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기록 – 비인두암 항암 치료 후 증상들
EBV 바이러스로 인한 비인두암 3기와 폐 전이 의심으로 항암 치료를 받은 지 각각 7년, 5년이 지났다. 현재는 일상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불편한 후유증들이 남아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일상에 주는 불편함은 꽤 크다. 병원에서는 “치료법이 없다”거나 “견디는 수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결국 스스로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심한 증상 몇 가지를 기록해 본다.
항암치료 설계:
- 비인두암 3기: 시스플라틴 항암 7회 + 토모세러피 방사선 33회
- 폐 전이 의심: 시스플라틴 + 5-FU 6세트
1. 손과 발의 신경통
항암 치료 이후 손발이 마치 스티로폼처럼 마비된 느낌이 계속된다. 마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은 여전히 느껴진다. 따끔거림, 저림, 찌릿함 등 다양한 통증 감각이 함께 나타난다. 의사 말로는 항암제로 손상된 신경이 다시 살아나면서 꼬여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한다.
뉴론틴(Neurontin)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있지만 약을 먹어도 마비된 느낌은 그대로이며 통증이 완전히 가시진 않는다. 약을 안 먹으면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깨기도 한다. 초기엔 키보드를 치거나 단추를 채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심할 때가 10이었다면 지금은 6.5 정도? 이 증상은 사람마다 다르다. 평생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2. 후비루 증상
비인두에서 24시간 끊임없이 점액이 흘러나온다. 가끔 가래도 섞여 나오는데 그 양과 끈적임이 일반적인 비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특히 식사할 때가 괴롭다.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면서 점액 덩어리가 목에 걸려 이물감을 느끼거나 못 삼키거나, 귀까지 막히는 느낌이 든다. 방사선 치료로 인해 침샘 세포가 많이 손상된 것도 한몫한다. 그래도 항암 직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상의 불편함을 크게 하는 요인이다.
점액은 뒤로 넘어가 목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가래 뱉듯이) 킁킁, 컥컥하면서 ‘역기침’을 하며 뱉어야 한다. 묽은 상태면 쉽게 뱉을 수 있지만 끈적하고 쫀득해지면 기침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다. 심할 땐 가래가 목에 딱 달라붙어 강하게 기침해야 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점막이 상처 나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한다.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증상이 심해지며 반대로 잠을 자거나 충분히 휴식하면 조금 완화된다.
코세척도 약간의 도움이 되지만 비인두 깊은 곳까지 식염수가 닿지 않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증상은 ‘골짜기 뒤편’에서 발생하는데 코세척으로는 ‘골짜기 앞부분’까지만 닿는 느낌이다.
3. 청각 상실 및 귀 막힘 증상
비인두암 부위에 집중적으로 방사선을 쏘면서 한쪽 귀의 청력이 점점 나빠졌다. 복구 방법은 없고 앞으로도 점차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저 최대한 천천히 악화되길 바라라고 한다. 결국 보청기를 착용했다. 하지만 보청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보청기의 세계는 또 다른 차원이더라.
특정 주파수에 대한 청력 손실도 있더라. 나는 저음은 비교적 잘 들리지만 고음에는 반응이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타이머의 알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또 피로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양쪽 귀 모두에 귀 막힘 증상이 나타난다. 멀쩡한 쪽 귀는 휴식을 취하면 나아지지만 보청기를 끼고 있는 쪽은 이야기가 다르다. 고막에 튜브를 삽입해 두었는데 시간이 지나 튜브가 제 역할을 못하면 귀 안에 물이 차기 시작한다. 삼출성 중이염이다. 물이 빠질 길이 없어 결국 이비인후과에서 튜브를 제거하고 고막을 다시 절개해 물을 빼고 새 튜브를 삽입해야 한다.
이 과정이 크게 아프진 않지만 귀 안의 물을 빼는 ‘석션’ 소리는 여전히 공포다. 귀 안에서 울리는 그 강한 소리에 매번 몸이 저절로 떨린다 (옛날엔 눈 감았었는데 요즘은 그냥 카메라 화면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는 편이다 ㅎㅎ).
4. 갑상선과 혈액 이상
항암치료의 직접적인 후유증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치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상선 이상과 혈액 진다증을 겪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는 증상이 아닌 확실한 ‘병’이다.
갑상선 이상으로 인해 피로감이 두 배로 느껴진다. 면역력 회복도 더딘데 갑상선 문제까지 겹치니 일상이 더욱 힘들다. 여기에 혈액 진다증까지 동반돼 피로가 심할 때는 환을 먹곤 하는데 또 이런 진액 물들이 혈액 진다증에는 좋지 않다고 한다. 결국 두 질환의 균형을 맞추며 생활하는 게 마치 외줄 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적당히 운동하고 충분히 휴식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이 항상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혼자 걸을 때는 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과 함께 걸을 때는 일정 시간 이후 그들의 템포를 따라가기 살짝 어려운 수준이다.
5. 마무리
이 외에도 수많은 병과 증상들이 있지만 그중 특히 힘든 부분들만 정리해 봤다.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 가며 찾아오는 건 그냥 참고 넘기고 역류성 식도염도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방사선으로 완전히 녹아버렸던 치아들도 임플란트 덕분에 어느 정도 회복됐다.
내 하루는 공복에 갑상선 저하증 약과 손발 신경통 완화를 위한 뉴론틴을 먹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다음엔 샤워하면서 자는 동안 쌓였던 비인두의 염증을 뱉어내고 나서야 하루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꽤나 불편한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맞다, 불편한 일상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항암치료 중이었던 시간은 정말 지옥 같았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아니, 돌아가지 말아야 할 지옥. 그 지옥을 지나 지금 이 정도 증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감사한다.
모든 증상을 이겨내려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항암 이전의 일상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해야 한다. 증상이 심해질 땐 언젠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좋아질 땐 더 크게 기뻐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게 진정 이 세상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뉴노멀'이다.
물론 아직 불편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못 먹던 음식을 다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으며, 예전처럼 입안과 목의 구내염 및 화상 때문에 말도 못 하고 물조차 삼키지 못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꿈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여전히 불편함은 있지만 고통 없이 일상을 보내며 맛집도 가고, 여행도 다니며 이전에 즐기지 못했던 것들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 지옥생활을 떠나 일상에 무임승차 한 듯 쾌속하고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다. 그리고 항암 이전의 일상에서 가질 수 없었던 어느 정도의 정신적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떨쳐버릴 수는 없다. 몸이 불편하면 더 예민해지기 때문에. 특히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굉장히 커서 갈등이 발생할 땐 웬만하면 그냥 바보가 된 척 넘긴다. 속으로는 ‘ㅈ까라’ 하면서. 불필요한 잡음은 최대한 줄이려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걸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이 내 고통과 불편함을 완전히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아야 한다. 같은 경험을 한 환우들조차 그 정도와 느낌이 다르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오죽할까? 그래서 그냥 혼자 안고 가야 한다. 다만, 누군가 나를 배려해 주면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착한 사람들을 만나면 이전보다 더 특히 감사하다.
물론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아직 참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다. 나는 부처가 아니니까. 하지만 매일 조금씩, 나만의 새로운 세상을 가꾸며 살아가길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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