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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남아> 촬영지를 따라 트레킹을 마친 후, 무이오(Mui Wo) 선착장 주변을 여유롭게 거닐며 아침 식사할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른 로컬 카페, 카페 파라디소(Caffè Paradiso).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지만, 옛날 홍콩의 감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라, 공간을 채운 사람들 덕분에 전해졌던 그 따뜻하고 반가운 느낌이었다.  


아침식사 할 곳을 찾아 두리번두리번 동네 한 바퀴

시네마 파라디소

그러던 중, 현재 오픈 중인 음식점 구글 검색에서 눈에 띈 카페 파라디소(Caffè Paradiso). 이름에서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이 떠올랐고, 영화 때문에 방문한 동네인 만큼 이 우연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참고로 이탈리아어에서 카페는 Caffè라고 한다.)  

홍콩 감성 잔뜩 느껴지는 저 아기돼지 같은 핑크색 건물에 위치하고 있다. 저 에어컨들은 볼 때마다 참 독특한 느낌이란 생각이 든다. 

저 핑크아기돼지 빌딩 1층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 바깥에도 앉을 수 있는 2인석 테이블이 3개가 놓여 있다.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인다. 암튼 불투명한 문만 살짝 열려 있어 문을 닫은 줄 알았다. 

저 캐릭터 이름이 뭔지?

문 앞까지 가까이 가보니 이렇게 앙증맞게 작은 오픈 사인이 걸려 있다. 암튼 열려 있으니 다행.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앙증맞은 오픈 사인처럼 카페는 작고 귀여운 공간이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영국인 할아버지 한 분이 먼저 자리를 잡고 계셨고, 나는 제일 앞자리에 여유롭게 앉았다. 

메뉴

메뉴는 위에도 있고,

테이블 위에도 있다. 메뉴판에서 보이는 바다는 카페 바깥의 자리에 앉으면 잡히는 뷰다. (오전 8시 56분경 방문했는데,) 내가 얼리버드형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침 7시 30분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이른 카페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손님이 많지 않아 실내를 둘러볼까 했지만, 워낙 작은 공간이라 복잡할까 싶어 그냥 눈으로 구경만 했다.

 테이블은 몇 개 없었고, 공간은 작고 아담했지만 따뜻하고 아기자기 하고 소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벽화 옆에는 강아지들 사진이 잔뜩인데 카페 배경 샷이 군데군데 보이는 것을 보니 아마도 이곳을 방문했던 아이들인 것 같다. 

그 옆으로는 한 때 가게에 진열되었을 것 같은 소품들과 뭔지 모를 책들, 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데 건물에 속한 곳이라 루프탑은 없을 거고 뭔가 개인 공간인 것 같기도 한데 옆에 '계단 미끄러움 주의'라고 되어 있다.

카페 공간이 위에도 있나? 싶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저 위로 올라간 손님의 사진은 찾을 수는 없었다. 

여긴 카운터를 바로 마주 보고 있던 내 자리. 목제 의자라 그런지 작은 공간 속 편안함을 더해 준다. 2000년대 많이 즐겼던 칠 아웃 Chill Out 느낌이 솔솔 들기도 한다.

Fresh Lemon Soda

여름 특별 메뉴인지 수박 스무디와 함께 별도의 메뉴판에 나와 주문했던 프레시 레몬 소다($36)가 금방 나왔다. 설탕을 넣을 거냐는 질문에, 어제 미도카페에서 당을 너무 많이 섭취한 관계로 ''노 슈가"로 주문. 음료수 잔을 채우고 남은 탄산수가 같이 제공된다.

Chang과 Singha 탄산수

TMI: '창(Chang)'은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싱하(Singha) 탄산수와 마찬가지로 태국산이다. 역사와 판매량 면에서는 싱하가 훨씬 앞서지만, 창은 맥주와 함께 믹서로 즐기는 방식으로 나름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고 한다. 싱하가 전통적으로 강한 탄산감을 자랑하는 반면, 창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고 덜 강한 탄산감을 제공한다고 한다.

올라오는 탄산

갠적으론 라임을 선호하는데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더운 날씨에 상큼한 분위기를 더 해주는 노랑이 레몬도 좋다. 탄산수 방울이 뽀골뽀골 올라오는 게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괜히 혼자 흥해서 옆에 있는 만능 소스 HP소스랑 하인즈 케첩과도 줄 세워 사진 한 방 찰칵. 뭔가 부끄럽지만 나, 저 때 꽤나 신났던 모양이다. 

레몬워터 마시며 더위를 달래며 주위 디테일도 조금씩 둘러본다. 스누피 캐릭터들이 은근 많이 보였다. 

곳곳에 배치되어 은근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피겨들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고, 그 위에 또다시 작은 귀여운 소품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저 뒤에 찻잔과 접시 타일도 인상적이었다.

요번 여행 계획에도 없던 서양 메뉴. 그냥 이곳에 우연히 흘러들어와 홀린 듯 시킨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간촐하다. 여행이니까, 가공육도 그냥 먹고 ㅎ. 간단하고 담백했다. '미쳤다, 찢었다, 꼭 드세요 두 번 드세요, 무조건 드세요 외'의 맛은 아니지만 모나지도 않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서양식 아침 식사도 오랜만이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속속들이 손님들이 들어오며 자리가 채워진다. 대 놓고 사진을 찍을 수는 없어서 그냥 들리는 소리와 음식의 흐름을 타고 순간의 분위기를 즐겼다. 

두 번째 손님은 발음을 들어보니 미국인인 듯했는데, 이곳에서 친구를 만나러 온 것 같았다. 차림새를 보니 딱 란타우 섬에서 산행을 위해 온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인 듯, 만나자마자 깨가 쏟아졌다. 접시의 반쯤 비우고 있을 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국인 손님이 들어왔다. 내 바로 옆 자리를 좀 써도 되겠냐고 영어로 점잖게 물어보셨다. 사람들과 마주할 때, 첫 말투에서 기품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순간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참고로 이 아주머니의 유창한 영국식 영어 발음 때문만은 아니다!) 암튼 발음으로 보아 홍콩 캔토니즈로 추측되었다. 나는 옆으로 공간을 조금 내어드리고 다시 음식을 즐겼다. 이 분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독서를 시작하셨다.

그렇게 첫 번째로 아침을 드시던 영국 할아버지, 그리고 몇 안 되는 익스패츠(거주 외국인)와 관광객들이 묘하게 섞여 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들의 조용한 움직임과 대화가 만들어내는 이 공간의 분위기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 바로 옆 자리에 들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주방에서 나는 음식 준비 소리, 영국 할아버지와 내가 먹으면서 내는 식기가 그릇과 부딪히는 소리, 선풍기와 에어컨, 이 모든게 만들어내는 조용한 엠비언스. 그리고 다른 테이블의 (아마도) 미국 손님들이 나누는 이야기들.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묘한 감성에 젖어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웠던 옛 홍콩의 바이브였다.

노래처럼 흥겨운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행복했던 기분 때문에 생각났던 음악, 90년대 홍콩을 강타했던 페이 웡의 Summer of Love

인스타 성지가 되어 대륙인 관광객들로 꽉 찬 몽콕역 다리와 야우마테이 경찰서 앞

사실 홍콩 도심을 돌아다닌 첫날, 굉장히 놀랐던 건 공간 자체는 예전 그대로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물론 사라진 것도 많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오기 전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언제나 예상은 현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반가우면서도 익숙한 그 공간에서, 이제는 예전만큼 광둥어를 듣기 힘들어졌고, 그 대신 만다린어가 더 많이 들려왔다. 그 변화가 신기하면서도 약간 어색하고 충격적인 경험으로 다가왔다.

영화 첨밀밀

홍콩에 살았던 옛 시절만 해도 중국 본토 출신 사람들은 마치 영화 <첨밀밀>에서 느껴지는 그런 낯선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그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본토의 영향력이 훨씬 더 커진 듯, 홍콩 곳곳에서 만다린어가 들려오고, 본토 사람들도 많아지고,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겠지만, 그 변화가 확연히 느껴져 신기하면서도 낯설게 다가왔다. 꽤 오랜 시간 이곳에 살았었기에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을 수도...

카페 바깥자리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

이번 여행을 하며 도심을 벗어나 외곽 지역으로 갈수록, 마치 옛날처럼 광둥어가 더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 홍콩은 뉴욕의 멜팅팟과는 또 다른, 유럽적인 감성이 느껴지는 멜팅 팟이었다. 과거 식민지 시절 영국의 영향력이 컸던 만큼, 영국인을 비롯해 다양한 외국인들이 모여 살던 도시였다. 특히, 서양인 뿐만 아니라, 중국계가 아닌 다양한 동양인들 모두 어우러졌던 곳이었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는.

카페 파라디소의 바깥자리. 저 저리의 앉으면 위위 사진의 뷰가 보인다

익숙했던 그 느낌이 이 날 카페 파라디소에서 마치 축소판처럼 작게 다가왔다. 그 덕분에 옛 기억이 더욱 선명하게 되살아난 그 순간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중에 바깥으로 나가보니, 야외 자리에 앉아있는 누가 봐도 일본인 같은 50대 초반의 아저씨가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이게 바로 홍콩이지!'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참고로 야외 자리는 따뜻한 햇살과 바닷바람을 맞으며 앉아있으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카페 야외.

란타우섬은 예전부터 홍콩 도심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이 주로 찾기도 하고 자리를 잡기도 했던 곳이었는데, 지금도 그 특유의 분위기의 명맥이 이렇게나마 이어져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카페가 항상 이런 분위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우연히 찾아간 그 순간이 운 좋게도 모든 게 딱 맞아떨어졌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이 너무 좋아서, 만약 다시 란타우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번 더 찾아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이런게 바로 예상치 못했던 여행의 묘미 아닐지.


💡카페 정보: 

카페는 무이워 선착장에서 도보로 근접한 거리에 있다.

 

홍콩 로컬 음식점 리뷰앱 오픈라이스에서도 이 카페는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맛(Taste)과 가성비(Value)에서 만점을 기록하고 있고, 리뷰를 번역해 보면 인도, 페루, 탄자니아, 이탈리아 등 다양한 커피 원두 선택과 훌륭한 커피 맛에 대한 칭찬이 많다. 특히, 이곳의 편안한 분위기, 여유로움, 조용함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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