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상상마당 홍대 2026.1.14

2026년의 첫 공연 관람은 일본 인디팝 싱어송라이터, 카와니시 나츠키(かわにしなつき Kawanishi Natsuki)로 시작했다. 재작년 즈음 우연히 노래 하나에 꽂혀서 찾아보다가 꾸준한 버스킹으로 팬들과 소통하며 성장해 온 서사에 매료되어 계속 들어왔던 아티스트다. 


 

인디를 응원하는 즐거움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유독 인디 쪽에 마음이 간다. 만개하기 전의 가능성과 열정, 그 에너지를 느끼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그게 결국 진심 어린 응원으로 이어진다. 하여튼, 티켓팅은 치열해 180번대 대기번호를 받았지만 막상 현장은 꽤 여유로웠다. 아티스트에겐 아쉬울 수 있어도 스탠딩 관객 입장에선 콩나물시루처럼 끼어있을 필요 없이 쾌적하게 즐길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물론, 언젠가 꽉 찬 대형 공연장에서 만나길 늘 응원한다!)

첫 곡 Moonlight 공연 중

재미있는 건 관객 성비였다. 소속사 공홈에도 '20~34 여성' 태그를 붙여 놓을 만큼 일본에선 여성 팬이 주류라던데, 이날 상상마당은 체감상 '남탕'에 가까웠다(ㅋㅋ). 일본에서는 가사 공감대로 여성 팬이 많다면 한국에서는 감성적 사운드와 분위기가 남성 팬들에게 더 어필된 걸까. 평일 공연인데도 퇴근 후 달려온 직장인 남성 관객들도 꽤 있었다.

공연시작 전

일본에서 건너온 열혈 팬들도 있었는데 2월 대만 공연까지 따라갈 기세였다. 대만 공연장(HANA Space)이 스탠딩 약 800명 규모라면 이번 홍대 상상마당(약 400명 규모)은 체감상 절반 조금 넘는 밀도였다. 그래서 한국 관객층이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기도 했다.

공연 중반을 넘어 눈물 흘려버린 나츠키

그럼에도 첫 내한 단독 공연이라는 긴장, 그리고 무엇보다 낯선 곳에 찾아왔는데 그 자리를 채워준 팬들에 대한 고마움과 감동 때문이었을까? 공연 중반 MC 타임, 나츠키는 "행복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다소 갑작스러웠지만 그 꾸밈없는 진심 덕분에 관객들의 마음도 금세 몽글몽글해졌던 것 같다. 역시 아티스트와 코앞에서 눈을 맞추며 호흡하는 인디 공연의 '끈끈한 맛'은 결국 이런 순간 때문에 잊을 수 없다.
 

언어의 장벽을 넘는 노력: 한국어 편지와 배경 영상

편지도 읽고 재작년 (합동)공연 왔던 분들 있냐고 물어보던 모습

내한 아티스트들의 "안뇽하쎄요, 감사하므니다, 사랑해요" 수준을 넘어선 정성이 돋보였다. 작년 말 내한했던 브랜디 센키(Brandy Senki)도 한국어 준비를 꽤 해와서 인상적이었는데, 카와니시 나츠키는 아예 장문의 한국어 편지를 써와서 MC 중간중간 읽어주며 소통하려 노력했다.

Butter

특히 대표곡 'Butter'와 '0.0004%의 기적'을 부를 때는 배경 영상으로 한국어 번역 가사를 띄워주었다. 가사 전달이 중요한 곡들인 만큼 언어 장벽을 넘어 음악의 메시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나츠키의 일어도 척척 알아 듣고 실시간 반응하는 관객들

반대로 요즘 한국 관객들의 일본어 실력도 수준급이다. 나츠키가 일본어로 말해도 통역 없이 바로 알아듣고 반응하자 "진짜 알아듣는 거 맞아요?"라며 신기해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브랜디 센키 때와 똑같은 데자뷔! 요즘 J-POP 팬들 일본어 실력은 정말 인정해줘야 한다.) 심지어 짧게 짧게 아티스트 한국어 통역사로 돌변하기도 하는데 요즘 내한 공연의 이런 모습들도 재밌다. 

🎵'Butter': 버터처럼 스며든 기억을 정리하며 이별 이후의 마음을 잡는 노래
🎵'0.0004%のキセキ': 우리가 만난 기적 같은 확률과 운명에 대한 감사

 

 

Playlist: 기억에 남는 곡들

대표곡, 이상적 소녀( 理想的ガール) 공연

인기곡인 '이상적 소녀', '0.0004%의 기적', 'Butter' 등 본인 곡 13곡과 커버 2곡을 포함해 꽉 찬 셋리스트를 보여줬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

어느 고마운분이 벌써 유튜브에 올려주셨다 Confession | 출처:유튜브 @DoAs_Fan

🎵Confession (Cover) : 나츠키가 즐겨 본다는 (한효주, 오구리슌 주연의) 넷플릭스 시리즈 'Romantics Anonymous'에 나왔다며 들려준 곡. 르세라핌 김채원이 일본어로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고 원곡은 2001년 박혜경의 '고백'이다. 나츠키 특유의 건반 연주와 애절한 보컬이 더해져 원곡과는 또 다른 서정적인 맛이 있었다. 정식 커버 영상이 나온다면 플레이리스트에 바로 넣고 싶다.

September | 출처:유튜브 @DoAs_Fan

🎵September: 앙코르 마지막 곡. 태양처럼 뜨거웠던 여름날의 사랑이 계절과 함께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고백송.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MD 굿즈인 맨투맨을 흔들다 관객에게 선물로 던져주는 퍼포먼스까지! 마지막 에너지를 쏟아붓는 모습에 관객들의 호응도 절정에 달했다.
 

에피소드: 개인기, 간사이벤(사투리), 슬로건 해프닝

신청곡 받습니다

1) 개인기: MC 타임 중 관객들에게 좋아하는 일본가수가 누구냐며 물어보며 우타다 히카루, 아이코, 미세스, 아이묭, 미레이, Ado, 백넘버 노래를 즉석에서 짧게 짧게 불러주었다. 관객 소통이 능한 버스킹 고수의 재미가 끊이지 않는 구간의 연속.

표준어와 간사이벤 사투리 차이

2) 사투리 소녀: 노래할 땐 표준어지만 멘트할 땐 고향인 나라현 사투리(간사이벤)가 튀어나온다. "혼마야 혼마야(정말?)"라며 사투리를 쓰는 모습이 일본 현지에서도 입덕 포인트라는데 실제로 보니 그 털털한 매력이 상당하다. 

한국팬들이 선물해준 슬로건을 들고 기뻐하며 장난치는 나츠키

3) 슬로건 해프닝: 팬들이 준비한 슬로건 이벤트에 나츠키가 감동하여 누가 해준 거냐고 묻자 한 관객이 반응했고 나츠키의 감사 및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공연 후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에 올라온 반전 글...

(슬로건 만든 당사자) 본인은 일본어 못 알아들어서 몰랐다고 호응받은 사람은 누구냐고!

그리고 바로 올라온 (공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버린) 개트롤좌의 사과문, 

본인은 일어 모르는데 나츠키가 슬로건 엄청 좋은가 보다 하고 반응했다가 본인이 스폿라이트 받아버려 죄송하다고, 앞으로 일본어 공부 열심히 하겠다고 사죄하며 커뮤니티에 웃음을 선사했다. 슬로건 만든 이도 개의치 않았고, 슬로건 하나는 기념품으로 나츠키가 챙겨갔으니 훈훈한 해피엔딩.

공연 후 단체사진 ❘ 카와니시 나츠키 인스타 펌

 

 

공연 후에도 끝나지 않는 팬서비스

 
 
 
공연이 끝난 후, 퇴장로에 서서 관객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는 배웅회가 있었다. 현장 분위기 상 즉흥적으로 보였다. 인디 공연이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나도 덕분에 나츠키와 주먹인사를 나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린 팬들을 위해 퇴근길 단체 사진까지 찍어줬다는 후문. 팬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에서 인디 시절의 습관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건 구입한 나츠키 큐브 키링 ㅋ
그리고,

아소비시스템 소속 가수들

[Insight: ASOBISYSTEM과 카와니시 나츠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소속사가 '아소비시스템(ASOBISYSTEM)'이라는 것. 캬리 파뮤파뮤(Kyary Pamyu Pamyu), 아타라시이 각코!(ATARASHII GAKKO!), Perfume의 프로듀서였던 나카타 야수타카의 본체인 캡슐(CAPSULE) 등 '하라주쿠발' 독특한 비주얼과 실험적인 컨셉이 주류인 기획사다.

옦께이, 옦께이의 いわずきかざる 공연 중

'설계된 스튜디오형 아티스트'가 많은 곳에서 나츠키처럼 버스킹으로 단련된 가공되지 않은 감성의 싱어송라이터가 소속돼 있다는 점이 꽤 이질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어쩌면 '하라주쿠식 컨셉 설계'가 강한 회사에서 나츠키는 오히려 '날 것의 감성'을 상품화할 수 있는 카드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앞으로 관전 포인트는 '포장'이 아니라 포장 과정에서 나츠키의 생활감이 얼마나 남을 것인가가 아닐까.
 


 

Epilog: 이번에 못 들은 최애곡들

이번 내한에서 개인적으로 꼭 듣고 싶던 최애곡 3개는 플셋에 없었다. 언젠가 또 볼 수 있다면 그때는 이 세 곡을 꼭 들어봤으면 좋겠다.

Swinging on the Moon (月の ブランコ 달의 그네), 2023
'달의 그네'는 포근함이 진한 힐링곡이다. 그래서 피곤할 때 자주 듣는다. 밤에만 열리는 '달의 그네'라는 공간에서 놀던 너와의 밤이, 아침이 오면 결국 이별로 끝나지만 다시 밤에 만나자고 속삭이는 이야기다. 

キミ の物語 (너의 이야기), 2020
아티스트가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썼던 곡이라는데 밝고 경쾌한 인디팝이다. 과거의 망설임과 실패조차 소중한 성장의 과정임을 긍정하며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자아실현과 희망의 응원가'다. 

(무반주) 쇼츠 버전

青春トワイライト (청춘 트와일라이트), 2023
역시 경쾌한 리듬의 곡으로, 학창 시절의 마지막날 풋풋하지만 전하지 못한 짝사랑의 감정을 담아냈다. 일본 청춘 영화 느낌이 물씬 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