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터에 들어선 음식점들은 항상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애매한 주말 오후건 퇴근 후건 하루 언제라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던 위치. 그 자리에 최근 조선호텔의 중화요리 브랜드인 호경전 서초점이 들어섰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홍연의 전신인데 이 곳은 캐쥬얼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오픈 당시 먹었던 단품이 맛있어서 이번엔 코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 내부
룸 예약이면 코스 기본이라 2층으로 이동. 원하면 1층 홀 공간에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참고로 2층은 화장실 가기가 편하긴 하다.
2층은 모두 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테리어는 신세계점 보다 고급스럽다.
2인 예약으로 배정 받은 방. 프라이빗 하니 얘기 나누기 딱 좋은 공간이다.
| 메뉴
코스메뉴는 가격순으로 심연 > 천하 > 담우 > 화현이 있다.
물론 모두 좋은 식재료를 써서 맛있겠지만 일단 <화현>은 일반 중화요리집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모둠 느낌이 났고, <담우>는 그 날 컨디션으론 왕새우와 누룽지가 딱히 당기진 않았다.
<심연>은 가격도 워낙 쎄고 후식까지 가짓수가 8개라 다 못 먹을 것 같은 부담이...
결국 <천하> 코스를 골랐다 (11만 원). 광동식을 참 좋아하는데 '광동식 닭고기 냉채'라는 표현도 맘에 들고, 홍콩이나 중국에 가면 무조건 디폴트로 먹는 가재의 이름이 보여 좋았다 (영어를 안봄 ㅜㅜ). 그리고 그나마 이 정도면 소식좌들이 힘좀 내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7개.. 그래도 남길까 봐 꽤 걱정 많이 했음)
참고로 런치/디너 코스는 동일한 이름들로 제공되는데 디너에서는 메뉴의 형식을 더 고급스럽게 변형을 주었다. 대신 가격은 UP. 위 이미지는 천하코스의 디너 버전이다.
| 식사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극적이지 않은데,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양도 적당하니 좋았다.
담백했다라는 말이 어울릴 듯
| 사이드 반찬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짜사이와 땅콩이 나오고 중간에 단무지가 자리 잡는다. 인당 나오고 양이 과하지 않아 좋다. 모자라면 언제나 더 달라고 하면 되니. 맛은 크게 특별하진 않았다.
| 광동식 닭고기 냉채
Cantonese Style Chicken Appertizers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보통은 퍽퍽해 외면하는 닭가슴살이지만 저온 수비드로 부드럽게 익힌 살은 촉촉했고 기름기 없는 담백함 위로 산미가 얹혀 입안이 가벼웠다. 입 안에서 탁 터지는 토마토.
재료도 상태가 좋았고 첫 모금부터 온도가 적절해 코스의 첫 문을 차분히 열어 주었다. 맛만 보려다 어느새 접시를 비웠다.
| 지존 갈비 계절 야채수프
Steamed Rib and Seasonal Vegitable Soup
수프가 나왔는데 광둥식 향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던 디쉬였다. 한국으로 치면 갈비탕 같은 건데, 맑지만 우리나라 갈비탕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깊은 육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짠맛이 덜한 대신 은근한 감칠맛이 있다.
더블보일 방식 (맞겠지?) 때문에 맑고 진한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메뉴에 왜 '至尊(지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고기 한 입 배 어물면서 이해가 되었다. 부드럽다. 이것도 전부 꿀꺽.
| 간장 마늘 소스 바닷가재찜
Steamed Lobster with Garlic Soy Sauce
광동식 해산물이라길래 메뉴의 '가재'란 단어에만 홀려 홍콩/중국에서 늘 먹던 갯가재로 인식해 버렸는데 서빙된 접시 위엔 바닷가재(랍스터)가 놓여 있었다 (메뉴를 제대로 안 본 나의 착각). 암튼 간장·마늘을 살짝 졸여 부어 낸 맑은 갈색 소스에 홍·청고추 링이 흩뿌려져 있었다.
랍스터 살은 통통과 탄력 사이의 좋은 밸런스. 소스는 짠맛보다는 감칠과 달큼함이 얇게 겹쳐 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고추의 미세한 매운기가 뒤따라와 기름기를 풀어준다. 식재료가 깔끔하게 빛난다. ‘갯가재와의 착각도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저것도 꿀꺽, 이미 배가 불러온다 ㅜㅜ
TRIVIA: 가제/새우 류 중에서는 (Mantis Shrimp) 오줌싸게가제라고도 불리는 갯가제를 제일 좋아한다. 껍질 까기가 귀찮은 놈인데 그 이후 먹는 살의 만맛이 부드러우면서 강한놈이다. 주로 홍콩과 중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 칠리소스전복
Fried Abalone with Chili Sauce
중화요릿집에서 흔히 만나는 칠리소스인데 익숙한 탕수육의 식감을 가진 그 보호막 껍질을 씹으면 단숨에 부스러지고 그 안에 숨어있던 탱글하고 쫄깃한 전복살이 씹힌다.
어떻게 보면 코스 메뉴 중 제일 자극적인 음식이 나온 셈인데 그마저도 얌전한 맛이 좋다. 물론 아쉬운 건 이미 전 단계에서부터 찾아온 포만감이었다. 맛있었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ㅜㅜ
| 자연송이 한우 안심
Sauteed Korean Beef with Black Pepper Sauce and Pine Mushroom
메인이 나왔다. 수프에 있었던 소고기는 미국산이지만 메인에 나온 소고기는 한우다. 둘 다 연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다. 같이 나오는 송이버섯은 언제나 스펀지처럼 토해내는 즙이 맛있다.
메뉴판에 쓰인 대로 ‘국내산 한우’라는데 내 얄팍한 혀로 미국산·국내산 차이를 가늠할 능력은 없다. 다만 두툼한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니 근섬유가 곱게 풀릴 만큼 부드러웠고 소스는 블랙페퍼와 굴소스 어딘가의 향이 드는데 짠맛이 강하지 않아 고기 본연의 맛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는다.
| 식사: 짜장면과 짬뽕
어디서든 중식코스를 먹으면 항상 머뭇거리는 순간이다. 짜장면과 짬뽕, 혹은 볶음밥, 뭐 먹지? 서버님은 바쁘시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손님으로서 항상 용서해 주길 바라는 시간이다.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로 티키타카를 잠시 하다가 서로가 먹을 것을 정하고 결국 짜장면과 짬뽕을 시킨다 (볶음밥도 약간 떙겼는데 서버분은 짜장면을 추천하셨다). 어머니는 여기 짜장면을 몇 번 드셔보신지라 내게 양보하셨다 (근데 둘 다 맛있음).
짬뽕은 건더기가 참 실하다. 그리고 중요한건, 맛.있.다.
짜장면은 면발의 맛이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푸짐한 토핑들로 인한 식감이 참 좋다. 요즘 동네 짜장면들이 맛이 없어지는 기후가 있는데 여긴 참 맛있는 짜장면. 식후 음식으로 나오는대도 불구하고 얹힌 식재료들이 메인만큼 푸짐한 느낌이어서 더욱 좋았다.
| 디저트
마지막 디저트는 망고사고 (芒果西米露, Mango Sago)였다. 내가 제대로 느낀 게 맞다면 망고의 진한 향에다가 코코넛 향이 살짝 감싸서 앞선 중국식 음식들 특유의 기름기의 여운을 산뜻하게 씻어주는 역할이었다.
| 마무리
꽤나 괜찮은 평일의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있는 점심이었다. 이 날 든 생각은, 어머니가 나이가 계속 들어가다 보니 프라이빗한 룸에서 나누는 사적인 얘기 분위기도 좋지만 홀에서 사람들이 뭘 먹나, 저건 또 무슨 음식인가 하는 그런 타인의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더 좋으신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또 가게되면 다시 홀에 자리잡아 보아야겠다.
| TRIVIA.2: 배달도 된다!
언제부턴가인진 모르겠지만 배달도 된다! 나이 때문에 이동이 힘든 어머니가 참 좋아하신다. 베달로도 먹을 수 있다고.
배달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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