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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보트 투어 중 찍은 사진, 오래된 부두 뒤로 작은 언덕에 위치한 호텔이 보인다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Tai O Heritage Hotel)은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의 유일한 고급 호텔(4.5성급)이다. 이 호텔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단순히 고급 호텔이라는 점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유산적 가치 때문이다.

언덕 위에서 경찰서로 기능하던 1920년대 모습 ❘ 출처: University of Bristol - Historical Photographs of China

1902년부터 중국에서 넘어오는 밀수와 불법 활동을 단속하기 위해 기능했던 경찰서 건물이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며 2009년 호텔로 변모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보존하면서 현대적인 기능을 부여한 어답티브 리유즈(adaptive reuse)의 훌륭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남중국해 밀수 단속과 조망권

남중국해에서 중국-홍콩 경계를 내려다보며 야간에도 불법 밀수나 해적을 감시하던 곳

과거 남중국해의 중국-홍콩 경계를 내려다보는 위치에서 탐조등을 활용해 야간에도 밀수꾼과 해적을 감시했던 장소였다. 이 건물은 란타우섬 끝자락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과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를 자랑했다. 이런 점떄문에 타이오 마을 여인숙에서 1박, 이 호텔에서 1박을 하려는 일정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숙박비에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박 모두 여인숙으로~)

공식홈페이지 섬머세일 특가 화면 캡쳐, 아.. 좀만 더 기다릴걸... 15만원에서 시작하는 가격이라니!!!!!!!!!!!!!

몇 주 후,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여름 시즌 특가 세일 소식을 봤을 때 땅을 치며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HK$ 988 (약 15만 원)부터 시작하는 가격이라니, 조금만 더 기다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꽤 이른 시기에 예약을 해버렸던 터라 이런 기회를 놓쳐버린 게 정말 아쉬웠다. 

호텔 위치와 접근성

타이오 마을 주요 스폿

타이오 헤리티지 호텔은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타이오 마을의 메인 시장 골목과는 떨어져 있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타이오 마을은 자동차가 다닐 수 없을 뿐더러 인도로서는 가장 끝이다). 묵었던 숙소에서 도보로 약 9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었다.

영화 <도성타왕>에서 옛부두로 향하는 장면

호텔 앞은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옛 타이오 마을 부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부두는 1991년 주성치 주연의 영화 <도성타왕(賭聖打王)>의 촬영지로 매우 고즈넉한 장소다. 주변에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노을을 감상하기 좋은 숨은 스폿으로 알려져 있다.

호텔 바로 앞의 옛 부두

방문 당시 바라보았던 모습이다. 아무도 없고 참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영화 <도성타왕> 속 티안 틴 부처상이 건설되던 모습, 영화는 1991년작이고 부처상은 1993년 완공되었다

영화는 타이오 마을 곳곳에서 촬영되었고 8,90년대 당시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옹핑의 티안 탄 부처상의 건설 중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93년 완공.)

 


타이오 룩아웃(Tai O Lookout)

호텔에는 경찰서가 호텔로 변모할 때 같이 생긴 레스토랑 타이오 룩아웃 Taio Lookout이 있다. 여기서 숙박을 못아는 대신 점심이라도 즐기기로 했다. 

수상보트 타며 찍어본 음식점 모습, 좌측의 호텔과 연결되어 있다

호텔은 사회적 기업 운영 방침에 따라 직원의 반 이상이 타이오 마을 또는 란타우섬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는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강조한 점으로,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는 의미 있는 운영 방식이다. 

시그니처 메뉴와 공간의 매력

옛 부두를 향하다 요렇게 꺾으면 호텔을 통하지 않아도 음식점으로 바로 가는 길이 있다. 

저 난간을 돌면 바로 이 계단이 펼쳐 진다. 우아아악! 아주 살짝 높다 ㅎㅎ 다만 주변 자연환경이 괜찮아서 즐기면서 올라가기 좋다 (마지막 식전 장 운동).

작은 언덕이지만 몸이 힘든 손님들을 배려한 경사형 엘리베이터도 운영하고 있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정상(?)이 보인다 (이눔의 저질 체력). 중간 상단의 원통은 옛 경비탑 Lookout 공간인데 음식점 이름의 유래다, 타이오 룩아웃. 밀수꾼 멈춰!

쭉 걸어간다. 왼쪽은 식당 안이다. 앞으로는 또 하나의 경비탑이 보인다.

웨이팅을 위한 배려인지 식당 입구 쪽으로 가니 메뉴의 대형 버전이 떡 하니 걸려 있다. 

왼쪽을 다시 바라보니 웨이팅 전광판인 것 같다. 한국 카톡 웨이팅 시스템 같은 것이 아닐지? 근데 이 날은 손님이 거의 없어 그냥 프리패스~ 예~

타이오 룩아웃의 사인을 따라 좌측으로 꺾으면 입구가 나온다.

안내받은 자리는 1~2인용 코너 테이블이었다. 내외 전경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혼밥러에게는 이 자리가 최고의 상석이다. 식당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위치이면서도 구석에 자리 잡고 있어 매우 아늑했다. 게다가 손님도 별로 없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실링팬 돌아가는 모습

아열대 지방인 홍콩의 더운 날씨에 비까지 내려 꿉꿉한 느낌인데 식당 안 돌아가는 천장 선풍기들이 공간을 쾌적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비 때문에 막혀있는 것 같은데 천장의 커버까지 오픈되면 개방감이 훨씬 좋을 듯하다.

투어보트를 타면 수상가옥을 한바퀴 돈 뒤, 저 바닷길로 핑크돌고래를 만나러 남중국해 바다로 나가게 된다

목재가 주된 장식 요소로 사용되어 그런지 바다를 바라보는 숲 속의 현대적 큰 산장에 와 있는 듯한 아늑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느낌을 준다.

오른쪽으로 바라본 모습
왼쪽으로 바라 본 모습

지루할 수도 있는 산 쪽 뷰 창문에 타이오 마을의 사진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 사진들은 지역의 역사와 정취를 잘 담아내어 호텔과 마을이 함께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실내는 밝고 정돈된 분위기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저녁에 조명이 더해지면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았다. 


식사: 맹그로브 스페셜 & 포크찹 번

맹크로브 스페셜 목테일은 내부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상큼한 비주얼이다
맹그로브 목테일 섞는 재미가 있다
메뉴

앞 커플이 마시던 모습이 예뻐 보여 맹그로브 스페셜 목테일을 주문했다. 아열대 지방의 음료답게 야생 베고니아, 사과, 레몬이 섞인 설명이다. 타이오 마을을 걷다 보면 맹그로브와 백로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숙소에서 본 밀물에 덮힌 맹그로브 위에 앉아있는 백로, 2박 해보니 이 곳에선 흔한 풍경이다

이 주변 생태계에서 영감을 받은 목테일인 것 같다. 비주얼만큼 맛도 달콤하다. 맹그로브와 백로라는 타이오 마을의 생태적 상징을 음료에 녹여낸 점은 독특했다. 이 지역만의 특색을 느껴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커플이거나 나 같은 혼밥 망상러가 마시면 좋을 듯. 

타이오 룩아웃 메뉴

타이오 마을은 새우젓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음식을 먹고 싶었고 볶음밥과의 고민 끝에 새우젓 포크찹 번과 컨트리 프라이즈를 골랐다.

실제 모습, 맛있어 보이긴 한다. 타이오 마을의 주요 관광 스폿과 역사를 담은 듯한 종이 플레이스메트가 있어 음식 나오기 전에 살펴보기 좋다

마카오의 주빠빠오와 비슷하지만, 오이와 토마토, 양상추, 새우젓이라는 토핑들이 더해져 독특한 맛을 내고자 한 것 같다. 다 좋아하는 토핑들이다. 

다. 만.

그러나 재료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해서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맞지 않아 아쉬웠다. 한 입에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다. 번은 괜찮았지만 익힌 돼지고기와 생생한 맛만 강조된 오이와 토마토가 서로 자신의 맛만 뽐내고 있어 전체적으로 '완성된 맛'이라는 느낌이 부족했다. 차라리 전날 먹었던 새우젓 볶음밥을 시켜 비교하며 먹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은 좋았지만 그에 비해 맛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이 날만 그랬던 건지… 맛은 꽝이었고 결과적으로 당첨 실패. 😢

하지만 감자 프라이는 두툼한 체구 때문에 눅눅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매우 바삭해서 만족스러웠다. 예상 밖의 바삭함 덕분에 포크찹 번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었다 다만 감자스틱 특유의 기름진 맛 때문인지 몇 개 먹고 나니 몸에 미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바삭함 덕분에 멈출 수가 없어서 몇 점 더 집어먹게 되었다 (나오자마자 먹는 걸 추천).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  

다 먹고 나올 때 찍은 자리 사진. 비가 꽤 내리던 날이어서 그런지 운치가 있어 좋았다

타이오 룩아웃에서의 식사는 음식의 맛보다는 공간의 분위기와 경치를 즐기는 데 더 큰 의의가 있었다. 이날 유리천장이 덮여 있어서 그런지 숲과 바다를 내려다보는 통나무 산장 같은 인테리어는 아늑함과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이 경험은 타이오 마을에서의 시간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 준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서빙 서비스가 인상적이었다. 살짝 실수도 하면서 약간 어설퍼 보이면서도 매우 친절한 태도가 돋보였다. 솔직히 지나치게 전문적이면서 불친절한 서비스보다는 이런 인간미 있는 서비스가 훨씬 더 마음에 든다.

식당을 나올 때 볼 수 있는 호텔 전체를 보여주는 레고 모형

타이오 마을에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별한 경험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곳을 추천한다. 옛 경계처였던 곳에서 포근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모순적이지만 좋았던 잔잔한 시간의 흐름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었다. 😊 분위기 및 서빙의 친절함으로 혼자 식사를 즐기기에 부담 없이 만족스러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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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 촬영지를 따라 트레킹을 마친 후, 무이오(Mui Wo) 선착장 주변을 여유롭게 거닐며 아침 식사할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로컬 카페, 카페 파라디소(Caffè Paradiso).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지만, 옛날 홍콩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라, 공간을 채운 사람들 덕분에 전해졌던 그 따뜻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아침식사 할 곳을 찾아 두리번두리번 동네 한 바퀴

시네마 파라디소

그러던 중, 현재 오픈 중인 음식점 구글 검색에서 눈에 띈 카페 파라디소(Caffè Paradiso). 이름에서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 떠올랐고, 영화 때문에 방문한 동네인 만큼 이 우연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참고로 이탈리아어에서 카페는 Caffè라고 한다.)  

홍콩 감성 잔뜩 느껴지는 저 아기돼지 같은 핑크색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저 에어컨들은 볼 때마다 참 독특한 느낌이란 생각이 든다. 

저 핑크아기돼지 빌딩 1층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 바깥에도 앉을 수 있는 2인석 테이블이 3개가 놓여 있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인다. 암튼 불투명한 문만 살짝 열려 있어 문을 닫은 줄 알았다. 

저 캐릭터 이름이 뭔지?

문 앞까지 가까이 가보니 이렇게 앙증맞게 작은 오픈 사인이 걸려 있다. 암튼 열려 있으니 다행.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앙증맞은 오픈 사인처럼 카페는 작고 귀여운 공간이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영국인 할아버지 한 분이 먼저 자리를 잡고 계셨고, 나는 제일 앞자리에 여유롭게 앉았다. 

메뉴

메뉴는 위에도 있고,

테이블 위에도 있다. 메뉴판에서 보이는 바다는 카페 바깥의 자리에 앉으면 잡히는 뷰다. (오전 8시 56분경 방문했는데,) 내가 얼리버드형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침 7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이른 카페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손님이 많지 않아 실내를 둘러볼까 했지만, 워낙 작은 공간이라 복잡할까 싶어 그냥 눈으로 구경만 했다.

 테이블은 몇 개 없었고, 공간은 작고 아담했지만 따뜻하고 아기자기 하고 소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벽화 옆에는 강아지들 사진이 잔뜩인데 카페 배경 샷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인 것 같다. 

그 옆으로는 한 때 가게에 진열되었을 것 같은 소품들과 뭔지 모를 책들,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 건물에 속한 곳이라 루프탑은 없을 거고 뭔가 개인 공간인 것 같기도 한데 옆에 '계단 미끄러움 주의'라고 되어 있다.

카페 공간이 위에도 있나? 싶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저 위로 올라간 손님의 사진은 찾을 수는 없었다. 

여긴 카운터를 바로 마주 보고 있던 내 자리. 목제 의자라 그런지 작은 공간 속 편안함을 더해 준다. 2000년대 많이 즐겼던 칠 아웃 Chill Out 느낌이 솔솔 들기도 한다.

Fresh Lemon Soda

여름 특별 메뉴인지 수박 스무디와 함께 별도의 메뉴판에 나와 주문했던 프레시 레몬 소다($36)가 금방 나왔다. 설탕을 넣을 거냐는 질문에, 어제 미도카페에서 당을 너무 많이 섭취한 관계로 ''노 슈가"로 주문. 음료수 잔을 채우고 남은 탄산수가 같이 제공된다.

Chang과 Singha 탄산수

TMI: '창(Chang)'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싱하(Singha) 탄산수와 마찬가지로 태국산이다. 역사와 판매량 면에서는 싱하가 훨씬 앞서지만, 창은 맥주와 함께 믹서로 즐기는 방식으로 나름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싱하가 전통적으로 강한 탄산감을 자랑하는 반면, 창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덜 강한 탄산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올라오는 탄산

갠적으론 라임을 선호하는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에 상큼한 분위기를 더 해주는 노랑이 레몬도 좋다. 탄산수 방울이 뽀골뽀골 올라오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괜히 혼자 흥해서 옆에 있는 만능 소스 HP소스랑 하인즈 케첩과도 줄 세워 사진 한 방 찰칵. 뭔가 부끄럽지만 나, 저 때 꽤나 신났던 모양이다. 

레몬워터 마시며 더위를 달래며 주위 디테일도 조금씩 둘러본다. 스누피 캐릭터들이 은근 많이 보였다. 

곳곳에 배치되어 은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피겨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그 위에 또다시 작은 귀여운 소품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저 뒤에 찻잔과 접시 타일도 인상적이었다.

요번 여행 계획에도 없던 서양 메뉴. 그냥 이곳에 우연히 흘러들어와 홀린 듯 시킨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간촐하다. 여행이니까, 가공육도 그냥 먹고 ㅎ. 간단하고 담백했다. '미쳤다, 찢었다, 꼭 드세요 두 번 드세요, 무조건 드세요 외'의 맛은 아니지만 모나지도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서양식 아침 식사도 오랜만이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속속들이 손님들이 들어오며 자리가 채워진다. 대 놓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서 그냥 들리는 소리와 음식의 흐름을 타고 순간의 분위기를 즐겼다. 

두 번째 손님은 발음을 들어보니 미국인인 듯했는데,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러 온 것 같았다. 차림새를 보니 딱 란타우 섬에서 산행을 위해 온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듯, 만나자마자 깨가 쏟아졌다. 접시의 반쯤 비우고 있을 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손님이 들어왔다. 내 바로 옆 자리를 좀 써도 되겠냐고 영어로 점잖게 물어보셨다. 사람들과 마주할 때, 첫 말투에서 기품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아주머니의 유창한 영국식 영어 발음 때문만은 아니다!) 암튼 발음으로 보아 홍콩 캔토니즈로 추측되었다. 나는 옆으로 공간을 조금 내어드리고 다시 음식을 즐겼다. 이 분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독서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첫 번째로 아침을 드시던 영국 할아버지, 그리고 몇 안 되는 익스패츠(거주 외국인)와 관광객들이 묘하게 섞여 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들의 조용한 움직임과 대화가 만들어내는 이 공간의 분위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 바로 옆 자리에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주방에서 나는 음식 준비 소리, 영국 할아버지와 내가 먹으면서 내는 식기가 그릇과 부딪히는 소리, 선풍기와 에어컨, 이 모든게 만들어내는 조용한 엠비언스. 그리고 다른 테이블의 (아마도) 미국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묘한 감성에 젖어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웠던 옛 홍콩의 바이브였다.

노래처럼 흥겨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행복했던 기분 때문에 생각났던 음악, 90년대 홍콩을 강타했던 페이 웡의 Summer of Love

인스타 성지가 되어 대륙인 관광객들로 꽉 찬 몽콕역 다리와 야우마테이 경찰서 앞

사실 홍콩 도심을 돌아다닌 첫날, 굉장히 놀랐던 건 공간 자체는 예전 그대로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물론 사라진 것도 많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언제나 예상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반가우면서도 익숙한 그 공간에서, 이제는 예전만큼 광둥어를 듣기 힘들어졌고, 그 대신 만다린어가 더 많이 들려왔다. 그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약간 어색하고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영화 첨밀밀

홍콩에 살았던 옛 시절만 해도 중국 본토 출신 사람들은 마치 영화 <첨밀밀>에서 느껴지는 그런 낯선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본토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진 듯, 홍콩 곳곳에서 만다린어가 들려오고, 본토 사람들도 많아지고,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만, 그 변화가 확연히 느껴져 신기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살았었기에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 수도...

카페 바깥자리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이번 여행을 하며 도심을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마치 옛날처럼 광둥어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홍콩은 뉴욕의 멜팅팟과는 또 다른, 유럽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멜팅 팟이었다. 과거 식민지 시절 영국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영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다. 특히, 서양인 뿐만 아니라, 중국계가 아닌 다양한 동양인들 모두 어우러졌던 곳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카페 파라디소의 바깥자리. 저 저리의 앉으면 위위 사진의 뷰가 보인다

익숙했던 그 느낌이 이 날 카페 파라디소에서 마치 축소판처럼 작게 다가왔다. 그 덕분에 옛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난 그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바깥으로 나가보니, 야외 자리에 앉아있는 누가 봐도 일본인 같은 50대 초반의 아저씨가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게 바로 홍콩이지!'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참고로 야외 자리는 따뜻한 햇살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카페 야외.

란타우섬은 예전부터 홍콩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이 주로 찾기도 하고 자리를 잡기도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분위기의 명맥이 이렇게나마 이어져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가 항상 이런 분위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우연히 찾아간 그 순간이 운 좋게도 모든 게 딱 맞아떨어졌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만약 다시 란타우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더 찾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런게 바로 예상치 못했던 여행의 묘미 아닐지.


💡카페 정보: 

카페는 무이워 선착장에서 도보로 근접한 거리에 있다.

 

홍콩 로컬 음식점 리뷰앱 오픈라이스에서도 이 카페는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맛(Taste)과 가성비(Value)에서 만점을 기록하고 있고, 리뷰를 번역해 보면 인도, 페루, 탄자니아, 이탈리아 등 다양한 커피 원두 선택과 훌륭한 커피 맛에 대한 칭찬이 많다. 특히, 이곳의 편안한 분위기, 여유로움, 조용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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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중

영화 <열혈남아> 트레일 첫 번째 포인트인 무이 워 Mui Wo에 도착했다. 

| 열혈남아 란타우 트레일의 시작

사우스 란타우 로드는. 양방향 한 차선 씩만 있는 꼬불꼬불한 2차로 도로다.

Mui Wo 무이 워는 광둥어로 '메이 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북쪽의 Silvermine Beach 실버마인 해변과 함께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던 곳이다. Tung Chung 퉁청 라인이 생기기 전까지는 홍콩 도심에서 이어지는 란타우섬의 각종 휴양지들로 이어주는 첫 관문이었다.

열혈남아, 장만옥을 기다리는 유덕화의 뒷모습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가 홍콩 도심에서 오가던 페리의 출발지이자 종착점이다. 장만옥의 극 중 고향인 타이오 Tai O로 가는 첫 버스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 무이워 Mui Wo 버스 정류장

영화 포스터

<열혈남아>에서 가장 유명한 공중전화 키스신의 포스터 촬영지다. 아마도 수많은 영화팬들이 여기를 방문했을 것이다. 비록 그 공중전화는 없지만 그럼에도 추억을 기리기 위해 가는 곳. 

무이워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이한 것은 다름 아닌 수많은 자전거들이었다. 불과 5천여명이 산다는 (그것도 2012년 기준) 작은 지역이니 주요 교통수단일만 하다. 현지 주민들 뿐 아니라 여행객 대여용으로도 보이는 수많은 자전거들의 주차장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어렸을 적 이곳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려 보려 했지만 하도 오래전이라 이런 기억이 거의 없다.

열혈남아 무이워 선착장

무이워 선착장과 버스정류장은 짧은 거리로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영화 속 장만옥과 유덕화를 이어주던 유일한 통로였다. 앞서 말했듯 홍콩과 란타우섬을 연결하는 유일한 관문인 만큼 유덕화에게는 비정한 거리를 벗어나 평온한 안식처를 찾는, 장만옥에게는 작고 답답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거점으로, 커플의 감정선의 변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을 나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버스 정류장
무이워 버스정류장

다행히도 그 뒤로 보이는 굴곡진 계단으로 이어지는 세 개의 건물의 형태는 옛 영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상상하고 왔지만, 주변에서 진행 중인 인프라 공사로 다소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4박 5일의 홍콩 여행 내내 비가 많이 왔지만 이 시점의 날씨는 너무나도 화창해서 사진을 찍을 때 빛이 번져 나왔다. 그래서 나와서 한 컷 더 찍고 ㅎ, 암튼 이곳은 영화에서 너무나 자주 봤던 장소라 익숙함이 먼저 다가왔다.

 

| 영화 속 선착장 페리 출입구

열혈남아 속 선착장 페리 출입구
영화의 주무대가 되었던 선착장 좌측 출입구.

영화 속에서 중요한 무대가 되었던 선착장 좌측 출입구. 배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 쪽으로 나오다 뒤를 바라보면, 유덕화와 장만옥이 서로를 기다리던 그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기둥은 영화에서 자주 봤던 것 같아서 같이 나오게 찍었지만, 어떤 장면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센트럴에서 온 나는 오른쪽 출입구로 나왔지만, 영화 속에서는 항상 이 왼쪽 출입구가 등장한다.

| 공중전화 박스 터를 찾아서

열혈남아 하이라이트

그리고 키스신.

열혈남아 키스신

<열혈남아>의 팬이라면,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찾을 그 키스신의 공중전화박스. 

키스신의 공중전화박스 위치 추정

영화 속에서 상징적인 장면을 연출한 그 공중전화 박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이곳에 서면 여전히 그 장면을 떠올리며 영화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위치를 대략 추정해 보면, 노란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 정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통신사업자가 바뀌고, 공중전화의 색깔도 주황색에서 파란색으로, 위치도 조금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이워 촬영지 촬영반경 및 키스신 동선
2016년 기준의 구글스트리트 뷰

2016년의 구글스트리트 뷰에서는 저 PCCW 파란 색의 공중전화박스가 아직 남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위치조차도 약간 애매해 보인다.  

영화 속 공중전화 박스

영화 속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진 인도 코너와 비교해 보면, 공중전화 박스가 조금 더 내려간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카메라의 구도나 렌즈 왜곡 때문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16년 PCCW 박스와 영화 속 HKT 박스 위치가 약간 다르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1983년 버스 터미널 사진. 영화속 커플이 타고다니던 버스가 저 1층짜리다. 출처: Leroy W.Demery, Jr.

70,80,90,00년대 옛 무이오 버스 터미널 사진을 한 시간 정도 찾아봤지만, 아쉽게도 그 오렌지 공중전화박스를 담은 사진은 찾지 못했다. 위 1983년 버스 중 타이오 행 1번 정류장이 가장 끄트머리라 좀 만 더 오른쪽 샷을 담았더라면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증거나 단서를 찾을 수 없으니 아쉽다. 

홍콩텔레콤은 2000년에 인수되었다.

'54년에 홍콩에 처음 공중전화 생기고 특히 7,80년대에 들어 저변(공중전화박스) 인프라를 확장 시켰다고 하니 저 1983년 사진에 공중전화박스가 존재했을 만도 한데 말이다. (영화는 1989년)

홍콩텔레콤 로고와 오렌지 색상의 영화 속 공중전화

참고로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오렌지 공중전화 박스는 홍콩텔레콤 시절 거고, 2000년 이후로 목격되다가 사라진 파란 색 공중전화박스는 PCCW 것이다.

선착장의 앞의 다른 공중전화 박스

선착장 앞에 있는 다른 공중전화 박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영화 속 공중전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형태는 같아도 색상과 로고가 바뀌었지만, 이곳에서 그나마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달래 볼 수 있었다.

영화 속 공중전화 박스 추정 위치에 서서, 버스 정류장의 구조물들을 바라보면 그 허름한 모습 때문에 옛 흔적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아쉬움을 다시 한번 달래준다. 이따가 저기서 버스 타고 장만옥이 일하던 부이 오로 향할 예정이다.  

|무이워 개선 작업으로 인한 변화

키스신 공중전화 박스 터를 지날 때의 느낌. 무이 워의 개선 작업이 진행 중이라 공사가 한창이다.

무이워 개선작업 안. 출처: cedd.gov.hk

이 공사는 무이워의 현대화 및 편리성 강화를 위해 계획된 것으로, 남북 워터프런트 산책로, 광장조성, 교통 개선, 공공시설 재배치 및 신축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23년에 시작된 이 작업은 약 4.5년 동안 계속될 예정이다. 공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가 알던 <열혈남아> 속 무이 워 모습은 아마도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영화 속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영화 속 무이워 촬영지 지분은 배경까지 잡더라도 위 노란 사각형 딱 저 정도다) 

| 선착장 주변 산책 한바퀴

사이니지

영화 속 무이워 선착장/정류장이 등장하는 횟수도 많고 그만큼 임팩트도 강하지만 실제 촬영 장소 반경은 아주 좁아 촬영지 순례는 생각보다 금방 끝난다. 대략 100미터 정도만 걸어도 모두 둘러볼 수 있을 수준인데 물론 그 사이에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또 다를 것이다.

그 날 동선

계획보다 일찍 온 덕분에, 아침 식사 장소를 찾으며 선착장 주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영화 속 버스정류장 뒤의 배경이었던 건물도 좀 자세히 살펴보고,

그 건물들 옆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경치도 느껴보고,

공삿길 위로 구도를 잡아보니 야자수들을 보며 열대 지방에 온 느낌도 들었고,

무이워 페리 피어 로드 쪽으로 들어가니 두기봉 감독의 액션 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집약적인 홍콩 감성의 건물 배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참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홍콩 택시는 빨간색인데, 이곳 란타우섬에서는 파란색 택시를 볼 수 있다. (사진 오른쪽에 주차된 것처럼)

홍콩의 택시 3종. 출처: td.gov.hk

란타우섬에서만 운행하는 이 파란 택시들은 현재 섬 전체에서 '24년 4월 기준 75여 대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빨간 도심 15,250데, 녹색 뉴테리토리 2,838대) 다 고유의 운행 영역이 있는데 홍콩국제공항, 디즈니랜드, 홍콩 쪽 홍콩-주하이-마카오 브리지는 예외라고 한다.

홍콩의 간판과 도로 사인들이 건물 배경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감성은 언제는 나를 매료시킨다. 오래전부터 홍콩은 (조금 과장해서) 길을 잃을 수 없을 만큼 도로 표지판이 잘 배치된 도시로 평가받았었다. 

코너 블록을 한 바퀴 돌면서 보니 공사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저런 화살표 전광판 보니 또 괜찮아 보이고,

맑은 하늘아래 따듯한 오렌지 색조가 돋보여서 그랬는지 피자가 왠지 맛있을 것 같았던 음식점.

구글 지도에서 미리 보았던 바다를 바라보는 중국과 레게 느낌이 뭔가 대조적이었던 차이나베어 음식점. 방문 시 문은 닫아 있었다. 

우와... 그리고 또다시 마주한 자전거들. 공사 때문에 다 밀려나서 이런 것 같은데 빡빡한 홍콩의 도심 건물 분위기가 자전거 공간에서도 느껴졌다. 

블록을 돌며 보이는 무이워 선착장을 다시 한번 바라보며, 이 여유로운 산책을 마무리해 갔다. 

 

| 홍콩 로컬 바이브, 카페 파라디소에서 아침식사

구글 지도에서 근처에 실시간으로 열려 있는 곳을 찾아보니, 이름부터 시네마 천국을 연상케 하는 카페 파라디소 Cafe Paradiso가 눈에 띄었다. 느낌이 왔다. 이번 여행에서 홍콩 특유의 빡빡한 느낌의 건물 사진들을 특히 많이 찍었는데 그렇게 찍은 저 핑크색 아기 돼지같은 건물 아래에 위치했다.

요렇게. 카페는 거리 쪽으로 작은 2인용 테이블 세 개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처음에는 위 사진 같이 허~한 느낌이 들어 문이 닫혀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애매~해 보여 한 번 다가가 보았다. 

오픈~

냉방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이 아주 살짝 열려있었고, 작고 소심한 "오픈" 사인이 걸려 있었다. 오전 8시 30분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테이블에 영국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계셨다. 인테리어와 공간이 아주 작고 귀여운 카페였다. 

아침부터 날이 더웠던 터라, 상큼한 레몬 프레시 소다(설탕 없이!)와 간단한 영국식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먹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 온 손님들로 작은 공간이 금방 채워졌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곳에서, 동양과 서양의 오묘한 조화가 느껴지는 옛날에만 느낄 수 있었던 홍콩의 로컬 바이브가 참 좋았다. 요즘 홍콩 도심은 너무 대륙인들에 의해 잠식되어 많이 변했지만, 이곳 무이워의 조용한 카페에서 옛 홍콩의 감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정말 힐링이 되었다. 이 경험이 너무 좋았기에, 나중에 이 카페에 대해 따로 포스팅할 계획이다. 만약 이 카페가 평행우주 선상에서 열혈남아의 타임라인 속에도 존재했다면 분명 유덕화와 장만옥도 이 곳에서 이국적인 자국의 홍콩 바이브를 흠뻑 느끼며 자신들이 아지트로 삼았지 않았을까 싶다.

카페를 나와 건너편을 보니, 또 다른 홍콩 특유의 건물, 혹은 아파트? 무이워에서의 아침은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 다시 촬영지 순례: Pui O 부이오를 향해 출발

선착장 앞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눈앞에 펼쳐진 복합적인 바다 뷰가 좋았다. 

또다시 마주친 수많은 자전거들이 아까 정박해 있던 페리가 떠나면서 더 눈에 띄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니, 차이나 베어를 지나 멋진 느낌의 큰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나무는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울창한 자신감을 뽐내며,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나무의 위용을 보니 이 지역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공적인 마천루 대신 자연이 만들어낸 랜드마크 같았다. 검색해 보니 아마 망고 나무일 가능성이 높다. 

그 나무 바로 옆에는 맥도널드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카페 파라디소의 평온함과는 달리 이곳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바퀴 돌아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이제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그 루트를 따라 부이 오 Pui O로 떠날 시간이다. 9시 20분 출발 버스를 타기 위해 9시 16분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3M 번은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운행되지만, 대략 아침 6시부터 밤 11시 45분까지 나름 좁은 간격의 시간대로 운행된다. 주말과 평일의 스케줄도 좀 다르지만, 구글지도나 아래 뉴란타우버스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3M 말고 다른 번호들도 간다)

 

3M   梅窩碼頭 > 東涌站巴士總站

31 平日車資: $2.7,   假日車資: $5.4   地圖   巴士預計抵站時間 北大嶼山醫院(北行), 逸東邨美逸樓 [部份班次途經此站] 備註 全程行車時間約為 43 分鐘

www.nlb.com.hk

3M 버스의 종점은 퉁청 케이블카 버스 터미널이다. 여기가 출발점이라 나와 또 다른 한 명의 승객뿐이어서 저 2층의 맨 앞자리를 선점할 수 있었다.

노선을 보니, 퉁청 쪽에 Wong Ka Wai라는 지점이 있었다. 열혈남아의 감독인 왕가위 Wong Ka'r' Wai랑은 'r' 하나 차이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피식 웃기기도 했다

원래 부이오를 지나치려 했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들르기로 했다. 하차 지점은 부이오 Pui O의 로와이춘 Lo Wai Tsuen이다. 유덕화가 실제로 내렸던 지점은 정식 버스 정류장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지만( 로와이춘과 선와이춘 Sun Wai Tsuen 사이다), 나는 유덕화가 내리기 직전 정류장에서 내려 장만옥이 일하던 (구) 시브리즈 레스토랑 Sea Breeze Restaurant이 있던 터로 찾아가 보기로 했다. 

열혈남아, 무이워에서 버스타고 장만옥 만나러 가는 유덕화

영화에서 잠깐 보였던 저녁 신에서, 장만옥을 만나러 가던 유덕화의 루트다. 영화 속 시절 버스는 1층짜리였지만 아무렴 어떠나, 길은 동일한 사우스란타우로드다. 가자고, 고!  

나중에 무이워 벗어나기 전 찍은 건데 고프로도 정면에 설치 완료. 마을 쪽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타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저 노랑 안전봉 밑으로 재배치함. 유덕화는 사이드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일치하는 구도는 아니지만 뭐 ㅎㅎ

아침 8시 14분에 도착해 9시20분의 버스를 타기까지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이 워에서 경험한 생각지도 못했던 힐링과 로컬 바이브의 카페 파라디소, 그리고 맥도널드 옆 망고나무의 인상적인 모습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종점에서 부이 오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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