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떠돌며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글들을 보고 싶을 때 쉽게 꺼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터넷 책장같은 개인 아카이브 입니다. 원글의 링크는 최대한 찾아 놓지만 커뮤와 블로그 등을 통해 전해지고 전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혹시 보시고 원글 링크를 아시는 분들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6년의 글이다. 나에게 소매물도란 곳을 가야할 이유를 만들어 주었던 '어떠한 끌림'이 있었던 글. 내가 갔을 때도 (지금도 아마도) 관광객들로 가득한 섬이었지만 이 글은 무언가 날 것의 느낌의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소매물도를 연상시켜 주며 토막 같은 역사(?)도 살짝 알 수 있게 해준
특히 회사에서 강제퇴직을 당하고 정처없이 향한 무인도 같은 섬에 갔다가 파랑주의보가 발생하며 그 곳에 갇혀 버려 일주일을 보낸 한 도시인의 갑작스런 섬생활이 감성적으로 표현된 여행기로 짧지만 몰입감을 경험했다
글 속에 등장하는 다솔찻집, 언어장애인 아주머니의 해산물 모듬, 폐교... 그리고 갑자기 쏟아지던 비.... 글을 읽으며 상상했던 이미지를 직접 가서 직접 경험할 때마다 이 글의 기억이 떠오르며 소매물도 여행에서 신비한 느낌을 가지게 해준 고마운 글.
작년 혼자 찾았던 소매물도.
일주일간 폭풍우때문에 섬에 갇히면서 춥고 외롭던 나를 유일하게 위안해주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찻집.
다솔찻집.
지금도 나의 뇌리에 여전히 남아 마음의 안식을 줍니다.
특별한 날에 다시 찾으려 꼭꼭 숨겨놓은 곳... 정말 소중한 사람과 비밀스럽게 꺼내 펼쳐봅니다.
그곳에 가면 화려하진 않지만 창가에 앉으면 바다를 다 가질 수 있습니다.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하루종일 창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셨습니다.
창가에 꽂힌 수많은 사람들의 방명록. 그리고 벽엔 낡은 시계.
이곳에 오면 현실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크리스마스날 이 섬을 다시찾아야 할 기억을 더듬어볼까요?
경상남도 먼 바다끝 섬...이름만 들어도 가슴설레이는 소매물도...
그 해 여름 나는 왜 그 멀고도 먼 섬으로 떠날 수 밖에 없었고 또 일주일 동안 갇혀 있어야만 했을까.
감원이라는 명목으로 회사에서 강퇴되어 깊은 방황끝에 배낭하나 달랑매고 세상과 동떨어진 그 곳...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정보만을 가지고 소매물도를 찿았다.
전날 자정무렵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밤차를 타고 통영시내에 도착한것이 새벽 5시.
배가 떠나는 시간 아침 7시까지 피씨방에서 기다렸다가 오른 배 안에는 섬주민들 외에는 여행자는 나 혼자인것 같았다.
배가 출발하자 서너명 되는 아저씨들은 승객이 없어 휑하게 비어있는 좌석에 자리를 잡고 드러누웠다.
끝도 없을것 같은 수묵화를 닮은 바다풍경을 가로지르며 배는 천천히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올 낌새인지 잿빛 바다와 하늘은 안개로 뒤덮혀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1시간도 넘게 파도를 헤치며 나가던 배는 비진도를 비롯한 몇몇 섬에 들러 섬주민을 내려준 후 버스정류장의 종점격인 소매물도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조그마한 섬마을 선착장에 내려 너무나 단촐하게 소박한 집들과 사람의 흔적이 별로 묻어나오지 않는 섬 구석구석 풍경에 흠뻑 빠지고 말았고 이 고립안에서 나도 모를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
하지만 걱정하실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내일 오후 3시경에 떠날 배를 타고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룻밤 묵을 숙소로 정한곳은 외지인이 들어와 폐교를 숙소로 개조한곳이었고 그 외지인이란 마흔을 넘은 근육질의 아저씨였다.
젊을땐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어찌 어찌하여 아프리카 등지에서 용병생활을 하다 이곳에 터를 잡고 숙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의 속사정은 알 수 없었다.
일단 짐을 내려놓고 섬을 둘러보려고 하는데 아저씨가 혼자 기르는 콜리종의 개의 데리고 안내를 해주겠다며 자청했다.
소매물도는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주민들이 살고 있는 본섬과 하얀등대만이 놓여있는 등대섬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매물도는 잠시동안 머물다 가기에는 벅찰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소매물도에는 자전거조차 다닐 길이 없으니 경운기라던지 승용차라던지 바퀴달린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도시에서의 지치게 만드는 소음이 있을리가 없었고 오직 파도와 바람소리만이 귓가를 스칠 뿐이었다.
아저씨가 만든 카레라이스로 함께 식사를 한 후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이방인에게 베푸는 아저씨의 친절함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문제는 다음날...
배가 파랑주의보로 인하여 뜨지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침배도 들어오지 않았고 오후배도 뜨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의보에 대해 무신경했던 나는 어제 오후배를 이용해 육지에 또 다른 집이 있는 섬주민들 몇몇 마저 이미 빠져나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배가 들어오지 않으면 민박손님도 없으니 다들 육지로 나갔던 것이다.
하늘은 대낮임에도 더욱 어둑어둑 해져갔고 파도의 높이또한 거칠고 높아져만 갔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통영여객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파랑주의보가 해제되기전에는 배가 며칠동안 뜰 수없다는 말을 전해들은 나의 불안감은 가중될 수 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에 걱정거리가 하나 둘씩 떠올랐다.
숙박비도 숙박비지만 식사비하며 거기다 갈아입을 옷가지등등...또 걱정하실 부모님 생각도 그렇고.
비옷을 입고 선착장을 내려가 서있으니 동네 할아버지가 높은 파도에 휩쓸려갈 수 있으니 어서 올라가라고 멀리서 외치며 손짓을 했다.
어쨌든 섬에 머무르는동안 무엇인가 할 거리를 찾아야만 했다. 어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칠줄 모르고 폐교 운동장을 적시고 낡은 창문을 때렸다.
나는 혼자였다. 그런데... 외롭다기보다 혼자안에서 느껴지는 이 자유로움은 무엇인가.
식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숟가락 하나만 엊으면 된다면 아저씨의 말에 부담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대신 설겆이는 내 차지였다.
동네에는 벙어리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곧잘 이 폐교를 찾아오고는 했다. 수화를 배우지 못한 아줌마, 아저씨가 끙끙거리시며
손짓, 발짓을 하실때는 판토마임을 보고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까맣게 그을린 얼굴과 순박한 눈빛 그리고 정겨운 미소는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친숙한 느낌을 절로 가지게 하였고 하루 이틀 지나서는 나까지도 아저씨가 말하시려는 의도를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특히나 콜리종의 개흉내를 내실땐 절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벙어리아줌마는 해녀였고 전복, 해삼, 멍게등을 팔아 섬여행객들에게 팔고 벙어리아저씨는 배로 섬관광을 시켜주며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벙어리 아줌마에게서 만원주고 산 푸짐한 자연산 전복과 소라를 먹었다. 정말 꼬들꼬들한것이 얼마나 맛있던지.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 비가 오는 와중에도 나는 매일 섬들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풀숲을 거닐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졌으며 아무것도 나를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섬의 꼭대기로 올라오는 중턱에는 섬의 유일한 찻집 '다솔찻집'에서 바다를 보라보며 차를 마셨다.
황토흙벽으로 발라진 찻집의 소박함과 따스함, 수많은 사람들이 남기고간 낡은 방명록의 사랑과 우정의 흔적들.
그러나 다솔찻집이 주는 가장 큰 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이 다솔찻집의 주인부부는 젊은 여인네 혼자 여행을 왔다가 이혼하고 혼자 사시는 주인아저씨와 마음이 통하여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하는데 참으로 소설같은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섬은 밤 12시만 되면 섬 전체의 불이 꺼진다.
발전기로 전기를 돌리기 때문이고 발전기를 돌리는 아저씨가 보통 12시면 발전기를 끄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주말의 영화라도 할라치면 영화가 끝날때까지도 발전기는 돌아간다.
그리고 낮에는 아침 12시까지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끊기고 저녁 6시가 되어야만 다시 전기가 돌아간다.
핸드폰도 터지지않고 그러니 더욱 고립의 공간일 수 밖에 없었다.
밤엔 폐교를 개조해 만든 숙소의 교실창문이 태풍에 덜컹거리고 창문으로는 일정하게 등대의 불빛이 깜깜한 방안을 비출때면 긴장감섞인 공포감을 주었다.
새벽 5시경 합판으로 만들어진 2층침대 위에서 눈을 뜨면 창밖으로 뿌연 안개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몽환으로 다가왔다.
비도 이제는 그치고 주의보도 해제되어 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아름다운 섬도 휴가기간을 맞아 이제 시끌시끌 해질것이다.
내가 갈 시간이 다가왔다는 얘기다.
남겨두었던 올라가는 차비를 식사비와 숙박비로 계산하려고 하니 아저씨께서는 올라가서 잘 살라고 하시며 한사코 돈 받기를 거절하셨다.
아저씨께서도 혼자 있는동안 재미있으셨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하셨다.
낯선 이방인에게 베풀어주시는 아량에 고맙기 그지없었다.
남에게 간섭받기를 극히 싫어하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간혹 느끼기도 했었는데 좋은 사람 만나서 잘사세요.
도착한 날부터 떠나올때까지 내내 섬은 안개와 비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도 내 머리속에는 소매물도는 비, 안개, 태풍, 운동장... 이 단어로 가득차 있다.
잊을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을 두고 가는데...
다음에라도 다시 찾게된다면 이렇게 애틋한 마음일 수 있을까.
배가 선창장에서 멀어질때 벙어리아저씨가 손을 흔들고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폭풍우속에 내 방황의 쉼터가 되어주고... 내가 현실속으로 사라지듯이
안개속으로 서서히 가려지는 섬...소매물도.
[그리고 나의 개인 기록 조금... (블로그쥔장)]
갑자기 쏟아지던 비가 개이고 있던, 2017년에 다시 찾았던 소매물도의 선착장
글에서 등장하는 언어장애인 해녀 아주머니의 해산물 모듬
소매물도에 '쿠크다스섬'이라는 애칭을 만들어 주었던 1986년 크라운제과의 광고
바닷물이 빠져야만 저 중간의 길로 건너가볼 수 있는 '등대섬'을 바라보는 섬의 전경
그리고 어느 날, 내 기억 속 환상의 섬 이미지를 박살내주었던 뒤늦게 발견했던 한 기사...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4041900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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