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혈남아> 트레일 첫 번째 포인트인 무이 워 Mui Wo에 도착했다.
| 열혈남아 란타우 트레일의 시작
Mui Wo 무이 워는 광둥어로 '메이 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북쪽의 Silvermine Beach 실버마인 해변과 함께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던 곳이다. Tung Chung 퉁청 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홍콩 도심에서 이어지는 란타우섬의 각종 휴양지들로 이어주는 첫 관문이었다.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가 홍콩 도심에서 오가던 페리의 출발지이자 종착점이다. 장만옥의 극 중 고향인 타이오 Tai O로 가는 첫 버스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 무이워 Mui Wo 버스 정류장
<열혈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공중전화 키스신의 포스터 촬영지다. 아마도 수많은 영화팬들이 여기를 방문했을 것이다. 비록 그 공중전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추억을 기리기 위해 가는 곳.
무이워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자전거들이었다. 불과 5천여명이 산다는 (그것도 2012년 기준) 작은 지역이니 주요 교통수단일만 하다. 현지 주민들 뿐 아니라 여행객 대여용으로도 보이는 수많은 자전거들의 주차장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렸을 적 이곳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하도 오래전이라 이런 기억이 거의 없다.
무이워 선착장과 버스정류장은 짧은 거리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다. 앞서 말했듯 홍콩과 란타우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인 만큼 유덕화에게는 비정한 거리를 벗어나 평온한 안식처를 찾는, 장만옥에게는 작고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으로, 커플의 감정선의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다행히도 그 뒤로 보이는 굴곡진 계단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건물의 형태는 옛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왔지만, 주변에서 진행 중인 인프라 공사로 다소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4박 5일의 홍콩 여행 내내 비가 많이 왔지만 이 시점의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해서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번져 나왔다. 그래서 나와서 한 컷 더 찍고 ㅎ, 암튼 이곳은 영화에서 너무나 자주 봤던 장소라 익숙함이 먼저 다가왔다.
| 영화 속 선착장 페리 출입구
영화 속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선착장 좌측 출입구. 배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오다 뒤를 바라보면, 유덕화와 장만옥이 서로를 기다리던 그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기둥은 영화에서 자주 봤던 것 같아서 같이 나오게 찍었지만,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센트럴에서 온 나는 오른쪽 출입구로 나왔지만, 영화 속에서는 항상 이 왼쪽 출입구가 등장한다.
| 공중전화 박스 터를 찾아서
그리고 키스신.
<열혈남아>의 팬이라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찾을 그 키스신의 공중전화박스.
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한 그 공중전화 박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곳에 서면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위치를 대략 추정해 보면,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정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신사업자가 바뀌고, 공중전화의 색깔도 주황색에서 파란색으로, 위치도 조금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2016년의 구글스트리트 뷰에서는 저 PCCW 파란 색의 공중전화박스가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위치조차도 약간 애매해 보인다.
영화 속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진 인도 코너와 비교해 보면, 공중전화 박스가 조금 더 내려간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카메라의 구도나 렌즈 왜곡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16년 PCCW 박스와 영화 속 HKT 박스 위치가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70,80,90,00년대 옛 무이오 버스 터미널 사진을 한 시간 정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그 오렌지 공중전화박스를 담은 사진은 찾지 못했다. 위 1983년 버스 중 타이오 행 1번 정류장이 가장 끄트머리라 좀 만 더 오른쪽 샷을 담았더라면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증거나 단서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쉽다.
'54년에 홍콩에 처음 공중전화 생기고 특히 7,80년대에 들어 저변(공중전화박스) 인프라를 확장 시켰다고 하니 저 1983년 사진에 공중전화박스가 존재했을 만도 한데 말이다. (영화는 1989년)
참고로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오렌지 공중전화 박스는 홍콩텔레콤 시절 거고, 2000년 이후로 목격되다가 사라진 파란 색 공중전화박스는 PCCW 것이다.
선착장 앞에 있는 다른 공중전화 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영화 속 공중전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형태는 같아도 색상과 로고가 바뀌었지만, 이곳에서 그나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공중전화 박스 추정 위치에 서서, 버스 정류장의 구조물들을 바라보면 그 허름한 모습 때문에 옛 흔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아쉬움을 다시 한번 달래준다. 이따가 저기서 버스 타고 장만옥이 일하던 부이 오로 향할 예정이다.
|무이워 개선 작업으로 인한 변화
키스신 공중전화 박스 터를 지날 때의 느낌. 무이 워의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라 공사가 한창이다.
이 공사는 무이워의 현대화 및 편리성 강화를 위해 계획된 것으로, 남북 워터프런트 산책로, 광장조성, 교통 개선, 공공시설 재배치 및 신축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23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약 4.5년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공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가 알던 <열혈남아> 속 무이 워 모습은 아마도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영화 속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영화 속 무이워 촬영지 지분은 배경까지 잡더라도 위 노란 사각형 딱 저 정도다)
| 선착장 주변 산책 한바퀴
영화 속 무이워 선착장/정류장이 등장하는 횟수도 많고 그만큼 임팩트도 강하지만 실제 촬영 장소 반경은 아주 좁아 촬영지 순례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대략 100미터 정도만 걸어도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수준인데 물론 그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계획보다 일찍 온 덕분에, 아침 식사 장소를 찾으며 선착장 주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영화 속 버스정류장 뒤의 배경이었던 건물도 좀 자세히 살펴보고,
그 건물들 옆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경치도 느껴보고,
공삿길 위로 구도를 잡아보니 야자수들을 보며 열대 지방에 온 느낌도 들었고,
무이워 페리 피어 로드 쪽으로 들어가니 두기봉 감독의 액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집약적인 홍콩 감성의 건물 배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택시는 빨간색인데, 이곳 란타우섬에서는 파란색 택시를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에 주차된 것처럼)
란타우섬에서만 운행하는 이 파란 택시들은 현재 섬 전체에서 '24년 4월 기준 75여 대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빨간 도심 15,250데, 녹색 뉴테리토리 2,838대) 다 고유의 운행 영역이 있는데 홍콩국제공항, 디즈니랜드, 홍콩 쪽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리지는 예외라고 한다.
홍콩의 간판과 도로 사인들이 건물 배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성은 언제는 나를 매료시킨다. 오래전부터 홍콩은 (조금 과장해서) 길을 잃을 수 없을 만큼 도로 표지판이 잘 배치된 도시로 평가받았었다.
코너 블록을 한 바퀴 돌면서 보니 공사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런 화살표 전광판 보니 또 괜찮아 보이고,
맑은 하늘아래 따듯한 오렌지 색조가 돋보여서 그랬는지 피자가 왠지 맛있을 것 같았던 음식점.
구글 지도에서 미리 보았던 바다를 바라보는 중국과 레게 느낌이 뭔가 대조적이었던 차이나베어 음식점. 방문 시 문은 닫아 있었다.
우와... 그리고 또다시 마주한 자전거들. 공사 때문에 다 밀려나서 이런 것 같은데 빡빡한 홍콩의 도심 건물 분위기가 자전거 공간에서도 느껴졌다.
블록을 돌며 보이는 무이워 선착장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이 여유로운 산책을 마무리해 갔다.
| 홍콩 로컬 바이브, 카페 파라디소에서 아침식사
구글 지도에서 근처에 실시간으로 열려 있는 곳을 찾아보니, 이름부터 시네마 천국을 연상케 하는 카페 파라디소 Cafe Paradiso가 눈에 띄었다. 느낌이 왔다. 이번 여행에서 홍콩 특유의 빡빡한 느낌의 건물 사진들을 특히 많이 찍었는데 그렇게 찍은 저 핑크색 아기 돼지같은 건물 아래에 위치했다.
요렇게. 카페는 거리 쪽으로 작은 2인용 테이블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위 사진 같이 허~한 느낌이 들어 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애매~해 보여 한 번 다가가 보았다.
냉방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었고, 작고 소심한 "오픈" 사인이 걸려 있었다. 오전 8시 30분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테이블에 영국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인테리어와 공간이 아주 작고 귀여운 카페였다.
아침부터 날이 더웠던 터라, 상큼한 레몬 프레시 소다(설탕 없이!)와 간단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먹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온 손님들로 작은 공간이 금방 채워졌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에서, 동양과 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옛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홍콩의 로컬 바이브가 참 좋았다. 요즘 홍콩 도심은 너무 대륙인들에 의해 잠식되어 많이 변했지만, 이곳 무이워의 조용한 카페에서 옛 홍콩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힐링이 되었다. 이 경험이 너무 좋았기에, 나중에 이 카페에 대해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다. 만약 이 카페가 평행우주 선상에서 열혈남아의 타임라인 속에도 존재했다면 분명 유덕화와 장만옥도 이 곳에서 이국적인 자국의 홍콩 바이브를 흠뻑 느끼며 자신들이 아지트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다.
카페를 나와 건너편을 보니, 또 다른 홍콩 특유의 건물, 혹은 아파트? 무이워에서의 아침은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 다시 촬영지 순례: Pui O 부이오를 향해 출발
선착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눈앞에 펼쳐진 복합적인 바다 뷰가 좋았다.
또다시 마주친 수많은 자전거들이 아까 정박해 있던 페리가 떠나면서 더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차이나 베어를 지나 멋진 느낌의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울창한 자신감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나무의 위용을 보니 이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공적인 마천루 대신 자연이 만들어낸 랜드마크 같았다. 검색해 보니 아마 망고 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나무 바로 옆에는 맥도널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카페 파라디소의 평온함과는 달리 이곳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바퀴 돌아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그 루트를 따라 부이 오 Pui O로 떠날 시간이다. 9시 20분 출발 버스를 타기 위해 9시 16분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3M 번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운행되지만, 대략 아침 6시부터 밤 11시 45분까지 나름 좁은 간격의 시간대로 운행된다. 주말과 평일의 스케줄도 좀 다르지만, 구글지도나 아래 뉴란타우버스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M 말고 다른 번호들도 간다)
3M 버스의 종점은 퉁청 케이블카 버스 터미널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라 나와 또 다른 한 명의 승객뿐이어서 저 2층의 맨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원래 부이오를 지나치려 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들르기로 했다. 하차 지점은 부이오 Pui O의 로와이춘 Lo Wai Tsuen이다. 유덕화가 실제로 내렸던 지점은 정식 버스 정류장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로와이춘과 선와이춘 Sun Wai Tsuen 사이다), 나는 유덕화가 내리기 직전 정류장에서 내려 장만옥이 일하던 (구) 시브리즈 레스토랑 Sea Breeze Restaurant이 있던 터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영화에서 잠깐 보였던 저녁 신에서,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유덕화의 루트다. 영화 속 시절 버스는 1층짜리였지만 아무렴 어떠나, 길은 동일한 사우스란타우로드다. 가자고, 고!
나중에 무이워 벗어나기 전 찍은 건데 고프로도 정면에 설치 완료. 마을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저 노랑 안전봉 밑으로 재배치함. 유덕화는 사이드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하는 구도는 아니지만 뭐 ㅎㅎ
아침 8시 14분에 도착해 9시20분의 버스를 타기까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이 워에서 경험한 생각지도 못했던 힐링과 로컬 바이브의 카페 파라디소, 그리고 맥도널드 옆 망고나무의 인상적인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종점에서 부이 오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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