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입구는 건물 좌측 아주 작은 골목 같은 곳으로 들어와 우측에 있는 문으로 이어지는 공간이다 (난 그냥 길가에서 바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나 같은 손님들 많다고 알려주심). 포스터들은 영화 속이랑 동일하다. 오토바이는 바뀐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그런 사소한 차이가 현실감을 더했다.
장률 감독의 <후쿠오카>에서 극 중 해효(권해효 분)가 후쿠오카에서 운영하는 이자카야는 단순한 배경장소가 아니라 과거의 인연이 현재로 이어지는 시간적, 공간적 교차점 역할을 한다. 캐릭터들이 감정을 해소하며 관계를 회복하는 영화의 서사와 주제를 심화시키는 중요한 장소다. 동네 노포 분위기 가득한 노기쿠(野菊, Nogiku)라는 곳이다. 이름은 들국화를 뜻한다. 영화 때문에 간 후쿠오카인데 당연히 방문을 해야 했다. 위 사진은 노기쿠 내부의 모습으로, 테이블 위 소품들과 창문 밖 풍경이 당시 영화 속 공간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직접 방문한 후 이 공간에 앉아있으니 영화에서의 대사와 장면들이 머릿속에 새롭게 다가왔다.
이 촬영지에 대한 부연 설명 잠깐 하자면, 소담이 이자카야에서 나와 문득 먼 어딘가를 바라보며 "저기서 아저씨(해효의 이자카야) 가게를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라는 질문을 하는데, 다들 오~ 몰겠다 함 보러 가보자~ 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이자카야에서 텐진중앙공원 넘어에 있는 후쿠오카시청 옥상에서 찍은 것으로 보인다 (좌측에 사이세이카이 후쿠오카 종합병원 済生会病院 사인이 있다).
사진을 찍은 건 밤이긴 하지만 실제 영화 속 소담이 그 질문을 하며 바라본 풍경은 이랬을까? 다만 실제로 후쿠오카시청 빌딩이 가시거리에 들어오는지는 당시 판단할 수 없었다.
하지만 구글 스트리트뷰로 다시 확인하니 내가 찍은 사진에서 훨씬 더 오른쪽으로 틀면 후쿠오카시청 뷰가 들어온다.
셋은 아마 이 방향으로 보았을 것이다. 노란색 바리케이드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좀만 올려다봤어도 후쿠오카시청건물뷰를 같이 확보할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다.
사장님이 찍어주신 사진. 내부의 모습이다. 기념사진이니까 배경이 지저분하면 안된다고, 한사코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다른 손님들이 남기고 간 자리를 치우신 건 물론 테이블까지 행주로 빡빡 닦은 후 찍어주신 거다 (와, 감동! 이런 가게 처음이다). 여기에서 있었던 단 1~2시간의 대화들과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방문 후기까지 남기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져 별도 포스팅으로 올려야 할 것 같다. 나는 저 재문이 앉았던 왼쪽 끝 구석자리에 있었다 (가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혼밥의 상석).
영화 때문에 찾아오는 한국 손님들에게는 항상 보여주시는 것 같은 출연진들 (박소담, 윤재문, 권해효)과 함께 찍은 사진 (중간이 사장님). 소중하게 간직하듯 지퍼백에 보관되고 있다. 담 포스팅에 남기겠지만 바에서 바라보면 사장님의 작은 보물창고 같은 낡은 서랍장이 있는데 이 사진도 그 안에 보관되고 있다.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Tai O Heritage Hotel)은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의 유일한 고급 호텔(4.5성급)이다. 이 호텔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단순히 고급 호텔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유산적 가치 때문이다.
1902년부터 중국에서 넘어오는 밀수와 불법 활동을 단속하기 위해 기능했던 경찰서 건물이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며 2009년 호텔로 변모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기능을 부여한 어답티브 리유즈(adaptive reuse)의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남중국해 밀수 단속과 조망권
과거 남중국해의 중국-홍콩 경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탐조등을 활용해 야간에도 밀수꾼과 해적을 감시했던 장소였다. 이 건물은 란타우섬 끝자락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과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를 자랑했다. 이런 점떄문에 타이오 마을 여인숙에서 1박, 이 호텔에서 1박을 하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숙박비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박 모두 여인숙으로~)
몇 주 후,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름 시즌 특가 세일 소식을 봤을 때 땅을 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HK$ 988 (약 15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이라니, 조금만 더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꽤 이른 시기에 예약을 해버렸던 터라 이런 기회를 놓쳐버린 게 정말 아쉬웠다.
호텔 위치와 접근성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은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타이오 마을의 메인 시장 골목과는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타이오 마을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을 뿐더러 인도로서는 가장 끝이다). 묵었던 숙소에서 도보로 약 9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호텔 앞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옛 타이오 마을 부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부두는 1991년 주성치 주연의 영화 <도성타왕(賭聖打王)>의 촬영지로 매우 고즈넉한 장소다. 주변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숨은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 당시 바라보았던 모습이다. 아무도 없고 참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영화는 타이오 마을 곳곳에서 촬영되었고 8,90년대 당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옹핑의 티안 탄 부처상의 건설 중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93년 완공.)
타이오 룩아웃(Tai O Lookout)
호텔에는 경찰서가 호텔로 변모할 때 같이 생긴 레스토랑 타이오 룩아웃 Taio Lookout이 있다. 여기서 숙박을 못아는 대신 점심이라도 즐기기로 했다.
호텔은 사회적 기업 운영 방침에 따라 직원의 반 이상이 타이오 마을 또는 란타우섬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강조한 점으로,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운영 방식이다.
시그니처 메뉴와 공간의 매력
옛 부두를 향하다 요렇게 꺾으면 호텔을 통하지 않아도 음식점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저 난간을 돌면 바로 이 계단이 펼쳐 진다. 우아아악! 아주 살짝 높다 ㅎㅎ 다만 주변 자연환경이 괜찮아서 즐기면서 올라가기 좋다 (마지막 식전 장 운동).
작은 언덕이지만 몸이 힘든 손님들을 배려한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운영하고 있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 보인다 (이눔의 저질 체력). 중간 상단의 원통은 옛 경비탑 Lookout 공간인데 음식점 이름의 유래다, 타이오 룩아웃. 밀수꾼 멈춰!
쭉 걸어간다. 왼쪽은 식당 안이다. 앞으로는 또 하나의 경비탑이 보인다.
웨이팅을 위한 배려인지 식당 입구 쪽으로 가니 메뉴의 대형 버전이 떡 하니 걸려 있다.
왼쪽을 다시 바라보니 웨이팅 전광판인 것 같다. 한국 카톡 웨이팅 시스템 같은 것이 아닐지? 근데 이 날은 손님이 거의 없어 그냥 프리패스~ 예~
타이오 룩아웃의 사인을 따라 좌측으로 꺾으면 입구가 나온다.
안내받은 자리는 1~2인용 코너 테이블이었다. 내외 전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혼밥러에게는 이 자리가 최고의 상석이다. 식당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이면서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아늑했다. 게다가 손님도 별로 없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아열대 지방인 홍콩의 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꿉꿉한 느낌인데 식당 안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들이 공간을 쾌적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비 때문에 막혀있는 것 같은데 천장의 커버까지 오픈되면 개방감이 훨씬 좋을 듯하다.
목재가 주된 장식 요소로 사용되어 그런지 바다를 바라보는 숲 속의 현대적 큰 산장에 와 있는 듯한 아늑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지루할 수도 있는 산 쪽 뷰 창문에 타이오 마을의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 사진들은 지역의 역사와 정취를 잘 담아내어 호텔과 마을이 함께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실내는 밝고 정돈된 분위기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저녁에 조명이 더해지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았다.
식사: 맹그로브 스페셜 & 포크찹 번
앞 커플이 마시던 모습이 예뻐 보여 맹그로브 스페셜 목테일을 주문했다. 아열대 지방의 음료답게 야생 베고니아, 사과, 레몬이 섞인 설명이다. 타이오 마을을 걷다 보면 맹그로브와 백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주변 생태계에서 영감을 받은 목테일인 것 같다. 비주얼만큼 맛도 달콤하다. 맹그로브와 백로라는 타이오 마을의 생태적 상징을 음료에 녹여낸 점은 독특했다. 이 지역만의 특색을 느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커플이거나 나 같은 혼밥 망상러가 마시면 좋을 듯.
타이오 마을은 새우젓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음식을 먹고 싶었고 볶음밥과의 고민 끝에 새우젓 포크찹 번과 컨트리 프라이즈를 골랐다.
마카오의 주빠빠오와 비슷하지만, 오이와 토마토, 양상추, 새우젓이라는 토핑들이 더해져 독특한 맛을 내고자 한 것 같다. 다 좋아하는 토핑들이다.
다. 만.
그러나 재료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아 아쉬웠다. 한 입에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번은 괜찮았지만 익힌 돼지고기와 생생한 맛만 강조된 오이와 토마토가 서로 자신의 맛만 뽐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완성된 맛'이라는 느낌이 부족했다. 차라리 전날 먹었던 새우젓 볶음밥을 시켜 비교하며 먹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은 좋았지만 그에 비해 맛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이 날만 그랬던 건지… 맛은 꽝이었고 결과적으로 당첨 실패. 😢
하지만 감자 프라이는 두툼한 체구 때문에 눅눅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매우 바삭해서 만족스러웠다. 예상 밖의 바삭함 덕분에 포크찹 번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었다 다만 감자스틱 특유의 기름진 맛 때문인지 몇 개 먹고 나니 몸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바삭함 덕분에 멈출 수가 없어서 몇 점 더 집어먹게 되었다 (나오자마자 먹는 걸 추천).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
타이오 룩아웃에서의 식사는 음식의 맛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경치를 즐기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이날 유리천장이 덮여 있어서 그런지 숲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통나무 산장 같은 인테리어는 아늑함과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경험은 타이오 마을에서의 시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 준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서빙 서비스가 인상적이었다. 살짝 실수도 하면서 약간 어설퍼 보이면서도 매우 친절한 태도가 돋보였다. 솔직히 지나치게 전문적이면서 불친절한 서비스보다는 이런 인간미 있는 서비스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타이오 마을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 옛 경계처였던 곳에서 포근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모순적이지만 좋았던 잔잔한 시간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 분위기 및 서빙의 친절함으로 혼자 식사를 즐기기에 부담 없이 만족스러운 장소였다.
오전 6시, 세수만 대충 하고 게스트하우스 1층과 정원을 산책했다. 어젯밤의 복잡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적막 속에서 DSLR로 사진을 찍는 일본인 아주머니와 나만 있었다. 순간의 아침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동선을 달리했다. 서로 존재만 확인 :)
어제는 서양인들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경험이었는데 이 당시는 또 상당히 일본적인 경험이었다. 암튼 정원의 녹색 공간은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듯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 게스트하우스가 내부 분위기도 특이하고 당시 둘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마치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특이한 느낌이었다.
| 7:00 am: 산왕시장 아케이드와 토비타 신치
아침 7시 조금 넘어 산왕시장 아케이드를 산책했다. 시장은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지나가며 찍은 사진 속에서 그날 방문한 토리보우즈(ToRi坊主本店) 근처 분점을 발견했다. 여기는 외부에서 선 주문도 가능한 듯했다.
햇살이 아케이드 내부까지 스며들어 항상 햇살 가득한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영화들 떠올랐다. 별 것 아니지만 여행 중 맞이한 아침 햇살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서 그랬나 보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유곽, 토비타신치에 들렀다. 영업 전이라 거리는 고요했지만 저녁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아침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저녁 오사카 뒷골목 탐방 패키지 투어를 통해 또 방문했었다). 아침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보이는 검은 밴과 문신을 한 몇몇 사람을 지나칠 땐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옆 부촌인 아베노구와의 공존이 흥미로웠다.
지날 때마다 신경 쓰였지만 결국 맛을 못 본 근처 야키토리 가게, 토리요시 鳥よし. 식당이라기보다는 정육점에 가까웠다. 여기 근처 주민들이 애용하는 것 같았다. 저녁 시간에 마음 잡고 가봤으나 거의 재료 소진이었다. 오전 7~8시부터 일찍 영업을 시작하며 타베로그에는 맛있고 저렴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 8:00 am: 토리보우즈 본점 ToRi坊主本店
오전 8시에 맞춰 토리보우즈(ToRi坊主本店)에 도착했다. 이 아이린(구 니시나리) 지구 일대의 가라오케바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피아워로 술과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이곳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다.
8:00~11:00 am 사이 고다와라 레몬사와, 플레인 츄하이, 짐빔하이볼이 저렴하게 판매된다 (190엔, 1500~1700원 정도). 마시진 않아서 양은 모르겠다.
오전 8시 오픈 맞춰 들어갔는데도 이미 몇 테이블이 차 있었고 분위기를 보니 대부분 로컬들이 아닐까 싶다. 자리에 앉자 가방을 위한 바구니를 가져다주신다. 바닥은 기름기 때문인지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그냥 이 지역 분위기겠거니 하며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관점에 보면 관리 잘 되어 보임)
식탐 있어 보이는 힙한 병아리가 여기 마스코트인가 보다. 벽이 뚫려 있는 그림이다 보니 나 같이 벽 보고 먹는 혼밥러에게 개방적인 효과도 있다(?)
유명인이 왔다 갔나 해서 왼쪽 벽의 사인을 찾아보니 '도톤보리 푸로레스'라고 써져 있다. 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프로레슬링 관련 포스터들이 은근히 많이 보이던데 공홈에 들어가 보니 아직도 활발히 경기 이벤트를 주최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프로레슬링이라니, 나도 어렸을 때 WWF 참 좋아했는데. 잠깐 또 기억 속으로...
오픈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되고 웨이팅 걸렸는데, 손님들이 꽉 차니 연기가 엄청난다. 그때 문이 개방된다. 월요일은 휴무고 화~금은 오전 8시 오픈 저녁 6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4시에 닫는다. 계산 당시 나쁜 가격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구글과 타베로그의 리뷰들을 보니 가성비가 나빠졌나 보다 (현재 가격이 비싸졌다는 리뷰가 꽤 있었다).
테이블 근처에 음료수 기계가 셀프로 운영되고 있는데 해피아워와 상관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펩시콜라, 진저에일, 우롱차 등 총 7종이 제공되었다.
| 우설과 곱창
불판
트랜스포머 마냥 철컥-척! 쑥 들어감. 불을 붙이니 이제 좀 고깃집 온 느낌인데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아침 8시부터 고기 구워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있었나? :)
직원분은 일어만 가능했다. 구글 리뷰보고 한국어 메뉴판도 있는 줄 알았는데 걍 계속 이걸로 얘기하시길래 시간 걸리는 거 싫어서 굳이 요청해보진 않았다. 일단 추천 부탁 하니 상급 소금우설이랑 대창 추천하신다. 상급 소금우설(조시오탄) 일반 소금우설(시오탄) 탯짱(대창)을 시켰다. 대창은 그냥 일본 발음이 귀여워서 시켰다. 사이드 메뉴로 김치 등이 있었는데 고기가 워낙 달짝한지라 딱히 사이드는 필요 없어서 시켜볼까 하다 말았다.
먹진 않았지만 타베로그 리뷰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고봉밥' 메뉴에 보인다 (비빔밥도 있음). 아마 저게 대짜가 아닌가 싶다. 와하하하.
소스도 준비되어 있는데 비취되어 있는 건 두 개고 나온 건 세 개였다. 고기부터가 단짠이라 소스를 많이 찍어 먹진 않아서 솔직히 맛은 잘 기억 안 나지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달짝 새콤한 맛이랑 상큼한 맛들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은 대체로 달짝지근하다. 소금까지 섞이니 단짠. 우설은 역시 씹는 맛이 살아있는 듯한 그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참 좋다. 특소금구이이랑 일반소금구이랑 맛의 차이는 있다.
특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데 풍미가 좀 더 진했고, 일반은 탄력 있는 쫄깃함으로 담백하고 깔끔했다. 둘 다 좋다.
대창은 달달하면서도 쫄깃해 입가심으로 좋았다. 많이 먹기는 역시 좀 부담된다(하지만 다 먹음).
나 포함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굽기 때문에 문을 열어도 꽤나 연기가 꽤 찬다. 그것도 이런 지역에 와서 먹는 맛집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허겁지겁 먹는다 (우설 먹는 것 자체도 너무 오랜만이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너무 많이 시켰나? 했는데 웬걸, 싹 다 먹었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게 없었다. 토리보우즈 야키니쿠 성공!!
오랜만에 먹는 아침의 고기 굽기. 이 경험은 결혼에 부정적이며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하는 독신남을 다룬 2006년 일본 히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 일본이 아무리 혼밥 문화에 특화되었다고 해도 야키니쿠만큼은 혼밥 금기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는데.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야키니쿠를 혼밥하는 장면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서일까,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좌석에서도 편안한 모습으로 야키니쿠를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풍경은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일본도 그렇게 변하나 보다.
| 기억에 남았던 옆 테이블
나처럼 혼자 온 사람 외 커플, 3명 등 다양한 손님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 옆자리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청년과 백발의 어르신이 한 테이블에서 반말과 존댓말이 교차하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신기했다 (20대가 반말+술 한 손 따르기 어르신이 존댓말+두 손으로 받기).
일부러 들으려던 것은 아니지만 밀착된 자리 탓에 대화가 들렸고 자연스럽게 시야에도 잠깐씩 들어왔다. 젊은이들이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는 자리로 보였는데 세 사람의 분위기는 오히려 매우 자연스러웠다. 니시나리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이상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특별한 일상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불편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 9:00 am: 식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9시 10분경,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리의 활기를 느꼈다.. 수요일 평일 아침 모습이다.
포스팅 첨에 언급한 전기구이 기계로(왼쪽 기계) 꼬치를 돌리는 토리요시 (鳥よし)를 다시 지나치며 다음 방문 때는 꼭 들러보리라 다짐했다. 이방인으로서의 나에게 흥미로운 탐험의 대상이다 (개수가 많진 않지만 좋은 리뷰가 넘 많고 전형적인 로컬 느낌이다)
저렴해 보였던 도시락 벤또 가게. 오후시간 지나가다 보면 꽤 많이 팔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품점도 문이 열려있었다.
오후 1시 오픈을 위해 벌써 준비를 하고 있는 숙소 옆 이자카야, 니시나리이치반 혼텐 居酒屋 西成一番. 간판의 이름 아래 "게키야스*메차야스*혼마니 야스이 (개~싸다*완전~싸다*진짜 싸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리뷰를 보니 정말 싼 진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 재밌는 경험들을 한 내용들이 많아 궁금한 곳이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사실 걸어서 100m 정도라 천천히 구경하며 오니 5분도 안 걸린 듯하다. 게스트하우스는 니시나리 노숙자들과의 연계를 한 역사를 지닌 곳이라 오픈 시간에는 길가에 구제옷과 물품을 꺼내 놓는 모습이 뭔가 맥락에 맞아 보였다. 혼자 아무도 없는 타인의 공간을 살펴보고, 혼밥을 하고, 타인들에 의해 시작되는 타 지역의 주변을 천천히 구경하며 돌아오는 길. 이방인으로서 타지의 공기를 느끼는 순간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 기분이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라는 소외감은 혼자만의 여행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으로 변한다.
마카오 여행의 결심은 홍콩의 <중경삼림>과 같이 식민지에서 중국 반환 이전의 감성을 담은, 맥락은 비슷하지만 알맹이는 또 다른 마카오 영화 <이사벨라>에서 비롯되었다. (홍콩 1997년 반환, 마카오 1999년 12월 20일 반환)
마카오의 레트로 감성과 옛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에서 숙소 선택은 중요한 고민이었다
| 산바호텔 말고 또 다른 100년의 역사를 품은 선택
첫 번째 후보는 유명 영화 촬영지이자 100년 역사를 지닌 여인숙 산바호텔(SanVa Hotel)이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낡은 시설과 날 것 같은 후기들을 보니 낭만은 보장 하나 현실적으론 어려운 선택으로 보였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은 곳이 호텔 센트럴 Hotel Central.1928년에 지어진 이 호텔도 갓 100세로, 마카오의 1930~50년대 역사/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레노베이션 되었다는 소개가 여행 목적에 부합하는 듯했다.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마카오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다고 한다. 저 인상적인 빌보드의 비주얼 다음 두 번째로 끌렸던 대목이다
한 때 마카오에서 독보적인 건물이었다가 점점 힘을 잃어가는데, 1980년대에는 급기야 낡아버린 모텔 수준으로 방황하다가 (2000년대에 WiFi도 안되었다고...) 현건물주(?)의 건물 매입을 위한 7년간의 흥정, 그리고 건물의 문화유산적 의미를 중요시한 정부의 최종 승인 단계 후 마카오 문화청의 감독 하의 레노베이션 끝에 2024년 4월 부티크 호텔로 재탄생했다고 (현재 기준 1년도 안된 호텔이니 새끈 한 것은 덤).
| 이언 플레밍이 본 호텔 센트럴: 쾌락의 상징
"... higher up the building, the largest in Macau, the more beautiful and expensive are the girls, the higher the stakes at the gambling tables, and the better the music." - Ian Fleming, "The Thrilling Cities"
"마카오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자, 층을 오를수록 더 우아하고 값비싼 만남, 더 높은 배팅, 더 화려한 음악이 기다리고 있다"
007의 작가 이언 플레밍은 '50년대 전성기였던 이 호텔을 방문하고 자신의 세계 도시 여행기, "Thrilling Cities"에서 위와 같이 묘사하는데 이곳이 단순한 호텔을 넘어 당시 엄청난 쾌락과 향락의 상징적 공간이었다는 극적인 뉘앙스를 느낄 수 있다
정확히는 이 호텔 5층과 7층에 있던 카지노에 더 의미를 둔 표현인데, 바로 <007: 황금총을 든 사나이> (1974)에서 그리는 카지노 공간에 영감을 주었다는 점까지 마음을 사로잡았다.
"<2046>을 떠올리는 저 빌보드에, 문화유산에, 거기다가 007 제임본드라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숙소와 함께 마지막 날 저녁 코스와 떠나기전 조식까지 예약하며 마카오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하기로 했다.
호텔에 자세한 이야기는 시간이 될 때 다루기로 하고 요약 포스팅만 먼저 해본다. 꽤나 좋은 경험이었기에 오해할 수도 있는데 내돈내산 후기다 ㅎ.
1. 상징적 역사를 지닌 100년 건물
1928년에 건축된 호텔 센트럴(구 President호텔)은 중요한 이정표들을 세운 건축물이었다. 마카오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건물이자 당시 마카오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서 도시의 화려한 부흥기를 상징했다. 특히 마카오에서 최초로 바카라를 도입한 카지노를 품고 있어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유흥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호텔 센트럴은 마카오 구도심의 상업과 금융 중심지 역할을 하던 알메이다 리베이로 대로(신마로 新馬路) 중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650m 길이의 대로는 과거 내항(현 소피텔 폰테 16)과 외항을 연결하며 도시 교통과 상업의 심장부로 기능했다. "신마로"라는 이름은 "새로운 거리"라는 뜻에서 유래하여 로컬들이 부르던 이름이다. 덕분에 주요 버스 정류장들이 밀집하여 버스와 도보를 통한 교통이 매우 편리했다.
호텔 센트럴을 직접 보고 1970, 80년대 한국의 삼일빌딩과 남산힐튼호텔이 떠올랐다. 서로 다른 기능과 시대적 맥락 속에서 지어진 건물들이지만 당시 그 지역 중심에 우뚝 서서 도시 발전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점에서 삼일빌딩과의 공통점을 느꼈다. 또한 몇 십 년이 지나 이 호텔이 근현대 역사와 문화적 유산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원 DNA를 계승하여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점은 자연스레 철거 예정인 남산힐튼호텔을 떠올르게 했다.
최근 소식을 보니 오랜 논의 끝에 내부 Atrium 아트리움 공간만은 그나마 어떠한 식으로 건축 유산으로 남긴다고 들었다. 이 건물의 보존과 철거... 맞고 틀리다를 명확히 따질 수 없는 어려운 문제지만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조금이라도 보존된다는 것은 도시와 문명의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 이 호텔이 구경하고 싶어 몰래 들어왔다가 발각되어 멱살 잡혀 쫓겨났던 한 소년이 언젠간 저 건물을 사버리고자 결심했고, 훗날 성공한 자산가가 되어 실제로 이 호텔을 인수하고 복원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물론 지어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매체를 읽어보면 그러하다고 한다. 쨋든 서술한 구매와 정부 승인을 위한 오랜 흥정과 기다림 이후, 안전과 디자인에 중점을 둔 복원 작업을 마치고 2024년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타임머신 같은 상징적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을 보면 그 이야기의 신빙성을 더해준다.
1층에 전시된 1928년 당시의 건물 미니어처와 복원 과정을 설명하는 자료들은 호텔을 중심으로 화려했던 옛 마카오의 시절을 알려주는 미니 역사박물관같은 느낌도 주며, 이 복원에 관계자들 모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잘 느끼게 해준다.
10미터 남짓하지만 옛 지도들과 같은 귀해보이는 자료들도 있고 건축도들의 프레젠테이션 같은 흥미로운 자료들을 읽으며 꽤 오랜 시간을 그 공간에 머물렀던 것 같다. 좌측은 마카오와 거리의 맥락, 우측은 그 안에 자리 잡은 과거부터 오늘까지의 빌딩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양쪽을 두리번 하며 출구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좌측을 먼저 보고 다시 오른쪽을 훑으면서 돌아오는 동선이다.
2. 화려했던 각 시대상을 테마로 한 레트로 감성 게스트룸
객실은 호텔의 전성기인 1920~1940년대 마카오의 시대적 감성과 분위기를 재현하고자 노력한 점이 특징이다. 각 층마다 다른 테마가 설정되어 있어 투숙객들에게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5~6층은 1920년대 : 호텔 초기 시절의 향수를 재현하는 아늑하고 클래식한 디자인
7~8층은 1930년대 : 클래식한 세련미와 당대 상류층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며 호텔의 전성기의 활기
9~10층은 1940년대 : 세계 2차 대전이라는 격동기 속 도피처로 역할했던 마카오 속 호텔의 초호황기. 품격과 고전적인 우아함. (포르투갈은 참전 선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마카오도 당시 중립 도시로 남았음)
팁이 하나 있다면 이거 그냥 호주머니 놓고 다니다가 택시타고 돌아올 일 있으면 기사분께 보여주면 백발백중 다 아신다 (영어 안되고 광둥어만 된다고 보면됨). 그런 용도기도 하고.
5층의 일반룸과 8층의 발코니룸에 묵으면서 각 층의 테마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감성을 경험할 수 있었다.
| 발코니 룸
발코니룸은 호텔 센트럴의 하이라이트 공간 중 하나로, 단 4개만 존재하며 예약 시 개인 버틀러 서비스가 제공된다. 특히 이 룸들은 각각의 위치에 따라 독특한 뷰를 제공한다는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한다.
8층에 일렬로 배치된 중앙 두 개의 발코니룸은 알메이다 리베이로 대로(Avenida de Almeida Ribeiro (신마로))를 향한 단방향 뷰를 제공하는데 좀 쫄 리지만 고개 좀 더 내밀고 바라보면...ㅎㅎ.
조금 더 비싼 코너룸 두 개는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하나는 내항구였던 중국 주하이 방향으로 연결되는 소피텔(Sofitel Ponte16)을 향해 트여있고, 다른 하나는 대로의 반대쪽 동선을 따라 마카오 대표 랜드마크 중 하나인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과 세나두 광장을 조망한다.
중앙 815호에 묵었는데, 멋진 뷰를 독식한 코너룸은 아니더라도 발코니룸 내외부의 예쁜 공간들은 하루의 일정을 접고 호텔에 머물며 즐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고개 좀 쑉쑉 들어주면 소피텔과 그랜드 리즈보아 코너 뷰도 생각보다 많이 확보 된다 ㅎㅎ - 당연히 옆집에 사람들 있으면 못한다)
호텔에서 연박임을 배려해 줘서 체크인을 1시 30분까지 준비해 준 덕분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금방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좋은 서비스와 고층에서 즐기는 탁 트인 공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5,8층 모두 객실의 전반적인 디자인은 고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각 시대를 반영한 디테일이 세심하게 차별화되어 있다
5층 일반실은 뷰는 좀 실망인데 레트로 감성 듬뿍 인 인테리어 공간이 좋았다. 암막 커튼이 한 0.5cm 정도로 완벽히 안돼서 빛이 약간 세어 들어오는 단점은 있다. 다만 나는 새벽인간, 울랄라~ 태양은 나의 알람시계~ 아침의 빛을 쏴줘 쏴줘~
마카오도 팁은 줘도 되는데 굳이 줄 필욘 없다. 다만 중간에 화장실 바닥에 물을 많이 쏟은 바람에 나 혼자 처리하긴 힘들어서 소량의 팁을 두고 나갔는데 "땡큐" 메모와 함께 청소 진짜 깔끔하게 잘해주셨다.
전체적인 뷰는 좀 안타까워도 영화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의 오프닝 자동차 추격신에 등장했던 거리와 빌딩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독특함으로 맘을 달랬다 (두기봉 감독의 <Vengeance> 촬영지이기도). 창문은 열 수도 없어서 그냥 고풍스러운(?) 창문 프레임으로 만족. (위 사진은 8층에서 찍은 사진임)
중앙 발코니에서 고프로가 하루종일 찍고 있던 것.
인테리어 또한 옛 마카오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고전적인 느낌이 있다. 색상과 감성 때문에 그런지 영화 <2046>의 낡은 양조위의 방의 느낌을 가지되 더 업그레이드된 듯한 느낌이랄까?
일반실과 발코니룸에 묵으니 고전적인 큰 범위에서는 동일하지만 층의 콘셉트에 따라 또 다른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엘리베이터 층 표시 방식부터 작은 돋보기까지 골동품스러운 장식품과 데코가 굉장히 많은데 룸, 리셉션, 복도 등등 공간부터 하나하나의 작은 데코레이션까지 디자이너들이 가졌을 깊은 고민들이 느껴진다 + 이런 것들은 또 어디서 구했는지 참... 이 것들 하나하나 보는 것도 재미다.
그. 리. 고. (발코니, 일반 모두) 방에 있는 미니바의 모두 음료가 무료로 제공된다. 거기다가 오프닝 프로모션인진 몰라도 일반, 발코니룸 모두 레드와인 한병도 무료 제공. 미니바 음료는 룸 클린시 다시 채워진다 (와인은 안 마셔서 리필되는지 모르겠음). 투숙객 입장으로선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다. 도심 구경 갈 때마다 배낭에 시원한 물 한 통씩 가져가니 편했다. (냉장고 말고 위에 두 통 더 있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호텔이 3성급이란게 살짝 박해 보였다. (어딘가 3.5~4 사이로 보이지만 외관, 전망대, 분위기만 보면 최고의 장소 중 하나)
3. 마카오 페닌슐라를 360도로 경험할 수 있는 파노라마 루프탑
호텔 센트럴의 백미는 역시 마카오 반도를 파노라마로 조망할 수 있는 옥상 전망 공간이다.
세나두 광장, 성 바오로 유적, 리스보아 호텔, 소피텔 등 마카오의 주요 랜드마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
밤낮으로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투숙객이 아니더라도 방문할 수 있어 문화유산 중요성을 내세운 호텔의 특별한 배려와 노력을 느끼게 함
루프탑에서 오후, 저녁 여러 차례 시간을 보냈다. 이 곳을 돌며 혼자만의 사색, 사진 촬영,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짧은 순간들이 분위기에 사르르 녹아드는 듯 했다. 한 다섯 번 찾았는데, 호텔이 아직 잘 안 알려져서인지 좋은 조망권을 가진 전망대치곤 사람들이 별로 없어 굉장히 조용히 공간이었다(좋았닼ㅋ). 아름다운 배경을 뒤로하고 자신의 인생고민을 논의하는 듯한 현지인들,
대포를 들고 와 세심하게 전망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사진을 찍고 있던 한 솔로 관광객,
발코니룸을 예약했는지 상하이 스타일의 치파오와는 또 다른 총삼 長衫 스타일로 입은 버틀러로 추정되는 직원에게 루프탑 투어를 받고 있는 노부부 투숙객 (Cheong Sam 총삼은 처음 접하는 거라 신기했다 상하이 스타일 치파오처럼 딱 달라붙는 것이 아닌 허리만 살짝 강조하며 더 느슨하고 전통적인 느낌이라고 한다), 야경을 바라보며 조용히 풋사랑의 감성을 나누는 것 같던 어린 커플, 종료 시간이 가까워지니 밖에 나와 벽에 기대 한 숨을 내쉬며 밤공기에 잠깐의 휴식을 맛보던 황비홍의 복장을 떠올리게 하는 직원분 등이 기억이 남는다. 모두에게 휴식의 공간 같은 느낌이었다. 뭐 이렇게 보이는 것을 보며 혼자 망상을 해본다. 낭만적이다.
이 루프탑 전망공간은 특별한 행사가 없는 경우, 매일 오전 10:00부터 저녁 10:00까지 무료로 모두에게 오픈된다. 마카오의 문화유산을 이어간다는 콘셉트인 이 호텔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다. 높은 전망이 누군가만의 소유물이 아닌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니, 그것도 이런 역사적인 스폿에서! 이 호텔에 묵지 않더라도 한 번 즘은 이곳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세나두 광장에서 겨우 1~3분 거리다. 그리고 알메이다 리베이로 에비뉴(신마로)라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여 버스 타기도 굉장히 수월하다 (택시 잡기는 힘듦).
4. 그 외: 로비와 식당
팰러스 레스토랑 Palace Restaurant은 1970년대 이 호텔에서 운영된 레스토랑을 재건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음식을 통해 그 스토리를 이어간다고 하는데, 매캐니즈(Macanese)와 서양식이 혼합된 퓨전 요리를 선보이는 파인다이닝이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위해 여행 마지막 저녁 Tasting 코스와 다음 날 아침 세트를 신청했다. (한국 출발 전 이메일로 요청했는데 컨펌 답장이 빨리 와서 놀랐다, 하루 지나 온 듯? 한국인가??)
이번 여행 유일한 기념품, 부채
어차피 난 솔로 여행객이라 공간의 전체 분위기 보면서 먹는 걸 좋아하는데 이런 프라이빗함도 막상 나쁘지 않고 편안하니 좋았다.
세심한 요리 설명 및 스몰 토킹으로 분위기를 이끌어준 서비스 덕분에 좋은 경험을 가졌다. 끝나면 음식 맛부터 서비스까지의 간단한 서베이를 하는데 어떠한 직업이라도 본업에 진심이라면 당연히 존중하거나 응원하게 되는데 그런 면들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은 맛은 잘 모르겠지만 가격 대비 크게 나쁘진 않았고 조식은 좀 별로였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계속 노력한다면 한 층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이 되지 않을까 응원한다.
홍콩앱이긴 하지만 웬만한 마카오 음식점도 등록되어 있는 오픈라이스, 팔래스 식당에 대한 리뷰가 아직 없으니 첫 리뷰어가 돼 보는 것도? 나는 첫 깃발 꽂는 거 부담스러워서 나중에 리뷰 쌓이면 조용히 올릴 예정
참 좋았던 건, 연말 시즌이라 그런지 로비와 식당에서 낭만적인 스윙재즈 음악이 줄 곧 흘러나오는데 여러 번 흘러나오던 알 보울리 Al Bowlly의 "Midnight, the Stars and You"는 공간의 분위기를 완성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인생 음악 중 하난데 공공장소에서 알 보울리의 음악을 듣는 건 여기가 처음이어서 굉장히x2 특별했다.
여행, 특히 혼자만의 여행은 현실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기 때문에 혼자만의 망상도 은하철도 999 마냥 끝없이 펼쳐지는 매력이 있다. 이러한 부분을 더할 때 호텔 센트럴은 마카오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타임캡슐 같은 감성을 더해주었다. 레트로 감성과 현대적 편리함, 그리고 역사적 유산을 한데 담은 이곳에서의 경험은 마카오 여행의 마지막을 잘 장식해 준 것 같다. 다음에 마카오를 찾는다면 주저 없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것 같다.
P.S. 마카오에서는 ChatGPT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로밍 데이터를 활용하니 문제없었다 (Wi-Fi 연결하면 안 됨) 😊
영화 오프닝 시퀀스 바로 후 이야기가 시작되며 가게에서 도둑질하다 걸린 철딱서니 없는 아빠를 엄마 같은 딸내미가 꾸짖는 장면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사진은 영화 상 구도보다는 약간 가까이서 찍었는데 주변의 가게나 간판들이 많이 변하지 않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오사카 최고층 마천루인 '아베노 하루카스 300'이 배경으로 보이는 오사카, 아니 일본 대표 슬럼 지역의 풍경이 특히 인상적이다 (근데 말이 슬럼이지 평화로운 아침 풍경이었다).
<실종 さがす> 2021. 스릴러/미스터리/범죄/드라마 | 일본-한국 제작 감독: 가타야마 신조 | 출연: 사토 지로, 이토 아오이, 시미즈 히로, 모리타 미사 | 넷플릭스-왓챠-웨이브
연쇄 살인마를 목격후 포상금 탈 생각에 들떠 있던 아빠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리고 그를 찾아 나서는 당찬 딸의 이야기다. 비교적 빠른 전개 속에서도 무게감을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인 영화다.
가타야마 신조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마더> 조감독을 맡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도 최근 한국영화에 많은 영향을 받아 그런지 아니면 둘 다 인진 몰라도, 한국 스릴러물의 감성도 느낄 수 있는 점이 재밌다. 영화에 출연하는 모리타 미사가 주연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 조감독 후 첫 상업영화 감독작이다. 이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인 <간니발>도 연출했는데 역시 감독이 보여줬던 원작 만화의 서늘함과 긴장감을 잘 살린 연출이 좋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간니발> 시즌2는 드디어! 2025년 3월19일 공개를 앞두고 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은 사진인데 다른 날 오전 11시경에 또가서 찍은 풍경이다. 이곳 좌우측 방향으로 쭉 가면 영화의 또 다른 촬영지들이 펼쳐진다. 좌측으로는 도부스엔마에 역, 우측으로는 이마이케역 계단. 기차 선로를 따라 쭉 펼쳐지는 긴 골목길인데 같이 길게 늘어선 자전거들과 왼쪽의 건물들이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니시나리 내 아이린(구 가마가사키) 지역 중 노동센터 건물 쪽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숙소가 니시나리 1초메에 있어서 이곳으로 올 때 왼쪽의 저 토끼굴 같은 곳을 지름길처럼 왔다 갔다 했다. 기차선로 바로 밑에 위치해서 키 큰 사람이면 약간 숙여야 할 정도로 낮은 곳이다.
토끼굴 같은 지하 통로 통과 할 때 (2초메에서 1초 메 방향으로)
저기를 지나 1초메 방향으로 나가자마자 우측에 보이는, 레트로 감성의 이자카야 같은 곳이 있는데 한번 가보았으면 좋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곳이었다 (방문대랑 딱히 시간이 안 맞았다). 그냥 저 맥주 박스들 쌓아서 의자랑 테이블이랑 하는 듯한 외부 좌석 가판 느낌의 감성이 좋았는데 영업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은 아쉽게도 없다. 타치노미 긴지 立ち飲み 銀仁라는 곳으로 오사카 대표 서민음식인 튀김꼬치, 쿠시카츠가 저렴하고 맛있나 보다 (tabelog 평점 3점).
암튼 촬영지의 위치는 위와 같다 (철로 좌측 녹색지역 코너 아래 끝 부분). 2-chōme-1 Haginochaya, Nishinari Ward, Osaka, 557-0004 일본
성 라우렌시오 거리의 100살이 훌쩍 넘은 가톨릭 학교, Instituto Salesiano.
| 황추생의 먹방 장면: 인상적인 디테일 영화 <이사벨라>는 '99년 중국 반환 직전 마카오의 정체성과 감성을 담고자 한 작품이다. 주인공 싱(두문택 분)의 상사 캐릭터인 황추생은 영화에서 딱 세 번 등장하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장면이 먹방(훠거, 국수, 빵)이다 (마카오 배경인 홍콩 영화, <Exiled>를 찍을 때 잠깐 짬 내서 출연했다라는 비하인드 이야기도 있다).
오로지 두 캐릭터(싱과 이사벨라)에 집중된 영화의 서사 속 긴장감을 잠시 환기시키며 여유와 균형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단순한 식사를 넘어 마카오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정서,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 성 라우렌시오 거리와 살레시아노 학교
황추생의 세 번째 먹방 장면은 싱과 차 안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씬으로 그 직전에 주인공들이 성 라우렌시오 거리(R. de São Lourenço)를 배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의 배경이 된 건물은 1906년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포루투갈 식민지 시대의 건축 감성이 녹아든 가톨릭 학교인 Instituto Salesiano (聖中教育活動中心)다.
| 성 라우렌시오 성당을 바라보며
나름 근대적인 살레시아노 학교 건물을 등지고 뒤로 돌면 고전적인 성 라우렌시오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게 바로 마카오 거리를 거닐때의 매력이다). 16세기에 세워진 이 성당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과거에는 앞쪽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당 주변은 현재처럼 콘크리트 바닥으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마카오의 역사적 변화와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영화 속 학교 건물 배경 장면은 저 계단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했을 것이다. 또한 황추생이 세 번째 먹방 때 차를 세우고 싱을 부른 장소 역시 바로 이 돌계단 바로 앞으로 보인다.
| 대항해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오나먼트와 공간의 리듬감
성 라우렌시오의 한자는 風順(풍순)으로, '순조로운 바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부와 선원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던 만큼 육지에 남은 가족들은 저 돌계단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바다로 떠난 뱃사람들의 안전한 귀환을 기원하고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계단을 오르면서 느꼈던 엄숙하고 신성한 기운은 당시의 사람들이 간직했던 희망과 염원을 떠올리게 했다. 기백년 전의 이야기라는게 신기했다.
성당 앞 계단과 주변 구조물에서 발견되는 타원형 오나먼트와 포르투갈 스타일의 모자이크 바닥은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공간에 움직임의 리듬감을 더하며 역사적 맥락이 현재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음을 잘 느끼게 해준다.
특히, 싱과 이사벨라가 거리를 배회하던 장면은 1999년 중국 반환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며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마카오라는 도시의 복잡한 정서를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는 '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감성을 다룬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 성당
성 라우렌시오 성당은 16세기에 지어진 후 1846년에 재건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두 개의 정사각형 종탑과 중앙부의 브로큰 페디먼트 디자인이 돋보인다. 또한 주변의 야자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저녁 조명 아래에서 성당의 베이지색 외벽이 민트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 마카오 국기의 색감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연출은 성당의 신성함을 극대화하며 방문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황추생의 먹방 장면과, 싱과 이사벨라의 배회 장면이 성 라우렌시오 성당 주변에서 촬영된 것은 이 장소가 단순한 배경을 넘어 마카오의 복합적인 정취와 정서를 한층 깊이 전달하는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 나머지 스냅샷들
포루투갈 감성이 적절히 섞인 듯한 영화의 OST 중 'She Stalks'. 영화의 OST도 참 들을 만하다. 한 번 들어보는 것 추천.
연말이라 그런지 충동적 마일리지 표 구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후보지는 가고시마, 이시가키, 미야코지마, 페낭, 마카오 였는데 다 나가리 나고 반강제 마카오행...). 결국 직항도 구할 수 없어 홍콩을 경유해 마카오로 들어가게 되었고 (홍콩 입국 > 버스로 마카오 , 마카오 출국 > 배로 홍콩 입국), 갈 때는 심지어 비즈니스석 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스카이라운지 사용과 편한 기내 좌석으로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했다. 빵쪼가리 @Sky Lounge
인천공항 Sky Lounge 입성, 하지만 돗대기 시장. 자리 없음. 기내식을 먹어야 하므로 바에 앉아서 휴대폰보다 작은 샘~위치 한 쪼가리랑 찍어먹을 놈 국자로 대충 푹 떠서 옆에 놓고 먹음 (가벼운 위장 운동을 위함). 맛은 괜찮았다. 보르도 와인소스와 닭고기 @Korean Air 기내식
앉아서 가는 길 쇠고기 보다는 닭고기가 소화에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아 탑승 전 선주문으로 '보르도 와인 소스와 닭고기' 선택. 비즈니스석이라 기대했던 만큼 훌륭한 한 끼였다. 식전빵 굿. 새우의 크기와 탱글탱글한 식감도 굿. 뜨겁게 갓 나온 닭고기의 그 부드러움과 와인 소스와의 조화 굿. 과일도 굿. 완벽한 선택이었다.
7시 아침 뷔페 @Skycity Regala Hotel 홍콩
공항 근처지만 (800m) 걸어갈 수 없는 레갈라 스카이시티 호텔. 대중교통이 끊긴 심야엔 매드맥스 홍콩택시 라이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로만 듣던 그 도시전설 같은 2분 루트. 걱정 했으나 짐이 없는 덕분에 일찍 공항에서 나와 밤 12시 쫌 넘어 공항철도를 타고 갈 수 있었다 :). 조식은 애초에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괜찮았다. 난 소식인이라 돈 아까워서 뷔페를 가지 않는다. 고로 저 정도면 하루 세끼 정도를 한 끼에 소화한 셈. 훈제오리 가슴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돌 때마다 한 점 씩 먹었으니 샐러드와 과일 제외 다섯점이나 먹었다. 슈마이는 매우 별로였다. 냉동 느낌? 조식 가격은 약 2만 원 정도다.
마카오 넘어가서 또 먹어야 하니 식후 소화제도 먹고 호텔 옥상정원에 가서 운동도 했다
자자, 그럼 버스타고 55km의 HMZB를 넘어 진짜 마카오로 넘어간다
| 민치 Minchi @Riquexó 利多餐室
원래 가려던 Apomac이 문을 닫아 옆 집에 왔다. 한국의 김치볶음밥 같은 마카오의 서민 소울푸드라 불리는 민치와 이국적인 맛의 간단한 수프, 그리고 디저트로 마무리한 한 끼. 민치는 감자와 고기만으로 먹기엔 조금 퍽퍽했다(김치 필요!).
디저트인 에그 플란(Egg Flan 계란 캐러멜 푸딩)은 생각보다 별로 안 달아서 놀랐다. 다른 종류지만 로드 스토우즈의 에그 타르트 보다 더 심플하고 순수한 맛이 좋았다. 이 집도 한 30년 돼서 현지인+관광객에게 모두 사랑받는 집이라고 한다. 또 다른 매캐니즈 소울푸드인 몰 로 치킨 Mo Lo Chicken도 유명하다고. 사진 메뉴가 있어서 주문 난이도가 낮고 세트 메뉴는 수프+메인 선택 1+디저트로 94 Mop 1,5000원 정도다.
| 비둘기구이 @Fat Siu Lau
1903년에 오픈했다는 팟 시우 라우 Fat Siu Lau는 마카오 대표 노포 중 하나로, 유명한 옛 홍등가 거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 <2046>과 <도둑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SanVa 호텔 바로 건너편이다. 마지막 날 다른 식당에서 비둘기 코스 요리를 예약한지라 최대한 시간 차를 두고자 첫날 저녁은 이곳에서 비둘기구이로 결정.
느끼함을 줄이기 위해 차이니즈 레몬 티도 함께 주문. 바삭한 껍질과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속살로 이번 여행의 베스트 메뉴 중 하나로 등극! 특히 대가리를 씹어 뇌까지 쑥 빨아 맛보는 색다른 경험도 포함! 다만 뇌의 식감은 홍어애나 푸아그라처럼 매우 부드럽고 크리미 해서 갠적 취향은 아니다 (쫄깃파라 크리미 식감 안 좋아함). 가격은 138 mop, 약 25,000원. 고급 식재료인 비둘기를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과 풍미로 즐길 수 있다니! 한국 치킨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저렴하다고 느껴졌다. 식전빵도 맛있다. 뒤에도 빵 얘기를 계속할 텐데 마카오 음식점들 식전 빵은 왜 이렇게 맛있나 싶다.
난 소식인 솔로다이너라 음식을 많이 시킬 수 없어 못 먹었지만 딴 테이블들을 보니 이 수플레는 기본으로 무조건 하나씩 시키는 걸 목격했다. 또 다른 시그니처인 듯.
| 콘지 @Hung Kee Freshly Made Congee 雄記生滾粥
여행의 백미 중 하나가 우연찮게 예정에 없던 로컬 느낌 가득함을 느낄 때인데 딱 그런 곳이었다. 적어도 저 시간대에는. 세인트 폴 유적지를 찾아가다 아침 6시 30분경 마주친 저 적막하고 평화로운 골목의 레트로한 풍경을 어떻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으랴. 유적지 탐사를 끝내고 용기 내서 가보니 Congee(죽) 집이었다. 죽 당 가격은 29 mop, 약 5천300원 정도
피시볼 콘지를 시켰는데 탱탱하고 식감 쫄깃한 홍콩 피시볼에 익숙해서 그런지 마카오의 이 부드럽고 푸석한 식감은 낯설었다. 밀가루 함량이 많은 느낌이다. 암튼 나중에 오후 시간에 지나가다 보니 관광객들도 많아 보였는데 확실히 이 이른 아침 시간에는 출근하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기절할 맛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 속을 달래기에 딱 좋은 죽 한 그릇. 글고 사장님도 친절하시다.
영어 소통은 안되지만 영어 메뉴가 있어서 주문하긴 어렵지 않다. 나는 손가락 제스처로 남바완을 시킴 (피시볼죽이 1번 메뉴임)
| 새끼돼지 구이 @Fernando's
마카오 가면 꼭 먹어보라는 또 다른 요리, 새끼돼지구이 Suckling Pig (보통 2~6주 된 젖먹이 새끼들이라고 하는데.. 암튼 깊게 알다 보면 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니 여기서 접고...). 한적한 시골 지역인 콜로안으로 넘어간 김에 1986년에 문을 열었다는 유명한 페르난도스 Fernando's로 가보았다. 마카오 거리를 거닐 땐 보이지도 않던 서양인들이 이 식당에는 꽤 많이 보였다. 오픈 시간에 가서 줄은 안 섰는데 가게는 금방 꽉 차더라. 영어 주문도 가능하고 사진 메뉴가 있다.
새끼돼지 구이는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속살은 한국 족발 맛과 비슥한데 매우 부드럽고 촉촉했고, 껍질은 상상 이상으로 아삭하고 바삭했다. 껍질이 너무 바삭해 나이프로도 잘 안 잘려 결국 손으로 들고 와득와득 씹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옛날엔 반반 메뉴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없어 혼자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양이었다. 함께 시킨 쌈초이는 고기만 먹는 느끼함을 중화시켜 주긴 하는데 맛은 평범이었다. 굴소스가 없어 테이블에 놓인 유럽산 식초를 듬뿍 뿌려 맛을 보강했다. 식전 빵은 크기도 좋고 겉바속촉의 맛도 훌륭했다. 가격은 구이만 282 mop, 약 52,000원 정도로 좀 세다. (근데 식재료와 양을 생각하면...)
음식점 바로 앞, 마카오에서 가장 큰 해변이라는 학사 해변 Hac Sa Beach은 바닷물이 너무 똥색이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반팔 입고 보는 겨울바다라는 순간의 느낌은 좋았다. 해변 공원에는 바비큐 꼬치구이 상점들이 있는데 눈 돌아가는 비주얼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보였다.
| 에그타르트와 커피 한잔 @Lord Stow's
페르난도스에서 배 터지게 먹었지만 그래도 콜로안에 온 김에 1989년 오픈한 로드 스토우즈의에그 타르트를 걍 지나치기엔 또 아쉬웠다. 해변에서 버스를 타고 빌리지 쪽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로 막상 가니 웨이팅이 길어서 "에이, 접자" 하고 돌아섰는데 (줄 스는거 별로 안 좋아함), 옆에 로드 스토우즈 '카페'는 자리가 하나 남아서 낼름 들어갔다.
아이스커피 한잔과 에그 타르트 한 개를 시켰다. 타르트는 11 mop 약 2,000원 정도다. 예상대로 맛은 달달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달진 않았지만 달다. 맛은 바삭한 페이스트리에 부드러운 타르트, 비주얼에 충실한데 특별한 맛인진 모르겠다. 포르투갈과는 다른 마카오식 타르트라고 한다 (아마 내가 이 차이를 몰라서 그런 듯?). 위 사진은 카지노 구역인 코타이의 로드 스토우즈 런더너 Londonder점인데, 본점보다도 줄이 훨씬 길어 보였다. 쨋든 유명세를 경험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줄까지 서서 먹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갓 구운 타르트와 하루 지난 타르트를 비교해 보라는 추천은 흥미로웠다.
| 아프리칸 치킨 @Henri's gallery
점심 이후 걷고 또 걸으면서 저녁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펜하 언덕을 넘고, 멋진 주택들로 가득한 마카오 최고 부촌 지역을 넘어, 예쁜 야경의 남만 호수 쪽으로 내려오니 1976년에 열었다는 또 하나의 마카오 유명 맛집, 헨리스 갤러리가 자연스럽게 반긴다. 배도 고픈 김에 이 집에서 아프리칸 치킨을 먹기로 했다. 인기 있는 집이라 그런지 테이블이 구석에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페르난도스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식이여서 그런지 여기도 서양인들이 많이 목격되는 곳이었다. 고로 영어 주문 가능.
식전 빵부터 좋았다. 메인인 아프리칸 치킨은 25분 기다릴 만큼 푸짐했고 껍질이 특히 맛있었다. 매콤한 카레 소스 덕에 맛이 한층 살아났다. 입에 물릴까 봐 사이드로 시킨 밥은 고봉밥으로 나와 좀 당황했는데 도움이 되긴 했음. 마카오에서 이 치킨 요리에 대한 이름들이 헷갈릴 수 있는데, '아프리칸 치킨'은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퓨전 요리, '모 로 치킨'은 광동 요리의 영향을 받은 요리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또한 '포르투갈 치킨'이라고 하면 아프리칸 치킨을 의미한다고.
헨리스 갤러리 바로 옆집인데 남만 호수 배경을 바로 볼 수 있는 야외좌석이 매력적이다. 여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알리 커리 하우스 Ally Curry House라는 곳이다.
헨리스 갤러리와 알리 커리 하우스 앞에 보이는 남만 호수의 야경은 이렇다. 구조물에서 떨어지는 걸로는 세계 최대 높이의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는 마카오 타워가 보인다 (63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진다고 보면 됨).
| 차찬텡식 아침 @San Hong Fat Cafe 新鴻發美食
아침에 성룡의 <취권>과 이소룡의 <사망유희> 촬영지인 로우림록 정원에 가던 중 배가 고파 급히 실시간 열려있는 식당 검색해 들어간 곳. 당시 현지인들로 보이는 손님들만 있어서 로컬 식당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찾아보니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집이더라. 마카오에 한 4~5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차찬텡 프랜차이즈이고 영어 주문 불가지만 메뉴 몇몇은 사진이 있다.
홍콩 차찬텡 느낌의 세트 메뉴(커피+파인애플번+마카로니 수프)를 주문했다. 역시나 혈당스파이크가 걱정되는 달달함 폭발. 파인애플번은 속에 버터 한 덩이가 통째로 들어가 있고 겉은 소보루 빵보다 훨 바삭했다. 꼬소하고 맛있지만 지나치게 달아 반 이상 남겼다. 단맛을 좋아한다면 강추!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구석자리에서 식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식당 전체 뷰를 바라보며 먹는 것도 혼밥 여행의 묘미니까. 다만 이곳의 구석자리는 벽 보고 벌서는 느낌이 나는 작은 자리라 웃음이 나왔다. 암튼 세트 메뉴(36 MOP, 약 6,600원)로 간단히 아침을 즐기기엔 충분했다.
| 오리밥 @My Messy Kitchen
타이파 골목에 자리 잡은 로컬에게 추천받은 식당. 소량의 마카오 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여 한 번에 여러 맛을 볼 수 있게 하는 콘셉트이고, 영어 소통 가능하고 사장님도 유쾌하신데 얘기하다 보니 가게 이름인 My Messy Kitchen의 의미도 공감할 수 있었다. 자리도 한 곳뿐이라 아늑한 분위기. 오리밥 Duck Rice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알레르기 체크까지 꼼꼼히 해주는 세심함이 인상적이었다. 😊
사장님과 남편, 잘생긴 아드님 두 분, 그리고 친척까지 모두 만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특별한 시간이었다. 부인 사장님의 고민부터 요리 자격증을 딴 이야기와 이 식당의 컨셉 등등. 아, 가게는 가족(+친척)이 함께 DIY로 꾸민 공간이라고. 한국인이라고 하니 네이버 리뷰를 보고 오는 한국 손님도 굉장히 많다고 하신다. 남편분은 다국적 손님이 많은 점을 좋아하지만 의외로 대륙 관광객은 드물다며 신기하다고 하셨다. 타이파가 엄청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대륙의 젊은 관광객들 많이 오는데도 이 가게는 많이 찾이 않는다 점은 나 또한 흥미로웠다.
마카오 영화 <이자벨라>를 보고 마카오 및 타이파까지 왔다고 하니 사장님도 그 영화를 아신다고 했다. "이 영화를 안다고요?"라며 놀라워하셨고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마카오에 왔다"라고 답하며 촬영지를 찾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나도 이 영화 아는 사람 본 건 사장님이 처음이었다 ㅎ). 덕분에 이곳에서 또 하나의 즐거운 여행의 도장을 찍고 간 느낌이다. 오리밥, 샐러드 각각 48 mop, 약 8,800원.
| 거위 창자 덮밥 @Chan Kwong Kei BBQ Shop 陳光記飯店
여기는 로컬+관광객에게 모두 사랑받는 식당으로 보면 되겠다. 원래 두 번 와서 고기 3개 덮밥 (오리+닭+돼지)과 거위덮밥 먹고 가려고 한 곳인데 뭐에 홀렸는지 거위 '창자' 덮밥을 시켜버렸다(鵝腸飯). 하지만 결과는? 식감 쫄깃쫄깃한 게 마치 곱창을 먹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간장 소스 좀 버무려져 있으니 이것이 천국.
10시경에도 손님이 가득한 이곳은 시간대 상관없이 북적였다. 내 테이블에는 직접 가져온 마오타이 혼술부터 하던 현지인이 합석했는데 나중에 내 접시가 밥만 남은 걸 보고는 자기 고기를 먹으라며 권하셨다. 몇 번 사양하다 덥석 먹었는데, 와, 닭이 꿀맛! 역시 현지인이 고른 메뉴는 다르다. 파파고를 통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늦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더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을 텐데! 거위 간덮밥 70 mop, 약 13,000원.
| 거위다리 덮밥 @Chan Kwong Kei BBQ Shop 陳光記飯店
다음 날 아침에 또 갔다. 이곳의 매력은 2개나 3개까지 고기를 섞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인데 새벽부터 고민이 참 많았다. 어제 거위 창덮밥을 먹은 관계로, 마지막은 '오리+닭+돼지 덮밥'이냐, 아니면 '거위 덮밥'이냐... 거위는 고급 재료라 (오리랑 비교하면 가격이 두 배다) 섞어 먹기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오리랑 닭 돼지는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니 거위 덮밥으로 결정!
거위도 그냥 거위덮밥이랑 거위다리 덮밥이 있는데 식감이 더 좋다는 거위다리 덮밥으로 주문. 흑후추를 버무린 거라 맛이 그냥 술안주다. 말해 뭐래. 참 맛있다. 쫄깃한 살 뜯어먹는 재미도 있어. 껍질도 맛있어..ㅜㅜ.. 너무 맛있어. 여기는 밥이랑 고기만 딸랑 나와서 이번에는 삶은 야채(상추)도 같이 시켰다. 차까지 (그릇 씻는 용인데 음료수 없어서 그냥 마심) 함께 하니 역시 완벽한 삼위일체 조합이다. 원래는 오늘의 수프도 있는데 이 날은 안된다고 해서 못 먹었다. 거위다리덮밥 130 mop, 약 24,000원. 삶은 상추 소짜 33 mop 약 6,000원.
| 육포시식 @Koi Kei Bakery
타이파 방문 당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시식 거리는 못 갔는데 호텔로 가는 알메이다 리비에로 도로에 마침 육포 시식을 주는 곳이 있어 한 점 덮석. 적당한 부드러움과 쫄깃함. 맛있었다. 코이케이 베이커리라는 곳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카오 안에 20여개의 체인점을 둘 정도로 인기있는 간식 가게라고 한다.
| 피시볼 국수 @Hou Si Loi 好時來美食
이번 여행의 진정한 로컬 경험이 아닌가 싶다. 원래 가려던 국숫집 찾아가니 폐업한 바람에 잠깐 방황하다가 급하게 눈에 들어오는 한 골목길 음식점을 들어갔다. 역시 관광객의 흔적은 없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까지 다양한 현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메뉴도 다 한자. 다만 몇몇은 사진 메뉴가 있어서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피시볼 국수를 시킬 수 있었다. 세트 메뉴가 지금은 안된다고 해서 국수만 주문, 30 mop 5,500원 정도
여기도 피시볼이 푸석한 것 보니 마카오 특징인가 보다. 원했던 딱 그 중국식 분식점 국수 맛이 좋았다. 처음엔 특유의 퉁명스러운 캔토니즈 말투였지만, "아 캔트 스피크 챠이니즈"라고 하니 말투가 정화되며 손가락으로 "앉으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언어의 차이일 뿐, 이런 경험은 하도 익숙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ㅎ.
중간에 라유를 뿌렸는데... 와... 먹자마자 목구멍이 커 억 하며 얼굴 빨개질 정도로 매웠다. 저 순간 음식이 변신했고 그 맛에 홀려 또 촵촵촵 한 그릇을 비웠다 (오늘 저녁 코스 요리라 가볍게 속만 채우려고 한 건데...).
| 음료수 시식 @ R. de São Domingo
너무나도 매웠던 라유의 내음이 가시지 않아서 뭐 하나 사 마실려고 하는데 죄다 줄 선 집 밖에 없어서 해매다가 시식 주는 음료수 한 잔 했다. 멜론 맛이 나는 상큼한 음료수, 입가심으로 좋았는데 어느 가게 껀지는 모르겠다. R. de São Domingo의 거리였다.
| Tasting 코스 @Hotel Central Palace Restaurant
대망의 피날레, 마지막 날 저녁 코스 요리다. 어차피 모든 빗장을 풀은 여행이었으니 한 잔 씩이면 괜찮겠지 싶어 와인 페어링도 선주문했었다 (추가 시 198 mop, 약 36,000원, 메인 코스 자체는 588 mop, 약 108,000원)
전채는 기름에 조리된 노른자 타르트와 캐비어, 그리고 앙증맞은 밀크티가 함께 제공됐다. 타르트를 한 입에 쑥 넣으면 노른자가 입안을 가득 채우고 밀크티 한 모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수프는 70년대 스타일로 끓인 닭고기 수프. 멜론과의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울렸고 소라의 식감은 부드러웠다. 특히 육회 같은 맛과 쫄깃한 식감을 가진 식재료가 궁금해 물어보니 바다 달팽이(Sea Snail)로 고급 재료라고 한다. 독특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았다.
메인 요리는 두 가지다. 오스만투스 향을 입힌 훈제 프렌치 비둘기는 은은한 향과 라이스 칩이 인상적이었다. 코스 요리라 반 마리만 제공되었고 대가리는 나오지 않았다. 맛은 괜찮았는데 개인적으로는 Fat Siu Lau의 비둘기 요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전복 웰링턴은 살짝 난해했지만 무난히 먹을 수 있었다. 디저트로 나온 크리스털 설탕 호리병박은 포멜로(붕깡), 피치(복숭아), 플럼(자두)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사케, 테킬라, 위스키와 함께 순번에 맞추어 먹는 방식이다. 입 안에서 설탕벽이 깨지는 독특한 식감이 재미있었다.
마카오 토속은 아니지만 마카오에서 꼭 먹어보라는 추천을 받은 적이 있어 25년 산 보이차(Puer'er Tea)도 주문했다. 흙내음 특유의 깊은 풍미가 인상적이었고 코스의 단계가 넘어갈 때마다 이전 음식과 와인의 맛을 클렌징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런 게 바로 생차의 매력인가 싶었다. 전체적으로 서빙이 특히 친절했는데, 손으로 먹는건지 포크로 먹는건지 이건 뭔지 등 질문에도 편하게 답해주셨고, 음식이 나올때마다 세심한 설명과 배려 덕분에 시종일관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역시 친절한 경험은 맛을 떠나 잊을 수가 없다. 계산 시 호텔 투숙객에게는 10% 할인이 적용되는데 예약 당시 몰랐던 부분을 직원분이 확인해 프런트에서 쿠폰까지 챙겨주셨다. 이 세심한 배려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남았다.
| 중국식 조식 세트 @Hotel Central Palace Restaurant
마지막 날 홍콩행 페리 시간이 타이트해서 아침도 호텔 식당으로 예약했었다. 서양식과 중국식 중 택 1인데 여행 중 딤섬류 계획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중식으로 예약했다. 콘지 제외 맛은 별로였다. 만두는 특히... ㅜㅜ 전복은 귀해서 다 먹어주고. 마카오 국기 색감의 크로와상 비주얼이 특이했던 서양식을 먹었어야 했나 싶었다. 암튼 조식도 투숙객이면 10% 할인이 들어간다. 조식에서도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 원가는 148 mop, 약 27,000원.
| Epilog: Hong Kong & Korean Air
호텔 체크아웃 할 때 가지고 나온 사과오이 주스. 첨에 보고 오이? 윙? 했는데 괜찮다. 그냥 달다구리다.
참치 샌드위치 @TurboJet Ferry
마카오-홍콩행 터보제트 페리는 슈퍼 좌석을 예약했었는데 한 시간 이동이긴 하지만 생수와 간단한 샌드위치가 나온다. 햄치즈랑 튜나 둘 중 하나 선택인데 튜나 선택. 어린 시절 홍콩에서 먹던 추억소환의 맛이었다.
베이컨 치즈 버거 @Beef & Liberty
홍콩 공항 보딩장 근처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번도 맛있고 고기는 스테이크 수준으로 괜찮았지만 크고 팬시한 햄버거는 햄버거가 아니며 햄버거는 비싸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라 그런지 약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했고 가격은 137 HKD(약 26,000원)로 많이 쎄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중국식 음식을 먹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대한항공 이코노미 기내식
저녁으로 생선과 비빔밥의 선택. 선택은 비빔밥. 고추장 쫙 돌려주시고 뚝딱 먹은 다음 맛있는 과일 섭취. 기내식은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맛있다. 무슨 이유일까?
암튼 영화 두 편 정도 보니 인천공항 랜딩 시작.
반팔 입고 한가을의 크리스마스를 한 껏 즐기다가 갑자기 한국의 매서운 강추위에 정신이 바짝 들어 시킨 아아, 내 돈 주고는 커피 잘 안 사 먹는데 그냥 꿈같은 지난 며칠이 뭔가 아쉬워서 한 잔 사셔 마시며 혼자 넋두리를 함. 생각해 보니 마카오에서도 커피는 한두 번 정도밖에 안 마신 듯?
유튜브의 알고리즘의 항해 속에서 어느 날 들려온 매력적인 음악 Litty의 <Pull Up>. 이 곡으로 그녀는 지난 9월 일본 힙합 신에 발을 내디뎠다.
| 첫 번째 싱글:
뮤직비디오와 음악은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라이프를 즐기는 도시적 감성을 담고 있다. 한국/일본 노래 다 자주 듣는데 세련되고 스웩 넘치는 스타일이 주를 이루는 한국 힙합을 듣던 가운데 이 음악을 접했을 때 이 구역의 귀여운 막내 동생이 훅 하고 튀어나온 듯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의 한 음악 사이트에서도 언급했듯, "푸라, 푸라"라고 들리는 (풀업의) 반복되는 통통 튀는 훅은 Litty의 귀엽고도 독특한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며 듣는 이를 자연스럽게 끌어당긴다. 이 신예의 MV는 3개월 간 99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 두 번째 싱글
모처럼 마음에 드는 아티스트를 만나면 다른 노래들도 듣고 싶어지게 마련인데 아쉽게도 싱글이 이것밖에 없다 보니 2개월 넘게 가량은 이 노래만 들어야 하는가... 했다가, '24년 12월 17일 드디어 새로운 싱글이 발표된다. 바로 "Thinkin' Bout". "Pull Up"이 초저녁 들뜬 분위기의 가벼운 댄스 넘버라면 이건 좀 더 깊숙한 밤에 가까운 소울풍 알엔비의 감미로운 곡이다.
각각의 MV도 그 느낌을 가볍게 잘 표현하고 있긴 한데, 음악에 맞춘 가벼우면서도 작은 임팩트들이 있는 마법봉 흔드는 듯한 제스처들은 귀여움도 아니고 터프함도 아닌 애매모호함 속에 남아 있는 듯 하다. 근데 쨋든 이게 또 Litty의 음악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MV를 보다보니 '어?' 한글이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 찍었다. 안 그래도 요즘 일본 노래들 들으면서 (특히 힙합/알엔비 계열) MV를 한국에서 찍는 사례들을 봐서 신기했는데 마침 Litty의 이 두 번째 싱글도 한국서 찍은 걸 보고 반가웠다.
| 첫 EP 앨범, 12월 20일:
노래는 2분 남짓 짧아 살짝 아쉬움을 남기는데 그 아쉬움을 느끼게 하기도 전에 첫 EP앨범에 대한 intro가 쿠키로 나온다. 12월 20일 발매다, 두둥!
이번 12월 20일에 첫 데뷔 EP 앨범 <Just a Girl>을 발표했다. 1월 24일 나고야의 ORCA라는 클럽에서 라이브도 하나 보다. 가고 싶다.. ㅜㅜ
대망의 12월 20일, 당일은 못 지켰지만 약간 지나서 유튜브뮤직에서 확인해보니 4곡이 더 추가된 EP를 만날 수 있었다. 역시 인기 트랙인 만큼 "Pull Up"은 109만 회의 플레이가 찍혔다. "Thinkin' Bout"이 팔로우업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곡들인 "HeaRt"이 더 앞서고 있었다.
그럴지언정, "Thinkin'Bout"이 끝나고 EP발매 소개를 위해 갑자기 치고들어오는 사운드가 살짝 강렬해서 감미로웠던 곡 대비 기존의 "Pull Up"을 연상시켜주는 비트였는데, 바로 그 노래였다. Pull up과 Thinkin'Bout이 보여주는 에너지와 감성의 경계 그 중간에서 Litty가 그리는 도시의 밤을 표현해 주는 듯한 노래다.
(앨범의 유튜브 프리미엄 링크는 아래와 같다)
좋은 노래가 나오면 또 리믹스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아래는 괜찮은 "Pull Up"과 "Thinkin'Bout" 리믹스 버전이다. 곧 "HeaRt" remix 버전도 만날 수 있기를...
영화 <후쿠오카>에서 제문과 소담이 처음 숙소로 들어가는 장면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아직은 모호한 이들의 관계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우당탕탕 떠난 여행이라는,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초반부에서 이 장면은 관객에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자연스럽게 심어주는 흥미로운 도입부로 기능한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고 제문이 꿍시렁 대는데 소담이 날씨 너~무 좋다! 하면서 대화를 뭉개며 같이 들어가는 장면. 제문: 키는 어디서 낫어? 사람도 없고 카운터도 없는데? 소담: 편하잖아요? 굳이 얼굴 안 마주쳐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이런 거 에어비엔비... 아저씨 모르죠? 제문: 에어비엔비... 나도 알어. 소담: 지하에 있다가 나오니까 좋죠?
소담의 발랄함과 제문의 투덜거림이 묘하게 어우러져 영화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이 장면은 후쿠오카 남쪽의 조용한 골목길에서 촬영되었다.
영화 <후쿠오카>의 촬영지 중 가장 찾기 어려웠던 장소다. 대부분의 촬영이 후쿠오카 메인 지역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지만 (위 노란색 박스 범위) 이곳은 유독 남쪽에 혼자 동떨어져 있어 (빨간색 박스) 찾는 데 한참을 헤맸다.
심지어 1년에 한 번 열린다는 후쿠오카 최대 축제인 하카타 기온을 뒤로하고 찾으러 온 촬영지다.
맨션 입구는 안 쪽 골목길에 있다.
한 분이 이 제문이 서 있던 공간에서 꽤나 오랬동안 담배를 피고 있어서 앞에서 '이츠 오완다요? 하는 식으로 기다리는 것도 이상하고 (그러다 한 대 맞을 듯 ㅋ) 해서 담배 다 필 때까지 빌딩 주위를 한 세바퀴 돈 것 같다 ㅎ.
영화에서 첫날밤 제문이 숙소에서 바깥 대로변을 발보며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숙소의 분위기와 공간감을 잘 보여준다.
이 장면의 배경은 건물의 뒤 쪽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영화 속 맑은 날씨와 달리 비가 꽤 내리던 날이었다. 건물 뒤편으로 가보니 대로변이 펼쳐져 있었고 공간 구성의 특징이 흥미로웠다. 주거 공간은 골목 쪽에 위치하고 대로변 쪽으로는 등을 지는 형식으로 프라이빗 공간과 퍼블릭 공간을 명확히 구분한 설계로 보였다. 건물의 뒤쪽 외관은 공공적인 파사드로 활용되고 골목에서 진입하면 주거 공간으로 연결되는 구조다. 반대로 외부에서 진입하면 가게나 다목적 공간 등 공공적인 시설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공간의 기능을 명확히 나누면서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름은 신 다카사고 멘션 빌딩이라는 곳이다. 주오구의 키요카와라는 곳에 있다. 1977년 준공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 건물로 지속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대적인 주거 및 업무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라고 한다. 1층에는 '키요카와 로터리 플레이스'라는 복합 상업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하고 (현재는 바뀌었을 수도), 디자인 사무소와 카페 등이 입점해다. 텐진과 하카타 같은 주요 도심과 가까워 직주근접 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매력적인 장소라고 한다. (위 공홈에 들어가 보면 빌딩 디자인 이야기와 다양한 오피스/주거 공간의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구글 지도 주소는 다음과 같다. 新高砂マンションビル, 2-chōme-4-29 Kiyokawa, Chuo Ward, Fukuoka, 810-0005
| 번외 이야기
구글 지도에서 본 신 다카사고 멘션 옆 건물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이자카야일 것 같아 궁금했는데 찾아보니 의외로 감성적인 숙박 시설이었다. 100년 된 집을 리노베이션한 곳으로 에어비앤비에서 확인해 보니 1박 가격이 상당히 높았다. 압도적으로 레트로스러운 외관과 현대적인 감각이 어우러진 분위기가 매력적이었지만, 가격대를 보고 감상만 하기로 했다. 이런 독특한 숙박 시설이 근처에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닥터 스트레인지 (2016)>에서 생텀은 마블 유니버스에서 지구를 지키는 마법 거점으로 뉴욕, 런던, 홍콩 세 곳에 위치한다. '생텀(Sanctum)'은 신성한 장소를 뜻하지만 여기에 그 중에서도 더 신성하다라는 '생토럼(Sanctorum)'이라는 표현을 더해 마법사들의 본거지이자 지구 방어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홍콩 생텀은 영화의 역/정방향 전투신이 15분 동안 숨 가쁘게 펼쳐지는 배경으로 등장하며 아카데미 VFX 부문 후보로도 주목받는데 한몫 했다.
| 홍콩 생텀 생토럼의 위치와 제작
영화에서 홍콩 생텀 전투신의 배경은 카메론 스트리트 (Cameron St.)와 프랫 애비뉴 (Prat Ave.), 카나본 로드 (Carnarvon Rd)와 채텀 로드 사우스 (Chatam Rd. S.) 사이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를 쫙 스캔 한 후 실제 촬영은 영국 롱크로스 스튜디오에 240여 미터 길이의 세트를 만들고 진행하며 CG로 재창조되어 마법적인 분위기를 더했다고.
다만 실제 홍콩 생텀의 모티브가 된 건물이 위치한 곳은 프랫 애비뉴에서 3.5km 떨어진 프린스 에드워드역 근처 라이치콕 로드에 있다. 마블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마블 생텀 특유의 동그란 비샨티 문양 창문의 유무다. 홍콩 생텀의 디자인과 역파괴 전투신이 어떤 방식으로 촬영 되었는지는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홍콩 생텀의 모티브: 레이싱춘 (Lui Seng Chun) 빌딩
레이싱춘(雷生春) 빌딩은 1931년 광둥 출신 사업가 레이 량(雷亮)에 의해 설립된 상가주택으로 1층은 전통 약국, 상층부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레이싱춘 (뇌생춘)'이라는 이름은 약국의 약이 환자를 회복시키고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준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레이 량 사후 가족들이 떠나며 1980년대부터 방치되었지만, 가족들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며 이를 2000년 홍콩 정부에 전례 없이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후 2003년 소유권이 홍콩 정부로 넘어가 보존 및 레노베이션이 진행되었다. 홍콩 초기 근대 건축사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2022년 1급 역사건물로 지정되었으며 (한국으로 치면 국보 1군 멤버들 중 하나 정도로 해석, 홍콩은 1'호' 개념이 없음), 현재 홍콩 침례대학교의 중의학 센터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홍콩의 그레이드 1등급 건물은 '24년 기준 총 177개다.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홍콩 AAB (문화재 위원회) 홈페이지로 가서 그레이드 별 (1~3) 건물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홍콩이나 역사적 건물 탐방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여행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 건축적 특징:
레이생춘(Lui Seng Chun) 건물은 삼각주 형태의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대표적인 통라우(Tong Lau, 중국식 상가주택, 우리나라로 치면 주상복합인데 서민형 주상복합 같은거?)로 실용적 중국 요소와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안정성, 그리고 1930년대 홍콩에서 유행한 세련된 아르데코(Art Deco)의 세련된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매력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미학이니 양식이니 뭐니 복잡하다 싶으면 그냥 신고전주의는 덕수궁 석조전이나 미국 백악관, 아르 데코는 옛 서울역사나 크라이슬러 빌딩을 떠올리면 될 듯.
신고전주의 = 질서 정연, 반듯한 형태, 직선 vs 아르데코 = 정교하고 세련된 라인, 곡선
중국식 요소로는 광둥 지역 특유의 기후에 맞춘 깊은 베란다 설계를 꼽을 수 있다. 이 베란다는 에어컨이 없던 시절 햇빛과 비를 차단하며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실용적인 구조로 하층부는 상업 공간, 상층부는 가족의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통라우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통라우는 홍콩 발전으로 인한 1840년대부터 중국인 이민자들의 가성비 주거지의 공간양식으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도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홍콩 도시 스케이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신고전주의적 특징으로는 대칭적인 구조와 상층부의 발코니를 지탱하는 8개의 화강암 기둥, 그리고 상점 상단에 위치한 파손된 삼각형 장식(Broken Pediment)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웅장함과 안정감을 강조하며 신고전의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품격을 더한다. (와중에 중앙 기둥 두 개를 기준으로, 왼쪽은 기둥 네 갠데 좌측은 두 개임 ㅎ)
아르데코 양식의 특징은 삼각주 형태의 코너블록을 곡선형 파사드와 발코니로 풀어낸 세련된 디자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발코니와 항아리 형태의 장식을 가진 난간(Balustrade)은 기본적으로 신고전주의적인 요소이지만 이를 곡선형으로 표현하며 아르데코의 미적 감각을 더해 독창적인 조화를 이룬다.
결론적으로 레이생춘은 홍콩 건축의 독창성과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홍콩만의 독특한 도시 경관의 형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건물의 우측 파사드 방향으로 뒤쪽에 가보면 홍콩 침례대학교의 중의학 센터로 활용되기 위해 모던 형식으로 증축된 부분이 보인다. 이 새로운 볼륨은 기존의 전통적 양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어댑티브 리유즈 방식이 싹 다 밀고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영화 촬영지 순례를 몇 번 하다보니 재미가 붙었다. 그냥 일상에서 심심할 때 찾아보거나, 영화를 보다가 인상깊은 곳이 있으면 조금 씩 만들어 가려고 한다. 인생에 영향을 줄 만큼 영화를 사랑하는 입장에서 마지막 남은 생애의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가는 마음으로 하나씩 소소하게 만들어 보려고 한다. 무대는 주로 가까운 아시아권이다. 1~4시간 비행 시간 컷으로. 나중에는 어떤 지도가 펼쳐질지는 모르겠지만 꽤 나 재밌다. 영화가 기준이긴 한데, 만화, 드라마도 가끔 껴 있다. 특히 영화 속에 나왔던 식당들을 가보고 싶다.
찜통 속에서 갓 나왔는지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곳은 언젠지 모를 옛 시절의 맛을 변함없이 간직해 온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다.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맛보다는 나는 이런 옛날식 강렬한 한 방이 좋다. 오래도록 지켜온 그 깊은 맛.
남대문역 5번 출구에서 시장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눈으로 찾지 않아도 은은히 퍼지는 담백한 향이 발길을 잡아끈다. 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몽글몽글한 김치만두, 보자마자 군침이 돈다. 겉모습도 먹음직스럽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이 뇌 속 깊이 각인된 탓인지 더욱 강렬하게 나를 유혹하는 듯하다. 나는 이 집 만두의 노예나 다름없다.
칼국수도 파는 곳이지만 먹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가면 늘 만두에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맛보진 못했다. 메뉴판에 적힌 '만두 100개 10만원'이라는 문구는 특히 인상 깊다. 만두나 빵처럼 낱개로 파는 식당 가서 '100개' 메뉴를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무슨 부품 대량납품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이곳 만두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집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이 녀석들은 아직 조리 전인 만두다.
찐 후에는 이런 러블리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예쁜 조형물에 생명이 깃든 것처럼,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나오는 만두들. 보통 줄이 긴 편이지만 로테이션이 빨라 기다림도 그리 길진 않다. 사실 그 보다도 군침 도는 만두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내 앞에서 만두가 모두 소진되어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잠깐 기다리다가 이내 나오는 찐만두를 첫 번째로 받아가는 순간의 행복함은 짜릿할 정도다. (너무 좋아서 한 두 번 "예에~"하고 소리쳐본 적 적도 있다)
짜잔~ 고기만두.
이곳에서 직접 먹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포장 해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포장만할 때도 조금이 아닌 듬뿍 담아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집이 멀어 자주 오기 힘들다면, 한두 번 더 즐길 수 있도록 넉넉히 포장해 가길 추천한다.
왜. 나. 면.
어느 날 밤, 하얀 토끼를 쫗아가며 무스와 도도, 애벌레와 마주하고, 아기 돼지와 카드 병정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그 기묘한 밤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밤 높은 확률로 그 만두가 떠오르며 잠 못 이루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위는 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판타지스럽게 표현한 이미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만두의 모습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직도 입 안이 기억하고 있는 듯한 그 맛.
내 몸과 정신이 함께 기억하며 나를 안달 나게 만드는 그 맛. 다 식어도 여전히 맛있는 만두, 다음 날 먹어도 변함없는 만두.
피처링 찐빵, 예쁘게 생겼다 (먹어보지는 못함, 정말 항상 만두만 먹으니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김... 내 상상 속에서는 마치 해무처럼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여운을 남긴다. 날씨가 추워지니 가메골옛날손왕만두가 자꾸 생각난다.
요즘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남대문 한복판에 왕만두 판타지가 펼쳐진다. 수많은 왕만두들이 증기를 내뿜으며 둥실둥실 떠다니고, 나는 그 속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는 기분이다. 한입 베어 물면 따뜻한 속이 터지고, 부드러운 만두피와 어우러진 맛이 가득 찰 것 같다. 하지만 먹을 수는 없다. 향기로운 추억이 입안에 퍼지며 그 순간에 잠시 빠져든다.
이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일도 아닌데 단순한 음식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날이 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왕만두의 그리운 맛을 상상하며 이 미묘한 갈망을 꾹 참아본다. 남대문이 너무 멀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벼운 책가방 하나에, 밤에라도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비행기 앞좌석을 추가 비용까지 들여 구매했지만, 살짝 먼저 도착한 홍콩발 방문객들 덕분에 출국심사가 두 시간이나 걸렸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특급 열차 라피트 (RAPI:T). 뜻하지 않은 키오스크에서의 카드 결제 오류까지 있어서 포기하고 카운터로 후다닥 뛰어가 출발 3분 전에 가까스로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다.
승강장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화장실까지 급히 다녀온 후 열차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비틀비틀ㅜㅜ).탑승하고 몸을 실은 1분 뒤 바로 열차가 출발한다.
| 니시나리 구
약 40분 만에 신이마미야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오사카 도심까지 택시비가 원화로 약 15~20만원이라 급행열차를 탔지만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여유를 즐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라피트 편도는 현장 구매 시 약 1,350엔, 12,000원 정도다.)
신이마미역 (新今宮駅)에서 니시나리의 숙소까지는 약 700미터, 10분 거리. 걷다 보니 금세 '도부쓰엔마에(動物園前)' 역 사거리에 도착했는데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실종> 촬영지다. 좌측 파친코가 있는 '한분야' 건물과 우측 '패밀리마트' 사이 철길 뒤로 하얀 '마루한 신세카이점'과 '츠텐카쿠' 타워의 머리, 영화 속 장면이 그대로 펼쳐진 듯한 순간이다
영화 <실종>은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가타야마 신조 감독 작품으로 어딘가 요즘 한국 스릴러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한 일본 영화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며 영화 오프닝의 딱 그곳에서 찍어 봤다. 오사카 배경 영화들에서 봤던 니시나리 스트리트 라이프의 상징 같은 츠텐카쿠 타워를 맞이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구글 지도에서 루트를 미리 확인해 놓았었지만 이렇게 금방 도착할 줄이야.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긴 여정과 삽질을 거쳐 찾아야 할 아이템을 너무 쉽게 찾아버린 기분이다. 원래라면 좀 헤매고 힘들게 찾아야 RPG 감성이 사는 건데, 이건 너무 직진 느낌이라 살짝 허무하기도 하다.
파노라마 식으로 보면 이곳이 꽤 큰 사거리임을 알 수 있다. 왼쪽 중앙에 빛나는 하얀 건물은 오모7(Omo7)호텔이다. 흔히 오사카가 숨기고픈 '슬럼가' 이미지로 알려진 니시나리구 아이린 지역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세워졌다고도 한다. 진위는 관계자들만 알겠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의 호시노 리조트 주식회사가 이 지역에 고급 호텔을 선보인 점은 흥미롭다. 이 지역 특성 때문인지 5성급 호텔임에도 가격대가 꽤 합리적이긴 하다. 관광지인 북쪽의 신세카이 쪽으로는 열려있지만 아이린 지구 방향으로는 밖을 나갈 필요 없다는 듯, 큰 정원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아이린지구 ((구) 가마가사키)
매우 대략적으로 아이린 지구 행정 구역을 표시해 보았다. 지도에서 중간의 노란색 라인은 코코룸 게스트하우스로 가던 길을 표시한 것. 아이린지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구) 가마가사키 노동복지센터'와 '삼각공원'을 표시해 두었는데, 이 주변이 전 세계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일본/오사카 최대 우범지대!"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다.
오사카 최대 유곽인 토비타신치가 아이린지구와 아베노 재개발 지구의 경계를 이루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최근 오사카 엑스포를 앞두고, 토비타신치와 아이린 지구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루머가 인터넷에 돌고 있다. 오모 7과 아베노하루카스 300은 이 대대적인 변화를 위한 몸풀기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막상 지도를 보니 언제 공격을 할 지 모르는, 양 옆에서 은근 압박을 주는 더블 볼란치 같은 느낌이다.
1970년대 아이린지구(당시 가마가사키)의 전성기를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 전후, 대규모 건설 붐이 일어나며 일본 전역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던 시기. 이 때 가마가사키 노동복지센터가 건설되었으며, 일러스트의 좌측에 보이는 모던 형식의 건물이 바로 그 센터다.
영화, <실종>에서 묘사 되었던 삼각공원 (하기노차야 미나미 공원)의 노숙자들을 위한 배급 모습.
영화 <실종>에서 묘사된 삼각공원(하기노차야 미나미 공원)은 노숙자들을 위한 배급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한때 활기찼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몰락하며 노숙자로 전락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마가사키 포럼'의 자료를 참고해보면 저 이이린 지구의 간단 역사는 아래와 같다.
- 1945년 전후 복구: 전쟁 이후 가마가사키는 빈민가로 급속히 재건됨 - 도야마촌 형성: 1950~70년대, 전국에서 몰려든 노동자들로 도야(저렴한 숙소)와 판잣집이 가득 참 - 1970년 엑스포와 건설 붐: 엑스포 준비로 노동자들이 몰리며 아이린 센터가 설립 - 1980 버블 경제의 붐과 갈등: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로 노동 수요가 폭락하며 폭동과 갈등이 격화됨. 90년대는 대규모 폭동도 발생. - 현재: 버블 붕괴와 변화: 경제 침체, 노동자 고령화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며 현재 자연스러운 제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중
| 일본 같지 않다는 일본 속 일본 같지 않은 숙소
숙소가 있는 도부츠엔마에상점가와 산노 시장으로 가는 길, 처음 접하는 분위기에 살짝 긴장감이 감돈다. 골목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라오케 소리 덕분에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는 현실감이 든다.
OMO 7과 함께 고민하다가 로컬 분위기를 체험하고자 선택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레이트 체크인이라 문이 닫혀 있었는데 여기 묵고 있는 빨간머리의 '서양인'에게 도움을 받고 출입한다.
"어? 나 일본에 있는 거 맞아? 이게 뭐야?"
예상과는 달리 늦은 시간인데도 내부는 북적였다. 서양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의 전형적인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 순간 여기가 일본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던 순간, 한 일본인 스태프가 유창하게 영어로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보통 일본에서는 영어로 물어도 일본어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낙후 지역이라는 니시나리에서 마주친 첫 일본인이 영어를 이렇게 술술 한다고???). 일본에서의 첫 저녁에 일본인과 영어로 “나이스 투 밋츄, 마이 네임 이즈 땡땡땡,” 같은 형식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이름은 후유 상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배가 고팠기에, 그런이런저런 분위기는 잠시 뒤로하고 방에 짐을 재빨리 풀고 뭘 좀 먹으러 나섰다. 나가는 길에 퇴근 중인 후유상을 다시 마주쳤다. 혹시 이 시간에 문 연 곳이 있을까 물으니, 구글맵으로 바로 '토비타 식당'을 찾아 추천해 주셨다.
처음에 ‘토비타’라는 이름 때문에 잠깐 ‘응?’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오사카 최대의 유곽 지역이라는 ‘토비타신치’가 있기 때문. ‘飛田(토비타)’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관련 역사를 찾아보면 주로 토비타신치와 현재는 없어진 토비타 철도 정류장(토비타 테이류죠) 정도가 나올 뿐이어서, ‘토비타’는 보통 이 유곽 지역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 식당으로
암튼 숙소에서 약 240미터 3분 거리라 구글맵 보며, 영업 종료 후 시간 대 니시나리 가라오케 아케이드의 분위기를 살피며 식당으로 향한다.
영화 <실종>의 오프닝인데, 영화 속에서는 아마도 이 아케이드 안 '타마데'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촬영스폿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식당으로 가는 길도 꽤나 비슷한 느낌이 나서 영화를 기억하며 거닐었다. 처음 도착했던 9시 30분 즘에는 꽤나 사람들이 많았는데 10시가 넘으니 인적도 좀 없어지고 거의 모든 가게들이 다 닫아 거리엔 적막이 흘렀다.
| 토비타 식당 모습과 메뉴
슬럼가 옆이라 그런지 여기는 대부분 허름한 느낌의 가게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 느낌인데, 길가 끝 코너에 위치한 이 식당은 외관이 꽤나 깔끔했다. 외관 모습을 보니 나름 신식인 것 같다. 간판의 가게 이름 옆엔 메시(밥), 톤지루(돼지고기 된장국)라고 적혀 있는 곳을 보니 시그니처 메뉴인가 보다. 일본식 가정식 느낌이 아닌가 싶다.
문 열고 들어가니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카운터와 문 없이 트인 좌식 자리로 구성된 매우 익숙한 구조와 느낌의 이자카야 같은 공간이다. 굉장히 깔끔했다. 전혀 슬럼가 근처의 식당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지역에 묵게 되어 깔끔한 곳이 가고 싶다면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진 몰라도 좌식 좌석에 가족으로 보이는 한 팀만이 단란하니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 자리로 안내받았다. 아이스크림도 전문인지 외부와 내부에도 아이스크림 관련 포스터들이 많다. 달콤하니 사르르 녹아들 것 같지만 혈당 안정화를 위해 난 패스.
언제까지 영업하는지 물으니 자정 (12시)까지라고 한다. 사진 좀 찍어도 되냐 물으니 "이 쓰요 ↘ ↗ ~" 하며 흔쾌히 승낙하신다. 과하지 않고 깔끔하니 적당히 거리 있게 친절한 느낌? 이 분의 말투가 갠적으로 꽤나 좋았다. I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외국인들도 꽤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영어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대표 메뉴인 1번 돼지고기 된장국을 필두로 전반적으로 기본적이고 서민적인 일본 경양식과 가정식이 주를 이루는 느낌이다.
나폴리탄도 메뉴에 있어서 살짝 끌렸지만, 더 눈에 들어온 건 7번의 '레바니라'.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일본식 중화요리들도 맛보는 게 중요 목표였는데, 그중 하나가 니라레바(간부추볶음)였다.
오사카로 오면서 비행기에서부터 동네 맛있는 중화요릿집을 어떻게 찾아볼지 고민했는데, 여기에서 딱 그 메뉴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암튼, 순간 헷갈려서 "니바레라"라고 주문했더니 바로 알아듣고 "레바니라, 네?" 하고 되묻는다. (레바니라, 니라레바… 같은 의미이니, 내가 ‘니바레라’라고 해도 바로 알아듣는 듯 ㅋ) 워낙 대중적인 메뉴다 보니 어떤 발음으로 말해도 금방 알아듣는 것 같다. 정식 세트를 추천해 주길래 그렇게 주문했다. 단품들이랑 정식은 한 100~200엔 차이 정도로 예상된다.
당시 배고픈 나로서는 밥까지 나오니 오히려 좋았다. 현금 결제고 영수증은 버린 후라 저 800엔의 가격이 세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 전 들었던 니시나리 지역 치고는 아주 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근데 그마저도 조금 (좁쌀만큼) 사치하는 느낌이랄까? 오사카 내 다른 관광지와 비교하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가게도 이렇게 잘 관리되어 있는데 저 가격이면 혜자라고 본다.
| 가정식 한끼
우왕~ 맛있겠다! 먹기도 전부터 숙주의 아삭함과 저넘들을 싹 돠 스까 먹을게 기대된다. 비율 대비 밥이 많긴 하다.
간판에까지 언급된 시그니쳐, 돼지고기 된장국도 옆에 있다. 고깃국물의 특유한 담백함과 쫍쪼름이 어우러진 솔직한 맛이다.
특별하진 않지만 '와카코와 술'에서 와카코가 "풋, 슈~"하며 담백하게 음미하는 그 느낌이 떠오른다. 다만 이건 술이 아니라 장국일뿐.
한 상차림으로 샐러드, 무조림, 단무지가 함께 나온다. 무우 오른쪽에 놓인 돼지고기 부위(정확한 부위는 모르겠지만)는 쫄깃하고 아득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오사카 여행 중 유일하게 맛본 일본식 단무지 ‘닥꽝’도 소소하게 좋았다. 한국의 단무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달짝지근한 일본 가정식 백반 한 상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맛있게 잘 먹었다.
레바니라는 구운 간의 퍽퍽한 식감을 야채들의 아삭함이 적절하니 '이븐'하게 중화해 준다. 역시 밥과 함께 국물, 그리고 비빔의 민족답게 다른 반찬들을 이것저것 함께 섞어 먹는 맛이 좋다. 일본 특유의 단짠 조화가 이 요리에도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 간부추볶음, 레바니라? 니라레바?
'레바니라 レバニラ ' 혹은 '니라레바 ニラレバ '는 돼지나 소의 간과 부추를 소금, 간장 등으로 간단히 볶아낸 일본식 중화요리다. 한국의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중화요리가 일본식으로 재해석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군만두, 라멘, 나가사키 짬뽕 등). 특히 레바니라는 꽤나 대중적이며 서도 '간' 때문에 그런지 스태미나 음식으로 인식되어, 꼭 중화요리 식당이 아닌 이런 일반 식당에서도 제공할 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레바’는 ‘간’을 의미하는 일본어 표현으로, 영어의 ‘liver’에서 온 단어이고, ‘니라’는 ‘부추’를 뜻한다. 일본인들조차도 ‘레바니라’인지 ‘니라레바’인지 명칭을 왔다리 갔다리 하게 된 이유는 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 <천재 바카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아빠 캐릭터가 항상 명칭을 반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고... 그래서 니라레바를 레바니라로 부름)
레바니라 관련은 한 두 개가 아닌 것 같지만 만화의 관련한 한 에피소드를 간단히 번역해 보면:
단순히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게 이 만화의 웃음 포인트였는데, 이 장난이 크게 인기를 끌며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레바니라'와 '니라레바'를 혼동하게 되었고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두 명칭이 뒤섞여 사용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2019년에 일본에서 “당신은 니라레바파인가, 레바니라파인가?”라는 주제로 전국 설문조사도 진행된 적이 있다. 총 555명(?)이 참여한 이 설문에서 압도적으로 ‘레바니라’파가 승리했다고 한다. 원래 정식 명칭은 ‘니라레바’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레바니라’가 대중에게 더 익숙해진 것. 이제는 ‘레바니라’도 표준 표현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오사카 지역에서는 거의 ‘레바니라’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한다.
매체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뜻밖의 깔끔한 니시나리의 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와 목표 중 하나였던 일본식 중화요리를 만족스럽게 즐기고 나서 다시 한번 식당 외관을 찍어본다. 오사카에서의 첫 일정.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게 게스트하우스의 후유상 덕분,
"신세가 많았습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 니시나리, 밤 11시
밥 먹고 숙소 가려니 애써 온 이 밤이 뭔가 아쉬워 이곳 아케이드 명물인 가라오케 바에 가보려고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신이마미역에서 내려올 때 기억이 났던 카라오케 바가 하나 있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방문한 동네의 로컬 느낌을 느끼기에 외진 이자카야나 가라오케 바 같은 곳만큼 적절한 곳도 없다.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출출해진다. 여전히 '여행이 시작됐다!'는 실감은 나지 않지만 여행의 첫 장면은 언제나 휴게소에서 시작된다. 오전 8시 56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맛은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비주얼에 이끌려 매번 같은 선택을 하게 되고 배만 살짝 채운다. 실망할 걸 알면서도 매번 반복되는 휴게소 식사, 어쩌면 이것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 같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근히 보이는 일상에서 만나지는 않을 작은 풍경들이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첫 단추가 된다. '나, 이제 어디로 떠나는건가?'라는 설렘이 서서히 스며든다.
| 충청도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서해대교를 건너는 순간 바다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47분, 국내에서 유일하게 섬에 자리한 휴게소인 행담도 휴게소에 잠시 들러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섬 쪽이라 바다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서해안의 서천, 비인해변. 이제 뭔가 본격적인 해안로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 점심 먹으러 옴. 벌써 오후 2시...
점심으로 선택한 홍어와칼국수 식당의 메뉴는 1인분 8,000원짜리 2인상. 그 당시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이 점심 한 끼가 이제야 나를 완전히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의 세계로 데려다 주는 듯했다.
점심을 마친 뒤 오후 3시, 서천의 풍경은 층층이 쌓인 레이어처럼 겹쳐져 있었다. 저 멀리 갯벌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고요하게 드리워져, 시간마저도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이런 여유로운 순간들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가끔 이렇게 사소한 생각들에 잠겨버리는 피곤한 인간이다.)
다시 이동 후 도착한 죽도, 커다란 밤섬의 모습에 이끌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 섬에서 유명한 상화원에는 들르지 못했지만 바닷가 근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서 낚시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디를 가도 이들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 여행 첫번째 숙소 도착 후 근처 산책. 가을의 기운이 스며든 느낌이다.
아름다운 서해의 어두워지기 직전의 모습. 배가 고프다. 다시 비인해변 쪽이다. 저 앞에 밤섬인 쌍도가 보인다.
굴까지 주는 서해안에서의 조개구이 저녁식사 @웰빙칼국수.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실내 테이블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쾌적해 보이는 수조가 좋았던 곳. "그래, 서해안에 왔으면 조개구이 먹어줘야지!"
숙소로 돌아온 밤, 온통 세기말적 분위기로 가득 찼다. 어둠 속에 멈춘 듯 서 있는 빛나는 풍차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 경 장항항의 장항 6080 음식골목 맛나로로 내려갔다. 이곳의 백반을 참 맛보고 싶었는데 '금일 휴업' ㅜㅜ
아침식사 가능한 곳을 급히 찾아보다가 다시 북쪽으로 33km을 이동하여 홍원항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홍원백반집.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지만 이미 현지 어부들은 어업을 끝내고 뒷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거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마치 불타는 주말의 밤을 연상시키는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시계는 겨우 아침 8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지의 강한 에너지가 가득한 이 공간에서, 그 속에 압도되면서도 묘한 편안함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기분 좋은 집밥 같은 한끼 후 근처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 풍경들을 좋아한다. 숨 막히게 채워져 있는 느낌과 간단해 보이지만 또 트여 있는 느낌. 이래서 바다와 항이 좋다.
숙소를 떠나 세만금방조제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이 구조물을 바라보며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동시에 이 방조제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그 속에 묻혀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19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완성된 이곳은 총 길이 33.9km로 마치 자연과 인간이 대치하는 방패와도 같다. 한쪽에서는 거친 파도가 부딪히고 반대쪽은 평온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 상반된 풍경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의 위력을 더욱 실감케 했다.
맨날 뻘만 가득한 서해바다만 주로 봤었는데 이런 딥한 풍경도 보고,
대한민국 어느 바닷가를 가도 빠지지 않는 낚시꾼들의 모습. 그들은 바다와 마주하며 자연에 도전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의 존재는 마치 바다 풍경 사진 속의 완벽한 피사체 같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바다와 인간의 끊임없는 교감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서해안에서 느끼는 파도의 철썩임
끝없이 펼쳐지는 세만금 드라이브. 바다와 인공 구조물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이 독특한 풍경이 길 위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요거는 움짤보다는 조금 긴 버전의 세만금 드라이브 풍경이다.
| 전라북도
군산을 지나 강아지들의 산책을 위해 도착한 김제 심포항. 조용하고 한적한 이 공간은 마치 일부러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전시회장처럼 방치된 '부서진 조각들'이 인상 깊었다. 주위에는 폐건물처럼 보이는 구조물들이 서 있어 약간 기괴하면서도 흥미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위기가... 스산하면서도 신기함.
어찌하였던 이 곳도 푸들시츄 연합이 접수합니다.
| 잠깐 내륙으로, 전주
남해안으로 내려갈 때는 힘들기 때문에 항상 중간 지점에서 쉰다. 군산이나 변산이 끌리는데 그곳들은 마땅히 갈 애견펜션이 없어 내륙이지만 항상 전주에 들리게 된다.
한옥마을 한 가운데 괜찮은 애견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이번에 가보니 루프탑도 생겼다. 사장님이 직접 관리를 잘하시는 듯하다. 이름은 '꼴 게스트하우스'.
전주 한옥마을의 가을 느낌, 그러고 보니 한옥의 나무 색깔 때문인지 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상차림이 맛있다는 '경기전막걸리'에서 저녁. 음식보다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백숙을 끓이던 버너의 부탄가스에 불이 붙어, 가스통의 1/4 정도가 불에 휩싸였던 순간은 태어나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들, 종업원 모두 현실감이 없는 듯 손가락만 가리키며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그 약 30초 정도...? 다행히도 불은 결국 달려온 직원분에 의해 꺼지긴 했다.
제3자가 이 상황을 듣는다면 "빨리 불부터 꺼야지,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의 충격은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을 마비시켰던 것 같다. 비일상적인 상황은 오히려 빠른 대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재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밤 묵었던 숙소는 손님이 우리뿐이라 거실까지 전부 쓸 수 있었다. 아늑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의 여운을 느끼며 조용한 밤을 맞이했다.
비밀의 화원 느낌 마냥 거실과 이어진 루프탑으로 가는 계단
편한 전용 쿠션. 이제 한 숨 자자고 친구들~
다음 날 아침 6시 경에 찾은 전주왱이 콩나물국밥 전문점. 가을이라 아직은 아침이 어둡다
연약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느낌의 동글동글 인상적인 계란의 모양
정확히 월요일 아침 6시 22분의 풍경이다. 한 주가 막 시작되었지만, 밖은 여전히 어둡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모습을 보며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 얼리버드들의 잔치라고나 할까. 어둠 속에서 이미 하루를 시작한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그들의 결연한 일상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작고 소박한 발코니에서 아침 풍경을 바라보는 강아지, 이제 다시 떠날 시간이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 전라남도, 남해안
다시 바다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 다음 행선지인 목포로 향했다. 중간에 오전 10시 즈음 정읍 녹두장군 휴게소에서 강아지들 산책.
목포와 신안은 갈만한 애견펜션이 없어 언젠가 있을 다음 여행에 집중하기로 하여 이번 코스에서는 제외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기엔 못내 아쉬워 목포 남경회관에 들러 백반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1인분 9,000원에 가성비도 굉장히 좋았고 맛도 만족스러웠다. "다음엔 꼭 목포 여행을 와야지!" 다짐했던 순간이다.
밥을 먹고 근처 난영공원에 들러 강아지들과 잠깐 산책을 했다. 나름 테마가 해안로 따라 여행인데 내륙인 전주에서 목포 도심으로 바로 진입하다 보니 바다의 흔적을 잠시 잃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공원에서 그나마 물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 느껴지는 가을의 신호들을 편안히 즐겼다.
한산하고 넓은 공간 속에서, 사람이 없을 때 강아지를 잠시 풀어줬다. 겁이 많은 녀석이라 할 일 하고 이내 돌아온다.
이제 다시 해안로 따라의 여행을 위해 고금도의 고금대교를 지나 신지도의 장보고대교를 넘으며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통영여행 전 가슴을 뛰게 만드는 키워드 두 개는 단연 복국과 다찌(실비)다. 복국은 언제나 가도 그때 그 느낌이지만 다찌는 항상 뭔가가 바뀌는 느낌이다.
주말에 통영 다찌 골목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인파와 차량으로 북적였고, 간신히 자리를 찾아갔지만, 요즘 다찌는 한정식 코스처럼 너무 정형화된 느낌이라 실망스러웠다. 예전에는 메뉴가 정해지지 않고, 사장님이 그날의 신선한 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내주던 그 묘한 기대감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 재미가 사라진 듯하다.
최근 '반다찌'라는 단어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다찌보다 저렴한 2~4만원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코스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지만 그만큼 다찌의 자유로움과 낭만이 줄어든 것이 아쉽다. 암튼 전 날 다찌집의 한정식 코스 느낌을 다시 경험하기는 너무 싫어서 일부러 네이버 리뷰를 통해 요즘 잘 나가는 집들을 최대한 걸렀고, 오히려 리뷰가 별로 없거나 옛 시절 느낌이 나는 곳 기준으로 찾다가 '통나무 다찌'라는 곳을 찾았다. 어제저녁 다찌 골목을 돌다가 눈여겨봤던 곳이기도 하다. 평일 저녁이라 한산한 지 전화해 보니 그냥 오라고 하신다.
주차는 근처 어딘가에 해야해서 자리를 하나 찾았는데 한번 가보고 싶었던 부일식당! 이미 문을 닫아서 그 앞에 주차를 한다.
무언가 90,2000년대에서 본 듯한 옛날 식 네온사인의 범벅, 가게 이름이 여기저기 남발식으로 써져 있다. 심지어 색상이 튀지가 않아 '통나무'가 아닌 '통니무'로 읽힌다. 이때 느낌이 왔다. "여기는 모! 아니면 도! 다" 하지만 '모' 쪽으로 느낌이 쏠린다.
입구 문 열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아... 옛 느낌이다. 문에 있는 서체나 색상들이나 너무 옛 느낌이다. 좋다. 기대된다.
가게는 선선했다. 뭔 날인지 세 테이블 정도 있었는데 모두 커플. 나이는 매우 다양. 30, 40, 50대 정도. 가격은 1인당 4만원이다.
가게도 딱 옛날 느낌이다. 2000년대 초반에 술집 가면 이런 느낌인 곳 많았던 것 같은데. 오른쪽 위 테이블 커플은 약간 상남자 스타일의 아저씨였는데, 우리가 청양고추 주문 했을 때 가게에 없었는데 그 소리 듣고 자기들도 먹고 싶어서 중간에 시장에서 사 왔다면서 우리 테이블에 잔뜩 주셨다. 감사한 분들! 우리 건너편 테이블 커플과도 많은 대화를 하셨다.
화장실 들어가는 입구의 형태도 뭔가 옛날 느낌. 커튼도 눈에 들어 온다. (나 이런 거 너무 좋아함)
다찌문화의 설명도 걸려 있다. 옛날 통영 다찌 집에서 사장님이 오늘은 이게 좋다, 이게 많이 들어왔다, 오늘은 특별히 주는 거야 등등하시며 음식 깔아주던 좋은 기억이 스멀스멀 스쳐갔다.
먼저 나온 채소 접시. 고추는 맵지 않다. 청양 고추가 엄청 마려웠다. 일단 애퍼타이저로 배추 한 잎 사각사각 먹어준다.
회무침?
남해 여행 때 지겹도록 먹었던 멸치회무침인데 오랜만에 먹으니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다. 시작의 느낌이 좋다.
병어회가 나온다. 저 소스에 찍어 먹고 이 차디찬 살얼음 같은 식감, 이 한 입으로 이 가게에 온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다! 냉기가 가시기 전에 다 먹고 싶은데, 앞으로 또 어느 음식들이 얼마나 나올지 모르니 자제를 자제를 하고 싶어도...
하.. 절편... 떡... 꿀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 그냥 먹어도 맛있고. 부드러우면서도 찌걱찌적 쩍쩍 입천장에 달라붙는 그 쫄깃한 잘 만든 떡 특유의 식감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떡 먹으면 배불러서 조금만 먹으려고 했는데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갔다. 나중에 다른 음식 먹고 다 식은 채로 먹었는데도 맛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와중에 저 떡이 또 생각난다. 그래도 바로 먹어야 제 맛이다.
한번 삶았냐 싶은 오징어가 나온다. 싱싱함이 느껴진다. 그래. 이렇게 한접시, 한 접시 요리가 나오는 느낌이 좋다. 어제처럼, 정식 코스처럼, 레디메이드처럼 다다다 다닥 준비되어 후다다다닥 세팅되는 다찌는 별로 먹고 싶지 않다.
이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하다.
이번엔 또 뭔가 했더니 아나고 (붕장어)와 전어 회가 나온다. 맛을 말해 뭐 해. 고소함과 식감이 죽이는 조합이다. 다시 흡입.
키야, 해산물 모듬. 이번 여행에 돌멍게를 제대로 못 먹은 게 아쉽긴 한데 그래도 멍게는 맛있다. 그리고 쟤네들 전부 식감 깡패들이라. 뭐라 더 표현할 말이 없다.
후우... 맛있게 먹고 있는 중.
대각선 테이블에서 주신 청양고추. 느무느무 감사했어요~!!!
소라 회가 저렇게 살짝 닫혀 있어서 입구를 젓가락으로 툭 쳐주니,
안의 내용물이 이미 깔끔하게 손질이 되어 후두둑 튀어나온다. 식감 깡패.
싱싱한 해산물들의 향연이 끝났다 보다. 생선 구이가 나온다. 돔 종류였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 데 암튼 맛있었다. 바로 조리한 거라 껍질은 또 빠삭!. 일단 저 정도의 스테이지면 맛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
이어 나온 전. 뭔가 바로바로 조리되자 마자 나오는 그 맛이 참 좋은 곳이다. 나오자마자 먹는 맛이 참 기가 막히다.
서비스로 주신 멍게 비빔밥. 와.. 지금까지 먹은 걸로도 대만족인데 이것까지 먹고 갈 줄이야!
스까!
한구인의 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묵은지. 김치.
묵은지와 한입. 쥑임.
이내 나오는 미역국. 통영에서도 미역국은 항상 기대됨.
생선 미역국이었는데 이 생선으로 맛 낸 거라고 뭐라 뭐라 친절히 설명해 주셨는데 안타깝게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맛있었던 기억은 아직도 뇌리에 꽂혀 있다.
이것이 천국.
어차피 술은 못 마시니 킨 사이다!. 정말 참다 참다 이럴 때 한번 빗장 풀고 마셔주는 탄산의 맛은 기가 막히게 맛있다. 소중한 순간에만 마시는 청량음료. 청량음료의 맛은 너무 강하다 보니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의 아쉬움을 한방에 쓸어 준다. 이젠 갈 시간이라고. 이 보다 더 좋은 디저트가 있으랴.
음식마다 나오면 물어볼 때 친절하게 설명해 수진 점도 좋았다. 특히 가게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프라이드가 있는 듯 느낌이지만 동시에 과하지 않은 설명! 손님 입장에선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커플 2인석들만 옹기종기 자리 잡은 느낌도 참 좋았다. 30~50대들의 모임. 계산하고 내려가니 계단 위에 이런 것 도 보인다.
대한민국 래트로 감성
안녕 통나무!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옛날 느낌의 다찌집의 경험을 주어서 좋았던 집.
숙소에 돌아오니 달이 참 동그랗고 강하다. 참 좋은 한 끼를 먹은 통영에서의 행복한 저녁 식사였다.
오사카에서의 이틀 여행. 그 짧은 일정 동안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인상 깊게 봤던 오사카 배경 영화와 드라마들이 주로 니시나리 지역에서 촬영된 걸 떠올렸다. 그래서 니시나리를 중심으로 여행 일정을 급히 짰다.
니시나리 지역에 대해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제목으로 "제발 절대 가지 마세요", "일본 최악의 빈민촌", "일본 최대의 슬럼가"라고 소개하는 걸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가보면 그냥 조금 지저분한 정도일 뿐,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오히려 색다른 풍경과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궁금하다면 키워드로 "니시나리+가마가사키"와 "니시나리+아이린"을 검색해 보면 된다.
쨋든, 영화 <오사카 소녀>에서 인상 깊었던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스케로쿠(助六) 우동집이었다. 영화 속에서 짧게 등장하지만, 그 외관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니시나리 산왕( 山王 ,Sanno) 시장에 위치한 이 가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옛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참고로, 이시하라 타카히로 감독의 영화들이 대부분 오사카에서 촬영되었는데, 이 영화도 니시나리 일대에서 촬영된 것 같다.
잉? 산왕?
아, 물론 그 슬램덩크의 산왕공고와는 전혀 관계없다. 완전 다른 지역.
타베로그와 구글리뷰, 유튜브 리뷰를 보았을 때 아래와 같은 인상 깊었던 키워드들이 있었다.
영화세트 같은, 쇼와시대로 타임슬립, 부드러운 오사카의 맛, 옛 그대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레트로,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기울어져 있는 의자, 용기를 내어 들어가자 (너무 노포 같은 느낌이라 문 닫은 줄들 알아서 그런 듯) 등등
| 첫 날 방문: 외관과 내부
스케로쿠 우동집은 외관만 봐도 영화 세트처럼, 딱 내가 좋아하는 노포의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이곳은 아침 8시 30분에 열고 오후 2시 30분에 닫는다. 이런 가게들이 보통 일찍 닫는 이유는 두 가지 중 하나다. 재료가 일찍 소진되거나,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 운영하거나. 어쨌든, 이런 가게는 한 번쯤은 꼭 가보고 싶다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니시나리의 아침은 독특한 느낌이었다. 어젯밤 늦게 도착해 피곤했지만, 어느새부턴가 아침형 인간으로 변해버린 나는 자연스럽게 5시에 눈이 떠졌다. 신기한 숙소 곳곳을 둘러보고, 비영업 시간의 토비타신치 유곽, 가라오케 아케이드, 슬럼가 등을 탐방하며 8시에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니시나리 윗동네인 신세카이까지 산책하며 영화 촬영지들도 방문했다.
아침식사에서 채운 배를 충분히 비운 뒤 점심을 위해 찾은 이번 오사카 여행 최고의 하이라이트 계획 두 개 중 하나였던 스케로쿠, 아침과는 달리 영업 중임을 알리는 노렌(입구의 천으로 된 팔랑이 커튼)이 달려 있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 자전거(오른쪽)도 <오사카소녀, 2019년> 때와는 달라 보인다.
그동안 일본에서 지겹도록 겪은 '줄서기'에 대한 피로감이 있어서, 이곳도 혹시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맛집이 아닐까? 또 이른 종료 시간의 압박까지 더해지니, 점심시간인 12시 56분쯤 가면 줄을 서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막상 가게에 도착해 보니,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사장님께서 따뜻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내부를 둘러보니, 리뷰에서 본 일본인들이 말하는 그 '쇼와 시대'의 레트로 감성이 무엇인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곳이 주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옛날 분위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 가게는 작지만 아늑했고, 대략 두 테이블 정도로 7~8명이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신 물 한 잔도 어딘가 소박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자마자 어이쿠! 엉덩이가 살짝쿵 들어갈 정도로 자리가 꺼져 있어서 살짝 당황했다. 나무 특유의 딱딱함과 함께 홈이 엉덩이 형태처럼 패여 있는 느낌이 있었다. 리뷰에서 봤던 그 살짝 기울어진 의자라는 묘사가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70여 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간단한 끼니를 해결하며 남긴 흔적이, 의자에 고스란히 농축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오랜 시간이 새겨진 듯한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무언가 묘한 감정이 스며들었다.
왼쪽에는 모든 메뉴가 적혀있다 (오른쪽은 우동, 왼쪽은 덮밥과 소바 같은 그 외 메뉴. 판의 뒷켠은 주방으로 아주 살짝 안이 보인다). 일어 옆의 작은 글씨는 영어라 외국인에게도 접근성이 좋고 세후 가격으로 적혀 있다. 수요일은 정기 휴일인 것 같고, 리뷰에서 보던 파리종이(파리 끈끈이)도 보인다! 저거였구나! (사진 상 우측 상단 메뉴판을 가리며 내려온 넥타이 형태의 브라운 색)
저 1인 용 테이블도 레트로 감성 듬뿍인데 손님용 의자는 아닌 듯 싶다. 와... 우측의 저 양철 바구니는 또 뭔데!
항상 출퇴근하시는 모습을 보니 사장님은 이곳에서 생활하시진 않는 듯했다. 왼쪽 방처럼 보이는 공간은 사장님의 휴식처인 것 같았다.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사장님은 그 방에 걸터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계셨다. 비록 모든 것이 오래되었지만, 가게 자체는 잘 관리되어 있어 지저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노포라도 내버려 둔 느낌보다는, 이렇게 적당히 관리되고 있는 가게가 더 좋다. 방치된 것이 아니라, 계속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듯한 가게는 그 안에 주인장과 손님들의 기억들이 스며들어 있어 더 특별하다. 그게 이런 가게들의 최고의 양념이다.
선풍기도 뭔가 옛날 느낌 (리뷰 보니 한 여름엔 에어컨 빵빵 틀어준다고 함 ㅎㅎ)
선풍기 아래 우측 벽. 설치한지 얼마 안 돼 보이는 휴지 거치대가 인상적이다.
오기 전 가장 먹어보고 싶었던 중간에 저 550엔짜리 키츠네 우동을 주문했다. 5천 원 정도?
장난감 가게에 온 어른아이처럼 가게 내부를 흥미롭게 계속 구경했다. 내 바로 앞에는 오랜 시간을 대변해 주는 듯한, 마치 인생의 풍파를 함께 견딘 노부부 같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특히 왼쪽 의자는 프레임과 등받이가 부러져 나간 듯 보였지만, 다시 봉합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의자 역시 등받이가 삐져 나올 듯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장나기도 했지만,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함께해 온 모습이 꼭 오래된 노부부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왠지 애틋한 감정이 들었다.
진짜 옛날에나 보던 저 컵. 소박하다. 그리고 테이블의 저 긁힌 흔적들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역사와 수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양념이라곤 간단하게 일곱 가지 맛의 고추인 시(7)치미와 한 가지 맛의 고추인 이(1)치미. 특별히 만들 것 같지는 않고 조촐한 느낌이 좋다.
| 키츠네 우동
얼마 지나지 않아 나온 키츠네 우동. 역시 비주얼도 가게와 참 잘 어우러지듯 소박하다. 이 집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소박해 보이는 5천 원짜리 우동 한상. 물 한 컵과 우동 한 그릇이 전부였다. 일본이 단짠의 성지라서, 짠 국물을 예상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의외로 슴슴한 맛에 놀랐다. 면발은 쫄깃할 줄 알았지만, 부드러웠다. 그렇다고 너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이게 리뷰에서 말하던 오사카의 부드러운 맛일까?' 싶었지만, 오사카에서 먹어본 우동이 이 한 그릇뿐이라 쉽게 단정할 수는 없었다. 어묵도 적당히 쫄깃하고 부드러운 맛이었고, 전체적으로 슴슴한 맛 속에서 유독 유부가 꽤 달콤했다. 만약 단무지가 없어 허전하신 분들에게는 이 달콤한 유부가 충분히 그 역할을 대신해 줄 것 같다.
어느 정도 먹고 나서 심심해졌을 때 즘 이치미를 뿌려 본다. 혼합되지 않은 고추 본연의 맛이 좋다. 특히 국물의 맛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 그저 감칠맛나게 도와줄 뿐.
시치미 투하. 이젠 거의 다 먹었으니 갈 때까지 가자는 것. 세 번의 맛의 변화를 음미한다. 딱히 특별할 건 없다. 시치미야 MSG 뿌리는 거랑 다를 게 없으니. 전체적으로 그냥 소박하다는 단어에 딱 어울릴 만한 맛이다. 가게의 분위기와 이 소박한 맛이 어우러져 꽤나 좋은 하모니를 연출한다. 이것이 기억에 강하게 남는 점이다.
한 그릇 뚝딱 했다. 양은 일반인에겐 조금 부족할 수도 있는데 나 같은 소식인에게는 딱 괜찮은 한 그릇이었다. 여긴 한 번 더 와야겠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면은 일단 먹었으니 인터넷에서 봤던 그 덮밥을 먹으러 내일 다시 올 예정. 일정이 짧기도 하거니와 여행 시 한 집 두 번은 잘 안 가게 되는데 이곳은 정말 예외였다. 그렇게 맛이 있어서 또 먹고 싶은 그런게 아닌데도 말이다.
| 두 번째 방문
갑작스러운 여행의 일정에 몸이 힘들었는지 다음 날은 좀 늦게(?) 6시경 (ㅜ-ㅡ) 눈을 떴다. 7시 즈음 니시나리 슬럼가를 정처없이 방황했다.
그리고 8시 30분 오픈 시간에 맞춰 재방문을 위해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주 낯익은 분이 자전거를 타고 내 반대 방향으로 질주하며 스쳐갔다, 난처한 표정으로. 쓰케로쿠 사장님이었던 듯한데... 설마설마 어쨌든 우동집에 도착!
역시 문은 닫혀 있고 사장님의 자전거도 없다!!! 노렌도 없고. 아까 본 분이 사장님이 맞았던 것이다. 가게 앞에서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오늘은 날이 아닌가 보다 포기하고 숙소 쪽으로 다시 걸어갔다. 너무너무 아쉬웠다.
진짜 너무너무 (ㅠ_ㅠ). 니시나리에서의 마지막 날 마지막 식사는 이렇게 날아가는 것인가!
언젠가 오사카에 다시 올 일이 있으면 꼭 또 와야지 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아케이드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때, 아까 봤던 할아버지 사장님이 자전거 앞 소쿠리에 파와 식재료들을 담고,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바쁘게 가고 계셨다. 그 방향이 스케로쿠 쪽이었다. '아, 저건 사장님이 맞다!' 싶어서 나도 다시 음식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마도 식재료를 깜빡하신 것 같았다.
8시 47분에 다시 가 보니 자전거도 세워져 있었다. ദ്ദി( ◠‿◠ ) 기쁨! 근데 노렌이 없다. 그래도 입구 문잡이에 자물쇠는 풀려 있어 문을 열어 보았다. 근데 웬걸. 안에서 잠겨 있어 잡아당겨보니 철컹철컹 거리만 할 뿐이다. (;☉_☉) 안에도 도어록이 있는 듯. 근데 그 순간 철컥 자물쇄 풀리는 소리가 나더니 사장님이 안에서 문을 여신다. 지금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어보니 들어오라고 하신다! 서로 당황한 모습이었다. ( ‾́ ◡ ‾́ )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뜻하지 않은 첫 손님이니 나 하나밖에 없었다. 꼴에 한 번 와봤다고 꺼진 자리가 단골 마냥 이내 익숙하게 느껴진다. 오늘은 물이 아닌 오차가 나왔다. 왼쪽의 저 물과 차 보냉병의 위치가 어제와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암튼 개장 준비가 아직 덜 되었는지 오늘은 책을 읽지 않으시고 대부분의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셨다.
두 번이나 온 이유는 위 유튜브에서 본 덮밥이 참 맛있게 보여서다. 좋아하는 파도 파이지만 어제 먹었던 심심한 듯 안심심한 어묵의 맛도 기대가 되었다. 그래서 (소고기덮밥) 타닌동을 시켰는데 사장님이 알았다고 하신 뒤 뒤돌아 주방으로 가기 바로 전 갑자기 앗따마(머리)를 왼쪽 손바닥으로 툭 치며 ("아이고"의 느낌) 소리를 내신다. "아!" =͟͟͞͞(꒪ᗜ꒪ ‧̣̥̇). 지금 밥을 안 지어놔서 안된다고 하신다 ㅜㅜ, ━=͟͟͞͞(Ŏ◊Ŏ ‧̣̥̇)━ 면은 되니 타닌우동은 된다고 ㅜㅜ. 우아.. 덮밥 너무 먹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우동으로 시킨다. ( ⩌_⩌)
너무너무너무 아쉬웠다...ㅜㅜ ( ・ᯅ・ ) ㅠㅠ 암튼 오늘 여러모로 잊은 게 많으신 날인가 보다. 그래도 닫혀 있던 가게가 연게 어디냐 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 타인우동
쨋든 나온 고기 우동. 어제는 흰 그릇이었는데 오늘은 검은 그릇이다. 흑백우동! (꒪⌓꒪) 고기들이 생각보다 꽤 많이 들어 있다. 세후 700엔이니 대충 6,7천 원 짜린데 내용물이 좋다. 오야코동이 닭고기와 달걀을 사용하고, 타닌동은 소고기와 달걀이 들어간다. " 타닌(他人)"은 다른 사람인 '타인'을 의미하는데 소고기(소)와 달걀이 가족 관계가 아닌 '타인'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량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식재료는 그닥 아끼지는 않은 느낌이다. 보다시피 기교 없이 본연에 충실하고 솔직한 맛이다.
계란은 당연히 맛있고, 국물은 어제 키츠네 우동과 달리 담백~하고 살짝 고소하다. 아마도 고기가 섞여 우러난 맛이어서 그런가 보다. 어제처럼 유부를 먹기 전엔 못 느꼈던 달달함도 전체적으로 묻어 있다.
보통 저런 음식에 나오는 고기들은 들러리들이 많아서 건너뛰기도 하는데 여기는 이 음식의 중요한 한 요소처럼 느껴졌다. 아침식사임에도 부담 없이 맛있다. 하아... 이거에 덮밥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다시 한번...
면발은 어제와 동일하다. 갠적으로 좋아하는 쫩쫍(?)한 식감은 아니더라도 부드러운 맛. 특별할 것은 없다. 그냥 맛있고 분위기가 좋으니 또 빠져든다.
슴슴하지 않고 담백한 맛 때문이었을까? 오늘은 이치미에 이어 시치미를 일찍 투하한다.
덮밥 못 먹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한 그릇 뚝딱. 맛있기도 했고 양도 많진 않아서 좋았다. 강화도의 강화집 곰탕 분량 정도라면 대충 맞을 것 같다. 서로 다른 맛이지만 가게도 그렇고 전체적인 느낌이 약간 비슷했다.
우동을 먹는 동안, 사장님과는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서로가 각자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굳이 말을 주고받지 않아도, 그곳엔 편안한 적막이 흘렀다. 유튜브에서 본 리뷰에선 사장님이 말을 걸면 친절히 응대해 주시던 것을 보아, 말만 걸었더라면 다른 분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날 밤, 가라오케 바에서 마마상과 주고받던 그 시끌벅적한 대화도 좋았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고요한 순간들은 그 나름대로의 깊은 안락함이 있었다. 4년 전 리뷰를 보니 원래는 노부부가 운영하던 가게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이틀 동안은 할아버지 혼자였다. 가게 안에서 책을 읽고 계신 그 모습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마치 그곳이 책 속의 한 장면처럼.
요즘 많이 쓰는 표현처럼 찢고, 미치고, 기절할 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사실, 내 인생 그런 맛을 살면서 맛본 적은 거의 없다. 태어나 처음 먹은 김치볶음밥이나, 항암 치료 때문에 미각을 아주 오랫동안 상실했던 후 처음으로 먹은 라면 정도가 기억에 남을까. 그래도 이곳은 충분히 괜찮았 곳이다. 맛뿐만 아니라 그 상황과 분위기, 그리고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 나에게는 다채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못 먹은 덮밥이 아쉽긴 했지만, 어쩌면 그 30%의 아쉬움 덕분에 다시 이곳에 올 이유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오사카에 다시 오면, 그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굳이 다시 찾아올 명분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식당을 뒤로하고, 체크아웃을 위해 5분 남짓한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갔다.
가게의 시장지역을 바로 건너면 또 저런 풍경이 펼쳐지는데, 좌측의 옛 목욕탕? 온천시설?이었던 듯한 기둥이 참 인상적이다. 그냥 지역 자체가 레트로 감성천국이다.
| 메뉴정보
외관에 걸려 있는 메뉴 정보. 아마 이 아이들이 간판 메뉴가 아닐까 싶다.
안쪽의 풀 메뉴 1)이다. 전제척인 가격대는 500~700엔이다. 우측은 면 메뉴. 파리끈끈이에 가려진 건 아마 (튀김) 타누키 우동인 듯.
안쪽의 풀 메뉴 2)이다. 좌측이 우동을 제외한 소바, 밥 메뉴다. 덮밥은 800엔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니시나리 지역자체가 숙소 값이 워낙 싸서 중장기 체류하는 여행객들도 특히 많다. 그래서 이를 반영하여 영어 메뉴판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곳의 영업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전거는 있는데 노렌(천 팔랑이)이 없다면 = 준비 중. 자전거도 있고 노렌이 걸려 있다면 = 영업 중. 자전거도 없고 노렌도 없다면 = 영업 종료다. 마치 이 가게만의 작은 신호처럼, 그렇게 사장님은 우리에게 오늘의 스케줄을 알려주고 있었다.
| 웹리뷰들:
아래는 타베로그와 구글리뷰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코멘트 모음이다.
"74년의 영업.. 외관의 임팩트는 방문한 쇼와 식당 중 3손가락 (기타센주 후타코주시 , 효고구 이세야(폐점))" '24.2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지역 시장을 찾아가게 된다. 물론 번쩍이는 관광 명소들도 좋지만, 시장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 일상, 음식, 전통을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활기가 넘치는 그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치 그 지역의 하루를 함께 시작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장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그 지역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래서 가능하면 그곳에서 음식을 먹어보려고 하는데, 그 경험이야말로 여행의 개인적인 묘미 중 하나다.
후쿠오카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검색해 보면 대부분 프랜차이즈 식당들만 나왔지만, 나는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지의 고유한 분위기를 경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후쿠오카 나가하마 선어시장 시장회관 1층에 이른 아침부터 식사할 수 있는 맛집들이 모여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기대를 안고 그곳을 찾았다
나가하마 선어시장 시장회관에 도착했을 때, 예상했던 전형적인 재래시장의 활기찬 분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시장'이라기보다는 '시장 회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외관은 마치 공무원 청사를 연상시키는 딱딱한 빌딩 같았다. 도매 시장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어시장 내부를 둘러보지 못한 건 아쉬웠지만 매월 두 번째 토요일에 일반인에게 개방된다고 하니 다음엔 꼭 그날을 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꼭대기 13층에 무료 전망대가 있다니, 나름대로 그 곳만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었다.
| 후쿠오카 토요일 아침 6시 30분
오전 일정인 이토시마 행 첫 버스가 오전 9시 52분이니 아침 일찍 나가하마 선어시장에서 식사를 하기에 시간은 넉넉했다. 숙소에서 시장까지는 약 2km 거리라, 조용한 도심을 산책하며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샤워를 마치고 6시30분 즘 밖에 나와 보니 하늘은 여행기간 내내 이어진다는 비 소식처럼 여전히 흐릿했다.
이른 아침의 후쿠오카 번화가는 어젯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북적이던 돈키호테와 이치란 라멘 본점 앞도 한산했고, 거리의 적막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걸으며 스냅사진을 찍기에도 딱 좋았다.
오후나 저녁이 되면 분명히 다시 활기로 가득 찰 이곳이지만, 아침의 여유롭고 차분한 분위기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해줬다. 이런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순간이 꽤 편하게 다가왔다.
| 나가하마 선어시장 시장회관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어시장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 챙기는게 귀찮긴 하지만) 나는 여행 중에 비가 오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빗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며 내심 기분이 좋았다. 곧 있을 이토시마 바다 구경도 기대가 되었다. 폭우 속에 펼쳐질 바다는 분명히 아름다울 거라고 상상하며 시장에 가까워졌다.
입구로 들어가자 로비가 휑하게 펼쳐졌다. 어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만큼 조금은 단조로운 분위기에 의아했지만, 로비 오른쪽에 학생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게 눈길을 끌었다. 중앙으로 직진하니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이어졌다.
(위 링크) 나가하마 선어시장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식당 안내와 함께 어시장 전체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유용했다. 요즘 번역기 덕분에 언어의 장벽도 크게 느껴지지 않아 여행 중에도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시장 회관에는 총 8개의 식당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고 했는데, 공홈에 따르면 7개의 식당만 영업 중이라고 하니 아마도 '카레야 사라짱(カレー屋サラ ちゃん) '은 운영하지 않는 듯하다. 쨋든 1층 식당가의 규모는 크지 않아서 한 바퀴 쭉 둘러보고 식당을 고르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오늘 방문한 곳은 '하카타 우오가시 (博多魚がし) 시장회관점'. 7시 15분경에 도착했는데 벌써 웨이팅이 걸려 있어 살짝 당황했다. 이.시.간.에.도.웨.이.팅.이.라.고??? (아니 7시에 문 연다면서욧!)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맛이 보장된다는 의미일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좌측에 붙어 있는 마츠리 관련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라는 축제로, 7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고 한다. 후쿠오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1년에 딱 한 번 열리는 연례 마츠리라고 한다.
다녀와서야 알게 되었지만, 하필 이 날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날이어서 이토시마 바다 구경 후 후쿠오카 도심으로 돌아와 보니 엄청난 인파에 휩쓸려 버렸다. 그 덕분에 먹고 싶었던 우동도 못 먹고…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해야겠다.
영어 메뉴도 있고 사진 메뉴도 있어서 미리 고르면 나중에 주문할 때 도움이 된다. 나중에 들어가서 보니 노부부 두 분이서 하드캐리하는 음식점이다. 다른 종업원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주문, 요리, 계산까지 이 두 분 체제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싯가 상관 없이 (당시 엔저 최저치...) 후쿠오카 오기 전부터 내 페이버릿인 성게를 무조건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성게카이센돈으로 메뉴를 정했다. 그냥 이거 사진 찍어서 할무이 사장님 주문받으실 때 "고레 니 시마스"하고 주문 끝 ㅎ. 위 보면 제철생선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는 안내가 있는데 역시 이게 시장 식당의 매력이다.
웨이팅 하며 앉아 있으면서 정면 바라보고 찍은 건데 어류 도감이 보인다. 좌측에 홍어 같은 가오리들이 보이는데 일본에서도 홍어를 먹나? 하는 쓸데 없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사진은 웨이팅 하면서 오른쪽을 바라본 사진이다. 많은 사인들이 벽에 보이고, 좌측이 계산하는 곳이다. 주문받던 할무이 사장님이 계산할 때 저곳으로 오신다. 이 이전 내 앞에 어르신 커플 한 팀이 있었고, 나와 거의 동시에 들어온 혼밥 아저씨 한 분이 있었다.
순간 서로 살짝 눈이 마주치자 그분은 구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먼저 앉으라고 손짓을 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인사하며 먼저 웨이팅 자리에 앉았다. 10분 정도 웨이팅 후 카운터석으로안내받았다.
그 순간 느끼기에, 그 자리에 외국인은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가게 내 대부분이 일본인들로 보였고 (뭐 로컬과 후쿠오카에 국내여행 온?), 그 이방인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외국 관광객들도 방문하는 곳일 텐데,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 마치 현지 속에 조용히 스며든 듯한 느낌이랄까. 옆에 앉은 아저씨는 아침부터 시원해 보이는 병맥주를 즐기고 계셨고, 그 여유로운 모습이 어쩐지 인상적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는 내가 좋아하는 우니(성게)가 보였다. 하나에 2,500엔이라니, 한화로 2만 원 조금 넘는 금액인데, 솔직히 이 정도면 꽤 저렴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몇 만 원을 주고 먹는 양과 비교해 봤을 때 차이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나온 우니 카이센돈 정식. 시장에서 먹는 저렴한 정식에 어울리게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비싼 식당들 대비 소박하면서도 알찬 매력이 있다. 옆에 나온 반찬은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지만, 우뭇가사리처럼 부드럽고 부담 없이 먹기 좋았다.
당시 엔화 초약세일 때라 한국돈으로 한 9,000원 정도 했는데 이 가격에 성게도 나오고 같이 나온 생선들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양이었다.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적당하게 아침에 먹기 좋은 한 끼였다.
미소수프는 맛있고 (당연히 좀 짜긴 한 와중에) 덜 짠맛이었다. 그리고 여기 한 두어 개 들어있던 저 어묵 조각, 쫄~깃 했다. 인상적이었다.
자리에 두 가지 소스가 있었는데, 하나는 회 찍어 먹는 간장 같았고, 다른 하나는 약간 까나리액젓 비슷한 맛이 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른쪽 소스는 카이센돈용 소스였다. 두 소스를 섞어 먹어봤는데, 간장은 익숙한 맛이었고, 오른쪽 소스도 생각보다 비리지 않고 괜찮았다
손님들이 많아서 가게 전경 사진은 거의 찍지 못했지만, 가게는 카운터석, 테이블석, 그리고 좌식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옆자리가 비자마자 살짝 찍어본 가게 내부는 벽 쪽에 붙은 메뉴판들이 싯가로 계속 변하는 것 같았고, 노포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식사는 만족스러웠다. 원래 흰밥을 많이 안 먹으려 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이 먹어버렸다. 평소에 소식하는 편이라 이 날 점심, 저녁도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살짝 걱정이 되긴 했다. (그래도 일반인 기준 많은 양은 아닌 듯?).
계산하고 나가는 길.
가게 밖에서 보니 들어올 때는 못 알아챘는데 TV 디스플레이가 있었다.
가게를 나와 1층을 쭉 걸어가다 보면 각 음식점들의 메뉴를 볼 수 있다. 어떤 곳은 사진, 또 어떤 곳은 모형으로 메뉴를 보여준다. 오늘의 경험이 워낙 좋아서, 나중에 다시 후쿠오카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이 1층에 있는 7개의 식당을 아침 식사로 모두 섭렵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한 번씩만 간다면 그때그때 메뉴를 고르는 정신적 고통이 클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참고로, 이곳의 음식점들은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영업 시작 시간이 각각 다르다. (내가 간 곳은 7시에 오픈). 일요일에는 휴무인 곳도 많으니 방문 전에 영업 시간을 꼭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원래는 70년 노포라는 오키요 식당에 가려 했는데, 내 일정 대비 너무 늦게 열어서 (오전 9시), 더 일찍 여는 옆집인 하카타 우오가시에 갔던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대만족이었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먹고 가게 밖으로 나서니 쏟아지던 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멈추고, 눈앞에 너무나 푸르른 하늘이 펼쳐졌다. 비 오는 날의 분위기도 좋지만 이렇게 맑은 하늘 아래서 바다를 구경할 생각을 하니 또 다른 설렘이 찾아왔다.
1. Popinjays @ 센트럴 2. Mido Cafe @ 야우마테이 3. Cheung Sing Restaurant @ 코즈웨이베이 4. Omahony's Bar (n/e) @ 프린스 에드워드
| 1. 팝핀제이스 Popinjays @ Central
마가렛 (니콜 키드먼)이 첫 등장하는 팝핀제이스 (Popinjays)는 홍콩 머레이 호텔의 루프탑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마가렛이 남편의 50번째 생일 파티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받는 장면이 촬영되었으며, 카메라는 천천히 배경에서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그녀의 성격과 배경을 암시해 준다.
팝핀제이스는 홍콩의 멋진 야경뿐만 아니라, 낮에도 270도 파노라마 뷰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주말 브런치, 애프터눈 티, 저녁 DJ 공연 등 다양한 특별 이벤트가 자주 열리며, 홍콩에서 럭셔리한 경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장소라고. 탁 트인 전망과 세련된 분위기로 홍콩의 현대적 감성을 느낄 수 있어 보이는 곳이다 (못 가봄).
참고로 팝핀제이스가 위치한 머레이 호텔은 1969년 정부청사로 지어진 유서 깊은 건물로, 홍콩의 건축적 유산을 보존하며 2018년에 럭셔리 호텔로 새롭게 개장했다. 상징적인 아치형 구조와 혁신적인 설계로 홍콩의 모던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는데, 원래 건축은 론 필립스가 설계했고, 리모델링을 통해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한 럭셔리 호텔로 재 탄생했다.
머레이 호텔의 리모델링은 애플 파크, 런던의 더 거킨, 홍콩 국제공항 등을 설계한 노먼 포스터 경의 작품이다. 팝핀제이스에서도 가까운 HSBC 본사 빌딩 역시 그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리모델링 전인 1986년의 머레이 빌딩과 노먼 포스터의 HSBC 빌딩 사진을 보니, 팝핀제이스에서 이 역사적 랜드마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 2. 미도 카페 Mido Cafe @ Yau Ma Tei
미도 카페는 이 시리즈의 여러 포스터 중 하나로도 등장한다. 후반부 머시와 챨리가 서로 간의 다툼 이후 재회하는 곳이다. 옛 홍콩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진한 노스탈지아를 불러일으킬 곳으로 이 드라마의 신을 보자마자,
"아, 여기!"
하며 알아봤을 곳일 거다.
야우마테이에 위치한 홍콩의 대표 문화인 차찬텡으로서 1950년대에 문을 연 이후 그 특유의 레트로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지금까지도 사랑 받는 곳이다. 특히 빈티지 타일과 나무 가구, 네온 간판과 옛 레트로 홍콩 감성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색상들로 꾸며진 창문들이 주는 클래식한 팔레트의 느낌들. 이곳을 배경으로 한 포스터를 보면, 홍콩의 근현대 전통을 유지한 공간에 이 외국인들이자리 잡은 모습이 딱, 'expat'의 느낌을 잘 묘사한 것 같다 (물론 관광객의 케이스도 잘 어울리겠지만).
특히 국내에서는 홍콩 느와르 시절 대표 배우 중 하나인 장국영이 단골로 찾았던 곳이라 하여 유명하기도 한 곳. 2024년에 다시 가 보니, 그때 즈음 홍콩영화를 즐겼을 만한 나이의 한국인 관광객들이 이젠 자신들의 자녀를 데리고 왔을 법한 모습도 보였다. 홍콩의 오래된 감성을 간직한 이곳은 세대를 초월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2022년 7월 코로나 시절 문을 닫았다가 같은 해 10월에 문을 열었다. 시리즈를 보며 이 장소도 반가웠지만 이 신에서 흐르는 1993년 홍콩을 열광시켰던 페이 웡(왕비)의 'Summer of Love' 배경음악 또한 향수를 자극했다.
홍콩은 원래 번안 히트곡들이 많았는데, 이 곡 또한 1992년 독일의 헬렌 호프너가 발표한 노래의 번안곡이다. 둘 다 여름이 되면 아직도 즐겨 찾는 참 시원한 느낌의 노래들이다.
| 3. 쳉성찬텡 Cheung Sing Restaurant @ Causeway Bay
에피소드 1의 마지막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장면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자신이 짊어진 모든 짐들에서 벗어나고픈 마가렛의 잠깐의 일탈이 연출된다. 코즈웨이 베이의 Tai Hang 타이 항에 위치한 쳉성찬텡이라는 곳이다. 구글 리뷰에서 5점 만점 중 3.8점의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외관은 실제 촬영장소 같은데, 내부 장면은 스튜디오 세트다. 시리즈는 우여곡절 끝에 상당히 많은 주요 공간들을 미국으로 돌아가 세트를 만들어 촬영 했다고 하는데, 이 쳉성찬탱도 마찬가지로 내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트 촬영이다. 특히 색감과 분위기를 볼 때 연출 시 미도 카페의 홍콩 레트로 감성을 취하려 한 것 같아 보인다.
실제 인테리어 분위기 사진을 보면 시리즈에서 보는 것과 비교할 때 거의 비슷하지만 좀더 투박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니까 미국에 돌아가서 세트를 통해 인스타 필터 감성에 성형수술도 약간 한 버전으로 보면 될 듯하다. 현실이지만 상상의 공간이다. 이 시리즈는 보면 볼수록 스토리와 연출보다도 공간들의 매력이 참 좋다. 2014년의 홍콩은 과연 이 모습이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어쨌든 있지만 없는 곳이다.
미도 카페의 'Summer of Love' 장면처럼, 블론디의 'Heart of Glass'는 이 신의 핵심 요소다. 마가렛 (니콜 키드먼)의 남편이 50세인 설정을 볼 때, 이 노래가 나온 건 1979년이므로, 2014년 홍콩 우산혁명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에서 50세의 남편을 가진 마가렛도 일단 동갑이라고 가정하면 이 노래가 나왔을 시절 그녀는 15살, 한창 감수성이 폭발하던 틴에이져 시절에 즐겼었을 만한 것이다. (대략 1960~1965년 생으로 베이붐 세대와 X세대 사이의 과도기적 특징을 가졌다고 볼 수 있는, X-세대보다는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변화에 더 갈등을 느꼈을 수도 있을 세대다)
온갖 '힘듬'을 겪고 있는 이 와중에 이젠 자신의 자녀들 만한 나이였던 그녀가 즐겼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춘다니 그것은 얼마나 특별한 의미였으며 미치도록 흥겨운 것이었을까?
| 4. Omahony's Bar @ Prince Edward
인도계 힐러리의 백인계 영국 남편, 데이비드가 찾는 아지트는 그의 도피처이자 안식처로, 술에 취해 현실을 외면하려는 장소다. 이 시리즈에서는 마가렛의 남편을 제외하고는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가 전무후무하며, 그조차도 결국 무너져 내리게 되어 마가렛이 홀로 일어설 수밖에 없는 서사를 보여주는 장치로 한순간 전락해 버린다. 여러모로 전체적으로 이야기보다는 공간의 묘사만 돋보이는게 아쉬운 작품이긴 하다.
암튼, 다른 관객들도 저 아늑하고 멋진 바에서 한 잔하고 싶다고 나처럼 느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곳도 세트다. 위 쳉성찬텡이 외관은 현실을 빌렸지만, 이곳은 외부 '배경'만 현실이고 입구와 인테리어는 모두 CG와 세트다 (내부 인테리어는 어디서 찍었는지는 정확힌 모르겠지만 세트라고 하니 세트로 추정됨)
이 장소는 프린스 에드워드의 노라 로드와 Fa Yuen 스트리트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어렵게 찾아냈는데, 처음에는 방문 의사가 없었지만 주변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곳이다. 후쿠오카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듯, 홍콩에서도 이런 뜻밖의 발견이 자주 일어난다. 이렇게 드라마 속 촬영지와 현실이 만나는 순간들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곤 한다.
시리즈와 실제 스트리트를 비교하면서 찾은 장소로, 데이비드가 차에서 내려 길을 건너기 전 의료원과 거위 요리집요릿집 사인이 결정적인 단서였다 (참고로 노라 로드는 모르겠는데, Fa Yuen Street에 차는 못 들어온다. 데이비드는 노라에서 내리긴 했다). 오마호니 바는 바로 그 거위 요릿집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디테일한 요소들이 촬영 장소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현실과 드라마의 연결점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 되었다.
데이비드는 저 거위 집 쪽에서 내려서 중앙 빨간색 간판이 있는 곳 바로 오른쪽 유닛으로 걸어간다.
Fa Yuen Strret 거리 표지판과 겹치는 파란색 파라솔 지붕이 보이는데, 바로 그 뒷편이다. 어차피 바 자체는 CG라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그냥 동대문이나 남대문처럼 잡화를 파는 곳이다.
건너편 거위 요리집에 서서 찍은 사진. 파란색 파라솔 뒤 청록색 비닐 지붕 아래임. 재밌는 건 좌측의 시뻘건 사인인데, 뭔가 한중일 콜라보다. 메인 이름은 일본어로 써져 있는데 밑에 한자는 한국쇠고기 관련이다.
대만 베이스로 보이는 TYRO studio라는 곳의 페이스북에서 찾은 건데 여기서 세트를 작업한 모양이다. 인테리어까지 작업했는지는 모르겠고, 이렇게 외부 모습 작업 사진이 포스팅되어 있다.
사실 왠만한 덕후가 아니고서야 이곳을 시리즈 때문에 방문할 가치가 있어 보이진 않지만, 시장 특유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거리 자체로서의 방문은 추천할 만하다.
2017년 방문 당시 뜨거운 햇살 아래 엄청난 줄을 서서 지친 기억이 있어 처음 방문 이후 선택지에서 제외했던 한양식당. 옛날엔 욕지도에서 유일한 중식당으로 유명했는데 이제는 이 섬도 자본주의의 바람이 급속히 불었는지 중화반점이 두 개나 더 들어섰다.
리모델링을 했는지 파사드 모양새가 바뀌었다. 이렇게 건물의 옛 형태와 기억이 현재와 공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게 개인적으로 좋더라. (특히나 음식점은 터나 건물이 확 바뀌면 맛도 날아가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사실 처음 방문 당시 '섬의 유일한 중식당'이란 상징성 때문에 그런지 유명세에 비해 맛은 없진 않았으나, 이 고생까지 하며 가봐야 할 집인가 싶었다.
여행 오면 무조건 현지 토속음식이나 백반 메뉴 기준이지만 욕지도 오기 전 통영에서 해산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입가심할 겸 조금 색다른 게 당겼다. 욕지도 도착하고 장보고 새로 생긴 음식점 있나 잠깐 탐색했는데 사람들로 항상 붐비던 한양식당 앞이 썰~렁~ 했다. 영업 외 시간 빼고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 첨엔 욕지도에 중화반점들이 더 생겨서 손님들이 분산된 건가? 싶었는데 나중에 이 식당 저 식당 가면서 들어보니 추석 연휴 동안 관광객들이 쏟아져 내린 직후 섬 전체가 조용해진 쿨 타임 상태였다고 한다. (기존 일찍 여는 집들도 조금씩 늦게 열더라...)
9:30부터 14:00까지 영업은 변함 없는데 저 웨이팅 리스트가 싹 비어있는 걸 보는 날이 올 줄이야. 욕지도 놀러 오면 오늘은 사람 얼마나 모였나 궁금해서라도 지나가는 곳인데 말이다.
자, 그럼 숙소에 짐 풀고 한 여름(?) 맑은 욕지도 해안드라이브 즐기며 한양식당이 위치한 욕지항으로 다시 출발~
코스는 대략 위와 같다. 욕지대송펜션에서 욕지면사무소 근처 주차장까지, 욕지일주로 5.8km 약 12분 소요되는 해안 드라이브. 영상의 시작은 바다가 잘 보이는 지점부터 (튜브 오리 캐릭터 지점)
입구도 좀 바뀐 것 같더만 안에도 쫙 레노베이션을 한 모양이다. 훨씬 청결해졌다.
이곳엔 펩시콜라, 칠성사이다, 밀키스와 탬스가 있다. 어디서 들은 소린데 유통회사 때문에 펩시콜라면 칠성사이다가 있고, 코카콜라면 스프라이트나 킨사이다가 있다고 한다. 한양식당 냉장고를 보니 칠성을 설치해서 그런 듯?
피크 시간일 12시 30분경에 방문했는데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어제까지는 손님들이 미어터졌었겠지? 여행할 때 이런 여유로운 분위기 너무 좋다.
이것은 메뉴판. 막걸리 반입금지 사인이 재밌다. 옛날엔 그냥 당연하게 짬뽕이랑 짜장면을 시켜 먹었기 때문에 메뉴가 옛날 그대로 인지는 모르겠다.
여기 온 이유는 통영에서 너무 많이 먹은 해산물에 대한 입가심도 있지만, 통영 숙소에서 우연히 본 김숙TV 한양식당의 잡채밥을 보고 궁금해져서다. 두껍고 질긴 당면 안 좋아하는데 비주얼만 봐도 얇고 부드러워 보이는 당면이 맛있어 보였다. 다음 주문은 자장면과 짬뽕 중 고민하다가 짬뽕국물은 볶음밥에 나올 테니 짜장면으로 결정.
단무지 양파 먼저 세팅 되고. 접시도 클래식한 중국집 하얀 앞그릇에서 새 걸로 바뀐 듯하다. 검색 시 2019년까지는 옛날식 건물을 유지하고 있는 것 보니 2020년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온 듯? 욕지도 음식점 리모델링을 본 건 해녀김금단포차 이후 여기가 두 번째인 것 같다.
짜장면 도착.
바로 고추가루 투하하고 비빔 비빔~
하지만 비비고 맛본 후 탈락. 숨 가쁜 연휴 손님들 이후의 방전된 상태 때문일까? 음식이 좀 미지근했다. 그냥 그랬다. 옛날에도 이 맛이었나? 잘 기억나진 않는다.
잡채밥은 괜찮았다. 성공했다. 기대한 만큼이었다. 김숙티비 볼 때 상상했던 그 맛이었다. 부드러운 면에, 고기도 너무 헤비 하지 않게 적당히 섞여 있고 야채들 덕분에 식감도 좋고. 그냥 흰밥이랑 비벼도 괜찮고 달콤한 짜장이랑 셋다 같이 비벼 먹어도 괜찮았다.
여느 중국집 볶음밥 시키면 나오는 수준의 양의 짬뽕 국물도 괜찮았다. 갠적으로 파, 양파 같은 채소 많이 들은 것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런 건더기들이 꽤 많았던 짬뽕 국물이랑도 같이 먹어주니 괜찮았다. 둘의 밸런스가 괜찮다! 짜장면을 시키지 말고 차라리 짬뽕을 시킬 걸 그랬나.
욕지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상업화되고 관광화되는 섬의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한양식당의 리모델링은 이러한 변화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김금단해녀포차처럼 리모델링을 통해 과거의 흔적을 유지하며 현대적인 매력을 더해가는 곳들도 있다. 그러나 욕지도 곳곳에서는 오래된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들이 생겨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해녀촌 식당은 쯔양 같은 인플루언서의 영향으로 새로운 메뉴가 등장하며, 기존의 사랑받던 메뉴보다 더 많은 이들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또한, 욕지도 모노레일은 야심차게 시작되었으나 추락사고 이후 아직도 운행이 되지 못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기존 임도였던 도로들은 점차 아스팔트가 깔리고 있다. 그 와중에 자연재해로 인한 욕지일주로의 끊김은 동시에 여기는 자연 속 섬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또 상기시켜 준다. 과거에는 많았던 바닷가 포장마차들도 이제는 하나만 남아 전멸에 가까운 상황이다. 욕지도는 이러한 여러 변화를 겪으며 상업화와 관광화의 흐름 속에서 옛 모습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방문 때마다 항상 관광화가 적당히, 적절히 된 곳으로 여겨졌었고, 그래서 항상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여기도 특이점이 이미 찾아온 느낌이었다. 다만 사진에 담을 수 없는 그 아찔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풍경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 없지 그런 것은. 어찌하였건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이 교차하는 이 섬은, 매력적인 요소와 함께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며 계속해서 생존하고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