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의미로 개인의 빗장을 푼 먹방 여행이었다 (ft. 영화 촬영지 답사)
너무 맛있게 먹고 온 나머지 현재 귀국한 나는 급속히 입맛을 상실하여 현타가 온 상태다
이 짧은 시간에 오로지 먹기 위해 소화제를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도 내 인생엔 없었다
아직도 눈 앞에는 거위와 비둘기와 오리가 아른하게 날아다니는 듯 하며 입안 가득했던 맛의 잔향이 남아있는 사이,
일단 요약본을 정리한다 (90퍼센트는 성공한 느낌).
이번 마카오 여행은 "볼거리"와 "먹거리" 두 개의 중심축으로 급히 계획을 짰다. 구글 지도도 음식점 편만 따로 모아두고 너무 관광객 중심의 맛집은 최소화하며 로컬 추천 맛집과 오래된 노포를 최대화했다.
https://maps.app.goo.gl/e2GURhDc1tB6WVX87
물론 모든 곳을 다 돌 수는 없었지만 그때그때 근처에 있는 곳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자자, 그럼 출발~
| Intro: 대한항공과 홍콩
연말이라 그런지 충동적 마일리지 표 구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후보지는 가고시마, 이시가키, 미야코지마, 페낭, 마카오 였는데 다 나가리 나고 반강제 마카오행...). 결국 직항도 구할 수 없어 홍콩을 경유해 마카오로 들어가게 되었고 (홍콩 입국 > 버스로 마카오 , 마카오 출국 > 배로 홍콩 입국), 갈 때는 심지어 비즈니스석 밖에 없었지만 덕분에 스카이라운지 사용과 편한 기내 좌석으로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했다.
빵쪼가리 @Sky Lounge
인천공항 Sky Lounge 입성, 하지만 돗대기 시장. 자리 없음. 기내식을 먹어야 하므로 바에 앉아서 휴대폰보다 작은 샘~위치 한 쪼가리랑 찍어먹을 놈 국자로 대충 푹 떠서 옆에 놓고 먹음 (가벼운 위장 운동을 위함). 맛은 괜찮았다.
보르도 와인소스와 닭고기 @Korean Air 기내식
앉아서 가는 길 쇠고기 보다는 닭고기가 소화에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아 탑승 전 선주문으로 '보르도 와인 소스와 닭고기' 선택. 비즈니스석이라 기대했던 만큼 훌륭한 한 끼였다. 식전빵 굿. 새우의 크기와 탱글탱글한 식감도 굿. 뜨겁게 갓 나온 닭고기의 그 부드러움과 와인 소스와의 조화 굿. 과일도 굿. 완벽한 선택이었다.
7시 아침 뷔페 @Skycity Regala Hotel 홍콩
공항 근처지만 (800m) 걸어갈 수 없는 레갈라 스카이시티 호텔. 대중교통이 끊긴 심야엔 매드맥스 홍콩택시 라이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말로만 듣던 그 도시전설 같은 2분 루트. 걱정 했으나 짐이 없는 덕분에 일찍 공항에서 나와 밤 12시 쫌 넘어 공항철도를 타고 갈 수 있었다 :). 조식은 애초에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괜찮았다. 난 소식인이라 돈 아까워서 뷔페를 가지 않는다. 고로 저 정도면 하루 세끼 정도를 한 끼에 소화한 셈. 훈제 오리 가슴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돌 때마다 한 점 씩 먹었으니 샐러드와 과일 제외 다섯점이나 먹었다. 슈마이는 매우 별로였다. 냉동 느낌? 조식 가격은 약 2만 원 정도다.
마카오 넘어가서 또 먹어야 하니 식후 소화제도 먹고 호텔 옥상정원에 가서 운동도 했다
자자, 그럼 버스타고 55km의 HMZB를 넘어 진짜 마카오로 넘어간다
| 민치 Minchi @Riquexó 利多餐室
원래 가려던 Apomac이 문을 닫아 옆 집에 왔다. 한국의 김치볶음밥 같은 마카오의 서민 소울푸드라 불리는 민치와 이국적인 맛의 간단한 수프, 그리고 디저트로 마무리한 한 끼. 민치는 감자와 고기만으로 먹기엔 조금 퍽퍽했다(김치 필요!).
디저트인 에그 플란(Egg Flan 계란 캐러멜 푸딩)은 생각보다 별로 안 달아서 놀랐다. 다른 종류지만 로드 스토우즈의 에그 타르트 보다 더 심플하고 순수한 맛이 좋았다. 이 집도 한 30년 돼서 현지인+관광객에게 모두 사랑받는 집이라고 한다. 또 다른 매캐니즈 소울푸드인 몰 로 치킨 Mo Lo Chicken도 유명하다고. 사진 메뉴가 있어서 주문 난이도가 낮고 세트 메뉴는 수프+메인 선택 1+디저트로 94 Mop 1,5000원 정도다.
| 비둘기구이 @Fat Siu Lau
1903년에 오픈했다는 팟 시우 라우 Fat Siu Lau는 마카오 대표 노포 중 하나로, 유명한 옛 홍등가 거리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영화 <2046>과 <도둑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SanVa 호텔 바로 건너편이다. 마지막 날 다른 식당에서 비둘기 코스 요리를 예약한지라 최대한 시간 차를 두고자 첫날 저녁은 이곳에서 비둘기구이로 결정.
느끼함을 줄이기 위해 차이니즈 레몬 티도 함께 주문. 바삭한 껍질과 촉촉하면서도 쫄깃한 속살로 이번 여행의 베스트 메뉴 중 하나로 등극! 특히 대가리를 씹어 뇌까지 쑥 빨아 맛보는 색다른 경험도 포함! 다만 뇌의 식감은 홍어애나 푸아그라처럼 매우 부드럽고 크리미 해서 갠적 취향은 아니다 (쫄깃파라 크리미 식감 안 좋아함). 가격은 138 mop, 약 25,000원. 고급 식재료인 비둘기를 이 정도 가격에, 이 정도 맛과 풍미로 즐길 수 있다니! 한국 치킨 가격을 생각하면 너무 저렴하다고 느껴졌다. 식전빵도 맛있다. 뒤에도 빵 얘기를 계속할 텐데 마카오 음식점들 식전 빵은 왜 이렇게 맛있나 싶다.
난 소식인 솔로다이너라 음식을 많이 시킬 수 없어 못 먹었지만 딴 테이블들을 보니 이 수플레는 기본으로 무조건 하나씩 시키는 걸 목격했다. 또 다른 시그니처인 듯.
| 콘지 @Hung Kee Freshly Made Congee 雄記生滾粥
여행의 백미 중 하나가 우연찮게 예정에 없던 로컬 느낌 가득함을 느낄 때인데 딱 그런 곳이었다. 적어도 저 시간대에는. 세인트 폴 유적지를 찾아가다 아침 6시 30분경 마주친 저 적막하고 평화로운 골목의 레트로한 풍경을 어떻게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으랴. 유적지 탐사를 끝내고 용기 내서 가보니 Congee(죽) 집이었다. 죽 당 가격은 29 mop, 약 5천300원 정도
피시볼 콘지를 시켰는데 탱탱하고 식감 쫄깃한 홍콩 피시볼에 익숙해서 그런지 마카오의 이 부드럽고 푸석한 식감은 낯설었다. 밀가루 함량이 많은 느낌이다. 암튼 나중에 오후 시간에 지나가다 보니 관광객들도 많아 보였는데 확실히 이 이른 아침 시간에는 출근하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기절할 맛은 아니지만 이른 아침 속을 달래기에 딱 좋은 죽 한 그릇. 글고 사장님도 친절하시다.
영어 소통은 안되지만 영어 메뉴가 있어서 주문하긴 어렵지 않다. 나는 손가락 제스처로 남바완을 시킴 (피시볼죽이 1번 메뉴임)
| 새끼돼지 구이 @Fernando's
마카오 가면 꼭 먹어보라는 또 다른 요리, 새끼돼지구이 Suckling Pig (보통 2~6주 된 젖먹이 새끼들이라고 하는데.. 암튼 깊게 알다 보면 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니 여기서 접고...). 한적한 시골 지역인 콜로안으로 넘어간 김에 1986년에 문을 열었다는 유명한 페르난도스 Fernando's로 가보았다. 마카오 거리를 거닐 땐 보이지도 않던 서양인들이 이 식당에는 꽤 많이 보였다. 오픈 시간에 가서 줄은 안 섰는데 가게는 금방 꽉 차더라. 영어 주문도 가능하고 사진 메뉴가 있다.
새끼돼지 구이는 그야말로 겉바속촉의 완벽한 구현이었다. 속살은 한국 족발 맛과 비슥한데 매우 부드럽고 촉촉했고, 껍질은 상상 이상으로 아삭하고 바삭했다. 껍질이 너무 바삭해 나이프로도 잘 안 잘려 결국 손으로 들고 와득와득 씹어 먹는 재미가 있었다. 옛날엔 반반 메뉴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없어 혼자 먹기엔 좀 부담스러운 양이었다. 함께 시킨 쌈초이는 고기만 먹는 느끼함을 중화시켜 주긴 하는데 맛은 평범이었다. 굴소스가 없어 테이블에 놓인 유럽산 식초를 듬뿍 뿌려 맛을 보강했다. 식전 빵은 크기도 좋고 겉바속촉의 맛도 훌륭했다. 가격은 구이만 282 mop, 약 52,000원 정도로 좀 세다. (근데 식재료와 양을 생각하면...)
음식점 바로 앞, 마카오에서 가장 큰 해변이라는 학사 해변 Hac Sa Beach은 바닷물이 너무 똥색이라 큰 감흥은 없었지만 반팔 입고 보는 겨울바다라는 순간의 느낌은 좋았다. 해변 공원에는 바비큐 꼬치구이 상점들이 있는데 눈 돌아가는 비주얼 때문에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꼭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보였다.
| 에그타르트와 커피 한잔 @Lord Stow's
페르난도스에서 배 터지게 먹었지만 그래도 콜로안에 온 김에 1989년 오픈한 로드 스토우즈의 에그 타르트를 걍 지나치기엔 또 아쉬웠다. 해변에서 버스를 타고 빌리지 쪽 로드 스토우즈 '베이커리'로 막상 가니 웨이팅이 길어서 "에이, 접자" 하고 돌아섰는데 (줄 스는거 별로 안 좋아함), 옆에 로드 스토우즈 '카페'는 자리가 하나 남아서 낼름 들어갔다.
아이스커피 한잔과 에그 타르트 한 개를 시켰다. 타르트는 11 mop 약 2,000원 정도다. 예상대로 맛은 달달했는데 생각보다는 많이 달진 않았지만 달다. 맛은 바삭한 페이스트리에 부드러운 타르트, 비주얼에 충실한데 특별한 맛인진 모르겠다. 포르투갈과는 다른 마카오식 타르트라고 한다 (아마 내가 이 차이를 몰라서 그런 듯?). 위 사진은 카지노 구역인 코타이의 로드 스토우즈 런더너 Londonder점인데, 본점보다도 줄이 훨씬 길어 보였다. 쨋든 유명세를 경험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굳이 줄까지 서서 먹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갓 구운 타르트와 하루 지난 타르트를 비교해 보라는 추천은 흥미로웠다.
| 아프리칸 치킨 @Henri's gallery
점심 이후 걷고 또 걸으면서 저녁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펜하 언덕을 넘고, 멋진 주택들로 가득한 마카오 최고 부촌 지역을 넘어, 예쁜 야경의 남만 호수 쪽으로 내려오니 1976년에 열었다는 또 하나의 마카오 유명 맛집, 헨리스 갤러리가 자연스럽게 반긴다. 배도 고픈 김에 이 집에서 아프리칸 치킨을 먹기로 했다. 인기 있는 집이라 그런지 테이블이 구석에 딱 하나 남아 있었다. 페르난도스와 마찬가지로 포르투갈 식이여서 그런지 여기도 서양인들이 많이 목격되는 곳이었다. 고로 영어 주문 가능.
식전 빵부터 좋았다. 메인인 아프리칸 치킨은 25분 기다릴 만큼 푸짐했고 껍질이 특히 맛있었다. 매콤한 카레 소스 덕에 맛이 한층 살아났다. 입에 물릴까 봐 사이드로 시킨 밥은 고봉밥으로 나와 좀 당황했는데 도움이 되긴 했음. 마카오에서 이 치킨 요리에 대한 이름들이 헷갈릴 수 있는데, '아프리칸 치킨'은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퓨전 요리, '모 로 치킨'은 광동 요리의 영향을 받은 요리로,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또한 '포르투갈 치킨'이라고 하면 아프리칸 치킨을 의미한다고.
헨리스 갤러리 바로 옆집인데 남만 호수 배경을 바로 볼 수 있는 야외좌석이 매력적이다. 여기도 거의 만석이었다. 알리 커리 하우스 Ally Curry House라는 곳이다.
헨리스 갤러리와 알리 커리 하우스 앞에 보이는 남만 호수의 야경은 이렇다. 구조물에서 떨어지는 걸로는 세계 최대 높이의 번지 점프를 할 수 있는 마카오 타워가 보인다 (63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진다고 보면 됨).
| 차찬텡식 아침 @San Hong Fat Cafe 新鴻發美食
아침에 성룡의 <취권>과 이소룡의 <사망유희> 촬영지인 로우림록 정원에 가던 중 배가 고파 급히 실시간 열려있는 식당 검색해 들어간 곳. 당시 현지인들로 보이는 손님들만 있어서 로컬 식당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찾아보니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집이더라. 마카오에 한 4~5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차찬텡 프랜차이즈이고 영어 주문 불가지만 메뉴 몇몇은 사진이 있다.
홍콩 차찬텡 느낌의 세트 메뉴(커피+파인애플번+마카로니 수프)를 주문했다. 역시나 혈당스파이크가 걱정되는 달달함 폭발. 파인애플번은 속에 버터 한 덩이가 통째로 들어가 있고 겉은 소보루 빵보다 훨 바삭했다. 꼬소하고 맛있지만 지나치게 달아 반 이상 남겼다. 단맛을 좋아한다면 강추!
이번 여행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구석자리에서 식사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았다. 식당 전체 뷰를 바라보며 먹는 것도 혼밥 여행의 묘미니까. 다만 이곳의 구석자리는 벽 보고 벌서는 느낌이 나는 작은 자리라 웃음이 나왔다. 암튼 세트 메뉴(36 MOP, 약 6,600원)로 간단히 아침을 즐기기엔 충분했다.
| 오리밥 @My Messy Kitchen
타이파 골목에 자리 잡은 로컬에게 추천받은 식당. 소량의 마카오 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제공하여 한 번에 여러 맛을 볼 수 있게 하는 콘셉트이고, 영어 소통 가능하고 사장님도 유쾌하신데 얘기하다 보니 가게 이름인 My Messy Kitchen의 의미도 공감할 수 있었다. 자리도 한 곳뿐이라 아늑한 분위기. 오리밥 Duck Rice과 샐러드를 주문했는데 알레르기 체크까지 꼼꼼히 해주는 세심함이 인상적이었다. 😊
사장님과 남편, 잘생긴 아드님 두 분, 그리고 친척까지 모두 만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눈 특별한 시간이었다. 가게는 가족이 함께 DIY로 꾸민 공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네이버 리뷰를 보고 오는 한국 손님도 꽤 많다고. 남편분은 다국적 손님이 많은 점을 좋아하지만 의외로 대륙 관광객은 드물다며 신기하다고 하셨다. 타이파가 한국 북촌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대륙의 젊은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도 이 가게만 예외인 점은 나도 흥미로웠다.
마카오 영화 <이자벨라>를 보고 마카오 및 타이파까지 왔다고 하니 사장님도 그 영화를 아신다고 했다. "이 영화를 안다고요?"라며 놀라워하셨고 나는 "이 영화 때문에 마카오에 왔다"라고 답하며 촬영지를 찾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나도 이 영화 아는 사람 본 건 사장님이 처음이었다 ㅎ). 덕분에 이곳에서 또 하나의 즐거운 여행의 도장을 찍고 간 느낌이다. 오리밥, 샐러드 각각 48 mop, 약 8,800원.
| 거위 간 덮밥 @Chan Kwong Kei BBQ Shop 陳光記飯店
여기는 로컬+관광객에게 모두 사랑받는 식당으로 보면 되겠다. 원래 두 번 와서 고기 3개 덮밥 (오리+닭+돼지)과 거위덮밥 먹고 가려고 한 곳인데 뭐에 홀렸는지 거위 '간' 덮밥을 시켜버렸다. 하지만 결과는? 식감 쫄깃쫄깃한 게 마치 곱창을 먹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간장 소스 좀 버무려져 있으니 이것이 천국.
10시경에도 손님이 가득한 이곳은 시간대 상관없이 북적였다. 내 테이블에는 직접 가져온 마오타이 혼술부터 하던 현지인이 합석했는데 나중에 내 접시가 밥만 남은 걸 보고는 자기 고기를 먹으라며 권하셨다. 몇 번 사양하다 덥석 먹었는데, 와, 닭이 꿀맛! 역시 현지인이 고른 메뉴는 다르다. 파파고를 통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늦은 시간이라 아쉽게도 더 깊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더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을 텐데! 거위 간덮밥 70 mop, 약 13,000원.
| 거위다리 덮밥 @Chan Kwong Kei BBQ Shop 陳光記飯店
다음 날 아침에 또 갔다. 이곳의 매력은 2개나 3개까지 고기를 섞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인데 새벽부터 고민이 참 많았다. 어제 거위 간덮밥을 먹은 관계로, 마지막은 '오리+닭+돼지 덮밥'이냐, 아니면 '거위 덮밥'이냐... 거위는 고급 재료라 (오리랑 비교하면 가격이 두 배다) 섞어 먹기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오리랑 닭 돼지는 언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니 거위 덮밥으로 결정!
거위도 그냥 거위덮밥이랑 거위다리 덮밥이 있는데 식감이 더 좋다는 거위다리 덮밥으로 주문. 흑후추를 버무린 거라 맛이 그냥 술안주다. 말해 뭐래. 참 맛있다. 쫄깃한 살 뜯어먹는 재미도 있어. 껍질도 맛있어..ㅜㅜ.. 너무 맛있어. 여기는 밥이랑 고기만 딸랑 나와서 이번에는 삶은 야채(상추)도 같이 시켰다. 차까지 (그릇 씻는 용인데 음료수 없어서 그냥 마심) 함께 하니 역시 완벽한 삼위일체 조합이다. 원래는 오늘의 수프도 있는데 이 날은 안된다고 해서 못 먹었다. 거위다리덮밥 130 mop, 약 24,000원. 삶은 상추 소짜 33 mop 약 6,000원.
| 피시볼 국수 @Hou Si Loi 好時來美食
이번 여행의 진정한 로컬 경험이 아닌가 싶다. 원래 가려던 국숫집 찾아가니 폐업한 바람에 잠깐 방황하다가 급하게 눈에 들어오는 한 골목길 음식점을 들어갔다. 역시 관광객의 흔적은 없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부터 중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친구들까지 다양한 현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메뉴도 다 한자. 다만 몇몇은 사진 메뉴가 있어서 손가락으로 사진을 가리키며 피시볼 국수를 시킬 수 있었다. 세트 메뉴가 지금은 안된다고 해서 국수만 주문, 30 mop 5,500원 정도
여기도 피시볼이 푸석한 것 보니 마카오 특징인가 보다. 원했던 딱 그 중국식 분식점 국수 맛이 좋았다. 처음엔 특유의 퉁명스러운 캔토니즈 말투였지만, "아 캔트 스피크 챠이니즈"라고 하니 말투가 정화되며 손가락으로 "앉으라"며 친절하게 안내해 주셨다. 언어의 차이일 뿐, 이런 경험은 하도 익숙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ㅎ.
중간에 라유를 뿌렸는데... 와... 먹자마자 목구멍이 커 억 하며 얼굴 빨개질 정도로 매웠다. 저 순간 음식이 변신했고 그 맛에 홀려 또 촵촵촵 한 그릇을 비웠다 (오늘 저녁 코스 요리라 가볍게 속만 채우려고 한 건데...).
| Tasting 코스 @Hotel Central Palace Restaurant
대망의 피날레, 마지막 날 저녁 코스 요리다. 어차피 모든 빗장을 풀은 여행이었으니 한 잔 씩이면 괜찮겠지 싶어 와인 페어링도 선주문했었다 (추가 시 198 mop, 약 36,000원, 메인 코스 자체는 588 mop, 약 108,000원)
전채는 기름에 조리된 노른자 타르트와 캐비어, 그리고 앙증맞은 밀크티가 함께 제공됐다. 타르트를 한 입에 쑥 넣으면 노른자가 입안을 가득 채우고 밀크티 한 모금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수프는 70년대 스타일로 끓인 닭고기 수프. 멜론과의 조합이 의외로 잘 어울렸고 소라의 식감은 부드러웠다. 특히 육회 같은 맛과 쫄깃한 식감을 가진 식재료가 궁금해 물어보니 바다 달팽이(Sea Snail)로 고급 재료라고 한다. 독특한 경험으로 기억에 남았다.
메인 요리는 두 가지다. 오스만투스 향을 입힌 훈제 프렌치 비둘기는 은은한 향과 라이스 칩이 인상적이었다. 코스 요리라 반 마리만 제공되었고 대가리는 나오지 않았다. 맛은 괜찮았는데 개인적으로는 Fat Siu Lau의 비둘기 요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전복 웰링턴은 살짝 난해했지만 무난히 먹을 수 있었다. 디저트로 나온 크리스털 설탕 호리병박은 포멜로(붕깡), 피치(복숭아), 플럼(자두)으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사케, 테킬라, 위스키와 함께 순번에 맞추어 먹는 방식이다. 입 안에서 설탕벽이 깨지는 독특한 식감이 재미있었다.
마카오 토속은 아니지만 마카오에서 꼭 먹어보라는 추천을 받은 적이 있어 25년 산 보이차(Puer'er Tea)도 주문했다. 흙내음 특유의 깊은 풍미가 인상적이었고 코스의 단계가 넘어갈 때마다 이전 음식과 와인의 맛을 클렌징해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런 게 바로 생차의 매력인가 싶었다. 전체적으로 서빙이 특히 친절했는데, 손으로 먹는건지 포크로 먹는건지 이건 뭔지 등 질문에도 편하게 답해주셨고, 음식이 나올때마다 세심한 설명과 배려 덕분에 시종일관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역시 친절한 경험은 맛을 떠나 잊을 수가 없다. 계산 시 호텔 투숙객에게는 10% 할인이 적용되는데 예약 당시 몰랐던 부분을 직원분이 확인해 프런트에서 쿠폰까지 챙겨주셨다. 이 세심한 배려 덕분에 더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남았다.
| 중국식 조식 세트 @Hotel Central Palace Restaurant
마지막 날 홍콩행 페리 시간이 타이트해서 아침도 호텔 식당으로 예약했었다. 서양식과 중국식 중 택 1인데 여행 중 딤섬류 계획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중식으로 예약했다. 콘지 제외 맛은 별로였다. 만두는 특히... ㅜㅜ 전복은 귀해서 다 먹어주고. 마카오 국기 색감의 크로와상 비주얼이 특이했던 서양식을 먹었어야 했나 싶었다. 암튼 조식도 투숙객이면 10% 할인이 들어간다. 조식에서도 챙겨주셔서 너무 감사. 원가는 148 mop, 약 27,000원.
| Epilog: Hong Kong & Korean Air
호텔 체크아웃 할 때 가지고 나온 사과오이 주스. 첨에 보고 오이? 윙? 했는데 괜찮다. 그냥 달다구리다.
참치 샌드위치 @TurboJet Ferry
마카오-홍콩행 터보제트 페리는 슈퍼 좌석을 예약했었는데 한 시간 이동이긴 하지만 생수와 간단한 샌드위치가 나온다. 햄치즈랑 튜나 둘 중 하나 선택인데 튜나 선택. 어린 시절 홍콩에서 먹던 추억소환의 맛이었다.
베이컨 치즈 버거 @Beef & Liberty
홍콩 공항 보딩장 근처에서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었다. 번도 맛있고 고기는 스테이크 수준으로 괜찮았지만 크고 팬시한 햄버거는 햄버거가 아니며 햄버거는 비싸지 않아야 한다는 주의라 그런지 약간 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했고 가격은 137 HKD(약 26,000원)로 많이 쎄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냥 중국식 음식을 먹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
대한항공 이코노미 기내식
저녁으로 생선과 비빔밥의 선택. 선택은 비빔밥. 고추장 쫙 돌려주시고 뚝딱 먹은 다음 맛있는 과일 섭취. 기내식은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맛있다. 무슨 이유일까?
암튼 영화 두 편 정도 보니 인천공항 랜딩 시작.
반팔 입고 한가을의 크리스마스를 한 껏 즐기다가 갑자기 한국의 매서운 강추위에 정신이 바짝 들어 시킨 아아, 내 돈 주고는 커피 잘 안 사 먹는데 그냥 꿈같은 지난 며칠이 뭔가 아쉬워서 한 잔 사셔 마시며 혼자 넋두리를 함. 생각해 보니 마카오에서도 커피는 한두 번 정도밖에 안 마신 듯?
Fin. 이상 마카오 먹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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