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여름바다

7월의 후쿠오카. 볼만한 여름 바다를 찾아 지도를 넘기다, 바닷물 속 하얀 토리이와 나란히 선 두 개의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일명 '부부바위'다.

두 바위는 일본 창세 신 이자나기·이자나미를 상징해 혼인과 가족 화합을 기원하는 곳으로 알려졌고, 석양이 특히 아름다워 ‘일본 석양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 공식 표기 : 桜井二見ヶ浦 / Sakurai Futamigaura’s Couple Stones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는 후쿠오카 현, 이토시마 시에 위치한다

후쿠오카 도심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약 한 시간, 반나절이면 왕복이 가능

그해 처음 마주하는 바다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에 충분해 보여 망설임 없이 목적지를 확정했다.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오전 당일치기로!


 

| 아침 5시, 하루의 시작

새벽 6시 경, 직원 한 명만 남아 있던 로비

전날 밤 늦게 체크인한 lyf 텐진.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고층에서 엘베타고 공용 냉장고 가는게 불편했던 것만 빼면 게스트하우스와 비즈니스 호텔의 장점만 모아둔 곳이었다. 천천히 준비하고 내려오니 이른 시간이라 로비엔 직원 한 명만 있었다.

쏟아지는 빗 속에 도착한 나가하마 선어시장회관

쏟아지는 비 속을 뚫고 아침 식사 목적지인 나가하마 선어시장회관으로 향했다. 여행 중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다.

"오늘은 비 오는 바다를 보겠군!"

우니(성게) 카이센동

그 기대를 품고 시장 내 식당으로. 오전 7시 즈음 하카타 우오가시 시장회관점에서 제철 우니가 올라간 카이센동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자세한 식당 후기는 아래 링크). 

 

[후쿠오카] 하카타 우오가시 시장회관점 이른 아침식사 @ 07:15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지역 시장을 찾아가게 된다. 물론 번쩍이는 관광 명소들도 좋지만, 시장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 일상, 음식, 전통을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electronica.tistory.com

 

식당을 나서자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높아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번지며 눈이 부셨다. 시계는 8시를 막 넘겼고, 9:42에 출발하는 후타미가우라행 버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다. 푸른 하늘 아래 도심을 천천히 걷기로 했다. 

 

| 8시, 도심 산책과 안국사 전설

안국사 (安国寺), 사탕유령의 이야기가 있는 곳

걷다 보니 전선들 사이로 고요한 전통 건축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국사(안코쿠지). 임신한 채 사망한 여성이 관속에서 출산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밤마다 사탕을 사러 나온다는 '사탕귀신'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보고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텐진 4초메 버스 정장

30분쯤 걸어 도착한 텐진 4초메 버스 정류장. 그런데 안내판에 버스 시간표가 없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 항상 시간표가 꽂혀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불안해 진다.

(오른쪽) Showa West Coast Liner 버스 정류장 안내판

아니, 상식적으로 세상 어디 버스가 어느 날은 경유지를 스고 안 스고 하겠냐마는, 1박 3일 같은 타이트한 여행이라 변수는 용납할 수 없다. 불안하게 기다릴 바에 시발점인 하카타 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기로 했다 (터미널 첫 차는 9시 38분)

나카스 풍경

구글맵을 보니 터미널까지 2.3km, 걸어서 약 35분. 1시간 정도 남았으니 나카스 풍경구경하며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드는 생각, 토요일인데 사람 많아서 버스 못 타면 어쩌지? 첫 차 못타면 오늘 스케쥴이 다 어그러지는데.

택시 ㄱㄱ!

(전 날밤 이치란에서 줄 서던 악몽까지 더해지며) 정신 차리고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짧은 여행에서 택시는 시간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후쿠오카는 도시가 작아 택시+뚜벅이 조합이 좋다.

chatGPT 이미지 생성

"하카타 바스 타미나루, 오넹아이 시마스!!"

 


| 9시, 하카타 버스 터미널 도착

가까운 나카스에서 타서 그런지 약 5분 후 9시에 터미널 도착. 건물은 직사각형 평면 공간에 세로 이동축은 중앙 에스컬레이터 하나. 층마다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돌면 승강장이 번호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동선이라 플랫폼 찾기 쉽다(❗다만 꼭대기인 다이소까지 올라가면 탈출이 어려울 수도).

한국어 안내도 보이는 표지판 - 3층 고속버스 승차장으로 가면 된다

후타미가우라로 가는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쇼와 고속버스 플랫폼은 3층 32번이다. 데스크에서 후타미가우라 행 표를 사려하니 하차 시 내면 된다고 한다.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승강장, 32번.

플랫폼 도착. 내 앞에 한 10여 명 즘 이미 웨이팅이 있었다. 노선표에 정거장 별 하차 시 가격도 써져 있으니 현장에서 참고하면 좋다. Nishinoura-hoikuen-mae ~ Futamigaura 구간 정차는 1,150엔 균일가였는데 지금도 변동 없는 것 같다.

버스 안 풍경

정시에 출발했고 텐진 4초메도 당연히 경유했다. 결국 ‘삽질’이었지만 출발부터 사람들이 꽤 타서 그곳에서 기다렸다면 위험할 뻔했다. 덕분에 바다뷰 창가석까지 앉았으니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간다, 이토시마로


 

| 9:36 am, 도심을 벗어나

푸르른 하늘

고가에 오르자 아침식사 했던 선어시장회관 근처 하카타 포트 타워의 풍경이 창 너머로 보인다. 

세로가 많은 도심을 벗어나니 펼쳐지는 풍경은 점점 느긋한 '가로'로 눕는다.  높고 먼 시야 속에 시골 정취가 서서히 넓어지는 게 좋다. 

오른쪽 창가뷰

좌석은 후타미가우라로 갈 때 오른쪽, 도심으로 돌아올 때 왼쪽에 앉으면 오션뷰를 확보할 수 있다. 도로 폭도 좁은데다가 옆 가드레일 밖으로 바다가 거의 맞닿아 있어 풍경 구경 시 몰입감이 좋다. 

팜트리 스윙

야자수 풍경과 함께 팜트리스윙 Palm Tree Swing이라는 바닷가 그네 명소도 보인다. 정류장은  자우오혼텐마에 ざうお本店前. 난 오전당일치기라 이번엔 스킵.

고속버스 이동 동선

팜트리를 지나면 내륙 도로로 들어선 후 곧 후타미가우라에 근접한다.

웨스트코스트라이너 고속버스 \ 출처: 나무위키

💡버스 스케줄 Tip:

당시는 오전 9시 38분이었는데 2025년 기준 8시 58분이 첫 차다. 아래 쇼와버스 홈페이지 스케줄 링크로 가서 확인 추천. 

* 버스: West Coast Liner (Showa Bus)
* 종착역: Ito Eigosyo
* 시간표: 평일/주말/공휴일로 나뉨
* 하차: Futamigaura (Meotoiwamae) (Fukuoka Pref.)
* 거리/시간: 약 32km, 약 1시간 20분
* 가격: 1,150엔 (편도)
* 첫 차: 8:58am (1:38pm 막차) (2025년 기준)

 

Hakata Bus Terminal Timetable West Coast Liner [Showa Bus] Direction:Ito Eigyosho| 昭和バス/Showa Bus

West Coast Liner [Showa Bus] Direction:Ito Eigyosho Select timetable from other lines Direction:Karatsu Go Oteguchi Direction:I Mari Go (Fukuoka Airport-Imari) [Showa Bus] Imari Eigyosho Direction:Ito・Shima-go Kafuri/Ito Eigyosho Date selection    2025

transfer.navitime.biz

 


 

| 10:50, 팜비치 정류장 도착

팜비치 정류장

바다 풍경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팜비치(Palm Beach) 정류장에서 내렸다. 후타미가우라까지는 600 m 남짓이라 설렁설렁 걸어 10 분이면 닿는 거리다.

정류장에 내리면 첫 눈에 보이는 팜비치 랜드마크 사인

토리이·신사 같은 전통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정류장을 내리자마자 첫인상은 살짝 당황스럽다. 뜬금 없는 하와이 감성.

간판 오른편으로 바다위 부부바위가 살짝 보인다

핫도그·치킨 간판까지.

팜비치 정류장에서 한번 쭉 돌아봄

푸른 하늘 밑에 드넓은 바다풍경, 모래사장, 밀려오는 파도에 살짝 울컥했다. 매년 처음 만나는 바다의 풍경은 어디던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다 (전두엽이 많이 파괴되었는지 뭐만 봐도 눈물이 많이 난다).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하얀 토리이와 부부바위.

음식점들은 걷다가 구경한 것들만 몇 개 넣어봤다. 안가본 곳들이니 ㅊㅊ은 아님

팜비치에서 후타미가우라까지 두 정거장 거리다. 가는 길에 카페나 가게도 구경하고, 심심한 도로가 나오면 해변 따라 걸어도 좋다. 


 

| 부부바위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

유목(?)움막

모래사장에서 뒤돌아보니 올가닉한 느낌의 유목 오두막(드리프트우드 파빌리온)이 보인다. 바다와 첫인사를 마쳤으니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저 오두막부터 탐험을 시작한다.

푸르른 꽃과 덩

이 동네 카페 붐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선셋비치(Sunset Beach) 카페에서 지었다고 한다. 바깥쪽은 낮임에도 약간 어둑한 느낌인데 입구 쪽은 초록 넝쿨과 꽃으로 뒤덮여 밝아 보인다.

에메랄드 부표가 매달린 아

왼편 아치에는 판타지 느낌을 자극하는 투명한 부표가 매달려 있는데 RPG 아이템 같아 채집하고 싶은...

조개 모자이크 간

조개껍질과 자갈 모자이크로 된 SUNSET BEACH 문구가 보인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좋다. 

내부는 낮에도 약간 어둑하다. 선셋이란 단어를 보니 해 질 녘 무렵이면 훨씬 판타지스럽게 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혼여라 수줍은 셀피 후딱 찍고 다음 관광객들에게 턴을 넘겨준다.

파빌리온을 나와 다시 걷는다. 서핑샵이 있다. 이토시마 지역은 서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던 이토시마 사보 (糸島茶房) 카페 (메뉴를 보니 달달한 것들이 많다). 토리이 때문에 '일본다운 시골 풍경'을 예상했던 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통 하와이안 톤이다.

햄버거 도시락

여행 오기 전 인터넷에서 본 리뷰 좋았던 햄버거 푸드트럭(?) 키친카(?). 보다시피 기동성이 좋아서인지 날씨에 따라 위치가 유동적이라고 한다. 이름은 Itoshima Hamburger Cherir (이토시마 버거 셰리르).

오션뷰 일식

팜비치 인근 몇 안 되는 일식집으로 바다풍경 보며 여유롭게 카이센동을 (하루 세 번도 좋아!) 먹으려 했던 Itoshima Seafood Restaurant (糸島海鮮堂 二見ヶ浦本店). 근데 웬걸, 오전 11시도 되기 전 주차장은 거의 만차에 웨이팅까지. 분위기 보니 부부바위 보고 오면 웨이팅이 더 길어질 것 같아 바로 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양식도 이 동네에선 향토 음식이겠거니" 하고

이토시마 햄버거나 하나 포장해 먹는 게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11:07 am, 부부바위 도착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변가 모래사장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다시 올라와 도로/인도 따라 걸어보기를 반복하며 오는 길은 즐거웠다. 팜비치 정거장에서 미리 내리길 잘했다.

내료가는 입구 전경: 전체 샷이 없어 사진 몇 장을 콜라쥬했다

사진 좌측의 돌계단을 내려가 작은 갯고랑을 건너는데 발란스 잘못 잡아 넘어질 뻔. 암튼 부부바위 앞도 이미 사진 찍기를 위한 대기열이 있다. 유독 중국어(만다린)가 많이 들렸다. 

웨이팅 안내 표시는 없지만 모두 알아서 선다. 간혹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오랜 시간 사진 찍는 팀도 있었는데 웨이팅 전체가 그리 길진 않아 견딜만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한국 동해안 마냥 역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 사진들도 있던데 이 날은 꽤 얌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 약간 더 가까이 다가간다. 

포토타임 찰칵

광각으로도 찰칵

고오쓰 (이키섬 DLC) 바다의 토리이 ❘ 출처: ign.com

막 신비롭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런 느낌의 토리이를 보면 명작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언젠가 꼭 쓰시마와 이키섬으로 고오쓰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적당히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전체 분위기는 이러하다

근처 해변가를 배회하다가 생선구이 칼집 자국 난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독특해 보였다. 

충분히 구경했으니 이런저런 샷도 찍어보고,

시간 지나고 보니 사진 찍기 위한 웨이팅도 사라졌다

입구의 돌계단에 앉아 자연과 사람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평화롭다. 물놀이하는 사람들,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좋다. 

부부바위 전경

두 바위를 묶은 굵은 시메나와(신성한 새끼줄)는 매년 5월 새로 교체하는데, 길이 30m, 무게는 무려 1톤에 달한다고. 

일본을 창조한 신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결속을 상징하며 (둘은 쌍둥이 남매), 혼인-가족 화합 기원의 상징이다.


 

 

| 11:57 am, 돌아갈 시간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복귀방향으로 유턴한다.   

후타미가우라 앞 공영 주차장이다. 화장실도 있다. 피크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꽉 차 있다. 암튼 시간이 많이 남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하차했던 팜비치 정거장 쪽으로 다시 역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후타미가우라 정류장 표지판

후타미가우라 정류장이다. 참고로 사진의 반달 모양의 청록색 사인은 웨스트코스트 라이너 고속버스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도로가 한국과 반대라서 바다 쪽 정류장은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가는 방향, 그 반대쪽은 후쿠오카에서 오는 방향이다.

사인 밑에는 하카타 버스 터미널 종착행 스케줄이 써져 있다. 종점인 하카타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싫으면 텐진 4번가에서 내릴 수 있다. 

| 💡TRIVIA: 버스 정류장 이름의 의미

정류장 이름은 후타미가우라(메오토이와마에)(후쿠오카현) — 二見ヶ浦(夫婦岩前)라고 제법 길게 적혀 있는데 의미는 아래와 같다. 

구글지도

  • 후타미 (二見) : ‘두 개의 경치’ → 쌍바위
  • 가우라 (ヶ浦) : 해안·포구
  • 후타미가우라 (二見ヶ浦) : ‘쌍바위가 있는 해안’이라는 고유 지명
  • 메오토이와 (夫婦岩) : 부부바위
  • 메오토이와‑마에 (夫婦岩前) : ‘부부바위 앞’이라는 뜻의 정류장 명
  •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 일본에 후타미가우라 (두 경치를 품은 해안)와 메오토이와(부부바위)는 일본에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이 함께 붙음.
  • * 사쿠라이 (桜井) : 사쿠라이 신사가 관리 -> 그래서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은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이토시마 시푸드 레스토랑. 11시 59분, 줄이 더 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카이센동을 먹겠다는 여행 전의 상상은 안일했던 것이었다 ㅋ 

12시 2분 경의 풍경이다. 이토시마 사보 카페 주차장도 꽉 차있다 (파란 차 한 대는 아직도 있음). 

선셋 비치 카페 오두막까지 다시 걸어왔다. 체력이 살짝 떨어지니, 저 구슬도 괜히 영롱해 보인다. 배도 조금 고프다. 그래도 도심으로 돌아가 영화 <후쿠오카>에 나왔던 우동집에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참기로.


| 12:10 pm, 버스 타기 전 사이드 퀘스트

팜비치 정류장 표지판을 보니 하카타행 버스는 1:01 pm 도착이다 (분 단위 설정 ㄷㄷㄷ).

이건 올 때 내렸던 반대 방향 정류장 사진이다. 좌측 아래에 영어로 "PALM BEACH Bus Stop"이라고 쓰여 있듯, 말 그대로 도로 옆에서 그냥 내린다 ㅋㅋㅋ

팜비치 사인

 아무튼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마지막 사이드 퀘스트로 팜비치 주변과 가게를 돌아보기로 했다. 

팜비치에서 해변가로 내려가는 계단

너무 길어졌으니 그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에서...


| 마무리

짧지만 밀도 높은 오전 반나절이었다. 바다, 신화, 카페, 모래사장, 고속버스 등, 여름 바다를 잘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웠던 후쿠오카 근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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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터에 들어선 음식점들은 항상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애매한 주말 오후건 퇴근 후건 하루 언제라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던 위치. 그 자리에 최근 조선호텔의 중화요리 브랜드인 호경전 서초점이 들어섰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홍연의 전신인데 이 곳은 캐쥬얼 프리미엄을 지향한다. 오픈 당시 먹었던 단품이 맛있어서 이번엔 코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 내부

룸 예약이면 코스 기본이라 2층으로 이동. 원하면 1층 홀 공간에서 먹어도 된다고 한다. 참고로 2층은 화장실 가기가 편하긴 하다. 

이제 팔순 안에 오신 어머니 뒷모습

2층은 모두 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테리어는 신세계점 보다 고급스럽다. 

2인 예약으로 배정 받은 방. 프라이빗 하니 얘기 나누기 딱 좋은 공간이다. 


 

| 메뉴

 코스메뉴는 가격순으로 심연 > 천하 > 담우 > 화현이 있다. 

물론 모두 좋은 식재료를 써서 맛있겠지만 일단 <화현>은 일반 중화요리집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모둠 느낌이 났고, <담우>는 그 날 컨디션으론 왕새우와 누룽지가 딱히 당기진 않았다. 

출처 ❘ 구글지도 @Hyunjae Jo ; 캐치테이블에 메뉴가 없어서 퍼옴

<심연>은 가격도 워낙 쎄고 후식까지 가짓수가 8개라 다 못 먹을 것 같은 부담이... 

<천하> 런치 코스 메뉴

결국 <천하> 코스를 골랐다 (11만 원). 광동식을 참 좋아하는데 '광동식 닭고기 냉채'라는 표현도 맘에 들고, 홍콩이나 중국에 가면 무조건 디폴트로 먹는 가재의 이름이 보여 좋았다 (영어를 안봄 ㅜㅜ). 그리고 그나마 이 정도면 소식좌들이 힘좀 내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7개.. 그래도 남길까 봐 꽤 걱정 많이 했음)

천하 디너 코스 메뉴

참고로 런치/디너 코스는 동일한 이름들로 제공되는데 디너에서는 메뉴의 형식을 더 고급스럽게 변형을 주었다. 대신 가격은 UP. 위 이미지는 천하코스의 디너 버전이다.


 

| 식사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극적이지 않은데, 밋밋하지도 않으면서 양도 적당하니 좋았다.
담백했다라는 말이 어울릴 듯

 

 

| 사이드 반찬

중국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짜사이와 땅콩이 나오고 중간에 단무지가 자리 잡는다. 인당 나오고 양이 과하지 않아 좋다. 모자라면 언제나 더 달라고 하면 되니. 맛은 크게 특별하진 않았다. 


 

| 광동식 닭고기 냉채

Cantonese Style Chicken Appertizers

애피타이저가 나왔다. 보통은 퍽퍽해 외면하는 닭가슴살이지만 저온 수비드로 부드럽게 익힌 살은 촉촉했고 기름기 없는 담백함 위로 산미가 얹혀 입안이 가벼웠다. 입 안에서 탁 터지는 토마토.

재료도 상태가 좋았고 첫 모금부터 온도가 적절해 코스의 첫 문을 차분히 열어 주었다. 맛만 보려다 어느새 접시를 비웠다.


 

| 지존 갈비 계절 야채수프

Steamed Rib and Seasonal Vegitable Soup

수프가 나왔는데 광둥식 향취를 조금 느낄 수 있었던 디쉬였다. 한국으로 치면 갈비탕 같은 건데, 맑지만 우리나라 갈비탕과는 또 다른 느낌의 깊은 육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짠맛이 덜한 대신 은근한 감칠맛이 있다. 

더블보일 방식 (맞겠지?) 때문에 맑고 진한 느낌이 나는 것 같다. 그리고 메뉴에 왜 '至尊(지존)'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고기 한 입 배 어물면서 이해가 되었다. 부드럽다. 이것도 전부 꿀꺽.


 

| 간장 마늘 소스 바닷가재찜 

Steamed Lobster with Garlic Soy Sauce

광동식 해산물이라길래 메뉴의 '가재'란 단어에만 홀려 홍콩/중국에서 늘 먹던 갯가재로 인식해 버렸는데 서빙된 접시 위엔 바닷가재(랍스터)가 놓여 있었다 (메뉴를 제대로 안 본 나의 착각). 암튼 간장·마늘을 살짝 졸여 부어 낸 맑은 갈색 소스에 홍·청고추 링이 흩뿌려져 있었다. 

 

랍스터 살은 통통과 탄력 사이의 좋은 밸런스. 소스는 짠맛보다는 감칠과 달큼함이 얇게 겹쳐 혀를 크게 자극하지 않는다. 고추의 미세한 매운기가 뒤따라와 기름기를 풀어준다. 식재료가 깔끔하게 빛난다. ‘갯가재와의 착각도 나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저것도 꿀꺽, 이미 배가 불러온다 ㅜㅜ

원래 상상했던 홍콩 갯가제 ❘ 출처 Ppond5.com

TRIVIA: 가제/새우 류 중에서는 (Mantis Shrimp) 오줌싸게가제라고도 불리는 갯가제를 제일 좋아한다. 껍질 까기가 귀찮은 놈인데 그 이후 먹는 살의 만맛이 부드러우면서 강한놈이다. 주로 홍콩과 중국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 칠리소스전복

Fried Abalone with Chili Sauce

중화요릿집에서 흔히 만나는 칠리소스인데 익숙한 탕수육의 식감을 가진 그 보호막 껍질을 씹으면 단숨에 부스러지고 그 안에 숨어있던 탱글하고 쫄깃한 전복살이 씹힌다.

어떻게 보면 코스 메뉴 중 제일 자극적인 음식이 나온 셈인데 그마저도 얌전한 맛이 좋다. 물론 아쉬운 건 이미 전 단계에서부터 찾아온 포만감이었다. 맛있었지만 남길 수밖에 없었다 ㅜㅜ

 


| 자연송이 한우 안심

Sauteed Korean Beef with Black Pepper Sauce and Pine Mushroom

메인이 나왔다. 수프에 있었던 소고기는 미국산이지만 메인에 나온 소고기는 한우다. 둘 다 연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다. 같이 나오는 송이버섯은 언제나 스펀지처럼 토해내는 즙이 맛있다. 

메뉴판에 쓰인 대로 ‘국내산 한우’라는데 내 얄팍한 혀로 미국산·국내산 차이를 가늠할 능력은 없다. 다만 두툼한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니 근섬유가 곱게 풀릴 만큼 부드러웠고 소스는 블랙페퍼와 굴소스 어딘가의 향이 드는데 짠맛이 강하지 않아 고기 본연의 맛을 지나치게 해치지 않는다. 


 

| 식사: 짜장면과 짬뽕

어디서든 중식코스를 먹으면 항상 머뭇거리는 순간이다. 짜장면과 짬뽕, 혹은 볶음밥, 뭐 먹지? 서버님은 바쁘시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손님으로서 항상 용서해 주길 바라는 시간이다.

짬뽕이냐 짜장면이냐로 티키타카를 잠시 하다가 서로가 먹을 것을 정하고 결국 짜장면과 짬뽕을 시킨다 (볶음밥도 약간 떙겼는데 서버분은 짜장면을 추천하셨다). 어머니는 여기 짜장면을 몇 번 드셔보신지라 내게 양보하셨다 (근데 둘 다 맛있음).  

짬뽕은 건더기가 참 실하다. 그리고 중요한건, 맛.있.다.

짜장면은 면발의 맛이 부드럽게 넘어가면서도 푸짐한 토핑들로 인한 식감이 참 좋다. 요즘 동네 짜장면들이 맛이 없어지는 기후가 있는데 여긴 참 맛있는 짜장면. 식후 음식으로 나오는대도 불구하고 얹힌 식재료들이 메인만큼 푸짐한 느낌이어서 더욱 좋았다. 


| 디저트

마지막 디저트는 망고사고 (芒果西米露, Mango Sago)였다. 내가 제대로 느낀 게 맞다면 망고의 진한 향에다가 코코넛 향이 살짝 감싸서 앞선 중국식 음식들 특유의 기름기의 여운을 산뜻하게 씻어주는 역할이었다. 


 

 

| 마무리

꽤나 괜찮은 평일의 약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있는 점심이었다. 이 날 든 생각은, 어머니가 나이가 계속 들어가다 보니 프라이빗한 룸에서 나누는 사적인 얘기 분위기도 좋지만 홀에서 사람들이 뭘 먹나, 저건 또 무슨 음식인가 하는 그런 타인의 삶의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 더 좋으신 것 같다. 그래서 다음에 또 가게되면 다시 홀에 자리잡아 보아야겠다.


 

 

 

| TRIVIA.2: 배달도 된다!

갑자기 호경전 짜장면이 먹고 싶다 하셔서 시켜드림

 

언제부턴가인진 모르겠지만 배달도 된다! 나이 때문에 이동이 힘든 어머니가 참 좋아하신다. 베달로도 먹을 수 있다고.

배달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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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숭뢰리에 자리한 1938년생 돌기와 한옥 ‘돌기와집’은 납작한 석와 지붕과 중정을 그대로 간직한 고택이다. 1994년 식당으로 문을 연 뒤 압력솥에 잔가시까지 부드럽게 녹여 내는 달큼·매콤한 붕어찜으로 30년째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다.


강화도에서 흔히 만나는 논두렁 길 따라 崇雷里 (숭뢰리)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마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날의 루트

숙소인 남단끝 동검도에서 강화도 북단 끝으로 32km 약 50분. 민간 마을에 자리 잡은 곳이라 도로에서 벗어나 시골길을 쭉 따라 들어가야 하는데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이런 곳에 정말 음식점이 있다고?"를 남발했다. 


 

| 외부

도착하면 누가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옛 근대 한옥이 맞이해준다. 고택 바로 앞마당과 길건너에 주차자리가 있다. 한옥은 1938년에 지어졌으니 올해(2025년)로 87년째를 맞는다

건너편 주차장 공간엔 붉은 글씨로 '돌기와집'이라 쓰인 투박한 입간판이 수줍게 구석에 서있다. 받치고 있는 낡은 고철과 글씨가 뭔가 무림의 맛집 분위기를 풍긴다.

상도숭뢰길 - 오솔길처럼 아담하고 예뻐보여 카메라를 꺼냈다. 꽤 좁은데도 불구하고 덤프트럭이 후드득 나무들을 쳐대며 지나가는 장면이 신기했다. 암튼 차 세우고 이 작은 폭의 길을 너면 음식점 입구다. 쭉 길을 따라가면 음식점이 원래 붕어와 메기를 공수했던 숭뢰지(대산저수지)가 나온다. 

오랜 세월의 맛을 더해주듯 나무 덩굴에 휩싸여 있는 굴뚝 모양의 구조가 눈에 띄었는데 붕어찜을 끓이는 주방과 이어져 있다.

1930년대는 개량한옥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절이라고 하는데 콘크리트/시멘트 같은 현대 재료들과 섞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좌측이 화장실인데 들어가 보진 않았다. 

입구부터 입식 타일 바닥·노출 배선·개방 통로가 겹겹이 보인다. 여러 세월에 걸쳐 전통 한옥 원형에 덫대진 흔적들을 느낄 수 있다. 긴 입구 공간이 계절에 따라 바람-온도-시선 등에서 잘 지켜줄 것 같다.

깊다 싶은 입구를 지나면 가운데가 하늘로 향해 ㅁ자(정사각형으)로 뻥 뚫려있는 중정 공간이 나오는데 개방감이 굉장히 좋다. 낯에는 이렇게 자연광, 밤엔 또 달빛이 스며들어 이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부엌에서 바라본 모습인데 좌측에 보이는 공간은 곳간이나 외양간 같은 곳이었을까? 암튼 사면이 이렇게 둘려 싸여 있으니 문만 꽁꽁 닫아두면 추운 겨울바람도 잘 막아줄 것 같다.

부엌을 바라본 모습

입구를 통과하면 정중앙에 식사 공간이 있고 우측에는 맛있는 붕어찜을 삶는 재래식 부엌이 보인다.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고택 구조를 보며 재미를 느끼게 된다. 


| 내부

신발을 벗고 내부로 들어오면 마루와 안방 모두 식사하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활짝 열려 있어 개방감이 유지된다. 문틀들 사이 비닐발이 보이는데 90년대 느낌도 난다. 시간 여행 온 느낌이랄까. 

원래 좌식이었을텐데 시대의 흐름을 따라 테이블식으로 바뀌었다 (몸이 안 좋고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좌식이 참 힘들긴 하다).

여름 초입 날씨가 참 좋았던 날이라 뒷뜰로 보이는 공간으로 이어진 문이 달린 곳에 자리를 잡았다. 통창이 있으니 개방감도 좋고 시골에서 밥을 먹는 분위기도 같이 안겨준다.

메뉴는 간단하다. 시그니처인 붕어찜과 새우매운탕. 민물새우튀김이 궁금했는데 소식좌라 붕어찜만 시켰다. 이 집은 원래 인근 대산저수지 (숭뢰지)에서 들여온 민물고기 매운탕집이었는데 우연히 내놓은 붕어찜 맛에 손님들이 매료되며 오늘날 붕어찜 전문집에 이르렀다고 한다. 참고로 여럿 온 테이블들은 우렁무침도 사이드로 시켜 먹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 식사 - 주옥같은 반찬들

정갈해 보이는 비주얼의 반찬들이 정성스럽게 세팅된다. 이 집은 음식과 대응 자체에 예의 스러움이 스며들어 있다. 반찬들 도 하나도 빠짐 없이 다 맛있다. 갠적으론 3,6,7(깻잎),9시(무채) 방향 반찬들이 특히 맛있었다.

챗GPT의 설명

너무 맛있어서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사장님 바쁘시고 정신 없으셔서 그냥 챗GPT한테 물어봤다. 각각 미나리(6시)와 열무(3시) 나물이라고 한다. 이렇게 듣고 식감과 비주얼을 비교해 보니 그럴싸하다.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 오래된 한옥에서 가장 최첨단 기술을 쓰고 있는 상황이라니.

시큼 새콤한 무채 절임은 약간 기름지고 달짝지근한 붕어찜과 먹기 굉장히 좋았다.

깻잎은 짜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마지막 한 장까지 알토란 하게 강화섬쌀밥에 맛있게 싸 먹었다. 


| 붕어찜

드디어 붕어찜 등장. 이렇게 한상이 완성되었다. 

반찬들이 워낙 맛있어서 원래도 높았던 메인 요리의 기대치가 더 올라갔던 붕어찜이었다. 찜에서 우러나온 국물과 통통한 붕어 위에 올려진 양념 건더기들의 비주얼이 식욕을 자극한다. 그리고 시래기가 주조연처럼 올라간 점이 눈에 띄었다. 붕어는 원래 인근 숭뢰지에서 가져왔지만 퀄리티가 떨어지면서 지금은 충청 예당 저수지에서 공급한다고 한다. 

해체를 시작한다. 돌기와집 리뷰에서 다들 말하듯 붕어의 가장 힘든 점인 잔가시가 신경쓰이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뭐 꽁치조림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압력솥에 푹 고아 내놓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붕어 고유의 형태를 해치지 않는 것도 이 집만의 실력이겠지.

원래 붕어의 잔가시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붕어찜은 달짝지근하고 매콤하다. 매콤은 매운 매콤이 아니라 미디엄 정도다. 부드럽다. 생선 잔가시 정말 세상 귀찮아하는 나도 그냥 먹어도 될 정도다. 특히 갓지은 요리의 따듯함과 깊은 풍미가 돋보인다. 붕어 특유의 흙냄새 비린내도 느끼질 못했다. 

시래기와 아주 찰떡궁합이다. 계속먹다보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 기름지고 달짝지근함을 중화해 준다 (그렇다고 이 기름짐과 달짝지근함은 전혀 자극적이거나 과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시래기도 모자르다면 이 시큼 새콤 무채와 곁들이면 입 안이 끊임없이 중화된다. 연신 맛있다를 외치며 계속 먹게 된다.

살면서 아주아주 가끔, 손에 꼽을 만큼 음식을 먹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평생 못 잊을 맛 같은 거. 돌기와집이 그랬다. 찬 하나하나 내어줌과 음식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성스러움과 대접받는다는 느낌. 음식이고 찬이고 어느 하나 거르기 힘든 맛과 분위기. 

이 행복하고 감사한 경험은 1시간 정도가 지나 끝이 났다. 이처럼 홀린 듯 먹어본게 얼마만인지. 그리고 누군가의 정성스러운 음식을 감사하며 먹어본 게 얼마만인지

맛의 폭풍이 휩쓸고 간 후 이제 끝났나 싶더니 식혜를 내어 주신다. 술은 밥과 누룩을 섞어서 발효시켜 만들지만 누룩 대신 엿기름을 사용하면 알코올 없이 단맛 강한 음료로 탄생한다는 식혜,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조상님들의 디저트맛에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걸 쭉 내려가게 만들어주는 식혜와 함께 정말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저녁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배터지게 먹었다. 감동적인 한 끼였다. 오후 1시 20분경의 모습이다. 


 

| TRIVIA

붕어요리는 강화도의 향토음식이 아니다. 옛 임산부들의 특식이었던 잉어와는 별개로 내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국적 흔한 식재료다. 먹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옛 시절 서민들의 영양섭취를 책임져 줬다 (둘의 차이는 크기와 수염이 있냐 없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화도까지 와서 굳이 향토음식을 맛보지 않고 이 집을 찾아가는 이유를 비로소 나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큰 감동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다가 이런 별 하나짜리 리뷰를 발견했다. 듣고보니 맞다. 이건 조림에 가깝다. 하지만 그리 짜고 맵지 않은 조림.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나 맛있는데 저 유저가 처음 맛봤을 때의 그 맛은 또 얼마나 맛있었길래 이런 리뷰를 남겼을까 하며 그 옛 경험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계산을 하고 걸어나오는 길. 6만원 돈이 단 한 푼도 안 아까웠던 한 끼였다.

이건 전경

강화도는 실향민들의 흔적이 특히 많다. 이 집도 원래 주인이 황해도에서 남으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백두산 등지에서 공수하여 직접 실은 돌들로 쌓은 기와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집은 '돌기와집'이 아닌 '널 기와집'이라고 불려야 한다고도 하는데 돌너와, 널기와, 돌기와, 석와라고도 불리는 것 같다.

요리를 먹고 난 후,

이 집 지붕의 납작한 돌들이 서로 얹혀 자아내는 자태를 보니

비로소 붕어의 비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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