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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화촌 건물 (왼쪽 향미 간판은 1층 집이다)

가성비와 노포 감성, 그리고 다양한 손님층이 어우러진 명동 행화촌 중화요리집 후기다. 간짜장, 울면, 닭튀김, 군만두, 그리고 소고기 오향장육을 맛보며 옛 중화요리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행화촌은 杏花村, 살구꽃 핀 마을, 주막(酒幕)이 있는 마을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랜만의 주말 명동 나들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명동의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3월 초입 쌀쌀했던 공기

명동성당에서 지인들 만남. 형태가 꽤나 변하긴 했지만 옛 추억이 많은 곳이라 항상 이곳의 사진은 언덕 느낌이 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명동성당 건너편 그 인스타 카페. 아주아주 오래전 저 터 지하엔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닭고기 수프가 참 맛있었던 경양식 집이 있었는데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있을까?

봄이 오는 중턱 명동의 인파

지인들을 만나 다시 걸어왔던 롯데 백화점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모임의 장소는 언제나 그렇듯 근처 맛있는 중화요릿집을 찾아!

명동길을 따라 쭉 내려오다 명동지하센터 지점에서 중앙우체국 방향으로 꺾으면, 중국대사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온다. 한때 이곳은 외국 문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골목이었다.

chatGPT: 윗 추억을 바탕으로한 허구의 이미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외국 톱스타들의 포토와 책받침이 가득했고, WWF, 논노 같은 외국 잡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마치 신세계로 가는 포털 같은 곳이었다.

그 날의 루트. 명동은 근대 역사 스폿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참고로 계성초등과 계성여고는 이사한지 오래 되었다

주현미와 진미령 및 쯔위가 다녔던 한성화교소학교 방향으로 중국대사관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한국은행 방향 골목으로 꺾는다. 이 골목에는 오랜 명성을 이어온 중화요리집들이 늘어서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도향촌, 산동교자, 일품향, 개화, 향미, 행화촌. 명동엔 곳곳에 오래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골목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것이 좋다

우리가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향미였다. 하지만 기존 단골들마저 싹 쓸고 가는 메뚜기 떼  현상을 일으킨다고 하는 한 인플루언서 덕분에 이 근방도 이미 혼란 상태라고 들었었다. 그나마 주말이라 개화는 아예 문을 닫았고 향미도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산동교자는 다행히 줄이 없었지만 우리가 원래 가려던 곳은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건물 2, 3층에 자리한 행화촌으로 이동했다. 건물 외벽에 달린, 아슬아슬해 보이는 돌출 발코니가 인상적인 곳. 오래된 노포 특유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건물이다

2층 계단을 따라 올라와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오후 3시 50분경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꽉 차진 않아 쾌적한 기분이었다. 사진은 프런트의 모습이다. 화장실은 오른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북적임이 없는 늦오후의 분위기가 좋았다.

일반 짜장면 5천원!

짜장면 5천 원…???!!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짜장면 5천 원이라니? 게다가 간짜장도 7,500원. 이건 흥미롭다. 우리 시계는 지금 2025년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곳의 가격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이다. 거기다 기다란 판으로 '닭튀김’이라는 정체불명의 메뉴가 적혀 있다. 중국집에서 닭튀김? 오늘 우리는 뭘 먹어야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배고픈 돼지들로 빙의해 무지성 선택을 하기로 한다.

"일단 오향장육을 먹어보자"

"좋아!"

"근데 만두는?"

"물, 군?"

"멀라, 군만두 ㄱㄱ!"

"근데 저 닭튀김 판때기 저거 신경 쓰이지 않냐?"

"어, 맞아 시키자." 

"나중에 식사 생각해야니까 일단 이 정도?"

"ㅇㅋ"

 

가장 먼저 나온 오향장육은 돼지고기가 아닌 아롱사태 소고기였다. 쫀득한 결이 살아 있는 식감, 엊혀보며 느끼는 혀를 스치는 은근한 소스, 그리고 은은하게 배어드는 향신료의 풍미. 아롱사태 특유의 구두 씹는 듯한 질감은 평소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향신료가 어우러지며 살짝 시릿하게 퍼지는 감칠맛 덕분에 그저 꿀떡꿀떡 넘어간다

고기를 파헤치니 잔뜩 깔린 신선한 양배추가 슬며시 등장한다. 그냥 곁들여진 것 같지만 상당히 잘 어울린다. 아삭한 식감 덕에 느끼함 없이 개운하게 넘어간다. 대파도 함께 먹으면 알싸한 향이 더해져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내 군만두가 나왔다. 요즘 중국집들은 갈수록 바삭함만 과하게 강조해 딱딱하거나, 혹은 눅눅하거나 등등 겉과 속의 밸런스가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여기는 달랐다. 겉은 적당히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육즙과 감칠맛이 살아 있다. 과하지 않은 균형감. 잘 만든 영화 속 탁월한 조연 같은 맛. 부담 없이 계속 손이 간다. 

다음에 나온 닭튀김은 한국식인 듯 아닌듯 뭔가 살짝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버펄로윙에 가깝다. 튀김옷이 바삭하진 않지만 부드러운 속살, 기본적인 간장 베이스까지는 익숙한데 어디선가 아주 미세하게 중국 향이 스친다. "이거 뭐지?" 싶은 순간 사라지는 정도. 한국 치킨이면서도 미묘하게 중화의 기운이 스며든 맛

꽤 괜찮아서 "이건 하나 더 포장해 가야겠는데?" 싶었지만… 아쉽게도 닭 소진 ㅠㅠ.

간짜장 꼽빼기

식사 시간이다. 간짜장, 소고기 짜장, 짜장면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요즘은 제대로 된 간짜장을 먹을 만한 곳이 드물다는 생각에 간짜장 곱빼기를 주문했다. 요즘 중국집들은 계란 하나 올려놓고 옛날 간짜장인 척만 할 뿐 정작 맛은 따로 노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여기는 좀 달랐다. 짙은 춘장 향과 은근한 단맛이 밸런스를 맞추고 볶아진 재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옛맛이 살아 있었다 (괜히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많은게 아닌듯). 거기에 우리가 직접 고춧가루를 솔솔 뿌려 마무리. 단맛을 눌러주고 옛 감성을 더 선명하게 살려준다.

울면은, 와... 숟가락으로 국물 한 번 맛 보는 순간, 술 많이 마신 다음 날 해장으로 이걸 먹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다는 상상을 했다. 전분이 녹아든 진득한 국물이 속을 포근히 감싸는 느낌. 양도 푸짐하다. 한 숟갈에도 느껴지는 묵직한 느낌의 농도, 은근하게 퍼지는 감칠맛. 무엇보다 이날 행화촌에서 가장 옛 원형의 맛을 깊게 느꼈던 메뉴였다.


식당에서 계속 신경 쓰였던 저 공간, 저기가 이 가게의 상석인 듯하다. 물론 지금은 발코니로 나갈 수 없지만, 왠지 옛날엔 저기서 담배 한 대 피우던 자리였을 것 같은 느낌? ㅋ

뷰포인트는 다르긴 한데 왼쪽을 마주본다 보면 됨

저게 보이는데, 신세계 미디어 파사드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영상들을 배경으로 옛 감성을 간직한 중국집에서 식사를 한다는 느낌. 아이러니하지만 그 조합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저 자리는 그냥 식사 공간이 아니라 명동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점처럼 느껴진다.

이 곳이다

음식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건 이곳을 채운 사람들의 풍경이었다. 혼밥하는 손님, 다정한 커플,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부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 친구들 모임, 그리고 가끔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연령대도 제각각이었다.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공간. 어떤 형태든 어떤 이유든 다양한 발길이 머무는 곳. 그런 가게야말로 진짜 오래 사랑받는 곳이 아닐까.

다 먹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거리는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식당을 나서며 한 번 더 바라본 외관, 왠지 안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노포 분위기. 그리고 무엇보다, 사장님의 친절함이 기억에 남는다. 이날 우리는 물론이고,\ 다른 손님들에게도 유하게 응대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우리 옆자리에서 혼밥하던 관광객에게도 친절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게 하나둘 쌓여 '관광 코리아'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 아닐까.

노포 기준, 모든 면에서 별 다섯개 만점. 명동에 온다면 행화촌 추천.  


| 번외 : 돌아가는 길

행화촌에서 나와 바라본 신세계 미디어 파사드는 여전히 화려했다. 신기하게도 도시의 밤은 변함없이 화려한데 묘하게도 오래된 중국집에서의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 건너편 보라색 향기의 한국은행 건물

뭔가 방공호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대피소 겸) 지하도

그 지하도를 지나가며 쌩뚱맞다 싶었던 위치의 미니멀리스틱 그라피티 감성의 김밥집이 인상적이었다. 김밥 3천 원도...

레트로 감성 잔뜩 한 지하도를 나간다

건너편에서 다시 만나는 신세계의 미디어 파사드. 맛있는 음식에 잠깐의 레트로 경험, 아주 좋은 날이었다


📌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정보

  • 상호명: 행화촌(杏花村)
  • 주소: 서울 중구 명동 2가 105 (중국대사관 골목 내, 향미 건물 2~3층)
  • 영업시간: 매일 11:00 ~ 21:00
  • 주차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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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센트럴 루프탑 전망대 야경

지난번 호텔 센트럴 후기(링크)에 이어 이번에는 루프탑 전망대의 야경을 소개

 

[마카오] 100년의 레트로 감성: 호텔 센트럴 Hotel Central 후기

마카오 여행의 결심은 홍콩의 과 같이 식민지에서 중국 반환 이전의 감성을 담은, 맥락은 비슷하지만 알맹이는 또 다른 마카오 영화 에서 비롯되었다. (홍콩 1997년 반환, 마카오 1999년 12월 20일

electronica.tistory.com

어느 나라를 여행 하다보면 대부분의 호텔이나 상업 건물 전망대는 유료지만 호텔 센트럴(Hotel Central) 루프탑 전망대는 무료로 개방된다. 100년 넘는 호텔의 역사와 마카오의 문화·역사를 잇는다는 콘셉트에 잘 맞는 전략인 것 같다

 

코타이와 마카오 반도

왼쪽은 마카오에서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곳은 고급 호텔들이 밀집한 코타이(Cotai) 지역이다. 하지만 2006년 간척으로 조성된 코타이는 화려한 관광·도박 특구일 뿐, 마카오 반도가 간직한 수백 년의 역사와는 결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호텔 센트럴 루프탑 전망대는 마카오 반도의 풍경을 360도로 조망하며 그 정취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오른쪽은 호텔 쪽 아님. 걍 반도에서 느낄 수 있는 느낌).

전망대와 주변 명소 ❘ 출처: macaomagazine.net

위치는 마카오 반도의 중심가인 알메이다 리베이로 애비뉴(Almeida Ribeiro Avenue, 신마로). 마카오 주요 상업지구를 연결하는 도로변에 자리해 접근성이 뛰어나고 마카오 최대 관광 명소인 세나두 광장이 불과 1분 거리라 부담 없이 들르기 좋다.

11층이라 높이감은 크지 않지만 적당한 고도에서 마카오 도심을 내려다볼 수 있어 오히려 풍경을 더욱 디테일하게 감상할 수 있다. 루프탑 전망대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된다. 무료라서 그냥 1층에서 엘베타고 11층으로 바로 올라가면 된다


 

투어 시작~!

언제 어디서나 봐도 좋은 감성적인 호텔 빌보드

(시계방향) 호텔리즈보아, 알메이도 리베이라 에비뉴 (신마로), Bank of China (동그랑땡), 그랜드 엠퍼러 호텔 (왕관) 

전망대 공간, 삐딱감성

북동쪽에서 서쪽으로 쭈욱 돌려봄

신마로를 따라 소피텔을 바라보면 영상에는 잘 담기지 않았지만 저 반짝이는 조명이 특히 인상적이다. 마카오 반도의 다양한 뷰 스팟에서 이 조명을 담는 현지인/관광객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서 신마로와 소피텔을 바라봄

왼쪽 뒤로 민트와 트로피칼 느낌 네온사인이 인상적이었던 마카오 마스터스 호텔 Macau Masters Hotel 萬事發酒店이 보인다. 

세인트폴 유적(왼쪽)과 몬테 요새(중앙 > 오른쪽)의 야경

역시 갤럭시폰으로 찍으면 야경의 선명도가 많이 떨어지는 게 아쉽다…

그랜드 리스보아 호텔 – 사진으로만 봤을 땐 흉물스럽게 보였는데, 실제로 가보니 정이 들고 묘하게 예쁘게 느껴졌다. 나 같은 관광객에겐 약간 이정표 같은 놈이었다.

1864년에 세워진 기아 요새 등대는 여전히 작동 중이었다! 낮에 방문 해보고 저녁에 이렇게 또 마주하니 묘하게 신기한 느낌

마카오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세인트 폴 유적으로 꺾이는 커브 동선이 유독 역동적으로 보인다.

좀 더 줌인을 해봄

세나두 광장 방향 풍경

  •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건물은 자비의 성채(Holy House of Mercy of Macau).
  • 그 뒤쪽의 화려한 건물은 M8 Macau.
  • 그 왼쪽 위로는 마카오 대성당(Cathedral of the Nativity of Our Lady)이 자리하고 있다.

 

  • bossini.X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마카오 시정국, 안쪽 중정과 안뜰 공간이 궁금해진다.
  • 바로 그 옆은 1935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되던 아폴로 극장(Teatro Apollo). 영화의 메카이자, 한때 마카오 젊은이들의 만남의 성지였다고 한다. 교통의 요지였던 것까지 생각하면 아주 옛날 한국 명동의 중앙극장 같은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으로 반짝이는 그랜드 리즈보아, 오른쪽 동그랑땡 간판을 가진 건물은 뱅크오브차이나 마카오지점이다.

아래쪽에 보이는 물결무늬 바닥이 바로 세나두 광장,
크리스마스 장식 뒤로 보이는 건물은 1929년 지어진 마카오 우체국 건물  

세나두 광장과 그랜드 리즈보아 방향 풍경, 역시 이쪽이 볼거리가 많긴 하다.

호텔 빌보드 뒤쪽, 저 위까지 올라가보면 좋으련만...ㅎ

왼쪽에 우뚝 솟은 건물은 마카오 타워, 오른쪽의 뾰족한 작은 건물은 페냐 성당(Penha Church)

왼쪽 황금색 건물은 중국 74위 높이의 주하이 타워 (330m). 주하이 쪽이 모던한 고층 건물은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 역시 마카오의 역사 깊은 감성을 따라올 수가 없다

마카오 골목길의 건물들 – 이런 곳들을 직접 걸어 다니며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루프탑 공간

주하이쪽 풍경

성냥갑처럼 늘어선 건물들. 이 정도 높이에서는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느낌과 아래의 디테일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어 좋다

8,90년대 홍콩-마카오 누아르 감성

지금까지 호텔센트럴, 신중앙 호텔 루프탑 전망대였습니다 

낯의 모습은 다음 포스팅에 다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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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는 그동안 왓챠에 찜 해 둔 목록들 중 땡기는 거 위주로 봤다. 개인평가는 5점 만점 기준임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 4점 (왓챠, 웨이브, 티빙, 넷플릭스)
- 유리고코로 : 4점
(왓챠)

- 셔터: 4점 (왓챠, 웨이브, 티빙)
- 방과후 소다 먹기 좋은 날: 3.5점 (왓챠, 웨이브, 티빙)
- 시라이: 3점 (왓챠, 웨이브, 티빙)
- 외사경찰: 2.5점 (왓챠, 웨이브)

 

| 🏫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4점)

Idiot Girls and School Ghost: School Anniversary | 2014 공포/코미디 · 한국 
김민하 감독 | 출연: 김도연, 손주연, 정하담, 강신희, 하서율(귀신)

개교기념일에 학교에서 귀신과의 숨바꼭질을 하고 이기면 수능만점을 받는다는 전설을 알고 게임에 참여하는 8등급 여고생 4명의 좌충우돌 우당탕탕 코미디. 최근에 한국식 B급 영화로 [핸섬 가이즈]를 정말 재밌게 봤는데 이 영화 보고 평점 0.5점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과장해서 언젠가 이 영화는 한국식 B맛 영화의 신기원을 연 명작이라 평가 되지 않을까 할 만큼 재밌게 봤다.

각 캐릭터들과 찰떡 감성이 돋보이는 개별 포스터들

성공하면 수능 만점이지만 실패하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다라는 조건이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에게 닥친 가장 현실적이고 문제적 상황이 아닐까 싶다(입시와 우정). 아무튼 친숙한 공포물의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시종일관 클리셰를 부수고 이탈하는 점들이 매력적이고, 중후반부를 지나며 뇌절을 거듭하고 몰입감은 더욱 깊어만 간다.

손주연 (우주소녀 은서), 정하담, 김도연(위키미키), 강신희

정하담 배우는 극중에서도 용병이지만 실제 배우로서도 고급 용병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 외 세 명의 배우들은 발연기에 가깝지만, 이 B급 영화와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고 케미도 훌륭하다. 전체적 설정은 [여고괴담]과 [링], 코믹과 병맛 스타일은 [하우스]와 [무서운 영화], 고생하는 빌런과 클리셰 부수기는 [스크림]을 연상케 한다.  

영화보고 떠올랐던 개인적으로 재밌게 봤던 한국 B급 영화들: [긴급조치 19호 2002], [마지막방위 1997], [시실리 2km 2004], [차우 2009],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2020], [핸섬가이즈 2024]


 

| 👨‍👩‍👦 유리고코로 (4점)

ユリゴコロ | 2017 스릴러/미스터리/드라마 · 일본 
쿠마자와 나오토 감독 | 출연: 요시타카 유리코, 마츠자카 토리, 마츠야마 켄이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찾던 한 남자가 아버지 방에서 발견한 공책 속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사랑, 인간 내면의 어둠을 마주하는 이야기.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펼쳐지는 미스터리 드라마. 보통 미국 영화의 가족이 지켜야 할 대상으로 묘사된다면, 일본 영화 속 가족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이 영화가 특히 그랬다.

Rihwa「ミチシルベ」2017

Rihwa가 부른 주제가 「ミチシルベ」도 참 예쁜 노래다. 감독이 직접 만든 뮤직비디오에는 주인공 미사코의 중학생 시절이 담겨 있어 영화 속에서 볼 수 없던 감정을 전한다.

업데이트 중인 나의 영화 촬영지 구글지도 중 유리 고코로 촬영지, 군마 & 도치키현
이별의 장소, 키류강 댐, 만남의 장소 카마가와 프로미나드

이 영화는 촬영지도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두 연인이 처음 만난 장소와 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군마현(현재)과 토치기현(과거)에서 촬영되었고 각각의 장소는 카마가와 프로미나드와 키류강 댐이라고 한다. 


 

| 📸 셔터 (4점)

Shutter | 2004 공포/미스터리/스릴러 | 태국 
반종 파산다나쿤, 팍품 웡품 감독 | 출연: 아난다 에버링엄, 나타위라눗 통미, 아치타 시카마나

사진 속 정체불명의 형상을 쫓던 커플이 점차 숨겨진 과거의 비밀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희대의 망작, [랑종]의 반종 파산다나쿤 감독의 데뷔작이자, 아시아 공포 영화의 '모범 답안' 같은 웰메이드 작품.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어 지금 봐도 무섭고 재밌는 영화.

유튜브 : nutti3ism

이 영화도 음악이 인상적. 태국 전통 장르인 루크크룽 (Luk Krung)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컨트리 풍으로 영화의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린다. 제목은 [วิญญาณในภาพถ่าย]. 음... 찾아보니 "사진 속의 영혼"이라는 뜻으로 수텝 웡캄행 Suthep Wongkamhaeng의 노래다.   


 

왼쪽과 오른쪽의 캐릭터는 '소녀가 소녀에게'의 토미타와 미유리를 딱 떠오르게 한다

| 🥤 방과후 소다 먹기 좋은 날 (3.5점)

放課後ソーダ日和 特別版 | 2019 드라마/일상 | 일본 
에다 유카 감독 | 출연: 모리타 코코로, 타나카 메이, 아오나미 준, 모톨라 세레나(카메오), 호시 모에카(카메오)

우연히 만난 세 소녀들이 방과 후 크림소다 투어를 하는 이야기다. 감독의 처녀작인 [소녀가 소녀에게]의 (실제로 카메오로 특별 출연하는) 미유리와 토미타의 관계 속에 능청스러운 캐릭터가 하나 들어와서 펼치는 듯한 일상 속 섬세한 감성의 이야기다. 처음엔 달달하면서도 나중에는 크림이 녹아내리듯 가벼우면서도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느끼게 해 준다. 달콤 쌉싸름과는 또 다른 상큼 섬세한 맛의 청춘 감성. 나도 인생방학 말고 그 시절 여름방학을 다시 한번 가져 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디즈니+ 오리지널 [쇼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호시 모에카를 잠깐 만날 수 있다.

羊文学 "天気予報" 2018

이 영화도 OST가 인상적이었는데  羊文学 히츠지분가쿠의 "天気予報 일기예보"라는 몽환적인 느낌의 인디록 음악이다. 


 

| 👁 시라이 (3점)

シライサン | 2019 공포/드라마 | 일본 
오츠이치 감독 | 출연: 이이토요 마리에, 이나바 유우, 소메타니 쇼타(카메오)

괴이한 존재, '시라이상'의 이름을 듣는 순간 끝없이 따라다니는 저주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는 괴담을 그린 영화다. 일본 공포 영화의 그 뻔하디 뻔한 공식을 답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름 몰입감이 있어서 어쩌다 하나 얻어걸린 느낌이다. 그렇게 좋지도 않았지만 아주 나쁘지도 않았던 심심풀이 땅콩 영화. 

Cö shu Nie - inertia / THE FIRST TAKE 2019

ㅇ이번 주 영화들은 인상적인 음악들이 많았는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 Cö shu Nie 코슈니에의 "inertia"라는 곡으로 기괴한 공포영화에 어울리는 듯한 아방가르드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음악이다. 


 

| ☢️ 외사경찰 (2.5점)

外事警察 その男に騙されるな | 2012 스릴러/범죄/드라마 | 일본 
호리키리조노 켄타로 감독 | 출연: 와타베 아츠로, 김강우, 마키 요코, 오노 마치코, 이경영

북한의 우라늄 밀반입 정보를 입수한 일본 공안의 문제적 경찰과 한국 국가정보원 NIS의 대테러 한일 합동작전 이야기다. 소설 원작인데 1탄은 TV 드라마로 제작되었고, 2탄이 영화화 된 본 작품이다. 김강우, 이경영, 김응수 같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만큼 서강대교, 잠수교, 국회의사당 등의 익숙한 풍경도 보인다. 

뭔가 묘하게 겹쳐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문제는, 영화가 참 애매하다. 범죄/스릴러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드라마에 더 치중되어 있다. 비슷하게 범죄/스릴러의 탈을 쓴 신파 영화의 걸작 [모래그릇] (1974) 정도의 폭발적인 감성은 아니지만 꽤나 드라마적인 영화다. 스토리 한 편이 꽤나 잘 짜여 있고 배우들 연기도 좋아서 몰입도는 높은데 재미가 없다. 
 

이번 주말에 2월 마지막으로 무슨 영화를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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