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의 정말 큰 별이 졌다. 좋아했던 배우라 충격도 크고 맘도 아프다. 나도 암 이력이 있는지라 뇌출혈이라는 사망원인이 더 안타깝게 다가왔다. 좋아했고 훌륭했던 배우였던 만큼 팬의 일편적인 욕심으로 항상 더 많은 작품을 남겼으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가버리니 허무하고 안타깝다.
참 허망한 마음에 그녀를 보았던 기억이 떠올라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잡담하듯 그녀와 맞물린 기억들을 써본다.
그녀를 실제로 본 적 경험이 딱 한 번 있다. 약 22년 전인 2000년 연세대학교에서 열렸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와 공동으로 열렸던 '자유 2000' 공연이었다. 그저 영화가 좋았고 인생의 한 부분 같은 시절이어서 Staff로 무료 자원봉사를 했었다. 20년인 넘은 기억이라 가물한데 아마 이틀간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첫날만 참여했다. (두 번째 날에는 정우성과 고소영 배우가 온다고 해서 상당히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행사 자원봉사는 처음이긴 했지만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온갖 잡스러운 일들을 하게 되는데 열정페이라도 동경하던 영화배우들을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스태프 일 중 하나가 배우/감독들 에스코트였는데 이게 제일 좋았던 경험이어서 그런지 이것 빼고는 그 날 다른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백양로를 타고 노천극장까지 와서 차에서 내리면 대중들 피해 옆 샛길로 건물 안까지 에스코트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자원 봉사자들끼리 나눠서 그때 그때 도착하는 사람을 순서대로 안내하는 거라 내가 누굴 에스코트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때 같이 한 사람이 바로 강수연 배우였다.
거짓말 안 보태고 사람한테서 후광/광채가 난단 걸 태어나서 두 번째로 느껴본 날이라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첫 번째는 약 30여 년 넘게 전에 명동 한복판에서 본 김혜수 배우였다) 샛길이라 숲 속 느낌의 좁은 외진 길이었다. 한 체감 상으로는 1,2분 정도? 의 거리였던 것 같다. 그 1분 정도의 시간에 이런 동경하던 대배우들과 함께 갈 수 있다니... 정말... 꿈 같았던 시간이었다. 나는 앞 안내자가 따로 있고 나는 뒤에 약간 쳐져 두근두근하며 따라갔다. (그땐 정신도 없고 정해진 룰도 없어서 옆에서 같이 가는 경우도 있었고, 뒤에서 가는 경우도 있고 막 그랬다)
에스코트의 길이 끝나고 건물로 들어가기 전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하고 돌아가려는데, 그 순간 내 인사를 듣고 강수연 배우가 반응해 주셨었다. (아마 내가 처음에만 절로 가라고 안내만하고 뒤에서 계속 같이 오고 있었던 건 인지 못했나 보다) 화들짝 놀라며 뒤를 휙 바라보며,
"어머, 저 때문에 여기까지 같이 와 주신 거예요? 너무 고맙습니다! 감사해요~"
라며 강수연 배우 특유의 그 활짝 환한 웃음과 함께 진심 어린 목소리가 들렸는데.... 정말 옛날 식으로 말하면 '하늘에서 굴러 떨어진 천사'가 있었다면 그 순간의 강수연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1999년의 걸작 <송어>와 2003년 복귀작 <써클> 사이의 그녀를 보았던 기억이다. (2001년부터 <여인천하> 드라마로 인해 그녀는 스크린을 잠깐 떠나 있었다)
어떻게 보면 스쳐간 기억이나 다름없지만 그 한마디의 순간은 영원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그 감사함 표시에 대한 친절함이 내 기억의 한편에 더 깊이 자림 잡았던 것 같다. 공인으로서의 버릇과 같은 프로의식인진 몰라도 진실성이 느꼈졌었다. - 당시 대한민국 탑오브탑 여배우가 한 스태프를 대하던 자세였다
생각해보면 당시 스태프를 무시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을 테고, 보통 지인이나 관계자들 혹은 윗사람들한테나 말을 걸거나 그 외 사람들한테는 딱히 반응 안 하는 게 (걍 눈에 보이는 쉐도우 같은 거) 예나 지금이나 보통의 풍경이다. 특히 이름은 안 밝히겠지만 스태프라고 사람 쓰레기 보듯 개무시하던 기분 나쁜 배우/가수도 있었고, 그냥 무시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반면에 딱히 뭐 대화를 할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그냥 조용히 같이 하던 배우들도 있었다. 반말 틱틱 던지는 이들도 있었고 꼭꼭 존댓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걍 인간 군상. 종종 외국 스포츠 선수들이 팬들 특히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저게 '평생 팬과 기억과 행복'을 만드는 시점이라는 글들을 보게 되는데.. 진짜.. 이런거다 이런거.... 그 때 강수연 배우가 나에게 해준게.. 따듯한 그 한마디.
아주 어렸을 적 홍콩 침샤추이의 '플래닛 헐리우드' 레스토랑 오프닝 때 헐리웃스타들 보기 위해 꿈을 안고 구경간 적이 있었는데 기라성 같은 헐리우드 배우들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브루스 윌리스, 아놀드 슈왈츠네거, 홍콩점 주인장 쟝 끌로드 반담, 스티븐 시걸, 신디 크로포드 등등이 왔었을 텐데 기억에 남는 배우는 딱 하나, <더티댄싱>의 패트릭 스웨이지다. 자동차를 타고 내릴 시점까지 쭉 가는게 아니라 길게 줄을 선 거리의 열광하는 팬들을 위해 중간중간에 차 창문을 내려 진짜 스윗한 미소를 지으며 팬에게 화답하는 그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외 언급한 헐리우드 스타들은 기억조차 흐려서 남질 않는다. 아마도 강수연 배우의 그 감사함의 한마디의 느낌은 이런 것과 비슷한 것 아닐까 싶다. 너무 옛날이라 지금처럼 스맛폰이나 카메라를 쉽게 가질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여서 머릿 속 흐릿한 기억만 남는게 아쉽지만, 정말 페트릭 스웨이지의 팬서비스를 위한 미소의 순간은 뇌리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날 상대가 누구라도 (스태프라도) 한 마디라도 던지며 친절함을 느끼게 해주고, 와 역시 프로구나 느끼게 해준 배우는 기억하기로는 박중훈과 안성기 배우였다. 특히 안성기 배우는 우리가 스태프인걸 보고 "아이고 고생 하십니다"라고 구태여 상황까지 만들어 말을 건내주어 감동했던 기억이 있다.
특히 박중훈 배우는 그 날 3년인가? 쫓아다니던 스토커가 오늘도 나타난다는 정보가 들어와 우리 자원봉사자들에게 박중훈 배우와 그 스토커 녀 사이에 벽을 만들라는 소동도 있었다. 새빨간 원피스를 입었던 그녀... "박중훈 씨~" 하며 친한 척 외치는데 그 와중에 그녀의 손은 그와 그 녀 사이에 벽을 친 우리의 옆구리와 등등을 꼬집고 있었다. (나 꼬집힘 ㅜㅜ)
그 상황에 박중훈 배우는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십니까"하고 타인에 대한 딱 기본적 예의만 차리고 자리를 옮겼는데... 그때서도 와... 3년 스토커한테 저럴 수가 있나... 역시 프로는 프로다라고 느꼈었다. 그녀는 행사 끝나고 배우들 퇴장 시에도 다시 나타났는데 그때는 박중훈 배우는 이미 사라졌었고 마침 안성기 배우가 나오던 중이었는데,
"안성기 씨 저예요, 저. 오늘 다들 뒷풀이 어디로 가세요? 거기로 가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집요하게 계속 물었다.
거기서도 안성기 배우도 환하게 미소 지으며,
"아, 안녕하세요. 글쎄요.. 저는 들은 게 없어서.. 하하.."
하며 너스레를 떠며 자리를 옮기는데 박중훈 배우에서 느낀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예의 차린 그 모습에 또 한 번 프로들은 다르구나... 하는 걸 배웠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인간 대 인간으로서는 기본 예의를 차리는 게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세상이 살고 있으니... 참.... (암튼 그 당시 배우들 뒷풀이 자주 가던 집이 청담동 무궁화라던가 아리랑이라던가?로 들은 기억이 난다 확실하진 않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참여하지 못했던 두 번째 날엔 우리 자원봉사 스태프들도 같이 회식 갔었다고 하던데.... 참 부러웠다...ㅜㅜ 둘째 날 못 간 거. 명계남 배우도 신나게 거하게 취하고 재밌었다던데....
그 외론 인간적으로 기분 나쁜 배우들도 있었지만 이름은 거론 안 하겠고,
그냥 기억에 남는 건.... 박효신 가수 그때 막 이름 알리기 시작할 때였는지 대기실에서 청 멜빵바지 입고 수줍게 혼자 뻘쭘히 서서 서로 눈이 맞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무대의상 입기 전이었던 듯?) 지금처럼 혹은 저 영상처럼 피부가 좋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ㅋㅋ 아무튼 엄청 앳된 모습으로 기억한다. (자유 2000은 원래 음악행산데 이때 스크린쿼터 문화연대랑 같이 진행한 거라 배우들이 참여한 것이었다)
<하얀 전쟁>, <남부군>, <헐리우드키드의 생애>의 정지영 감독. 다들 연예인이라고 멋진 차들 타고 와서 내리는데 정지영 감독은 차를 안 가지고 나름 길이가 있는 연대 중앙의 큰 백양로를 빵모자에 딱 뭐랄까 그 넝마주이 예술인과 같은 자유로운 영혼 같은 모습으로 (근데 그런 행사 턱시도와는 정반대 느낌으로 나름 중장년의 그리고 자신만의 멋이 있었음) 걸어서 나타났는데 그때 명계남 배우가 "우리 정 감독님 걸어서 오셨구나!"하고 (비웃거나 악의 없는 환영하는 느낌이었음) 맞이 했던 기억. (당시 명계남 배우가 주최자? 판돌이? 같은 역할이었던 듯)
녹색 체로키를 타고 나타나 차창문 내리고 환하게 인사하던 안성기 배우. 이때 반갑게 인사했었음.
설경구 배우. 에스코트해주려고 인사하며 다가갔는데 살짝 피하며 움찔하던 모습. 이게 기분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놀란 무슨 그런 것 같은... 타인과 벽을 쳤는데 그 안으로 들어와서 놀란듯한? 모습이었는데 뭔가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라.. 싶었음. (그니까 약간 내성적인 느낌?) 그리고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등 배우들도 인상이 강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 남는 건 고 이은주 배우. 이은주 배우도 내가 에스코트를 했었는데 이 때는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고 딱히 주고받은 대화는 없었지만 되게 예쁘고 참하고 얌전한 느낌이었다. 소곤소곤. 와중에 키는 상당히 컸던 편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직접 봤던 사람이 5년 후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듣고 뭔가 착잡함과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교차했었다. 암튼 박중훈/안성기와 강수연의 스크린 속 합은 설명 할 필요도 없고 이은주, 설경구는 1999년 박지영 감독의 <송어>에서 강수연 배우와 함께 했었다.
유튜브 하면서 작업했던 것들 중에 강수연 배우가 나오는 것들이 두 개 있는데 대문에 걸어 놓은 건 몇십 년에 걸친 노래방 듀엣 애창곡을 탄생시켰던, 영상미 또한 강수연 배우만큼이나 아름다웠던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 김현철과 이소라의 노래를 roon이 커버한 버전이다. 강수연 배우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중 하나이기도 하고 roon의 공허한 스타일의 보컬 때문인지 지금 다시 보고 들으니 더 애처롭고 눈물 날 것 같이 맘이 아프다. 공인의 이런 뉴스를 듣고 이렇게 마음이 아파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이건 강수연 배우가 21살 시절 박중훈 배우와 함께한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1990작 <있잖아요 비밀이에요>랑 교차편집되어있음) 한국영화에 있어 현대식 청춘물의 탄생을 알렸던 작품이기도 하고 이 영화가 개봉 중에 1987년 <씨받이>를 통한 강수연 배우의 베니스 영화제 여우 주연상 소식을 안기기도 했었다.
음악은 인디 아티스트 shuuu의 "Where is the Love"라는 곡인데, 공교롭게도 이 영상을 올린 후 이 아티스트한테 직접 인스타 DM을 받기도 했었다. (이 노래도 여기 한 때 자주 찾아오셔서 시티팝 얘기 나누던 냥고로님 덕분에 안 건데... 잘 계시나요?) 트렌디한 MZ세대 느낌의 예쁘면서도 귀여운데 또 멋진 느낌 때문에 아마 모델도 겸하고 있는 것 같은데, shuuu는 싱어송라이터 아티스트다. 인스타, 사운드클라우드, 유튜브 등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멋진 도시감성 음악으로 한 방 빵! 터져주었으면 한다.
아티스트한테 DM 받기는 또 첨이라 (이후에 울 가족 페이버릿 송 중 하나인 <여름밤>의 초묘 밴드가 유튜브에 감사하게도 댓글을 남겨준게 두 번째였다 ㅎㅎ ) 신기하고 기뻤고, 무엇보다 아티스트 본인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특히 더 고마웠다. 어떻게 보면 강수연 배우 덕에 또 이런 좋은 경험을 한 것 같아 감사한다. 언제 블로그에 shuuu 관련 포스팅하려고 했는데 이 글에 올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근데 인스타를 안 하다 보니 확인도 엄청 늦어서 죄송했음)
고 강수연 배우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떠오르는 기억들을 의식의 흐름대로 풀다 보니 뭔가 많이 주책맞게 길어졌다. 암튼 나는 그때 내게 감사인사해주던 정말 아름답고 아름다웠던 그 녀의 모습과 목소리는 평생 기억 좋은 기억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하늘에서 편히 쉬시길 빕니다... 당신의 영화들은 훨씬 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강수연의 필르모그래피]
1975년 핏줄
1976년 나는 고백한다
1977년 별 3형제
1978년 어딘가에 엄마가
슬픔은 이제 그만
비둘기의 합창
1979년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1980년 마지막 밀애
1982년 깨소금과 옥떨메
1983년 약속한 여자
1985년 W의 비극
고래사냥 2
1987년 씨받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연산군
감자
됴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1988년 미리 마리 우리 두리
낙산풍음간향마
업
1989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제 아제 바라아제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1년 경마장 가는 길
낙산풍
베를린 리포트
1992년 그대 안의 블루
1993년 그 여자, 그 남자
웨스턴 애비뉴
1994년 장미의 나날
1995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6년 지독한 사랑
1997년 블랙잭
깊은 슬픔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1999년 송어
2003년 써클
2006년 한반도
2007년 검은 땅의 소녀와
달빛 길어올리기
2013년 주리
2022년 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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