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후쿠오카. 볼만한 여름 바다를 찾아 지도를 넘기다, 바닷물 속 하얀 토리이와 나란히 선 두 개의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일명 '부부바위'다.
두 바위는 일본 창세 신 이자나기·이자나미를 상징해 혼인과 가족 화합을 기원하는 곳으로 알려졌고, 석양이 특히 아름다워 ‘일본 석양 100선’에도 이름을 올렸다.
* 공식 표기 : 桜井二見ヶ浦 / Sakurai Futamigaura’s Couple Stones
후쿠오카 도심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약 한 시간, 반나절이면 왕복이 가능.
그해 처음 마주하는 바다를 스스로에게 선물하기에 충분해 보여 망설임 없이 목적지를 확정했다.
아침 첫 버스를 타고 오전 당일치기로!
| 아침 5시, 하루의 시작
전날 밤 늦게 체크인한 lyf 텐진. 알람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고층에서 엘베타고 공용 냉장고 가는게 불편했던 것만 빼면 게스트하우스와 비즈니스 호텔의 장점만 모아둔 곳이었다. 천천히 준비하고 내려오니 이른 시간이라 로비엔 직원 한 명만 있었다.
쏟아지는 비 속을 뚫고 아침 식사 목적지인 나가하마 선어시장회관으로 향했다. 여행 중 내리는 비도 나쁘지 않다.
"오늘은 비 오는 바다를 보겠군!"
그 기대를 품고 시장 내 식당으로. 오전 7시 즈음 하카타 우오가시 시장회관점에서 제철 우니가 올라간 카이센동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자세한 식당 후기는 아래 링크).
[후쿠오카] 하카타 우오가시 시장회관점 이른 아침식사 @ 07:15
여행을 할 때면 항상 지역 시장을 찾아가게 된다. 물론 번쩍이는 관광 명소들도 좋지만, 시장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 일상, 음식, 전통을 가장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아침 일찍부터
electronica.tistory.com
식당을 나서자 장대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높아진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번지며 눈이 부셨다. 시계는 8시를 막 넘겼고, 9:42에 출발하는 후타미가우라행 버스까지는 시간이 넉넉하다. 푸른 하늘 아래 도심을 천천히 걷기로 했다.
| 8시, 도심 산책과 안국사 전설
걷다 보니 전선들 사이로 고요한 전통 건축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안국사(안코쿠지). 임신한 채 사망한 여성이 관속에서 출산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밤마다 사탕을 사러 나온다는 '사탕귀신'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현장에서 이 이야기를 찾아보고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30분쯤 걸어 도착한 텐진 4초메 버스 정류장. 그런데 안내판에 버스 시간표가 없다? 인터넷에서 봤을 때 항상 시간표가 꽂혀 있었는데 말이다. 갑자기 불안해 진다.
아니, 상식적으로 세상 어디 버스가 어느 날은 경유지를 스고 안 스고 하겠냐마는, 1박 3일 같은 타이트한 여행이라 변수는 용납할 수 없다. 불안하게 기다릴 바에 시발점인 하카타 버스 터미널로 바로 가기로 했다 (터미널 첫 차는 9시 38분).
구글맵을 보니 터미널까지 2.3km, 걸어서 약 35분. 1시간 정도 남았으니 나카스 풍경구경하며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그러던 와중에 또 드는 생각, 토요일인데 사람 많아서 버스 못 타면 어쩌지? 첫 차 못타면 오늘 스케쥴이 다 어그러지는데.
(전 날밤 이치란에서 줄 서던 악몽까지 더해지며) 정신 차리고 급히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짧은 여행에서 택시는 시간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더군다나 후쿠오카는 도시가 작아 택시+뚜벅이 조합이 좋다.
"하카타 바스 타미나루, 오넹아이 시마스!!"
| 9시, 하카타 버스 터미널 도착
가까운 나카스에서 타서 그런지 약 5분 후 9시에 터미널 도착. 건물은 직사각형 평면 공간에 세로 이동축은 중앙 에스컬레이터 하나. 층마다 에스컬레이터를 중심으로 돌면 승강장이 번호별로 이어지는 단순한 동선이라 플랫폼 찾기 쉽다(❗다만 꼭대기인 다이소까지 올라가면 탈출이 어려울 수도).
후타미가우라로 가는 웨스트 코스트 라이너 쇼와 고속버스 플랫폼은 3층 32번이다. 데스크에서 후타미가우라 행 표를 사려하니 하차 시 내면 된다고 한다.
플랫폼 도착. 내 앞에 한 10여 명 즘 이미 웨이팅이 있었다. 노선표에 정거장 별 하차 시 가격도 써져 있으니 현장에서 참고하면 좋다. Nishinoura-hoikuen-mae ~ Futamigaura 구간 정차는 1,150엔 균일가였는데 지금도 변동 없는 것 같다.
정시에 출발했고 텐진 4초메도 당연히 경유했다. 결국 ‘삽질’이었지만 출발부터 사람들이 꽤 타서 그곳에서 기다렸다면 위험할 뻔했다. 덕분에 바다뷰 창가석까지 앉았으니 결국 잘한 선택이었다.
이제 간다, 이토시마로
| 9:36 am, 도심을 벗어나
고가에 오르자 아침식사 했던 선어시장회관 근처 하카타 포트 타워의 풍경이 창 너머로 보인다.
세로가 많은 도심을 벗어나니 펼쳐지는 풍경은 점점 느긋한 '가로'로 눕는다. 높고 먼 시야 속에 시골 정취가 서서히 넓어지는 게 좋다.
좌석은 후타미가우라로 갈 때 오른쪽, 도심으로 돌아올 때 왼쪽에 앉으면 오션뷰를 확보할 수 있다. 도로 폭도 좁은데다가 옆 가드레일 밖으로 바다가 거의 맞닿아 있어 풍경 구경 시 몰입감이 좋다.
야자수 풍경과 함께 팜트리스윙 Palm Tree Swing이라는 바닷가 그네 명소도 보인다. 정류장은 자우오혼텐마에 ざうお本店前. 난 오전당일치기라 이번엔 스킵.
팜트리를 지나면 내륙 도로로 들어선 후 곧 후타미가우라에 근접한다.
💡버스 스케줄 Tip:
당시는 오전 9시 38분이었는데 2025년 기준 8시 58분이 첫 차다. 아래 쇼와버스 홈페이지 스케줄 링크로 가서 확인 추천.
* 버스: West Coast Liner (Showa Bus)
* 종착역: Ito Eigosyo 행
* 시간표: 평일/주말/공휴일로 나뉨
* 하차: Futamigaura (Meotoiwamae) (Fukuoka Pref.)
* 거리/시간: 약 32km, 약 1시간 20분
* 가격: 1,150엔 (편도)
* 첫 차: 8:58am (1:38pm 막차) (2025년 기준)
Hakata Bus Terminal Timetable West Coast Liner [Showa Bus] Direction:Ito Eigyosho| 昭和バス/Showa Bus
West Coast Liner [Showa Bus] Direction:Ito Eigyosho Select timetable from other lines Direction:Karatsu Go Oteguchi Direction:I Mari Go (Fukuoka Airport-Imari) [Showa Bus] Imari Eigyosho Direction:Ito・Shima-go Kafuri/Ito Eigyosho Date selection 2025
transfer.navitime.biz
| 10:50, 팜비치 정류장 도착
바다 풍경에 몸을 맡기며 천천히 걷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팜비치(Palm Beach) 정류장에서 내렸다. 후타미가우라까지는 600 m 남짓이라 설렁설렁 걸어 10 분이면 닿는 거리다.
토리이·신사 같은 전통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정류장을 내리자마자 첫인상은 살짝 당황스럽다. 뜬금 없는 하와이 감성.
핫도그·치킨 간판까지.
팜비치 정류장에서 한번 쭉 돌아봄
푸른 하늘 밑에 드넓은 바다풍경, 모래사장, 밀려오는 파도에 살짝 울컥했다. 매년 처음 만나는 바다의 풍경은 어디던 마음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다 (전두엽이 많이 파괴되었는지 뭐만 봐도 눈물이 많이 난다).
저 멀리 목적지가 보인다. 하얀 토리이와 부부바위.
팜비치에서 후타미가우라까지 두 정거장 거리다. 가는 길에 카페나 가게도 구경하고, 심심한 도로가 나오면 해변 따라 걸어도 좋다.
| 부부바위로 가는 길에서 본 것들
모래사장에서 뒤돌아보니 올가닉한 느낌의 유목 오두막(드리프트우드 파빌리온)이 보인다. 바다와 첫인사를 마쳤으니 버스 정류장 바로 옆에 위치한 저 오두막부터 탐험을 시작한다.
이 동네 카페 붐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는 선셋비치(Sunset Beach) 카페에서 지었다고 한다. 바깥쪽은 낮임에도 약간 어둑한 느낌인데 입구 쪽은 초록 넝쿨과 꽃으로 뒤덮여 밝아 보인다.
왼편 아치에는 판타지 느낌을 자극하는 투명한 부표가 매달려 있는데 RPG 아이템 같아 채집하고 싶은...
조개껍질과 자갈 모자이크로 된 SUNSET BEACH 문구가 보인다. 자연친화적인 느낌이 좋다.
내부는 낮에도 약간 어둑하다. 선셋이란 단어를 보니 해 질 녘 무렵이면 훨씬 판타지스럽게 별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혼여라 수줍은 셀피 후딱 찍고 다음 관광객들에게 턴을 넘겨준다.
파빌리온을 나와 다시 걷는다. 서핑샵이 있다. 이토시마 지역은 서퍼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던 이토시마 사보 (糸島茶房) 카페 (메뉴를 보니 달달한 것들이 많다). 토리이 때문에 '일본다운 시골 풍경'을 예상했던 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온통 하와이안 톤이다.
여행 오기 전 인터넷에서 본 리뷰 좋았던 햄버거 푸드트럭(?) 키친카(?). 보다시피 기동성이 좋아서인지 날씨에 따라 위치가 유동적이라고 한다. 이름은 Itoshima Hamburger Cherir (이토시마 버거 셰리르).
팜비치 인근 몇 안 되는 일식집으로 바다풍경 보며 여유롭게 카이센동을 (하루 세 번도 좋아!) 먹으려 했던 Itoshima Seafood Restaurant (糸島海鮮堂 二見ヶ浦本店). 근데 웬걸, 오전 11시도 되기 전 주차장은 거의 만차에 웨이팅까지. 분위기 보니 부부바위 보고 오면 웨이팅이 더 길어질 것 같아 바로 포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결국 "양식도 이 동네에선 향토 음식이겠거니" 하고
이토시마 햄버거나 하나 포장해 먹는 게 좋았으려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 11:07 am, 부부바위 도착
목적지에 도착했다. 해변가 모래사장 따라 걸어보기도 하고, 다시 올라와 도로/인도 따라 걸어보기를 반복하며 오는 길은 즐거웠다. 팜비치 정거장에서 미리 내리길 잘했다.
사진 좌측의 돌계단을 내려가 작은 갯고랑을 건너는데 발란스 잘못 잡아 넘어질 뻔. 암튼 부부바위 앞도 이미 사진 찍기를 위한 대기열이 있다. 유독 중국어(만다린)가 많이 들렸다.
웨이팅 안내 표시는 없지만 모두 알아서 선다. 간혹 기다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없이 오랜 시간 사진 찍는 팀도 있었는데 웨이팅 전체가 그리 길진 않아 견딜만했다.
인터넷에서 보니 한국 동해안 마냥 역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 사진들도 있던데 이 날은 꽤 얌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 약간 더 가까이 다가간다.
포토타임 찰칵
광각으로도 찰칵
막 신비롭고 그런건 아니었지만 저런 느낌의 토리이를 보면 명작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언젠가 꼭 쓰시마와 이키섬으로 고오쓰 성지순례를 가고 싶다.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적당히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전체 분위기는 이러하다
근처 해변가를 배회하다가 생선구이 칼집 자국 난 것처럼 보이는 바위가 독특해 보였다.
충분히 구경했으니 이런저런 샷도 찍어보고,
입구의 돌계단에 앉아 자연과 사람 풍경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했다. 평화롭다. 물놀이하는 사람들, 재잘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와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좋다.
두 바위를 묶은 굵은 시메나와(신성한 새끼줄)는 매년 5월 새로 교체하는데, 길이 30m, 무게는 무려 1톤에 달한다고.
일본을 창조한 신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결속을 상징하며 (둘은 쌍둥이 남매), 혼인-가족 화합 기원의 상징이다.
| 11:57 am, 돌아갈 시간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복귀방향으로 유턴한다.
후타미가우라 앞 공영 주차장이다. 화장실도 있다. 피크 시간이라 그런지 주차장이 꽉 차 있다. 암튼 시간이 많이 남고 날씨도 너무 좋아서 하차했던 팜비치 정거장 쪽으로 다시 역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후타미가우라 정류장이다. 참고로 사진의 반달 모양의 청록색 사인은 웨스트코스트 라이너 고속버스 정거장이라는 뜻이다. 일본은 도로가 한국과 반대라서 바다 쪽 정류장은 후쿠오카 시내로 돌아가는 방향, 그 반대쪽은 후쿠오카에서 오는 방향이다.
사인 밑에는 하카타 버스 터미널 종착행 스케줄이 써져 있다. 종점인 하카타 버스터미널까지 가기 싫으면 텐진 4번가에서 내릴 수 있다.
| 💡TRIVIA: 버스 정류장 이름의 의미
정류장 이름은 후타미가우라(메오토이와마에)(후쿠오카현) — 二見ヶ浦(夫婦岩前)라고 제법 길게 적혀 있는데 의미는 아래와 같다.
- 후타미 (二見) : ‘두 개의 경치’ → 쌍바위
- 가우라 (ヶ浦) : 해안·포구
- 후타미가우라 (二見ヶ浦) : ‘쌍바위가 있는 해안’이라는 고유 지명
- 메오토이와 (夫婦岩) : 부부바위
- 메오토이와‑마에 (夫婦岩前) : ‘부부바위 앞’이라는 뜻의 정류장 명
- 후쿠오카현 이토시마시 : 일본에 후타미가우라 (두 경치를 품은 해안)와 메오토이와(부부바위)는 일본에 여럿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구역명이 함께 붙음.
- * 사쿠라이 (桜井) : 사쿠라이 신사가 관리 -> 그래서 이 지역의 공식 명칭은 '사쿠라이 후타미가우라'
이토시마 시푸드 레스토랑. 11시 59분, 줄이 더 늘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카이센동을 먹겠다는 여행 전의 상상은 안일했던 것이었다 ㅋ
12시 2분 경의 풍경이다. 이토시마 사보 카페 주차장도 꽉 차있다 (파란 차 한 대는 아직도 있음).
선셋 비치 카페 오두막까지 다시 걸어왔다. 체력이 살짝 떨어지니, 저 구슬도 괜히 영롱해 보인다. 배도 조금 고프다. 그래도 도심으로 돌아가 영화 <후쿠오카>에 나왔던 우동집에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참기로.
| 12:10 pm, 버스 타기 전 사이드 퀘스트
팜비치 정류장 표지판을 보니 하카타행 버스는 1:01 pm 도착이다 (분 단위 설정 ㄷㄷㄷ).
이건 올 때 내렸던 반대 방향 정류장 사진이다. 좌측 아래에 영어로 "PALM BEACH Bus Stop"이라고 쓰여 있듯, 말 그대로 도로 옆에서 그냥 내린다 ㅋㅋㅋ
아무튼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생겨 마지막 사이드 퀘스트로 팜비치 주변과 가게를 돌아보기로 했다.
너무 길어졌으니 그 이야기는 추후 포스팅에서...
| 마무리
짧지만 밀도 높은 오전 반나절이었다. 바다, 신화, 카페, 모래사장, 고속버스 등, 여름 바다를 잘 느낄 수 있어 만족스러웠던 후쿠오카 근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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