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아침, 야끼니꾸 혼밥: 약 3만 원
| 6:00 am: 아침 산책과 게스트하우스 정원
오전 6시, 세수만 대충 하고 게스트하우스 1층과 정원을 산책했다. 어젯밤의 복잡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적막 속에서 DSLR로 사진을 찍는 일본인 아주머니와 나만 있었다. 순간의 아침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방해하지 않으려 자연스럽게 동선을 달리했다. 서로 존재만 확인 :)
어제는 서양인들로 가득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경험이었는데 이 당시는 또 상당히 일본적인 경험이었다. 암튼 정원의 녹색 공간은 오랜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듯한 독특한 매력이 있다. 게스트하우스가 내부 분위기도 특이하고 당시 둘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 마치 아포칼립스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고 특이한 느낌이었다.
| 7:00 am: 산왕시장 아케이드와 토비타 신치
아침 7시 조금 넘어 산왕시장 아케이드를 산책했다. 시장은 여유롭고 한가로웠다.
지나가며 찍은 사진 속에서 그날 방문한 토리보우즈(ToRi坊主本店) 근처 분점을 발견했다. 여기는 외부에서 선 주문도 가능한 듯했다.
햇살이 아케이드 내부까지 스며들어 항상 햇살 가득한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영화들 떠올랐다. 별 것 아니지만 여행 중 맞이한 아침 햇살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져서 그랬나 보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일본 최대 규모의 유곽, 토비타신치에 들렀다. 영업 전이라 거리는 고요했지만 저녁의 화려함과는 대조적인 아침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저녁 오사카 뒷골목 탐방 패키지 투어를 통해 또 방문했었다). 아침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보이는 검은 밴과 문신을 한 몇몇 사람을 지나칠 땐 긴장과 호기심이 교차했다. 옆 부촌인 아베노구와의 공존이 흥미로웠다.
지날 때마다 신경 쓰였지만 결국 맛을 못 본 근처 야키토리 가게, 토리요시 鳥よし. 식당이라기보다는 정육점에 가까웠다. 여기 근처 주민들이 애용하는 것 같았다. 저녁 시간에 마음 잡고 가봤으나 거의 재료 소진이었다. 오전 7~8시부터 일찍 영업을 시작하며 타베로그에는 맛있고 저렴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 8:00 am: 토리보우즈 본점 ToRi坊主本店
오전 8시에 맞춰 토리보우즈(ToRi坊主本店)에 도착했다. 이 아이린(구 니시나리) 지구 일대의 가라오케바들은 이른 아침부터 해피아워로 술과 식사를 저렴하게 제공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는데 이곳도 비슷한 이벤트가 있다.
8:00~11:00 am 사이 고다와라 레몬사와, 플레인 츄하이, 짐빔하이볼이 저렴하게 판매된다 (190엔, 1500~1700원 정도). 마시진 않아서 양은 모르겠다.
오전 8시 오픈 맞춰 들어갔는데도 이미 몇 테이블이 차 있었고 분위기를 보니 대부분 로컬들이 아닐까 싶다. 자리에 앉자 가방을 위한 바구니를 가져다주신다. 바닥은 기름기 때문인지 깨끗해 보이진 않는다. 그냥 이 지역 분위기겠거니 하며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관점에 보면 관리 잘 되어 보임)
식탐 있어 보이는 힙한 병아리가 여기 마스코트인가 보다. 벽이 뚫려 있는 그림이다 보니 나 같이 벽 보고 먹는 혼밥러에게 개방적인 효과도 있다(?)
유명인이 왔다 갔나 해서 왼쪽 벽의 사인을 찾아보니 '도톤보리 푸로레스'라고 써져 있다. 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프로레슬링 관련 포스터들이 은근히 많이 보이던데 공홈에 들어가 보니 아직도 활발히 경기 이벤트를 주최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프로레슬링이라니, 나도 어렸을 때 WWF 참 좋아했는데. 잠깐 또 기억 속으로...
오픈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만석이 되고 웨이팅 걸렸는데, 손님들이 꽉 차니 연기가 엄청난다. 그때 문이 개방된다. 월요일은 휴무고 화~금은 오전 8시 오픈 저녁 6시까지, 일요일은 오후 4시에 닫는다. 계산 당시 나쁜 가격이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구글과 타베로그의 리뷰들을 보니 가성비가 나빠졌나 보다 (현재 가격이 비싸졌다는 리뷰가 꽤 있었다).
테이블 근처에 음료수 기계가 셀프로 운영되고 있는데 해피아워와 상관없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펩시콜라, 진저에일, 우롱차 등 총 7종이 제공되었다.
| 우설과 곱창
불판
트랜스포머 마냥 철컥-척! 쑥 들어감. 불을 붙이니 이제 좀 고깃집 온 느낌인데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아침 8시부터 고기 구워 먹어본 게 언제였더라...??? 있었나? :)
직원분은 일어만 가능했다. 구글 리뷰보고 한국어 메뉴판도 있는 줄 알았는데 걍 계속 이걸로 얘기하시길래 시간 걸리는 거 싫어서 굳이 요청해보진 않았다. 일단 추천 부탁 하니 상급 소금우설이랑 대창 추천하신다. 상급 소금우설(조시오탄) 일반 소금우설(시오탄) 탯짱(대창)을 시켰다. 대창은 그냥 일본 발음이 귀여워서 시켰다. 사이드 메뉴로 김치 등이 있었는데 고기가 워낙 달짝한지라 딱히 사이드는 필요 없어서 시켜볼까 하다 말았다.
먹진 않았지만 타베로그 리뷰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고봉밥' 메뉴에 보인다 (비빔밥도 있음). 아마 저게 대짜가 아닌가 싶다. 와하하하.
소스도 준비되어 있는데 비취되어 있는 건 두 개고 나온 건 세 개였다. 고기부터가 단짠이라 소스를 많이 찍어 먹진 않아서 솔직히 맛은 잘 기억 안 나지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달짝 새콤한 맛이랑 상큼한 맛들이 기억에 남는다.
음식은 대체로 달짝지근하다. 소금까지 섞이니 단짠. 우설은 역시 씹는 맛이 살아있는 듯한 그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참 좋다. 특소금구이이랑 일반소금구이랑 맛의 차이는 있다.
특은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데 풍미가 좀 더 진했고, 일반은 탄력 있는 쫄깃함으로 담백하고 깔끔했다. 둘 다 좋다.
대창은 달달하면서도 쫄깃해 입가심으로 좋았다. 많이 먹기는 역시 좀 부담된다(하지만 다 먹음).
나 포함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굽기 때문에 문을 열어도 꽤나 연기가 꽤 찬다. 그것도 이런 지역에 와서 먹는 맛집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허겁지겁 먹는다 (우설 먹는 것 자체도 너무 오랜만이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너무 많이 시켰나? 했는데 웬걸, 싹 다 먹었다. 전체적으로 나무랄 게 없었다. 토리보우즈 야키니쿠 성공!!
오랜만에 먹는 아침의 고기 굽기. 이 경험은 결혼에 부정적이며 혼자만의 생활을 고집하는 독신남을 다룬 2006년 일본 히트 드라마, <결혼 못하는 남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 일본이 아무리 혼밥 문화에 특화되었다고 해도 야키니쿠만큼은 혼밥 금기로 여겨졌던 시절이었다는데.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야키니쿠를 혼밥하는 장면은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지나서일까, 이제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좌석에서도 편안한 모습으로 야키니쿠를 혼자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 풍경은 꽤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일본도 그렇게 변하나 보다.
| 기억에 남았던 옆 테이블
나처럼 혼자 온 사람 외 커플, 3명 등 다양한 손님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내 옆자리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청년과 백발의 어르신이 한 테이블에서 반말과 존댓말이 교차하며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신기했다 (20대가 반말+술 한 손 따르기 어르신이 존댓말+두 손으로 받기).
일부러 들으려던 것은 아니지만 밀착된 자리 탓에 대화가 들렸고 자연스럽게 시야에도 잠깐씩 들어왔다. 젊은이들이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주는 자리로 보였는데 세 사람의 분위기는 오히려 매우 자연스러웠다. 니시나리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이들의 모습은 이상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특별한 일상이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히려 불편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 9:00 am: 식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9시 10분경,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리의 활기를 느꼈다.. 수요일 평일 아침 모습이다.
포스팅 첨에 언급한 전기구이 기계로(왼쪽 기계) 꼬치를 돌리는 토리요시 (鳥よし)를 다시 지나치며 다음 방문 때는 꼭 들러보리라 다짐했다. 이방인으로서의 나에게 흥미로운 탐험의 대상이다 (개수가 많진 않지만 좋은 리뷰가 넘 많고 전형적인 로컬 느낌이다)
저렴해 보였던 도시락 벤또 가게. 오후시간 지나가다 보면 꽤 많이 팔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품점도 문이 열려있었다.
오후 1시 오픈을 위해 벌써 준비를 하고 있는 숙소 옆 이자카야, 니시나리이치반 혼텐 居酒屋 西成一番. 간판의 이름 아래 "게키야스*메차야스*혼마니 야스이 (개~싸다*완전~싸다*진짜 싸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리뷰를 보니 정말 싼 진 모르겠지만 이 공간에서 재밌는 경험들을 한 내용들이 많아 궁금한 곳이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사실 걸어서 100m 정도라 천천히 구경하며 오니 5분도 안 걸린 듯하다. 게스트하우스는 니시나리 노숙자들과의 연계를 한 역사를 지닌 곳이라 오픈 시간에는 길가에 구제옷과 물품을 꺼내 놓는 모습이 뭔가 맥락에 맞아 보였다. 혼자 아무도 없는 타인의 공간을 살펴보고, 혼밥을 하고, 타인들에 의해 시작되는 타 지역의 주변을 천천히 구경하며 돌아오는 길. 이방인으로서 타지의 공기를 느끼는 순간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든 기분이다. 언제나 그렇듯, 혼자라는 소외감은 혼자만의 여행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즐거움으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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