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블 유니버스의 생텀 생토럼
<닥터 스트레인지 (2016)>에서 생텀은 마블 유니버스에서 지구를 지키는 마법 거점으로 뉴욕, 런던, 홍콩 세 곳에 위치한다. '생텀(Sanctum)'은 신성한 장소를 뜻하지만 여기에 그 중에서도 더 신성하다라는 '생토럼(Sanctorum)'이라는 표현을 더해 마법사들의 본거지이자 지구 방어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의미를 강조한다. 특히 홍콩 생텀은 영화의 역/정방향 전투신이 15분 동안 숨 가쁘게 펼쳐지는 배경으로 등장하며 아카데미 VFX 부문 후보로도 주목받는데 한몫 했다.
| 홍콩 생텀 생토럼의 위치와 제작
영화에서 홍콩 생텀 전투신의 배경은 카메론 스트리트 (Cameron St.)와 프랫 애비뉴 (Prat Ave.), 카나본 로드 (Carnarvon Rd)와 채텀 로드 사우스 (Chatam Rd. S.) 사이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를 쫙 스캔 한 후 실제 촬영은 영국 롱크로스 스튜디오에 240여 미터 길이의 세트를 만들고 진행하며 CG로 재창조되어 마법적인 분위기를 더했다고.
다만 실제 홍콩 생텀의 모티브가 된 건물이 위치한 곳은 프랫 애비뉴에서 3.5km 떨어진 프린스 에드워드역 근처 라이치콕 로드에 있다. 마블 영화와 비교했을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마블 생텀 특유의 동그란 비샨티 문양 창문의 유무다. 홍콩 생텀의 디자인과 역파괴 전투신이 어떤 방식으로 촬영 되었는지는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 홍콩 생텀의 모티브: 레이싱춘 (Lui Seng Chun) 빌딩
레이싱춘(雷生春) 빌딩은 1931년 광둥 출신 사업가 레이 량(雷亮)에 의해 설립된 상가주택으로 1층은 전통 약국, 상층부는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레이싱춘 (뇌생춘)'이라는 이름은 약국의 약이 환자를 회복시키고 새로운 생명력을 가져준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레이 량 사후 가족들이 떠나며 1980년대부터 방치되었지만, 가족들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며 이를 2000년 홍콩 정부에 전례 없이 무상으로 기증했다. 이후 2003년 소유권이 홍콩 정부로 넘어가 보존 및 레노베이션이 진행되었다. 홍콩 초기 근대 건축사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2022년 1급 역사건물로 지정되었으며 (한국으로 치면 국보 1군 멤버들 중 하나 정도로 해석, 홍콩은 1'호' 개념이 없음), 현재 홍콩 침례대학교의 중의학 센터로 활용되고 있으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홍콩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홍콩의 그레이드 1등급 건물은 '24년 기준 총 177개다.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홍콩 AAB (문화재 위원회) 홈페이지로 가서 그레이드 별 (1~3) 건물 리스트를 확인할 수 있다. 홍콩이나 역사적 건물 탐방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여행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다.
| 건축적 특징:
레이생춘(Lui Seng Chun) 건물은 삼각주 형태의 도로 교차점에 위치한 대표적인 통라우(Tong Lau, 중국식 상가주택, 우리나라로 치면 주상복합인데 서민형 주상복합 같은거?)로 실용적 중국 요소와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의 안정성, 그리고 1930년대 홍콩에서 유행한 세련된 아르데코(Art Deco)의 세련된 스타일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매력을 자랑하는 건축물이다.
미학이니 양식이니 뭐니 복잡하다 싶으면 그냥 신고전주의는 덕수궁 석조전이나 미국 백악관, 아르 데코는 옛 서울역사나 크라이슬러 빌딩을 떠올리면 될 듯.
신고전주의 = 질서 정연, 반듯한 형태, 직선 vs 아르데코 = 정교하고 세련된 라인, 곡선
중국식 요소로는 광둥 지역 특유의 기후에 맞춘 깊은 베란다 설계를 꼽을 수 있다. 이 베란다는 에어컨이 없던 시절 햇빛과 비를 차단하며 실내를 시원하게 유지하는 실용적인 구조로 하층부는 상업 공간, 상층부는 가족의 주거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구성은 통라우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통라우는 홍콩 발전으로 인한 1840년대부터 중국인 이민자들의 가성비 주거지의 공간양식으로 자리 잡으며 현재까지도 관광객들에게 익숙한 홍콩 도시 스케이프의 중요한 일부를 이루고 있다.
신고전주의적 특징으로는 대칭적인 구조와 상층부의 발코니를 지탱하는 8개의 화강암 기둥, 그리고 상점 상단에 위치한 파손된 삼각형 장식(Broken Pediment)이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웅장함과 안정감을 강조하며 신고전의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느낌의 품격을 더한다. (와중에 중앙 기둥 두 개를 기준으로, 왼쪽은 기둥 네 갠데 좌측은 두 개임 ㅎ)
아르데코 양식의 특징은 삼각주 형태의 코너블록을 곡선형 파사드와 발코니로 풀어낸 세련된 디자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발코니와 항아리 형태의 장식을 가진 난간(Balustrade)은 기본적으로 신고전주의적인 요소이지만 이를 곡선형으로 표현하며 아르데코의 미적 감각을 더해 독창적인 조화를 이룬다.
결론적으로 레이생춘은 홍콩 건축의 독창성과 동서양 문화의 융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홍콩만의 독특한 도시 경관의 형성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가로 건물의 우측 파사드 방향으로 뒤쪽에 가보면 홍콩 침례대학교의 중의학 센터로 활용되기 위해 모던 형식으로 증축된 부분이 보인다. 이 새로운 볼륨은 기존의 전통적 양식과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어댑티브 리유즈 방식이 싹 다 밀고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Lui Seng Chun 건물의 위치는 아래와 같다.
이건 레이싱춘 건물을 좌측으로 두고 발마사지 사인이 귀여워서 찍어 본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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