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체험기간 동안 느끼는 것들을 날 것의 느낌으로 써갈겨 본다.
비인두암의 여러 후유증 중 난청이 있는데 귀는 한 번 나빠지면 되돌리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서히 나빠지는 것을 바라야 한다. (방사선 후유증) 이번에 찾아온 난청은 겪어본 규모로는 두 번째로 큰 거여서 이비인후과에서 봐도 보청기가 필요한 수준이 되었다. 처음 난청이 찾아왔을 때 의사 선생님이 기록을 보더니 치료 전에 (일반인 시절) 워낙 일반인들 이상으로 귀가 좋았던 수준이라 당장은 나빠진 건 맞지만 다른 사람들 대비 괜찮은 편이란 웃픈 위로를 들은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두 번째 난청은 생각보다 꽤나 빨리 찾아왔다
참고로 한 쪽 귀다. 다른 한쪽은 그나마 정상에 가깝게 작동하는 모양. 그리고 아직 장애인 판정받을 정도는 아니다.
요즘 보청기들은 체험 기간들이 있나 보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무료 체험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실제로 보청기점에 가보니 2주 무료 체험기간을 주었다.
보청기점에서 청력 테스트를 하고 내 상태에 맞춰 튜닝을 해준다 (이걸 '피팅'이라고 하더라).
기기는 스타키 Starkey 제품이다. 찾아보니 보청기 시장이 작다 보니 대체로 6개 정도 브랜드 (모두 외국)가 있고 거의 뭐 상향평준화 상황으로 봐도 된다고 한다. 그래도 품질은 오티콘이 젤 낫다고 하는데 뭐 이건 카더라니.. 믿거나 말거나. 스타키는 국내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제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냥 추천하는 걸로 착용해 보는 걸로.
참고로 기기가 꽤나 비싸다. 그리고 저걸 오픈 형이라고 하나? 잘 모르겠는데 암튼 저 큰 부분을 귀 뒷 쪽에 걸고 작은 부분을 귓 속에 넣는 형태인데, 사람들이 내 착용 모습을 보니 유심히 보지 않는 이상 뭐 꼈는지 티가 잘 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근데 나는 딱히 보청기 보이는거 신경은 안쓰인다. 신경 쓰이는 사람들은 귀에 삽입하는 형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는 그걸 낄 수 있을 정도의 청력이 아니라서 이걸 추천한더라. 안경 먼저 쓰고, 보청기 착용하고, 마스크는 보청기 옆 쪽으로 살짝 밀어주며 걸어 쓰는 식인데 아직까지 크게 불편함은 못느꼈다. 저 귀에 삽입하는 부분이 딱 맞아야 성능도 더 빛을 발하는데 나는 태생적으로 귓구멍이 작아서 (이비인후과에서도 선생님이 귓밥 빼주실 때 항상 얘기 ㅜㅜ) 귀에 쏙! 착! 하는 착용 느낌은 못 받았다.
이제 한 열 흘 정도 써봤는데 후기는 아래와 같다:
1. 필요 없는 소리들이 다 잡힌다
- 보청기 원리가 소리의 증폭이라 그런지 정작 필요한 건 사람들의 말소린데 모든 소리가 다 잡혀서 거슬린다
2. 거리감이 잘 안 느껴진다
- 어느 정도 거리에서 소리가 발생하는지 거리감이 잘 안 잡힌다. 멀리서 말하는 것도 가까이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3. 방향성을 모르겠다
- 예를 들어 내 오른쪽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는데 막상 돌아보면 왼쪽 쩌~기에서 소리가 나고 있다.
4. 잡음이 심하다.
- 소리는 기계음 같이 나는데 쇳소리랄까... 무전기에서 나는 칙칙 소리와 함께 동반되어 들린다. 음악 이퀄라이저처럼 좀 조정을 하거나 고막에 착 들어가게 쑤셔 넣으면 좀 나아지긴 하는데 쨋든 자연음이 아니다.
- 근데 계속 쑤셔 넣다 보면 귀가 아픈데 쓰끼기도 하고, 고막에 닿을 까 걱정된다 (근데 이비인후과 선생님한테 물어봤더니 고막 건드릴 정도의 길이는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ㅋ)
- 요즘은 스마트폰이랑도 블루투스 연결이 되서 소리 조정 및 유튜브나 통화를 보청기로 대신 할 수도 있는데 음악은 진짜 못 들어주겠더라. 음악 듣기에는 음질이 아주 지랄맞다.
5.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 소리가 잘 들리는 건 분명하다. (이게 처음 느껴보면 꽤 꿈만 같은 경험이다) 근데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 때가 꽤 있다. 소리만 증폭된 느낌을 느낄 때가 있다.
6. 내 목소리의 크기를 잘 모르겠다.
- 이건 안 들릴 때도 문제였는데, 보통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들을 보면 일반인들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말하는 걸 볼 수 있는데 자기 목소리의 정도를 파악 못해서 그렇다. 근데 보청기를 끼면 이것과 유사하게 다른 식으로 내가 얼마나 큰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들다. 내 목소리가 내 자신한테 너무 크게 들려서 그런 걸지도...
7. 시끄러워질수록 괴롭다.
- 사실 보청기가 제일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이 소음이 많은 공간에 있거나 사람들이 많을 때 잘 안 들려서인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보청기를 쓰니 소음이 많아지는 상황들이 괴롭다. 여러 잡소리들과 함께 제각각 말하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가 귀를 찌르듯 괴롭힌다. 5번에서 말한 것처럼 소리만 커지고 정작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이 외 잡소리들까지 다 쳐들어오니 짜증이 난다. 가능하다면 소음이 많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곳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 처음 언급했듯이 나는 한쪽만 차는 편측형인데 이 경우 소음 공간에서 더 취약하다고 한다. 양 쪽 착용 시 소음 공간에서 발생하는 이 괴리감과 괴로움이 훨씬 완화된다고 하는데 양 쪽은 해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말하고 있으면 뭐랄까... 내 주위에서 NPC들이 짹짹거리고 있는 느낌이다.
8. 이명 등 기존 불편한 증상들은 해소되지 않는다.
- 소음이 심할수록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이명, 윙윙거림, 물안에 있는 듯한 느낌들의 환장의 콜라보! 이게 정말 괴로운데 보청기를 끼면 이런 게 좀 완화가 되나? 하는 간단한 바람이 있었는데 이건 큰 착각이었고요... 보청기는 그냥 소리 증폭 원리이니 기존 앓던 귀증상은 그대로 간다. 그러다 보니 소음 공간에서의 괴로움은 배가 될 때가 많다. 채널 조정 등을 통해 뭐 조정은 들어가는데 당연히 자연음 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9. 귀찮다.
- 여러 보청기 후기들에서 나오는 공통적인 얘기가 "비싼 거 사놓고 결국 안 쓰게 된다"인데, 이비인후과에서도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써보니 이해가 바로 간다.
- 착용하는 거는 뭐 그러려니 하는데, 위 열거한 단점들 때문에 자연음에 가깝지 않다 보니 오히려 불편하고 이질적인 상황들 때문에 집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처럼 굳이 사람들과 대화가 필요치 않은 경우는 꺼놓거나, 집에서는 아예 안 차게 된다.
- 이것도 결국은 소모품이라 보통 수명이 4~5년 간다고 하는데 결국 그 비싼 가격에 사기만 하고 잘 쓰지도 않을 수도 있다!
귀가 안 들리는 불편함을 극심으로 겪고 있다가 보청기를 처음 착용할 때는 정말 마법의 한 순간 같다. 다만 조심해야 할게 보청기 샵은 대체로 조용하다. 특히나 방 같은 곳에서 상담하면 정말 고요한 곳이기 때문에 소음 공간에서의 취약함은 미처 예상을 못한다. 보통 때는 듣지도 못하던 시계 초침 소리까지 다 들리더라.. 와...
암튼 그래서 온갖 환경에서 써 볼 수 있는 2 주 체험기간 제공이 괜찮다고 생각된다. 그런 단점들은 보통 다 설명을 해 주신다. 다만 그만큼 소리가 갑자기 잘 들리는 마법의 순간의 느낌이 너무 격한 나머지 "바로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덜컥 들기는 한다.
다만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사람들을 많이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끝까지 버텨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위 열거한 단점들도 그렇커니와, 일단 가격이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요즘은 이 보청기들도 인공지능의 트렌드에 올라타 AI 기능! 뭐 이러면서 수많은 채널! 동시 번역! 뭐 이런 기능들을 내세우며 더욱더 높은 가격대의 보청기를 내놓는다. + 보청기 시장이 작기 때문에 파는 사람 입장에서도 최대한 비싼 제품을 비싼 값에 파는 것이 이익일 거라 보청기 샵도 잘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최고가 본게 1,000만원이었는데 청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실제 구입하게 되면 디스카운트가 꽤 많이 들어가는데 여기서 보청기샵 마진이 남는 것 같다. (내가 갔던 곳은 50% 훨씬 이상으로 디스카운트를 불렀었다)
보청기 음질이 뭐 음악들을 만큼 좋은 것도 아니고 (영화나 음악을 들을 때는 반드시 보청기를 빼고 한쪽 귀로만 듣게 된다) 채널이 많을수록 드라마틱하게 품질이 좋아지는 것도 딱히 아니라고 들었다.
내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건 16 채널인데 보청기 샵에서도 (오히려 내가 더 비싼 제품을 문의했는데도) 이 정도면 충분하실 거라 몇 번이나 더 비싸고 좋은 제품 사려는 걸 만류하셨다. 그리고 이비인후과에 가서도 이 정도면 쓸만한 거냐, 보청기 샵에서 더 비싼 거 써 봤자 크게 다른 거 못느낄거라고 하더라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왠만하면 더 비싼거 파는 걸 많이 봤는데 착한 분 만나신 것 같다고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하고 하셔서 맘이 좀 놓였다.
그리고 보청기가 계속 그 '피팅'이란 걸 받아야 하기 때문에 한번 사면 그 샵에 자주 찾아갈 수밖에 없어서 샵도 잘 만나야 한다고 한다. 사실 보청기 가격들이 하도 제각각이라 내가 얼마나 싼 가격에 사는진 모르겠지만 보청기 샵은 잘 만난 느낌이다. (광고 같아 어디인지는 안 밝힘)
암튼 이제 2주가 다 돼 가고 있는데 생각보다 장점보단 단점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청기를 2주 후에 구매를 할 것이냐? 그것도 3 자릿 수의 이 비싼 제품을?
일단 지금 상황으로는 답은 "그렇다"이다.
안 들리는 상황 자체가 너무 불편하기도 하고 상대방 사람들한테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하는 것도 상당한 민폐라 회사에서 필요할 때만 쓸 예정이다. 다만 소음이 많은 상황, 밖으로 나갔을 때와 같이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 더 많긴 하지만 그동안의 불편함을 100으로 치면 지금 착용하는 상황은 한 30~40 정도는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또한 앞으로 지속적으로 써보며 적응해 나가면 더 나아질 수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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