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딜 가나 시작은 언제나... 휴게소
운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배가 출출해진다. 여전히 '여행이 시작됐다!'는 실감은 나지 않지만 여행의 첫 장면은 언제나 휴게소에서 시작된다. 오전 8시 56분,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다. 맛은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비주얼에 이끌려 매번 같은 선택을 하게 되고 배만 살짝 채운다. 실망할 걸 알면서도 매번 반복되는 휴게소 식사, 어쩌면 이것도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 같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은근히 보이는 일상에서 만나지는 않을 작은 풍경들이 앞으로 펼쳐질 여정의 첫 단추가 된다. '나, 이제 어디로 떠나는건가?'라는 설렘이 서서히 스며든다.
| 충청도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서해대교를 건너는 순간 바다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47분, 국내에서 유일하게 섬에 자리한 휴게소인 행담도 휴게소에 잠시 들러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래도 섬 쪽이라 바다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서해안의 서천, 비인해변. 이제 뭔가 본격적인 해안로 여행이 시작되는 느낌. 점심 먹으러 옴. 벌써 오후 2시...
점심으로 선택한 홍어와칼국수 식당의 메뉴는 1인분 8,000원짜리 2인상. 그 당시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이었다. 이 점심 한 끼가 이제야 나를 완전히 일상에서 벗어난 여행의 세계로 데려다 주는 듯했다.
점심을 마친 뒤 오후 3시, 서천의 풍경은 층층이 쌓인 레이어처럼 겹쳐져 있었다. 저 멀리 갯벌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고요하게 드리워져, 시간마저도 느리게 흐르는 듯하다. 이런 여유로운 순간들이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지, 문득 깨닫게 된다. (나는 가끔 이렇게 사소한 생각들에 잠겨버리는 피곤한 인간이다.)
다시 이동 후 도착한 죽도, 커다란 밤섬의 모습에 이끌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 섬에서 유명한 상화원에는 들르지 못했지만 바닷가 근처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바다를 바라봤다. 멀리서 낚시꾼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디를 가도 이들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이번 여행 첫번째 숙소 도착 후 근처 산책. 가을의 기운이 스며든 느낌이다.
아름다운 서해의 어두워지기 직전의 모습. 배가 고프다. 다시 비인해변 쪽이다. 저 앞에 밤섬인 쌍도가 보인다.
굴까지 주는 서해안에서의 조개구이 저녁식사 @웰빙칼국수. 허름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실내 테이블 관리도 잘 되어 있고 쾌적해 보이는 수조가 좋았던 곳. "그래, 서해안에 왔으면 조개구이 먹어줘야지!"
숙소로 돌아온 밤, 온통 세기말적 분위기로 가득 찼다. 어둠 속에 멈춘 듯 서 있는 빛나는 풍차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날 아침 7시30분 경 장항항의 장항 6080 음식골목 맛나로로 내려갔다. 이곳의 백반을 참 맛보고 싶었는데 '금일 휴업' ㅜㅜ
아침식사 가능한 곳을 급히 찾아보다가 다시 북쪽으로 33km을 이동하여 홍원항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홍원백반집.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 앉았지만 이미 현지 어부들은 어업을 끝내고 뒷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거한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마치 불타는 주말의 밤을 연상시키는 활기찬 분위기였지만 시계는 겨우 아침 8시 5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지의 강한 에너지가 가득한 이 공간에서, 그 속에 압도되면서도 묘한 편안함이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기분 좋은 집밥 같은 한끼 후 근처에서 사진도 찍어주고,
이런 풍경들을 좋아한다. 숨 막히게 채워져 있는 느낌과 간단해 보이지만 또 트여 있는 느낌. 이래서 바다와 항이 좋다.
숙소를 떠나 세만금방조제에 도착하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규모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이 구조물을 바라보며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동시에 이 방조제를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그 속에 묻혀있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19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완성된 이곳은 총 길이 33.9km로 마치 자연과 인간이 대치하는 방패와도 같다. 한쪽에서는 거친 파도가 부딪히고 반대쪽은 평온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이 상반된 풍경은 거대한 인공 구조물의 위력을 더욱 실감케 했다.
맨날 뻘만 가득한 서해바다만 주로 봤었는데 이런 딥한 풍경도 보고,
대한민국 어느 바닷가를 가도 빠지지 않는 낚시꾼들의 모습. 그들은 바다와 마주하며 자연에 도전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의 존재는 마치 바다 풍경 사진 속의 완벽한 피사체 같다.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낚싯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바다와 인간의 끊임없는 교감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서해안에서 느끼는 파도의 철썩임
끝없이 펼쳐지는 세만금 드라이브. 바다와 인공 구조물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이 독특한 풍경이 길 위에서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요거는 움짤보다는 조금 긴 버전의 세만금 드라이브 풍경이다.
| 전라북도
분위기가... 스산하면서도 신기함.
어찌하였던 이 곳도 푸들시츄 연합이 접수합니다.
| 잠깐 내륙으로, 전주
남해안으로 내려갈 때는 힘들기 때문에 항상 중간 지점에서 쉰다. 군산이나 변산이 끌리는데 그곳들은 마땅히 갈 애견펜션이 없어 내륙이지만 항상 전주에 들리게 된다.
한옥마을 한 가운데 괜찮은 애견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이번에 가보니 루프탑도 생겼다. 사장님이 직접 관리를 잘하시는 듯하다. 이름은 '꼴 게스트하우스'.
전주 한옥마을의 가을 느낌, 그러고 보니 한옥의 나무 색깔 때문인지 가을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상차림이 맛있다는 '경기전막걸리'에서 저녁. 음식보다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백숙을 끓이던 버너의 부탄가스에 불이 붙어, 가스통의 1/4 정도가 불에 휩싸였던 순간은 태어나서 처음 본 광경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옆 테이블들, 종업원 모두 현실감이 없는 듯 손가락만 가리키며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그 약 30초 정도...? 다행히도 불은 결국 달려온 직원분에 의해 꺼지긴 했다.
제3자가 이 상황을 듣는다면 "빨리 불부터 꺼야지, 뭐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순간의 충격은 우리의 상식적인 판단을 마비시켰던 것 같다. 비일상적인 상황은 오히려 빠른 대처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재난 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날 밤 묵었던 숙소는 손님이 우리뿐이라 거실까지 전부 쓸 수 있었다. 아늑하고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여행의 여운을 느끼며 조용한 밤을 맞이했다.
비밀의 화원 느낌 마냥 거실과 이어진 루프탑으로 가는 계단
편한 전용 쿠션. 이제 한 숨 자자고 친구들~
다음 날 아침 6시 경에 찾은 전주왱이 콩나물국밥 전문점. 가을이라 아직은 아침이 어둡다
연약하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느낌의 동글동글 인상적인 계란의 모양
정확히 월요일 아침 6시 22분의 풍경이다. 한 주가 막 시작되었지만, 밖은 여전히 어둡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사람들이 꽉 들어찬 모습을 보며 새삼 놀라움을 느낀다. 얼리버드들의 잔치라고나 할까. 어둠 속에서 이미 하루를 시작한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그들의 결연한 일상을 조용히 드러내고 있는 듯했다.
작고 소박한 발코니에서 아침 풍경을 바라보는 강아지, 이제 다시 떠날 시간이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었다.
| 전라남도, 남해안
다시 바다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 다음 행선지인 목포로 향했다. 중간에 오전 10시 즈음 정읍 녹두장군 휴게소에서 강아지들 산책.
목포와 신안은 갈만한 애견펜션이 없어 언젠가 있을 다음 여행에 집중하기로 하여 이번 코스에서는 제외했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기엔 못내 아쉬워 목포 남경회관에 들러 백반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1인분 9,000원에 가성비도 굉장히 좋았고 맛도 만족스러웠다. "다음엔 꼭 목포 여행을 와야지!" 다짐했던 순간이다.
밥을 먹고 근처 난영공원에 들러 강아지들과 잠깐 산책을 했다. 나름 테마가 해안로 따라 여행인데 내륙인 전주에서 목포 도심으로 바로 진입하다 보니 바다의 흔적을 잠시 잃은 듯한 느낌이었지만 공원에서 그나마 물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여기서 느껴지는 가을의 신호들을 편안히 즐겼다.
한산하고 넓은 공간 속에서, 사람이 없을 때 강아지를 잠시 풀어줬다. 겁이 많은 녀석이라 할 일 하고 이내 돌아온다.
이제 다시 해안로 따라의 여행을 위해 고금도의 고금대교를 지나 신지도의 장보고대교를 넘으며 다시 바다로 돌아왔다.
이제 신지도다. 남해안의 섬에 왔다.
다음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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