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라우렌시오 거리의 100살이 훌쩍 넘은 가톨릭 학교,
Instituto Salesiano.
| 황추생의 먹방 장면: 인상적인 디테일
영화 <이사벨라>는 '99년 중국 반환 직전 마카오의 정체성과 감성을 담고자 한 작품이다. 주인공 싱(두문택 분)의 상사 캐릭터인 황추생은 영화에서 딱 세 번 등장하는데 흥미롭게도 모든 장면이 먹방(훠거, 국수, 빵)이다 (마카오 배경인 홍콩 영화, <Exiled>를 찍을 때 잠깐 짬 내서 출연했다라는 비하인드 이야기도 있다).
오로지 두 캐릭터(싱과 이사벨라)에 집중된 영화의 서사 속 긴장감을 잠시 환기시키며 여유와 균형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며, 단순한 식사를 넘어 마카오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과 정서, 그리고 사람들의 삶을 비추는 거울처럼 다가온다.
| 성 라우렌시오 거리와 살레시아노 학교
황추생의 세 번째 먹방 장면은 싱과 차 안에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씬으로 그 직전에 주인공들이 성 라우렌시오 거리(R. de São Lourenço)를 배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의 배경이 된 건물은 1906년 청나라 시대에 지어진 포루투갈 식민지 시대의 건축 감성이 녹아든 가톨릭 학교인 Instituto Salesiano (聖中教育活動中心)다.
| 성 라우렌시오 성당을 바라보며
나름 근대적인 살레시아노 학교 건물을 등지고 뒤로 돌면 고전적인 성 라우렌시오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게 바로 마카오 거리를 거닐때의 매력이다). 16세기에 세워진 이 성당은 마카오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과거에는 앞쪽이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당 주변은 현재처럼 콘크리트 바닥으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마카오의 역사적 변화와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영화 속 학교 건물 배경 장면은 저 계단에서 내려다보며 촬영했을 것이다. 또한 황추생이 세 번째 먹방 때 차를 세우고 싱을 부른 장소 역시 바로 이 돌계단 바로 앞으로 보인다.
| 대항해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오나먼트와 공간의 리듬감
성 라우렌시오의 한자는 風順(풍순)으로, '순조로운 바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어부와 선원들이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던 만큼 육지에 남은 가족들은 저 돌계단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바다로 떠난 뱃사람들의 안전한 귀환을 기원하고 기다리곤 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계단을 오르면서 느꼈던 엄숙하고 신성한 기운은 당시의 사람들이 간직했던 희망과 염원을 떠올리게 했다. 기백년 전의 이야기라는게 신기했다.
성당 앞 계단과 주변 구조물에서 발견되는 타원형 오나먼트와 포르투갈 스타일의 모자이크 바닥은 대항해 시대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공간에 움직임의 리듬감을 더하며 역사적 맥락이 현재의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음을 잘 느끼게 해준다.
특히, 싱과 이사벨라가 거리를 배회하던 장면은 1999년 중국 반환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연결되며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마카오라는 도시의 복잡한 정서를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는 '97년 홍콩 반환을 앞둔 감성을 다룬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 성당
성 라우렌시오 성당은 16세기에 지어진 후 1846년에 재건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물로 두 개의 정사각형 종탑과 중앙부의 브로큰 페디먼트 디자인이 돋보인다. 또한 주변의 야자수와 어우러져 독특한 조화를 이룬다.
저녁 조명 아래에서 성당의 베이지색 외벽이 민트빛으로 물드는 모습은 🇲🇴 마카오 국기의 색감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연출은 성당의 신성함을 극대화하며 방문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영화 속 황추생의 먹방 장면과, 싱과 이사벨라의 배회 장면이 성 라우렌시오 성당 주변에서 촬영된 것은 이 장소가 단순한 배경을 넘어 마카오의 복합적인 정취와 정서를 한층 깊이 전달하는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 나머지 스냅샷들
포루투갈 감성이 적절히 섞인 듯한 영화의 OST 중 'She Stalks'. 영화의 OST도 참 들을 만하다. 한 번 들어보는 것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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