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오 헤리티지 호텔(Tai O Heritage Hotel)은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의 유일한 고급 호텔(4.5성급)이다. 이 호텔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단순히 고급 호텔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유산적 가치 때문이다.
1902년부터 중국에서 넘어오는 밀수와 불법 활동을 단속하기 위해 기능했던 경찰서 건물이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며 2009년 호텔로 변모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기능을 부여한 어답티브 리유즈(adaptive reuse)의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남중국해 밀수 단속과 조망권
과거 남중국해의 중국-홍콩 경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탐조등을 활용해 야간에도 밀수꾼과 해적을 감시했던 장소였다. 이 건물은 란타우섬 끝자락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과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를 자랑했다. 이런 점떄문에 타이오 마을 여인숙에서 1박, 이 호텔에서 1박을 하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숙박비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박 모두 여인숙으로~)
몇 주 후,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름 시즌 특가 세일 소식을 봤을 때 땅을 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HK$ 988 (약 15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이라니, 조금만 더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꽤 이른 시기에 예약을 해버렸던 터라 이런 기회를 놓쳐버린 게 정말 아쉬웠다.
호텔 위치와 접근성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은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타이오 마을의 메인 시장 골목과는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타이오 마을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을 뿐더러 인도로서는 가장 끝이다). 묵었던 숙소에서 도보로 약 9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호텔 앞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옛 타이오 마을 부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부두는 1991년 주성치 주연의 영화 <도성타왕(賭聖打王)>의 촬영지로 매우 고즈넉한 장소다. 주변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숨은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 당시 바라보았던 모습이다. 아무도 없고 참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영화는 타이오 마을 곳곳에서 촬영되었고 8,90년대 당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옹핑의 티안 탄 부처상의 건설 중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93년 완공.)
타이오 룩아웃(Tai O Lookout)
호텔에는 경찰서가 호텔로 변모할 때 같이 생긴 레스토랑 타이오 룩아웃 Taio Lookout이 있다. 여기서 숙박을 못아는 대신 점심이라도 즐기기로 했다.
호텔은 사회적 기업 운영 방침에 따라 직원의 반 이상이 타이오 마을 또는 란타우섬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강조한 점으로,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운영 방식이다.
시그니처 메뉴와 공간의 매력
옛 부두를 향하다 요렇게 꺾으면 호텔을 통하지 않아도 음식점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저 난간을 돌면 바로 이 계단이 펼쳐 진다. 우아아악! 아주 살짝 높다 ㅎㅎ 다만 주변 자연환경이 괜찮아서 즐기면서 올라가기 좋다 (마지막 식전 장 운동).
작은 언덕이지만 몸이 힘든 손님들을 배려한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운영하고 있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 보인다 (이눔의 저질 체력). 중간 상단의 원통은 옛 경비탑 Lookout 공간인데 음식점 이름의 유래다, 타이오 룩아웃. 밀수꾼 멈춰!
쭉 걸어간다. 왼쪽은 식당 안이다. 앞으로는 또 하나의 경비탑이 보인다.
웨이팅을 위한 배려인지 식당 입구 쪽으로 가니 메뉴의 대형 버전이 떡 하니 걸려 있다.
왼쪽을 다시 바라보니 웨이팅 전광판인 것 같다. 한국 카톡 웨이팅 시스템 같은 것이 아닐지? 근데 이 날은 손님이 거의 없어 그냥 프리패스~ 예~
타이오 룩아웃의 사인을 따라 좌측으로 꺾으면 입구가 나온다.
안내받은 자리는 1~2인용 코너 테이블이었다. 내외 전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혼밥러에게는 이 자리가 최고의 상석이다. 식당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이면서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아늑했다. 게다가 손님도 별로 없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아열대 지방인 홍콩의 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꿉꿉한 느낌인데 식당 안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들이 공간을 쾌적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비 때문에 막혀있는 것 같은데 천장의 커버까지 오픈되면 개방감이 훨씬 좋을 듯하다.
목재가 주된 장식 요소로 사용되어 그런지 바다를 바라보는 숲 속의 현대적 큰 산장에 와 있는 듯한 아늑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지루할 수도 있는 산 쪽 뷰 창문에 타이오 마을의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 사진들은 지역의 역사와 정취를 잘 담아내어 호텔과 마을이 함께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실내는 밝고 정돈된 분위기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저녁에 조명이 더해지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았다.
식사: 맹그로브 스페셜 & 포크찹 번
앞 커플이 마시던 모습이 예뻐 보여 맹그로브 스페셜 목테일을 주문했다. 아열대 지방의 음료답게 야생 베고니아, 사과, 레몬이 섞인 설명이다. 타이오 마을을 걷다 보면 맹그로브와 백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주변 생태계에서 영감을 받은 목테일인 것 같다. 비주얼만큼 맛도 달콤하다. 맹그로브와 백로라는 타이오 마을의 생태적 상징을 음료에 녹여낸 점은 독특했다. 이 지역만의 특색을 느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커플이거나 나 같은 혼밥 망상러가 마시면 좋을 듯.
타이오 마을은 새우젓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음식을 먹고 싶었고 볶음밥과의 고민 끝에 새우젓 포크찹 번과 컨트리 프라이즈를 골랐다.
마카오의 주빠빠오와 비슷하지만, 오이와 토마토, 양상추, 새우젓이라는 토핑들이 더해져 독특한 맛을 내고자 한 것 같다. 다 좋아하는 토핑들이다.
다. 만.
그러나 재료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아 아쉬웠다. 한 입에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번은 괜찮았지만 익힌 돼지고기와 생생한 맛만 강조된 오이와 토마토가 서로 자신의 맛만 뽐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완성된 맛'이라는 느낌이 부족했다. 차라리 전날 먹었던 새우젓 볶음밥을 시켜 비교하며 먹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은 좋았지만 그에 비해 맛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이 날만 그랬던 건지… 맛은 꽝이었고 결과적으로 당첨 실패. 😢
하지만 감자 프라이는 두툼한 체구 때문에 눅눅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매우 바삭해서 만족스러웠다. 예상 밖의 바삭함 덕분에 포크찹 번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었다 다만 감자스틱 특유의 기름진 맛 때문인지 몇 개 먹고 나니 몸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바삭함 덕분에 멈출 수가 없어서 몇 점 더 집어먹게 되었다 (나오자마자 먹는 걸 추천).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
타이오 룩아웃에서의 식사는 음식의 맛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경치를 즐기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이날 유리천장이 덮여 있어서 그런지 숲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통나무 산장 같은 인테리어는 아늑함과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경험은 타이오 마을에서의 시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 준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서빙 서비스가 인상적이었다. 살짝 실수도 하면서 약간 어설퍼 보이면서도 매우 친절한 태도가 돋보였다. 솔직히 지나치게 전문적이면서 불친절한 서비스보다는 이런 인간미 있는 서비스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타이오 마을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 옛 경계처였던 곳에서 포근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모순적이지만 좋았던 잔잔한 시간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 분위기 및 서빙의 친절함으로 혼자 식사를 즐기기에 부담 없이 만족스러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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