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남산에서 바라 본 명동, 소파길의 시작점

지난 번 남산 산책 길에 이어 역사 산책 포스팅을 올려 본다

남산 소파로(길) 역사 산책 포인트 목차: 
- 세종호텔
- 남산예장공원
- 소파로 산채밥 맛집
- 강북 중구 3대 사립 국민(초등) 학교 - 리라, 숭의, 계성
- 돈가스거리
- 남산케이블카
- (구) 동보성 (중국대사관영사부) - 중화요리
- 삼순이계단
- 회현시민아파트
- 원조남산돈가스
- (구) 남산밀레니엄 호텔

| 소파로

중앙의 보라색 선이 소파로

소파로는 명동 세종호텔 건너편 부터 시작해서 밀레니엄힐튼이 자리잡은 소월길까지의 길이다. 이 동선에는 리라, 숭의초등학교, 남산돈가스거리, 현재 중국대사관인 옛 중화요릿집 (구) 동보성, 남산케이블카, 남산산책로 B코스, 삼순이계단, 그리고 백범광장을 지나 밀레니엄힐튼까지 이어진다. (남산돈가스는 소파로의 거의 끝자락에 있다)

소파 방정환선생 동상의 옛, 지금 모습, 옛 모습 뒤로 (구)어린이회관이 보인다    출처: https://lrl.kr/fnjw

남산을 둘러쌓고 있는 이 소파길과 소월길을 따라 장충단길까지가다 보면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의 대한민국 서울의 풍부한 역사의 순간과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동시에 이제는 야생동물이 살지 못하는, 파괴되고 유린된 남산의 슬픈 연대기이기도 하다) 소월길이 시인 김소월에서 따왔듯 소파길은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의 호에서 따와 1984년에 명명되었다

지금의 소파로길에서 바라 본 1971년 남산과 (구)어린이회관  출처: https://lrl.kr/nLBr

1966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란 것이 생기면서 우국지사 동상, 기념탑, 시비 건립 '열풍(?)'이 일었었는데 남산의 민족사적 이유 때문인지 윗분들의 선호지는 #1은 항상 남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산에 가면 동상들이 우후죽순 몰려 있다. 후순으로 어린이대공원, 장충단공원...) 이는 유신시대 애국교육의 흔적인 동시에 일본강점기 시절 남산에 들어서 있던 일본의 상징물들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소파 방정환 상도 이 시기 1971년 남산에 지어졌고 이후 육영제단의 어린이회관 (현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이 자리를 옮기며 1987년 어린이회관과 가까운 서울어린이대공원으로 옮겼다

남산 방향 소파로의 시작  출처: https://lrl.kr/MWtE

그럼 이 동선에 있는 주요 POI들을 살펴보자.


| 세종호텔

소파로 길의 시작과 세종호텔 건물 (중앙SEJONG)

소파로 동선 직전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뽑을 수 있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호텔건설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중요한 관광사업이었다. 따라서 정부기관이 추진했거나 정부의 입김이 들어간 것으로 대표적으로는 워커힐 '63, 웨스틴 조선 '70, 남산 하얏트 '78, 롯데호텔 '79 등이 있다.

현 엠베서더호텔, 옛 금수장 (출처: 중앙시사매거진)

그 와중에 개인의 민영/민자 호텔 건립 사례도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1966년 세종호텔이다. 이외 금수장 (현 장충동 엠베서더호텔) '55, 명동 사보이 호텔 '57이 있다 (호텔 연혁을 보면 서로들 최초의 민자 호텔이라고 한다 ㅎㅎ)
 

세종호텔 은하수 공홈펌  출처: https://lrl.kr/EybM

세종호텔은 명동, 남대문, 남산으로의 관광 근접성이 뛰어난 곳에 위치 하여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기도 하다. 특히 1978년에 선보인 한국최초의 한식 뷔페 '은하수'로 유명했다. 코로나19로 잠깐 쉬고 이후 구설수에 올랐지만 쨋든 다시 영업 중이다


 

| 남산 예장 공원

남산 예장공원   출처: https://lrl.kr/rXKO

2021년에 조성된 공간으로 위 이미지 '예장공원'의 글자가 있는 곳이 철거된 안기부 6국이었고, 훨씬 이전엔 일제강점기 통감관저 및 일본이 거주지가 있던 곳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시 왜국 본부) 바로 남산이 유린당하기 시작된 첫 기점이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시대가 변하며 1990년 서동권 (안전기획부장), 고건 (서울시장), 강홍빈 (서울시시정연구관, 도시계획학박사)의 3자 회동을 시작으로 약 5년 동안 많은 공무원들을 거쳐가며 정보부의 초기 청산 작업이 이루어졌다

무빙에서 이미현의 안기부 사무실

"남산은 정보부의 대명사가 되었다(중략)... 오랜 세월 동안 '남산'은 인간성이 파괴되는 공포의 공간이 지대로 여겨졌다. 제3공화국에서 시작하여 제6공화국까지 장장 34년간이나 이어졌다(중략)... 상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 공포의 시절이었다. 정보부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국가기관이었다. 국내정치는 그러했지만 밖으로는 많은 공을 쌓기도 했다" - 손정목 "서울도시계획이야기" 발췌

조심스럽게 예상해 보는데, 드라마 <무빙>에서 나온 이미현 (한효주 분)의 안기부 사무실은 남산을 뒤로한 국가안전기획부 (현 유스호텔)을 기준으로 하되 예장공원 조성과 함께 철거된 안기부 6국, 그리고 한예종에 위치한 안기부 이문동 청사의 공간들이 함께 합쳐져 묘사된 건 아닐까 한다
 


 

| 소파로 산채밥 맛집

미슐렝 가이드의 목멱산방 메뉴&amp;amp;nbsp; 출처 목멱산방 공홈

소파로(길)에는 두 개의 유명한 산채밥집이 있다. 먼저 위 언급한 예장공원과 통감부터를 지나자마자 바로 '목멱산방'이라는 곳이 나온다. '19년 남산공원길에서 리라초등 건너편으로 이사했다. 

겸재 정선의 '목멱조돈'

근데 왜 남산도 아니고 '목멱산'방일까? 바로 남산의 옛 이름이 '목멱산'이었기 때문이다. 마뫼, 말뫼라는 순우리말을 음역 하여 목멱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음역의 공식은 잘 모르겠다...

한 눈에 보는 한양도성&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IPZ39

남산은 (경복궁 기준) 조선시대 북 북악산 (주산), 서 인왕산 (우백호), 동 낙산(좌청룡)과 함께 한양 성내를 조망할 수 있는 (안 쪽에 있는) '안산'과 같은 곳이었다. 조선이 여기에 국사당을 짓고 모시던 수호신이 목멱대왕이었다

산채집 인스타 공식 펌

다른 하나는 소파길을 좀 더 올라와 돈가스 거리에 위치한 촛불1978 뒤의 남산 산채집이다. 돈가스 거리에 위치한 것 답게 산채비빔밥 외에도 왕돈까스를 같이 팔고 있다.  돈가스 거리는 좀 더 있다가 다루겠다. 암튼 두 집 다 수요미식회에서 소개되었었다


 

| 강북 중구 3대 사립 국민(초등) 학교 - 리라, 숭의, 계성

새로 터를 잡은 목멱산방 건너편에는 리라, 숭의 초등/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 또한 남산 안에서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도 명문 사립으로서 그 시절(90년대) 구역별 셔틀버스는 물론, 급식, (영상) 방송반, 관현악부 외 시즌에 따라 스케이트, 스키, 수영 등 그 시절 고급 스포츠 액티비티 수업 시간이 따로 있었고, 수학여행 코스도 서로 견줄만한 곳들이었다 

숭의초등학교&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lrl.kr/MWuI

조선시대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일본도 이 풍수명당 남산에 군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미친듯이 조선왕궁을 공략하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하며 받아간 남산에 일본 신을 모시는 조선신궁과 경성신사 등을 지었고 1953년 개교한 숭의학원이 바로 이 경성신사 터였다. 6.25 전쟁 이후 주인 없던 땅이나 시설을 차지하려는 행위가 많았다고 하는데, 바로 최기석이라는 사람이 경성신사 터와 신사건물을 차지했다고 한다

숭의여자대학교 경성신사&amp;amp;nbsp; &amp;amp;nbsp;출처:&amp;amp;nbsp;https://lrl.kr/MWuM

이때부터 어마어마한 가건물 알 박기의 아스날 연대기가 펼쳐지는데 (영락교회, 이준 삼풍 회장, 박동선 모자, AFAK , 이승만과 박현숙 등)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어찌하였건 이 덕분에 숭의 초등, 여고, 대학은 남산의 아름다운 자연친화적 환경의 계곡 속 개신교 선교교육의 대한민국 대표 사립학교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일명, 병아리 리라 초등학교&amp;amp;nbsp; &amp;amp;nbsp;출처:&amp;amp;nbsp;https://lrl.kr/rXLF

예쁘고 귀여운 노랑 교복 때문에 병아리라 많이 불리 웠었고, 많은 연예인 배출로도 유명한 리라 예술고등/초등학교는 숭의초등 바로 옆에 위치한다. 여기도 일본의 노기신사가 자리 잡았던 곳인데, 권응팔이라는 사람이 그 시절 상경한 비행청소년들을 모아 기술을 가르치는 선행을 통해 재단법인 직업소년원으로 인정받아 1973년 '리라학원'이 된다. 그리고 이 권응팔의 딸 권리라 양이 입학하며 '리라국민학교'가 된다. 리라초 뒤의 남산원 또한 강점기 시절 내목신사 터가 되겠다

김원 건축가가 디자인한 계성국민학교. 나름 유명했던 시계탑 이전에 찍힌 사진인 것 같다&amp;amp;nbsp; 출처: https://lrl.kr/rXLK

소파로에 위치하진 않았지만 위 당시 서울 사립 국민학교 삼국지로 치면 숭의, 리라 말고 계성이 있었다. 세종호텔 뒤 명동성당 계성여고 옆에 위치한 가톨릭 사립 계성국민학교는 지금 반포로 (쫓겨(?))옮기긴 했지만 당시 이 세 국민학교는 상당한 라이벌 관계였다. 명동성당에 위치한 관계로 데모가 많던 전통 시절 최루탄가스로 밥 먹듯이 수업중지도 많았고, 명동 성당의 복사가 되면 김수환 추기경님을 만날 수도 있었고, 수녀님 교장 및 선생님들이 있었고 (성경) 교리 정규 수업이 따로 있었다

명동성당과 계성여고를 지나 샛별동산을 끼고 계성국민학교 쪽으로 향하는 동선에 중간에 위치한 샤르트르 성바오로수녀회 서울관구의 장미창문. 잔디밭 뜰도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출처: 평론가 이재용과 그의 딸 그리고 건축 https://shorturl.at/bfuRZ

장미 창문으로 유명한 학교 건물 옆 명동성당 샤르트르 수녀원을 디자인했던 김원 건축가의 그 연속성을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인현서당이란 이름으로 1882년 개교되었고 1941년 계성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  상징은 샛별이었다. 계성(啓星) > 빛나는 별 > 샛별 > 성모 마리아

1987년 6월 항쟁의 명동성당 언덕

소파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담으로 8,90년대 초 민주화운동 시기의 계성 학생들은 최루탄을 몸으로 기억할 정도로 매우 익숙한 세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동성당 바로 뒤였으니 데모만 터지면 최루탄이 터지고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거나 휴교가 비일비재했다.

6월 항쟁 종료 후 사람들을 이동시킨 계성국민학교셔틀버스 (3호차인듯...)&amp;amp;nbsp; &amp;amp;nbsp;출처: https://shorturl.at/gEJY1

1987년 6월 민주항쟁 시 국민학생들은 일찍이 집으로 돌아갔으며 극적인 타협을 본 후 항쟁에 있었던 이들은 계성국민학교 버스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당시 기사&amp;amp;nbsp; 출처&amp;amp;nbsp; &amp;amp;nbsp;https://shorturl.at/hltR4

또한 이때 6월 항쟁 동안 농성 중의 언니, 오빠들을 위해 자신들의 도시락을 건네었던 그 당시 일명 '도시락부대' 계성여고생들의 일화들도 유명하다 (90년대 즈음 계성국교생들은 학교 건물 레노베이션 때문에 계성여고 건물에서 1년여간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서 계성여고 언니, 누나들과도 거시적으로 낯선 관계는 아니다) 

소파길 얘긴데 중구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다시 동선으로 돌아가서..


 

| 돈가스거리

네이버맵 위성사진으로 보니 한 6곳의 돈까스집들이 보인다

여기에는 돈가스뿐 만 아니라 프러포즈의 성지로 불렸던 촛불 1978, 산채비빔밥으로 유명한 산채집도 있다. 뭐 어쨋던 남산돈까스로 유명한 거리로 호객행위도 장난 아니어서 차 타고 지나만가도 홀릴 홀릴 듯한 호객 행위에 이끌려 끌려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1978년 12월에 오픈해 그 시절 프로포즈 장소로 유명했던 '촛불1978'

돈가스 거리는 리라, 숭의 입구를 지나치자마자  펼쳐지는 그림으로 남산 먹방을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공간이다 (사실 여기 말고 딱히 먹을 구역이 없다)

빅페이스의 원조남산돈까스 공론화 관련 나무위키펌

'21년 유튜버 빅페이스로 인해 원조 돈가스 집이 어디인가 논란이 있어 법정소송까지 가는 사건이 있었고  (https://shorturl.at/HWX24),  '23년 디즈니플러스 <무빙>으로 다시 한번 떠올라 찾아갔었다. 
 


 
 
 

| 남산케이블카

1960년대 초반 남산타워까지 600m를 잇는 대한민국 최초의 케이블카로서 남산 여행의 오랜 로망의 상징 중 하나다. 1964년엔 최초로 케이블카에서 첫 결혼식이 열렸다고도 한다

2013년 승강장의 모습이라고 한다. 현재도 더 심하면 심했지 별 다를 바 없다.&amp;amp;nbsp; 출처&amp;amp;nbsp;&amp;amp;nbsp;https://shorturl.at/twAGV

하지만 주말에 한 번 타려면 엄청난 줄이 기다리는 곳. 요즘처럼 인터넷, 미디어가 다양해지지 않았을 때 (월미도 바이킹과 함께 ㅎ) 심심치 않게 뉴스에서 사고 소식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넷에서 좀 찾아봤는데 아래와 같다. (출처: https://shorturl.at/tEGQW)

- 1993년 물받이에 부딪혀 승객 21명 부상
- 1995년 운전사 음주운전으로 케이블카 2대가 승강증 들이받음 
- 2009년 강풍 사유로 지상 100m 지점에서 멈춤 (승객 12명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긴급 구조됨)
- 2019년 제어되지 않은 20m 고속질주로 안전펜스와 부딪힘. 승객 7명 부상 (경상이라고 함)
독점논란에 대한 최근 뉴스 출처: 연합뉴스

박통 시절 사실상 무기한적 허가권 계약을 승인받고 계약한 민자 사업인데 (군사정권 당시 궤도업(케이블카) 면허를 내주면서 사업 종료 시한을 명시하지 않았다. 사실상 영구적 독점이 가능하다는 얘기: 나무위키 )... 남산은 국가 소유고 케이블카 사업허가권은 또 서울시에 있다 보니 독점 운영에 대한 논란도 있는 곳이다. 

(소리없이) 타고 올라갈 때 야경 찍었던 때

관광객도 많아지니 케이블카 내의 현실은 이렇다. 그리고 출퇴근 피크타임 지하철 느낌이라 보면 될 듯하다

당시 케이블카가 아니면 도보나 차로 남산타워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웰빙문화 때문에 개인 자동차는 통제되었지만 도보를 위한 둘레길이 생겼고 (남산은 270m밖에 안되기 때문에 일반인 기준 오르기 힘든 산은 아니다), 버스로도 올라갈 수 있다. 남산 케이블카가 몇십 년에 걸친 워낙 로망의 상징이어서 참 타기가 힘든데 (줄 때문에...) 600미터를 올라가는 동안의 풍경은 당연히 좋다. 케이블카 안의 현실은 창문 앞에 서지 않는 이상... 각자도생. 매출이야 한 개인이 왈가불가할 건 아니지만 나름 근대 역사의 아이콘으로서 시대가 지속적으로 바뀜에 따라 그 문화를 꾸준히 반영하며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 (구) 동보성   (중국대사관영사부)

30여년을 자리잡았던 옛 중화요리 동보성 자리

남산돈가스 거리의 끝과 남산케이블카 바로 사이에 퇴계로 18길이라고 빠지는 길이 있는데 이는 중국대사관영사부로 가는 길로 원래 '74년에 오픈한 동보성이라는 유명한 고급 중화요릿집이 있었던 곳이다. 2000년대 초반 중국대사관영사부가 들어오며 현재는 명동에서 운영 중이다

(여러 썰이 있지만 이른바 "홍콩간다"라는 은어도 그 시절 중화요리 붐 때문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amp;amp;nbsp; 출처: https://shorturl.at/htBLM

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졌던 고급 중화요리 붐을 타고 홍보석, 만다린, 만리장성, 만강홍 등과 어깨를 견주었던 곳으로 특히 안기부가 위치한 남산이라는 위치 때문에 정관계, 언론계의  고위직 인사들의 화합 장소로도 유명했다. 물론 바로 앞에 위치한 고급 사립인 리라, 숭의, 계성에서 졸업식 등의 기타 이벤트가 있을 때도 즐겨 찾던 곳이기도 했다 

출처: 동아일보 2005년 기사

안타깝게도 위를 제외하곤 그 시절 건물이라던가 음식들의 사진은 찾을 수 없었다. 쨋든 위 사진에서 언급된 화교억제 정책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로, '45년 60만 명 정도의 화교들은 '75년에 들어 6만 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차이나타운 형성 특성 상 내수의 자본들이 그 들 내부에서만 돌기 때문에 한국 내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상업은 물론 부동산에 대해서도 철저히 억제 정책을 펼쳤다. 이 시절 상징적인 화교 철거의 현장이 바로 현 서울 시청 광장 앞 플라자 호텔이기도 하다
 
 

현지화 된 대표중화 요리들 (한국 자장면, 일본 라멘, 군만두, 미국 찹 수이)

중국음식은 그 나라들에 차이나타운이 정착되며 현지화되는 것이 많은데 (한국의 자장면, 짬뽕 일본의 라멘, 야끼만두(군만두), 미국의 찹수이, 오렌지치킨, 베트남 쌀국수, 태국 팟타이 등)  이 때문에 미국과 일본 및 다른 차이나타운이 활성화된 나라들 대비 한국의 중화요리 그 개수가 현저히 적은 이유라고 한다


 

| 삼순이계단

드라마 내이름은 김삼순의 엔딩씬&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FTVY9

숭의와 리라초 얘기에서 언급한 경성신사, 내목신사 등 외 강점기 시절 일본이 남산에 지은 신사 끝판왕은 조선신궁이다. 이 때문에 남산의 수호신 목멱대왕을 모시던 궁사당이 인왕산으로 위치를 옮기고 지금은 그 터에 현 팔각정으로 남아있다

조선신궁 항공사진 '30년대로 추정&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SUY24

조선신궁은 남산공원의 현재 사라진 남산 식물원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왜 남산 꼭대기의 궁사당을 치워버렸는가? 바로 아마테라스라는 일본민족의 '주신'과 메이지 천황을 모시는 신궁을 감히 궁사당이 남산 정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게 건방지다는 것이었다

네이버맵과 당시 조선신궁 설계도 비교

삼순이계단은 바로 이 조선신궁으로 가던 계단의 터로 알려져 있는데 100프로 맞는 말은 아니다. 네이버맵과 당시 조선신궁 설계도를 퀵하게 비교해 보았다 (맞겠지?). 일단 조선신궁의 계단은 소파길이 소월길로 넘어가는 도동 삼거리 (현 밀레니엄힐튼 호텔 앞)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 백범광장을 관통하여 옛 남산 식물원 자리까지 이어진다
 

조선신궁 동선 (개인적 예측치). 이렇게 보니 정상의 궁사당을 가르키는 직선의 동선을 가지고 있다

조선신궁의 동선은 이런 그림이 만들어지는데, 삼순이 계단은 말 많고 탈 많던 육영제단의 첫 기념 건물인 어린이회관 (현 서울특별시 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건물터를 지을 때, 그 이전에 허물었던 조선신궁터 잔재들을 가지고 만든 계단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삼순이 계단은 조선신궁의 잔재의 흔적은 맞으나 위치는 다른 셈이려나
 


 

| 회현시민아파트

출처: 네이버 맵

삼순이 계단을 조금 지나 내려오면 회현시민아파트와 2017년에 지어진 회현-남산을 잇는 엘리베이터가 나온다

근현대 개발시대 서울시장 3대장&amp;amp;nbsp; 출처: 주간경향

'66년 3월부터 '78년 12월까지 김현옥, 양택식, 구자춘이 서울시장을 맡았고 현재의 서울 이들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부터 시작해서 지하철까지 심시티 이상의 모든 것) 특히 지금까지 서울, 아니 대한민국에서 아파트란 존재는 거의 절대적이며 이 또한 이들과의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

와우아파트 붕괴 참사&amp;amp;nbsp; 출처: 중앙일보

불도저라는 별명의 개발 1세대 서울 시장 김현옥은 대한민국 역사 상 부실 공사 대표적 상징 중 하나인 '70년 와우 시민아파트붕괴 참사와 함께 서울 시장 사퇴를 하며 마지막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튼튼히 지어라 하며 퇴임했고 이게 바로 회현시민아파트였고, 다음 타자인 양택식 시대에 1,2차가 완공이 되었다

70년 완공 당시와 70년대 중반의 사진&amp;amp;nbsp; 출처: 한국아파트신문

 지금 들으면 시민아파트란 게 서민 아파트 같이 들리지만 당시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의 돈 좀 있는 사람들이 살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노후화가 되며 2023년 10월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근데 아직까지 철거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진행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다 

소파길 우측의 회현시민아파트 모습&amp;amp;nbsp; &amp;amp;nbsp;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qFV24

당시 개발시대의 잔존물이긴 하지만 마지막으로 지어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서울 시민 아파트로서 시대가 지난 만큼 현재 사람들이 이 건물을 보며 느끼는 역사, 문화적 관점은 또 다를 것이다. 수많은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등의 배경이 된 것도 이를 뒷 받침 한다. 

출처: 서울경제 신문

임상수 감독의 <하녀>,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 씨>,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Netflix의 <스위트홈>, 빅뱅의 <거짓말> 등

 

위는 [chBTV]에서 퍼 온 2017년 당시 회현시민아파트 앞에 생긴 회현동과 남산을 잇는 엘리베이터 관련 뉴스 영상이다. 물론 아파트인 만큼 외부인은 출입 금지다. 하지만 소파로를 거닐며 서울 근현대 역사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겠다. 들어가보란 얘기가 아니다. (참고로 지금 남아있는 건 회현 2 시민 아파트이고 회현 1 시민아파트는 2000년대 초반 이미 철거되었다)
 


 

| 원조 남산 돈가스
 

그리고 조금 내려오면 원조 남산 돈가스에 오게 된다
이 글은 산책하던 당시의 글과 평행선을 이루는 포스팅이라서 아래 링크로 대신한다
 

 

어느 흐린 9월 중순 남산 주말 나들이 : 남산돈가스와 소파길

병원을 많이 다니다 보니 어느새 토욜 병원 가는 날은 데이트하는 루틴이 되었다. 병원 여는 시간에 가서 아침, 오전, 이른 오후 돌고 집으로 오는 루틴. 오늘은 병원 > 남산 > 후암동 > 남대문 시

electronica.tistory.com

 
 

남산 돈까스 관련 빅페이스 유튜브 동영상

유튜버 빅페이스 덕분에 일반인들은 모를 이야기가 소파로의 역사/문화 산책 길의 또 하나의 포인트로 자리 잡았다


 

| (구) 남산밀레니엄힐튼 호텔

 

출처: 아시아 경제

 
소파길의 끝자락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조선신궁 계단의 시작인 도동 삼거리가 있고 여기를 지나면 소월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바로 이 교차점에는 대한민국 근현대 건축의 걸작 중 하나인 김성종 건축가의 (구) 남산밀레니엄힐튼이 영업을 종료하고 조용히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아래글에도 힐튼 이야기...

 

강남교자에서 점심 후 강남역 산책한 소소한 일상

토요일도 병원 날이라 강남역으로.. 오전의 강남역의 한산한 길거리는 항상 낯설다. 오전 9시 경의 모습 불타는 금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오전은 한산하다.. 오늘은 치과의 날... 항상

electronica.tistory.com

 
이 건물에 대해서는 블로그에서 하도 언급을 많이 해서 넘어가고, 당시 모더니즘 건축의 대명사인 김종성 건축가가 서울에 남긴 작품을 몇 개 소개해 본다
 
 

실제 키에 맞춰 표현한 모더니즘 건축의 3대 거장&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fnsvJ

모더니즘의 3대 거장을 뽑는다면 당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데 로에, 르 코르뷔지에가 꼽힐 것이다. 김종성은 이 중 미스 반데 로에가 몸 담았던 일리노이 공과 대학 건축학부에서 미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 수제자로서 이후 미스의 건축 사무소에서 일을 하며 나중에는 이 학교의 건축학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유명 건축대 학장을 지낸 사람을 꼽자면 바로 김종성과 미국 건축대학 1위를 20여년을 넘게 갱신하고 있는 코넬대의 윤미진 학장을 뽑을 수 있겠다
 

1956년 일리노이 공과대학 유학당시 미스의 걸작품 중 하나인 크라운홀 앞에서의 김종성&amp;amp;nbsp; &amp;amp;nbsp;출처ㅣhttps://shorturl.at/fgyCV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종성이 70년대 최고의 건축대의 교수직까지 포기하고 한국에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바로 대우의 김우중 회장 때문이었다. 당시 개발 중이던 대한민국은 외국 자본을 끌어 오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그 중심에는 외국인들이 투숙하는 '호텔'이라는 건축물이 있었다. 따라서 겉모습 뿐 아니라 공간의 기능적 요소들도 절대적으로 매력적이여만 했던 이 중요한 건축물에 대한 디자인은 한국인이 아닌 유명 외국인 디자이너들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현재 역사가 오래된 서울의 대표 호텔들은 죄다 외국인 건축가들의 작품이다
 

출처: 서울스퀘어 공홈

당시 대우기업 회장 김우중은, 대우센터 (현 LG 서울스퀘어) 근접한 곳에 한국인의 손으로 지은 멋진 호텔을 짓고 싶었고 실력 있는 한국인을 찾으라 직원들에게 지시한 끝에 마침내 김종성과 만나게 된다. (이때가 1970년대 후반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경기고 선배임을 알게 된 김우중은 김종성에게 "형님, 형님"하며 서울에 호텔 건축 부탁을 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남산 밀레니엄 호텔이었고 미스 벤더 로에의 모더니즘 디자인 유전자가 돋보이는 엄격한 반복된 구조의 질서에 의한, 동시에 미스에게서 벗어나 자신 만의 건축 디자인을 꿈꿀 수 있었던 (기능성 관점으로 볼 때 미스는 호텔 건축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김종성으로서는 새로운 도전 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근현대 건축의 걸작이 탄생했다. 이후 김종성은 서울에 터를 잡으며 이후 여의도 빌딩 꼭대기의 두 층을 사용하는 서울건축 사무소 소장까지, 대한민국에 뿌릴 깊이두는 건축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 번 거듭나게 된다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aBOV4

서울 안에 밀레니엄 힐튼 말고도 그의 족적은 많이 남겨져 있다.  서울 여행을 기획한다면 김종성 건축가가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쨋든 이렇게 밀레니엄힐튼을 끝으로 소파로/소파길의 역사 산책 포스팅을 마쳐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걸어도 좋은 그곳.

그리고 다음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소월길의 이야기를 다뤄보려 한다


 
 
아래는 김종성 건축가의 서울 건물들: 
 

경희궁 서울시립 역사박물관
회현동 대우재단 빌딩
서울대 박물관
서울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서린동 SK사옥
서소문 효성빌딩
노원구 육군학교 도서관
여의도 대우증권 사옥
88 올림픽 역도경기장 등...

 
 

출처: SK 리츠 공홈

 

SK서린사옥

 

출처: 서울시 공홈

경희궁 서울시립 역사박물관

 

 

출처: 서울 경제 신문

회현동 대우재단 빌딩

 

출처: 서울대학교 공홈

서울대 박물관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nwQ01

서울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출처:&amp;amp;nbsp;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abhw5

서소문 효성빌딩

 

출처:&amp;amp;nbsp;https://shorturl.at/abhw5

노원구 육사도서관

 

출처: EBN 산업경제 신문

(구) 여의도 대우증권 사옥

 

출처: 이미지에

88올림픽 역도경기장


 

다음엔 소월길 역사 산책으로~

 

728x90
반응형
반응형

토요일도 병원 날이라 강남역으로..  오전의 강남역의 한산한 길거리는 항상 낯설다. 오전 9시 경의 모습

불타는 금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오전은 한산하다..

오늘은 치과의 날... 항상 무서운 치과 ㅜㅜ  근데 저 CGV  빌딩에서 치과 가는 엘베 타기는 항상 헷갈린다.

치과는 항상 무섭다. 정말 무섭다. 스케일링도 무섭다. 여기 치위생사 분들이 참 친절하시다

 

치과 끝나고 나오니 사람들이 좀 많아지긴 했는데 강남대로 메인인데도 여전히 한산해 보인다

 

길 건너 서초동 쪽 강남역은 더 한산하다. (강남대로가 구분선이다. 한남대교 방향 강남대로 기준 왼쪽이 서초동, 오른쪽이 역삼동)

와.. 아직도 살아있는 중앙곱창. 레노베이션도 한 모양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신림동 곱창 타운 갈 바에야 여기를 추천한다. 난 여기가 더 맛있다. 정말 자주 갔었던 곳. 아주 강한 맛 ㅎㅎ

가게들은 언제나 생기고 없어지고 생기고 없어지고 하는데... 와.. 월매네주막이 이 강남역에서 아직도 살아있다. 레전드급 생존이다... 와... 월매네 주막.. 언제 적 월매네 주막이여... 단코, 딥하우스 클럽 이런 시절 아는 사람 있으려나... 2,3차 대충 갈 곳 없으면 만만하게 갈 수 있었던 가성비 술집

 

계획도시답게 교통의 요지답게 빡빡하게 들어선 강남역의 모습

강남역은 술집이든 밥집이든 병원이든 뭐든 암튼 뭐가 그냥 되게 많다. 그래서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치과 가는 날이면 루틴처럼 가는 곳이다. 강남교자. 40년 전통이라는데 잘 모르겠고 암튼 오래된 곳은 맞다. 어린 시절부터 있던 곳이었으니. 40년 동안 했다면 강남 개발할 적부터 있던 곳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여기 오면 항상 고정 메뉴다. 만두와 칼국수. 

 

강남교자라는 이름을 듣고 명동교자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진짜 애매~하게 비슷하다. 명동교자의 양파 폭탄이 이 칼국수에는 없다는 정도일까? 세세하게 들어가면 오묘한 육수 차이, 엷은 면 차이 그런 것들도 있지만 어쨌든 그 시절 명동이 핫플레이스였을 때 명동교자를 잊지 못하는 강남인들에게는 최적의 장소가 아닌 듯싶다. (명동교자 출신 주방장 분이 연 곳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꽤 비슷한가 보다)

김치는 명동교자와 마찬가지로 눈치껏 센스 있게 떨어질만하면 타다닥 오셔서 듬뿍듬뿍 채워 주신다. 김치 맛있다. 칼국수 김치. 이것도 명동교자 김치와 비슷한데 진짜 오묘한 차이다. 김치뿐만이 아니라 다 그냥 오묘한 차이다

만두 또한 비슷하다. 암튼 맛있다. 명동 교자가 클래식라면 이곳은 그것의 변주(바리에이션)와 같은 것이다. 반 접시는 없어서 한 접시 시키고 포장해오는 게 루틴이다. 남은 거 포장해달라고 부탁하면 깔끔하게 잘해주는 곳이다. 항상 반 정도 먹고 싸온다

12시 즈음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이제야 사람들이 꽤 모인다. 역시 강남역. 서울의, 한국인의 멜팅팟 같은 곳

여긴 오전 타임의 알라딘 서점이다. 그래서 텅 비긴 했는데 중고책 사기에 좋다. 아직까지 난 E-Book은 이질적이고 책이 좋은데, 그나마 그것도 인터넷 주문으로 사다가 책방에 가서 책을 보니 오랜만의 그 느낌과 기분이 좋았다. 교보문고 가려다가 중고서적점이란 게 매력이, 왠지 띵책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촉과 바람과 기대가 있어서 가게 된다

꽤 괜찮은 딜의 중고 서적이 있어서 구매했다. 특히 저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이라는 책은 꼭 읽어보고 싶었던 건데 좋은 딜로 나와서 단숨에 구매했다. 이용재라는 건축 평론가가 쓰신 책이다. 평론가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아버지의 입담이 상당히 뭐랄까... 거침없으셔서 더 매력이 가는 블로그였다. 이제 고인이 되신 분인데 네이버 블로그를 열심히 하시다가 지금은 저 딸 분이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블로그를 이어가고 있다. 본인의 일상과 건축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의 고민과 세상에 대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전문적이면서도 일상적이고 또 끝없는 질문과 경험을 통해 성장 해가는 과정의 에너지가 슴슴하게, 자연스럽게 젖어드는 따뜻한 감성의 콘텐츠를 가진 블로그다

 

 

평론가 이용재와 그의 딸 화영, 그리고 건축 : 네이버 블로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이 운영 중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구)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IG) @hwandering

m.blog.naver.com

 

건축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루틴이라기보다는 어린 딸과 함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대화 나누는 그 기록이라는 주제가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래서 못 읽은 저 책도 이번 기회에 같이 구매했다.

 

여기까지가 딸과 하는 건축 기행.

 

그리고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이라는 책은 책 안에 들어있는 기록 사진들과 설계도들이 매력적 이어서 구입했다. 서울은 너무 뜯어고치고 사라지고 생기고 하는 루틴이 다분한 도시라 이런 기록들이 너무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12월이면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도 영업을 종료한다. 그리고 건물이 밀릴 거다. 6~80년대 일본 건축가들의 소유물이었던 당시 한국 호텔의 건축을 최초로 한국 건축인이 지으면서 남긴 그 상징적인, 당시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디자인 철학을 가진 그 건물. 그 건물이 사라진다...

김종성 건축가와 남산 밀레니엄 힐튼 호텔

호텔이란 건 외국자본과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어 개발도상 국가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당시 선진 기술과 디자인을 자랑하던 일본인들에게 맡긴 건 반감은 크게 없다. 그만큼 나라에도 도움에 되니까.. 근데 그 와중에 최초로 한국인 건축가, 그것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르 꼬르뷔지에와 어깨를 견주는, "Less is more"로 유명한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벤 더 로에의 수재자인 김종성 건축가의 그 상징적 건물을 밀어 버린다니. (근현대에서 남산은 엄청나게 파 해쳐졌고 아직도 흉물스러운 건축물들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아직까지는 부동산이 문화적 가치보다는 더 중요한 세상이다. 김종성 건축가 본인도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거 뭐라고 말해야 하나... ㅜㅜ 부동산은 인문과 역사와 철학의 위에 존재하는 갓이다 갓. 하느님 하나님. 

손정목 서울시 전 도시계획국장

거의 유일 무의 하게 서울 근현대 개발의 생생한 기록을 남긴 서울 도시 계획 이야기의 손정목 님도 본인의 책 속에 한 마디를 남기셨다. 언젠가 이런 숨 막히는 개발주의 때문에 우리 모두가 후회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나는 이 밀레니엄 힐튼의 철거는 미래 언젠가 이 '후회와 뉘우침'의 중요한 예시로 다시 회자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암튼 이 책은 이런 평소에 보기 힘든, 너무나 개발이 넘쳐나던 시절에 기록조차 따라갈 수 없었던 시절의 조각들을 모아놓은 흔적이 있어서 구매했다

오늘의 강남역 치과 치료와 서적 구입과 산책은 이렇게 끝났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