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는 거의 사라진 레트로 네온이 마카오의 밤공기 속에서는 여전히 반짝인다. 춥진 않아도 한겨울이라 습도는 다소 잦아들었지만 거리를 지날 때면 특유의 눅눅한 기운이 아직 피부에 살짝 감긴다. 세나두 광장에서 걸어서 5분, 시계는 밤 9시를 향해가고 있다.
밤 9시 · 행복의 거리
이곳은 Rua da Felicidade—‘행복의 거리(福隆新街)’—. 19세기엔 매춘·아편·도박이 뒤엉킨 최상급 홍등가였지만 지금은 마카오 정부의 '보존+재생'에 의해 보행 전용 거리와 단장된 외관으로 되살아난 관광특구다. 옛 사창가 건물은 이제 식당, 간식집, 기념품 가게로 변신해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노란 가로등 아래 녹청색 목문-셔터와 종이등이 이어지는 거리 끝에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과 식당이 서로를 마주 본다. 왼편은 영화 <도둑들> ·<2046>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바호텔 San Va Hotel(건물 1873 ↠ 여관 1930), 오른편은 오늘의 목적지 - 1903년 개업 노포, Fat Siu Lau(팟시우라우)다.
| 레트로 네온과 외관의 첫인상
이 거리에서 팟시우라우의 레트로 네온 간판은 단연 눈에 띈다. 초서체로 써진 佛笑樓(불소루)는 '부처의 미소가 깃든 집'이란 뜻. 한국의 중화요릿집처럼 '루'자로 끝나는 건 이곳이 3층짜리 누각이기 때문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비둘기를 형상화한 이미지도 함께 붙어 있다.
Rua de Felicidadae (거리) 방향의 입구. 광둥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3층 상가주택 파사드에 중국 기와, 포르투갈식 아치, 철제 발코니 등이 층층이 얹혀 있다. 유럽과 중국 감성이 한눈에 읽히는 재미있는 외관이다. 행복의 거리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가졌다.
골목 방향(Travessa de Felicidade) 입구다. 중국식 기와를 얹은 입구는 옛 모습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의 팟시우라우 모습 ❘ 출처: macauantigo.blogspot.com
원래 근처 Matadouro 골목에서 최초 개업했으나, 이내 곧 손님이 많아지며 이 거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나는 비둘기 구이를 먹으러 이 곳에 왔다
어릴적 홍콩에서 비둘기구이를 맛본 기억은 흐릿하지만 의외로 꽤 맛있었다는 인상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이번엔 '정통식'이라 불리는 팟시우라우에서 그 기억의 실체를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미지의 포털처럼 느껴지는 녹청색 목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안쪽에 계시던 종업원 한 분이 문을 먼저 열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식당의 첫인상이 좋다.
| 실내 홀 풍경
실내가 잘 보이는 가장 안쪽 끝자리에 앉았다.
전통 있는 식당답게 연세 지긋한 종업원들은 모두 정장 슈트를 단정히 갖춰 입고 있었고 미소 가득 친절했다. 혼자 방문한 손님이라 조용한 구석 자리에 안내되었지만 오히려 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라 마음에 든다.
입구에서 주방까지 이어지는 기와 처마 아래, 아치형 문과 스터코 벽이 외관의 중국·유럽 요소를 끊김 없이 실내로 연결한다. 100년의 시간을 ‘박제’하지 않고도 원형을 유지한 채 시대에 맞춰 꾸준히 손질해 온 흔적이 곳곳에 베어 있다. 또한 의자마다 씌운 빨간 산타 커버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계절감까지 조용히 환기시킨다.
| 메뉴 : 120년 레시피 vs 마카오 퓨전 메뉴
마카오‑포르투갈 퓨전 요리로 잘 알려진 Fat Siu Lau지만 간판 메뉴인 ‘석기식 비둘기 구이(石岐燒乳鴿)’만큼은 100년 넘게 이어진 정통 광둥식 조리법과 품종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4대째 가문이 이어온 특제 레시피가 더해진다. 조리 방식은 새끼 비둘기를 마리네이드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내는 것으로 Fat Siu Lau에서는 20~25 일령 비둘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시기의 비둘기는 살이 연하고 풍미가 깊다.
석기·주하이·마카오 지도
이 요리는 광둥성 중산시 내의 ‘석기(石岐)’ 지역에서 유래했다. 인건비와 토지 비용이 증가한 중산 시에서는 현재 품종 유지를 위한 종묘 관리를 맡고, 사육과 출하는 인접한 주하이(珠海) 시로 이관하여 효율적인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을 유지하되 현실적 여건에 맞춰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한 사례다.
비둘기 요리는 새끼 비둘기를 의미하는 '스쿼브(Squab)'라는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 Sugnature Roasted Pigeon (Squab)
Fat Siu Lau의 대표 메뉴에는 비둘기 구이 외에도 커리 크랩, 아프리칸 치킨, 포르투갈식 덕 라이스, 매케니즈 폭찹 라이스, 양고기 요리 등이 있다. 광둥 전통 위에 포르투갈의 풍미가 얹힌 매케니즈 요리가 자연스럽게 포개지며 마카오 퓨전 식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100년 넘게 미식의 도시에서 명맥을 이어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비둘기 외 메뉴들도 경험해 보고 싶다.
티 메뉴
비둘기구이와 더불어 레몬과 서브되는 따듯한 차를 주문했다. 17세기부터 내려온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ères) 브랜드의 프리미엄 홍차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2천 원 차이밖에 안 났는데 마셔볼걸 싶다. 암튼 따뜻한 차는 특히 중국요리와 궁합이 좋은 것 같다.
출처: 구글지도 리뷰
그리고 이 날 모든 테이블에 수플레가 놓여 있던 것이 눈에 띄였는데 난 혼밥에다 소식좌라 시키지 못했다. 매우 아쉬웠다.
| 투박하지만 클래식, 테이블 세팅
투박한 듯 과시 없이 클래식한 테이블 세팅이다. 마카오가 가진 다중적 문화 구조와 어울린다.
물티슈와 비둘기 구이를 먹기 위한 비닐장갑. 홍콩과 마카오는 물티슈는 물론 냅킨 자체를 주지 않는 식당들이 많은데 여기는 로고가 찍힌 커버까지 따로 만들어 나름 '노포다운 격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노포 프리미엄).
매케니즈 식당을 돌며 공통적으로 느낀 건 식전 빵의 퀄리티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쓸데 없는 기교 없이 유럽식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묘하게 옛스러운 클래식 풍미가 입맛을 단단히 잡아끈다.
기름진 비둘기 구이를 대비해 주문한 따듯한 차이니즈 티까지 세팅 완료. 이제 메인 요리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 비둘기 구이 등장
레몬 조각과 청경채 위에 얹혀 나온 비둘기구이. 머리가 통째로 붙어 있는 모습에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 다시 떠올랐다. 크기는 작지만 단단하게 구워진 껍질과 윤기만으로도 탱탱한 식감이 전해진다. 야무져 보인다는 말이 어울린다.
신기해서 요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기도 했다. 근데 사진 찍을 여유가 없다. 저녁 9시가 넘은 만큼 난 배가 고팠다.
비닐장갑을 끼고,
자, 어느 부위부터 맛볼까?
너부터다.
비둘기의 별미는 '뇌'라고 들었다.
머리를 ‘와작’ 깨물자 얇은 껍질이 얇고 크리스피한 과자처럼 바삭 부서진다.
안쪽에서 드러난 하얗고 작은 뇌를 쪽! 빨아먹었다. 홍어애와 비슷한 크리미 한 질감—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호기심을 채우기엔 제격이다(개인적으로 크리미 한 식감은 별로여서...).
특별 부위를 시식했으니 지금부터 본 게임에 들어간다. 살코기 타임.
가장 통통해 보이는 허벅지부터 한입 베어물었다. 바삭한 껍질은 캐러멜 코팅처럼 달짝지근한 로스팅 향이 나면서 ‘탁’ 깨지고, 속살은 닭과 오리 사이 어디쯤의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한다. 육즙이 톡 하고 터지며 감칠맛이 입안을 채운다.
첫맛이 예상보다 좋아 잠시 사진 촬영은 잊었다. 특히 껍질이 매력적이다. 가슴살, 날개, 목살까지 골고루 뜯어보니 닭고기처럼 부위마다 매력이 달랐다. 어느 하나 거스를 것이 없다. 특히 목살은 탱탱해 손으로 들고 뜯기 딱 좋다.
기름기가 살짝 느껴질 때마다 청경채와 식전 빵, 뜨거운 차를 곁들이니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조합이 좋다.
비둘기구이 맛 삼매경에 빠져 먹다 보니 어느덧 한 피스밖에 남질 않았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사진을 좀 찍어봤다.
마지막 조각까지 바삭·촉촉·쫄깃·달짠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는다. 포만감에도 불구하고 더 먹고 싶은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여행 마지막 날 저녁에 예약해 둔 또 다른 레스토랑의 비둘기 구이가 남았으니—오늘은 여기서 만족하기로.
| 식당을 나와서
만족스럽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시계는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마감 임박 시간임에도 눈치 주지 않는 종업원들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여유 덕분에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Felicidade 골목(좌)과 거리(우)가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뷰.
가격 & 만족도
비둘기구이: 138 MOP(약 24,000원)
현지 기준으론 다소 ‘프리미엄’이지만 국내에서 치킨 한 마리를 더 비싼 값에 먹는 걸 떠올리면 고급 식재료 + 전통 레시피 + 숯불 조리를 감안해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카오 여행 최고의 한 끼”로 남았다.
| 마무리 : 식후 산책, 한 밤의 마카오 반도
Rua da Felicidade
배부름 뒤에 또 하나의 행복이 있다면 산책이다. 멀지 않은 호텔까지 마카오 페닌슐라의 매력적인 밤 풍경 속을 걸어본다.
San Va Hotel
식당 바로 맞은편 SanVa 산바 호텔 외벽에 영화 <이사벨라>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코타이 대신 반도-타이파- 콜로안을 위한 마카오 4박을 하게 만든 영화다.
영화 <이사벨라> 포스터
중국반환 전의 이야기를 다뤄 마카오판 <중경삼림>이라고도 불리지만 두 영화의 결은 아주 다르다.
언제나 매력적인 레트로 네온과 옛 흔적들
Tak Seong On 전당포 박물관
신마로를 지나가는 밤버스
Ave. de Almeida Ribeiro ❘ 늦은 밤 텅빈 알메이다 리베이로 에베뉴 (신마로), 끝에 소피텔 호텔이 보인다.
마감 직전에도 서두르지 않는 응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거리 풍경, 그리고 120년 레시피의 비둘기 한 마리.
식당을 나서자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높아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번지며 눈이 부셨다. 시계는 8시를 막 넘겼고, 9:42에 출발하는 후타미가우라행 버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다. 푸른 하늘 아래 도심을 천천히 걷기로 했다.
| 8시, 도심 산책과 안국사 전설
안국사 (安国寺), 사탕유령의 이야기가 있는 곳
걷다 보니 전선들 사이로 고요한 전통 건축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국사(안코쿠지). 임신한 채 사망한 여성이 관속에서 출산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밤마다 사탕을 사러 나온다는 '사탕귀신'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보고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텐진 4초메 버스 정장
30분쯤 걸어 도착한 텐진 4초메 버스 정류장. 그런데 안내판에 버스 시간표가 없다?인터넷에서 봤을 때 항상 시간표가 꽂혀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불안해 진다.
(오른쪽) Showa West Coast Liner 버스 정류장 안내판
아니, 상식적으로 세상 어디 버스가 어느 날은 경유지를 스고 안 스고 하겠냐마는, 1박 3일 같은 타이트한 여행이라 변수는 용납할 수 없다. 불안하게 기다릴 바에 시발점인 하카타 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기로 했다 (터미널 첫 차는 9시 38분).
나카스 풍경
구글맵을 보니 터미널까지 2.3km, 걸어서 약 35분. 1시간 정도 남았으니 나카스 풍경구경하며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드는 생각,토요일인데 사람 많아서 버스 못 타면 어쩌지? 첫 차 못타면 오늘 스케쥴이 다 어그러지는데.
택시 ㄱㄱ!
(전 날밤 이치란에서 줄 서던 악몽까지 더해지며) 정신 차리고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짧은 여행에서 택시는 시간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후쿠오카는 도시가 작아 택시+뚜벅이 조합이 좋다.
chatGPT 이미지 생성
"하카타 바스 타미나루, 오넹아이 시마스!!"
| 9시, 하카타 버스 터미널 도착
가까운 나카스에서 타서 그런지 약 5분 후 9시에 터미널 도착. 건물은 직사각형 평면 공간에세로 이동축은 중앙 에스컬레이터 하나.층마다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돌면 승강장이 번호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동선이라 플랫폼 찾기 쉽다(❗다만 꼭대기인 다이소까지 올라가면 탈출이 어려울 수도).
한국어 안내도 보이는 표지판 - 3층 고속버스 승차장으로 가면 된다
후타미가우라로 가는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쇼와 고속버스 플랫폼은 3층 32번이다. 데스크에서 후타미가우라 행 표를 사려하니 하차 시 내면 된다고 한다.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승강장, 32번.
플랫폼 도착. 내 앞에 한 10여 명 즘 이미 웨이팅이 있었다. 노선표에 정거장 별 하차 시 가격도 써져 있으니 현장에서 참고하면 좋다. Nishinoura-hoikuen-mae ~ Futamigaura 구간 정차는 1,150엔 균일가였는데 지금도 변동 없는 것 같다.
버스 안 풍경
정시에 출발했고 텐진 4초메도 당연히 경유했다. 결국 ‘삽질’이었지만 출발부터 사람들이 꽤 타서 그곳에서 기다렸다면 위험할 뻔했다. 덕분에 바다뷰 창가석까지 앉았으니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간다, 이토시마로
| 9:36 am, 도심을 벗어나
푸르른 하늘
고가에 오르자 아침식사 했던 선어시장회관 근처 하카타 포트 타워의 풍경이 창 너머로 보인다.
세로가 많은 도심을 벗어나니 펼쳐지는 풍경은 점점 느긋한 '가로'로 눕는다. 높고 먼 시야 속에 시골 정취가 서서히 넓어지는 게 좋다.
오른쪽 창가뷰
좌석은 후타미가우라로 갈 때 오른쪽, 도심으로 돌아올 때 왼쪽에 앉으면 오션뷰를 확보할 수 있다. 도로 폭도 좁은데다가 옆 가드레일 밖으로 바다가 거의 맞닿아 있어 풍경 구경 시 몰입감이 좋다.
팜트리 스윙
야자수 풍경과 함께 팜트리스윙 Palm Tree Swing이라는 바닷가 그네 명소도 보인다. 정류장은 자우오혼텐마에 ざうお本店前. 난 오전당일치기라 이번엔 스킵.
고속버스 이동 동선
팜트리를 지나면 내륙 도로로 들어선 후 곧 후타미가우라에 근접한다.
웨스트코스트라이너 고속버스 \ 출처: 나무위키
💡버스 스케줄 Tip:
당시는 오전 9시 38분이었는데 2025년 기준 8시 58분이 첫 차다. 아래 쇼와버스 홈페이지 스케줄 링크로 가서 확인 추천.
* 버스: West Coast Liner (Showa Bus) * 종착역: Ito Eigosyo 행 * 시간표: 평일/주말/공휴일로 나뉨 * 하차: Futamigaura (Meotoiwamae) (Fukuoka Pref.) * 거리/시간: 약 32km, 약 1시간 20분 * 가격: 1,150엔 (편도) * 첫 차: 8:58am (1:38pm 막차) (2025년 기준)
바다 풍경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팜비치(Palm Beach) 정류장에서 내렸다.후타미가우라까지는 600 m남짓이라 설렁설렁 걸어 10 분이면 닿는 거리다.
정류장에 내리면 첫 눈에 보이는 팜비치 랜드마크 사인
토리이·신사 같은 전통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정류장을 내리자마자 첫인상은 살짝 당황스럽다. 뜬금 없는 하와이 감성.
간판 오른편으로 바다위 부부바위가 살짝 보인다
핫도그·치킨 간판까지.
팜비치 정류장에서 한번 쭉 돌아봄
푸른 하늘 밑에 드넓은 바다풍경, 모래사장, 밀려오는 파도에 살짝 울컥했다. 매년 처음 만나는 바다의 풍경은 어디던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다 (전두엽이 많이 파괴되었는지 뭐만 봐도 눈물이 많이 난다).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하얀 토리이와 부부바위.
음식점들은 걷다가 구경한 것들만 몇 개 넣어봤다. 안가본 곳들이니 ㅊㅊ은 아님
팜비치에서 후타미가우라까지 두 정거장 거리다. 가는 길에 카페나 가게도 구경하고, 심심한 도로가 나오면 해변 따라 걸어도 좋다.
| 부부바위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
유목(?)움막
모래사장에서 뒤돌아보니 올가닉한 느낌의 유목 오두막(드리프트우드 파빌리온)이 보인다. 바다와 첫인사를 마쳤으니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저 오두막부터 탐험을 시작한다.
푸르른 꽃과 덩
이 동네 카페 붐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선셋비치(Sunset Beach) 카페에서 지었다고 한다. 바깥쪽은 낮임에도 약간 어둑한 느낌인데 입구 쪽은 초록 넝쿨과 꽃으로 뒤덮여 밝아 보인다.
에메랄드 부표가 매달린 아
왼편 아치에는 판타지 느낌을 자극하는 투명한 부표가 매달려 있는데 RPG 아이템 같아 채집하고 싶은...
조개 모자이크 간
조개껍질과 자갈 모자이크로 된 SUNSET BEACH 문구가 보인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좋다.
내부는 낮에도 약간 어둑하다. 선셋이란 단어를 보니 해 질 녘 무렵이면 훨씬 판타지스럽게 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혼여라 수줍은 셀피 후딱 찍고 다음 관광객들에게 턴을 넘겨준다.
파빌리온을 나와 다시 걷는다. 서핑샵이 있다. 이토시마 지역은 서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던 이토시마 사보 (糸島茶房) 카페 (메뉴를 보니 달달한 것들이 많다). 토리이 때문에 '일본다운 시골 풍경'을 예상했던 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통 하와이안 톤이다.
햄버거 도시락
여행 오기 전 인터넷에서 본 리뷰 좋았던 햄버거 푸드트럭(?) 키친카(?). 보다시피 기동성이 좋아서인지 날씨에 따라 위치가 유동적이라고 한다. 이름은 Itoshima Hamburger Cherir (이토시마 버거 셰리르).
오션뷰 일식
팜비치 인근 몇 안 되는 일식집으로 바다풍경 보며 여유롭게 카이센동을 (하루 세 번도 좋아!) 먹으려 했던 Itoshima Seafood Restaurant (糸島海鮮堂 二見ヶ浦本店). 근데 웬걸, 오전 11시도 되기 전 주차장은 거의 만차에 웨이팅까지. 분위기 보니 부부바위 보고 오면 웨이팅이 더 길어질 것 같아 바로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양식도 이 동네에선 향토 음식이겠거니" 하고
이토시마 햄버거나 하나 포장해 먹는 게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11:07 am, 부부바위 도착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변가 모래사장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다시 올라와 도로/인도 따라 걸어보기를 반복하며 오는 길은 즐거웠다. 팜비치 정거장에서 미리 내리길 잘했다.
내료가는 입구 전경: 전체 샷이 없어 사진 몇 장을 콜라쥬했다
사진 좌측의 돌계단을 내려가 작은 갯고랑을 건너는데 발란스 잘못 잡아 넘어질 뻔. 암튼 부부바위 앞도 이미 사진 찍기를 위한 대기열이 있다. 유독 중국어(만다린)가 많이 들렸다.
웨이팅 안내 표시는 없지만 모두 알아서 선다. 간혹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오랜 시간 사진 찍는 팀도 있었는데 웨이팅 전체가 그리 길진 않아 견딜만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한국 동해안 마냥 역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 사진들도 있던데 이 날은 꽤 얌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 약간 더 가까이 다가간다.
포토타임 찰칵
광각으로도 찰칵
고오쓰 (이키섬 DLC) 바다의 토리이 ❘ 출처: ign.com
막 신비롭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런 느낌의 토리이를 보면 명작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언젠가 꼭 쓰시마와 이키섬으로 고오쓰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적당히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전체 분위기는 이러하다
근처 해변가를 배회하다가 생선구이 칼집 자국 난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독특해 보였다.
충분히 구경했으니 이런저런 샷도 찍어보고,
시간 지나고 보니 사진 찍기 위한 웨이팅도 사라졌다
입구의 돌계단에 앉아 자연과 사람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평화롭다. 물놀이하는 사람들,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좋다.
부부바위 전경
두 바위를 묶은 굵은 시메나와(신성한 새끼줄)는 매년 5월 새로 교체하는데, 길이 30m, 무게는 무려 1톤에 달한다고.
일본을 창조한 신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결속을 상징하며 (둘은 쌍둥이 남매), 혼인-가족 화합 기원의 상징이다.
| 11:57 am, 돌아갈 시간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복귀방향으로 유턴한다.
후타미가우라 앞 공영 주차장이다. 화장실도 있다. 피크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꽉 차 있다. 암튼 시간이 많이 남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하차했던 팜비치 정거장 쪽으로 다시 역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후타미가우라 정류장 표지판
후타미가우라 정류장이다. 참고로 사진의 반달 모양의 청록색 사인은 웨스트코스트 라이너 고속버스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도로가 한국과 반대라서 바다 쪽 정류장은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가는 방향, 그 반대쪽은 후쿠오카에서 오는 방향이다.
사인 밑에는 하카타 버스 터미널 종착행 스케줄이 써져 있다. 종점인 하카타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싫으면 텐진 4번가에서 내릴 수 있다.
| 💡TRIVIA: 버스 정류장 이름의 의미
정류장 이름은 후타미가우라(메오토이와마에)(후쿠오카현) — 二見ヶ浦(夫婦岩前)라고 제법 길게 적혀 있는데 의미는 아래와 같다.
구글지도
후타미 (二見) : ‘두 개의 경치’ → 쌍바위
가우라 (ヶ浦) : 해안·포구
후타미가우라 (二見ヶ浦) : ‘쌍바위가 있는 해안’이라는 고유 지명
메오토이와 (夫婦岩) : 부부바위
메오토이와‑마에 (夫婦岩前) : ‘부부바위 앞’이라는 뜻의 정류장 명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 일본에 후타미가우라 (두 경치를 품은 해안)와 메오토이와(부부바위)는 일본에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이 함께 붙음.
* 사쿠라이 (桜井) : 사쿠라이 신사가 관리 -> 그래서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은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이토시마 시푸드 레스토랑. 11시 59분, 줄이 더 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카이센동을 먹겠다는 여행 전의 상상은 안일했던 것이었다 ㅋ
12시 2분 경의 풍경이다. 이토시마 사보 카페 주차장도 꽉 차있다 (파란 차 한 대는 아직도 있음).
선셋 비치 카페 오두막까지 다시 걸어왔다. 체력이 살짝 떨어지니, 저 구슬도 괜히 영롱해 보인다. 배도 조금 고프다. 그래도 도심으로 돌아가 영화 <후쿠오카>에 나왔던 우동집에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참기로.
| 12:10 pm, 버스 타기 전 사이드 퀘스트
팜비치 정류장 표지판을 보니 하카타행 버스는 1:01 pm 도착이다 (분 단위 설정 ㄷㄷㄷ).
이건 올 때 내렸던 반대 방향 정류장 사진이다. 좌측 아래에 영어로 "PALM BEACH Bus Stop"이라고 쓰여 있듯, 말 그대로 도로 옆에서 그냥 내린다 ㅋㅋㅋ
팜비치 사인
아무튼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마지막 사이드 퀘스트로 팜비치 주변과 가게를 돌아보기로 했다.
팜비치에서 해변가로 내려가는 계단
너무 길어졌으니 그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에서...
| 마무리
짧지만 밀도 높은 오전 반나절이었다. 바다, 신화, 카페, 모래사장, 고속버스 등, 여름 바다를 잘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웠던 후쿠오카 근교 여행.
이 터에 들어선 음식점들은 항상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애매한 주말 오후건 퇴근 후건 하루 언제라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던 위치. 그 자리에 최근 조선호텔의 중화요리 브랜드인 호경전 서초점이 들어섰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홍연의 전신인데 이 곳은 캐쥬얼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오픈 당시 먹었던 단품이 맛있어서 이번엔 코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 내부
룸 예약이면 코스 기본이라 2층으로 이동. 원하면 1층 홀 공간에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참고로 2층은 화장실 가기가 편하긴 하다.
이제 팔순 안에 오신 어머니 뒷모습
2층은 모두 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테리어는 신세계점 보다 고급스럽다.
2인 예약으로 배정 받은 방. 프라이빗 하니 얘기 나누기 딱 좋은 공간이다.
| 메뉴
코스메뉴는 가격순으로 심연 > 천하 > 담우 > 화현이 있다.
물론 모두 좋은 식재료를 써서 맛있겠지만 일단 <화현>은 일반 중화요리집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모둠 느낌이 났고, <담우>는 그 날 컨디션으론 왕새우와 누룽지가 딱히 당기진 않았다.
출처 ❘ 구글지도 @Hyunjae Jo ; 캐치테이블에 메뉴가 없어서 퍼옴
<심연>은 가격도 워낙 쎄고 후식까지 가짓수가 8개라 다 못 먹을 것 같은 부담이...
<천하> 런치 코스 메뉴
결국 <천하> 코스를 골랐다 (11만 원). 광동식을 참 좋아하는데 '광동식 닭고기 냉채'라는 표현도 맘에 들고, 홍콩이나 중국에 가면 무조건 디폴트로 먹는 가재의 이름이 보여 좋았다 (영어를 안봄 ㅜㅜ). 그리고 그나마 이 정도면 소식좌들이 힘좀 내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7개.. 그래도 남길까 봐 꽤 걱정 많이 했음)
천하 디너 코스 메뉴
참고로 런치/디너 코스는 동일한 이름들로 제공되는데 디너에서는 메뉴의 형식을 더 고급스럽게 변형을 주었다. 대신 가격은 UP. 위 이미지는 천하코스의 디너 버전이다.
| 식사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극적이지 않은데,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양도 적당하니 좋았다. 담백했다라는 말이 어울릴 듯
| 사이드 반찬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짜사이와 땅콩이 나오고 중간에 단무지가 자리 잡는다. 인당 나오고 양이 과하지 않아 좋다. 모자라면 언제나 더 달라고 하면 되니. 맛은 크게 특별하진 않았다.
| 광동식 닭고기 냉채
Cantonese Style Chicken Appertizers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보통은 퍽퍽해 외면하는 닭가슴살이지만 저온 수비드로 부드럽게 익힌 살은 촉촉했고 기름기 없는 담백함 위로 산미가 얹혀 입안이 가벼웠다. 입 안에서 탁 터지는 토마토.
재료도 상태가 좋았고 첫 모금부터 온도가 적절해 코스의 첫 문을 차분히 열어 주었다. 맛만 보려다 어느새 접시를 비웠다.
| 지존 갈비 계절 야채수프
Steamed Rib and Seasonal Vegitable Soup
수프가 나왔는데 광둥식 향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던 디쉬였다. 한국으로 치면 갈비탕 같은 건데, 맑지만 우리나라 갈비탕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깊은 육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짠맛이 덜한 대신 은근한 감칠맛이 있다.
더블보일 방식 (맞겠지?) 때문에 맑고 진한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메뉴에 왜 '至尊(지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고기 한 입 배 어물면서 이해가 되었다. 부드럽다. 이것도 전부 꿀꺽.
| 간장 마늘 소스 바닷가재찜
Steamed Lobster with Garlic Soy Sauce
광동식 해산물이라길래 메뉴의 '가재'란 단어에만 홀려 홍콩/중국에서 늘 먹던 갯가재로 인식해 버렸는데 서빙된 접시 위엔 바닷가재(랍스터)가 놓여 있었다 (메뉴를 제대로 안 본 나의 착각). 암튼 간장·마늘을 살짝 졸여 부어 낸 맑은 갈색 소스에 홍·청고추 링이 흩뿌려져 있었다.
랍스터 살은 통통과 탄력 사이의 좋은 밸런스. 소스는 짠맛보다는 감칠과 달큼함이 얇게 겹쳐 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고추의 미세한 매운기가 뒤따라와 기름기를 풀어준다. 식재료가 깔끔하게 빛난다. ‘갯가재와의 착각도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저것도 꿀꺽, 이미 배가 불러온다 ㅜㅜ
원래 상상했던 홍콩 갯가제 ❘ 출처 Ppond5.com
TRIVIA: 가제/새우 류 중에서는 (Mantis Shrimp) 오줌싸게가제라고도 불리는 갯가제를 제일 좋아한다. 껍질 까기가 귀찮은 놈인데 그 이후 먹는 살의 만맛이 부드러우면서 강한놈이다. 주로 홍콩과 중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 칠리소스전복
Fried Abalone with Chili Sauce
중화요릿집에서 흔히 만나는 칠리소스인데 익숙한 탕수육의 식감을 가진 그 보호막 껍질을 씹으면 단숨에 부스러지고 그 안에 숨어있던 탱글하고 쫄깃한 전복살이 씹힌다.
어떻게 보면 코스 메뉴 중 제일 자극적인 음식이 나온 셈인데 그마저도 얌전한 맛이 좋다. 물론 아쉬운 건 이미 전 단계에서부터 찾아온 포만감이었다. 맛있었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ㅜㅜ
| 자연송이 한우 안심
Sauteed Korean Beef with Black Pepper Sauce and Pine Mushroom
메인이 나왔다. 수프에 있었던 소고기는 미국산이지만 메인에 나온 소고기는 한우다. 둘 다 연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다. 같이 나오는 송이버섯은 언제나 스펀지처럼 토해내는 즙이 맛있다.
메뉴판에 쓰인 대로 ‘국내산 한우’라는데 내 얄팍한 혀로 미국산·국내산 차이를 가늠할 능력은 없다. 다만 두툼한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니 근섬유가 곱게 풀릴 만큼 부드러웠고 소스는 블랙페퍼와 굴소스 어딘가의 향이 드는데 짠맛이 강하지 않아 고기 본연의 맛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는다.
| 식사: 짜장면과 짬뽕
어디서든 중식코스를 먹으면 항상 머뭇거리는 순간이다. 짜장면과 짬뽕, 혹은 볶음밥, 뭐 먹지? 서버님은 바쁘시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손님으로서 항상 용서해 주길 바라는 시간이다.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로 티키타카를 잠시 하다가 서로가 먹을 것을 정하고 결국 짜장면과 짬뽕을 시킨다 (볶음밥도 약간 떙겼는데 서버분은 짜장면을 추천하셨다). 어머니는 여기 짜장면을 몇 번 드셔보신지라 내게 양보하셨다 (근데 둘 다 맛있음).
짬뽕은 건더기가 참 실하다. 그리고 중요한건, 맛.있.다.
짜장면은 면발의 맛이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푸짐한 토핑들로 인한 식감이 참 좋다. 요즘 동네 짜장면들이 맛이 없어지는 기후가 있는데 여긴 참 맛있는 짜장면. 식후 음식으로 나오는대도 불구하고 얹힌 식재료들이 메인만큼 푸짐한 느낌이어서 더욱 좋았다.
| 디저트
마지막 디저트는 망고사고 (芒果西米露, Mango Sago)였다. 내가 제대로 느낀 게 맞다면 망고의 진한 향에다가 코코넛 향이 살짝 감싸서 앞선 중국식 음식들 특유의 기름기의 여운을 산뜻하게 씻어주는 역할이었다.
| 마무리
꽤나 괜찮은 평일의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있는 점심이었다. 이 날 든 생각은, 어머니가 나이가 계속 들어가다 보니 프라이빗한 룸에서 나누는 사적인 얘기 분위기도 좋지만 홀에서 사람들이 뭘 먹나, 저건 또 무슨 음식인가 하는 그런 타인의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더 좋으신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또 가게되면 다시 홀에 자리잡아 보아야겠다.
| TRIVIA.2: 배달도 된다!
갑자기 호경전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하셔서 시켜드림
언제부턴가인진 모르겠지만 배달도 된다! 나이 때문에 이동이 힘든 어머니가 참 좋아하신다. 베달로도 먹을 수 있다고.
강화군 숭뢰리에 자리한 1938년생 돌기와 한옥 ‘돌기와집’은 납작한 석와 지붕과 중정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이다. 1994년 식당으로 문을 연 뒤 압력솥에 잔가시까지 부드럽게 녹여 내는 달큼·매콤한 붕어찜으로 30년째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강화도에서 흔히 만나는 논두렁 길 따라 崇雷里 (숭뢰리)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날의 루트
숙소인 남단끝 동검도에서 강화도 북단 끝으로 32km 약 50분. 민간 마을에 자리 잡은 곳이라 도로에서 벗어나 시골길을 쭉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이런 곳에 정말 음식점이 있다고?"를 남발했다.
| 외부
도착하면 누가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옛 근대 한옥이 맞이해준다. 고택 바로 앞마당과 길건너에 주차자리가 있다. 한옥은 1938년에 지어졌으니 올해(2025년)로 87년째를 맞는다.
건너편 주차장 공간엔 붉은 글씨로 '돌기와집'이라 쓰인 투박한 입간판이 수줍게 구석에 서있다. 받치고 있는 낡은 고철과 글씨가 뭔가 무림의 맛집 분위기를 풍긴다.
상도숭뢰길 - 오솔길처럼 아담하고 예뻐보여 카메라를 꺼냈다. 꽤 좁은데도 불구하고 덤프트럭이 후드득 나무들을 쳐대며 지나가는 장면이 신기했다. 암튼 차 세우고 이 작은 폭의 길을 너면 음식점 입구다. 쭉 길을 따라가면 음식점이 원래 붕어와 메기를 공수했던 숭뢰지(대산저수지)가 나온다.
오랜 세월의 맛을 더해주듯 나무 덩굴에 휩싸여 있는 굴뚝 모양의 구조가 눈에 띄었는데 붕어찜을 끓이는 주방과 이어져 있다.
1930년대는 개량한옥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절이라고 하는데 콘크리트/시멘트 같은 현대 재료들과 섞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이 화장실인데 들어가 보진 않았다.
입구부터 입식 타일 바닥·노출 배선·개방 통로가 겹겹이 보인다. 여러 세월에 걸쳐 전통 한옥 원형에 덫대진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긴 입구 공간이 계절에 따라 바람-온도-시선 등에서 잘 지켜줄 것 같다.
깊다 싶은 입구를 지나면 가운데가 하늘로 향해 ㅁ자(정사각형으)로 뻥 뚫려있는 중정 공간이 나오는데 개방감이 굉장히 좋다. 낯에는 이렇게 자연광, 밤엔 또 달빛이 스며들어 이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엌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좌측에 보이는 공간은 곳간이나 외양간 같은 곳이었을까? 암튼 사면이 이렇게 둘려 싸여 있으니 문만 꽁꽁 닫아두면 추운 겨울바람도 잘 막아줄 것 같다.
부엌을 바라본 모습
입구를 통과하면 정중앙에 식사 공간이 있고 우측에는 맛있는 붕어찜을 삶는 재래식 부엌이 보인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고택 구조를 보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 내부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오면 마루와 안방 모두 식사하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활짝 열려 있어 개방감이 유지된다. 문틀들 사이 비닐발이 보이는데 90년대 느낌도 난다. 시간 여행 온 느낌이랄까.
원래 좌식이었을텐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테이블식으로 바뀌었다 (몸이 안 좋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좌식이 참 힘들긴 하다).
여름 초입 날씨가 참 좋았던 날이라 뒷뜰로 보이는 공간으로 이어진 문이 달린 곳에 자리를 잡았다. 통창이 있으니개방감도 좋고 시골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도 같이 안겨준다.
메뉴는 간단하다. 시그니처인 붕어찜과 새우매운탕. 민물새우튀김이 궁금했는데 소식좌라 붕어찜만 시켰다. 이 집은 원래 인근 대산저수지 (숭뢰지)에서 들여온 민물고기 매운탕집이었는데 우연히 내놓은 붕어찜 맛에 손님들이 매료되며 오늘날 붕어찜 전문집에 이르렀다고 한다. 참고로 여럿 온 테이블들은 우렁무침도 사이드로 시켜 먹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식사 - 주옥같은 반찬들
정갈해 보이는 비주얼의 반찬들이 정성스럽게 세팅된다. 이 집은 음식과 대응 자체에 예의 스러움이 스며들어 있다. 반찬들 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맛있다. 갠적으론 3,6,7(깻잎),9시(무채) 방향 반찬들이 특히 맛있었다.
챗GPT의 설명
너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사장님 바쁘시고 정신 없으셔서 그냥 챗GPT한테 물어봤다. 각각 미나리(6시)와 열무(3시) 나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듣고 식감과 비주얼을 비교해 보니 그럴싸하다.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오래된 한옥에서 가장 최첨단 기술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니.
시큼 새콤한 무채 절임은 약간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붕어찜과 먹기 굉장히 좋았다.
깻잎은 짜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마지막 한 장까지 알토란 하게 강화섬쌀밥에 맛있게 싸 먹었다.
| 붕어찜
드디어 붕어찜 등장. 이렇게 한상이 완성되었다.
반찬들이 워낙 맛있어서 원래도 높았던 메인 요리의 기대치가 더 올라갔던 붕어찜이었다. 찜에서 우러나온 국물과 통통한 붕어 위에 올려진 양념 건더기들의 비주얼이 식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시래기가 주조연처럼 올라간 점이 눈에 띄었다. 붕어는 원래 인근 숭뢰지에서 가져왔지만 퀄리티가 떨어지면서 지금은 충청 예당 저수지에서 공급한다고 한다.
해체를 시작한다. 돌기와집 리뷰에서 다들 말하듯 붕어의 가장 힘든 점인 잔가시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뭐 꽁치조림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압력솥에 푹 고아 내놓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붕어 고유의 형태를 해치지 않는 것도 이 집만의 실력이겠지.
원래 붕어의 잔가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붕어찜은 달짝지근하고 매콤하다. 매콤은 매운 매콤이 아니라 미디엄 정도다. 부드럽다. 생선 잔가시 정말 세상 귀찮아하는 나도 그냥 먹어도 될 정도다. 특히 갓지은 요리의 따듯함과 깊은 풍미가 돋보인다. 붕어 특유의 흙냄새 비린내도 느끼질 못했다.
시래기와 아주 찰떡궁합이다. 계속먹다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기름지고 달짝지근함을 중화해 준다 (그렇다고 이 기름짐과 달짝지근함은 전혀 자극적이거나 과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시래기도 모자르다면 이 시큼 새콤 무채와 곁들이면 입 안이 끊임없이 중화된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계속 먹게 된다.
살면서 아주아주 가끔, 손에 꼽을 만큼 음식을 먹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평생 못 잊을 맛 같은 거. 돌기와집이 그랬다. 찬 하나하나 내어줌과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성스러움과 대접받는다는 느낌. 음식이고 찬이고 어느 하나 거르기 힘든 맛과 분위기.
이 행복하고 감사한 경험은 1시간 정도가 지나 끝이 났다. 이처럼 홀린 듯 먹어본게 얼마만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감사하며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맛의 폭풍이 휩쓸고 간 후 이제 끝났나 싶더니 식혜를 내어 주신다. 술은 밥과 누룩을 섞어서 발효시켜 만들지만 누룩 대신 엿기름을 사용하면 알코올 없이 단맛 강한 음료로 탄생한다는 식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조상님들의 디저트맛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걸 쭉 내려가게 만들어주는 식혜와 함께 정말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저녁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배터지게 먹었다. 감동적인 한 끼였다. 오후 1시 20분경의 모습이다.
| TRIVIA
붕어요리는 강화도의 향토음식이 아니다. 옛 임산부들의 특식이었던 잉어와는 별개로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국적 흔한 식재료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옛 시절 서민들의 영양섭취를 책임져 줬다 (둘의 차이는 크기와 수염이 있냐 없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도까지 와서 굳이 향토음식을 맛보지 않고 이 집을 찾아가는 이유를 비로소 나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큰 감동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이런 별 하나짜리 리뷰를 발견했다. 듣고보니 맞다. 이건 조림에 가깝다. 하지만 그리 짜고 맵지 않은 조림.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저 유저가 처음 맛봤을 때의 그 맛은 또 얼마나 맛있었길래 이런 리뷰를 남겼을까 하며 그 옛 경험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산을 하고 걸어나오는 길. 6만원 돈이 단 한 푼도 안 아까웠던 한 끼였다.
이건 전경
강화도는 실향민들의 흔적이 특히 많다. 이 집도 원래 주인이 황해도에서 남으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백두산 등지에서 공수하여 직접 실은 돌들로 쌓은 기와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집은 '돌기와집'이 아닌 '널 기와집'이라고 불려야 한다고도 하는데 돌너와, 널기와, 돌기와, 석와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Dry’는 매우 선명한 고화질이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VHS 노이즈, 글리치, 웹캠 샷, PIP 프레임 등으로 불완전한 디지털 질감을 얹는다. 영상은 디지털 핸디캠 특유의 살짝 기울어진 앵글, 손떨림, 저조도에서의 거친 그레인 같은 요소들을 복원한다. 배경이 일본이라는 점도 아날로그-디지털 사이의 공간적 감각을 강화한다.
Dry MV
스티커 사진기에서 나온 듯한 버블 폰트, 워드아트 스타일의 텍스트, 난잡한 스크랩북 구성, 스티커 그래픽 등이 반복적으로 화면을 장식하며 잘 정돈된 이미지 위에 지속적으로 오류를 주입하는 듯한 키치적 연출을 보여준다.
| LUCI GANG 루시갱
쿵쿵쿵 2025.4.18
‘쿵쿵쿵’ 뮤직비디오는 DV캠 특유의 저해상도 질감의 4:3비율 영상 속, 콘크리트 바닥과 한국 골목과 같은 특유의 날 것스러운 배경이 어우러지며 거친 사운드와 잘 맞아떨어진다. 그녀가 손에 쥐고 있는 캠코더는 JVC Everio GZ-MS100으로 보이는데, 2008년 출시된 이 모델은 SD/SDHC 기반 보급형 디지털 핸디캠이다. 코니카 미놀타 렌즈와 야간 촬영 모드를 탑재했고 당시의 유튜버들을 겨냥했었다.
쿵쿵쿵 MVJVC 캠코더
실제로 MV를 저 캠코더로 촬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등장 자체만으로도 MV전체의 디지털 노이즈와 불완전한 색감의 연출과 함께 디지털 복고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소 중 하나다.
| 유명한아이 YUMEWANAII
금천구 독산로 2024.1.22
유명한아이의 뮤직비디오는 시각적으로는 (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했던) 레트로 이펙트가 그리 강하진 않다.‘금천구 독산로’ 정도가 DV로 직접 촬영한 느낌의 영상으로 인해 교집합을 이루고, ‘빌고 빌었지만’은 곳곳에 VHS/그레인 등의 이펙트가 삽입되어 있는 게 눈에 띄는 정도다.
금천구 독산로 MV
다만 그녀의 음악 속 자전적 서사와 지역적 배경이 그 시절의 감정을 생생히 호출하며 ‘다큐멘터리’ 같은 경험을 준다. 따라서 영상보다는 가사의 호소가 더 강한 음악을 구사한다.
빌고 빌었지만 MV
가족을 위해 가난과 굴욕을 참아낸다는 다짐의 ‘Ride or Die’, 사랑조차 분수에 맞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조던’, 서울 외곽의 동네에서 자신만의 좌표와 안식처를 되찾는 ‘금천구 독산로’까지—유명한아이의 음악은 한 세대가 경험한 어떠한 한 ‘생존기’를 담고 있다.
영화, 마이제너레이션 트레일러, 2004
이 작품은 2004년의 한국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이다. IMF 이후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신용불량, 취업난 등-를 다룬 2000년대식 청년 파산 선언서이다. 아마도 유명한아이의 음악 그리고 뮤비들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낙후된 지역과 골목, 그 속의 안팎 풍경 등의 이미지가 겹쳐져서 음악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 같다(꽤나 하드한 영화기 때문에 맘 잡고 보는 것을 추천하다).
| 마무리
기록과 표현 수단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세대는 어린 시절 DV 핸디캠으로 찍힌 가족 영상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고 웹캠, 싸이월드, UCC 같은 저해상도 디지털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리고 10대 시절부터는 스마트폰 기반의 고화질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었다.
사회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불황, ‘헬조선’ 담론,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구조적 스트레스가 지속되었고 그 속에서 아이폰, 카카오톡·페북·인스타그램, LoL·배틀그라운드, 넷플릭스·틱톡 등 디지털 기술과 문화는 일상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러한 이중적인 경험 위에서 만들어진 Z세대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는 저해상도 디지털과 고화질 스마트폰 사이에 걸친 기억을 ‘디지털 노이즈’라는 언어로 되살려낸 동시대적 자기서사이자 감각의 아카이브라 할 수 있다.
[1996 ~ 2002년생 Z세대가 10,20대(2009-2024) 동안 맞닥뜨린 주요 이슈·문화 키워드]
2009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
첫 아이폰(3GS) 국내 등장, 싸이월드 막바지
2010
등록금 인상 → 반값 등록금 집회
카카오톡 출시, LoL·피파온라인 등 PC방 세대 교체
2011
3포세대 - 주거/연애/결혼 포기 담론
스마트폰 보급 급속화, 카톡·페북 일상화
2012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 수 30억 돌파
K-Pop 붐
2013
대학 등록금 최고점, 비정규직법 논쟁
인스타그램
2014
‘헬조선’ 유행어 확산
이통3사 아이폰 출시 (아이폰6)
2015
청년실업률 10 % 돌파, 공시·자격증 열풍, N포세대 담론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먹방·ASMR
2017
‘가즈아’ 암호화폐 광풍, 영끌·빚투 욕망
e스포츠, 인스타 인플루언서
2018
최저임금 인상 → 편의점 알바 단축·해고 논쟁 젠더갈등 심화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문화
2020
코로나19 팬데믹, 비대면 수업
Nintendo ‘동물의 숲’, Zoom·슬랙·OTT 생활화, 리셀문화
2022
집값·금리 동반 급등, 2030 ‘영끌 부채’ 최고치
ZEPETO·메타버스 밈, 숏폼(틱톡·릴스)
2024
물가·월세 상승, ‘고정비 지옥’ 담론
AI 생성 이미지·챗GPT 체험 붐
| 번외: 페어리 마이 Fairy Mai
Light Please 2025.5.28
페어리 마이는 한일 합작 걸그룹 eite 출신으로 인디아티스트가 아닌 아이돌 기획색이 묻어나는 프로젝트라 번외로 뺐다. 레트로를 추구하는 걸그룹 MV 영상은 현재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페어리 마이의 ‘Light Please’는 강렬하고 인상적인 사운드와 레트로 무드를 보여준다.
Light Please MV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DV와 VHS 질감, 워드아트, 스티커, 웹캠 샷 등의 레트로 이펙트뿐 아니라, 고질라나 울트라맨 같은 일본 괴수물, 마블 시리즈, ‘체인소 맨’, ‘진격의 거인’처럼 도시형 크리처물 감성도 겹쳐진다.
2010년대 후반 시티팝이 유행하던 시절엔 전 세대의 아날로그 감성을 상상하며 따라가는 복고의 느낌이었다.
출처❘ YG엔터테인먼트더딥-에피 MV
반면 요즘 Z세대 힙합·하이퍼팝 아티스트들이 보여주는 레트로는 훨씬 더 개인적이고 디지털 기반이다. 게다가 빅뱅와 2NE1 같은 직접적인 한국적인 무드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출처 ❘ 노덕순 MV
흔히 '20년 주기설'이라 불리는 레트로의 법칙에 따르면 유행은 20년마다 반복된다고들 하는데, 그 시절을 유년기나 십 대로 보낸 세대가 20대 혹은 30대에 접어들며 꺼내보는 기억의 공식에 가깝다.
출처 ❘ Sony.com
여기 소개할 아티스트들은 1996년~2002년생. 2010년대 초반을 10대로 보낸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출처 ❘ effie MV
핸드헬드 디지털 카메라(DV), 저해상도 영상, 디지털 잔상, 웹캠 자막, PIP 화면, 4:3 비율, 글리치, 스타버스트 이펙트 등— 어릴 적 익숙했던 풍경들을 직접 리믹스하듯 영상에 담는다. 그 결과는 그들만의 감각적 언어처럼 느껴진다.
출처 ❘ effie MV
복고의 중심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간 지금, 2000년대초반과 2010년대에 걸친 Z세대 시간을 기억하고 다루는 방식이 흥미롭다. 그 변화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소개한다 (추천은 뮤직비디오 영상 기준).
| 에피 Effie
More Hyper 2025.5.9
Effie는 최근 폼을 보면 정점을 찍으며 광폭에 가까운 질주를 하고 있다. <E> EP 앨범은 2025년 대한민국 베스트 앨범에 넣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사운드와 비주얼도 갈수록 방향이 또렷해지고 있다.
Coca Cola MV
‘코카콜라 (senior ver.)’에서는 태극기, 교복, 옥수역 같은 로컬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우며 특정 시기를 직접적으로 호출했고 이후 ‘maybe baby’와 ‘open ur eyes’에선 기존의 일렉트로팝 기반의 밝은 멜로디 위로 저해상도 영상, 웹캠스러운 디지털 레트로 요소들이 덧붙여져 질주하는 에피의 사운드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More Hyper MV
최신작 ‘MORE HYPER’에서는 응봉산 팔각정, 골목길, 2014년 출시된 SM3와 아이폰 6s 플러스처럼 익숙한 로컬 풍경과 사물 위에 DV 질감과 스타버스트 이펙트, 발칙한 레트로 한국폰트 등을 덧씌워 전체적인 화면을 거칠고 과잉된 느낌으로 밀어붙인다.
More Hyper MV
제레미 스캇 x 아디다스 하이탑처럼 MV들에서 눈에 띄는 등장하는 키치한 운동화를 통해 effie의 개인적 스타일이 부각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open ur eyes MV
추천: 'Down', '미워미워', 'maybe baby', 'open ur eyes'
| 더 딥 The Deep
Effie & The Deep - SRRY♥ 2024. 10. 24.
kpop b!tch ☆゚를 자처하는 The Deep은 굉장히 선명한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다. 하이퍼팝이라기보다는 일렉트로, 하우스, 클럽 댄스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이미지는 2000년대 초 일본 갸루 감성과 미국식 바비걸 및 웨스턴 분위기의 혼종을 보여준다. 귀엽고 장난기 많으면서도 대담하고 직설적인 여성성을 드러내는 비주얼과 사운드가 특징이다.
Make Up ❀ official gyaru MV - 2025.3.11 -
The Deep과의 협업 이후 Effie가 좀 더 과감한 스타일로 넘어간 것도 이 영향일지 모른다. 직접적인 상호작용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둘 다 선을 넘을 듯 말 듯한 긴장감과 디지털 시대의 로우파이 미감을 자신만의 언어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영국 런던 공연 포스터 ❘ 출처: 인스타 thedeep
요즘 인스타를 통해 영국 클럽에서 활동 중인 더 딥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bow wow MV
추천: "bow wow", “Shy Girl”, "Sad Girl's Club", "Angel Tatoo" 등을 추천하는데, 레트로 느낌의 영상 기준을 떠나도 좋은 곡들이 많다.
| 노덕순 Noducksoon
drama 2025.5.30
2010년대 초중반 디지털 환경에 대한 감각이 생생하게 반영돼 있는 또 하나의 좋은 예다. 이전 싱글 ‘Fancy Car’에서는 PIP 화면, 다이아몬드 블링 폰트, 디지털 핸디캠의 나이트샷 모드 같은 요소를 활용해 비교적 장식적이고 장난기 있는 레트로 디지털 감성을 보여줬다면 최근 공개한 ‘drama’에서는 기존 포맷은 유지하되 화질을 더 떨어뜨리거나 더 과한 이팩트을 통해 날 것처럼 강조한다.
정우는 몽환적이면서도 다채로웠고, 박소은은 끊임없이 폭발적이었고, 연정은 당차고 강렬했고, 김사월은 소곤소곤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Day 1.
LG아트센터에서 사흘간 이어진 ‘우리가 만든 음악섬’ 공연 중 이틀을 다녀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하루씩 짝지어 묶여 있었기에 이게 웬 횡재냐 하며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공연은 두 아티스트가 각각 55분씩 나눠 진행하는 구성이었다. 콜라보가 아닌 각자 무대 중심인 데다가 아트센터의 운영 방침 때문인지 정시에 시작해 정시에 마무리됐다. 고로 일반적인 앙코르는 없었다. 관객도 아티스트도 단콘처럼 100%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간결했고 그래서 더 여운이 남았다. 그래도 아티스트들은 하나 같이 다 멋있었다.
기타를 매개로 모인 네 명의 싱어송라이터 (모두 시를 좋아한다고...). 공연이 진행될수록 각자의 색이 진하게 배인 사운드가 점점 증폭됐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인상적인 모습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덕분에 젊음의 에너지에 흡혈당하고 돌아왔다. 마음은 충전됐고 몸은 탈진했다. 하루 종일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하지만 아주 좋았다.
| Day 1.
공연 시작 전 음료를 주는데 술은 안마셔서 탄산수 받아서 조금 마시고 입장했다.
정우
2집 《클라우드 쿠쿠랜드》를 중심으로 꾸려진 무대였다(비공개 신곡도 포함). 정우는 마치 주술사처럼 묘한 기운을 풍겼다. 부드럽고 섬세한 보컬, 그와 대조적으로 펼쳐지는 록 사운드. 드론, 슈게이즈, 가라지, 인디팝, 레게 등 다양한 질감이 뒤섞여 마치 구름위를 유영하는 듯 몽환적이고 황홀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특히 인디팝 감성의 '클라우드 쿠쿠랜드'가 흘러나왔을 때 가장 반가웠다(최애곡임). 이외에도 기타 리프와 가사가 인상적인 '들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떠올리게 하는 슈게이징 사운드의 '낡은 괴담', 레게와 슈게이즈가 영켜 흐르는 '허물', 청춘의 날카로움을 담은 'Juvenile' 등, 다크 유토피아의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명반, [클라우드 쿠쿠랜드]의 명곡들이 이어졌다.
장르적으로만 보자면 이틀 간의 공연 중 가장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 무대였다. 차분했다가 격정적이었다가, 조용했다가 다시 몰아치는 흐름. 앨범이 담고 있는 성장통이란 주체처럼 거칠고도 예민한 감각이 돋보였다. 유혹과 불안, 그 사이 어딘가를 걷는 마냥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또다른 버전 같다.
허물 - 정우, 2023.11
박소은
등장부터 퇴장까지, 박소은의 무대는 그야말로 발칸포. 폭발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록 사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휘감았다. 그 가운데서도 인디팝 감성이 묻어나는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요’가 등장하자 분위기는 또 한 번 환기되었다. 말랑한 멜로디가 오히려 곡 존재감을 더 뚜렷하게 만들었다.
무대가 절정에 가까워질 즈음, 박소은이 기타를 치며 외쳤다.
“🗣정우야, 나와라!🗣”
첫 타임의 정우가 다시 등장하자 공연장은 더 크게 들끓었다.
두 사람은 함께 박소은의 ‘우리는 같은 음악을 듣고’와 ‘눈을 맞춰 술잔을 채워’를 불렀다. 이런 공연 아니면 어디서 또 이런 아드레날린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정우는 곧 퇴장했지만 무대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둘의 콜라보 영상이 돋보였던 소녀와 화분 | 2021.7
둘이 갠적으로 친해서 각자의 단콘에서는 서로의 음악을 자주 커버한다고 한다.
멋 부리고 왔다가 더워 죽겠다는 박소은은 내내 유쾌하고 솔직한 말투로 관객과 호흡했는데, 마지막 곡 '고강동'의 소개는 유독 인상적이었다. 야망이 넘치던 시절 만들었다며 “나는 아주 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고강동을 통째로 다 사버릴 거야!”라는 한 마디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덕분에 노래를 들으며 'OO를 살거야' 할 때마다 떼창으로 따라 부르는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엄청 비싼 비행기를 살 거야 엄청 좋은 카메라를 살 거야 엄청 좋은 컴퓨터를 살 거야 나는 아주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친구들한테 자동차를 선물할 거야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박소은,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돈과 시간이 그 행복에 제한을 걸자 돈을 벌어야겠다는 야망을 품었다는 배푸고자 하는 아티스트의 순수한 욕심을 엿볼 수 있다. 그 꿈, 변하지 않기를 응원!
에너지 넘치는 하루였다!
반복되는 모든 게 날 괴롭게 해 2025.2.4
그렇게 하루 종료
| 나의 인터미션
스탠딩은 너무너무 힘든 것이었다. 아이돌 스탠딩도 아닌 그냥 서있던 것뿐인데돌아오는 운전 길에 눈도 침침해지고, 어깨허리 쑤시고, 종아리는 후들거려서 비틀거리고 ㅜㅜ. 대신 하루가 좋았는지 길고 재밌는 꿈을 꾸며 꿀잠을 잤다 (난 길고 재밌는 꿈을 좋아한다). 오랜만에 틴에이져 + 구니스스러운 어드벤처 형 꿈을 꾸다니.
첫날의 여파로 파스 3장을 붙이고 잤다. 하루가 지났다. 어제는 8시였지만 이 날 토요일 공연 시작은 7시. 일어난 후에도 통증은 이어졌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 싶어 점심은 왕갈비탕으로체력 충전을 했다(근데 맛을 별로). 힘들 때 마지막 나의 희망 같은 황진단도 챙겼다.
| Day 2.
안도 타다오의 공간 한 조각 남김
김사월이 등장하는 날이라 더 많은 관객이 모이지 않을까 싶었지만 오히려 어제보다 사람이 적었다. 아티스트에겐 미안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공간 속 숨통이 트이는 듯한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혹시 이날 열렸다는 칸예 콘서트 영향일까? 괜히 망상해 본다.)
연정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 아티스트들은 시간이 지나도 신뢰가 간다. 최유리의 ‘동그라미’도 그랬고, 전날 무대에 오른 박소은도 그랬고—이번 공연의 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지도는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낮았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컸고 실제로도 기대 이상이었다.
입담은 타 아티스트들 대비 약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곡 설명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각 곡이 어떤 계기로 탄생했고 어떤 감정과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연정의 기타 리프. 록 음악에서 기타 리프는 기본이지만 연정의 연주는 유독 날카롭고 선명해서 눈에 띄었다. 복싱이 취미라고 했던가—기타 연주 속에서 잽잽훅훅, 타격감 있는 리듬이 느껴졌다. 매끄럽기보다는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힘이 있었다, 아, 이게 연정의 사운드구나.
Fender Jazzmaster 기타 : 다이노사워 쥬니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소닉유스
거기다가 더더욱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그녀의 애착 기타로 보이는 펜더재즈마스터(Fender Jazzmaster)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소닉유스, 다이노사워 주니어 등의 슈게이즈와 노이즈 사운드적 향수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Teenage Riot - Sonic Youth 1988
“여러분, 제가 말귀는 잘 못 알아들어도 소리는 잘 듣거든요!” 이 한 마디로 떼창을 유도하며 부른 곡은 최애곡 ‘사랑엔 용기가 필요해’였다. 후렴구의 “Love”를 관객과 함께 부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하나가 되는 가장 기분 좋은 순간.
기타 치며 노래하는 당찬 모습의 연정, 언젠가 단독 공연에서도 꼭 다시 한번 보고 싶다.
퇴장 전 기타 피크를 나눠주는 모습
사랑엔 용기가 필요해 - 연정 202.10.
연정이 나가고 잠깐 쉬는 시간 바닥에 주저앉아 김사월을 기다린다. 이틀 간의 행군은 힘들지만 즐겁다
김사월
이날은 정우–박소은 무대와는 달리 관객수는 적었지만 관객 연령대가 훨씬 다양했다. 전날은 10~30대의 젊은 관객이 압도적이었다면 이날은 40대 이상 관객도 꽤 눈에 띄었다. 한국 포크록 신은 다른 어떤 장르보다도 탄탄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안에서 김사월이 가진 인지도와 신뢰도가 반영된 결과 아닐까 싶었다.
저질 체력에 스탠딩은 너무 힘들어서 둘 쩃날은 앞번호인데도 불구하고 그냥 멀리서 편하게 봤다
그녀의 무대 시간이 다가오자 객석은 점점 더 채워졌고 결국 네 명 중 가장 원숙한 사운드를 들려준 공연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음악 특성상 연정이 두 번째 무대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밝고 경쾌함으로의 마무리가 좋아서..) 어디까지나 관객 개인의 사소한 욕심이다.
김사월의 보컬은 음유시인 같아 루 리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음악은 몽환적이면서도 이상하게 직설적인 것 같은 것이 영화 <트윈픽스> 같은 느낌도 있다. 속삭이는 듯 귓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며 스며드는 소리.
하지만 그 안엔 느릿하고 블루지한 그루브가 들어 있다. 모든 곡이 잔잔하지만은 않았고 '독약', '도망자', '누군가에게' 등 느리지만 리듬을 타게 만드는 사운드가 중간중간 공연의 흐름을 밀어 올렸다.
약간 이런 느낌이다
김사월은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가 있고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같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런데 음악이 시작되면 그 세계가 활짝 열리며 모두를 안으로 끌어들인다.
그날 있었던 관객들이라면 다들 느꼈을 것이다. ‘물 마셔 좌’를 오래도록 관찰하듯 바라보던 김사월의 조심스러운(?) 시선. 결코 불쾌하거나 냉소적인 느낌이 아니라 어떤 것과의 조우를 '조심해하는' 모습 같았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강아지가 낯선 사람이 근접했을 때 취하는 모습의 느낌? (나도 멍하니 봐서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은 없다
예상외로 공연 시간이 남았고, 엔딩곡 이후 약 10분의 여유가 생기자 김사월은 흔쾌히 앵콜곡으로 '로맨스'를 들려주었다. 그날 또 다른 기억에 남았던 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라는 곡에 대한 에피소드였다.
“제목이 너무 길어서 ‘사상키’라고 줄여 부르곤 했는데 한 방송에서 진짜 자막 타이틀에 ‘사상키’라고 나간 걸 보고 충격받아서…” 이후론 아무리 길어도 또박또박,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상처 주는 키를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어”라고 다 말한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포토타임
오늘도 하루가 멋지게 마무리 되었다.
보라빛 향기 - 김사월 2024.4
갠적으론 제일 듣고 싶었지만 못 들었던, 김사월의 아우라가 원곡을 지배했던 노래, "보라빛 향기" 커버.
LG아트센터에서 나오자마자 보이길래 찍어본 밤 배경 사진
그렇게 이틀 간의 주말은 빨리 흘러갔고 몸도 힘들었다. 그래도 이런 라이징 아티스트들의 사운드를 듣고 정신적인 에너지를 완충받아서 감사한 이틀이었다.
그런 김밥이 있다. 소위 ‘마약 김밥’이라 불리는 김밥. 먹을 땐 그냥저냥 했는데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며 식욕을 자극하는 김밥.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맛본 강화도의 서문김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이번엔먹을 때도 맛있었다. 물론 잠들기 전 여운도 컸다.
김밥은 워낙 일상적인 음식이라 파는 곳도 종류도 많다. 그 와중에 이렇게 은은하게 기억에 남는 맛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다.
그날 오전 10시 반, 강화도의 센터, 강화읍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정식을 브런치로 배불~리 먹었다. 소식좌라 사실상 저녁 식사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 상태 찍음.
풍물시장으로부터 도보 20분, 자동차 6분 정도의 거리다. 1.6km
펜션 입실까지 시간이 남아 마트와 박물관을 들르기로 했고, 마침 그 근처에 서문김밥이 있어 줄만 너무 길지 않으면 먹어보자 하고 들렀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인터넷에서 보던 웨이팅은 없었고 오히려 옆 육갈탕집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배가 부른 상태라 "밤에 좀 출출해지면 먹자"는 생각으로 한 줄만 사기로 했다. “혹시몇 줄부터 주문 가능한가요?” 여쭤보니, 사장님은 웃으며 “한 줄도 됩니다. 편하신 대로 시키세요”라고.
맛만큼 기본 예의와친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 한마디에 녹아내렸다.
“그럼, 한 줄 부탁드립니다.” “네~”
4,000원에 한 줄 포장. 여긴 포장 전문이라 당연히 은박지에 싸여 나왔다.
검은 비닐에서 꺼내 손에 쥐자마자 느껴지는 갓 만든 듯한 따끈함.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포만감을 싫어하지만, 결론은 하나 — ‘이건 바로 먹어야 한다.’
방문 예정이던 강화역사(자연사) 박물관까지는 차로 15분 거리, 주차장에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강화역사박물관 바로 옆 강화자연사박물관 쪽 주차장으로 와보니 봉천산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들어선 주택촌의 뷰가 좋아보여 정차하기로 한다.
은박지를 연다.
김밥의 비주얼은 소박하다. 회사 근처 길거리에서 보던 딱 그 옛날 김밥 같은 모습.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자,
“아~ 괜찮네!”
갓 지은 밥, 찰기 있으면서 알알이 씹히는데 특히 간이 잘 되어 있다. 손끝에 살짝 묻는 야채기름(으로 추정되는)의 고소함. 혀와 목, 위장을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
한 줄을 둘이 나눠 먹기에 양도 딱 좋았다. 디저트처럼 먹는 김밥,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포만감에 더한 포만감을 채운 후 강화자연사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여유롭게 구경했다.
좋은 첫경험은 늘 선명하게 남는다. 서문김밥도 그렇게, 기분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여행 동안 매일 아침이나 간식으로 하나씩 사 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 중엔 늘 또 다른 좋은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결국 실행하긴 어렵다.
서문김밥=출발지점 / 동검도=도착지점
게다가 서문김밥은 동검도 숙소에서 약 20여 킬로, 차로 30~40분쯤 걸리는 거리다.
동검도에서 서문김밥 가는길
여담이지만, 이 구간은 해안도로가 쭉 이어지진 않지만 달리는 내내 강화해협의 수면이 틈틈이 시야에 들어오는괜찮은드라이브 코스다. 마침 꽃도 피기 시작한 시점이라 더 예뻤다.
출처 ❘ 강화군청 공홈
📍강화해협 & 호국돈대길 좋은 풍경과 동시에 격렬한 역사를 가진 이 구간은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의 일부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좁고 긴 바다인 강화해협을 따라 19세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갑곶돈대 - 용진진 - 광성보 - 초지진 등이 줄지어 위치한다.
강화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7시, 전등사 앞에서 산채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동검도 펜션에서 짐을 정리하고 퇴실했다.
뭔가 조금 아쉬워졌고, 며칠 동안 자꾸 이야기하던 서문김밥을 다시 포장하기로 했다.
이번엔 마음먹고 4줄을 사기로. 당일 점심용 두 줄, 저녁용 두 줄.
뭔가 오~래된 맛집들이 즐비할 것 같은 서문김밥 옆의 좁은 식당 골목
10시 30분쯤 도착. 오늘은 줄이 좀 있었다. 5~6분 대기 후 주문.
오늘은 당당하게 네 줄 주문!
도미노처럼 내 뒤에 있던 모녀 커플도 원래 두 줄만 사려다 내 주문을 보고 짧게 상의 후 따블로 상향주문 ㅋㅋ
(속으로 엄지 척 해드림)
칠판엔 예약 주문이 가득. “아… 이래서 재료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구나…”
너는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
김밥을 받아 들고, 근처에서 집에 가며 마실 커피 한 잔도 샀다 (4박 동안 두 번째이자 마지막 커피).
강화도를 떠나며 차 안에서 은박지 속 온기를 다시 느끼자, 아침부터 산채정식을 먹은 배부른 상태인데도 참을 수 없었다.
시동이 걸린다. 먹기로 한다.
타임루프냐고... ❘ 출처: 토마스모어의영화방
여행 마지막 날이 다시 여행 첫 날로 타임루프 ..
차 안에서 먹는 음식은 또 묘한 맛이 있다. 운전 중 짬 나면 한 입, 짬 없는데 먹고 싶으면 “한 입만…” 하는 그 맛.
그렇게 가는 길에 한 줄이 사라졌다
오무아무아인가...
집에 도착해서는 남은 두 줄을 저녁 즈음 다시 꺼냈다.
(사실 한 줄은 집 도착하자마자 또 먹음)
이젠 식어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온기의 감촉은 사라졌지만 야채기름의 고소함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아... 맛있네. 마약김밥 인정. 특히 밥만 먹어도 좋을 마냥 간이 잘 된 이 맛이 참 좋다.
강화도 서문김밥.
다음 강화도 여행에서도 전채음이자 후식 같고, 사이드킥 같기도 한, 꼭 다시 먹고 싶은 김밥이다.
인디 음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새로움과 다양함,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고 배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뿜어내는 에너지. 그 에너지가 나에게는 위로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참 오랜만에 가는 공연이었는데 꽤나 알차고 푸짐한 경험을 하고 왔다.
싱어송라이터 이지카이트(Izykite)는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 든다.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곡부터 리드미컬하고 빠른 트랙까지. 소울, 인디팝, 발라드, 라운지,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결이 이어진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바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지카이트 만의 음색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게 소화된다. 그래서 장르를 넘나듦에 이질적이지 않다. 그만큼 음악에 깊은 열정과 긍정적 욕심, 용감한 시도가 느껴지는 아티스트다.
이번 공연은 홍대 벨로주. 100석 남짓한 소극장. 뒷자리에서도 아티스트의 표정 하나하나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졌다. 노래와 노래 사이, 허당미와 센스가 섞인 유쾌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사진도 찍고, 떼창도 하고, 공연 후엔 일일이 굿즈 증정과 사인을 해주며 한 두 마디 짧게 나누는 인사까지,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생각보다 짧게 지나갔고, 또 그 만큼 깊고 밀도 있게 채워졌다.
물론 인지도 높은 아티스트들의 대형 공연장만의 압도적인 매력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손도손 숨결을 나누는 소규모 인디 공연은 아티스트의 '그 인디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그 온도'가 있다.
이런것이 익숙해지면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도 생긴다. 더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나만의 비밀처럼 딱 이 상태 정도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이런 공연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 자체로서 이미 그런 오만한 이기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이지카이트의 음악이 지닌 에너지를 믿기에,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위로를 전해줄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아무튼 이 무대의 온기는 분명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프리굿즈
서문이 긴 버릇을 버릴 수 없어 요약을 앞에 두었고 이제부터는 그날 공연의 실제 흐름을 따라가본다
2023년 'Hey'라는 음악으로 처음 알게된 아티스트 이지카이트(Izykite). 평일에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고퀄리티 월요 공연을 제공한다는 먼데이프로젝트 시즌8로 홍대 벨로주에서 진행되었다. 공감가는 좋은 취지지만 역시 월요일 공연은 여러모로 힘들긴 하다. 그래도 나 외에도 팬심으로 똘똘 뭉친 영혼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공연 시작 후 가장 멀리서 온 관객 체크를 했는데 당일 비행기를 타고 온 제주도 팬분이 1등). 그리고 이지카이트도 여러분, 밥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텐데라며 걱정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Dave Little이 디자인한 Theater of Madness 포스터
평일/월요일 공연이라면 역시 1980년대 후반 영국 클럽신을 뒤흔들었던 Spectrum 클럽의 'Theatre of Madness' 이벤트가 떠오른다. 이비자 파티 신에 큰 영향을 받은 DJ 폴 오큰폴드와 이언 세인트 폴의 기획으로 대성공했던 매주 월요일에 열리던 애시드 클럽 하우스 파티였다. 이에 비해 얌전한 먼데이프로젝트도 월욜이 부담스러운데 30년도 훨씬 앞섰던 저 광란의 분위기는 무엇이었을까... 항상 궁금하다 (당시 영국 클럽신의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벨로주에서 도보 약 3분거리에 주차했는데 나와서 보니 서교동 버스 정류장을 비롯 아이 토미오카의 'missing you'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여럿 보인다. 좋아하는 음악의 뮤비와 동선이 맞으니 은근 기분이 좋다.
Veloso_홍대
벨로주 건물 도착. 무심코 지나가면 공연장인지 모를 건물 입구. 주차장 사이드에 이지카이트 공연 포스터 5개가 일렬로 붙어있다. 빈티지감성. 너무 일찍 도착해 주위를 잠깐 걷기로 한다 (벨로주 건물엔 주차 못하니 방문 시 유료 주차장 따로 찾아야 함).
저녁풍경 ❘ 갑자기 저 빵빵이 가방 사고 싶었다. 물론 장식용으로
오랜만에 오는 서교동 거리인데 자주 찾던 옛 시절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새로운 건물들도 있고, 업종은 바뀌었지만 옛 형태를 간직한 건물들도 있고, 레노베이션을 통해 여전히 운영 중인 가게들도 있다. 슬슬 어둑해지기까지 하니 지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짧은 산책.
| 입장
얼추 시간이 되어 드디어 입장~
벨로주 내부
사진은 공연 시작 직전이긴 한데 들어왔을 당시에 이미 꽤 차있었다. 오랜만에 오는 소극장의 공간감이 좋다. 발 뻗기 편하게 뒤쪽 복도 자리를 잡았는데 딱히 시야가 가리지 않는다. 오픈 채팅방으로 공연 중간에 소통할 수 있고 촬영은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 안 되는 선에서만 찍어 달라고 방송이 나온다. 단란 하면서도 밀도 있던 그날의 느낌 때문인지 앞에서 촬영하는 모습들도 거슬리지 않고 그냥 공연의 일부 같이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나도 부담 없이.. :))
출처: 벨로주 FB
벨로주 공연장은 115석 정도 확보되는 공간이다. 파란색 화살표는 입구에서 화장실로 가는 동선인데 거기 일렬로 위치한 자리가 가장 끝번호들이다 (106~115). 발 뻗기는 좋은데 화장실은 물론 무대로 통하는 관계자들의 동선이랑 겹쳐서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건 참고 (공연이 좋아서 딱히 방해된다고 느끼진 않았다). 덕분에 이지카이트도 완전 가까이서 보고 :)
| 공연 시작
아티스트 등장~ 라이브 음악팀은 키보드와 기타의 간단한 구성이다. 근데 이노무 핸드폰은 포커스를 못 잡는다. 근데 막상 또 보니 느낌이 좋아서 삽입. 이지카이트의 영상 볼 때마다 생각한 건데 오늘도 역시나 스타일리시하다.
소낙비
이 날 플레이리스트 순서는 두 곡 정도 부르고 이야기하고 식의 구성이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의 음악들은 물론 미발매 곡들도 몇 개 들려주었다. 디스코그래피가 어마어마하게 많진 않아서 좋아하는 곡들은 전부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이지카이트 - 소낙비 쇼츠 | @versebox
특히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소낙비'가 두 번째 곡으로 나와서 더욱 반가웠다. 한 여름에 참 듣기 좋은 편안한 노래다.
| 좋았던 포인트들
키워드 토크 중
토크타임은 다음 곡들 소개가 주를 이뤘는데 좋아하던 음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전남친 생일날 다툰 이야기까지..:)). 그 외는 아티스트에게 궁금했던 키워드 토크나, 카톡 오픈채팅방을 통한 실시간 리액션에 대한 반응, 릴스 찍기, 이 외 잡담이었다.
"여러분, 제가 너무 말이 많나요? 자꾸 뒤에서 끊으라고 사인 주시는데 ㅍㅎ핫"
빵 터진 말 중에 하나였는데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나보다. 입담도 좋고 센스도 있고 약간의 허당미도 있고 많은 웃음을 전해준 토크 타임이었다.
요약에서 언급했듯 슬로우-미드-패스트 템포의 빠르기 및 장르까지 워낙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어 공연 중 분위기도 쉽게 전환된다. 감미로웠다가 유쾌함으로, 경쾌하다가 낭만적으로 등등. 그 만큼 콘서트 때 마다의 코오디네이션이 중요해 보인다.
미 발매 신곡, 'Stay'는 유일하게 직접 건반을 치며 불러주었던 노래다. 건반과 목소리 하나에 의지한 아주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라 퍼포먼스 중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 관객과의 상호작용
Take it IZY
이지카이트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아티스트다. 본인 자체가 ‘흥’으로 둘러싸인 사람처럼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쏟아낸다. 손뼉이나 제스처는 물론, 떼창까지도 노래 전 미리 ‘학습 타임’을 두며 관객의 참여를 끌어낸다. 관객이 따라 부르면 이지카이트는 중저음 화음으로 곧바로 응답하며 무대를 함께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빠르거나 미드템포 곡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무대 위에선 좌우를 고르게 오가며 눈을 맞추고, 촬영 중인 관객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무대 앞 서너 줄 정도만 보인다는 조명 아래서도 끊임없이 뒤쪽까지 시선을 보내려는 노력도 보였다. 공연 내내 그녀는 쉼 없이 움직이며 관객 한 명, 한 명과 연결되려 했다.
Hey
'Hey'의 "렛미세이 헤이!" 떼창
촬영하는 관객에게 손 흔들어 주기
눈맞춤
좌우 관객의 사진기로 촬영 후 돌려주는 모습. 좌측 관객 핸드폰은 떨어뜨릴 뻔해서 모두 헉! 했는데 (다행히 해피엔딩), 이 외에도 중간중간 발생한 돌발 모습들이 공연의 사이드 추억으로 남는다.
여름 안에서
엔딩곡 바로 전 분위기 최고조를 위해 이지카이트가 떼창을 요청하며 띄운 듀스의 '여름 안에서.' 짤의 입모양은,
"(너는) 푸른 바.다.야."
일단 재작년 유튜브에 올린 [여름 노래 MEDLEY]에서도 이 노래를 부른 걸 보면 본인의 사욕이 더 넘친 건 아닌지 :) 암튼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노래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세월을 관통하는 스테디셀러라..) 관객들 다 잘 따라 불러서
나도 감사히 자신 있게 따라 불렀다(!?!)
였지만, 역시 서연 커버였고.. 난 듀스를 생각했고..ㅜㅜ
둘의 차이점은 "난 너를 사랑해" 후렴구가 서연 버전에서는 처음에, 듀스 버전에서는 나중에 나온다는...
2023년 최정윤과 함께 부른 청량한 여름노래 메들리 (산책, 여름 안에서, 그 여름을 들어줘, 여우야, Dolphin) 중 '여름 안에서'는 재생버튼 누르면 바로 시작된다 (1:11).
| 춤신이 되고픈 꿈
노래 템포에 상관없이 제스처가 굉장히 많은 친구다. (위 움짤은 율동이긴 하나) 비트가 좀 있는 곡들에서는 모든 순간 그루브도 잘 탄다. 요즘 본인 춤이 많이 늘었다고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춤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지카이트(Izykite)의 장르가 다양하다 보니 1~3곡 정도의 자리라면 어느 공연 공간에라도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다. 가령 위 'Diver (SOQI remix)'와 'SOS'라면 클러빙 공간에서 퍼폼을 해도 손색없을 트랙들이다 (참고로 공연에서 'Diver'는 오리지널로 불렀다).
| 엔딩 Pt.1
다이버
8시 정각에 시작한 공연, 9시 30분을 향해가며 어느덧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넋을 놓고 즐기다 보니 시간이 정말 '훅' 하고 지나갔다. 흥겨운 '여름 안에서' 후 엔딩곡은 칠(Chill)함과 일렉트로 사운드가 인상적인 신스웨이브 느낌 가득한 'Diver'였다.
그리고 퇴장 전 포토타임. 포즈는 뭘로 할까 고르는 장면이다.
"여러분 V로 할까요?"
"아 맞다, 선거 기간이라 손가락 안돼요. 혹시?? ㅍㅎㅎ 딴 걸로 해요."
마지막 작은 토크 타임 웃음벨의 순간이었다. 저 손가락 세 개는 이지카이트의 '3 seconds' 노래 제스처 때문에 나왔고 결국 파이널 포즈는 하트로 마무리.
공연 포토타임이라 찍은 사진은 없어서 인스타 업데이트된거 퍼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 짜고 맞추는 페이크 엔딩과 여러분 안녕.
| 진짜 엔딩
하지만 이미 공연 전부터 공지한 사인회와 선물증정 시간 일정의 시간 압박이 있었기 때문인지 앙코르 외침 이후 거의 무릎반사 수준으로 곧바로 다시 만나게 된 이지카이트.
마지막 앙코르송은 '눈맞춤'
대단원의 마지막
| 대단원의 마지막 그 다음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 사인회가 남아 있다. 유명인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오늘 꽉 찬 밀도의 공연의 마지막 끝까지 관객 한 명 한 명과 상호작용 하고자 하는 이 아티스트의 노력에 대한 관객 입장에서의 존중을 표현해 줄 차례였던 것 같다. 물론 시간 상의 문제로 먼저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사인을 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가지고 온 사진들을 여러 장 준비하는 열성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약간의 새치기도 있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워낙 너그러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나도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진짜 시간은 없고 아티스트를 만나고는싶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리고 뒤 쪽에 위치한 부스에서 진행을 하다 보니 차례는 맨 뒷줄부터였다. 웬 개꿀?? 거의 뒷 쪽 자리라 꽤나 일찍 차례가 왔다. 맨 앞자리에서 못 본 것에 대한 배려라고 받아들였다. 암튼 마지막 유명인 사인받아본 게 누군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한 30여 년도 더 지났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진 빠지는 공연 이후 100여 명의 관객에게 일일이 사인해주는 것도 힘들 텐데 웃음을 잊지 않고 진행하는 모습, 리스펙트! 사인 용지가 많아도 다 해주고, 촬영 요청도 다 들어주고. 누군진 말 안 하겠지만 아주아주 옛날에 이런 거에 거들먹거리던 꼰대 영화배우들도 꽤 봤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또 한 번 리스펙트!
이 빨간 티 분은 내가 아니다
그냥 감사합니다 정도로 예상하고 사인을 받는 거였는데 "공연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와 되게 좋았다고 답했다. 뒤에 사람도 많은데 시간도 아끼고 의례 예의처럼. 근데,
"뭐가 좋았어요?"
두 번째 질문이 훅. 들어왔다. 당황했다. 보청기를 끼지 않은 날이라 잘 안 들려서 "네?"하고 고개 숙여 다시 물었더니 사인 중 다시 말한다 "뭐가 좋았어요?"
아... 전체적으로 좋았다고 첨에 말한 것에 대한 반응, 질문이 잘 안들려서 뭔소린가 되물었더니, 뭐가 좋았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
자신의 공연에 대한 관객의 마음이 정말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소낙비'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아 어떠케.. 너무 처음에 들려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아뇨, 처음에 들어서 더 좋았기 때문에 좋았어요"라고 말은 했는데 그런 시간의 압박 속 바쁜 와중에 계속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렇게 사인과 함께 프리 굿즈를 선물 받고 인사하고 나왔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음악이 다양해서 너무 좋아요였는데 말이다 :)
최종장의 끝 시점까지 무언가 계속 서로 오고 가는 이런 밀착된 느낌의 공연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관계자들 입장에선 두 시간의 긴장 속 아슬아슬하게 시간 딱 잘 맞춘 공연 아니었을까?
아티스트와 관계자들은 시간의 압박에 쫓겼을 것 같은데(나만의 생각이긴 함),
관객들에게는 그런 압박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이것이 역설적이지만 너무 좋았다
이런 게 몰입감이지!
공연장을 나오며 머릿 속에 떠올른건 건 두 개. 오늘 공연 너~무 좋았고, 두 번째는 공연 후기 앙케트 메모를 적지 않은 게 너무 미안했다. 보통 사람 앞에서 직접적인 코멘트는 안 하는지라 빈 메모를 두고 나왔는데 사인회 시점까지 한마디라도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니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응원의 글이라도 짧게 남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ㅜㅜ
대신 그 날 12시 종료인 단톡방에 솔직후기를 남겼습니다
| 공연 이후
CU서교보석점
암튼 오랜만의 좋은 공연의 잔향이 떠나지 않아 근처에 있는 아이 토미오카 촬영지였던 편의점에 들러 뭐라도 먹을까 해서 가봤다. 근데 많지 않은 외부 자리는 꽉 차 있었고 뮤직비디오 구도인 바로 앞에서 찍기엔 상황이 좀 그래서 멀리서 찍고 그냥 돌아왔다. (토미오카 아이 한국 촬영지는 아래 링크 참조)
집으로. 월요일이라 그런진 몰라도 공연장 3분 거리에 서교동 사거리 주차장의 5,500원의 저렴한 가격도 좋았다. 대로변 사거리 신호등 바로 전에 위치해서 들어올 땐 쉬워도 나갈 때 차가 꽤 밀렸는데, 역시나 한 차 두 차 세 차 네 차 악셀을 밟으며 무서운 속력으로 신호등 켜지기 전/후 내 차가 못 나오게 차 간 거리를 좁히며 압박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오라고 양보해 주신 한 천사 택시에게 감사!!!
암튼 여러모로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그날 사인과 프리 굿즈 모음
| 트리비아
그리고 마지막 트리비아, 이지카이트의 이번 신곡, '루벤(Reuben)'. 젊을 때 실컷 먹어둬야 하는 꿀맛의 샌드위치다. 공연에서도 "신곡 루벤, 샌드위친거 아시죠오옹!?"하고 프리굿즈 뱃지에까지 포함한 것을 보니 이지카이트는 이 샌드위치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아래는 위키 설명인데 감성 없는 차가운 글일 뿐인데도 식욕을 자극한다.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조합이다
출처 ❘ wikipedia
'3 Seconds'라는 곡인데 어디에서든 관객과의 음악적 소통을 노력한다는 점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지카이트의 영상이다.
About | 이지(Izy)연(Kite)
이 글에서 인디라고 해서 이지카이트(Izykite)가 갓 데뷔한 신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꽤 경력이 쌓인 아티스트다.메이저가 아닌 숨겨진 보석같은아티스트일 뿐, 올해로 4년 차. 공연, 뮤직비디오, 유튜브 콘텐츠도 꾸준히 쌓여 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1만, 유튜브도 8천 명 이상이 구독 중이다. 최근엔 고향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 시구도 했다. ‘나만의 가수’라는 표현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일 뿐, 실제로는 초창기부터 꾸준히 응원해온 팬들도 많을 것이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싶어 이런 배경을 덧붙인다.
2025.5.2 대구 구장 시구 모습
-긴 글의 끝이지만 잔향은 여전하다-
(2025.5.29 업데이트)
유튜브에 공연 실황 풀영상이 올라와서 공유함
출처 | 유튜브@88pk1
& 그날 플레이리스트
우리의 어둠에 별이 내려오네 소낙비 Reuben Take it IZY 독립 여름밤 그럴 때마다 키워드 토크-1 Stay(미발매곡) 흑백영화 HEY SOS Not That Girl 3 Seconds 아침이 오는 건 알지만(미발매곡) 여름안에서(Original by 서연)_cover Diver 눈맞춤
슬슬 해가 지며 가로등과 건물 조명이 하나씩 켜질 때 즘이면 남을 사람 남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나는 시점이다. 보통 낯 시간대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곳이라 텅텅 빈 느낌이 난다. 때문에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거의 낯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저녁과 밤 풍경의 기록도 남겨본다.
해질녘 타이오마을 앞바다
시장 대부분 가게가 영업을 마쳤다. 남아 있는 곳도 물건을 팔기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다른 가게보다 늘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던 수산물 가게 (왼쪽)
금요일 저녁 8시 풍경.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았고 가게 앞 테이블과 의자만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 불이 켜진 가게도 있었지만 판매보다는 여름밤공기를 맞으며 쉬고 있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마켓 스트리트 끝자락의 유일한 ATM
HSBC 현금 인출기.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을 위한 곳. 24시간 운영이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지만 주변은 이미 조용하다.
🔎 위치 - HSBC Express Banking : Block D, G/F, 25 Tai O Market St, Tai O
숙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자주 마주쳤던 곳. 낮에도 밤에도 사장님은 늘 문 앞에서 사람을 살피고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후 검색해 보니 짠내투어 방송에 나왔던 식당이다. 구글맵과 오픈라이스에 하도 안 좋은 리뷰가 너무 많아서 가진 않았다.
펜스에 쳐져 있어 볼 때마다 뭔가 했는데 타이오 마켓 (大澳街市)이라 써져 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닌데 뭔가 현지인을 위한 시장 같은 분위기다.
🔎 - 그럼 타이오 마켓 스트리트와는 무슨 차이? 타이오 마켓 (Tai O Market)은 홍콩 식품환경위생처(FEHD)가 운영하는 공영 실내 시장. 마켓 스트리트 Market Street는 노점과 임시매대 중심의 야외거리형 상권으로 기념품, 즉석 간식 등 관광객 대상 품목이 주를 이룬다 - FEHD Hong Kong Market List / islet Forum
우연히 들어간 식당인데 늦은 시간까지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준 고마웠던 집, Zhen Zhen Restaurant (진진찬청). 하이난 식 치킨 계란 볶음밥과 초이삼(채심)을 사이드로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딱히 놀라운 건 아니지만 타이오처럼 작은 마을에도 무인 인형 뽑기 건물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일본과 마찬가지로 24시간 뽑기 공간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벤치의 길냥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다 빠져나간 게 심심했는지 내 옆에 다가와 하도 앵겨서 1분 정도 같이 놀아주었다. 타이오마을에서는 큰 개, 고양이가 모두 주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서울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그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
에어컨 실외기와 투박한 성당 유리창의 조합. 십자가 위에 실외기가 박혀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창문은 성당에서 흔히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나 란셋창은 아니지만 저렴한 재료로 대체되어 투박한 모습이다. 재료나 완성도는 다르지만 성당 창문의 기본 틀과 비율은 유지한다. 종교적 느낌 또한 시골 동네 풍경 속 패턴처럼 녹아 있다.
성당이 운영하는 초등학교 건물 내부. 간단히 천으로 덮은 제단, 플라스틱 의자, 수납 박스들. 모든 것이 기능 중심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보통 성당 예배 공간은 뭔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곳은 누군가 정리하다 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친근함이 있다.
그 공간의 외벽에는 철망 너머로 내부가 드러나고 있다. 건물 아래쪽 외벽엔 아이들과 십자가, 책이 그려진 벽화가 이어진다. 장식이라기보다 이 건물이 어떤 장소인지를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표식 같다.
철제 게이트는 홍콩 주거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인데 디자인 자체가 낡아서 그런지 레트로한 느낌이 좋았다.
타이핑 거리 (Tai Ping Street) 쪽 수상가옥 풍경. 정박된 보트들이 있는 걸 보니 여기까지 물이 들어와 배로 왕래가 가능한가 보다.
셕차이포 거리 (Shek Tsai Po Street) 주거지역 풍경. (물론 외적 아름다움 보다는 현실적인 생활방식 관점에서의 유사성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지만)타이오마을을 흔히들 '홍콩의 베니스'라고 부르는데 딱히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낯선 느낌의 깡통 같은 컨테이너 형태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옛 대형화제의 피해 영향도 있었을까 생각 해 보았다.
2000년 대형화제 ❘ 출처: thingstodoinhk.com
🔎 - 2000년 대형화제로 인해 약 100여개의 수상가옥이 손실되었다
푸른 조도 아래 보이는 깡통 건물 그리고 전선과 안테나. 신기한 느낌이다. 만약 팀 버튼이 동양인 감독이었다면 이런 세트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깡통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마을 뒤쪽 지역으로 가면 고층 아파트도 있다 :)).
타이오 마을 주거지의 특징 중 하나. 앞마당/코트야드 공간을 가진 집들이 그 공간을 자율적으로 꾸며놓았다. 어떤 집은 휴식을 위한 야외 거실이나 미니 카페처럼, 어떤 곳은 공방 혹은 창고처럼, 또 어떤 집은 정체불명의 '생활 복합 공간'으로. 가구 배치와 물건 종류, 구성이 집집마다 다르고 독특하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호코라처럼 이곳에서도 중소형 규모의 신단 같은 구조물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관광객이 떠나고 수호신들이 텅 빈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분위기다.
작은 신당들과 이런 깃발이 있기에 홍콩 시골마을의 정취를 더 진하게 느끼게 해 준다. 드래곤보트 이벤트가 열리면 이런 모양의 깃발 수십수백 기가 마을 전체를 수놓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운을 풍기며 옛 홍콩 무술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빛을 비춰주는 아기자기한 등룽들, 역시 소박한 느낌의 시골길 정취다.
마을을 걷다 보면 DIY 스럽게 조합된 다양한 구조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고정하고 연결하는 방식은 꽤나 원초적인데 주위에서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당장이라도 조립해 만든 듯한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줄로 묶고, 매듭을 짓고, 엮어 이어온 옛 어촌의 방식이 전선과 철제 봉, 장식 조명과 같은 현대의 재료들과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지금 이 마을의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여의도 구역에서는 도심 전경, 상업지, 주거지가 고루 등장한다. MV의 시작과 끝을 모두 여의도로 설정해 여정의 입구이자 출구처럼 기능한다.
좌측 하단 이미지는 서강대교 남단 방향의 항공뷰, MV의 마지막 장면으로 쓰였다.
우측 하단은 수정·한양아파트 사이 틈새에서 롯데캐슬아이비를 바라본 장면으로 여의도 주거지 일대의 생활감을 볼 수 있다.
여의도 클로즈업 장면 중 대표적인 건 IFC몰 내부다. 노조미는 마치 쇼핑 온 관광객처럼 등장하며 MV 전반에서 그녀가 주로 등장하는 성수, 강남, IFC몰 등 트렌디한 지역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반면 무카데는 여의도 쇼핑센터 앞, 수정아파트 뒷편, 브라이튼 중앙처럼 보다 소박하고 일상적인 공간에 등장한다. 딱히 큰 의미는 없지만 이런 식의 대비되는 구도로 MV가 전개된다.
📍이태원
🗺 해밀턴호텔 일대 (세븐틴 코인노래방 / 시티백 / 해밀턴 호텔 뒷골목 / 젤라띠젤라띠 앞 / 티키타카 / 타파스바 / 더맨션 / 삼거리 교차로 / 솜브레로 골목 등)
이태원 촬영지MV 촬영지: 지도랑 숫자 맞춰보면 된다
이태원 구간은 MV 전체에서 가장 많은 컷이 배치된 지역이다. 구성은 골목, 간판, 교차로, 인물 위주로 이어진다. 특히 해밀턴호텔 일대의 밤 풍경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노조미는 이곳에서 전후반부 클라이맥스를 펼치는데 이태원 특유의 화려하고 혼란스러운 야경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적셔노래방, 여보여보가 보이는 시티-백 간판 ❘ MV
특히 눈에 띈 건 간판 속 단어들이다. ‘적셔(JJeok Syeo)’는 한국 특유의 소주 문화 코드, ‘여보여보’는 오래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신을 떠올리게 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 둘이 화면에 잡힌 건 꽤 흥미롭다.
강남역은 세대 불문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지만 MV에선 한산한 시간대의 골목과 상가 사이에서 촬영된 장면이 주를 이룬다. 텅 빈 듯한 화면 속에서도 공간 자체는 강남역답게 익숙하다. 노조미가 음료를 마시는 곳은 맘스터치랩인데 예전 공차 건물이라 그런지 공차스러운 창문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마포(광흥창역 주변)
🗺 창전로 54 공중전화박스 / 광흥창역 엘리베이터(원통 구조물) / 창전사거리 횡단보도
광흥창 역 일대 촬영지
홍대는 뻔했을까. 그래도 마포 자체를 피해가지는 않았다. 독막로의 창전사거리와 광흥창역 주변이 꾸준히 등장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공중전화박스. 토미오카 아이의 MV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등장했다. 한국과 일본의 Z세대 모두에게 공중전화는 이미 낯선 사물이다. 이 세대들에게 레트로 감성으로 소비되는 건 동일하지만 일본의 경우 재난이 많아 그런지 비상시 통신 수단 정도까지는 인식된다고 한다.
(좌) 노조미 키테이 MV ❘ (우) 아이 토미오카 MV
공중전화 박스는 Z들에게 대체 어떤 느낌인걸까? 지금 어른들이 워크맨이나 디스크맨을 보는 그런 느낌이랑 유사할까?
📍연희동
🗺 Studio Colin
연희동은 Studio Colin이라는 대여 스튜디오에서 촬영되었다. 연희동 산중턱에 자리한 이곳은 실제 집처럼 구성되어 있어 그런지 MV에서 이들이 여행 중 머무는 에어비엔비 숙소처럼 느껴진다. 경쾌한 음악에 맞추어 도시의 장면들이 리듬감 있게 교차하는 MV 관점으로 보면 여행 중 잠시 머무는 장소조차 그 감정의 흐름 안에 포함시킨 것 같다.
스튜디오 콜린 ❘ 출처: http://www.filmmakers.co.kr/locationBank(시계방향) BTS, Shaun x OVAN, 악뮤, 런닝맨
※ 2018년 오픈한 Studio Colin은 정원과 테라스, 루프탑 뷰까지 갖춘 단독주택형 자연광 렌탈 스튜디오로, BTS, 악뮤, 런닝맨 등 다양한 영상/화보 콘텐츠의 촬영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한류 느낌이 강한 촬영지 픽으로 느껴진다.
명동에서는 좁은 골목과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가 함께 등장한다. 이태원과 더불어 저녁 장면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다. MV 안에서는 복고풍 거리와 리뉴얼된 건물이 교차하며 낡음과 새로움이 나란히 놓인 공간처럼 비춰진다.
📍성수. 자양
🗺 서울숲 / 서울플랫 ✅ Bird's Eye View, 커먼그라운드, 삼익빌라 골목
성수와 자양 구간은 서울숲과 커먼그라운드, 삼익빌라 골목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MV에서는 붉은 벽돌과 톤온톤 때문인지 한눈에 잡히는 에피소드성수101이 보이는 버즈아이뷰와 함께 클로즈업 공간으로는 서울숲이 등장한다. 자양동에서는 커먼그라운드 및 그와 인접한 삼익빌라 골목에서 촬영되었으며 한국 빌라촌 특유의 정서가 공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나무와 수변이 어우러진 열린 풍경을 배경으로 한 서울숲은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MV 전반에서 각자 독립적으로 비춰지던 두 캐릭터의 동선이 겹친다 (이후 노래 제목처럼 강남역과 명동에서 실제로 'Be the One'이 되어 함께 춤을 추며 MV를 마무리).
2024년 2030 여성 관광객 비율 ❘ 출처: 매일경제
성수동은 일본 매체에서도 ‘지금 서울’을 상징하는 트렌디한 동네로 언급된다. 또한 2024년 기준 방한 통계를 보면 일본 뿐 아니라 중국-대만 모두 2030 여성 관광객들이 압도적인 수준을 보인다 (그 중에서도 방문지는 성수동 압승). K-Pop과 한류 컨텐츠 및 뷰티의 영향이 커 보이는데 MV 촬영지들 또한 이런 부분들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 기타:
영상의 시작인 원효대교뷰와 엔딩인 서강대교 남단뷰
뮤직비디오에서 버즈아이 뷰 등을 통한 넓은 풍경 장면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시점은 인물들의 클로즈업 퍼포먼스 장면들과 교차되며 서울이라는 도시의 스케일과 입체감을 시청자에게 인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장면마다 지역은 달라도 반복되는 시야와 리듬 덕분에 하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흐름처럼 느껴진다.
Nozomi Kitay & GAL D - Be The One feat 百足 MV
여의도 (순복음교회 방향 항공 뷰 + 브라이튼 일대 고층 배경)
원효대교 전경 (MV의 시작)
서강대교 남단 / 밤섬 방향
성수동 서울플랫 일대 및 서울숲 인근
🎤 노조미 키테이 (Nozomi Kitay 無所属 )
기사 갈무리 ❘ 출처: 스포츠경향
일본 후쿠오카 출신의 R&B 싱어송라이터. 'NØZ'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해 2023년부터 본명으로 전환,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청소년기 약 3년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지내며 가스펠 합창단과 아카펠라 팀 활동을 한 경험이 스타일의 기반이 되었다.
2024년 싱글 〈Moshi Moshi〉는 일본 내 1.5억 스트리밍을 기록했으며, 에스파 카리나, 트와이스 미나·지효, 아이브 레이 등 국내 K-팝 아이돌들의 챌린지 참여로 큰 화제를 모았다. 첫 단독 콘서트 〈BE THE ONE〉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 확장에 나섰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토미오카 아이(Ai Tomioka)가 서울 곳곳을 배경으로 담아낸 뮤직비디오 ‘missing you’. 홍대·성수·여의도·마포 등 일본의 젊은 관광객들에게도 이미 익숙한 이름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수차례 버스킹과 협업 무대를 이어 온 그녀에게 이 도시는 관광지라기보다 기억이 겹쳐진 사적인 무대처럼 보인다.
서울촬영지
뮤직비디오의 동선은 한국의 젊은 세대가 '감성'을 소비하는 장소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처음 서울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에게도 참고가 될 만큼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깊어 보인다.
📍 마포 📍 여의도 📍 홍대입구 📍 문래동 📍 성수동 📍 해방촌
1. 마포대교 북단: 서울 여정의 시작
마포대교 북단 뒤로는 마포현대타워와 오벨리스크 아파트도 살짝 보인다
촬영지:
마포대교 북단 (강변북로 진입램프)
강변북로 드라이브 컷 (공덕 헨켈 타워 뷰)
포인트: 여러모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포대교 북단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한남대교 방향으로 진입한다. "쟈, 서울 여행... 스따또 합니다~"라는 느낌의 짧은 인트로로 여정의 시작을 알린다.
2. 여의도 한강공원: 도심 속 여백
촬영지 (여의도 한강공원):
인라인스케이트장(서강대교)
산책로 (우측으로 서강대교 뷰)
물빛무대 앞
포인트: 물과 도시가 만나 생겨난 휴식공간. 한강공원은 서울이 품고 있는 '여백'을 가장 아름답고 편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넓은 강 폭으로 인해 탁 트인 풍경은 비단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 여행자에게도 매력적인 장소가 아닐까.
포인트: 뮤직비디오의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해방촌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또 다른 서울의 감성 지역이다. 좁고 높은 골목길과 계단이 독특한 정취를 만들며 근현대 역사의 기억과 침묵이 함께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신흥로20길을 따라가며 찍었던 후암동 사진
고지대에 위치하여 각 골목들 사이사이에서 연출되는 풍경들 또한 인상적이다
영화 기생충 속 도닥다리의 모습
영화 <기생충>에서 폭우를 맞으며 가족이 내려가는 장면이 근처 도닥다리에서 촬영되기도 했다.
| 마무리
낡은 계단, 한강의 여백, 철골의 골목, 편의점의 불빛. 때로는 고요히, 때로는 인파 속을 스치듯 흐르는 감정들. 한국 Z세대가 감성을 소비하는 공간들을 호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일본의 Z세대 아티스트가 스며들 듯 지나갔다.
그녀에게 서울은 외지지만 낯설지 않은 도시였는지도 모른다. 일본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던 ‘버스킹 팁 챌린지’처럼, 새로운 공간을 향해 스스로를 던지는 일은 때론 낯선 곳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들에게는 낯선 도전이라기보단 오히려 익숙한 삶의 방식일 수 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 위에, 그렇게 그녀만의 작은 흔적을 조용히 남겼다.
| 기타:
冨岡 愛 Ai Tomoioka - missing you MV 2024.9.18 발표
그녀의 음악 세계는 호주에서 성장하며 들었던 에이브릴 라빈, 테일러 스위프트 등 서구 음악과 일본 밴드(ZARD, 엘리펀트 카시마시)의 감수성을 고루 흡수한 결과다. 또한 K-팝과 한국의 아티스트, 특히 스키니 브라운(Skinny Brown)을 "직관적으로 멋있다"라고 언급하며 한국 음악에도 깊은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2023.11 Vogue Korea 인터뷰).
冨岡 愛 Ai Tomoioka - missing you (Behind The Scenes)
2024.9.20에 발표된 촬영 비하인더신 영상, 쿠키 같은 영상이다.
한국에서 공연을 꽤 많이 하는 아티스튼데 '25년 4월 27일에도 KT&G 상상마당 홍대에서 단독 팬콘서트가 열린다. VIP는 이미 동 났고 아직 일반표가 남아 있어 가볼까 했는데 이 몸 상태에 한 시간 스탠딩은 너무 부담스러워 훗날 🪑의자가 있는 ㅜㅜ 콘서트 주최 바람을 해보며 포기했다
신예 일본 래퍼 Litty(리티). 두 번째 싱글 〈Thinkin' Bout〉(2024.12.17) 뮤직비디오는 '잠든 뒤 꿈속에서 도시를 거닌다'는 설정 아래 서울 로케이션(익선동, 종로 3가)과 스튜디오 컷을 교차 편집한다. 2‑3초 안팎의 짧은 컷 편집 구조는 음악의 리듬과 잘 어울린다
종로3가
서울 로케이션은 진짜 쓱 훑고 지나간 느낌이지만 그럼에도 Litty가 추구하는 음악 감성—도시, 스트리트, 젊음—을 한국의 로컬 공기를 통해 어느 정도 담아낸 점이 흥미롭다.
리티가 잠에 들고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릿하게 하는 공간감 없는 몽환적 스튜디오 씬이 지나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익선동 한옥마을의 밤거리. 2010년대 중반 즈음부터 2030(특히 여성) 세대가 이끈 ‘뉴트로 성지’. Y2K, 스트리트, 도시 감성을 추구하는 Litty(리티)와 잘 겹친다.
익선 세겹살도 보이고
좁은 골목, 리모델링된 한옥, 간판 불빛의 교차. "꿈에서라도 다시 너를 만나면, 그게 좋은 날이야”라는 가사와 맞물려 꿈 속 특유의 파편적인 기억을 환기한다.
Litty의 'Thinkin Bout'은 흔들리지만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복잡한 결들을 담고 있다.
여긴 귀금속 거리로 보임
겹겹이 쌓인 시간, 상반된 의미, 그리고 다층적인 모순과 모호함들. 익선동 역시 한 가지 얼굴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과 기억이 스며 있는 공간이다.
MV에서 특정할 수 있는 한옥마을의 촬영지는 마이포에트리뿐이었다. 장면들이 워낙 빠르게 흘러가고 몽환적인 느낌 때문인지 디테일한 단서들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 2. 종로 3가 포차거리와 단성사
MV
리티가 MV 속에서 자리 잡는 포차 장면이 매우 흥미로웠다. 바로 단성골드주얼리센터 건물이 뒷 배경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원래 단성사 영화관이 있었던 터로, 1907년에 지어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이었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를 상영하는 단성사에 몰려든 대중들의 모습 ❘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특히 8,90년대 전성기 시절, 근접한 피가디리, 서울극장과 함께 종로 3가 트라이앵글 극장가로 불렸던 한국영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간. 나운규의 <아리랑, 1926>을 상영했고 대한민국 현대시절 역대 흥행작들인 <겨울여자, 1977>, <장군의 아들, 1990>, <서편제, 1993>등이 이곳에서 개봉했다.
단성사 건물의 어제와 오늘
하지만 멀티플렉스라는 시대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2008년 역사의 뒷 켠으로 사라졌고 지금은 단성골드주얼리센터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리티 커플 입장. 아티스트 및 MV 관계자들이 이 터의 역사적 의미를 알고 촬영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한민국 근현대 격변의 시간을 품은 이 장소에 Z 세대 일본 아티스트가 한국식 야장 풍경을 담는 장면은 세월의 간극을 조용히 실감하게 했다.
포장마차는 종로 3가 3호선 2-1번 출구 쪽 춘천닭꼬치라는 곳으로 추정된다. 기대했던 소주 한잔 탁! 걸치는 모습은 볼 수 없는데 매운 닭꼬치나 떡볶이를 먹(여주)고 있는 것 같다. 포차에서 알코올 없는 밤이라니!
포차 장면 후, 리티와 동행인은 종로3가 1호선 구역을 벗어나 5호선 익선동 방면 포장마차 거리(3~4번 출구 사이)를 배회한다.
부산집 풍경이 스쳐간다 (돈의돈 55)
길목에서 부산집(추정) 포장마차를 스쳐 지나가는 컷이 확인된다.
5호선 3~4번 출구 사이의 포차거리를 거닐고 있는 모습이다
코로나 이후 2022년부터 종로 3가 포차 거리는 한국 20‑30대 사이에서 ‘야장 성지’로 부상했다. 리티의 영상에서 많이 보이는 ‘도시 밤 문화’라는 정서와 은근히 맞물린다.
후쿠오카 야타이 ❘ tsunagujapan.com
한국 포장마차는 일본 야타이와 유사하지만 골목을 가득 메우는 천막 열과 번잡한 노상 분위기로 또 다른 감성을 만든다. 서울 시내에 전통 노상 포차가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포차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지만 이를 잘 정비한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독특한 관광 아이템으로 다시 빛날 여지가 크지 않을까?
종로3가 5호선 4~5번 출구 사이의 야장 포차거리 ❘ 본인사진
평소엔 저렇게 꽉 들어차는데 어떻게 그런 타이밍에 자리를 잡았는지 신기할 따름 (다른 구역이긴 하지만).
🏨송도 Holiday Inn은 왜 나왔을까?
MV의 시작은 잠자리에 들며 꿈속으로 들어가는 리티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꿈의 입구인 셈.
인천 송도의 홀리데이인 호텔이다. 다만 인천 송도와 서울 종로라니. 전체 흐름 속에선 다소 동떨어진 공간감이다.
홀리데이인 송도 ❘ MV
어쨌든 짧은 여정이 담긴 MV였지만 그 안엔 기대했던 Litty다운 감성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 데뷔곡〈Pull Up〉이 출발선의 에너지를 노래했다면 〈Thinkin' Bout〉은 머무름 뒤에 남는 잔흔을 기록한다. 뮤직비디오 속 서울은 순식간에 교차하지만 어둠과 네온, 좁은 골목의 체온이 겹쳐지며 리티의 음악 속에 담긴 ‘흔들리는 정체성’을 또렷하게 남긴다.
인천송도에서 서울 종로까지는 약 55km의 거리다
아마도 이 영상 자체를 서울 밤거리 브이로그처럼 느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여행의 시작이었는지 밤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서울과 동떨어진 이 위치 덕분에 ‘잠깐 머무는 외국 관광객’의 현실감이 살아나고 이어지는 2‑3초 서울 컷들 역시 여행 뒤 머릿속을 스쳐 가는 단편적 기억처럼 느껴진다.
〈Click〉은 서울 실사 로케이션과 CG 도시를 오가며 ‘한국적 공간’ 위에 ‘일본식 봄 정서’를 레이어링 한다.
Click MV 촬영지
| 촬영지 한눈에 보기
공덕동 : 대한통운 유료주차장 옥상
이촌동 : 한강철교 북단 보행육교(현대아파트 앞)
잠실 : 한강공원 제1주차장 난간
일본 팬층 성별 비율(Nikkei Entertainment, 2024) ❘ 출처: Reddit
참고로 Nikkei Entertaiment의 일본 내 걸그룹 팬층 성별 비율 집계를 보면 ME:I 팬의 78 % 가 여성층이다. 그러다 보니 영상 구성이 ‘분홍 퍼 + 봄비 + 우산’ 같은 여성향으로 설계된 것 같다. (흥미롭게도 NewJeans·CUTIE STREET = 남·녀 50:50 교차점)
🛵 1. 공덕동 옥상, ‘벚꽃톤 판타지’의 시동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로 CG 벚꽃 잔상이 흩뿌려지고, ME:I가 등장한다. 실제 나무 한 그루 없이도 ‘봄’은 호출된다. 공개일(2024‑03‑25)은 벚꽃 개화기와 정확히 겹친다 (위치: 공덕동 대한통운 유료주차장)
봄의 벚꽃 분위기를 연상 시키는 오프닝 ❘ MV
라이더들이 모는 것은 야마하·가와사키 스포츠 바이크(추정), 대기 중인 차량은 현대 Kona에 분홍 퍼(fur)를 입힌 커스텀(추정). '한국적 공간 + 그 안에 일본 감성 삽입'이라는 밸런스 공식인데 전체 뮤직비디오에서 전개된다. 후편인 <Hi-Five>과 유사한 방식이다.
GPT에 따르면 야마하 모르피스, 야마하 250, 카와사키 닌자라고 하는데 확실한 지는 모르겠다. 전문가님들 헬프 플리즈 ❘ MV
MV 속에서 실제와 버추얼 공간을 이어주는 핵심 요소들이 이 모빌리티들인데 ‘접근성’과 ‘이동’이라는 측면에서 테마와 실제 공간의 매칭이 잘된다 (공덕동은 공항철도·홍대에 인접해 외국인 유동이 잦다).
🚉 2. 한강철교 북단 — 아파트·철로의 교차로
고층 아파트가 격자무늬처럼 펼쳐지고 그 아래로 철로가 도시를 가른다. 한국의 대표적 주거 풍경과 일본 도시를 연상시키는 선로·전깃줄이 한 프레임에 겹친다.
뒤 배경은 이촌동 대림아파트. 철로선 때문인지 서울인데도 따랑따랑~ 소리가 들릴 것 같다
ME:I는 바로 그 ‘도시의 교집합’ 위에 서서 양국 일상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좁힌다 (위치: 이촌동 현대 한강아파트 앞 보행육교). MV 중 가장 흥미로운 대비였다.
또 하나의 혼종 로닌
다만 소녀들이 찬 검집은 사무라이 코드를 직설적으로 호출한다. ‘이질감 없는 혼합’이 MV의 목표가 맞는지? 아무리 주 타깃이 일본 관객층이겠지만 저렇게 과잉적인 일본 요소를 일부러 삽입해 낯선 긴장을 남겨 둔 건 의문이다. 외지에 온 방황하는 로닌... 같은 건가... (첫 MV라 그런지 이 장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조화스럽기는 하다)
🏞️3. 잠실 한강공원 - 레트로 세단과 J-청춘 서사
카메라는 1세대 ‘각 그랜저’(1986‒92)를 비춘다. 한국에서는 ‘아빠차’로 통하지만 일본 관객에게는 동시대 중형 세단—미쓰비시 데보네어 V—를 떠올리게 하는 실루엣이다.
잠실한강공원 제1주차장 한강변 난간 ❘ MV
이 ‘차를 둘러싼 인지 격차’가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호출하며, 두 도시가 공유하는 90년대 레트로 정서를 교점으로 엮는다.
사이드 노트 | 각 그랜저는 현대‑미쓰비시가 공동 개발한 모델. 한국에서는 국민 세단으로 흥행했으나 일본에서는 도요타 크라운에 밀려 ‘레어 카’ 취급을 받았다. 일본 출시명은 '데보네어 V'.
첫 MV라 그런지 컨셉의 밸런스가 좀 안 맞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펼쳐 치는 또 한 번의 지나친 일본 감성 사무라이 쇼다운. 까보니 그것은 우산이었고. 직전 섹션의 사무라이 코드와 맞물려 ‘일본 감성 과잉’의 여운을 남긴다. MV의 하이브리드 전략이 의도한 이상한 불협화음이다. 이 정도면 양국의 정서적 하모니가 아니라 한국침공 같은 걸로 느껴지기도 하고.
☔ 4. 우산 아래의 감정선
분홍 우산 행렬은 일본에서 비 오는 날 우산 사용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문화적 습관을 암시한다. 흐린 한강변, 가늘게 그친 비, 곳곳에 고인 물—도시적 회색조 위에 "봄=벚꽃=핑크"라는 색채를 덧입혀 한국 공간에 일본식 청춘 감성을 이식한다.
에도시대부터 이어져 온 일본 전통 우산, 와가사와 15년 전 즘 시즈오카 오렌지 해변에서 찍었던 아이아이가사 낙서
와가사 (和傘) 모티프 : 전통 한지우산 실루엣을 현대 재료로 재해석.
아이아이 가사 (相合傘) : 우산 아래 두 사람이 나란히 서면 ‘사랑이 싹튼다’는 일본 대중문화 클리셰.
오른 쪽에 잠실대교가 보인다
ME:I는 이 일본형 서정 코드를 서울의 강변 산책로에 배치해 ‘이질감 없는 혼합(... 이 맞을까?)’이라는 프로젝트의 정조를 가장 완곡한 형태로 구현해 보려 한 것 같다. 흐릿한 도시의 배경과 가랑비가 그쳐 곳곳에 고인 물이 보이는 공간에 여럿이 함께 쓰는 분홍빛 우산을 통한 봄이라는 계절감과 일본식 청춘 감성을 동시에 상징하는 장치라... 일본 관객에게는 어떻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영상 전반의 불협화음의 느낌은 가시지 않는다.
🏮 5. 버추얼 시퀀스 — 골목 & 편의점
MV
기타 공간도 잠깐 살펴보자. CG로 구현한 네온‑메트로폴리스는 국적 불명의 ‘시티팝 × 블레이드러너’ 같은 풍경인데 한국적 실사 환경과 큰 연결성은 없어 보인다. 다만 두 가지 현실 코드가 눈에 띈다.
MV
일본 관광객에게도 익숙할 만한 명동, 이태원, 해방촌 등의 골목 질감을 짬뽕시킨 듯한 세트. 중앙에 먀이 캐릭터를 배치해 ‘한국 공간 속 가와이 일본 감성’ 공식을 반복한다
한국의 콘비니 ❘ MV
일본 일상 클리셰를 서울 편의점으로 전이했다. 그렇게 한국의 편의점은 익숙하지만 동시에 낯설고 궁금한 작은 모험과 탐험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 마무리 – 서울 위에 펼쳐진 일본식 봄의 이미지
〈Click〉은 한국 도시 공간을 캔버스 삼아 일본 청춘물 이미지를 덧칠한 시각적 실험이다. 철근 옥상, 고층 아파트, 한강 난간, 골목, 편의점—all 한국적 장소에 일본 감성을 주입했지만 ‘하이브리드의 설득력’은 아직 미완성이다. 첫 작업의 시행착오가 다음 작품에서 정제될지 지켜볼 만하다 (그것이 <Hi-Five>이고..).
최근 1~2 년간 한국 촬영지 배경의 일본 MV들이 보이는게 흥미로워 시작한 시리즈의 서브포스팅이다. 요약본 쓰는게 너무 길어져서 자꾸 미루다 서브부터 푼다
K-POP 시스템으로 훈련받은 일본의 신예 걸그룹 ME:I(미아이)의 2024년 7월 29일 공개된‘Hi‑Five’ 뮤직비디오는 한국 동해안을 무대로 일본식 청춘 감성을 입힌다 (데뷔는 '24년 4월).
K-Pop과 한국 해변 감성이 들어 있는 샷 ❘ 출처: grammy.com
🌲 양양의 소나무숲, 낯섦을 덮는 ‘카와이’
양양의 소나무숲 ❘ MV
울창한 소나무숲에서 멤버들은 팀 마스코트 ‘먀이(ミャイ)’를 발견한다. 한국적 풍경 위에 캐릭터를 얹어 거리감을 낮춘 장치다(장소는 양양 솔바람 산책길로 추정).
갤럭시25와 먀이 ❘ MV
소녀들의 손에는 아이폰이 아닌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 CJ ENM(Lapone Girls)와 삼성의 일본 시장 협업이 엿보인다
일본 S25 울트라 광고
💡ME:I 미아이는 2024년부터 NTT DOCOMO 통신사의 삼성 갤럭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 플리마켓 세트 ― 서피비치×나츠마츠리
대놓고 갤럭시로 QR찍고 마케으로 워프 ❘ MV
QR코드 스캔 뒤 등장하는 알록달록한 마켓 세트는 양양 서피비치 분위기에 일본 ‘나츠마츠리’ 야타이를 겹친 구성 (+미니 하와이?).한국 배경이지만 일본 문화에서도 친숙한 요소들이 스며들어가 있다.
MV 속의 마켓 부스들일본 나츠 마츠리 (여름 축제)의 모습 ❘ 출처 : tripjoonos 인스타그램
각종 먹을거리, 기념품, 놀이 요소 등이 가득한 이 공간은 한국 플리마켓을 베이스로 하되 마츠리와 같은 일본의 여름 축제에 등장하는 부스(야타이)도 같이 연상되기 때문에 일본 시장을 의식한 친근한 감성적 연출 같다.
일본 청춘 감성 클리셰의 최종장, 불꽃놀이 ❘ 영화 에노시마 프리즘
일본 청춘 감성하면 절대 빼놓을 수도 거스를수도 없는 불꽃놀이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청춘감성 스파클러 ❘ MV
이렇게 청춘 클리셰를 압축.
마 이게 한국의 환장파뤼 감성이다 ❘ MV
그리고 먀이 얼굴 조형물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서 한국의 ‘양양 파티 문화’를 아이돌 감성으로 재가공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상은 헌팅이나 클럽문화 중심이 아닌 소녀 감성 중심으로 잘 정리되어 마무리된다.
양양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로만 하자
🌊하조대 해변 – 청량감의 클라이맥스
하조대 해변 ❘ 출처: koreabybike.com
투명하고 상쾌한 동해 바다와 백사장 위 군무. 일본 아이돌이 한국 해변에서 춤추는 점이 관전 포인트.
하조대 해수욕장 ❘ MV
(물론 특공대 수준의 한국 아이돌 특유의 칼군무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바다 장면은 일본 청춘 영화의 익숙한 이미지와 동해의 새로운 풍경을 동시에 제공한다
이미 익숙한 클리셰 감성이긴 하지만 볼 때마다 느껴지는 역동성과 청량감이 좋다.
일본 청춘감성 걸작 중 하나, 바다가 들린다
바다와 청춘 감성은 일본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하기에, 한국 동해안이라는 새로운 풍경 속에서 익숙한 요소를 보는 것이 흥미로움을 더할 수 있다.
🎤 마무리 – 한국에서 완성된 J-청춘 판타지
양양 하조대 해변 ❘ 출처: e.usen.com
ME:I는 2024년 데뷔 해에 일본 레코드 대상 신인상, NHK 홍백가합전 출연 확정 등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CJ ENM이 설립한 일본 소속사 라포네 걸즈는 ME:I 이후 IS:SUE 등 후속 프로젝트까 가동하며 ‘한국식 트레이닝 + 일본 현지화’ 전략을 확장 중이다.
CJ ENM의 일본 레이블, 라포네 걸즈 로고
ME:I는 2020년 JYP×Sony가 선보인 NiziU보다 한 단계 더 ‘K‑POP화’된 일본 걸그룹으로 보인다. 그러나 ‘Hi‑Five’ MV에서 한국적 공간 위에 일본 청춘 클리셰를 과도하게 덧입힌 연출은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진다. 현지 배경의 자연스러움보다 ‘일본 감성’과의 매칭에 집중하면서 오히려 낯선 이질감을 남긴다.
나는 집을 사랑한다. 그중에서도 내 방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장소다. 기타 할 일들도 아주 큰 마음먹고 하루에 해치우고 전사하는 편이다. 그런데 계절이 바뀌면 이상하게도 자연에 영향을 받는지 가만히 있다가도 이런저런 공연 소식들이 눈에 밟힌다. 이 중 마음은 가득한데 결국 가지 못하게 '될' 아쉬운 공연들을 적어본다.
Pami@태국 유령서점 + 베리코이버니@서울 마이블러디밸런타인@일본
[4월 27일] Pami @Blueprint Livehouse, 태국
태국이라고 하면 더운 나라가 떠오른다. 그런 여름의 질감과 어딘가 닮아 있는 아티스트 Pami. 이번 공연은 방콕의 Blueprint Livehouse에서 열린다. 태국까지는 쉽사리 갈 수 없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이런 공연 보러 1박2일 즘 태국 한번 슬쩍 날아갔다 오는 여유로운 삶도 살아보고 싶구나... 언젠가 단독 공연 소식이 들리면, 코창–코막–코쿳을 묶은 2~4주의 태국 테마 여행을 계획해보고 싶다. 그 여행지에서 듣는 Pami의 플레이리스트라니… 나만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pami - kiss me blue (Official Video)
여름이 오기 전에 아껴 두려고 했지만 결국 매일 듣고 있다.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아슬, 이지카이트, 아도이 등과도 감성이 잘 맞는다.
[5월 4일] 베리코이버니 & 유령서점 @팡타개라지
베리코이버니의 공연을 찾다가 우연히 유령서점이라는 밴드를 알게 되었다. 공연은 서울 팡타개라지에서 열린다. 마스, 베인떼와의 빈티지 마켓과 함께 하는 형태인 듯하다. 날씨도 좋고, 가격도 부담 없고, 밴드 록 특유의 자유로운 공기를 '공연장'이라는 공간 구속 없이 느낄 수 있을 좋은 기회였는데... 하필 여행 중인 날이라 갈 수 없다. 미리 알았더라면 여행 일정을 하루 줄이면서라도 갔을 텐데. 너무 아쉽다.
베리코이버니(verycoybunny) - End Credits (feat. 나상현) (Official Performance Video)
‘모자라’처럼 경쾌한 사운드를 좋아하지만 이 사운드도 좋다. 얼터너티브와 팝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티스트, 베리코이버니, 다음 공연은 꼭! 갑니다
[MV] 유령서점 (Ghost Bookstore) - 유령서점 (Ghost Bookstore) / Official Music Video
이 공연 덕분에 알게 된 밴드, 유령서점. ‘성장통’, ‘개똥벌레’도 인상 깊었다.
[2026년 2월] my bloody valentine @일본
이번 공연은 ‘하루만 도쿄 다녀오자’는 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지만 일본 e플러스 예매 시스템 앞에서 결국 포기했다. 외국인에겐 꽤나 높은 장벽인데 요약하자면 (일본 두 번 가야함):
일본 전화번호 필요 (소프트뱅크 계열은 한국 끝자락 부산 태종대 가도 전파가 안 잡힌다고...)
나의 최애곡, 'soon'. 팝적인 감성과 슈게이즈 특유의 텍스처가 아름답게 충돌한다. 마이블러디밸런타인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소닉 유스, 욜라 탱고는 내 청춘 그 자체다. 공연은 못 가지만 덕분에 다시 슈게이즈 계열 음악이 다시 듣고파 최근 음악 찾아보다 한국의 파란노을과 일본의 Yuètù 를 알게 된 건 큰 수확이다.
파란노을 (Parannoul) - 청춘반란 (Youth Rebellion)
청춘반란이라니, 제목도 사운드도 딱 내 취향.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의 씨앗이 자라 예쁘게 핀 또 하나의 꽃 같다.
Yuètù - どんなことがあってもぼくはここに戻ってこれるから
Yuètù (月兔)는 ‘옥토끼(달토끼)’를 뜻한다. 한중일 신화 어디서나 전해지는 존재. 제목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여기로 돌아올 수 있어.” 나처럼 집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맞는 제목이다. 거기에다 노이즈락이라니!
[번외] 연정, 노덕순, 아이묭, 토미오카 아이
연정, 노덕순, 아이묭, 토미오카 아이
공연장에 가본 게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작년 12월, 연정의 공연 소식을 들었을 때 겨울잠 자던 곰처럼 몸을 일으켰지만 이미 매진이었다. 노덕순은 대구 공연이라 포기했다 (그보다 훨~씬 앞서 놓친 공토끼의 부산 공연의 기억과 겹쳐져 더 아쉬웠다). 이번 4월 아이묭 내한 공연도 느긋하게 굴다가 놓쳤고, 4월 27일 열리는 토미오카 아이의 ‘타다이마 - 서울’ 공연도 늦어서 예약 대기 걸어둔 상태. 아마 이것도 어렵겠지...
홍콩 여행이라 하면 으레 반짝이는 도심의 마천루, 쇼핑, 그리고 야경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익숙한 도시 풍경을 잠시 벗어나 바닷바람 스치는 란타우 섬 끝자락의 어촌 마을 타이오를 목적지로 정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은 시골 마을만의 맛은 뭘까?”
수상가옥 풍경; 영어로는 Stilt House, 광둥어로는 棚屋 팡욱이라 불린다
홍콩의 서쪽 끝, 수상가옥이 줄지어 있는 작은 마을 타이오는 보통 옹핑 케이블카 여행 중 당일치기로 스쳐 지나가는 코스다. 하지만 2박을 묵기로 한 만큼 관광객이 빠져나간 마을 분위기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첫 끼는 반드시 이 지역의 토속음식으로!’
|🥢 타이오의 첫 끼를 찾아
타이오의 새우젓 ❘ 출처: Flickr, Shutterstock
이곳의 향토 특산품을 찾아보니 무려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새우젓’. 햇볕 아래 말려 은은하지만 강렬한 향을 내는 타이오 새우젓은 지금도 마을 곳곳에서 다양한 요리에 활용되며 독특한 풍미를 더한다고 한다.
"그래 이거다. '🦐' 딱이다."
크로싱보트 레스토랑에서 먹은 타이오 새우젓이 가미된 찜통밥
그리고 맛집을 찾아보다 현지산 식재료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크로싱 보트 레스토랑(Crossing Boat Restaurant 橫水渡小廚)의 연잎 찜통밥(롱차이 밥)이 눈에 들어왔다. 타이오 새우젓과 현지 식재료? 첫 끼는 바로 정해졌다.
| 🏘️ 크로싱보트 레스토랑 내외부
마을회관 광장
식당은 타이오의 유명 포토 스폿인 마을회관 광장(Tai O Rural Committee Square 大澳鄉事委員會廣場 )의 벽화가 그려진 건물이다. 벽화의 오른쪽 골목으로 가야 한다.
골목에 들어서니 비가 갠 후 무지개가 펼쳐졌다. 개인적으로 무척 오랜만에 보는거라 뭔가 럭키할 것 같은 느낌!
중앙의 작은 영어 간판을 확인하고 입장.
중앙 건물인데 상태를 보니 다른 건물들 대비 최근에 지어진 듯
들어가자 직원이 맞은편 건물로 다시 안내했다. 음식점 리뷰에서 본 타이오 마을 특유의 건물 구조인 수상가옥(스틸트 하우스) 테라스가 있는 곳이었다.
타이오 마을에서 저 이케아 감성 의자가 꽤 많이 보였다
혼밥러인 나는 언제나 그렇듯 구석으로 안내되었고 :) 한산한 날이라 그런지 리뷰처럼 사람이 붐비진 않고 한 팀만 있었다(너무 좋음). 이 팀은 먹던 도중 발코니 쪽을 가리키며 광둥어로 계속 투덜거렸는데 눈치 상으론 테라스로 왜 못나가는지에 대한 불만 같았다. 말이 안 통해도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테라스 공간 ❘ 출처: pocketsights.com
그날은 손님이 없어 테라스를 닫고 실내 영업만 하는 것 같았다.
음식을 들고 건너 오시는 사장님 ❘ chatGPT
암튼 음식은 (처음 들어갔던) 저쪽 건물에서 요리한 뒤 이쪽 건물로 배달되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테이블이 모두 다인용으로 큼직큼직하다
산 미구엘 라이트 광고가 보인다
내부는 전형적인 홍콩 로컬 식당 분위기.
모든 테이블에 놓여 있는 한자로만 적혀 있는 오늘의 추천 메뉴.
| 🍽 메뉴 소개와 주문
타이오의 감성을 담은 듯한 메뉴, 나름 두께가 있다
한자 메뉴보고 어? 번역기 켜야 하나 싶었는데 이내 책자 메뉴를 준다. 주요 메뉴들은 사진과 함께 한자+영어로 병기되어 있어 주문은 어렵지 않다.
주문한 메뉴; 출처 ❘ 구글지도 @Ka Yin Chuang , @AI M
첫 장엔 큼지막하게 4대 메뉴—롱차이 밥, 오징어튀김, 두부요리, 숯불거위구이—가 보인다. 구글/오픈라이스 리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주인공’들이다(이 집 거위가 그렇게 맛있다고...). 다음 장부터는 각종 시그니처 메뉴들이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고 요리 수가 꽤 다양했다 (장을 넘길수록 사진은 없어진다).
나름 두꺼운 책자 메뉴 ❘ 출처: Openrice @小書
예상대로 타이오 새우젓을 활용한 요리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나는 계획했던 대로 롱차이 밥과 사이드로 초이썸 채소찜(+ 텁텁함을 달래줄 차이니즈 티)를 주문했다. '롱차이'는 '찜통'이란 뜻이다.
출처: 구글지도 @ Leung Will
🍽️ 롱차이 밥 메뉴설명: 咸鮮蝦乾荷葉籠仔飯 (함씬하곤 호입 롱짜이판) "Long Chai” rice. -Steamed local dried seafood, pork and rice with shrimp paste, wrapped in lotus leave 현지산 건해산물, 돼지고기, 새우젓이 들어간 밥을 연잎에 싸서 찐 요리
여행 전 미리 골라 놓아던 식당의 후보 메뉴들
원래 '(Fisdherman's) Tai-O Four Treasure' (절인 건해산물 4종에 달걀노른자'를 올린 요리)도 먹고 싶었기 때문에 이거까지 시키면 혼자 먹기 양이 많겠냐고 물었더니 아래와 같은 답이 투박하게 날아왔다.
주문받던 사장님
“일단 두 개 먼저 먹어보고 생각하슈”
뜨내기일 수도 있는 관광객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오히려 과한 주문을 말리는 게 배려 깊은 응대 같아 좋았다. 근데 그게 홍콩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나온 말이라 뭔가 츤데레 느낌도 나고, 걍 그 특수한 상황이 좀 재밌게 느껴졌다 :)
| 🍚 타이오 새우젓 요리의 첫맛
내가 앉은 제일 작은 규모의 테이블인데 4인용이다
주문 후 뜨거운 차를 마시고 다시 뜨거운 차로 식기류를 세척하면서 기다렸다
비쥬얼은 메뉴와 똑같다
먼저 초이썸(채심)이 등장했다. 사이드 개념으로 시킨 건데 요리 하나 수준이다. 주문받을 때 굴과 마늘 소스 중 택하라 해서 걍 아무 생각 없이 마늘을 골랐는데 역시 진한 마늘과 연잎향이 느껴진다.
안에 뭐 들어 있나?
연잎에 둘러싸여 있고 새우젓과 건어물이 곁들여진 스타일이다. 주문한 롱차이 밥의 채소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이금기 굴소스
모든 식재료를 굴복시키고 맛을 삭제하며 식감만 살려주는 특유의 잔인함이 극락의 맛인 굴소스 채소찜에 평생 몸이 절여 있다 보니 마늘 소스 말고 굴소스로 했어야 했나 잠깐 생각했는데,
오히려 채심 줄기의 사각 한 식감은 물론, 식재료들의 본연의 맛과 풍미를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롱차이밥은 초이쌈과 마찬가지로 연잎에 싸여 둥근 대나무 찜통에 담겨 나왔다. 다만 초이삼 요리처럼 마늘 소스가 아니라서 그런지은은한 연잎과 새우젓의 향이 더 깊게 테이블 위로 퍼졌다. 또한 주위에 손님이 없어 그런지 다른 음식향과 섞일 일이 없어 더 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평소엔 관광객이 넘치는 곳이라도 이렇게 한가한 날은 로컬 경험을 또 느낄 수 있는 이런 어중간한 날의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좋다.
사장님의 한마디
그리고 사장님이 홍콩 특유의 퉁명스러움으로 잘 비벼 먹으라 하신다. "믹스?" 하니 쿨하게 끄덕끄덕하고 바로 퇴장하셨다.
비빔의 민족답게 열심히 비벼주었다. 속에 숨어 있던 돼지고기, 건해산물 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푸짐하다.
초이쌈과 새우젓밥 한상
한 입 먹어보니 살짝 꼬릿 한 새우젓의 깊은 풍미가 좋다.
지금보니 흑후추도 좀 가미되어 있는 듯
건해산물과 돼지고기의 묵직한 감칠맛, 쫍졸함, 식감이 더해져 기존의 중화볶음밥/덮밥과는 전혀 다른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쫍쫄함도 쫍쫄함인데 감칠맛도 좋다. 건어물의 바다 느낌이 가득하지만 돼지고기의 육지 느낌도 존재감이 있다. 마치 작은 대나무 찜통 안에 타이오 마을을 우려낸 듯한 느낌이라는 혼자만의 망상을 해보았다.
식후 : 둘이 결이 같은 음식이라 롱차이 밥을 먹고 전혀 다른 음식을 사이드로 시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징어까지 들어있어서 전체 식감은 매우 좋은데 어쩔 수 없이 좀 짜긴 했지만 처음 느껴보는 맛의 향연이 재밌어서 시간을 두며 초이삼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나름 선전했는데 내가 양이 적은 것도 있지만 일단 음식양이 많아서 남겼다. 한 그릇이 1인분이 아니다 (밥도 진짜 많다). 암튼 후회되지 않는 인상 깊었던 타이오에서의 첫 끼였다.
타이오 마을 맛집, 인정!
📍크로싱 보트 레스토랑 기본정보
상호: Crossing Boat Restaurant 橫水渡小廚
주소: G/F, 33 Kat Hing Street, Tai O, Hong Kong
운영 시간: 매일 오전 11:30 – 오후 8:00
식사 방식: 매장 내 식사, 테이크아웃 가능 / 배달 불가
크로싱보트 레스토랑(Crossing Boat Restaurant)은 숯불에 구운 거위 요리, 연잎에 싸서 찐 밥, 오징어 패티 등 시그니처 메뉴들이 특히 인기이며 모든 식재료가 현지산이라는 점에서 이곳은 말 그대로 ‘타이오의 맛’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식당으로 꼽힌다. 이름에 ‘횡수도(橫水渡)’가 들어간 것은 과거 이 부근에 다리가 없었던 시절 나룻배로 건너던 포인트가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 🦐 타이오 새우젓, 그 짧고 깊은 역사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이 일대 해협에서 잡히는 ‘은새우’(銀蝦 krill)는 원래 서민들의 생계형 식재료였다.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이 작은 새우를 버리느니 소금에 절여 보관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근데 칼슘, 인, 요오드 등 영양소가 풍부한 은새우는 서민들의 소박한 요리에 찰떡처럼 어울렸고 유명세를 타며 발전했다. 한때 홍콩을 넘어 영국과 미국등의 해외 이민자 커뮤니티까지 수출된 인기 향신료로서 마을의 독보적인 상징이 되었다.
타이오 은새우 (銀蝦 은하) ❘ 출처: read01.com/
그러나 시대는 변했다. '70,'80년대 죄고점을 이후로 도시개발, 고령화, 관광지화 등의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해 산업은 점차 쇠퇴했고 결정적으로 2013년 해양 생태 보호를 이유로 트롤어업이 전면 금지되며 타이오에서 직접 은새우를 잡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지금은 중국 본토산 새우를 수입해 만든다. 하지만 전통의 생산 방식은 지켜지고 있다.
쳉청힝 새우젓 가게(좌)
한때 열 곳이 넘었던 타이오의 새우젓 공장은 이제 싱레이(成利蝦醬廠 Sing Lee)와 쳉청힝(鄭祥興蝦醬廠 Cheng Cheung Hing) 단 두 곳만 남았다. 여전히 손으로 새우를 일일이 다듬고, 대나무 채반에 널어 햇볕에 말린 뒤 직접 맷돌로 가는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정확한 수치도, 기계의 도움도 없이 오직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감각과 손맛만으로 완성되는 장인의 세계다. 그러나 이 방식은 체력 소모와 노동 강도가 매우 높다.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대부분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있고, 타이오 공장들의 부모 세대 역시 자식들에게 가업 승계를 굳이 강요하지 않기에 이 전통 역시 머지않아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 앞에서 감히 이렇다 할 한마디를 던지기는 어렵다.
DIY 느낌 가득한 새우젓 만드는 터, 새우젓 대신 조개껍질이 놓여 있다
타이오 마을 어귀 쪽을 걷다가 본 새우젓 말리는 공간은 말 그대로 DIY 감성 그 자체였다. 공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투박하고 소박한 공방의 느낌이 강해서 그만큼 전통 방식으로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비가 내려서 실제로 새우젓 말리는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타이오 마을 골목골목을 걷다 보면 어딜 가나 새우젓 특유의 쫍쪼름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스친다. 크로싱보트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의 식당과 시장의 유명 간식들에서 타이오 새우젓을 쓰는 걸 보면 이 작은 새우젓이 타이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쉑사이포 거리(Shek Tsai Po Street)를 따라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 방향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싱레이와 쳉청힝을 비롯 옛 새우젓 생산지였던 듯한 건물들이 남아 있다.
안에는 빨래가 걸려 있었다
지금은 빨래가 널려 있거나 방치된 공간처럼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기억이고 누군가에겐 유산이자 역사일 것이다.
"이곳의 새우젓 음식은 단순히 지역 특산품을 먹는 게 아니라,
타이오 마을 사람들의 역사와 추억을 함께 맛보는 경험이 아닐까"
📍 새우젓 공장 위치 싱레이 成利蝦醬廠 Sing Lee: G/F, 10 Shek Tsai Po St, Tai O, 홍콩 쳉청힝 鄭祥興蝦醬廠 Cheng Cheung Hing Shrimp Sauce: 홍콩 石仔埗街17號A
| 🎥 [추천 영상] Michelin Guide Asia – Hong Kong Chefs' Playbook: Tai O with Vicky Cheng
미슐랭 가이드 아시아 채널
영상 속 Sing Lee의 새우젓 공장 모습
이 미슐랭 가이드 아시아 영상에서는 홍콩 미슐랭 1 스타 레스토랑 VEA의 셰프, 비키 쳉(Vicky Cheng)이 직접 타이오의 새우젓과 크로싱보트 레스토랑의 음식을 소개하며 이곳에서 받은 영감과 식재료가 자신의 요리에 어떻게 녹아드는지를 이야기한다. 타이오의 현지 풍경, 장인의 작업, 식재료의 디테일이 모두 담겨 있어 여행 전후로 감상하기에 좋다.
감독: 마에다 코지 | 출연: 나리타 료, 키요하라 카야, 야마야 카스미, 쿠라 유키, 이즈미 리카, 코이즈미 코타로 나의 별점: 3.5/5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まともじゃないのは君も一緒] (직역하면 '정상적이지 않은 건 너도 마찬가지')는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습적 ‘평범함’과 ‘보통’이라는 개념을 허구의 이야기 속에서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런데 그 이야기들이 왠지 모르게 우리의 일상 고민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어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해석에 있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
| '평범함'의 경계에 선 사람들
아키모토 카스미 (키요하라 카야 분)
사회적 평범함을 실천보다 관찰과 분석으로 익힌 이론과 실제 사이를 스스로 실험하고 있는 고등학생 카스미,
오노 야스오미 (나리타 료 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남은 학원 강사 야스오미,
미야모토 이사오 (코이즈미 코타로 분)
정략결혼을 통해서라도 사회적 성공을 이루어 가는 이사오,
토가와 미나코 (이즈미 리카 분)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결국 사회적 순응을 택하는 미나코까지,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평범함’과 타협하거나 저항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 커플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본읜의 의역이 들어간 관계도 ❘ 출처: https://movie-architecture.com/matokimi
카스미와 야스오미 커플은 사회적 평범함에 속하지 못한 채 그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탐구자’의 단계를 상징한다.
이사오와 미나코는 이미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 들어선 ‘순응자’의 단계에 있으며, 특히 미나코는 일탈과 순수함이라는 탈출구를 외면한 채 결국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아야카와 유스케 커플은 위 두 커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과도기적 존재’로, 아직 사회의 틀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만의 '평범함'을 향해 나아가겠구나라는 징후를 보여준다.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이들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 속 세 쌍의 커플이 아니라, '사회적 평범함'이라는 흐름 위에서 서로 다른 좌표에 놓인 존재들이며, 관객은 이 캐릭터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지금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저들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 연인 보다는 동반자적 관계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카스미와 야스오미의 관계는 단순한 연애로 정의되지 않는다. 영화 초반에는 카스미가 이사오에게 접근하려는 목적에서 야스오미를 도구로 삼아 아야카와 만나게 하며 그 연애의 과정을 코칭해 준다. 이 장면들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적 장치가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적인 관계 맺기’를 이론적으로 배운 소녀가 실전을 지휘하는 일종의 실험처럼 느껴진다.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카스미는 평범함을 원하면서도 그것을 흉내 내는 야스오미의 어색한 모습을 보며 점점 매료 되어간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 감정을 결코 낭만적 로맨스로 소비하지 않는다. 카스미의 고백에 대한 야스오미의 대답은 친구로서 천천히 알아가자는 것이고 이는 단순한 관계의 유예가 아니라, 사회적 프레임 바깥에서 관계를 새롭게 구성해보자는 제안이다. 즉, 이 둘은 연인이 아니라 ‘평범함’이라는 개념을 함께 탐구하는 동료로서 존재한다.
| 숲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성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설정은, 영화의 시작과 중반, 그리고 마지막을 모두 ‘숲’이라는 공간으로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영화는 야스오미가 혼자 숲 속을 배회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회와 단절된 듯한 그의 고립된 모습은, 그가 ‘평범함’이라는 틀에 속하지 못한 인물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중반부에서는 야스오미가 아야카에게 어린 시절 숲에서 들은 소리를 이야기한다. 숲속 생물들이 낙엽을 밟는 사각거림,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같은, 그런 자연의 소리 속에서 자신이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던 기억을 꺼내놓는다. 그 고요한 체험은 야스오미에게 유일하게 ‘정상, 보통, 평범함’이라는 감각을 허락했던 순간이었다. 몰래 듣고 있던 아야카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감정적 울림을 받는다. 숲은 이처럼 야스오미가 타인과 감정적으로 연결되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마지막, 야스오미와카스미와 진심을 나누는 장소 역시 숲이다. 사회적 관계나 규범, 역할로부터 벗어난 공간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은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관계의 출발점에 설 수 있었다.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
이 대화를 감싸는 자연은 도시의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공간이며, 두 사람이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의 장소로 기능한다. 사회 안에서는 나눌 수 없었던 자유로운 대화, 상대를 규정하지 않는 태도,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 시선이 이 자연 속에서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고립이 아닌 공존의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계,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자기만의 자리, 자기만의 평범함을 찾아가려는 첫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특히 눈여겨볼 것은 두 사람이 숲 속 연못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영화의 연출 구도다. 그 장면에서 그들은 단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비친 자신과 상대의 모습을 함께 응시하며 대화한다.
그 반사는 단순한 이미지의 반영(reflection)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관계의 재구성, 그리고 사회적 정체성이 해체된 이후 남는 '진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응시다.
물은 사물을 완벽하게 비추지 않는다. 카메라에는 직접적으로 담기지 않았지만 작은 흔들림의 수면 위, 어딘가 불분명한 윤곽 속에서 두 사람은 자신과 상대가 섞인 모호한 실루엣을 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그들은 자연스럽게 숲과 하나가 되어가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게 드러내는 연출이다.
| 유쾌함 속에 던지는 조용한 질문
영화 포스터
이 영화가 인상 깊었던 이유는 무거운 질문을 무겁게 다루지 않는 방식 때문이다. 유머러스하고 가벼운 톤, 어딘가 어긋난 듯한 인물들의 조합, 말도 안 되는 듯한 설정들이 쌓이면서도 영화는 끝까지 그 질문을 놓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람이란 무엇인가?'
'평범하다는 건 그냥 사회에 익숙해졌다는 뜻 아닐까?'
위와 같은 질문들은 영화의 필름이 끊긴 후에도 조용히 따라온다. 우리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춰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직업을 고르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가끔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는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너도 평범하지 않아]는 바로 그 순간, 따뜻하고 유쾌하게 말을 건네는 영화다.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거야."
영화의 한국어 트레일러
🎬 TRIVIA:
🧬 | 고이즈미 가족의 화려한 가계도
고이즈미 가족
이사오를 연기하는 고이즈미 고타로는 굉장히 낯익은 얼굴인데,
전 일본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이다. '쿨펀섹좌' 밈으로 유명한 고이즈미 신지로의 친형
📸 | 영화 밖에서는 아이돌 느낌 나는 주연 배우들
나리타 료와 키요하라 카야
사회부적응자와 관찰자로 그려졌던 영화 속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의 나리타 료와 키요하라 카야는 확실히 배우 아우라가 풍긴다. 특히 모델 출신인 나리타 료는 사진만 봐도 눈에 띄는 존재감
영화: 유리고코로
참고로, 2017년작 [유리고코로]에서 요시타카 유리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배우가 키요하라 카야다
🫶 | 감초 이상의 존재감, 아야카 - 유스케 커플
영화 [아파트N동] ❘ 영화 [너도 평범하지 않아]의 아야카와 류스케
동급생 커플로 나오는 야마야 카스미(아야카)와 쿠라 유우키(류스케). 분량은 많지 않지만 잔잔하고 좋은 합으로 눈길을 끈다. 이후 이 둘은 2021년 호러 영화, [아파트 N동]에 주연으로 같이 출연한다 (다만 영화평점이 딱히 좋진 않다)
"건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냥 아카데미용 미끼일 뿐." - 캐롤라이나 미란다 (LA타임즈 미술평론가)
"영화는 흡입력 있는 인간 드라마지만 건축적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 Dezeen
"건축과 공간을 마법처럼 활용하는 영화가 정작 건축을 이렇게 잘못 이해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파이낸셜 리뷰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물은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도 없다" - 빅토리아 영 (Univ. of St. Thomas 건축교수)
"완전 터무니없는 소리야!" - 한 뉴욕 20세기 유산 보존 운동가가 인터미션에서 분노하며 외친 말 (Guardian)
"만약 [피아니스트]와 [파운틴헤드]가 섹스를 했다면 이 영화가 자식일 것이다" - 마크 램스터 (달라스 모닝 포스트 건축 평론가 )
"2010년대 브루탈리즘 붐에 영향을 받은 밀레니얼 감독이 "브루탈리즘은 멋지고 쿨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 같다." - 일반 댓글 (Dezeen)
건축계는 대체 왜 이렇게 흥분했을까?
『더 브루탈리스트』는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개봉 이후 영화계와 건축계는 극명히 다른 반응을 내놓았다. 영화계는 이 작품의 뛰어난 연출과 연기, 시각적 스타일을 극찬한 반면, 건축계는 브루탈리즘에 대한 몰이해와 역사적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출처: https://www.instagram.com/thebrutalistmov/
먼저 밝혀둘 것은 나는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 평소 스포일러를 극도로 피하는 성격이지만 건축계의 강렬한 반응에 흥미가 생겨 관련 평론들을 찾아 읽었다. 이 글은 무작정 비판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화계를 매혹시킨 작품이 왜 건축 전문가들에게는 이토록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지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물론 모든 건축계가 비판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영화에 좋은 평들은 수 없이 나와 있기에 비판적인 시각의 소스만을 다룬 것은 참고를 바람.
📌 건축계의 비판과 배경
건축 전문가들이 이렇게까지 흥분하며 비판한 이유는 뭘까? 위 코멘트들을 소스 매체 내용에 따라 정리해보았다.
워싱턴포스트의 아티클
1️⃣ "영화는 건축을 잘못 이해했다." — 워싱턴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의 건축평론가 필립 케니컷(Philip Kennicott)에 따르면 영화는 표면적으로 건축을 주요 소재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반유대주의, 난민의 삶, 문화적 단절, 정신질환, 성폭력, 자본주의의 착취적 본질 등 훨씬 더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야심 찬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가건축을 표현한 방식은 피상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건축가를 현실의 제약이나 사회적 협력을 무시한 채 개인적이고 영웅적인 천재로 과장하며 묘사한 것이 대표적이다. 케니컷은 이러한 접근이 오래된 건축가 클리셰를 반복하는 것일 뿐 아니라 건축이 현실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사회적 협력, 실용성, 지속가능성과 같은 핵심적 가치들을 완전히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또한 영화는 건축이 때로는 정치적 권력이나 폭력에 악용되는 등 어두운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중요한 현실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니컷은 영화가 담고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주목한다. 비록 건축이라는 주제를 구시대적이고 과장된 방식으로 다루긴 했지만오늘날의 사회적 혼란과 분열 속에서도 창의성과 이상주의적 열망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워싱턴 포스트는 『더 브루탈리스트』가 건축에 대한 현실성 있는 고증이나 깊이 있는 이해의 측면에서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지만, 창의성과 이상주의가 가진 본질적 가치에 대해서는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Washington Post)
스포티파이 화면
2️⃣ "건축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냥 아카데미용 미끼일 뿐." — 캐롤라이나 미란다 (LA타임즈 미술평론가) 외
영화는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야심 찬 주제를 다루지만 건축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디자인 평론가들인 미란다 캐롤라이나(LA 타임즈 미술평론가), 마크 램스터(댈러스 모닝 뉴스 건축평론가), 알렉산드라 랭(디자인 비평가)이 진행한 팟캐스트『더 브루탈리스트는 왜 망작인가? Why the Brutalist is a Terrible Movie』의 주요 비판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건축에 대한 묘사가 피상적이고 불충분하다. 영화는 주인공 라슬로 토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을 추구하는지, 설계 과정과 그 의미는 무엇인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끝에 급조된 듯 삽입된 베니스 비엔날레 발표는 영화 내내 제대로 설명되지 않은 건축을 갑자기 억지로 정당화하려는 장치라고 비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조되었던 1980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둘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시대착오적인 천재 신화를 반복한다. 실제 바우하우스 건축가들은 1930년대부터 미국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난민 건축가가 미국에 현대 건축을 처음 소개한 것처럼 잘못 묘사한다. 또한 주인공이 개인적 천재성만으로 모든 난관을 극복한다는 비현실적 서사는 현대 건축이 가진 협업적 특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1인의 천재건축가라는 오래된 클리셰를 재반복한다. 추가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1980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태동이 핵심 주제였고 브루탈리즘은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재조명받았기 때문에 시대적 맥락에서도 잘못된 접근이다. (특히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마셀 브로이어의 전기 형식을 채용하면서 역사 왜곡이 들어간 점이 더 비판 요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셋째,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실제적 역할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점. 영화 속 건축물인 커뮤니티 센터는 실제 지역사회의 필요나 의견과 무관한 채 지어져 건축이 사람들의 삶과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현대 건축의 기본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점에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Architectural Newspaper), (Podcast)
건축잡지, Dezeen
3️⃣ "영화는 흡입력 있는 인간 드라마지만 건축적 관점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 Dezeen
Dezeen은 영화가 건축가 개인의 고통과 갈등 등 드라마적인 요소는 효과적으로 묘사했지만 정작 '건축'이라는 행위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자동차의 겉모습은 화려하게 보여주면서도 실제 그 자동차의 안전성이나 기능에 대한 정보는 전혀 제공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즉, 영화는 건축을 단지 시각적이고 화려한 외관으로만 표현했을 뿐, 정작 사람들이건축 공간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가치를 얻는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Dezeen)
4️⃣ "건축과 공간을 마법처럼 활용하는 영화가 정작 건축을 이렇게 잘못 이해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 파이낸셜 리뷰
영화는 건축가를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고독한 천재로 묘사하는 오래된 클리셰를 반복하고 있다. 영화 속 건축가는 개인적 비전을 위해 주변의 현실을 무시하고 투쟁하는 존재로 그려지지만 실제 건축은 클라이언트, 지역사회,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와의 협력을 통해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완성된다. 특히 영화는 건축물을 개인의 트라우마와 창작욕의 표현으로 미화하면서도 정작 실제 사용자와의 관계나 건축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또한 영화는건축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속성을 외면한 채 마치 불멸의 예술작품인 것처럼 잘못 묘사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영화는 현실의 건축물보다 더 오래 공간을 보존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만큼 실제 건축의 본질을 왜곡하여 전달할 위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평가하고 있다.(Financial Review)
5️⃣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물은 브루탈리즘이라고 할 수도 없다." — 빅토리아 영 (Univ. of St. Thomas 건축교수)
6️⃣ "완전 터무니없는 소리야!" — 한 미국 건축 유산 보존 운동가가 인터미션에서 분노하며 외친 말 (Guardian)
5,6번은 가디언 아티클의 내용이라 하나로 묶는다. 『더 브루탈리스트』가 묘사한 건축물은 브루탈리즘의 핵심인 기능적이고 공공적인 본질과 동떨어진 채 단지 거대한 기념비로만 표현되어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영화에서 논란이 된 '나치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커뮤니티 센터'는 건축의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지적된다.
브로이어의 미네소타 교회 ❘ 출처: raddit (https://www.reddit.com/r/architecture/comments/1grta50/saint_johns_abbey_in_collegeville_minnesota/)
이는 영화의 모티브가 된 마르셀 브로이어의 미네소타 교회 프로젝트가 실제로는 수도원과 지역사회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된 현실과도 크게 대조된다. 가디언지는 감독의 얕은 건축 이해를 비꼬며, 건축계는 향후 감독이 내놓을지도 모를 다섯 시간짜리 대작 『더 포스트모더니스트』, 『더 해체주의자』, 『더 파라메트리시스트』를 기다리겠지만, "시대에 맞는 장비를 동원해 커피 테이블 위의 건축책을 한번 훑어보고 만드는 수준일 것"이라고 신랄하게 평가했다. (The Guardian)
TMI: 오히려 모더니즘의 초창기 양식에 가깝다고 평가하고 있다. 굳이 평가 하자면 루이 칸의 건축을 참고 했다면 모르겠으나 안도 타타오의 건축을 참고 했다면 이건 좀 시대착오적이 아닌가라는 비평도 있었다.
7️⃣ "만약 [피아니스트]와 [파운틴헤드]가 섹스를 했다면 이 영화가 자식일 것이다." — 마크 램스터 (달라스 모닝 포스트 건축 평론가)
AN에서는 마크 램스터의 팟캐스트 내용을 인용했는데 영화가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묘사하고 신화화한 점을 두 편의 유명 영화에 빗대어 신랄하게 표현한 코멘트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 피아니스트의 전쟁 트라우마를 비극적이고 감정적으로 그린 영화『피아니스트』와 천재 건축가가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위해 사회적 타협을 완강히 거부하는 모습을 극적으로 묘사한 영화『파운틴헤드』가 결합된 듯한 과장된 드라마가 바로 『더 브루탈리스트』라는 것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와 파운틴헤드 포스터
이외 AN의 리차드 마틴의 비판을 살펴보면, 영화는 건축적 묘사에서도 비현실적이고 피상적인 표현으로 비판한다. 작품 속 설계 방식은 "핀터레스트 수준의 브루탈리즘 이해"라는 비아냥을 하며, 특히 감독 브래디 코벳이 영화 속 건축물과 도면 일부를 AI 기술로 구현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의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대한 무감각함도 언급한다.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이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에 유대인 주인공의 이주 서사를 통해 '시오니즘적' 맥락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영화의 정치적 무신경함을 지적했다.
결국 AN의 리뷰는 이 영화가 상업적·비평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정작 건축이라는 주제를 피상적이고 왜곡된 방식으로 접근함으로써 전문가들로부터는 깊은 실망과 날카로운 비판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처: Architectural Newspaper)
dezeen
8️⃣ "2010년대 브루탈리즘 붐에 영향을 받은 밀레니얼 감독이 '브루탈리즘은 멋지고 쿨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영화 같다." — 일반 댓글
Dezeen에 달린 이 댓글은 The Guardian에서 비꼰 커피 테이블 북 등을 통해 유행한 브루탈리즘을 얄팍한 트렌드로만 소비했다는 시선과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 같다. 브루탈리즘이 단순히 "멋지고 쿨한" 미학적 코드로 축소되면서 본래의 사회적, 기능적 맥락과 철학적 깊이가 사라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즉, 건축이라는 복합적이고 의미 있는 분야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가벼운 스타일이나 유행의 소재로 전락했음을 일반 관객의 시선에서도 냉철히 비판한 셈이다.
이 외 TMI로 영화에서 등장하는 USM Haller 가구, 주인공이 쓰는 건축용 펜슬이 영화 배경보다 10년 후에 나온 것에 대한 고증 오류 등도 자세하게 파고드는 타 매체들의 댓글들도 볼 수 있었다.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마르셀 브로이어의 뉴욕 위트니 뮤지엄, 브루털리스트의 걸작 중 하나
📌 쉽게 보는 총평:
결국 『더 브루탈리스트』는 영화적으로는 매우 훌륭하지만, 건축이라는 주제를 다룰 때 실제 역사적 사실이나 건축 본연의 의미와 철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건축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반 관객들이 건축에 대해 피상적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있어 전문가들이 더 강하게 반응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영화가 브루탈리즘이라는 조금은 낯선 건축 양식을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더 브루탈리스트』에 대한 건축계의 평가는공통적으로 '본질에 대한 몰이해', '피상적 스타일화', 그리고 '역사적 사실 왜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