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김밥이 있다. 소위 ‘마약 김밥’이라 불리는 김밥. 먹을 땐 그냥저냥 했는데 그날 밤 잠들기 전 문득 생각나며 식욕을 자극하는 김밥.
그리고 이번에 처음 맛본 강화도의 서문김밥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 이번엔먹을 때도 맛있었다. 물론 잠들기 전 여운도 컸다.
김밥은 워낙 일상적인 음식이라 파는 곳도 종류도 많다. 그 와중에 이렇게 은은하게 기억에 남는 맛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하다.
그날 오전 10시 반, 강화도의 센터, 강화읍 풍물시장에서 밴댕이 정식을 브런치로 배불~리 먹었다. 소식좌라 사실상 저녁 식사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 상태 찍음.
풍물시장으로부터 도보 20분, 자동차 6분 정도의 거리다. 1.6km
펜션 입실까지 시간이 남아 마트와 박물관을 들르기로 했고, 마침 그 근처에 서문김밥이 있어 줄만 너무 길지 않으면 먹어보자 하고 들렀다.
평일이라 그런지 다행히 인터넷에서 보던 웨이팅은 없었고 오히려 옆 육갈탕집에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배가 부른 상태라 "밤에 좀 출출해지면 먹자"는 생각으로 한 줄만 사기로 했다. “혹시몇 줄부터 주문 가능한가요?” 여쭤보니, 사장님은 웃으며 “한 줄도 됩니다. 편하신 대로 시키세요”라고.
맛만큼 기본 예의와친절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 한마디에 녹아내렸다.
“그럼, 한 줄 부탁드립니다.” “네~”
4,000원에 한 줄 포장. 여긴 포장 전문이라 당연히 은박지에 싸여 나왔다.
검은 비닐에서 꺼내 손에 쥐자마자 느껴지는 갓 만든 듯한 따끈함. 모든 감각을 자극한다. 포만감을 싫어하지만, 결론은 하나 — ‘이건 바로 먹어야 한다.’
방문 예정이던 강화역사(자연사) 박물관까지는 차로 15분 거리, 주차장에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강화역사박물관 바로 옆 강화자연사박물관 쪽 주차장으로 와보니 봉천산을 배경으로 조화롭게 들어선 주택촌의 뷰가 좋아보여 정차하기로 한다.
은박지를 연다.
김밥의 비주얼은 소박하다. 회사 근처 길거리에서 보던 딱 그 옛날 김밥 같은 모습.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자,
“아~ 괜찮네!”
갓 지은 밥, 찰기 있으면서 알알이 씹히는데 특히 간이 잘 되어 있다. 손끝에 살짝 묻는 야채기름(으로 추정되는)의 고소함. 혀와 목, 위장을 부드럽게 감싸는 느낌.
한 줄을 둘이 나눠 먹기에 양도 딱 좋았다. 디저트처럼 먹는 김밥,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포만감에 더한 포만감을 채운 후 강화자연사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을 여유롭게 구경했다.
좋은 첫경험은 늘 선명하게 남는다. 서문김밥도 그렇게, 기분 좋은 기억으로 저장되었다.
‘여행 동안 매일 아침이나 간식으로 하나씩 사 올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여행 중엔 늘 또 다른 좋은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라 결국 실행하긴 어렵다.
서문김밥=출발지점 / 동검도=도착지점
게다가 서문김밥은 동검도 숙소에서 약 20여 킬로, 차로 30~40분쯤 걸리는 거리다.
동검도에서 서문김밥 가는길
여담이지만, 이 구간은 해안도로가 쭉 이어지진 않지만 달리는 내내 강화해협의 수면이 틈틈이 시야에 들어오는괜찮은드라이브 코스다. 마침 꽃도 피기 시작한 시점이라 더 예뻤다.
출처 ❘ 강화군청 공홈
📍강화해협 & 호국돈대길 좋은 풍경과 동시에 격렬한 역사를 가진 이 구간은 강화나들길 제2코스인 '호국돈대길'의 일부다. 강화도와 김포 사이 좁고 긴 바다인 강화해협을 따라 19세기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갑곶돈대 - 용진진 - 광성보 - 초지진 등이 줄지어 위치한다.
강화도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7시, 전등사 앞에서 산채정식으로 배를 채운 후 동검도 펜션에서 짐을 정리하고 퇴실했다.
뭔가 조금 아쉬워졌고, 며칠 동안 자꾸 이야기하던 서문김밥을 다시 포장하기로 했다.
이번엔 마음먹고 4줄을 사기로. 당일 점심용 두 줄, 저녁용 두 줄.
뭔가 오~래된 맛집들이 즐비할 것 같은 서문김밥 옆의 좁은 식당 골목
10시 30분쯤 도착. 오늘은 줄이 좀 있었다. 5~6분 대기 후 주문.
오늘은 당당하게 네 줄 주문!
도미노처럼 내 뒤에 있던 모녀 커플도 원래 두 줄만 사려다 내 주문을 보고 짧게 상의 후 따블로 상향주문 ㅋㅋ
(속으로 엄지 척 해드림)
칠판엔 예약 주문이 가득. “아… 이래서 재료 소진되면 일찍 문을 닫는구나…”
너는 밖에서 잠깐 기다리라
김밥을 받아 들고, 근처에서 집에 가며 마실 커피 한 잔도 샀다 (4박 동안 두 번째이자 마지막 커피).
강화도를 떠나며 차 안에서 은박지 속 온기를 다시 느끼자, 아침부터 산채정식을 먹은 배부른 상태인데도 참을 수 없었다.
시동이 걸린다. 먹기로 한다.
타임루프냐고... ❘ 출처: 토마스모어의영화방
여행 마지막 날이 다시 여행 첫 날로 타임루프 ..
차 안에서 먹는 음식은 또 묘한 맛이 있다. 운전 중 짬 나면 한 입, 짬 없는데 먹고 싶으면 “한 입만…” 하는 그 맛.
그렇게 가는 길에 한 줄이 사라졌다
오무아무아인가...
집에 도착해서는 남은 두 줄을 저녁 즈음 다시 꺼냈다.
(사실 한 줄은 집 도착하자마자 또 먹음)
이젠 식어 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 온기의 감촉은 사라졌지만 야채기름의 고소함은 여전히 살아 있다.
하아... 맛있네. 마약김밥 인정. 특히 밥만 먹어도 좋을 마냥 간이 잘 된 이 맛이 참 좋다.
강화도 서문김밥.
다음 강화도 여행에서도 전채음이자 후식 같고, 사이드킥 같기도 한, 꼭 다시 먹고 싶은 김밥이다.
인디 음악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새로움과 다양함, 그리고 그것들을 아우르고 배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뿜어내는 에너지. 그 에너지가 나에게는 위로이자 가장 큰 매력이다. 참 오랜만에 가는 공연이었는데 꽤나 알차고 푸짐한 경험을 하고 왔다.
싱어송라이터 이지카이트(Izykite)는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 든다.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곡부터 리드미컬하고 빠른 트랙까지. 소울, 인디팝, 발라드, 라운지,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결이 이어진다. 그래서 플레이리스트가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바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이지카이트 만의 음색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이 모든 게 소화된다. 그래서 장르를 넘나듦에 이질적이지 않다. 그만큼 음악에 깊은 열정과 긍정적 욕심, 용감한 시도가 느껴지는 아티스트다.
이번 공연은 홍대 벨로주. 100석 남짓한 소극장. 뒷자리에서도 아티스트의 표정 하나하나가 보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펼쳐졌다. 노래와 노래 사이, 허당미와 센스가 섞인 유쾌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사진도 찍고, 떼창도 하고, 공연 후엔 일일이 굿즈 증정과 사인을 해주며 한 두 마디 짧게 나누는 인사까지, 두 시간 남짓의 시간이 생각보다 짧게 지나갔고, 또 그 만큼 깊고 밀도 있게 채워졌다.
물론 인지도 높은 아티스트들의 대형 공연장만의 압도적인 매력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오손도손 숨결을 나누는 소규모 인디 공연은 아티스트의 '그 인디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그 온도'가 있다.
이런것이 익숙해지면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도 생긴다. 더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론 나만의 비밀처럼 딱 이 상태 정도로 남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이런 공연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것 자체로서 이미 그런 오만한 이기심을 부릴 이유가 없다. 이지카이트의 음악이 지닌 에너지를 믿기에, 더 큰 무대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행복과 위로를 전해줄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아무튼 이 무대의 온기는 분명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프리굿즈
서문이 긴 버릇을 버릴 수 없어 요약을 앞에 두었고 이제부터는 그날 공연의 실제 흐름을 따라가본다
2023년 'Hey'라는 음악으로 처음 알게된 아티스트 이지카이트(Izykite). 평일에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고퀄리티 월요 공연을 제공한다는 먼데이프로젝트 시즌8로 홍대 벨로주에서 진행되었다. 공감가는 좋은 취지지만 역시 월요일 공연은 여러모로 힘들긴 하다. 그래도 나 외에도 팬심으로 똘똘 뭉친 영혼들과 함께할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공연 시작 후 가장 멀리서 온 관객 체크를 했는데 당일 비행기를 타고 온 제주도 팬분이 1등). 그리고 이지카이트도 여러분, 밥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텐데라며 걱정하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Dave Little이 디자인한 Theater of Madness 포스터
평일/월요일 공연이라면 역시 1980년대 후반 영국 클럽신을 뒤흔들었던 Spectrum 클럽의 'Theatre of Madness' 이벤트가 떠오른다. 이비자 파티 신에 큰 영향을 받은 DJ 폴 오큰폴드와 이언 세인트 폴의 기획으로 대성공했던 매주 월요일에 열리던 애시드 클럽 하우스 파티였다. 이에 비해 얌전한 먼데이프로젝트도 월욜이 부담스러운데 30년도 훨씬 앞섰던 저 광란의 분위기는 무엇이었을까... 항상 궁금하다 (당시 영국 클럽신의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벨로주에서 도보 약 3분거리에 주차했는데 나와서 보니 서교동 버스 정류장을 비롯 아이 토미오카의 'missing you' 뮤직비디오 촬영지가 여럿 보인다. 좋아하는 음악의 뮤비와 동선이 맞으니 은근 기분이 좋다.
Veloso_홍대
벨로주 건물 도착. 무심코 지나가면 공연장인지 모를 건물 입구. 주차장 사이드에 이지카이트 공연 포스터 5개가 일렬로 붙어있다. 빈티지감성. 너무 일찍 도착해 주위를 잠깐 걷기로 한다 (벨로주 건물엔 주차 못하니 방문 시 유료 주차장 따로 찾아야 함).
저녁풍경 ❘ 갑자기 저 빵빵이 가방 사고 싶었다. 물론 장식용으로
오랜만에 오는 서교동 거리인데 자주 찾던 옛 시절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새로운 건물들도 있고, 업종은 바뀌었지만 옛 형태를 간직한 건물들도 있고, 레노베이션을 통해 여전히 운영 중인 가게들도 있다. 슬슬 어둑해지기까지 하니 지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짧은 산책.
| 입장
얼추 시간이 되어 드디어 입장~
벨로주 내부
사진은 공연 시작 직전이긴 한데 들어왔을 당시에 이미 꽤 차있었다. 오랜만에 오는 소극장의 공간감이 좋다. 발 뻗기 편하게 뒤쪽 복도 자리를 잡았는데 딱히 시야가 가리지 않는다. 오픈 채팅방으로 공연 중간에 소통할 수 있고 촬영은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 안 되는 선에서만 찍어 달라고 방송이 나온다. 단란 하면서도 밀도 있던 그날의 느낌 때문인지 앞에서 촬영하는 모습들도 거슬리지 않고 그냥 공연의 일부 같이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나도 부담 없이.. :))
출처: 벨로주 FB
벨로주 공연장은 115석 정도 확보되는 공간이다. 파란색 화살표는 입구에서 화장실로 가는 동선인데 거기 일렬로 위치한 자리가 가장 끝번호들이다 (106~115). 발 뻗기는 좋은데 화장실은 물론 무대로 통하는 관계자들의 동선이랑 겹쳐서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건 참고 (공연이 좋아서 딱히 방해된다고 느끼진 않았다). 덕분에 이지카이트도 완전 가까이서 보고 :)
| 공연 시작
아티스트 등장~ 라이브 음악팀은 키보드와 기타의 간단한 구성이다. 근데 이노무 핸드폰은 포커스를 못 잡는다. 근데 막상 또 보니 느낌이 좋아서 삽입. 이지카이트의 영상 볼 때마다 생각한 건데 오늘도 역시나 스타일리시하다.
소낙비
이 날 플레이리스트 순서는 두 곡 정도 부르고 이야기하고 식의 구성이었다.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의 음악들은 물론 미발매 곡들도 몇 개 들려주었다. 디스코그래피가 어마어마하게 많진 않아서 좋아하는 곡들은 전부 들을 수 있는 게 좋았다.
이지카이트 - 소낙비 쇼츠 | @versebox
특히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소낙비'가 두 번째 곡으로 나와서 더욱 반가웠다. 한 여름에 참 듣기 좋은 편안한 노래다.
| 좋았던 포인트들
키워드 토크 중
토크타임은 다음 곡들 소개가 주를 이뤘는데 좋아하던 음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다(전남친 생일날 다툰 이야기까지..:)). 그 외는 아티스트에게 궁금했던 키워드 토크나, 카톡 오픈채팅방을 통한 실시간 리액션에 대한 반응, 릴스 찍기, 이 외 잡담이었다.
"여러분, 제가 너무 말이 많나요? 자꾸 뒤에서 끊으라고 사인 주시는데 ㅍㅎ핫"
빵 터진 말 중에 하나였는데 관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나보다. 입담도 좋고 센스도 있고 약간의 허당미도 있고 많은 웃음을 전해준 토크 타임이었다.
요약에서 언급했듯 슬로우-미드-패스트 템포의 빠르기 및 장르까지 워낙 다양한 플레이리스트를 보유하고 있어 공연 중 분위기도 쉽게 전환된다. 감미로웠다가 유쾌함으로, 경쾌하다가 낭만적으로 등등. 그 만큼 콘서트 때 마다의 코오디네이션이 중요해 보인다.
미 발매 신곡, 'Stay'는 유일하게 직접 건반을 치며 불러주었던 노래다. 건반과 목소리 하나에 의지한 아주 조용하고 서정적인 노래라 퍼포먼스 중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 관객과의 상호작용
Take it IZY
이지카이트는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아티스트다. 본인 자체가 ‘흥’으로 둘러싸인 사람처럼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쏟아낸다. 손뼉이나 제스처는 물론, 떼창까지도 노래 전 미리 ‘학습 타임’을 두며 관객의 참여를 끌어낸다. 관객이 따라 부르면 이지카이트는 중저음 화음으로 곧바로 응답하며 무대를 함께 만들어 가기도 한다. 이런 상호작용은 빠르거나 미드템포 곡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무대 위에선 좌우를 고르게 오가며 눈을 맞추고, 촬영 중인 관객의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무대 앞 서너 줄 정도만 보인다는 조명 아래서도 끊임없이 뒤쪽까지 시선을 보내려는 노력도 보였다. 공연 내내 그녀는 쉼 없이 움직이며 관객 한 명, 한 명과 연결되려 했다.
Hey
'Hey'의 "렛미세이 헤이!" 떼창
촬영하는 관객에게 손 흔들어 주기
눈맞춤
좌우 관객의 사진기로 촬영 후 돌려주는 모습. 좌측 관객 핸드폰은 떨어뜨릴 뻔해서 모두 헉! 했는데 (다행히 해피엔딩), 이 외에도 중간중간 발생한 돌발 모습들이 공연의 사이드 추억으로 남는다.
여름 안에서
엔딩곡 바로 전 분위기 최고조를 위해 이지카이트가 떼창을 요청하며 띄운 듀스의 '여름 안에서.' 짤의 입모양은,
"(너는) 푸른 바.다.야."
일단 재작년 유튜브에 올린 [여름 노래 MEDLEY]에서도 이 노래를 부른 걸 보면 본인의 사욕이 더 넘친 건 아닌지 :) 암튼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노래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세월을 관통하는 스테디셀러라..) 관객들 다 잘 따라 불러서
나도 감사히 자신 있게 따라 불렀다(!?!)
였지만, 역시 서연 커버였고.. 난 듀스를 생각했고..ㅜㅜ
둘의 차이점은 "난 너를 사랑해" 후렴구가 서연 버전에서는 처음에, 듀스 버전에서는 나중에 나온다는...
2023년 최정윤과 함께 부른 청량한 여름노래 메들리 (산책, 여름 안에서, 그 여름을 들어줘, 여우야, Dolphin) 중 '여름 안에서'는 재생버튼 누르면 바로 시작된다 (1:11).
| 춤신이 되고픈 꿈
노래 템포에 상관없이 제스처가 굉장히 많은 친구다. (위 움짤은 율동이긴 하나) 비트가 좀 있는 곡들에서는 모든 순간 그루브도 잘 탄다. 요즘 본인 춤이 많이 늘었다고 얘기까지 하는 걸 보니 춤 자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이지카이트(Izykite)의 장르가 다양하다 보니 1~3곡 정도의 자리라면 어느 공연 공간에라도 맞출 수 있는 아티스트다. 가령 위 'Diver (SOQI remix)'와 'SOS'라면 클러빙 공간에서 퍼폼을 해도 손색없을 트랙들이다 (참고로 공연에서 'Diver'는 오리지널로 불렀다).
| 엔딩 Pt.1
다이버
8시 정각에 시작한 공연, 9시 30분을 향해가며 어느덧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넋을 놓고 즐기다 보니 시간이 정말 '훅' 하고 지나갔다. 흥겨운 '여름 안에서' 후 엔딩곡은 칠(Chill)함과 일렉트로 사운드가 인상적인 신스웨이브 느낌 가득한 'Diver'였다.
그리고 퇴장 전 포토타임. 포즈는 뭘로 할까 고르는 장면이다.
"여러분 V로 할까요?"
"아 맞다, 선거 기간이라 손가락 안돼요. 혹시?? ㅍㅎㅎ 딴 걸로 해요."
마지막 작은 토크 타임 웃음벨의 순간이었다. 저 손가락 세 개는 이지카이트의 '3 seconds' 노래 제스처 때문에 나왔고 결국 파이널 포즈는 하트로 마무리.
공연 포토타임이라 찍은 사진은 없어서 인스타 업데이트된거 퍼왔다.
그리고 우리 모두 서로 짜고 맞추는 페이크 엔딩과 여러분 안녕.
| 진짜 엔딩
하지만 이미 공연 전부터 공지한 사인회와 선물증정 시간 일정의 시간 압박이 있었기 때문인지 앙코르 외침 이후 거의 무릎반사 수준으로 곧바로 다시 만나게 된 이지카이트.
마지막 앙코르송은 '눈맞춤'
대단원의 마지막
| 대단원의 마지막 그 다음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님. 사인회가 남아 있다. 유명인의 사인을 받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오늘 꽉 찬 밀도의 공연의 마지막 끝까지 관객 한 명 한 명과 상호작용 하고자 하는 이 아티스트의 노력에 대한 관객 입장에서의 존중을 표현해 줄 차례였던 것 같다. 물론 시간 상의 문제로 먼저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심지어 사인을 받기 위해 개인적으로 가지고 온 사진들을 여러 장 준비하는 열성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약간의 새치기도 있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워낙 너그러워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나도 뭐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진짜 시간은 없고 아티스트를 만나고는싶지 않을까 생각됐다.
그리고 뒤 쪽에 위치한 부스에서 진행을 하다 보니 차례는 맨 뒷줄부터였다. 웬 개꿀?? 거의 뒷 쪽 자리라 꽤나 일찍 차례가 왔다. 맨 앞자리에서 못 본 것에 대한 배려라고 받아들였다. 암튼 마지막 유명인 사인받아본 게 누군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한 30여 년도 더 지났을 것 같은데 말이다.
진 빠지는 공연 이후 100여 명의 관객에게 일일이 사인해주는 것도 힘들 텐데 웃음을 잊지 않고 진행하는 모습, 리스펙트! 사인 용지가 많아도 다 해주고, 촬영 요청도 다 들어주고. 누군진 말 안 하겠지만 아주아주 옛날에 이런 거에 거들먹거리던 꼰대 영화배우들도 꽤 봤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또 한 번 리스펙트!
이 빨간 티 분은 내가 아니다
그냥 감사합니다 정도로 예상하고 사인을 받는 거였는데 "공연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이 들어와 되게 좋았다고 답했다. 뒤에 사람도 많은데 시간도 아끼고 의례 예의처럼. 근데,
"뭐가 좋았어요?"
두 번째 질문이 훅. 들어왔다. 당황했다. 보청기를 끼지 않은 날이라 잘 안 들려서 "네?"하고 고개 숙여 다시 물었더니 사인 중 다시 말한다 "뭐가 좋았어요?"
아... 전체적으로 좋았다고 첨에 말한 것에 대한 반응, 질문이 잘 안들려서 뭔소린가 되물었더니, 뭐가 좋았다니...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
자신의 공연에 대한 관객의 마음이 정말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소낙비'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아 어떠케.. 너무 처음에 들려 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아뇨, 처음에 들어서 더 좋았기 때문에 좋았어요"라고 말은 했는데 그런 시간의 압박 속 바쁜 와중에 계속 관객과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그렇게 사인과 함께 프리 굿즈를 선물 받고 인사하고 나왔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은 음악이 다양해서 너무 좋아요였는데 말이다 :)
최종장의 끝 시점까지 무언가 계속 서로 오고 가는 이런 밀착된 느낌의 공연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관계자들 입장에선 두 시간의 긴장 속 아슬아슬하게 시간 딱 잘 맞춘 공연 아니었을까?
아티스트와 관계자들은 시간의 압박에 쫓겼을 것 같은데(나만의 생각이긴 함),
관객들에게는 그런 압박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이것이 역설적이지만 너무 좋았다
이런 게 몰입감이지!
공연장을 나오며 머릿 속에 떠올른건 건 두 개. 오늘 공연 너~무 좋았고, 두 번째는 공연 후기 앙케트 메모를 적지 않은 게 너무 미안했다. 보통 사람 앞에서 직접적인 코멘트는 안 하는지라 빈 메모를 두고 나왔는데 사인회 시점까지 한마디라도 더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니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응원의 글이라도 짧게 남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ㅜㅜ
대신 그 날 12시 종료인 단톡방에 솔직후기를 남겼습니다
| 공연 이후
CU서교보석점
암튼 오랜만의 좋은 공연의 잔향이 떠나지 않아 근처에 있는 아이 토미오카 촬영지였던 편의점에 들러 뭐라도 먹을까 해서 가봤다. 근데 많지 않은 외부 자리는 꽉 차 있었고 뮤직비디오 구도인 바로 앞에서 찍기엔 상황이 좀 그래서 멀리서 찍고 그냥 돌아왔다. (토미오카 아이 한국 촬영지는 아래 링크 참조)
집으로. 월요일이라 그런진 몰라도 공연장 3분 거리에 서교동 사거리 주차장의 5,500원의 저렴한 가격도 좋았다. 대로변 사거리 신호등 바로 전에 위치해서 들어올 땐 쉬워도 나갈 때 차가 꽤 밀렸는데, 역시나 한 차 두 차 세 차 네 차 악셀을 밟으며 무서운 속력으로 신호등 켜지기 전/후 내 차가 못 나오게 차 간 거리를 좁히며 압박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오라고 양보해 주신 한 천사 택시에게 감사!!!
암튼 여러모로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그날 사인과 프리 굿즈 모음
| 트리비아
그리고 마지막 트리비아, 이지카이트의 이번 신곡, '루벤(Reuben)'. 젊을 때 실컷 먹어둬야 하는 꿀맛의 샌드위치다. 공연에서도 "신곡 루벤, 샌드위친거 아시죠오옹!?"하고 프리굿즈 뱃지에까지 포함한 것을 보니 이지카이트는 이 샌드위치를 정말 좋아하나 보다. 아래는 위키 설명인데 감성 없는 차가운 글일 뿐인데도 식욕을 자극한다.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조합이다
출처 ❘ wikipedia
'3 Seconds'라는 곡인데 어디에서든 관객과의 음악적 소통을 노력한다는 점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지카이트의 영상이다.
About | 이지(Izy)연(Kite)
이 글에서 인디라고 해서 이지카이트(Izykite)가 갓 데뷔한 신인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꽤 경력이 쌓인 아티스트다.메이저가 아닌 숨겨진 보석같은아티스트일 뿐, 올해로 4년 차. 공연, 뮤직비디오, 유튜브 콘텐츠도 꾸준히 쌓여 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1만, 유튜브도 8천 명 이상이 구독 중이다. 최근엔 고향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 시구도 했다. ‘나만의 가수’라는 표현도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일 뿐, 실제로는 초창기부터 꾸준히 응원해온 팬들도 많을 것이다. 혹시나 오해가 있을까 싶어 이런 배경을 덧붙인다.
2025.5.2 대구 구장 시구 모습
-긴 글의 끝이지만 잔향은 여전하다-
(2025.5.29 업데이트)
유튜브에 공연 실황 풀영상이 올라와서 공유함
출처 | 유튜브@88pk1
& 그날 플레이리스트
우리의 어둠에 별이 내려오네 소낙비 Reuben Take it IZY 독립 여름밤 그럴 때마다 키워드 토크-1 Stay(미발매곡) 흑백영화 HEY SOS Not That Girl 3 Seconds 아침이 오는 건 알지만(미발매곡) 여름안에서(Original by 서연)_cover Diver 눈맞춤
슬슬 해가 지며 가로등과 건물 조명이 하나씩 켜질 때 즘이면 남을 사람 남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나는 시점이다. 보통 낯 시간대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곳이라 텅텅 빈 느낌이 난다. 때문에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거의 낯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저녁과 밤 풍경의 기록도 남겨본다.
해질녘 타이오마을 앞바다
시장 대부분 가게가 영업을 마쳤다. 남아 있는 곳도 물건을 팔기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다른 가게보다 늘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던 수산물 가게 (왼쪽)
금요일 저녁 8시 풍경.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았고 가게 앞 테이블과 의자만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 불이 켜진 가게도 있었지만 판매보다는 여름밤공기를 맞으며 쉬고 있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마켓 스트리트 끝자락의 유일한 ATM
HSBC 현금 인출기.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을 위한 곳. 24시간 운영이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지만 주변은 이미 조용하다.
🔎 위치 - HSBC Express Banking : Block D, G/F, 25 Tai O Market St, Tai O
숙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자주 마주쳤던 곳. 낮에도 밤에도 사장님은 늘 문 앞에서 사람을 살피고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후 검색해 보니 짠내투어 방송에 나왔던 식당이다. 구글맵과 오픈라이스에 하도 안 좋은 리뷰가 너무 많아서 가진 않았다.
펜스에 쳐져 있어 볼 때마다 뭔가 했는데 타이오 마켓 (大澳街市)이라 써져 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닌데 뭔가 현지인을 위한 시장 같은 분위기다.
🔎 - 그럼 타이오 마켓 스트리트와는 무슨 차이? 타이오 마켓 (Tai O Market)은 홍콩 식품환경위생처(FEHD)가 운영하는 공영 실내 시장. 마켓 스트리트 Market Street는 노점과 임시매대 중심의 야외거리형 상권으로 기념품, 즉석 간식 등 관광객 대상 품목이 주를 이룬다 - FEHD Hong Kong Market List / islet Forum
우연히 들어간 식당인데 늦은 시간까지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준 고마웠던 집, Zhen Zhen Restaurant (진진찬청). 하이난 식 치킨 계란 볶음밥과 초이삼(채심)을 사이드로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딱히 놀라운 건 아니지만 타이오처럼 작은 마을에도 무인 인형 뽑기 건물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일본과 마찬가지로 24시간 뽑기 공간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벤치의 길냥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다 빠져나간 게 심심했는지 내 옆에 다가와 하도 앵겨서 1분 정도 같이 놀아주었다. 타이오마을에서는 큰 개, 고양이가 모두 주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서울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그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
에어컨 실외기와 투박한 성당 유리창의 조합. 십자가 위에 실외기가 박혀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창문은 성당에서 흔히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나 란셋창은 아니지만 저렴한 재료로 대체되어 투박한 모습이다. 재료나 완성도는 다르지만 성당 창문의 기본 틀과 비율은 유지한다. 종교적 느낌 또한 시골 동네 풍경 속 패턴처럼 녹아 있다.
성당이 운영하는 초등학교 건물 내부. 간단히 천으로 덮은 제단, 플라스틱 의자, 수납 박스들. 모든 것이 기능 중심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보통 성당 예배 공간은 뭔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곳은 누군가 정리하다 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친근함이 있다.
그 공간의 외벽에는 철망 너머로 내부가 드러나고 있다. 건물 아래쪽 외벽엔 아이들과 십자가, 책이 그려진 벽화가 이어진다. 장식이라기보다 이 건물이 어떤 장소인지를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표식 같다.
철제 게이트는 홍콩 주거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인데 디자인 자체가 낡아서 그런지 레트로한 느낌이 좋았다.
타이핑 거리 (Tai Ping Street) 쪽 수상가옥 풍경. 정박된 보트들이 있는 걸 보니 여기까지 물이 들어와 배로 왕래가 가능한가 보다.
셕차이포 거리 (Shek Tsai Po Street) 주거지역 풍경. (물론 외적 아름다움 보다는 현실적인 생활방식 관점에서의 유사성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지만)타이오마을을 흔히들 '홍콩의 베니스'라고 부르는데 딱히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낯선 느낌의 깡통 같은 컨테이너 형태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옛 대형화제의 피해 영향도 있었을까 생각 해 보았다.
2000년 대형화제 ❘ 출처: thingstodoinhk.com
🔎 - 2000년 대형화제로 인해 약 100여개의 수상가옥이 손실되었다
푸른 조도 아래 보이는 깡통 건물 그리고 전선과 안테나. 신기한 느낌이다. 만약 팀 버튼이 동양인 감독이었다면 이런 세트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깡통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마을 뒤쪽 지역으로 가면 고층 아파트도 있다 :)).
타이오 마을 주거지의 특징 중 하나. 앞마당/코트야드 공간을 가진 집들이 그 공간을 자율적으로 꾸며놓았다. 어떤 집은 휴식을 위한 야외 거실이나 미니 카페처럼, 어떤 곳은 공방 혹은 창고처럼, 또 어떤 집은 정체불명의 '생활 복합 공간'으로. 가구 배치와 물건 종류, 구성이 집집마다 다르고 독특하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호코라처럼 이곳에서도 중소형 규모의 신단 같은 구조물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관광객이 떠나고 수호신들이 텅 빈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분위기다.
작은 신당들과 이런 깃발이 있기에 홍콩 시골마을의 정취를 더 진하게 느끼게 해 준다. 드래곤보트 이벤트가 열리면 이런 모양의 깃발 수십수백 기가 마을 전체를 수놓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운을 풍기며 옛 홍콩 무술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빛을 비춰주는 아기자기한 등룽들, 역시 소박한 느낌의 시골길 정취다.
마을을 걷다 보면 DIY 스럽게 조합된 다양한 구조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고정하고 연결하는 방식은 꽤나 원초적인데 주위에서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당장이라도 조립해 만든 듯한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줄로 묶고, 매듭을 짓고, 엮어 이어온 옛 어촌의 방식이 전선과 철제 봉, 장식 조명과 같은 현대의 재료들과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지금 이 마을의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