부터 전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인정 받게 된다. 이로 인해 특정 밴드의 재결합은 일종의 코첼라의 전통이 된 것이다. 코첼라에서 다시 만난 그룹들을 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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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면 다음과 같다 : Bauhaus, The Pixies (Coachella '04 Here Comes Your Man 공연실황), Iggy Pop & The Stooges, The Siouxsie and the Banshees. 또한 해체가 되지 않았더라도 미국에서의 첫 공연이라던가 일종의 컴백 무대로서의 기획도 진행되었는데 Daft Punk The Crowded House 가 이에 속한다. (Daft Punk의 사하라 텐트 공연은 The Arcade Fire와 함께 역대 코첼라 최대 하이라이트로 회귀된다) 또한 코첼라에서의 밴드의 재결합이 가지는 상업성은 굉장히 중요한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코첼라 측은 2006 The Smiths의 코첼라 재결합을 위해Morrisey에게 500만 달러 베팅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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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 코첼라에서는 RATM 외에 1980년대 후반 매드체스터 레이브 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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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자 전설
The Happy Mondays와 슈게이즈와 노이즈팝의 대명사 The Jesus and Mary Chain (Primal Scream Bobby Gillespie가 이 밴드 출신이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새로운 신보를 선보일 아티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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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런 음악 행사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란 왕년의 히트곡을 다시 듣는 것도 있겠지만 갓 나온 따끈따끈한 신보를 듣는 것이 아닐까 한다 . 이런 신보를 들려줄 것 같은 밴드들을 한번 봐보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코첼라 2002에서 헤드라이너로서 4 개월 임신을 무릅쓰고 투혼을 불살랐던 비욕 Bjork신보. 힙합 프로듀서인 Timbaland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배경의 프로듀서들과의 작업으로 초미의 관심사인 이번 신보가 5월 달 발매를 앞두고 이번 행사에서 그 베일을 벗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Timbaland가 건네 준 힙합 트랙을 비욕이 자체적으로 또 다른 레벨로 승화시켰다는데 인터넷에 벌써 심심치 않게 흘러 다니고 있다니 조바심이 나는 분들은 직접 찾아 보시길. 비욕은 코첼라를 필두로 8월까지 글라스튼베리 등 영국, 덴마크, 폴란드 프랑스 투어를 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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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ft Punk is Playing at My House'화려하게 데뷔한 댄스-펑크의 선두주자 LCD Sound System 3월 두 번째 신보인 "Sound of Silver" 를 앞둔 시점에서 ( 작년 12월에 인터넷에 새나가 버렸지만) 요번 코첼라의 다크호스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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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올가닉한 다운템포 사운드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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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이의 귀를 녹여버린 프렌치 듀오, Air 또한 3월에
"Pocket Symphony "라는 신보를 앞두고 유럽, 일본, 미국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코첼라 첫날 공연을 장식할 Pulp Jarvis Cocker 와 함께 작업한 트랙이 있다 하니 Air 공연 예정일인 일요일에 하비스가 다시 깜짝(?)출연을 해줄지도 모른다.   


      Trance
계의 영원한 형님 Tiesto 또한 건강을 회복했다.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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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유럽에서Elements of Life Tour를 시작한다 하니 이번 코첼라가 그의 왕성한 투어의 또 다른 시작점이 될 듯하다 .

      이 밖에도 인디 락 그룹인 The New Pornographers , The Blonde Redhead  (신보 '23')등도 2007년 신보를 앞두고 있어 그들의 새로운 사운드를 코첼라에서 잠시 엿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색다른 기획: Bluegrass, 스탠딩 코미디 그리고 Folk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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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코첼라의 색다른 점은 락, 일렉트로니카, 힙합을 주로 하면서도 다른 장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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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한 라인업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 Willie Nelson, Earl ScruggsNickel Creek 등이 블루 그라스 음악을 선보이게 되는데 여기서 블루 그라스 장르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우선 컨츄리 음악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특히 Nickel Creek의 경우, 블루그라스 장르를 인디 락 레벨로 승화 시킨 밴드로 유명한데 , 이번 코첼라 축제가 그들의 마지막 무대로 보여짐으로 의미 심장한 공연을 약속하고 있다. 또한 Comedians of Comedy가 스탠딩 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줄 예정이다 . 이들을 소개하자면 스탠딩 코미디계의 펑크 밴드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탠딩 코미디계의 크라잉 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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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lk로 넘어가면 아일랜드 싱어 송라이터 Damien Rice가 눈에 뜬다. 최근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콘서트 장에서의 사진촬영이 전 세계적인 문제점으로 대두되었는데 2006년 토론토 콘서트에서 다미엔 라이스는 'I Remember'를 부르며 관객들에게 모두 디지털 카메라를 끄고 모두가 하나되어 공연을 관람하는 옛날의 시간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 (코첼라에서는 디지털 캠코더의 반입이 금지되며 비상업용 사진 촬영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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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기존 주류 장르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운드들을 만나게 될 기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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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련된다. 먼저 미국 드라마 CSI 삽입곡과
'Fidelity '의 뮤직 비디오로 유투브를 달군 레지나 스펙터 Regina Spektor는 토리 애모스나 사라 맥라클란의 사운드가 그리운 이들에게 좋은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브라질 밴드 CSS의 자매 밴드로 탭 댄스와 '해피 '한 인디락의 접목이 인상적인 캐나다의 Tilly  and the Wall, 팝페라의 원조격인 Rufus Wainwright, 탱고와 일렉트로니카의 접목으로 유명한 Gotan Project, 밥 말리의 아들인 Stephen Marley 등을 통해 이국적이고 새로운 사운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Indie Rock, Post-Punk, Post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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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펑크의 영원한 전설 소닉 유스 Sonic Youth (이젠 어엿한 아저씨 아줌마들이지만) 전자 음악 100년사를 해석한 더블앨범을 내놓더니 'Do You Believe in Rapture?' 2006 년 최우수 뮤직비디오로 선정되는 등 아직도 건재함을 보여준다. 이 외에 또 하나의 거물은 바로 Arcade Fire (No cars Go Live). 데이빗 보위에게 인정받고 , 2005년 캐나다판 타임지를 장식하고, Coldplay는 그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라고 칭송했다. 한 유명 블로그는 부상 투혼을 무릅쓰고 이 세상 마지막 공연인양 최고의 열정을 쏟아 부으며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지나치던 이들을 끌어 모아 15000 명을 상대로 보여준 그들의 2005 년 공연을 코첼라 최대 하이라이트로 기록한다. 락 사운드 관련해 We are Scientists가 불참 의사를 밝혀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지만 Kaiser Chiefs, the Decemberists, Placebo, Interpol 등이 가세하여 Post Rock Post Punk 사운드를 선사하며 락은 아직도 살아있음을 알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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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 Hip 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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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R&B에서는 두 명의 브리티시 여전사들이 눈에 띈다. 2007 년 브릿 어워드 베스트 앨범 노미네이션과 최우수 여가수 상에 빛나는 Amy Winehouse! 마약과 술에 찌든 퇴폐하고 폭력적인 라이프 스타일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그녀지만 그녀만이 가진 허스키한 보이스의 매력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 설마 이번에도 술에 취해 무대 위에서 토하고 뛰쳐나가 버리지는 않을는지 심히 걱정되는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Love is a Losing Game''You Know I'm No Good '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Lily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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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소개는 야담으로 대신한다. 음악과 영상의 절묘한 싱크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Nouvelle Vague
'Dance With Me'란 트랙을 필두로 최근 50,60 년대 영화를 떠올리는 듯한 영상의 뮤직 비디오가 많이 나오는 추세다. 어떤 것들은 직접 옛 영화에서 차출한 것도 있고 일부로 그런 식으로 찍은 것들이 있다 . 후자에 속하는 것 중 하나가 Lily Allen'Littlest Things'인데 이 경우 미장센에서 프랑스보다는 미국적인 냄새가 강하다 . 간단한 박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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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빌딩과 가로등 앞에 트렌치 코트를 입고 외롭게 서있는 앨렌의 애처러운 보이스가 인상적인 이 뮤직 비디오는 어디선가 벅시 Bugsy로 분장한 워렌 비티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쨌든 릴리 앨랜이 관심을 끈 지는 꽤 오래된 얘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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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미국의 네이버 붐 격인 야후 버즈로그에서 뒤늦게 그녀를 다루며 열광한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 야후 검색을 통해 모두들 그녀를 검색하고 있었지만 정작 야후 측에서는 지금까지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다는 얘기다. 이 밖에 Hip Hop 부분에서는DJ Shadow를 비롯하여 Brother Ali, EL-P, Bus Driver, Peeping Tom 등이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얼터너티브 힙합 사운드를 선사할 것이다.


Electr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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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두들 익히 알고 있을 Tiseto, PVD, Benny Benassi, David Guetta, Felix da Housecat, Ritchie Hawtin, Infected Mushroom 등은 좀 제쳐두자. 필자가 밀고 싶은 그룹은 따로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도 지난번 방한한 Sister Bliss, 멘사의 멤버이자Dido의 친 오빠인 Rollo, Tiesto'Dance4Life '에서 Rap을 맡은 Maxi Jazz가 속해있는 Faithless가 오랜만에 미국 공연을 펼치며 지난 Daft Punk '사하라 전설 '을 재연할 수 있을지 조심스레 전망 해본다. 또한 Underworld The Chemical Brothers를 연상케 하는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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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사운드와 Fat한 일렉트로 사운드로 무장한 MSTRKRFT를 (Street Justice MV) 강력 추천한다. (Master Kraft 마스터 크라프트라 읽는다) 그들은 그룹 이름에 걸맞게 완성도 높은 완벽한 사운드로 생김새 또한 60년대 히피를 연상 시키는 등 모든 면에서 범상치 않다. 이번 코첼라 DJ set Junior Boys, Digitalism과 함께 가장 신선하고 파워풀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lectro Pop/ Dance Punk / Nu 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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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뒷골목 라틴 빈티(?)로 무장한 한 명의 아저씨와 5명의 귀여운 말괄량이 아가씨들로 구성된 CSS (Cansei De Ser Sexy)는 듣는 이로 하여금 방방 뛰어다니게 만드는 브라질 일렉트로 펑크 사운드를 선사한다. 비스티 보이즈 멤버인 Adam K의 부인이자 커트 코베인의 옛 여인 캐슬린 하나 Kathleen HannaLe Tigre의 사운드와 열정적 공연을 그리워하는 코첼리안들에게 그 공백을 시원하게 채워 줄 것이다. (또 야담 하나 . 캐슬린은 특히 코베인에게 Smells like Teen Spirit을 만들게 한 장본인으로도 유명 하다. 코베인에게 암내가 난다며 남겨놓은 캐슬린의 메시지를 코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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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신이 젊은이들의 영혼이다라는 메시지로 착각하고 이 곡을 만들었다 하는 소문이 있다.)   또한 지난 호 Nu Rave 관련 컬럼에서 언급했던Klaxons는 이번 코첼라의 숨겨진 다크호스로 손 꼽힌다 . 항상 그렇듯이 미국에서 열리는 이런 대규모 음악 행사에는 항상 브리티시 콘보이라 하여 (British Convoy) 영국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 끼게 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이번엔 KlaxonsThe Artic Monkeys (Post Punk), Jarvis Cocker (Brit Pop)와 함께 영국 사운드의 자존심을 살릴 무거운 짐을 소화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발광이라고 표현할 만큼 열정적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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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으로 유명한 2006 NME 선정 최고의 싱글
'Over and Over 'Hot Chip, 영화 '부시맨'에서 따온 것으로 구글에서 가장 검색하기 어려운 이름의 밴드인!!!, 자신들의 사운드를 '멜팅팝 '이라 지칭하고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Brazilian Girls, 평범한 학교 여선생님에서 섹스 이야기로만 무장한 일렉트로 하드코어 Peaches 또한 일렉트로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 줄 그룹들로 꼭 확인해보기 바란다.



             지면 상의 문제로 이 밖에 수많은 쟁쟁한 아티스트들을 설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아무리 말로 떠들어 봤자 한 번 듣고 보는 것만큼 이펙트를 줄 순 없을 것이다 . 혹시라도 이 행사에 가는 블링어가 있다면 필자의 부러움을 한 바구니 안고 가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필자와 같이 침만 질질 흘리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블링어들은 비참하지만 유튜브를 검색해 보거나 거리를 걸으며 혹은 일을 하며 귀에 이어폰을 꼽고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 위로하자 . (너무 비참한가..) 아니면 언젠가 한국에서도 이렇게 핫 hot 한 리스트의 행사가 열리길 무작정 기대하며 클럽에서 그리고 콘서트에서 각자의 주말을 불태우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이드 지식 하나 날리며 이번 칼럼을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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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지식 하나: Coachella코아체아가 아니라 코첼라 혹은 코아첼라라고 읽는다 . 멕시코와도 가깝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착각하는 분들이 몇 계신데 이 단어는 스페인어와 전혀 관련이 없다. 1888년 발견 된 이곳을 그 생김새에 비유해 콘칠라 Conchilla라고 명명 했으나 멍청한 공무원들의 실수로 Coachella라고 지도에 쓰여 졌다 . 어쨌든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 의미는 없지만 이 명칭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특이하고 발음이 귀에 좋게 들린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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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de frie@Coachella_Rebellion



Daft Punk@Coachella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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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07년 2월자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05:
               (Bye 80s Hello 90s 2) We Will Rock U All Night Long


Electroclash
온갖 비난을 받으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지지만 Electro Synth 탐구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클럽/ 레이브 문화의 한줄기 빛이다. Electroclash 창시자인 Larry Tee 뉴욕 문화를 망쳐놓은 빌어먹을 인간 3위로 뽑힌 2004년의 시점에서 지금까지 전자 댄스 음악 문화는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일까?


80s Revival House, Ministry of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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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clash의 거품이 빠지며 80년대 서브컬쳐 재건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2002년 즈음하여 80년대 복고 움직임은 매스 미디어로 넘어가게 된다. 하드코어 synth, 섹스, 죽음, 양성 등의 '대중적 도덕성'에서 벗어나는 요소들은 배제되고 킴 와일드와 마돈나를 떠올리는 80년대 주류 패션과 어느 클럽에서나 환영 받는 하우스 튠으로 대중은 80년대 복고에 비로소 눈을 뜨게 된다.

이 서막을 울리게 된 것은 바로 2004년 발매 되자 마자 5주간 영국 댄스 싱글 넘버 원을 차지했던 에릭 프리즈Eric Prydz
'Call on Me' (Live 버젼 클릭) 다. (프리즈의 믹스에 넋 나간 원작의 주인공 스티브 윈우드는 새로운 보컬을 만들어 주었고 Ministry of Sound 선정 올해의 Sexiest Music Video로도 선정되었다.) 에어로빅을 주 테마로 한 이 뮤직 비디오는 80년대 요소로 가득 차 있다. (붐 박스와 카세트 테이프, 헤어 밴드, 라이크라와 줄무늬 의상, 레그워머 그리고 80 년대 특유의 화려한 원색 등) 더 나아가서는 Ministry of Sound의 신 사업인 (일종의 '몸짱'
붐을 위한) Fitness와 맞물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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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싱글이 발매 된 후의 클럽 하우스 댄스 음악을 살펴보면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80년대 레트로 풍의 사운드라는 패턴을 쉽게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클럽 하우스 음악에 있어 진정한 80년대 복고 사운드는 2002년의 So Much Love to Give’뽑을 수 밖에 없다. 주인공은 바로 80s 사운드의 끝없는 재 탐구를 해왔던
Daft Punk의 Thomas Bangalter다. 클럽 음악을 통한 진정한 유포리아(Euphoria)를 느끼고 싶다면 들어보라. 클럽에서의 하룻밤 그리고 이 튠이 흘러나온다면 분명 당신은 그날의 DJ에게 평생 감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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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gan Pier:

전자 댄스 음악계의 영원한 이단아라면 바로 Happy Hardcore 있다. 아무도 음악적 가치를 인정하지도 않고 관심 조차 기울이지 않는 독특한 문화다. 하지만 장르도 진화를 거듭하여 지금은 Freeform이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그도 그럴 것이 ' ' 함을 중요시하는 미디어가 특유의 '유치함 '에는 혀를 두를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Wigan Pier 클럽 산업의 침체기 속에서도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는 안 되는 클럽 중에 하나다.

 
  Wigan Pier
사운드는 Happy Hardcore 식의 90 년대 anthem 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여기서는 old skool 또한 90년대 anthem이다 )여기에 모이는 이들은 주류 클럽 문화에 속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만의 '자유분방함 ' 내세운다. 씬을 막말로 표현하자면 미친 망아지들이 날뛰는 현장 같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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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한다. 클럽 산업의 침체기 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전자 댄스 음악 문화 전체의 황폐화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산업 자체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도 문화만큼은 세분화되고 다양화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특정
DJ 미디어 또는 프로모션에 의해 수동적으로 따라 가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분위기를 찾아 서로 모이는 . 옛날처럼 우리의 정신세계를 바꿔 버릴 만큼 충격은 주지 못할지언정 다양함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좀더 편한 유대감을 유지할 있는 자연스러움을 통해 침체기 라기보다는 성숙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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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 Nag Nag: 

80 년대 Electro 그룹 Cabaret Voltaire 음악에서 이름을 따온 클럽 나이트는 주로 양성애/게이 /고딕 등 다양한 서브 컬쳐 인파가 주를 이룬다. 70, 80년대 일렉트로, , funk playlist 들은 얼핏 보면 electroclash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선전적인 hype 순수하고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일렉트로와 punk 요소가 가미되어 하나의 가능성과 다양성 보여준다.
Nag Nag Nag
나이트의 중심 인물인 Johnny Slut electroclash와의 차별성을 더욱 강조하지만 시기적인 측면 등을 둘의 연관성은 깊다. 2000 년에서 2002 사이 뉴욕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무섭게 성장하던 일렉트로클래시 신의 중심에서 런던의 공백은 미디어들을 불안하게 했다. (아무리 hype 이라지만 세계 댄스 음악의 중심이라 자처하는 런던에 꼽을 만한 일렉트로 클럽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었을까?) 어찌하였건 뉴욕의 Larry Tee 와는 조금 다른 노선에서 시작했을지는 모르지만 이미 Batcave 나이트의 경험이 있는 Johnny Sl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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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g Nag Nag 특유의 페르소나와 맞물려 미디어와 트렌드 리더들을 비롯한 런던 서브 컬쳐 크라우드가 느끼던 '공백' 채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50,60
정도의 규모에서 별과 사이에 Nag Nag Nag 댄스 플로어는 몰려들어온 인파로 차게 것이다. 런던 클럽은 케이트 모스, 그웬 스테파니 , 보이 조지, 비욕 등의 주류 패션가 사람들의 잦은 방문으로 미디어의 덕을 보기도 했다. 항상 트렌드에 민감하면서도 싫증도 잦은 패션가 사람들은 사라지긴 했지만 오히려 클러버들은 시점부터를 즐겼다는 후문도 들린다.  





Nu 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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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경 NME 지가 새로운 장르를 선포했다. 이름하여 "Nu Rave." (80년대 말과 90 년도 초에 성행했던 레이브 문화와 그 동안 자라나고 있던 electro-rock (혹은 dance-punk) 크로스오버다. 즉시 언더 음악 관련 유명 블로그들은 일제히 우려와 반감의 목소리를 높이며 술렁였다.

요점인
자신들만의 언더문화가 미디어의 횡포에 휘둘리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블로그들도 NME 같은 거대 미디어가 없이는 언더 밴드들의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발돋움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아티스트가 영원한 '언더' 지향한다 하더라도 꾸준한 성숙과 성장을 위해 주류로 나가야 밖에 없는 그리고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사운드로 대체된다는 . 일종의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하지만 블로거들이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사이클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자라려고 하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문화를 구태여 끄집어내어 장르를 선포하고 과대선전하고 결국엔 1년도 안돼 장르의 죽음을 선언하는 . 'xx 시대는 갔다. 이제는 oo이다!' 공식에 의한 그들의 언더문화의 요절이 눈에 뻔히 보이기에 이토록 흥분하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Nu Rave 단어를 쓰며 이런 이야기를 끄적거리고 있는 조차 어떻게 보면 모순적이라 있지만 적어도 3,4개월의 시점을 두고 지켜보고 개인적인 느낌을 담는 정도로 이야기해보도록 한다)

     
Nu Rave
대체 무엇인가? 음악 장르인가, 문화 현상인가? 확실치 않다. 요즘 미디어에서 유행하는 장르에 이름 덫붙이기 정도로 보면 된다. Nu Nu Wave, Nu Electro 등등처럼. 따라서 무작정 NME 추천을 좇아 새로운 장르의 탄생을 널리 퍼뜨리고 환영하는 또한 위험할 있다

   
어쨋든 NME 선포한 Nu Rave 장르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성숙한 것은 사실이다. 굳이 특징을 찾아보자면 락밴드의 3 요소인 기타, 베이스, 드럼에 신디사이저의 자리가 중요하게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electro-rock 혹은 dance-punk 불리는 밴드의 모습과 다를 것은 전혀 없지만 좀더 몽환적인 가사와 보컬, 그리고 레이브 문화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들의 뮤직비디오나 파티씬을 보면 레이브의 아이콘인 스마일리 페이스, 배기 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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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우스틱의 재 출현과 90년대 초의 분위기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일렉트로니카 관련 음악 평론가인 사이몬 레이놀즈는 음악의 복고 유행은 20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했다. 따라서 ' Nu Rave' 라는 현상은 테크노보다는 얼터너티브와 브릿팝과 같은 락과 친숙한 90년대 중후반을 향유했던 어린 세대들을 위해 20년 만에 돌아온 80년대 레이브의 새로운 포장이라 있다.

NME
지가 Nu Rave 선포하며 앞장세웠던 밴드, Klaxons 조차 자신들이 레이브라는 이미지를 통해 알려졌지만 어떠한 문화적 장르나 움직임에 관여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시점에 과연 Nu Rave 운운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아니면 미국을 중심으로 움직이던 Dance-Punk 대한 영국의 응답쯤으로 봐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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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만의 레이브의 부활과 +전자음악의 재결합이라는 것이 진정한 의미라면 우리는 Happy Mondays, New Order, Paul Oakenfold 등을 떠올리면 된다. 혹은 시절을 상상해 보면 된다. 락과 신스와 테크노 /하우스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사랑과 희열이 크로스오버되었다는 80년대에서 90 년대로 넘어가던 시점을 말이다. 굳이 Nu Rave 라는 ' 장르' 굴레에 우리를 맞추어야 하는가? 락커들을 위한 댄스 음악, 헤드뱅잉이 가능한 댄스음악, 글로우스틱을 돌릴 있는 락음악, 댄스와 락의 만남. 간단하고 포괄적이지 않은가? 굳이 레이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않다거나를 떠나서 한판의 신명나는 춤판 혹은 헤드뱅잉 (?) 벌어질 있는 그런 점에 흥분 되는 것이다
.



   
몇몇 밴드들을 살펴보자. 소개되는 모든 밴드의 공통점은 년간 진행되고 있는 70,80 년대 펑크와 일렉트로 사운드의 부활의 흐름에 있다는 것과 추기에 좋은 -댄스 사운드라는 것이다. 또한 영파워들은 인터넷 세대인 만큼 미국의 싸이월드인 myspace 적극활용하며 자신들을 홍보한다. 비디오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들도 많은 만큼 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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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와 락의 접목에서 가장 주류에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 Scissor Sisters 아닐까 싶다. 밴드의 유명세로 이미 많은 음악 애호가들이 언더음악 세계에서 이미 락과 댄스의 결합이라는 거룩한 크루세이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을 것이다. '가위자매 (^^)' 이젠 너무 주류라서 싫고 너무 언더그라운드적인 것도 부담스럽다면 The Raptures 있다. 이미 House of Jealous Lovers 노래로 3 영국의 클럽가를 달군 저력이 있는 밴드는 락음악을 통해 춤을 춘다는 것이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 있는 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물론 NME 의해 Nu Rave 통해지는 Klaxons, Shitdisco, DataRock, New Young Pony Club 등은 아직까지 대중의 눈에 띄기에는 성숙하지 않은 사운드지만 (모자란 실력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 다듬어짐' 없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 오히려 매력이고) 앞서 말했듯 레이브 문화와 90년대를 향한 향수를 쉽게 느낄 있다. Techno sound 중심으로 하는 Simian Mobile Disco 또한 빼놓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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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80,90년대 복고의 선두에 수많은 여성들의 활약이다. 90년대 그런지 열풍에 의해 묻혀버린 대표적인 음악문화 흐름이라면 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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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 스매슁 펌프킨으로 통하는 -그런지 음악이 있다. 그리고 완전히 언더에 묻혀 사라질 뻔한 펑크 성향의 Riot Grrrl 음악이다. 주로 미국 서부와 KIll Rock Stars 레이블을 중심으로 D.I.Y 외치며 70년대 펑크 사운드 재건을 꾀한 여성 파워들이다. L7, Sleater Kinney, Bikini Kill 등이 이에 속한다. (Riot Grrrl 문화도 결국 매스 미디어에 흡수되어 펑크 정신이 상실된 'Girl Power' 라는 이미지로 주류에 편입되었다. 기괴한 현상이 물리고 물려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계보를 잠깐 언급한다면 Shampoo-> Spice Girls->Britney Spears 정도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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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였건 90 년대 라이엇 걸들을 직접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밴드들의 등장은 반갑기 그지 없다. 일렉트로 신스 성향이 강한(일렉트로클래시의 MIss Kittin 이나 W.I.T ) 밴드들은 소닉 유스의 고든과 블론디의 끈적하고 퇴폐스러움을 떠올리는 반면 DeadDisco Teenagers in Tokyo 같은 그룹은 바로 언급한 Sleater Kinney Bikini Kill 연상케 한다.

또한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가 인상적인 피펫츠The Pipettes 50년대 여성 코러스를 연상케 하며 직접적인 사운드로 어필한다. 80,90년대 복고 이야기에 뜬금없는 50년대 얘기냐 있겠지만 이들 또한 50년대 바비돌 이미지로 자신들을 포지셔닝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Riot Grrrl 에센스를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들의 매력은 이들의 유치한 율동과 음악 속에 담겨 있는 흥겨움이 아닐까 한다. (펑크 밴드 Thee Headcoatees에서 퇴폐적이고 거친 요소를 배제한 그룹이라 있다.)

                 

80년대 복고의 약발은 이미 떨어졌다. 아마 2,3년은 지속되겠지만 작은 변화만이 있을 것이다. 트렌드에 민감한 이라면 이미 90년대 복고가 도래했다는 것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짧은 지면 하나하나 꼬집어 설명은 못하지만 지금의 음악과 클러빙/레이브 트렌드는 이미 90년대로 넘어가고 있다. 2007년의 씬을 바라볼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Sasha, Digweed 대변되는)정통 하우스 사운드 씬과 -댄스의 크로스 오버 누가 승자일 인가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80s Retro House Tune recommended

1.      So much love to give by Thomas Bangalter

2.      Call on me by Eric Prydz

3.      Stupidisco by Junior Jack 

4.     I like love by Solitaire

5.      Out of Touch by Uniting Nations


Rock-Dance Crossover (Nu-Rave, Dance Punk, Electro Rock, whatever…) recommended

1.       Klaxons (rock, rave) -Majik

2.       Datarock (rock, rave) - Fafafa

3.       Deaddisco (dance punk) - Automatic

4.       The Pipettes (surfing, candy pop) - Pull Shapes

5.       Simian Mobile Disco (techno, electro) - Hustler (18세 미만 절대 클릭 금지!)

6.       The Rapture (Dnace Punk) -  Woooh Alright Yeah


 



 
Ice Cream by New Young Pony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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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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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Vol 4:  

Bye 80s, Hello 90s part1: Electroc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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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
모든 음악 잡지 기사들은 Electroclash scene 이야기로 가득 찼다 .9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2000년경 뉴욕의 Larry Tee 의해 이른바 새로운 '장르' 대중의 앞에 새로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최근 사이 폭풍처럼 밀려온 80년대 복고 유행의 시작을 의미한다) 하지만 Electro 사운드의 유행(?) 이미 세계적인 언더그라운드 문화현상이었다. 장르 구분도 모호했던(지금도 그렇지만) 시기에 80년대 electro new wave성향을 가진 음악들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Nu Nu Wave, Neo-Italo, Nu NRG, Nu Electro 등등) 베를린의 DJ Hell 필두로 International DJ Gigolo 레이블, Electro 복고 사운드의 서막을 알린 네덜란드의 I-F  "Space Invaders are Smoking Grass" 등이 예이다. 따라서 Larry Tee 모든 'ELCTRO' 현상에 대한 창시자로 수는 없지만 가장 많은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장본인이라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뉴욕을 망쳐놓은 인간 3위로 등극하며 욕을 먹는 가장 이유도 때문이 아닐까.  (2위는 모르겠고 1위는 뉴욕시장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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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렉트로니카
역사에 있어 70년대 Larry Levan Garage 씬과 90년대 초반 Frankie Bones 레이브씬 ( PLUR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이후로 뉴욕의 서브컬쳐 씬은 이렇다 뉴스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Electroclash 뉴욕의 힙스터 들에게는 한없이 반가운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항간에는 Velvet Underground Andy Warhol The Factory Years, Sonic Youth Glenn Branca Glitch 이은 최고의 음악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hype까지 조성되었다. 본거지인 뉴욕의 Williamsburg 윌리암즈버그는 이미 70, 80년대부터 소호에서 빠져 나온 언더 문화, 예술가, 음악, 패션 관련 사람들이 모이며 2000년대 뉴욕의 문화 중심지로서 새로운 움직임의 동지들을 얻기에 인프라적으로도 유리했다. 또한 9/11 맞물려 이틀간 열린 'The 1st Electroclash Festival' 뉴욕, 미국 그리고 나아가 세계를 향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외치며 전략적인 타이밍의 성공과 더불어 각종 미디어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뉴욕에 근거지를 Fischerspooner, A.R.E Weapons, W.I.T, Ladytron, the Soviet 등의 아티스트들을 중심으로 Larry Tee Club Luxx에서 (지금은 Trash Bar로 문을 새로 연 상태 임) Berliniamsburg 나이트를 열며 지속적인 Electroclash 확산을 꾀한다. 또한 Felix da Housecat Miss Kittin and the Hacker 가세로 더욱 탄력을 받는다. 2002년에 피크를 때리지만 여기저기서 ‘Electroclash Sucks!’ 티셔츠들이 등장하고 결국 Electroclash 몰락하고 만다. (Larry Tee ‘Electroclash’ 대한 저작권을 소유하기도 했고 이는 관련 아티스트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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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ctroclash
일렉트로니카 댄스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발칙한' 쿠데타였다. Larry Tee에게 유로 트랜스, 하우스 그리고 Sasha John Digweed 대변되는 Progressive (혹은 instrumental 미니멀 사운드) 일관되는 클럽 문화는 너무 지루해 보였다. Vibe 이끌어 내는 가이드라는 명분이 실종되고 엘리티즘과 매너리즘에 빠진 사운드로 많은 DJ들은 그들이 만들어낸 'progressive' 세계에 클러버들을 가두려 했다. Techno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틀에 박힌 사운드와 댄싱. 거기다가 미니멀적인 요소까지 더해지다니. 이제 우리는 지난 시절 Progressive Rocker들의 컨서트를 관람하듯 DJ들의 예술적인 음악성과 고상함을 즐겨야 하는 것인가! " 음악과 DJ들은 전혀 섹시하지 않아!"라고 외치며 Larry Tee Techno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 (2000) 댄스 음악 문화 현상이 재미와 혁신과 상상력을 오히려 거세하고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를 뒤집기 위해 정면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바로 전자 댄스 음악계의 판도가 DJ 음악의 instrumental하고 미니멀한 성향에서 밴드 위주의 퍼포먼스와 성향으로 바뀌게 되는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그리고 현상은 지금까지 다른 형태로 탈바꿈되며 현재 진행형이다) 동안 없었던 전자 댄스 음악에 있어 보컬과 가사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또한 전자 댄스 음악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80년대 Rave 문화의 유산을 미련 없이 던져 버렸다. 레이브 문화가 추구하던 인종, 계층, 나이, 성별을 초월한 평등주의, 음악과 춤을 통한 샤머니즘적 트랜스의 경험 그리고 모두가 하나됨이라는 엑스터시 바이브를 80년대 new wave new romanticism 근거한 기계적이고 펑크적이며 패셔너블하고 슬릭, 럭셔리한 코케인 바이브로 대체하려 했다. (80년대 후반 레이브의 문화를 접하지 않은 많은 10,20대들은 오히려 Nirvana 같은 얼터너티브락이나 펑크가 친숙한 부류이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고 환영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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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ctroclash 음악의 장르라기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Synthpop 성향이 강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punk rock 가까운 음악들도 있다. 굳이 이들의 공통점을 찾자면 로봇 보컬을 떠올리는 잦은 보코더의 사용과 New Order Blue Monday Giorgio Moroder 식의 신스 베이스 라인이 깔려있구나 정도다. 따라서 Electroclash 음악은 기존의 trance, house 혹은 drum n base처럼 BPM으로 정의할 없다. 바로 음악이 아닌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어떤 음악이던 80년대 new wave 성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춤을 있고 punk 혹은 glitch스럽고 sexy 하다면 Electroclash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음악의 장르로서 이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음악적인 차원에서 풀자면 초기 electro retro 성향의 음악은 오히려 techno 가진 미니멀 적이었다는 . 하지만 Electroclash pop 성향을 어필하면서 비로소 보컬, 가사, 노래, 멜로디라는 요소들이 부각되었다는 정도다. 일종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댄스 음악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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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clash
씬은 패션, 예술, 아이러니, 섹스를 추구한다. 참여 또한 드래그 , 게이, 고딕, 패셔니스타, 페티시스트 들이다. 패션가의 사람들이 연예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명하지 않은 것은 참아도 하지 못한 것은 참지 못한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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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Electroclash 패션가 사람들과 많이 닮아있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은 클럽 뿐만이 아니라 아트 갤러리를 활동 무대로 삼았다. Fischerspooner, A.R.E Weapons, Peaches 등은 80년대 컬트 영화인 Liquid Sky 떠올리는 인상 깊고 연극적인/키치적인/포르노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들에게 갤러리라는 공간은 자신들의 행위와 음악을 통해 마돈나 등과 같은 패션가의, 연예계의, 예술계의 유명 인사들을 끌어 모아 자신들의 함을 과시하고 과대 선전하였다. 물론 이들의 퍼포먼스는 나름대로의 컨셉트를 통해 진행되었고 내용 또한 많은 센세이션과 찬사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Larry Tee Electroclash 추구하던 뉴욕 게이 컬쳐 특유의 ‘Vogue-ing’ (최신 유행에 지나치게 집착적인), 지나친 유럽 지향성, 백인 위주의 성격은 그들을 자신의 함정에 빠지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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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복고 유행의 진정한 의미는 1980년도에 일어났던 New Wave서브컬쳐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80년대 복고가 화제가 뉴오더, 소프트셀, 캬바레 볼테어, 게리 뉴만 등의 이름들이 언급 되는 것이다. 80년대 언더문화의 가장 특징 하나가 인위적인 것과 자연스러움, 과거와 미래, 패션 트렌드와 영원함, 고가와 저가 등과 같은 상반되는 개념들 사이에서 생기는 아이러니와 딜레마 주제다. . (물론 Electroclash 추구하는 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글래머러스하고 고급스러운 상류 사회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동경과 풍자가 각각 반반씩 섞여 있는 경우를 예로들 있는데, 남성의 경우 금융권의 상징인 정장과 넥타이 그리고 여성의 경우 상류 패션을 의미하는 하이웨이스트, 스틸레토 등의 스타일 측면은 주류 산업과 미디어와의 타협이 없으면 언더 문화의 자식들인 자신들도 존속할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멈출 없는 풍자와 조롱을 보여준다. ( 곳에서의 딜레마는 언더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류에 합류할 것인가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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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급 라이프 스타일 향유하는 이들이 서있는 레드 카펫 그리고 이를 향한 동경과 일종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가지고 바라보고만 있는 위의 구경꾼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선은 어쩌면 최근 붉어지고 있는 연예인과 재벌가 특권 비판하면서도 그들이 뿌리고 있는 트렌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좆아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는 하다. 주류 패션잡지와 미디어에 의해 정의되고 만들어지는 왜곡되고 인위적인 현실과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통해 생기는 환상에 대한 유희와 동시에 심리적인 열등감이 낳고 있는 pastiche페스티시적(혼성모방) 현상일 있겠다. (유명 패션 잡지의 구매자들은 중서민층이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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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Electroclash 가장 결함은 스타일적 측면과 자기 치장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겉으로는 80년대 New Wave문화의 에센스를 많이 닮아있는 하면서도 까놓고 보면 강정이라는 것이다. 또한 펑크 특유의 무례하고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거친 성격과 맞물려 댄스 음악 문화는 엘리티즘과 권위 그리고 거만함으로 가득 보인다. 가장 중요한 요소인 음악 또한 그저 자신들을 빛내주는 조연으로 밀려나 버리니 음악적인 완성도와 비트 사이언스의 개념들이 상대적으로 낮아 지게 된다. 한마디로 80년대적이지 않으면서도 혹은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80년대 복고의 의존도가 너무 높고 표현 또한 어설퍼 보인다는 것이다. Electroclash에서 가장 눈에 띄는 독설, 조롱, 속도감, 음탕함, 불결함, 페티시 등은 미성숙의 표본이라 있는 개념 없이 거침없음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열거한 요소들이 도덕적으로는 문제 될지 몰라도 문화 현상에 있어 혁신과 변화 그리고 다양성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변수들이다. 또한 Electroclash 연계된 아티스트들 또한 싸잡아서 평가 절하하는 또한 위험한 짓이다. 결국 electro retro 관련 움직임들과 비교할 Electroclash 가장 결함은 변화를 이끌고 핵심 브레인의 부제라고 있다. 창시자 격인 Larry Tee subculture 아이콘이 되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야망에 휩싸여 Electroclash 미화와 과대 선전 그리고 함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자신이 자체를 붕괴시켜버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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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clash / Synthcore DJs and Artists recommended

1.      DJ Hell

2.      Miss Kittin and the Hacker

3.      Fischerspooner

4.      W.I.T

5.      Freeze 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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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03: 06년 12월자

The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 at the Club, but now W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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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많은 클러버들이 홍대 앞을 외면한지 오래되었고 클러빙의 메카로 새로 자리잡은 모 호텔과 그 옆의 Bar 또한 심각한 문제에 봉착한 것 같다. 웬만한 클러빙 이벤트가 열리면 “또 거기야?”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곳은 클럽인가? 그렇지는 않다. 분명 Ibiza, 이비자를 (Es Vive Ibiza가 대표적이다) 중심으로 호텔 중심의 one shot 이벤트를 여는 것이 트렌드 임은 분명하지만 누가 주최 하던 어떤 DJ가 오던 뭐가 달라지는 지 모르겠다.
  
    엇비슷한 분위기와 엇비슷한 음악.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는데, 모든 하우스는 OM Record로 통하는가? 점점 광장동으로 향하는 길이 이제 지겹기만 하다. 비슷한 장소에서 열리더라도, 비슷한 소속의 DJ들이 오더라도 나름대로의 정체성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건 프로모션의 몫이 아닐까 싶다. 분명 국내의 장소, 사운드 시스템, 마케팅 측면을 볼 때 사정이 열악한 건 사실 이겠지만 그 옛날 홍대 앞 르네상스 시절의 언더그라운드 스피릿에서라도 배울 점은 조금이라도 없었던 것 일까? 앞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사정이 너무 열악해서라는 것은 핑계거리다. 프로모션의 목적이 이윤이건 순수한 atmosphere의 구성이건 변화가 필요한 건 바로 이 순간, 지금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나마 홍대 앞에서 외롭게 고군 분투하고 있는 Tool에 감사할 따름이다. 장사 속이건 순수한 열정이건 기본 적으로 필요한 건 치밀한 리서치와 나름대로의 철학 구축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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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워야 할 '파티 프로모터'들: (왼쪽부터 PLUR의 Frankie Bones 프랭키 본즈; Sunrise의 Tony Colston-Hayter 토니 콜츤 헤이터; Loft Party의 David Mancuso 데이빗 만쿠소; Shoom의 Danny Rampling 대니 램플링; Haicenda의 Tony Wilson 토니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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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m BBC NEWS

                                                                             2000년도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의 클럽 산업은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2002년도에 영국의 간판 클럽인 Cream도 많은 클러버들의 아쉬움 속에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이 침체기의 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수퍼 스타 DJ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에게 돌아가는 금전적인 몫이 점점 커지면서 급기야 클럽 산업의 악영향까지 끼치게 된 것이다.  비단 Cream 뿐만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대형 클럽들이 문을 닫고 있다. 하지만 위험이 닥치면 대응도 필요한 법. 이번에는 이러한 위기 속에서 변해가는 새로운 클럽들의 모습을 보기로 한다.



Cocoon Club, Frankfurt, Germany by DJ Sven Vath and 3 Delu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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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클럽이라는 공간, 멀티 미디어 그리고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Cocoon Club은 한 차원 향상된 clubbing experience를 제공한다. "끝이란 마지막인 동시에 새로운 시작이다. 절대 현재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라는 트랜스 음악의 아버지 격인 독일의 스타 DJ, Sven Vath의 철학을 여지 없이 보여 주듯 인테리어 건축 회사인 3 Delux와 함께 Sven Vath는 현존 최고의 미래 지향적 Clubbing experience (그렇다. 그저 공간이 아닌 초감각적 경험이다)를 일구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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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엄이 다가오기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 전설의 클럽 Omen이 문을 닫고 독일 클러빙 메카의 자리는 서서히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를린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의 클럽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고 좀더 고급스럽고 특정 계층을 겨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이 변화의 흐름의 최전선에 서서 아방가르드 도시의 옛 영광을 되찾은 일등 공신이 바로 Cocoon Club이다. Cocoon Club은 이미 1996년부터 다른 예술 매체와 전자음악의 결합이라는 테마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1999년 이후로 Cocoon 이벤트는 이비자의 Amnesia 클럽에서 음악/댄스와 멀티미디어 요소가 결합된 초감각적 경험을 선사하였고 나아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2004년 UFO의 건물에 Cocoon Club의 실질적 공간이 들어 앉으며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프랑크푸르트 클럽신의 침체기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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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500명을 수용하는 이 공간은 클러빙, 라운징, 다이닝 (clubbing/lounging/dining)이라는 경험을 감각적 인테리어 디자인과 최첨단 테크놀로지에 결합한다는 컨셉트 아래 3개의 대표적인 디자인 존(zone)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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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로(Micro)는 시간에 따라 라운지에서 댄스 플로어로 변한다. 천장에 매달려 있는 수백 개의 파이버글라스 튜브에 의해 반사되는 프로젝션 이미지들은 서로 엮어져서 일종의 멀티 미디어 장식 효과를 자아낸다. 그 옆에 자리 잡은 실크(Silk)는 백색 가죽의 가구가 인상적인 레스토랑으로 dining의 경험을 예술적 차원으로 승화 시킨다는 컨셉트로 지어졌다. 또한 VIP용으로 만들어진 마이크로 캡슐 그리고 메인 댄스 플로어에 마련된 360도의 벌집 모양 membrane, 멤브레인 벽은 인테리어 건축의 절정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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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coon Club은 클러버들 뿐만이 아니라 DJ, VJ, LJ에게도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쉽게 연계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클러버들과 하나될 수 있는 최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사운드 시스템과 jockey, 쟈키 용 세트들 또한 최첨단을 자랑한다. 아마도 70년대 Larry Levan과 Michael Brody가 Paradise Garage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Cocoon Club이 아닌가 싶다. 건축가인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박물관이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빌바오라는 도시 자체를 되살려 냈다면 3delux와 DJ Sven Vath의 Cocoon Club은 음악과 디자인 철학의 결합을 통해 도시의 이미지 쇄신은 물론 현 클럽 문화를 재 정의하였다고 볼 수 있다.


BabyCream, Liverpool and Leeds, UK by C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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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클럽 브랜드를 대표하던 Cream도 클럽 산업 침체기의 여파는 피할 수 없었다. 2002년 클러버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오랜 고향인 리버풀에서 문을 닫고 만 것이다. 그 후 크림의 각종 이벤트와 레이블 산업은 계속 되었고 2003년 BabyCream과 함께 리버풀을 다시 찾았다. 유럽 연합으로부터 리버풀이 2008년 유럽 문화의 도시로 지정되면서 크림은 Lyceum Group과 조인하여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문화를 개척하고자 새로운 라운지-바-레스토랑 컨셉트를 내놓았다. BabyCream은 정확히 클럽은 아니지만 Cocoon Club과 맥을 같이 한다. 클럽 음악을 중심으로 스타일과 디자인이 접목하여 제공하는 고 품격 Dining과 Bar 문화가 바로 BabyCream이 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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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것은 Girl's Powder Room으로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따로 마련 되어 있다 (남성의 출입은 초대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여성들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마음 놓고 화장을 고치거나 여자들만의 수다가 필요하다거나(“woooo, He's so hot…) 말이다. 파우더 룸은 헐리우드 세트를 연상 시키는 화장대, 필립 스탁의 의자 등 여성들에게 주인공이 한편의 연극 출연을 위해 무대 뒤에서 준비할 수 있는 화려한 분장실의 공간을 제공한다. 또한 부둣가에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을 살려 저녁에는 아주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 있다.



Minibar, Harrogate, UK by Ministry of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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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공히 클럽산업 최대 공룡인 Ministry of Sound의 벌여놓은 사업만 따지고 보면 기업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2006년 초 클럽 가 최대의 뉴스거리는 Hed Kandi 브랜드의 인수였다. 당연히 인수한 이는 Ministry of Sound다. 얼마 전 요가 비디오 사업까지 뛰어 들은 마당에 새로운 흐름인 restaurant-lounge-bar 컨셉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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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바는 700명 수용 공간에 커다란 샹젤리에 밑에 위치한 그네 식 의자, 자쿠지, VIP 룸을 (VIP 룸은 터치스크린으로 웨이터의 존재를 없애고 프라이버시와 편안함을 더 중요시 하였다) 제공하고 발레릭 비트와 헤드칸디 스타일의 음악이 Martin Audio의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흘러나온다. 유리, 철, 가죽, 털 등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는 200만 파운드가 들어간 작품이다.  (헤드칸디 컨셉트를 살려 백색 가죽의 편안함을 무기로 한 'Kandi-Bar'를 밑 층에 따로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90년대 한국의 나이트 클럽을 연상케 하는 드레스 코드를 통한 까다로운 '물 관리' 또한 프리미엄 바 이미지에 한 몫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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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yCream의 아류라는 비아냥을 면치 못하고는 있지만 클럽 브랜드의 거인으로서 Ministry of Sound의 미니바가 질적으로 좋고 낮음을 떠나 클럽의 변화라는 이 새로운 트렌드의 정상에 오를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헤드칸디 앨범들도 이젠 공장에서 물품 찍어내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공장 식으로 체인화 될 이 미니바도 멀지 않아 국내에도 생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한번 해본다.



       블링 독자들이 이 글을 읽을 때 즈음이면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마음이 이리저리 들 떠 있을 때다. 프로모션도 연말 파티 준비에 바쁠 것이고. 이번 연말의 최고의 파티는 어디일까? 언제나 그렇듯 광장동, 홍대 앞, 압구정, 이태원 등으로 헤쳐 모이겠지만 이 공간적 Identity Crisis에서 벗어난 이벤트를 맛보기란 과연 가능한 걸까?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and
PLUR you all.
 

딴 세계의 클러빙 신은 어떨까?
1. <http://www.ambrel.net> (NY scene)
2. http://www.ministryofsound.co.uk (UK scene)
3. <http://www.cream.co.uk>  (UK Scene)
4. <http://cyberjapan.tv>  (Tokyo Scene)
5. <http://www.cocoonclub.net> (Frankfurt Sc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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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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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 Vibe Upon the World 06년 11월자

02_Money’s Too Tight to Men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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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세상은 날이 갈수록 편해진다고 한다. 핸드폰을 비롯하여 쏟아져 나오는 첨단 기기들의 칩에는 더욱 향상된 인간의 기억과 논리가 탑재되어 우리의 삶을 편하게 해준다고 한다. (더 이상 기기 (gadget)가 아닌 인공지능의 로봇으로 탈바꿈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또한 개인화 되어 가는 사회를 지적하며 유전적, 문화적, 개인적 차별화는 서로의 다양성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공해 가득한 도시에서도 느낄 수 있는 전원의 쾌적함, 숨막히는 일상에서 느낄 줄 아는 커피 한잔의 여유, 몸에 좋은 유기농 식품과 금연, 당당함과 자신감을 찾아주는 자기관리 등등.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뭔가가 많아진 건 사실이며 틀린 말 또한 아니다. 문제는 미디어는 유행을 만들고 우리에게 삶의 요소들을 끊임없이 정의하고 강요한다는 것이며 그 강도는 심해지고 있다.

결국 공식은 하나다. 이 특권들을 누리는 대신 우리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어차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이미지를 먹고 사는 우리는 끊임 없이 소비를 해야 하는 운명이다. 부모의 경제력이 상당한 뒷받침이 되어 주지 않는 경우라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이미지를 먹기 위해 치열하게 삶과 부딪히고 있는 초라한 자신을 발견할 뿐이다. 돈이라는 것이 자신의 의지를 뛰어 넘는 것에 대한 괴리감에 빠지는 신세기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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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실험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이념을 뛰어넘은 지 오래되었고 결국 경제력 확보에 관한 싸움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맞은 핵실험 후의 ‘타인’들의 반응은 전쟁이 아닌 ‘돈 있으면 빨리 주식을 사야 되는데. 어차피 전쟁 날리는 없는데 반등할 것 아냐’였다. 이미 안전불감증에 빠져 버린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미지를 먹기 위한 끝없는 도약인가? 과연 첨단의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인가 미디어인가? 미디어가 말하는 다양성이라는 이름에 감춰진 일관성과 폐쇄성이란 소용돌이 안에서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인가? 해답도 없이 인간 사회에서 두고두고 되풀이 되기만 하는 질문이다.

          레이브 문화의 매력은 바로 그 다양성 안에 있었다. 소수의 모임이면서도 타인을 수용할 수 있고 음악과 춤을 통한 트랜스 (trance)라는 보다 원시적인 요소를 통해 자신과 사람들 그리고 자연의 소중함에 눈떠가는 사랑의 여정이었다. 독자적인 문화이기에 레이브만의 언어는 존재할 지라도 그것을 강요하고 정의하지 않았다. 또한 기나긴 히피의 트레일러 여정처럼 일상의 삶이란 바퀴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지도 않았다. (on-going이 아닌 one-shot event이기에) 인종도 사회적인 지위도 그리고 나이도 묻지 않았으며 모두가 뒤섞여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오직 음악과 춤으로 하나가 될 뿐이었다. 레이브도 산업화와 상업화의 과정 속에 죽어 버린 지 오래지만 그 요소들은 곳곳에 살아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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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업적인 캐릭터가 강한 클러빙은 아직도 건재한 것 같다. (죽어버린 레이브에 비하면) 그리고 한국의 클럽 문화는 그래도 아직까지는 소수의 문화라고 불려지고 있기에 (기준이야 어찌하였건) 이러한 레이브의 요소를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무작정 가져본다. 일이 커지면 사람들 눈에 띄기 마련이고 눈에 띄기 시작하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변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난 호에 잠깐 언급했듯이 2000년도 이후의 댄스음악 문화는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볼 수 있다. 필자의 취지는 어디 까지나 댄스 음악 문화의 옛 모습을 찾아보는 것임으로 산업으로서의 현재 댄스 음악 신에 대해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상업화의 공식은 같기 때문에) 따라서 근 몇 년간의 모습은 새로 발생하고 있는 전자 음악 신의 몇 가지 트랜드나 사건만을 꼽아서 2부에 걸쳐 나열해보려 한다.



Politics of Da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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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 DJ가 되었으니 이제 정부에 가서 자선 이벤트 좀 하게 도와달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겠군요” 2005년 당시 Paul Van Dyke의 말이다. 워낙 장난기 많은 사람이라 가볍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을 한번쯤 곱씹어 볼만하다. 어두운 창고에서 술과 마약에 취해 담배 연기나 날리며 이성이나 탐닉하는 것처럼 보이던 이상한 양아치들이 쪽수가 많아지더니 제법 ‘힘’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힘이란 사회에서의 발언권과 추진력 그리고 존재성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들어 반가운 소식은 미국 일리노이 주 경제청과 관광청에서 추진한 Chicago Move! House Festival이다. 참여자들의 반응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하우스의 고향인 시카고에서 거의 20년이 지난 시점에서나마 그 역사적 중요성을 정부가 인식하고 실천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무적이다. (시카고 시청 장이 하우스 음악에 심취해 있다는 야담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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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행사의 번복을 거듭했던 샌프란시스코의 러브퍼레이드가 지난 9월 열렸다. 독일 러브퍼레이드의 자매 행사였지만 이번에는 독일과는 무관하게 San Francisco Love Fest란 새 이름으로 독자적으로 열렸다. Peace, Tolerance, Understanding (평화, 박애, 이해)의 모토와 함께 미국의 암울한 전시 분위기를 바꾸고 라디오나 MTV 등의 주류 미디어에서는 알 수 없는 일렉 댄스 음악문화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다. 옛날 레이버들의 본거지 였던 글라츤베리 페스티벌 (Glastonbury Festival) 또한 2007년엔 17만이 넘는 인파를 수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대규모 일렉 댄스 음악 관련 행사들이 펼쳐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누가 더 많은 이슈를 끌어낼 것인가 하는 ‘숫자놀이’에 치우치는 경향도 지적을 받고 있기에 조심스레 바라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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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성장과 함께 당연히 DJ들의 지위도 몰라보게 높아졌다. (물론 수퍼스타 DJ들에게만 한한 것이겠지만) 이번 올림픽월드컵의 음악을 Tiesto와 Bob Sinclar가 각각 맡은 것만 보아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수퍼스타 DJ 시대가 도래하며 클러버들은 이른바 ‘빅 이벤트’만을 좇아 다니게 되었다. 모두의 손과 눈은 DJ를 향해 있고 그는 뒤에서 신,scene의 전체적 흐름을 이끄는 가이드가 아닌 화려한 유명세와 테크닉을 선사하는 지미 헨드릭스가 되어 간다. 이것은 락 콘서트가 아님을 말하고 싶다. 우린 아직도 디즈니랜드에서 캐리비언 해적의 주제가를 트는 Tiesto보다는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 에서 은은히 만나는 언더월드 (Underworld)가 더 반갑다.- 야담이지만 ‘큰형님’ 띠에스또가 심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의 최근 상업적 행적에 괘씸해 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쾌유를 빌어주자. Gouryella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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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se of VJing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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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간의 전자 댄스 음악 신에서 가장 주시하고 싶은 건 빠르게 자라고 있는 VJ(Video Jockey) 문화다. 음악과 영상의 실시간 싱크의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주류의 눈에 띄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DJ와 VJ가 분리 되어 완벽한 싱크를 보여줄 수는 없다. 새로 나온 DVJ 기구를 통해 기술적으로나마 싱크를 보여주려는 시도는 벌써 시작되었지만 아직은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빠른 시간 안에 극복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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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아티스트 중 Addictive TV가장 먼저 상업적 주류와 손을 잡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미국에서 개봉 예정인 안토니스 반데라스 주연의 ‘Take the Lead’의 Trailer를 맡아 영상의 리믹스를 하게 된 것이다. 과연 Hollywood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사건’을 벌였을까? 그 속셈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영화 자체보다 트레일러가 더 기다려지긴 처음이었다. 물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www.youtube.com에서 take the lead trailer를 검색하면 볼 수 있다. 벌써 리믹스 버전이 몇 개 더 나왔던데 addictive TV remix 강추!) – 얼마 전 모 케이블 채널 광고에서 이 Take the Lead 리믹스의 무심한 표절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딴 방법은 없었을까…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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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Motion Graphics가 영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이제 헐리우드는 영화 보다 더 멋진 오프닝을 선사한다. 또한 소수 영화 매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엔딩 크레딧 (보통은 자리를 빨리 뜨라는 큐 사인으로 인식 되는 것 같으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고층 건물 극장에서 이에 반응하는 관객들의 민첩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또한 종종 사람들을 끝까지 붙잡아 놓고 있다. 이제는 트레일러 마저 영화의 종속성에서 벗어나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거듭나다니! 영상과 음악 디자인의 앞날은 희망차 보인다. DVJing이 활성화되는 그 날이 올 때 클럽 신은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과연 음악과 영상의 싱크의 개념이 우리 클러버들과 레이버들에게 통할지. 우리는 그것 (음악과 영상이 하나된 무언가)을 보아야 할지 들어야 할지 또는 우리의 몸과 눈은 어떻게 반응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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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J 문화와 관련해 유럽의 Sonar Festival은 1997년에 시작되어 이제는 전자 음악 댄스 신에서 가장 중요한 페스티벌로 자리 잡았다. 2006년도는 흑인 음악을 테마로 일렉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고 ‘일본의 소리’라는 사이드 테마로 이루어졌다. 유럽은 너무 멀어 갈 수 없지만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에서도 국내 최초 소나 뮤직 페스티벌이 열린다. (이번 호가 발매 되면 벌써 끝나 있을 것이어서 소개를 일찍 못한 것이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홍대 M2에서 벌써 두 번째 VJ 파티 소식이 들리는 바 한국에서의 VJ신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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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만한 VJ Artist 5 (DJ Ma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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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01. 파티는 시작되었다. 

      필자가 보아도 참 거창한 제목이다.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길래 서슴지 않고 원고의 대문에 떡 하니 가져다 놓았는지. 실은 제목하나 붙여 놓고 몇 일째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수많은 정보들은 어떻게 처리 할 것이며 어떻게 정리할 것이며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은 방대한 이야기들을 깔끔히 정리해주는 일은 누구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이의 딜레마는 짧은 지면에 비해 항상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항상 필요한 건 그 결단의 시기라는 것. 필자도 이만 이야기 시작의 결단을 내릴 때가 된 것 같다. 그래, 이번 호 원고는 통 크게 서론으로 삼자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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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지난 2,3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제 2의 한국 클럽문화의 르네상스라 보고 싶다. 분명 이 관점엔 어폐가 있다. 지금 클럽 문화를 보면 분명 눈꼴 시린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30대의 삶을 헤쳐나가고 있는 많은 초기 홍대 클러버들이 바라보는 지금의 실정은 마치 1세대 모뎀 통신 세대가 지금의 xx버 게시판의 리플들을 보고 있는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문화에 대해 알아 가고 참여하고 있고 미디어는 눈떠가며 그 산업 또한 덩치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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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이 문화를 동경한 이라면 이런 경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어느 레코드 가게를 뒤져도 찾을 수 없어 어렵사리 p2p 등을 통해 음악을 다운받아 듣고 무한감동에 빠져버린 기억이 있을 테고 어렵게 구한 외국 음악 잡지를 통해만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인터넷 등을 통해 Creamfileds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Paul Van Dyk의 모습을 보며 혼자 상상하며 열광한 적도 있을 것이다. (너무 오타쿠 적으로 흘러간다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제는 현실로 다가 왔다. 분명 우리는 이 땅에서 Tiesto, Ferry Corsten, Paul Van Dyk, Dimitri from Paris, DJ Shadow 등의 이른바 전설들을 만났고 Paulo Mojo, DJ Colette 등의 현재 진행형 트렌드를 만나고 있다. 비록 아무 Friday Night에 이들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적으로 예전의 환상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기대와 행복을 감추지 못한다. 문제는 이런 기분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이냐가 아닐까 한다.

      제기할 문제점은 수도 없이 많다. 무차별 적인 스타 DJ들의 방한, 우리 클러버들이 댄스음악 문화를 대하는 모습들, 국내 DJ들의 양성과 그들을 향한 관심 등등. 하지만 필자는 당당하게 혹은 비겁하게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버리겠다. 핑계 거리는 많다. 필자는 한국 전자음악 댄스 문화에 깊이 연관된 사람도 아니며 민감한 트랜드 정보통도 아니기에 주제넘게 이 자리에서 뭐라고 할말이 없다. 진정으로 댄스 신을 즐기고 사랑하는 이라면 나름대로의 한마디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여러분 주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한마디를 해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현재의 신을 바라볼 때 외래문화와 우리 문화가 섞이는 그 하이브리드 현상 이외에 항상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수면으로 떠오를 때 걸리는 홍역을 또 다시 겪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의 전자 댄스 음악 신의 분위기를 볼 때 일단 2000년도 이후의 모습은 하나의 거대 산업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점점 거대한 공룡 혹은 괴물로 변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 좀더 자세히 말하겠다) 단지 그것이 너무나 살벌하고 무섭게 느껴질 뿐이다. 마치 졸업식장에서 정든 친구를 떠나 보내는 마음과 뒤섞이며 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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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즈음에서 블링 독자들에게 영화 한편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레이브씬을 다룬 Groove란 영화다. 몇 달 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이 영화가 한국에도 소리 없이 (적어도 필자에게는) 상륙해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 제목 하여 파티는 시작되었다. 그 동안24 Hour Party People, Modulations, Hey DJ, Midnight Summers Rave등의 결코 적지 만은 않은 숫자의 전자음악 신 관련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현재 진행형 언더그라운드 문화라는 가정하에) 이 영화야 말로 레이브의 에센스를 정말 솔직하고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다고 필자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영화를 본다면 꼭 사운드에도 신경 써주기 바란다. 파티는 시작되었다soundtrack은 그저 좋은 댄스 음악의 나열이 아니라 오히려 영화와 한 몸이 되어 일종의 VIBE를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왜 이 인간이 클럽 얘길 하다 갑자기 레이브 얘기로 빠져버리나. 물론 레이브와 클러빙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주로 우리가 접하는 파티 이벤트는 클러빙에 가깝고 레이브의 요소들이 올망졸망 뒤섞여 있는 형태다. 하지만 클럽의 메카인 이비자의 초기 모습은 60년대 이후 남아있었던 히피 찌꺼기들의 보금자리였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히피문화와 레이브 문화를 직접적으로 연결 시키기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전쟁에 반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젊음과 인생을 향유하는 점에서 둘은 알게 모르게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발레릭(Balearic- 이비자가 속한)이라는 뿌리를 나누고 있는 클러빙과 레이브 문화 또한 어딘가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굳이 칼로 자르듯 둘을 다르게 보고 싶지도 않다. 이 둘의 차이 또한 앞으로 길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즘에서 접어두고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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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티는 시작되었다는 하루 밤의 평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경험을 다루고 있다.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깊이는 없을 지라도 레이브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다. PDA, e-Mail 등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벤트를 알리고 고전적인 인쇄 매체인 플라이어를 통해 파티 장소를 숨바꼭질 하듯 찾아가는 모습들. 하나씩 챙겨가는 레이브 장난감과 소품들.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 중성적인 유니섹스의 문화. 처음 보지만 오랜 친구 같은 타인의 모습들. 동심으로 회귀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 마약과 술을 필요로 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모습들. 타인과의 덧없는 순간과 교감. 마지막으로 PLUR와 VIBE. 여기까지가 이 영화가 보여주는 바로 그 모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들은 John DigweedHeaven Scent와 함께 보는 이의 몸을 녹아 내리게 한다. 직접 보고 느끼길 바란다. 댄스 음악 문화에 관심 있는 이에게는 분명 좋은 소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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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과 내가 속해있는 공간이 하나됨을 느끼며 희열 감 또는 행복을 느낄 때 우리는 이것을 VIBE라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레이브의 모토인 PLUR를 비로소 알게 된다. Peace, Love, Unity, Respect의 약자로 음악과 춤을 통해 내 마음의 평화를 찾고 나를 사랑하고 남을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됨을 느끼며 비로서 과 세상을 존중하게 됨을 지칭한다. 얼마나 매력적인 모토인가. 출퇴근 길 교통 대란 속 존재하지 않는 양보, 이제는 대중 언어가 되어 버린 왕따, 리플을 통한 대대적인 마녀사냥 등등 관심과 배려가 무색한 이 치열한 삶 속에 PLUR란 한번 즘 돌아볼 만한 개념이다. 우리가 지금 찾아가고 있는 클럽과 레이브는 분명 이성에게 작업을 걸거나 트렌드를 앞서 가는 를 뽐내고 증명할 수 있는 것 혹은 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벤트 그 이상일 것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듯싶다. 다만 Paul Van Dyk의 이 말 한번 즘은 음미해 보자.

종교는 사람을 갈라놓지만 댄스 음악은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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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황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고 슬슬 전자 댄스음악이라는 이 외래 문화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궤적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보려 한다. 이 여정의 본격적인 시작은 다음 호로 미루고 들어볼 만한 몇몇 레이브 Anthem의 소개와 함께 키보드에서 손을 때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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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VE Anthem Top 5 (절대적인 기준에 따른 것은 아님을 밝힌다)




Heaven Scent by Bedrock (영화 Groove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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