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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월요일 시작을 도와주는 기분좋은 음악이 하나 새로나왔다.
Titiyo의 음악으로,
Kleerup의 점진적이면서도 차분한 일렉트로 사운드가 편안하다.




Longing for Lullabies by  Kleerup ft. Tit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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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찾을 기분도 안든다...

짜증나는 삼국지...용의 부활...
뭐그리 국내 신파 드라마 스러운지... TV로 보는것만으로도 족할 것을...

삼국지...조자룡...
적어도 우리나라의 남성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책도 책이지만...

십 몇탄이 나온 삼국지 게임을 통해 십년이 넘도록 일이년에 한 번씩 꼭 꼭 날밤을 까게 만들어 더욱 특별한 삼국지... 나도 그 중 하나다...ㅜㅜㅌ
사이드로 천지를 먹다 시리즈도 살짝쿵...

6권짜리 정비석의 삼국지를 옆에 끼고 마지막권에 나오는 인물열전 하나하나 체크해가며 게임을 즐겼던 오덕의 아우라를 서슴없이 뿜어내었던...
몇 번이나 읽어 재끼고 그것도 모잘라 이문열 삼국지에 고우영 삼국지까지...

한장면 한장면...  상상 속의 나래를 피게 만들었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캐릭터 중 하나였던 조자룡...
그를 유덕화 분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이게 왠일....
안그래도 나날이 늘어가는 유덕화의 이미지에 이연걸과의 전작이 너무 좋아 주저없이 선택하게 되었으나...
몹쓸 경험만 하게 되었다...

동양에서 젤 잘나가는 배우 중 하나인 유덕화를 전면에 세우고,
그 시절 그 사람들이 보고 사랑했을 법한 추억의 배우 홍금보을 사이드에 장착하고,
거 "인터네쇼날"한 배우 없나하고 뽑은 직한 메기 Q.....
(영어만 하는 메기 큐의 어설픈 더빙은 정말 최악 중의 최악이었다)...

증말 신물나는 혼자 잘나고 뭐든 척척 다해내고 마지막까지 장렬하고 위엄을 보여주는 영웅주의 미화...
간간이 나오는 신파스러운 장면들...
사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늘어지는 따분한 내러티브들...

더군다나 "중국"영화라는 간판을 달 때 가장 어필하는 캐릭터인 '스펙터클'의 부재..
지금까지 본 중국 무협, 전쟁 영화 중 이렇게 초라하고 쪼잔한 스케일의 전쟁 씬이 있을까...

나관중 삼국지의 내러티브는 후다다다다다다다닥 결말지어지고 백발 노인이 된 조자룡을 내세워 픽션을 나래를 펼치며 영화는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지금까지 욕먹어 온 한국형 내러티브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다가 갑자기 조자룡이 계백 장군이 되더니 조영은 화랑관창이 되기도 하고 다시 조자룡은 이순신 장군까지 떠올린다..

마지막 조자룡의 비장의 출격 전 흐르는 썡뚱맞은 음악하며....

이거 혹시 한국 영화였나요?
사전 정보가 없어서 합작 영환줄 몰랐다...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 망령의 아우라를 지울 수가 없다...

스태프, 배우 모두 중국으로 바뀌었건만 어찌 그래 영화를 잘도 망쳐놓을 수 있는지....

***여기서 말하는 '한국 스럽다'는 더 이상 창의니 철학이니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영화계를 망쳐놓은 현상의 의미로서 한국 스럽다 임 ******

그 옛날 한국 영화 힘들다며 스크린 쿼터 행진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힘들었던 시절 영화관 간판에 걸려있고 비디오집에 진열되어 있던 진주 보석같은 한국 영화들을 잊을 수 없다...

어느새 투캅스-->친구-->태극기 식의 영화들이 한국영화 질을 떨어 뜨려 놓으며 급기야는 조폭 코미디 바람이 불고 저질 쓰레기들이 난무하며 더 이상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이 꿈을 펼칠 수 없고 더 이상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이 결국 한국 영화에 등을 돌리게 만들어 버린 지금... 과연 관객이 충무로를 욕하는게 부당할까?

힘들었던 그 시절...

난 아직도

김기덕 감독의 초기 작품의 거칠은 영상 속에 펼쳐지던 충격과 분노,
(악어와 파란대문!)
박종원 감독의 그 밀실같은 폐쇄된 공간 속의 긴장과 인간 군상,
(송어와 파라다이스 빌라!)
임권택 감독의 (욕도 많이 먹지만 그래도!) 고추장스러운 느낌의 연륜,
(태백산맥!)
홍상수 감독의 그 뻔뻔하고 너덜너덜스러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박광수 감독의 그 깊은 철학,
(그 섬에 가고 싶다!)
이명세 감독의 그 시간을 잊은 듯한 로맨스,
(첫 사랑과 남자는 괴로워!)
송능한 감독의 그 말빨,
(넘버 쓰리!)
장진 감독 초기시절의 그 신선함,
(기막힌 사내들!)
남기웅 감독의 그 기막힌 괴기한 상상력,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 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그리고 대한 민국의 역사를 진지한 모습으로 살펴보게 해준 정지영 감독과 이창동 감독,
(남부군,하얀전쟁과 박하사탕!)
등등 ....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혀지던 배용균 감독의 작품을 다시금 영화관으로 올려놓기도 한 수많은 국내 영화지킴이들의 열정을,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개인적으로 내 인생관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준 작품들이었고
난 잊을 수 없다.....

한없이 그리워 진다....

다시금 그런 '좋은' 영화들...
우리를 돌아 볼 수 있게 만들어 줄 그런...
영화들을 이 땅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돈만 가져다 푼다고 모든 일이 잘되는 건 아니겠지?
무턱데고 (디 워처럼)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 그래서 모두 다 우리 걸로 해야돼를  외쳐대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더 이상 나올게 없다고
딴 나라 기술, 딴 나라 이미지, 딴 나라 머시기 써도
그걸 써먹을 줄 모르고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그것도 무용지물이겠지?

아 기분 드럽네.... 오늘....
옛날 영화나 한 편 보고자야겠다....ㅜ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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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18:
 
       Shibuya-Kei Part 2.: 왜 된장의 사운드트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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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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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초반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와 부동산 공황의 여파로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제적 침체기를 지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10년 전 일본의 모습은 IMF 이후 경제적으로 악화 되어 가는 지금의 한국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옆의 그래프는 잃어버린 10년 간의 미취업률 분포도이다.)

하지만 언제나 경제가 힘들 때 놀랍게도 언더문화는 발전해 왔다. 영국의 하우스 문화와 일본의 시부야케이가 아주 좋은 예다. 시부야케이는 경제의 침체 속에서 체제를 거부하며 젊음으로부터 발산되는 열정과 창의력 그리고 철학과 실험정신을 통해 시작된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결국 경제 침체 속의 분위기에서 그 새로운 문화는 어느 때보다 영광의 빛을 뿜어 내며 가, 애니메와 함께 전 세계에 일본의 선진 문화를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경제가 힘들때면 문화는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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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경제 침체는 소비 시장의 위축을 불러 왔지만 이 새로운 물결은 그 공허한 빈자리를 신선함과 또 다른 열정으로 채웠다. 젊음의 언더문화는 뒷골목의 음침함을 걷어버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었다. 대기업의 유통망을 통하지 않은 새로운 패션 스타일과 브랜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곧 음악 취향의 변화도 이끌고 왔다. 통기타와 락 그리고 대중 가요라는 뻔한 선택권 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은 테크노, 힙합, 하우스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이 것이 꽃피는 곳은 바로 클럽이라는 공간이었다.

더욱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무언가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정보화의 흐름에 탄력 받은 디자인과 미디어 매체의 활성화도 따라왔다. 바로 창조적이며 열정적인 실천과 실험에 의해 문화적 다양성이 실현되는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90년대 이 열정적인 문화적 움직임의 주역이 바로 시부야케이였던 것이다.    
 

정치적이지도 반항적이지도 않은 별난 언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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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시부야케이는 언더문화로서 특이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번 질문해 보자. 언더문화의 특징이 뭐냐 물으면 반항, 무정부주의적, 파괴, 폭력, 정치성과 같은 격한 이미지들이 보통 떠오를 것이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언더문화들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펑크건 하우스건 그런지건 기성세대와 절대 권력을 향한 강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이모(Emo) 현상도 별 다를 바 없다. 겉으로만 찔찔 짜고 있을 뿐 내적으로는 철저히 자기 파괴적이라는 성향은 꼭 닮아 있다. 근데 시부야케이는 비폭력적이고 정치적 성향도 없다.

그 뿐인가, 히피와 LSD, 하우스와 엑스타시 처럼 마약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도 없다. (항상 언더문화의 부록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마약이건만) 그럼 대체 뭔가? 말 그대로 언더문화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언더문화였던 괴물 같은 변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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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의 원인은 그 출발 시점의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의 언더문화를 보면 대부분 억압받고 위축된 젊은 세대들의 과격한 반항적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주역들은 노동계층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하지만 시부야케이의 경우 (서구보다 덜 반항적이고 순종적인 일본인들만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억압된 노동계층의 반란이라기 보다는 좀더 여유 있고 학구적인 중산층들이 시작의 발단에 서있었다. (그렇다고 선택된 엘리트들의 세련된 선택이라는 반 민주주의적 발언은 아니다.)

그리고 철학과 인문적 소양을 발판으로 한 이들의 문제는 마케팅 혹은 프로파간다적 미디어 세뇌를 무기로 한 주류문화에서 어떻게 탈출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60,70년대 반전을 외치며 정치적 선상에 서있던 우두스톡의 무리들과 정 반대편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져 물질/소비주의 사회의 실체를 바라보려 했던 벨벳언더그라운드와 앤디 워홀과 더 닮아 있다.
 
시부야케이는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핵심인 소비주의 사회를 끌어 안으며 자신들이 어릴 적 즐겨 듣던 음악들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글로벌리스트 소비 사회의 무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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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는 어디까지나 일본이 지향했던 미국 경제 모델이 발판이었고 그들의 현실을 힘들게 만든 주체임에도 불구 하고 그들은 반감은커녕 오히려 품에 안았다. 소비주의의 특성인 소비하고 수집하고 꾸미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열려있던 현대 일본 문화의 특징을 보면 시부야케이는 물론이고 무라카미 타카시, 요시모토 나라와 같은 걸출한 팝 아티스트들이 터져 나온 맥락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더욱 극적인 것은 그들이 찾아낸 표현의 탈출로가 그들이 소싯적 즐겼던 60년대 유럽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세계의 음악적 흐름이었던 샘플링 컬쳐가 만나 하이브리드적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동시대 흐름이었던 힙합, 하우스, 테크노와 그들의 향수 속에 존재했던 프렌치 팝, 이탈리안 사운드 트랙, 보사노바, 매드체스터, 아노락팝, 크라우트 락 등의 여러 요소들이 만나 일종의 짬뽕 세레나데를 일구어 냈다.) 열거한 음악 종류들을 보면서 현기증이 날 듯 하듯이 시부야케이는 어중간한 크로스오버의 레벨을 넘어선 새로운 변종이었다. (이는 1920년대 디자인의 극단을 보여준 다다의 브리콜라쥬와 패스티시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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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민족주의, 특정문화와 같은 절대적 도그마가 사라지며 '정체성'이란 것은 투명하게 사라졌고 테크놀로지, 모더니즘, 팝 아트가 묘하게 혼재된 아주 인공적이고 플라스틱한 레트로 퓨처리즘을 탄생 시켰다. 특히 이 인공적이고 플라스틱한 측면은 소비주의가 내세우는 '세계화' 혹은 글로벌리즘과 꼭 맞아 떨어진다. 세계화의 특징은 특정 문화에 영향 받지 않고 어디에나 침투할 수 있는 '무정체성'이다.

미국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주체로 유럽피안적인 미학을 가미한 시부야케이의 동양적이지도 서양적이지도 않은 사운드의 무정체성은 현재(혹은 그 시대) 글로벌리스트 소비사회를 그대로 비춰주며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사운드 트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식 소비 사회의 찬양이라고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 같다. 오히려 하이테크, 기업, 미디어, 소비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동시대적인 현실의 감수성을 그대로 담아낸 헬로키티의 괴기한 거울과 같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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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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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로 짧게 나마 다루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Digging이라고 하는 수집의 미학이다. 숨어있는, 혹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내는 DJ의 필수 요소로 DJ Shadow와 DJ Spooky와 같은 턴테이블리스트들이 그 대명사로 꼽힌다.

     시부야케이가 샘플링 컬쳐를 껴안은 만큼 이 디깅의 미학도 빛을 보았다. 옛 유럽 음악들과 새로운 인디 밴드들의 사운드의 소개는 물론 일본에서 들을 수 없었던(그리고 전 세계에서 잊혀졌던) 사운드들이 시부야케이 음악 속에 샘플링 되어 담겨졌다. 저작권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이 디깅의 미학은 시부야케이 아티스트들의 보물 창고로서 그들의 음악성에 있어 절대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다. 시부야의 HMV에서 시부야케이 음악을 찾던 이들의 행위 또한 일종의 디깅이었고 이는 결국 시부야케이라는 용어를 탄생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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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야케이의 죽음 또한 디깅의 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부야케이가 거대한 대중문화 현상으로 떠올랐을 때 미디어는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시부야케이가 가지고 있었던 디깅을 통한 희소성은 사라졌고 인사이더가 되거나 공들여 찾지 않아도 카페나 미용실에 얹혀져 있는 잡지에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쿨한 트렌드 아이템으로 전락한 것이 바로 몰락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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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는 여성 아이콘에 관한 것이다. 이 것 또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우선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상징적 의미 부여라는 점을 뽑고 싶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그룹에서 여성은 귀여움, 섹시함 혹은 아름다움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얼굴 마담의 역할을 전통적으로 행해 왔다. 하지만 그 기괴함을 떠나 카히미 카리에의 철학성과 음악성 그리고 최전선에 나서 코니시 야수하루의 음악에 피치카토 파이브의 그 퍼포먼스/행위적 성격을 더한 당차고 '멋진' 마키 노미야의 모습은 분명 동시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각개약진 하고 있던 여성들과 억압받던 소수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시부야케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에 필적할 만한 아이콘적 위상을 얻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지위 향상에 대한 상징은 있었을지언정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마키 노미야 폰'이라던지 하는 10대, 20대의 지갑을 노린 우스꽝스러운 소비주의적 마케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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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말이 나온 마당에 하는 얘긴데,
90년대 중반 일어났던 일본의 카페 성황 속에 자리잡았던 시부야케이는 이미 상업전선에 합류된 이후의 일이다. 그 시절 잘 나갔던 카페 아프레미디, 엑셀시오르 커피샵(프랜챠이즈) 등의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커피와 보사노바 음악, 미용과 패션 정보 그리고 대화들은 시부야케이 문화의 대중화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럽이라기 보다는 '시부야케이가 지향했던 유럽에 대한 판타지적/페티시적' 성향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유럽지향적 카페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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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미국식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명사인 스타벅스의 일본 상륙으로 다양한 커피들이라는 선택의 욕구는 채워졌지만 결국 승리자는 유럽지향적인 (특히 프랑스 파리) 카페였다.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의 틀을 부수며 사회 진출을 하고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20,30대 여성들과 패션에 민감한 어린 세대를 위해 카페는 커피와 수다 뿐만이 아닌 혼자 커피 한 잔도 즐길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실내 공간감을 더욱 살려주는 음악 그리고 커피와 더불어 다양하고 전문화된 이른바 Café Cuisine이라고 하는 음식의 요소를 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 공간은 '유럽'이 아닌 '유럽에 대한 페티시를 담은 판타지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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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스타벅스나 섹스 엔 더 시티를 통해 느끼는 것은 바로 뉴욕의 정서가 아닌 '자신이 상상하고 느끼고 싶은 뉴요커에 대한 판타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이미 세계화를 특징으로 한 물질/소비주의 사회가 배출해낸 하나의 떳떳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약 5~10년 사이 국내에서도 스타벅스, 브런치 문화와 함께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한바탕 된장 열풍도 겪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누가 스타벅스를 사고 미니 홈피를 시부야케이 음악으로 수놓는 그녀들을 향해 된장녀라 감히 욕을 하고 돌맹이를 던질 것인가? 그 '된장'이란 키워드가 만약 소비와 물질주의와 맞물려 있다면 시부야케이만큼 어울리는 음악도 없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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