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는 거의 사라진 레트로 네온이 마카오의 밤공기 속에서는 여전히 반짝인다. 춥진 않아도 한겨울이라 습도는 다소 잦아들었지만 거리를 지날 때면 특유의 눅눅한 기운이 아직 피부에 살짝 감긴다. 세나두 광장에서 걸어서 5분, 시계는 밤 9시를 향해가고 있다.
밤 9시 · 행복의 거리
이곳은 Rua da Felicidade—‘행복의 거리(福隆新街)’—. 19세기엔 매춘·아편·도박이 뒤엉킨 최상급 홍등가였지만 지금은 마카오 정부의 '보존+재생'에 의해 보행 전용 거리와 단장된 외관으로 되살아난 관광특구다. 옛 사창가 건물은 이제 식당, 간식집, 기념품 가게로 변신해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노란 가로등 아래 녹청색 목문-셔터와 종이등이 이어지는 거리 끝에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과 식당이 서로를 마주 본다. 왼편은 영화 <도둑들> ·<2046>등의 촬영지로 유명한 산바호텔 San Va Hotel(건물 1873 ↠ 여관 1930), 오른편은 오늘의 목적지 - 1903년 개업 노포, Fat Siu Lau(팟시우라우)다.
| 레트로 네온과 외관의 첫인상
이 거리에서 팟시우라우의 레트로 네온 간판은 단연 눈에 띈다. 초서체로 써진 佛笑樓(불소루)는 '부처의 미소가 깃든 집'이란 뜻. 한국의 중화요릿집처럼 '루'자로 끝나는 건 이곳이 3층짜리 누각이기 때문이다. 시그니처 메뉴인 비둘기를 형상화한 이미지도 함께 붙어 있다.
Rua de Felicidadae (거리) 방향의 입구. 광둥 지방에서 흔히 보이는 3층 상가주택 파사드에 중국 기와, 포르투갈식 아치, 철제 발코니 등이 층층이 얹혀 있다. 유럽과 중국 감성이 한눈에 읽히는 재미있는 외관이다. 행복의 거리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가졌다.
골목 방향(Travessa de Felicidade) 입구다. 중국식 기와를 얹은 입구는 옛 모습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의 팟시우라우 모습 ❘ 출처: macauantigo.blogspot.com
원래 근처 Matadouro 골목에서 최초 개업했으나, 이내 곧 손님이 많아지며 이 거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나는 비둘기 구이를 먹으러 이 곳에 왔다
어릴적 홍콩에서 비둘기구이를 맛본 기억은 흐릿하지만 의외로 꽤 맛있었다는 인상만은 또렷이 남아 있다. 이번엔 '정통식'이라 불리는 팟시우라우에서 그 기억의 실체를 다시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미지의 포털처럼 느껴지는 녹청색 목문을 밀고 들어가려는 순간, 안쪽에 계시던 종업원 한 분이 문을 먼저 열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식당의 첫인상이 좋다.
| 실내 홀 풍경
실내가 잘 보이는 가장 안쪽 끝자리에 앉았다.
전통 있는 식당답게 연세 지긋한 종업원들은 모두 정장 슈트를 단정히 갖춰 입고 있었고 미소 가득 친절했다. 혼자 방문한 손님이라 조용한 구석 자리에 안내되었지만 오히려 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라 마음에 든다.
입구에서 주방까지 이어지는 기와 처마 아래, 아치형 문과 스터코 벽이 외관의 중국·유럽 요소를 끊김 없이 실내로 연결한다. 100년의 시간을 ‘박제’하지 않고도 원형을 유지한 채 시대에 맞춰 꾸준히 손질해 온 흔적이 곳곳에 베어 있다. 또한 의자마다 씌운 빨간 산타 커버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계절감까지 조용히 환기시킨다.
| 메뉴 : 120년 레시피 vs 마카오 퓨전 메뉴
마카오‑포르투갈 퓨전 요리로 잘 알려진 Fat Siu Lau지만 간판 메뉴인 ‘석기식 비둘기 구이(石岐燒乳鴿)’만큼은 100년 넘게 이어진 정통 광둥식 조리법과 품종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4대째 가문이 이어온 특제 레시피가 더해진다. 조리 방식은 새끼 비둘기를 마리네이드에 재운 뒤 숯불에 구워내는 것으로 Fat Siu Lau에서는 20~25 일령 비둘기를 사용한다고 한다. 이 시기의 비둘기는 살이 연하고 풍미가 깊다.
석기·주하이·마카오 지도
이 요리는 광둥성 중산시 내의 ‘석기(石岐)’ 지역에서 유래했다. 인건비와 토지 비용이 증가한 중산 시에서는 현재 품종 유지를 위한 종묘 관리를 맡고, 사육과 출하는 인접한 주하이(珠海) 시로 이관하여 효율적인 공급망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을 유지하되 현실적 여건에 맞춰 구조를 유연하게 조정한 사례다.
비둘기 요리는 새끼 비둘기를 의미하는 '스쿼브(Squab)'라는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 Sugnature Roasted Pigeon (Squab)
Fat Siu Lau의 대표 메뉴에는 비둘기 구이 외에도 커리 크랩, 아프리칸 치킨, 포르투갈식 덕 라이스, 매케니즈 폭찹 라이스, 양고기 요리 등이 있다. 광둥 전통 위에 포르투갈의 풍미가 얹힌 매케니즈 요리가 자연스럽게 포개지며 마카오 퓨전 식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100년 넘게 미식의 도시에서 명맥을 이어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비둘기 외 메뉴들도 경험해 보고 싶다.
티 메뉴
비둘기구이와 더불어 레몬과 서브되는 따듯한 차를 주문했다. 17세기부터 내려온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ères) 브랜드의 프리미엄 홍차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2천 원 차이밖에 안 났는데 마셔볼걸 싶다. 암튼 따뜻한 차는 특히 중국요리와 궁합이 좋은 것 같다.
출처: 구글지도 리뷰
그리고 이 날 모든 테이블에 수플레가 놓여 있던 것이 눈에 띄였는데 난 혼밥에다 소식좌라 시키지 못했다. 매우 아쉬웠다.
| 투박하지만 클래식, 테이블 세팅
투박한 듯 과시 없이 클래식한 테이블 세팅이다. 마카오가 가진 다중적 문화 구조와 어울린다.
물티슈와 비둘기 구이를 먹기 위한 비닐장갑. 홍콩과 마카오는 물티슈는 물론 냅킨 자체를 주지 않는 식당들이 많은데 여기는 로고가 찍힌 커버까지 따로 만들어 나름 '노포다운 격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격은 그만큼 노포 프리미엄).
매케니즈 식당을 돌며 공통적으로 느낀 건 식전 빵의 퀄리티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쓸데 없는 기교 없이 유럽식 기본기에 충실하면서도 묘하게 옛스러운 클래식 풍미가 입맛을 단단히 잡아끈다.
기름진 비둘기 구이를 대비해 주문한 따듯한 차이니즈 티까지 세팅 완료. 이제 메인 요리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 비둘기 구이 등장
레몬 조각과 청경채 위에 얹혀 나온 비둘기구이. 머리가 통째로 붙어 있는 모습에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 다시 떠올랐다. 크기는 작지만 단단하게 구워진 껍질과 윤기만으로도 탱탱한 식감이 전해진다. 야무져 보인다는 말이 어울린다.
신기해서 요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보기도 했다. 근데 사진 찍을 여유가 없다. 저녁 9시가 넘은 만큼 난 배가 고팠다.
비닐장갑을 끼고,
자, 어느 부위부터 맛볼까?
너부터다.
비둘기의 별미는 '뇌'라고 들었다.
머리를 ‘와작’ 깨물자 얇은 껍질이 얇고 크리스피한 과자처럼 바삭 부서진다.
안쪽에서 드러난 하얗고 작은 뇌를 쪽! 빨아먹었다. 홍어애와 비슷한 크리미 한 질감—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호기심을 채우기엔 제격이다(개인적으로 크리미 한 식감은 별로여서...).
특별 부위를 시식했으니 지금부터 본 게임에 들어간다. 살코기 타임.
가장 통통해 보이는 허벅지부터 한입 베어물었다. 바삭한 껍질은 캐러멜 코팅처럼 달짝지근한 로스팅 향이 나면서 ‘탁’ 깨지고, 속살은 닭과 오리 사이 어디쯤의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공존한다. 육즙이 톡 하고 터지며 감칠맛이 입안을 채운다.
첫맛이 예상보다 좋아 잠시 사진 촬영은 잊었다. 특히 껍질이 매력적이다. 가슴살, 날개, 목살까지 골고루 뜯어보니 닭고기처럼 부위마다 매력이 달랐다. 어느 하나 거스를 것이 없다. 특히 목살은 탱탱해 손으로 들고 뜯기 딱 좋다.
기름기가 살짝 느껴질 때마다 청경채와 식전 빵, 뜨거운 차를 곁들이니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된다. 조합이 좋다.
비둘기구이 맛 삼매경에 빠져 먹다 보니 어느덧 한 피스밖에 남질 않았다. 이제야 정신 차리고 사진을 좀 찍어봤다.
마지막 조각까지 바삭·촉촉·쫄깃·달짠의 균형이 흔들리지 않는다. 포만감에도 불구하고 더 먹고 싶은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여행 마지막 날 저녁에 예약해 둔 또 다른 레스토랑의 비둘기 구이가 남았으니—오늘은 여기서 만족하기로.
| 식당을 나와서
만족스럽게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시계는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 있었다. 마감 임박 시간임에도 눈치 주지 않는 종업원들의 태도에서 느껴지는 여유 덕분에 마지막까지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Felicidade 골목(좌)과 거리(우)가 교차되는 지점에서의 뷰.
가격 & 만족도
비둘기구이: 138 MOP(약 24,000원)
현지 기준으론 다소 ‘프리미엄’이지만 국내에서 치킨 한 마리를 더 비싼 값에 먹는 걸 떠올리면 고급 식재료 + 전통 레시피 + 숯불 조리를 감안해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카오 여행 최고의 한 끼”로 남았다.
| 마무리 : 식후 산책, 한 밤의 마카오 반도
Rua da Felicidade
배부름 뒤에 또 하나의 행복이 있다면 산책이다. 멀지 않은 호텔까지 마카오 페닌슐라의 매력적인 밤 풍경 속을 걸어본다.
San Va Hotel
식당 바로 맞은편 SanVa 산바 호텔 외벽에 영화 <이사벨라>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코타이 대신 반도-타이파- 콜로안을 위한 마카오 4박을 하게 만든 영화다.
영화 <이사벨라> 포스터
중국반환 전의 이야기를 다뤄 마카오판 <중경삼림>이라고도 불리지만 두 영화의 결은 아주 다르다.
언제나 매력적인 레트로 네온과 옛 흔적들
Tak Seong On 전당포 박물관
신마로를 지나가는 밤버스
Ave. de Almeida Ribeiro ❘ 늦은 밤 텅빈 알메이다 리베이로 에베뉴 (신마로), 끝에 소피텔 호텔이 보인다.
마감 직전에도 서두르지 않는 응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거리 풍경, 그리고 120년 레시피의 비둘기 한 마리.
식당을 나서자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높아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번지며 눈이 부셨다. 시계는 8시를 막 넘겼고, 9:42에 출발하는 후타미가우라행 버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다. 푸른 하늘 아래 도심을 천천히 걷기로 했다.
| 8시, 도심 산책과 안국사 전설
안국사 (安国寺), 사탕유령의 이야기가 있는 곳
걷다 보니 전선들 사이로 고요한 전통 건축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국사(안코쿠지). 임신한 채 사망한 여성이 관속에서 출산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밤마다 사탕을 사러 나온다는 '사탕귀신'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보고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텐진 4초메 버스 정장
30분쯤 걸어 도착한 텐진 4초메 버스 정류장. 그런데 안내판에 버스 시간표가 없다?인터넷에서 봤을 때 항상 시간표가 꽂혀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불안해 진다.
(오른쪽) Showa West Coast Liner 버스 정류장 안내판
아니, 상식적으로 세상 어디 버스가 어느 날은 경유지를 스고 안 스고 하겠냐마는, 1박 3일 같은 타이트한 여행이라 변수는 용납할 수 없다. 불안하게 기다릴 바에 시발점인 하카타 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기로 했다 (터미널 첫 차는 9시 38분).
나카스 풍경
구글맵을 보니 터미널까지 2.3km, 걸어서 약 35분. 1시간 정도 남았으니 나카스 풍경구경하며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드는 생각,토요일인데 사람 많아서 버스 못 타면 어쩌지? 첫 차 못타면 오늘 스케쥴이 다 어그러지는데.
택시 ㄱㄱ!
(전 날밤 이치란에서 줄 서던 악몽까지 더해지며) 정신 차리고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짧은 여행에서 택시는 시간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후쿠오카는 도시가 작아 택시+뚜벅이 조합이 좋다.
chatGPT 이미지 생성
"하카타 바스 타미나루, 오넹아이 시마스!!"
| 9시, 하카타 버스 터미널 도착
가까운 나카스에서 타서 그런지 약 5분 후 9시에 터미널 도착. 건물은 직사각형 평면 공간에세로 이동축은 중앙 에스컬레이터 하나.층마다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돌면 승강장이 번호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동선이라 플랫폼 찾기 쉽다(❗다만 꼭대기인 다이소까지 올라가면 탈출이 어려울 수도).
한국어 안내도 보이는 표지판 - 3층 고속버스 승차장으로 가면 된다
후타미가우라로 가는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쇼와 고속버스 플랫폼은 3층 32번이다. 데스크에서 후타미가우라 행 표를 사려하니 하차 시 내면 된다고 한다.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승강장, 32번.
플랫폼 도착. 내 앞에 한 10여 명 즘 이미 웨이팅이 있었다. 노선표에 정거장 별 하차 시 가격도 써져 있으니 현장에서 참고하면 좋다. Nishinoura-hoikuen-mae ~ Futamigaura 구간 정차는 1,150엔 균일가였는데 지금도 변동 없는 것 같다.
버스 안 풍경
정시에 출발했고 텐진 4초메도 당연히 경유했다. 결국 ‘삽질’이었지만 출발부터 사람들이 꽤 타서 그곳에서 기다렸다면 위험할 뻔했다. 덕분에 바다뷰 창가석까지 앉았으니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간다, 이토시마로
| 9:36 am, 도심을 벗어나
푸르른 하늘
고가에 오르자 아침식사 했던 선어시장회관 근처 하카타 포트 타워의 풍경이 창 너머로 보인다.
세로가 많은 도심을 벗어나니 펼쳐지는 풍경은 점점 느긋한 '가로'로 눕는다. 높고 먼 시야 속에 시골 정취가 서서히 넓어지는 게 좋다.
오른쪽 창가뷰
좌석은 후타미가우라로 갈 때 오른쪽, 도심으로 돌아올 때 왼쪽에 앉으면 오션뷰를 확보할 수 있다. 도로 폭도 좁은데다가 옆 가드레일 밖으로 바다가 거의 맞닿아 있어 풍경 구경 시 몰입감이 좋다.
팜트리 스윙
야자수 풍경과 함께 팜트리스윙 Palm Tree Swing이라는 바닷가 그네 명소도 보인다. 정류장은 자우오혼텐마에 ざうお本店前. 난 오전당일치기라 이번엔 스킵.
고속버스 이동 동선
팜트리를 지나면 내륙 도로로 들어선 후 곧 후타미가우라에 근접한다.
웨스트코스트라이너 고속버스 \ 출처: 나무위키
💡버스 스케줄 Tip:
당시는 오전 9시 38분이었는데 2025년 기준 8시 58분이 첫 차다. 아래 쇼와버스 홈페이지 스케줄 링크로 가서 확인 추천.
* 버스: West Coast Liner (Showa Bus) * 종착역: Ito Eigosyo 행 * 시간표: 평일/주말/공휴일로 나뉨 * 하차: Futamigaura (Meotoiwamae) (Fukuoka Pref.) * 거리/시간: 약 32km, 약 1시간 20분 * 가격: 1,150엔 (편도) * 첫 차: 8:58am (1:38pm 막차) (2025년 기준)
바다 풍경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팜비치(Palm Beach) 정류장에서 내렸다.후타미가우라까지는 600 m남짓이라 설렁설렁 걸어 10 분이면 닿는 거리다.
정류장에 내리면 첫 눈에 보이는 팜비치 랜드마크 사인
토리이·신사 같은 전통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정류장을 내리자마자 첫인상은 살짝 당황스럽다. 뜬금 없는 하와이 감성.
간판 오른편으로 바다위 부부바위가 살짝 보인다
핫도그·치킨 간판까지.
팜비치 정류장에서 한번 쭉 돌아봄
푸른 하늘 밑에 드넓은 바다풍경, 모래사장, 밀려오는 파도에 살짝 울컥했다. 매년 처음 만나는 바다의 풍경은 어디던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다 (전두엽이 많이 파괴되었는지 뭐만 봐도 눈물이 많이 난다).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하얀 토리이와 부부바위.
음식점들은 걷다가 구경한 것들만 몇 개 넣어봤다. 안가본 곳들이니 ㅊㅊ은 아님
팜비치에서 후타미가우라까지 두 정거장 거리다. 가는 길에 카페나 가게도 구경하고, 심심한 도로가 나오면 해변 따라 걸어도 좋다.
| 부부바위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
유목(?)움막
모래사장에서 뒤돌아보니 올가닉한 느낌의 유목 오두막(드리프트우드 파빌리온)이 보인다. 바다와 첫인사를 마쳤으니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저 오두막부터 탐험을 시작한다.
푸르른 꽃과 덩
이 동네 카페 붐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선셋비치(Sunset Beach) 카페에서 지었다고 한다. 바깥쪽은 낮임에도 약간 어둑한 느낌인데 입구 쪽은 초록 넝쿨과 꽃으로 뒤덮여 밝아 보인다.
에메랄드 부표가 매달린 아
왼편 아치에는 판타지 느낌을 자극하는 투명한 부표가 매달려 있는데 RPG 아이템 같아 채집하고 싶은...
조개 모자이크 간
조개껍질과 자갈 모자이크로 된 SUNSET BEACH 문구가 보인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좋다.
내부는 낮에도 약간 어둑하다. 선셋이란 단어를 보니 해 질 녘 무렵이면 훨씬 판타지스럽게 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혼여라 수줍은 셀피 후딱 찍고 다음 관광객들에게 턴을 넘겨준다.
파빌리온을 나와 다시 걷는다. 서핑샵이 있다. 이토시마 지역은 서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던 이토시마 사보 (糸島茶房) 카페 (메뉴를 보니 달달한 것들이 많다). 토리이 때문에 '일본다운 시골 풍경'을 예상했던 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통 하와이안 톤이다.
햄버거 도시락
여행 오기 전 인터넷에서 본 리뷰 좋았던 햄버거 푸드트럭(?) 키친카(?). 보다시피 기동성이 좋아서인지 날씨에 따라 위치가 유동적이라고 한다. 이름은 Itoshima Hamburger Cherir (이토시마 버거 셰리르).
오션뷰 일식
팜비치 인근 몇 안 되는 일식집으로 바다풍경 보며 여유롭게 카이센동을 (하루 세 번도 좋아!) 먹으려 했던 Itoshima Seafood Restaurant (糸島海鮮堂 二見ヶ浦本店). 근데 웬걸, 오전 11시도 되기 전 주차장은 거의 만차에 웨이팅까지. 분위기 보니 부부바위 보고 오면 웨이팅이 더 길어질 것 같아 바로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양식도 이 동네에선 향토 음식이겠거니" 하고
이토시마 햄버거나 하나 포장해 먹는 게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11:07 am, 부부바위 도착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변가 모래사장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다시 올라와 도로/인도 따라 걸어보기를 반복하며 오는 길은 즐거웠다. 팜비치 정거장에서 미리 내리길 잘했다.
내료가는 입구 전경: 전체 샷이 없어 사진 몇 장을 콜라쥬했다
사진 좌측의 돌계단을 내려가 작은 갯고랑을 건너는데 발란스 잘못 잡아 넘어질 뻔. 암튼 부부바위 앞도 이미 사진 찍기를 위한 대기열이 있다. 유독 중국어(만다린)가 많이 들렸다.
웨이팅 안내 표시는 없지만 모두 알아서 선다. 간혹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오랜 시간 사진 찍는 팀도 있었는데 웨이팅 전체가 그리 길진 않아 견딜만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한국 동해안 마냥 역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 사진들도 있던데 이 날은 꽤 얌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 약간 더 가까이 다가간다.
포토타임 찰칵
광각으로도 찰칵
고오쓰 (이키섬 DLC) 바다의 토리이 ❘ 출처: ign.com
막 신비롭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런 느낌의 토리이를 보면 명작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언젠가 꼭 쓰시마와 이키섬으로 고오쓰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적당히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전체 분위기는 이러하다
근처 해변가를 배회하다가 생선구이 칼집 자국 난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독특해 보였다.
충분히 구경했으니 이런저런 샷도 찍어보고,
시간 지나고 보니 사진 찍기 위한 웨이팅도 사라졌다
입구의 돌계단에 앉아 자연과 사람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평화롭다. 물놀이하는 사람들,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좋다.
부부바위 전경
두 바위를 묶은 굵은 시메나와(신성한 새끼줄)는 매년 5월 새로 교체하는데, 길이 30m, 무게는 무려 1톤에 달한다고.
일본을 창조한 신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결속을 상징하며 (둘은 쌍둥이 남매), 혼인-가족 화합 기원의 상징이다.
| 11:57 am, 돌아갈 시간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복귀방향으로 유턴한다.
후타미가우라 앞 공영 주차장이다. 화장실도 있다. 피크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꽉 차 있다. 암튼 시간이 많이 남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하차했던 팜비치 정거장 쪽으로 다시 역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후타미가우라 정류장 표지판
후타미가우라 정류장이다. 참고로 사진의 반달 모양의 청록색 사인은 웨스트코스트 라이너 고속버스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도로가 한국과 반대라서 바다 쪽 정류장은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가는 방향, 그 반대쪽은 후쿠오카에서 오는 방향이다.
사인 밑에는 하카타 버스 터미널 종착행 스케줄이 써져 있다. 종점인 하카타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싫으면 텐진 4번가에서 내릴 수 있다.
| 💡TRIVIA: 버스 정류장 이름의 의미
정류장 이름은 후타미가우라(메오토이와마에)(후쿠오카현) — 二見ヶ浦(夫婦岩前)라고 제법 길게 적혀 있는데 의미는 아래와 같다.
구글지도
후타미 (二見) : ‘두 개의 경치’ → 쌍바위
가우라 (ヶ浦) : 해안·포구
후타미가우라 (二見ヶ浦) : ‘쌍바위가 있는 해안’이라는 고유 지명
메오토이와 (夫婦岩) : 부부바위
메오토이와‑마에 (夫婦岩前) : ‘부부바위 앞’이라는 뜻의 정류장 명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 일본에 후타미가우라 (두 경치를 품은 해안)와 메오토이와(부부바위)는 일본에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이 함께 붙음.
* 사쿠라이 (桜井) : 사쿠라이 신사가 관리 -> 그래서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은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이토시마 시푸드 레스토랑. 11시 59분, 줄이 더 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카이센동을 먹겠다는 여행 전의 상상은 안일했던 것이었다 ㅋ
12시 2분 경의 풍경이다. 이토시마 사보 카페 주차장도 꽉 차있다 (파란 차 한 대는 아직도 있음).
선셋 비치 카페 오두막까지 다시 걸어왔다. 체력이 살짝 떨어지니, 저 구슬도 괜히 영롱해 보인다. 배도 조금 고프다. 그래도 도심으로 돌아가 영화 <후쿠오카>에 나왔던 우동집에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참기로.
| 12:10 pm, 버스 타기 전 사이드 퀘스트
팜비치 정류장 표지판을 보니 하카타행 버스는 1:01 pm 도착이다 (분 단위 설정 ㄷㄷㄷ).
이건 올 때 내렸던 반대 방향 정류장 사진이다. 좌측 아래에 영어로 "PALM BEACH Bus Stop"이라고 쓰여 있듯, 말 그대로 도로 옆에서 그냥 내린다 ㅋㅋㅋ
팜비치 사인
아무튼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마지막 사이드 퀘스트로 팜비치 주변과 가게를 돌아보기로 했다.
팜비치에서 해변가로 내려가는 계단
너무 길어졌으니 그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에서...
| 마무리
짧지만 밀도 높은 오전 반나절이었다. 바다, 신화, 카페, 모래사장, 고속버스 등, 여름 바다를 잘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웠던 후쿠오카 근교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