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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무이워에서 버스를 타고 사우스 란타우로드를 따라 부이오로 가고 있는 유덕화

지난번 무이워(Mui Wo)에서의 여정이 이어진다. 영화 열혈남아 속 유덕화(소화)와 장만옥(아화)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영화의 과거와 '현실의' 현재가 교차하는 기묘한 감각에 빠져들게 되었다. 이번 목적지는 무이워에서 조금 더 남서쪽으로 내려간 부이오 (Pui O). 영화의 잔상을 간직한 한적한 곳, 바로 아화의 가게가 위치한 곳이다.

🎬 무이워에서 부이오까지 – 영화 속 공간의 의미

이 날의 여정, 무이워에서 부이오까지

사실 열혈남아의 전개 속에서 홍콩 도심과 란타우섬 공간의 대비는 명확하지만, 란타우섬의 무이워, 부이오, 타이오가 각각 구분되어 묘사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촬영지로 나누어 보면 이 세 공간은 영화 속에서 각기 다른 감성을 품고 있다. 

🚏 무이워(Mui Wo) – 선택과 기다림의 공간

무이워 공중전화 키스신

  • 홍콩 도심과 란타우섬을 연결하는 경계선. 안식처이자 도피처인 부이오로 가기 위해 혹은 그 곳을 떠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 이로 인해 강렬한 감정이 교차하며 선택과 갈등, 이별과 기다림이 공존하는 공간. (란타우섬 배경의 격정적 신은 모두 이곳에서 발생한다 - 공중전화 첫 키스, 선착장에서의 초조한 기다림과 옛 연인과의 조우 등)

🌿 부이오 (Pui O) – 평온하지만 영원할 수 없는 안식처

소화의 가게 장면

  • 영화 속 두 사람이 가장 행복했던 공간. 격정적인 홍콩도심, 동적인 움직임으로 인한 벅찬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무이워와는 달리, 부이오는 조용하고 이상적인 일시적 안식처. 평온하지만 결국 떠나야만 했던 곳.

더 자세한 경로. 한 9,10정거장 정도다

영화 속 그들이 오갔던 경로를 따라가면서 그 길 위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무이워에서 마주했던 시대의 변화처럼 부이오에서도 내가 본 영화와 또 다른 풍경을 보게 될까? 혹은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이 길


| 🚌 무이워에서 부이오로가는 버스

무이오 버스 종점의 3M 버스

3M 버스를 타고 부이오로 향한다. 약 15분이면 닿을 정도로 멀진 않다. 부이오의 로와이췬(Lo Wai Tsuen) 정류장에서 내릴 예정이다. 극 중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기 위해 버스 타고 지나다니던 루트다. 그리고 초반부, 장만옥이 홍콩 도심으로 가기 위해 무이워 페리 선착장으로 향할 때도 지났을 길.

열혈남아 속 옛날 1층 버스 모습.

영화 속에서 유덕화가 타던 버스는 이제 더 이상 없다. 영화가 나온지 벌써 5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당시의 낡고 투박한 버스는 사라지고, 최신식 버스가 이 길을 달린다. 2등으로 탑승하게 되어 뷰가 제일 좋은 2층 맨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를 타고 무이워 마을을 벗어난다. 뭔가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버스만 바뀐 것이 아니다. 영화 속 무이워, 부이오, 타이오—그 모든 공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달라졌을 것이다. 이 세계의 아화와 소화는 영화에서 보여진 것 이상 이 루트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지나다녔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풍경을 본 것일까? 그래도 란타우섬은 자연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라 그 시절과 도심만큼 크게 변하진 않았을 거라는 망상을 해 보았다. 다만 1980년대 이 루트가 생기며 오전 6시 첫차 출발이라는 점은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산속 차로 진입. 모든 도로가 1차로다. 

영화속 버스를 탄 유덕화

영화 볼때도 꽤나 흔들리길래 옛날이라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도 꽤나 덜컹거린다. 도로가 좁다 보니 좌측의 나무들이 버스에 부딪혀 후두둑! 후드득! 소리가 난다. 처음엔 약간 스릴도 있는 것이, 꽤나 날 것스러운 도로와 승차감의 경험을 느꼈다. 

부이오 가는 길

측면뷰로 보면 그 덜컹거림을 더 느낄 수 있다. 어느 정도 고도로 올라온 도로를 지나다보면 얼핏 보이는 먼발치의 풍경이 아찔해 보일 때도 있다.

영화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 뷰는 다르지만 측면도 잠깐 찍어 보았다. 영화속과 실제 여행의 밤낯 시간대가 완전히 다른건 아쉽지만 시종일관 흔들리고 덜컹거리는 버스 라이드 때문인지 꽤나 몰입할 수 있었다. 그냥 녹색 자연 속 좁게 뚫린 산길 도로의 연속이다.

무이오에서 부이오로 버스타고 가는 길 (고화질임!)

사우스 란타우 로드(S.Lantau Rd.) 길을 빠르게 찍은 고화질 영상이다. 그가 이 길을 지나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순수히 사랑만을 향해 가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결국 떠나야만 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야 했던 크나큰 무게가 얹힌 길이었을까?

열혈남아, 가게 앞에서 내리는 유덕화(소하)

1970년대부터 90년대 사이 부이오 Pui O 해변을 중심으로 교통과 관광 개발이 이루어지며 1983년 무이 워(Mui Wo)와 부이 오(Pui O)를 종점으로 하는 버스 노선이 생겼는데 그게 이 루트인 것 같다. 

10분 조금 넘는 우당탕탕 사우스 란타우로드 버스 라이드가 끝나고 로와이췬(Lo Wai Tsuen)에서 내린다.

내리자마자 장만옥의 가게 건물이 얼핏 보인다

영화 속의 가게 바로 건너편 정류장은 실제로는 없었다. 그래봤자 장만옥의 가게까지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심지어 얼핏 보인다. 나무 옆 건물 바로 옆이다. 처음 오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참 익숙한 풍경이기도 했다.


| 🏠 영화속 아화의 가게

열혈남아

이 공간은 두 사람의 삶이 교차하는 유일한 지점이다. 아화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지만 결국 도심으로 나가지 못하고 여기에 머무르고, 소화는 홍콩도심을 떠나 여기서 머물고 싶었을 지도 모르지만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따라서 영화 속 현실에서 두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인 셈이다. 이를 반영하듯 부이오에서 촬영된 장면들(소화의 가게, 버스정류장 이별)은 평온하고 잔잔하며 정적이다. 실제 이 마을 또한 그런 느낌이다. 뭐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내가 내린 정거장은 오른쪽 BMW가 지나고 있는 위치 즈음이다. 건물은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영화와 뭔가 싱크를 어느 정도는 맞추고 싶어서 유덕화가 내린 곳으로 추정되는 지점까지 쭉 걸은 후 뒤돌아 건물로 다시 걸었다. 영화에서의 잔잔한 시골 마을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 지점에서 유덕화가 길을 건넌 것처럼 나도 건너 본다. 

그리고 그 건물 정문 앞까지 가본다. 낡은 벽돌과 바뀌어 버린 색상, 하지만 그 형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마치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짧았지만 강렬했던 것처럼 이 공간도 변했지만 원형의 흔적은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 🏛️ 건물의 역사 속 흔적

1980년에 찍은 것으로 기록되는 건물의 원래 모습 ❘ 출처: www.hkmemory.hk
1990년 12월27일자 화교일보에 호텔 개관 축하 기사가 담겨 있다.

이 건물의 원형은 70년대 후반 란타우섬 관광 개발의 흐름과 함께 1990년 즈음 문을 연 것으로 추정되는 해풍주점(海風酒店  Sea Breeze Hotel)이라는 곳이었다.

란타우섬 부이오(Pui O), 수이하우(Shui Hau) 및 인근 지역의 문화 및 역사 연구 보고서 ( Cultural and Historical Studies of Pui O, Shui Hau and Neighboring Areas on Lantau )

찾아본 기록들에서 호텔&식당 관련 정보가 살짝 달라 정확한 년도를 파악하긴 힘들었는데 대략 아래와 같다. 

✔️ 홍콩대학교 디지털 라이브러리 – 해당 건물의 등록 사진이 1980년으로 기록됨
✔️ 홍콩 화교일보 (華僑日報)1990년 12월 27일자 기사에서 Sea Breeze Hotel (해풍주점) 개관 축하 기사 게재
✔️ 란타우섬 부이오(Pui O), 수이하우(Shui Hau) 및 인근 지역의 문화 및 역사 연구2022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Sea Breeze Hotel & Restaurant이 1990년에 개관한 것으로 기록됨
✔️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SCMP)1978년에 건물이 처음 지어진 것으로 보도됨 (출처)
✔️ 영화 열혈남아 개봉1987년, 촬영 당시 해당 건물은 이미 존재했음

영화 속 시브리즈 호텔
gagm 영화 덕후의 1998년 방문기 사진; 현재 이 사이트는 열리지 않는다 (gagm.net)

인터넷의 흔적으로 보면 최소 1998년에 찍힌 사진이 있어 최소 그 때까지는 계속 명맥을 유지했음을 알 수 있다.

LIS는 자연친화적 교육을 앞세우고 있는 듯 하다. 저기는 분명 학교 근방에 있는 Pui O 해변일 것이다 ❘ 출처: LIS 공홈

이후 어느 시점부 방치되었다가 Lantau International School Pui O Campus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2008년으로 추정). 란타우섬의 자연환경 속 국제학교라니!

뭐,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여행전 열혈남아 촬영지 찾아보기 포스팅 참고


2024.07.26 - [ART & DESIGN/건축 Art, Architecture & Planning] - 왕가위 감독 데뷔 작 <열혈남아>의 홍콩 란타우섬 촬영지 찾아 본 이야기 ft.인터넷

 

왕가위 감독 데뷔 작 <열혈남아>의 홍콩 란타우섬 촬영지 찾아 본 이야기 ft.인터넷

올해 갑자기 10년 묵은 마일리지가 다 소멸되게 돼서 강제 주말 해외여행 계획들을 잡게 되었는데, 지난번 후쿠오카 여행에서 내 몸 상태를 망각한 채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2일 차 돌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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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 모습과 작은 해프닝

지금은 이런 모습이다. 도심이긴 하지만 나도 어릴적 이런 국제학교를 다녔었는데 갑자기 그 시절 생각이 들어 향수를 더 자극했다. 아무튼 그때는 저 대문이 없었을 것이고, 두 캐릭터를 꿈같은 현실이자 안식처로 연결해 주는 열린 공간이었다.   

영화 열혈남아
열혈남아 속 장만옥(아화)
영화 열혈남아

시골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던 아화, 이 안식처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싶었던 소하. 

열혈남아

이곳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렇게 서로가 닿을 수 있었던 나름의 최선의 공간으로서 작용한다.

탐방 와중에 해프닝이 있었는데, 학교 건물 안에서 관계자분이 나와 굳게 닫힌 문 틈살 사이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여기서 사진은 왜 찍고 있나요? 출근할 때 아까 버스에서부터 봐 왔는데 거기서도, 내려서도 계속 사진을 찍고 있는 당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근데 여기 학교 앞에서도 사진을 찍고 있는데 너 뭐 하는 사람이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영화 속에서 건물의 관계자에게 소하는 아화를 물었고, 나는 현재의 건물관계자에게 영화를 말했다.

"미안하다. 나쁜 의도는 없다. 왕가위 감독 열혈남아 촬영지 온거다. 여기가 그 Sea Breeze Hotel 터라고 알고 있다" 

쏼라쏼라...

그녀는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모든 오해가 풀렸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너의 추억 여행이구나. 알겠다. 근데 그 호텔은 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ㅇㅇ 알고 있다. 그래도 와보고 싶었다. 이제 충분히 보았으니 난 떠날 거고,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여행이 되길.'

열혈남아

생각해 보니 나야 영화 촬영지에 취해 있는 건데, 학교 앞에서 사진 찰칵찰칵 찍는 것을 보는 학교 관계자에게는 이상하게도 보일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혈남아, 가게 앞에서 스는 아화와 소하가 탄 버스

이걸로 장만옥(아화)의 가게 탐방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여기까지 온 김에 건물만 보기 아까워서 좀 더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이후는 다음 포스팅에서..


| 📚 시리즈의 지난 포스팅들:

 

왕가위 감독 데뷔 작 <열혈남아>의 홍콩 란타우섬 촬영지 찾아 본 이야기 ft.인터넷

올해 갑자기 10년 묵은 마일리지가 다 소멸되게 돼서 강제 주말 해외여행 계획들을 잡게 되었는데, 지난번 후쿠오카 여행에서 내 몸 상태를 망각한 채 과도한 일정을 소화하다가 2일 차 돌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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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타우섬에서 만난 <열혈남아>의 여운과 현실: 촬영지 탐방기_01

1989년, 유덕화와 장만옥이 주연을 맡고, 왕가위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 는 당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시절, 관객들은 오우삼의 같은 화려한 액션과 낭만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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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타우섬에서 만난 <열혈남아>의 여운과 현실: 촬영지 탐방기_02 Mui Wo 선착장

영화 트레일 첫 번째 포인트인 무이 워 Mui Wo에 도착했다. | 열혈남아 란타우 트레일의 시작Mui Wo 무이 워는 광둥어로 '메이 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북쪽의 Silvermine Beach 실버마인 해변과 함께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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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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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중

영화 <열혈남아> 트레일 첫 번째 포인트인 무이 워 Mui Wo에 도착했다. 

| 열혈남아 란타우 트레일의 시작

사우스 란타우 로드는. 양방향 한 차선 씩만 있는 꼬불꼬불한 2차로 도로다.

Mui Wo 무이 워는 광둥어로 '메이 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북쪽의 Silvermine Beach 실버마인 해변과 함께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던 곳이다. Tung Chung 퉁청 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홍콩 도심에서 이어지는 란타우섬의 각종 휴양지들로 이어주는 첫 관문이었다.

열혈남아, 장만옥을 기다리는 유덕화의 뒷모습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가 홍콩 도심에서 오가던 페리의 출발지이자 종착점이다. 장만옥의 극 중 고향인 타이오 Tai O로 가는 첫 버스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 무이워 Mui Wo 버스 정류장

영화 포스터

<열혈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공중전화 키스신의 포스터 촬영지다. 아마도 수많은 영화팬들이 여기를 방문했을 것이다. 비록 그 공중전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추억을 기리기 위해 가는 곳. 

무이워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자전거들이었다. 불과 5천여명이 산다는 (그것도 2012년 기준) 작은 지역이니 주요 교통수단일만 하다. 현지 주민들 뿐 아니라 여행객 대여용으로도 보이는 수많은 자전거들의 주차장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렸을 적 이곳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하도 오래전이라 이런 기억이 거의 없다.

열혈남아 무이워 선착장

무이워 선착장과 버스정류장은 짧은 거리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다. 앞서 말했듯 홍콩과 란타우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인 만큼 유덕화에게는 비정한 거리를 벗어나 평온한 안식처를 찾는, 장만옥에게는 작고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으로, 커플의 감정선의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을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
무이워 버스정류장

다행히도 그 뒤로 보이는 굴곡진 계단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건물의 형태는 옛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왔지만, 주변에서 진행 중인 인프라 공사로 다소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4박 5일의 홍콩 여행 내내 비가 많이 왔지만 이 시점의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해서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번져 나왔다. 그래서 나와서 한 컷 더 찍고 ㅎ, 암튼 이곳은 영화에서 너무나 자주 봤던 장소라 익숙함이 먼저 다가왔다.

 

| 영화 속 선착장 페리 출입구

열혈남아 속 선착장 페리 출입구
영화의 주무대가 되었던 선착장 좌측 출입구.

영화 속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선착장 좌측 출입구. 배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오다 뒤를 바라보면, 유덕화와 장만옥이 서로를 기다리던 그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기둥은 영화에서 자주 봤던 것 같아서 같이 나오게 찍었지만,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센트럴에서 온 나는 오른쪽 출입구로 나왔지만, 영화 속에서는 항상 이 왼쪽 출입구가 등장한다.

| 공중전화 박스 터를 찾아서

열혈남아 하이라이트

그리고 키스신.

열혈남아 키스신

<열혈남아>의 팬이라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찾을 그 키스신의 공중전화박스. 

키스신의 공중전화박스 위치 추정

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한 그 공중전화 박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곳에 서면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위치를 대략 추정해 보면,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정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신사업자가 바뀌고, 공중전화의 색깔도 주황색에서 파란색으로, 위치도 조금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이워 촬영지 촬영반경 및 키스신 동선
2016년 기준의 구글스트리트 뷰

2016년의 구글스트리트 뷰에서는 저 PCCW 파란 색의 공중전화박스가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위치조차도 약간 애매해 보인다.  

영화 속 공중전화 박스

영화 속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진 인도 코너와 비교해 보면, 공중전화 박스가 조금 더 내려간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카메라의 구도나 렌즈 왜곡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16년 PCCW 박스와 영화 속 HKT 박스 위치가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1983년 버스 터미널 사진. 영화속 커플이 타고다니던 버스가 저 1층짜리다. 출처: Leroy W.Demery, Jr.

70,80,90,00년대 옛 무이오 버스 터미널 사진을 한 시간 정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그 오렌지 공중전화박스를 담은 사진은 찾지 못했다. 위 1983년 버스 중 타이오 행 1번 정류장이 가장 끄트머리라 좀 만 더 오른쪽 샷을 담았더라면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증거나 단서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쉽다. 

홍콩텔레콤은 2000년에 인수되었다.

'54년에 홍콩에 처음 공중전화 생기고 특히 7,80년대에 들어 저변(공중전화박스) 인프라를 확장 시켰다고 하니 저 1983년 사진에 공중전화박스가 존재했을 만도 한데 말이다. (영화는 1989년)

홍콩텔레콤 로고와 오렌지 색상의 영화 속 공중전화

참고로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오렌지 공중전화 박스는 홍콩텔레콤 시절 거고, 2000년 이후로 목격되다가 사라진 파란 색 공중전화박스는 PCCW 것이다.

선착장의 앞의 다른 공중전화 박스

선착장 앞에 있는 다른 공중전화 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영화 속 공중전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형태는 같아도 색상과 로고가 바뀌었지만, 이곳에서 그나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공중전화 박스 추정 위치에 서서, 버스 정류장의 구조물들을 바라보면 그 허름한 모습 때문에 옛 흔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아쉬움을 다시 한번 달래준다. 이따가 저기서 버스 타고 장만옥이 일하던 부이 오로 향할 예정이다.  

|무이워 개선 작업으로 인한 변화

키스신 공중전화 박스 터를 지날 때의 느낌. 무이 워의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라 공사가 한창이다.

무이워 개선작업 안. 출처: cedd.gov.hk

이 공사는 무이워의 현대화 및 편리성 강화를 위해 계획된 것으로, 남북 워터프런트 산책로, 광장조성, 교통 개선, 공공시설 재배치 및 신축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23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약 4.5년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공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가 알던 <열혈남아> 속 무이 워 모습은 아마도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영화 속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영화 속 무이워 촬영지 지분은 배경까지 잡더라도 위 노란 사각형 딱 저 정도다) 

| 선착장 주변 산책 한바퀴

사이니지

영화 속 무이워 선착장/정류장이 등장하는 횟수도 많고 그만큼 임팩트도 강하지만 실제 촬영 장소 반경은 아주 좁아 촬영지 순례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대략 100미터 정도만 걸어도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수준인데 물론 그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그 날 동선

계획보다 일찍 온 덕분에, 아침 식사 장소를 찾으며 선착장 주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영화 속 버스정류장 뒤의 배경이었던 건물도 좀 자세히 살펴보고,

그 건물들 옆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경치도 느껴보고,

공삿길 위로 구도를 잡아보니 야자수들을 보며 열대 지방에 온 느낌도 들었고,

무이워 페리 피어 로드 쪽으로 들어가니 두기봉 감독의 액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집약적인 홍콩 감성의 건물 배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택시는 빨간색인데, 이곳 란타우섬에서는 파란색 택시를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에 주차된 것처럼)

홍콩의 택시 3종. 출처: td.gov.hk

란타우섬에서만 운행하는 이 파란 택시들은 현재 섬 전체에서 '24년 4월 기준 75여 대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빨간 도심 15,250데, 녹색 뉴테리토리 2,838대) 다 고유의 운행 영역이 있는데 홍콩국제공항, 디즈니랜드, 홍콩 쪽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리지는 예외라고 한다.

홍콩의 간판과 도로 사인들이 건물 배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성은 언제는 나를 매료시킨다. 오래전부터 홍콩은 (조금 과장해서) 길을 잃을 수 없을 만큼 도로 표지판이 잘 배치된 도시로 평가받았었다. 

코너 블록을 한 바퀴 돌면서 보니 공사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런 화살표 전광판 보니 또 괜찮아 보이고,

맑은 하늘아래 따듯한 오렌지 색조가 돋보여서 그랬는지 피자가 왠지 맛있을 것 같았던 음식점.

구글 지도에서 미리 보았던 바다를 바라보는 중국과 레게 느낌이 뭔가 대조적이었던 차이나베어 음식점. 방문 시 문은 닫아 있었다. 

우와... 그리고 또다시 마주한 자전거들. 공사 때문에 다 밀려나서 이런 것 같은데 빡빡한 홍콩의 도심 건물 분위기가 자전거 공간에서도 느껴졌다. 

블록을 돌며 보이는 무이워 선착장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이 여유로운 산책을 마무리해 갔다. 

 

| 홍콩 로컬 바이브, 카페 파라디소에서 아침식사

구글 지도에서 근처에 실시간으로 열려 있는 곳을 찾아보니, 이름부터 시네마 천국을 연상케 하는 카페 파라디소 Cafe Paradiso가 눈에 띄었다. 느낌이 왔다. 이번 여행에서 홍콩 특유의 빡빡한 느낌의 건물 사진들을 특히 많이 찍었는데 그렇게 찍은 저 핑크색 아기 돼지같은 건물 아래에 위치했다.

요렇게. 카페는 거리 쪽으로 작은 2인용 테이블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위 사진 같이 허~한 느낌이 들어 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애매~해 보여 한 번 다가가 보았다. 

오픈~

냉방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었고, 작고 소심한 "오픈" 사인이 걸려 있었다. 오전 8시 30분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테이블에 영국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인테리어와 공간이 아주 작고 귀여운 카페였다. 

아침부터 날이 더웠던 터라, 상큼한 레몬 프레시 소다(설탕 없이!)와 간단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먹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온 손님들로 작은 공간이 금방 채워졌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에서, 동양과 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옛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홍콩의 로컬 바이브가 참 좋았다. 요즘 홍콩 도심은 너무 대륙인들에 의해 잠식되어 많이 변했지만, 이곳 무이워의 조용한 카페에서 옛 홍콩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힐링이 되었다. 이 경험이 너무 좋았기에, 나중에 이 카페에 대해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다. 만약 이 카페가 평행우주 선상에서 열혈남아의 타임라인 속에도 존재했다면 분명 유덕화와 장만옥도 이 곳에서 이국적인 자국의 홍콩 바이브를 흠뻑 느끼며 자신들이 아지트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다.

카페를 나와 건너편을 보니, 또 다른 홍콩 특유의 건물, 혹은 아파트? 무이워에서의 아침은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 다시 촬영지 순례: Pui O 부이오를 향해 출발

선착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눈앞에 펼쳐진 복합적인 바다 뷰가 좋았다. 

또다시 마주친 수많은 자전거들이 아까 정박해 있던 페리가 떠나면서 더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차이나 베어를 지나 멋진 느낌의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울창한 자신감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나무의 위용을 보니 이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공적인 마천루 대신 자연이 만들어낸 랜드마크 같았다. 검색해 보니 아마 망고 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나무 바로 옆에는 맥도널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카페 파라디소의 평온함과는 달리 이곳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바퀴 돌아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그 루트를 따라 부이 오 Pui O로 떠날 시간이다. 9시 20분 출발 버스를 타기 위해 9시 16분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3M 번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운행되지만, 대략 아침 6시부터 밤 11시 45분까지 나름 좁은 간격의 시간대로 운행된다. 주말과 평일의 스케줄도 좀 다르지만, 구글지도나 아래 뉴란타우버스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M 말고 다른 번호들도 간다)

 

3M   梅窩碼頭 > 東涌站巴士總站

31 平日車資: $2.7,   假日車資: $5.4   地圖   巴士預計抵站時間 北大嶼山醫院(北行), 逸東邨美逸樓 [部份班次途經此站] 備註 全程行車時間約為 43 分鐘

www.nlb.com.hk

3M 버스의 종점은 퉁청 케이블카 버스 터미널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라 나와 또 다른 한 명의 승객뿐이어서 저 2층의 맨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노선을 보니, 퉁청 쪽에 Wong Ka Wai라는 지점이 있었다. 열혈남아의 감독인 왕가위 Wong Ka'r' Wai랑은 'r' 하나 차이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피식 웃기기도 했다

원래 부이오를 지나치려 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들르기로 했다. 하차 지점은 부이오 Pui O의 로와이춘 Lo Wai Tsuen이다. 유덕화가 실제로 내렸던 지점은 정식 버스 정류장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로와이춘과 선와이춘 Sun Wai Tsuen 사이다), 나는 유덕화가 내리기 직전 정류장에서 내려 장만옥이 일하던 (구) 시브리즈 레스토랑 Sea Breeze Restaurant이 있던 터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열혈남아, 무이워에서 버스타고 장만옥 만나러 가는 유덕화

영화에서 잠깐 보였던 저녁 신에서,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유덕화의 루트다. 영화 속 시절 버스는 1층짜리였지만 아무렴 어떠나, 길은 동일한 사우스란타우로드다. 가자고, 고!  

나중에 무이워 벗어나기 전 찍은 건데 고프로도 정면에 설치 완료. 마을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저 노랑 안전봉 밑으로 재배치함. 유덕화는 사이드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하는 구도는 아니지만 뭐 ㅎㅎ

아침 8시 14분에 도착해 9시20분의 버스를 타기까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이 워에서 경험한 생각지도 못했던 힐링과 로컬 바이브의 카페 파라디소, 그리고 맥도널드 옆 망고나무의 인상적인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종점에서 부이 오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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