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 속에서 갓 나왔는지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의 매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곳은 언젠지 모를 옛 시절의 맛을 변함없이 간직해 온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다.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이리저리 바뀌는 맛보다는 나는 이런 옛날식 강렬한 한 방이 좋다. 오래도록 지켜온 그 깊은 맛.
남대문역 5번 출구에서 시장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눈으로 찾지 않아도 은은히 퍼지는 담백한 향이 발길을 잡아끈다. 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곳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도착한다.
몽글몽글한 김치만두, 보자마자 군침이 돈다. 겉모습도 먹음직스럽지만 무엇보다도 그 동안 맛있게 먹었던 기억들이 뇌 속 깊이 각인된 탓인지 더욱 강렬하게 나를 유혹하는 듯하다. 나는 이 집 만두의 노예나 다름없다.
칼국수도 파는 곳이지만 먹어봐야지 하면서도 막상 가면 늘 만두에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그래서 아직 한 번도 맛보진 못했다. 메뉴판에 적힌 '만두 100개 10만원'이라는 문구는 특히 인상 깊다. 만두나 빵처럼 낱개로 파는 식당 가서 '100개' 메뉴를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무슨 부품 대량납품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이곳 만두의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이 집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이 녀석들은 아직 조리 전인 만두다.
찐 후에는 이런 러블리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낸다. 마치 예쁜 조형물에 생명이 깃든 것처럼,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나오는 만두들. 보통 줄이 긴 편이지만 로테이션이 빨라 기다림도 그리 길진 않다. 사실 그 보다도 군침 도는 만두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내 앞에서 만두가 모두 소진되어 살짝 아쉬운 마음으로 잠깐 기다리다가 이내 나오는 찐만두를 첫 번째로 받아가는 순간의 행복함은 짜릿할 정도다. (너무 좋아서 한 두 번 "예에~"하고 소리쳐본 적 적도 있다)
짜잔~ 고기만두.
이곳에서 직접 먹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포장 해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포장만할 때도 조금이 아닌 듬뿍 담아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집이 멀어 자주 오기 힘들다면, 한두 번 더 즐길 수 있도록 넉넉히 포장해 가길 추천한다.
왜. 나. 면.
어느 날 밤, 하얀 토끼를 쫗아가며 무스와 도도, 애벌레와 마주하고, 아기 돼지와 카드 병정들이 줄지어 나타나는 그 기묘한 밤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날 밤 높은 확률로 그 만두가 떠오르며 잠 못 이루는 장면이 연출될 수 있다. (위는 본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판타지스럽게 표현한 이미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만두의 모습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직도 입 안이 기억하고 있는 듯한 그 맛.
내 몸과 정신이 함께 기억하며 나를 안달 나게 만드는 그 맛. 다 식어도 여전히 맛있는 만두, 다음 날 먹어도 변함없는 만두.
피처링 찐빵, 예쁘게 생겼다 (먹어보지는 못함, 정말 항상 만두만 먹으니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저 김... 내 상상 속에서는 마치 해무처럼 어마어마한 스케일로 여운을 남긴다. 날씨가 추워지니 가메골옛날손왕만두가 자꾸 생각난다.
요즘 가끔 내 머릿속에서는 남대문 한복판에 왕만두 판타지가 펼쳐진다. 수많은 왕만두들이 증기를 내뿜으며 둥실둥실 떠다니고, 나는 그 속에서 마음껏 행복을 누리는 기분이다. 한입 베어 물면 따뜻한 속이 터지고, 부드러운 만두피와 어우러진 맛이 가득 찰 것 같다. 하지만 먹을 수는 없다. 향기로운 추억이 입안에 퍼지며 그 순간에 잠시 빠져든다.
이런 날이 있다. 특별한 일도 아닌데 단순한 음식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날이 있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왕만두의 그리운 맛을 상상하며 이 미묘한 갈망을 꾹 참아본다. 남대문이 너무 멀어서 쉽게 갈 수 없는 게 그저 아쉬울 뿐이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가벼운 책가방 하나에, 밤에라도 식사를 할 수 있길 바라며 비행기 앞좌석을 추가 비용까지 들여 구매했지만, 살짝 먼저 도착한 홍콩발 방문객들 덕분에 출국심사가 두 시간이나 걸렸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특급 열차 라피트 (RAPI:T). 뜻하지 않은 키오스크에서의 카드 결제 오류까지 있어서 포기하고 카운터로 후다닥 뛰어가 출발 3분 전에 가까스로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다.
승강장 내려가기 직전에 있는 화장실까지 급히 다녀온 후 열차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비틀비틀ㅜㅜ).탑승하고 몸을 실은 1분 뒤 바로 열차가 출발한다.
| 니시나리 구
약 40분 만에 신이마미야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오사카 도심까지 택시비가 원화로 약 15~20만원이라 급행열차를 탔지만 정신없이 달려온 탓에 여유를 즐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 (라피트 편도는 현장 구매 시 약 1,350엔, 12,000원 정도다.)
신이마미역 (新今宮駅)에서 니시나리의 숙소까지는 약 700미터, 10분 거리. 걷다 보니 금세 '도부쓰엔마에(動物園前)' 역 사거리에 도착했는데 어딘가 익숙한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 <실종> 촬영지다. 좌측 파친코가 있는 '한분야' 건물과 우측 '패밀리마트' 사이 철길 뒤로 하얀 '마루한 신세카이점'과 '츠텐카쿠' 타워의 머리, 영화 속 장면이 그대로 펼쳐진 듯한 순간이다
영화 <실종>은 봉준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가타야마 신조 감독 작품으로 어딘가 요즘 한국 스릴러의 감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이한 일본 영화다.
횡단보도 신호등을 기다리며 영화 오프닝의 딱 그곳에서 찍어 봤다. 오사카 배경 영화들에서 봤던 니시나리 스트리트 라이프의 상징 같은 츠텐카쿠 타워를 맞이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구글 지도에서 루트를 미리 확인해 놓았었지만 이렇게 금방 도착할 줄이야. 마치 롤플레잉 게임에서 긴 여정과 삽질을 거쳐 찾아야 할 아이템을 너무 쉽게 찾아버린 기분이다. 원래라면 좀 헤매고 힘들게 찾아야 RPG 감성이 사는 건데, 이건 너무 직진 느낌이라 살짝 허무하기도 하다.
파노라마 식으로 보면 이곳이 꽤 큰 사거리임을 알 수 있다. 왼쪽 중앙에 빛나는 하얀 건물은 오모7(Omo7)호텔이다. 흔히 오사카가 숨기고픈 '슬럼가' 이미지로 알려진 니시나리구 아이린 지역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세워졌다고도 한다. 진위는 관계자들만 알겠지만, 공격적인 마케팅의 호시노 리조트 주식회사가 이 지역에 고급 호텔을 선보인 점은 흥미롭다. 이 지역 특성 때문인지 5성급 호텔임에도 가격대가 꽤 합리적이긴 하다. 관광지인 북쪽의 신세카이 쪽으로는 열려있지만 아이린 지구 방향으로는 밖을 나갈 필요 없다는 듯, 큰 정원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 아이린지구 ((구) 가마가사키)
매우 대략적으로 아이린 지구 행정 구역을 표시해 보았다. 지도에서 중간의 노란색 라인은 코코룸 게스트하우스로 가던 길을 표시한 것. 아이린지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구) 가마가사키 노동복지센터'와 '삼각공원'을 표시해 두었는데, 이 주변이 전 세계 블로거나 유튜버들이 "일본/오사카 최대 우범지대!" 같은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주 방문하는 지역이다.
오사카 최대 유곽인 토비타신치가 아이린지구와 아베노 재개발 지구의 경계를 이루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최근 오사카 엑스포를 앞두고, 토비타신치와 아이린 지구의 흔적을 지우려 한다는 루머가 인터넷에 돌고 있다. 오모 7과 아베노하루카스 300은 이 대대적인 변화를 위한 몸풀기에 불과한 걸까?
1970년대 아이린지구(당시 가마가사키)의 전성기를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이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 전후, 대규모 건설 붐이 일어나며 일본 전역의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던 시기. 이 때 가마가사키 노동복지센터가 건설되었으며, 일러스트의 좌측에 보이는 모던 형식의 건물이 바로 그 센터다.
영화, <실종>에서 묘사 되었던 삼각공원 (하기노차야 미나미 공원)의 노숙자들을 위한 배급 모습.
영화 <실종>에서 묘사된 삼각공원(하기노차야 미나미 공원)은 노숙자들을 위한 배급 장면으로 등장한다. 이곳은 한때 활기찼던 일용직 노동자들이 몰락하며 노숙자로 전락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카마가사키 포럼'의 자료를 참고해보면 저 이이린 지구의 간단 역사는 아래와 같다.
- 1945년 전후 복구: 전쟁 이후 가마가사키는 빈민가로 급속히 재건됨 - 도야마촌 형성: 1950~70년대, 전국에서 몰려든 노동자들로 도야(저렴한 숙소)와 판잣집이 가득 참 - 1970년 엑스포와 건설 붐: 엑스포 준비로 노동자들이 몰리며 아이린 센터가 설립 - 1980 버블 경제의 붐과 갈등: 1980년대 후반, 버블 경제로 노동 수요가 폭락하며 폭동과 갈등이 격화됨. 90년대는 대규모 폭동도 발생. - 현재: 버블 붕괴와 변화: 경제 침체, 노동자 고령화와 함께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되며 현재 자연스러운 제트리피케이션을 겪는 중
| 일본 같지 않다는 일본 속 일본 같지 않은 숙소
숙소가 있는 도부츠엔마에상점가와 산노 시장으로 가는 길, 처음 접하는 분위기에 살짝 긴장감이 감돈다. 골목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라오케 소리 덕분에 드디어 이곳에 도착했다는 현실감이 든다.
OMO 7과 함께 고민하다가 로컬 분위기를 체험하고자 선택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레이트 체크인이라 문이 닫혀 있었는데 여기 묵고 있는 빨간머리의 '서양인'에게 도움을 받고 출입한다.
"어? 나 일본에 있는 거 맞아? 이게 뭐야?"
예상과는 달리 늦은 시간인데도 내부는 북적였다. 서양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일본의 전형적인 분위기와는 너무 달라 순간 여기가 일본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어리둥절해하며 서 있던 순간, 한 일본인 스태프가 유창하게 영어로 친절히 안내해 주셨다. (보통 일본에서는 영어로 물어도 일본어로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낙후 지역이라는 니시나리에서 마주친 첫 일본인이 영어를 이렇게 술술 한다고???). 일본에서의 첫 저녁에 일본인과 영어로 “나이스 투 밋츄, 마이 네임 이즈 땡땡땡,” 같은 형식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이름은 후유 상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배가 고팠기에, 그런이런저런 분위기는 잠시 뒤로하고 방에 짐을 재빨리 풀고 뭘 좀 먹으러 나섰다. 나가는 길에 퇴근 중인 후유상을 다시 마주쳤다. 혹시 이 시간에 문 연 곳이 있을까 물으니, 구글맵으로 바로 '토비타 식당'을 찾아 추천해 주셨다.
처음에 ‘토비타’라는 이름 때문에 잠깐 ‘응?’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오사카 최대의 유곽 지역이라는 ‘토비타신치’가 있기 때문. ‘飛田(토비타)’라는 이름의 정확한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관련 역사를 찾아보면 주로 토비타신치와 현재는 없어진 토비타 철도 정류장(토비타 테이류죠) 정도가 나올 뿐이어서, ‘토비타’는 보통 이 유곽 지역을 지칭할 때 자주 사용되는 것 같다.
| 식당으로
암튼 숙소에서 약 240미터 3분 거리라 구글맵 보며, 영업 종료 후 시간 대 니시나리 가라오케 아케이드의 분위기를 살피며 식당으로 향한다.
영화 <실종>의 오프닝인데, 영화 속에서는 아마도 이 아케이드 안 '타마데'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촬영스폿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식당으로 가는 길도 꽤나 비슷한 느낌이 나서 영화를 기억하며 거닐었다. 처음 도착했던 9시 30분 즘에는 꽤나 사람들이 많았는데 10시가 넘으니 인적도 좀 없어지고 거의 모든 가게들이 다 닫아 거리엔 적막이 흘렀다.
| 토비타 식당 모습과 메뉴
슬럼가 옆이라 그런지 여기는 대부분 허름한 느낌의 가게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 느낌인데, 길가 끝 코너에 위치한 이 식당은 외관이 꽤나 깔끔했다. 외관 모습을 보니 나름 신식인 것 같다. 간판의 가게 이름 옆엔 메시(밥), 톤지루(돼지고기 된장국)라고 적혀 있는 곳을 보니 시그니처 메뉴인가 보다. 일본식 가정식 느낌이 아닌가 싶다.
문 열고 들어가니 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카운터와 문 없이 트인 좌식 자리로 구성된 매우 익숙한 구조와 느낌의 이자카야 같은 공간이다. 굉장히 깔끔했다. 전혀 슬럼가 근처의 식당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이 지역에 묵게 되어 깔끔한 곳이 가고 싶다면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진 몰라도 좌식 좌석에 가족으로 보이는 한 팀만이 단란하니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 자리로 안내받았다. 아이스크림도 전문인지 외부와 내부에도 아이스크림 관련 포스터들이 많다. 달콤하니 사르르 녹아들 것 같지만 혈당 안정화를 위해 난 패스.
언제까지 영업하는지 물으니 자정 (12시)까지라고 한다. 사진 좀 찍어도 되냐 물으니 "이 쓰요 ↘ ↗ ~" 하며 흔쾌히 승낙하신다. 과하지 않고 깔끔하니 적당히 거리 있게 친절한 느낌? 이 분의 말투가 갠적으로 꽤나 좋았다. I의 입장에서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외국인들도 꽤 많이 돌아다니는 곳이라 그런지 영어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대표 메뉴인 1번 돼지고기 된장국을 필두로 전반적으로 기본적이고 서민적인 일본 경양식과 가정식이 주를 이루는 느낌이다.
나폴리탄도 메뉴에 있어서 살짝 끌렸지만, 더 눈에 들어온 건 7번의 '레바니라'. 이번 오사카 여행에서 일본식 중화요리들도 맛보는 게 중요 목표였는데, 그중 하나가 니라레바(간부추볶음)였다.
오사카로 오면서 비행기에서부터 동네 맛있는 중화요릿집을 어떻게 찾아볼지 고민했는데, 여기에서 딱 그 메뉴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암튼, 순간 헷갈려서 "니바레라"라고 주문했더니 바로 알아듣고 "레바니라, 네?" 하고 되묻는다. (레바니라, 니라레바… 같은 의미이니, 내가 ‘니바레라’라고 해도 바로 알아듣는 듯 ㅋ) 워낙 대중적인 메뉴다 보니 어떤 발음으로 말해도 금방 알아듣는 것 같다. 정식 세트를 추천해 주길래 그렇게 주문했다. 단품들이랑 정식은 한 100~200엔 차이 정도로 예상된다.
당시 배고픈 나로서는 밥까지 나오니 오히려 좋았다. 현금 결제고 영수증은 버린 후라 저 800엔의 가격이 세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여행 전 들었던 니시나리 지역 치고는 아주 싸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근데 그마저도 조금 (좁쌀만큼) 사치하는 느낌이랄까? 오사카 내 다른 관광지와 비교하면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가게도 이렇게 잘 관리되어 있는데 저 가격이면 혜자라고 본다.
| 가정식 한끼
우왕~ 맛있겠다! 먹기도 전부터 숙주의 아삭함과 저넘들을 싹 돠 스까 먹을게 기대된다. 비율 대비 밥이 많긴 하다.
간판에까지 언급된 시그니쳐, 돼지고기 된장국도 옆에 있다. 고깃국물의 특유한 담백함과 쫍쪼름이 어우러진 솔직한 맛이다.
특별하진 않지만 '와카코와 술'에서 와카코가 "풋, 슈~"하며 담백하게 음미하는 그 느낌이 떠오른다. 다만 이건 술이 아니라 장국일뿐.
한 상차림으로 샐러드, 무조림, 단무지가 함께 나온다. 무우 오른쪽에 놓인 돼지고기 부위(정확한 부위는 모르겠지만)는 쫄깃하고 아득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오사카 여행 중 유일하게 맛본 일본식 단무지 ‘닥꽝’도 소소하게 좋았다. 한국의 단무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달짝지근한 일본 가정식 백반 한 상을 즐기는 느낌이었다. 결과적으로 맛있게 잘 먹었다.
레바니라는 구운 간의 퍽퍽한 식감을 야채들의 아삭함이 적절하니 '이븐'하게 중화해 준다. 역시 밥과 함께 국물, 그리고 비빔의 민족답게 다른 반찬들을 이것저것 함께 섞어 먹는 맛이 좋다. 일본 특유의 단짠 조화가 이 요리에도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 간부추볶음, 레바니라? 니라레바?
'레바니라 レバニラ ' 혹은 '니라레바 ニラレバ '는 돼지나 소의 간과 부추를 소금, 간장 등으로 간단히 볶아낸 일본식 중화요리다. 한국의 짜장면이나 짬뽕처럼 중화요리가 일본식으로 재해석된 사례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군만두, 라멘, 나가사키 짬뽕 등). 특히 레바니라는 꽤나 대중적이며 서도 '간' 때문에 그런지 스태미나 음식으로 인식되어, 꼭 중화요리 식당이 아닌 이런 일반 식당에서도 제공할 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레바’는 ‘간’을 의미하는 일본어 표현으로, 영어의 ‘liver’에서 온 단어이고, ‘니라’는 ‘부추’를 뜻한다. 일본인들조차도 ‘레바니라’인지 ‘니라레바’인지 명칭을 왔다리 갔다리 하게 된 이유는 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만화 <천재 바카본>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주인공인 아빠 캐릭터가 항상 명칭을 반대로 부르는 경향이 있다고... 그래서 니라레바를 레바니라로 부름)
레바니라 관련은 한 두 개가 아닌 것 같지만 만화의 관련한 한 에피소드를 간단히 번역해 보면:
단순히 이름만 바꿔 부르는 게 이 만화의 웃음 포인트였는데, 이 장난이 크게 인기를 끌며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레바니라'와 '니라레바'를 혼동하게 되었고 지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두 명칭이 뒤섞여 사용되는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2019년에 일본에서 “당신은 니라레바파인가, 레바니라파인가?”라는 주제로 전국 설문조사도 진행된 적이 있다. 총 555명(?)이 참여한 이 설문에서 압도적으로 ‘레바니라’파가 승리했다고 한다. 원래 정식 명칭은 ‘니라레바’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레바니라’가 대중에게 더 익숙해진 것. 이제는 ‘레바니라’도 표준 표현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오사카 지역에서는 거의 ‘레바니라’라는 명칭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라고 한다.
매체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뜻밖의 깔끔한 니시나리의 한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와 목표 중 하나였던 일본식 중화요리를 만족스럽게 즐기고 나서 다시 한번 식당 외관을 찍어본다. 오사카에서의 첫 일정.
생각해 보니 이 모든 게 게스트하우스의 후유상 덕분,
"신세가 많았습니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 니시나리, 밤 11시
밥 먹고 숙소 가려니 애써 온 이 밤이 뭔가 아쉬워 이곳 아케이드 명물인 가라오케 바에 가보려고 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신이마미역에서 내려올 때 기억이 났던 카라오케 바가 하나 있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겨 본다. 방문한 동네의 로컬 느낌을 느끼기에 외진 이자카야나 가라오케 바 같은 곳만큼 적절한 곳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