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일본 여행을 할 때 아쉬운 점 중 하나가 바로 료칸에서 제공하는 가이세키가 보통 2인 이상만 주문 가능하다는 점이다. 오랜만에 가는 일본이라 가이세키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타베로그(Tabelog) 앱에서 가이세키 혼밥 가능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2019년 미슐랭에 선정되었던 쇼쿠・코코로 슌기쿠 (食・心 旬ぎく)를 발견했다.
가이세키를 찾고 있었던 와중 발견한 갓포 요리라는 점과 네이버나 티스토리에는 국내 리뷰가 거의 없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끌렸다. 안 그래도 후쿠오카에는 관광객들이 참 많은데 이 곳은 뭔가 관광객 없는 진짜 현지에 온 이방인이 된 것 같았던 경험이 참 좋았다. (물론 음식과 접객도 훌륭함).
| 카이세키 vs 갓포
처음에는 카이세키와 갓포의 차이를 잘 몰랐는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 카이세키: 다도 문화에서 유래하여 격식 있고 프라이빗하게 즐기는 정식 요리
- 갓포: 카운터에서 셰프와 상호작용하며 즐기는 고급 요리. 카이세키보다 캐주얼하고 요리 형식이 유연함
대략적으로 카이세키 > 갓포 > 이자카야 순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 전 타베로그를 통해 토요일 8시에 예약을 했다. 이 날은 영화 <후쿠오카>에서 나왔던 우동을 먹을 예정이었으나 하카타 마츠리 행사로 우동집이 전세 내버려져서 못 먹었다. 다른 음식점 찾아 해매다가 시간은 흘렀고 (오후 2시 30분경?), 슌기쿠에서 종류가 제일 많은 저녁 코스를 주문한 상태라 점심 늦게 먹으면 저녁 먹을 때 힘들 것 같아 이렇게 된 바에 에라 모르겠다 점심은 그냥 굶고 걷기만 했다
| 카운터 자리
이곳에는 테이블 자리가 있지만 혼밥 예약이라 그런지 카운터 첫 자리에 세팅 되어 있었다. 처음엔 내부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셰프 바로 앞자리에 앉아 모든 요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혼자 먹으니 말할 사람도 없고, 그 대신 눈과 귀라도 즐거워야겠지?) 다만 이 날 너무 힘들어서 사진은 거의 음식 사진 밖에 못 찍어서 내부는 슌기쿠 공식 홈페이지에서 퍼 온 걸로 대신한다.
하나도 거를 수 없는 타선의 행복한 음식의 향연이었다. 양도 많아서 다 못 먹은 게 아쉬울 뿐이다. 암튼 코스는 15,000엔의 최상급으로 博多の初夏特別コース (하카타의 초여름 특별 코스)다. 이 곳은 항상 제철 식료만으로 구성된 코스가 시즌별로 제공된다. 나는 여름이었고.
| 하카타의 초여름 특별 코스
덮개의 무늬가 예뻣던 젓가락 세팅. 음식이 나올 때마다 사장님 부인이 오셔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해 준다. 일어가 안되면 번역앱으로 해 주신다. 내가 다 미안할 정도 접객이 좋다 (모든 테이블 다 담당하는 듯 매우매우 바쁘심). 중간중간 사장님(셰프)한테 물어봐도 친절히 설명해 주신다.
애피타이저: 코바치 小鉢 (こばち, Kobachi)
곤약이 베이스로 깔린 제철 작은 접시에 담긴 에피타이저 요리. 부드러운 시작이었다.
내가 아는 전채요리는 식욕을 돋구기 위한 가벼운 오프닝인데 양이 꽤 많아 보였다. 한 입 먹고 너무 맛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이 집이 식감은 살리면서도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맛을 잘 구현하는 것 같다. 새우 껍질도 입 안에서 부드럽게 부스러져 내린다. 고등어봉초밥이랑 붕장어는 물론, 아니 감자랑 옥수수까지 맛있어 버리면 나중에 나올 음식들은 어떻게 먹을 건데... 실수했다. 하나하나 다 집어 먹었다.


어떻게 생긴 놈인가 나중에 찾아 보았더니 수족관에서 많이 본 듯 한 녀석이다. 독가시에 잘못 찔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ㄷㄷㄷ... 암튼 맛있어서 홀딱 비움.

잠시 쉬어가는 타임. 기본적으로 오차를 주는데 얘기하면 차가운 물도 준다. 저 문양들이 참 맘에 든다. 이런 고급스러운 식기류들이 맛과 분위기를 한층 더 돋운다


카라츠의 붉은 성게: 唐津の赤ウニ (からつのあかうに, Karatsu no Aka Uni)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성게(우니)다. 맛있는 도미와 고등어도 같이 나온다 (전갱이(아지)였던 것 같기도 한데 고등어(사바)가 맞는 것 같다). 붉은 성게는 후쿠오카 현의 카라츠에서 나오는 고급 식재료라고 하는데 이때가 제철이었나 보다. 이 날 아침도 우니, 저녁도 우니, 행복한 하루. 근데 문제는 이때부터 내 배가 좀 불러왔다.



한 단계 더 낮은 코스를 시켜도 됐는데 굳이 제일 비싼 코스를 시킨 게 와규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와규 먹을 일이 없어서 이 집에서 고기까지 해치우자 하고... 최대한 노력해서 먹었는데, 그 배부른 와중에 또 꿀떡 넘어갈 정도로 물론 맛은 있었지만 배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사이드 야채는 또 왜 이리 맛있는지...

대망의 마지막, 디저트였다. 이 시점에서는 배불러서 정신이 약간 혼미해졌었는데 그래도 한 입 씩은 다 맛봤다. 비주얼만큼의 맛인데 약간 아재들 스타일의 전통 맛? 샤베트는 지인~짜 오랜만에 (최소 1년 이상?) 먹은 거라 좋았다. 정말 거를 것 없는 최고의 타선이었다. 음식과 마 내가 소식인임을 아주 후회했던 날.
| 먹고 난 후
먹고 나오니 비가 소록소록 내리고 있었고 골목은 초행자가 보면 위험해 보일 수도 있게 불들도 꺼져 있고 어두웠다 (저녁 10시 즈음). 사장님 부인이 바깥까지 나오셔서 "우산은 가지고 있냐, 본인이 주시겠다", "지금 시간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 택시 잡는 게 좋겠다", "우산 안 쓰고 있으면 택시가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 "택시 불러 주겠다", "괜찮으려나..." 하시는데 음식 설명부터 이후까지의 이런 배려들이 굉장히 감사했다.
골목을 훑어보니 끝 건너편에 고급진 호텔 건물이 보이길래 택시 걱정은 없을 듯하여 괜찮다고 감사에 말씀 전하고 헤어졌다. 배가 진짜 너무 불러서 디저트 이후의 사진은 없어서 당시 어둑한 분위기는 못 담은 초 저녁 사진이다. (초 저녁에도 한적한 골목이긴 했다)
택시는 다행히 호텔 가기 전에 큰길에서 잡을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식곤증에 의해 그대로 뻗어 버렸다 (저질 체력에 많이 돌아다니기도 했고).
쨋든 아침에도 우니를 먹고, 오전엔 이토시마 가서 오랜만에 여름바다도 보고, 1년에 한 번 있다는 후쿠오카 최대 마츠리도 보고, 영화 <후쿠오카> 촬영지들도 찾고, 저녁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행복한 하루였다.
https://www.fukuoka-syungiku.com/
【公式】博多・中洲川端の隠れ家和食・日本料理「すざき町 食・心 旬ぎく」接待に人気
博多・中洲川端の和食、割烹「すざき町 食・心 旬ぎく」。選りすぐりの鮮魚や野菜を使った日本料理をご堪能いただけます。カウンターやテーブル席のほか、接待や会食などに最適な個室
www.fukuoka-syungiku.com
슌기쿠 공식 홈페이지
* 음식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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