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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 모락모락 찬양집 반반 만두

병원에서 검진 결과가 잘 나와서 이 날은 좀 거리를 거닐기로 결정하고 종로 3가 골목의 찬양집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인사동 대일빌딩

주차는 인사동 대일빌딩에 했다. 여기가 주차장이 좀 낙후되고 좁은 대신에 주변 주차장들 대비 제일 저렴했다. 주변 왔다 갔다 하기 동선도 나쁘지 않다. 1시간 3000원에 일주차 2만 원. (일 주차는 따로 신청할 필요 없고 그냥 시간 초과되면 2만 원에서 멈춘다)

인사동의 가을 분위기는 푸름과 은행의 노랑이 인상적이었다

종로3가역 쪽으로 걸어가는데 낙원상가의 모습이 보인다. 레노베이션 된 모습이라 약간 낯설다

출처: Yes24 Blog  http://m.blog.yes24.com/yhjmania/post/7450821

이 쪽 사이드가 맞나 싶긴 한데 (아마 반대쪽이었던 것 같긴 한데...) 내 추억/기억 속의 낙원상가는 딱 3가지다. 낙원떡집, 악기상가 그리고 허리우드 극장. 킹콩 2를 여기서 봤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당시 건물은 굉장히 낡았었기 때문에 저 레노베이션된 모습이 낯설었었다. 내츄럴, 용형호제 둘 다 재밌는 영환데 저것들은 비디오로 봤었다.. 그리고 피카디리, 대한극장... 아.. 추억... (낙원떡집은 상가들을 다 돌아본 후에 마지막에 들러서 떡을 사 가는 일종의 피날레? 같은 느낌)

악기상가의 성지였던 곳. 여기 2층 악기점에서의 기억은 두 가지. 내 첫 첼로를 여기서 샀었고, 두 번째는 양은 냄비에 김치 넣어서 끓여 먹는 라면을 여기서 처음 먹어 봤었다. 완전 신세계에 눈 떴었던 기억이라 어릴 적이지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악기점 사장님이랑 지인들이 한창 끓여 먹다가 상점 방문한 나한테도 먹어보라고 줬는데... 그 이후로 라면엔 김치를 넣어 끓여 먹는 것이 진리로구나...라는 것에 눈을 떳 던...  정말 순수하게 라면에 김치만 넣어져 있었던...

이곳이 밤엔 옛날 포장마차 거리로 싹 변하던데 진짜 사람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포장마차 마차마다 꽉 차 있는 것에 나름 신선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환상의 나이트 라이프를 기다리고 있는 포장마차들

역시 서울살이가 멀어지니 ㅎㅎㅎ 그리고 저 개방 화장실은 첫눈에는 깔끔하다 생각했는데 저녁 사람들의 인파가 몰리는 생각을 해보니 남자 한 칸 , 여자 한 칸으로 구성된 저 화장실은 인파를 당연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살짝 무섭긴 하지만 낙원 상가 4층의 개방 화장실을 쓰면 훨씬 깨끗하고 그나마 여유가 있다)

요즘은 성인용품가게도 떳떳하게 사람들이 넘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는데 하나 발견했다. 샤이맨... 요즘엔 저런 곳에 들어가는 것도 사람들 눈 개의 치 않고 데이트 중간에도 간다고 (인터넷에서 들었는데 말입니다) 하는데 아주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언제까지 유교걸, 유교뽀이 하고 있을 것인가. 어서들 많이들 결혼하고 애 낳고 출산율을 높입시지 말입니다

이제야 낯익은 골목길에 들어선다. 찬양집과 할머니손칼국수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갈매기살 고깃집들로 이어지는 그 종로 3가의 골목

찬양집으로 들어간다. 언제부턴가 미슐랭 가이드 타이틀을 달고 있다. 

 맛집의 대명사. 유명인 싸인들. 못알아 보겠는 이름들도 많다. 

찬양집은 해물칼국수. 저 손칼 면빨은 아버지 따라 주말마다 다니던 청계천 포장마차에서 처음 배웠었는데, 그때는 저 손 칼도 훨씬 (손으로 찢은 듯) 더 거칠고 투박하니 후루룩 하는 맛, 씹는 맛, 넘기는 맛이 더 걸걸하니 서부영화처럼 맛있었다. 그 시절 또 새로운 신세계에 눈을 뜨고 포장해 가서 집에서 먹고 싶다고 생떼를 썼었던 어릴 적의 기억이 있다. 포장에 대한 개념이 없던 그 시절 결국 사장님은 이 사태에 대해 (어린아이의 꼬장) 아버지와 논의 후, 하야 '비니류 (비닐봉지)'에 칼국수와 육수를 따로 듬뿍 넣어서 주셨었다. 그 시절 종로, 청계천 칼국수 값이 아마 500원? 아니면 1500원 둘 중에 하나로 기억한다. 이 골목을 성인이 되어서도 줄기차게 찾아오는 이유는 바로 어린 시절 이 기억 때문이다 (물론 그때 그 맛과 비주얼은 아니지만...)

조개껍질은 저 옛스러운 분홍 '빠께스'에 버려주시고...

찬양집 처음 방문했을 때 신선했던 기억은 바로 저 김치다. 저런 손 칼국수 면발이야 종로부터 청계천까지 흔하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여기는 김치가 두 가지, 신 것과 익은 것.. 이렇게 나눠서 주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거의 이 집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날은 만두도 시켜 봤다. 맛있다

역시 칼국수의 매력은 저 장이다. 

맑은 국물 먹다가 이제 슬슬 배가 찰 때 즈음 장을 넣어서 좀 먹어주고 대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올만에 찬양집에서 맛있게 칼국수를 먹고 난 후 쭉쭉 골목길을 향해간다

찬양집에서 걷다보면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할머니손칼국수 집이 나온다. 찬양집 보다 더 좋아하는 곳이다. 위에서 말했던 옛 청계천 포장마차 칼국수의 기억을 그나마 많이 살려주었던 곳이기도 하고, 살면서 종로 3가에서 제일 자주 간 곳이기도 하고 수제비반 칼국수 반의 칼제비 메뉴 때문에 그 손으로 찢은 듯한 거친 면빨의 향수를 전해주는 곳이다. 종로 3가의 개인적인 원픽을 하라면 여기다. 

 

골목을 좀 더 걸어가다 보면 갈매기살 집들이 나온다. 그 중에 대중한테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인 광주집. 밤 되면 여기도 끝장난다.

광주 집 행주 말리고 있는 모습

 은행나무들

 

종묘가 보고 싶어 탑골 공원 쪽으로 향한다. 

종묘 가는 길. 저 우측 사이드 중간중간 어르신들을 위한 술집들이 있는데 낯부터 막걸리 '한 잔'을 몇 백 원 수준에 마실 수 있다. (지금은 물가 땜에 가격이 더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아쉽게도 종묘는 시간에 맞춰 관람 제한이 되어 있어 아쉽게도 보지 못하고 발을 돌렸다. 많은 숫자는 아지지만 이런 문화유산을 보기 위해 줄 서 있는 어린 친구들이 모습을 보니 뭔가 뿌듯? 안심? 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가끔 여행 얘기를 하다가 너무 옛날에 가서, 차라리 어른되서 갔으면 이해도 하고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는데 난 좀 반대 입장이다. 여행과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좋지만 어린 시절부터 기회가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세월이 지나 기억은 어렴풋하더라도 그 시절의 기억의 DNA는 영원히 몸과 맘 속에 살아 숨 쉬며 그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인사동 쪽으로 길을 돌리며 나무들이 같이 하고 있는 듯한 건물이 보인다. 인상적이다

종로의 보석상 거리는 정말 유명했고, 실로 휘황 찬란할 만큼 그 시각적 위용이 대단하기도 했다. 지금도 몇몇 남아 있긴 하지만 정말 많이 없어졌다

종로 3가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가다 보니 이제야 익숙한 낙원상가의 허름한 모습이 보인다. 세월의 풍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시절 영화 개봉은 도시의 큰 이벤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영화관의 간판을 붓으로 그리던 낭만의 시절. 그 시절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듯, 낙원상가 허리우드 극장의 흔적이라면 흔적과 같은 그런 것이 보였다

꽃잎과 서편제는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뺑끼칠 후 세월의 풍파를 맞아 군데군데 찢겨진 듯한 건물의 스킨들이 지저분하다기보다는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Reminiscence' 레미니선스라는 영단어가 어울리는데, 간단하게는 회상, 추억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데,  사전적 의미로 가면 "기억한 사항이 그 직후보다도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한 뒤에 명확하게 생각나는 일. 잠재적 기억."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아주 오래 어딘가로 떠난 후 비로소 집에 돌아왔 을 때 느끼는 '그'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늘과 함께 바라보니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낙원상가를 지나 비로소 인사동 길 방향으로 접어드는데, 골동품 상점이 보인다. 인사동이든 황학동이든 참 많이 보이던 풍경이었다. 더군다나 그 시절은 인디아나 '죤'스, 피라미드의 공포, 로맨싱 스톤 같은 어드벤처 영화들도 인기 있던 시절이라 정말 눈이 돌아갈 정도였다. (한창 뻔한 오리엔탈리즘에 눈 돌아가던 시절이기도 했고..)

역시 이런 것들이 추억을 자극한다

평일 금요일 오후인데 사람들이 꽤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고

 

 

언제부터인가 인사동에서 통인가게는 존재감을 가지고 가기 시작했다. 다만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2000년대 아니었을 까, 아니면 2000년대야 되고서 내가 깨달았을까... 80,90년대에는 보지 못했던 그런 아이덴티티를 구사하며 세인의 주목을 이끌었던 것 같다

나는 액티브한 열혈 에코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저런 건축과 자연의 상생을 꾀함은 좋아한다. 다만 종을 잘 선택하고 관리도 잘해줘야 벌레 모기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런 실수를 통해 에코 아파트를 만들었다가 폭망 한 케이스가 중국에 있다

그 에코 건물 옆에 눈을 끄는 또 하나의 건물. 저 라인형 스킨 때문에 그런지 옛 김수근 후기 건축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저 건물은 인사동 건물들 특유의 한국 문화와 어울리는 인사동 아이덴티티에 더 충실한 것 같다. 비슷하긴 하지만 비교하기엔 김수근 후기의 저 라인 형태는 너무 모던하긴 하다. 참 맘에 드는 건물 두 개다. 요즘 말로 하면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그런 느낌

 도장집. 이젠 도장이 필요 없는 시간이 되었지만 뭔가 개인적 '꾸미기'를 위한 아기자기함을 위한 흔적으로 남으며 그 생을 더 해 나가고 있는 듯해 보여 보기 좋다. '본인을 증명한다'라는 도장의 그 의미는 잊지 않고 있다

 

와 중에 모던한 느낌의 옷가게가 있어 찍어 보았다. 모던한 느낌의 간판과 90년대 느낌의 시멘트 바닥의 조화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추억의 쌈지길. 밀레니엄이 갓 지난 2000년 초반에 등장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공간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그냥 쭉쭉쭉 출구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일방통행의 길, 하지만 입구부터 출구까지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해 준 곳. 좀 레벨을 낮추어 비교해 보자면 일방통행 공간은 이케아 매장 같은 느낌으로 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인사동 하면 언제나 어느 곳에나 숨을 돌리면 보이는 듯한 버드 나무 (버드나무 맞나? ㅜㅜ 진짜 나무 이름은 잘 몰라서...) 암튼 쌈지길은 그 시절 정말 재미있는 신개념 골목길이었다

 

그 쌈지길 바로 옆에, 뭔가 2000년대 초반에 쌈지길을 봤던 느낌의 신선한 공간이 있었다. (난 이 날 처음 본 거라...) 위에 쌈지길의 타이틀이 붙은 것 보니 아마 쌈지길의 확장판이 아닌가 싶다. 1층에선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낯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화려해 보여서 들어가 보았다. 스티치? 바느질? 메움? 스테이플러? ㅎㅎ 느낌의 저 조명의 요소들이 꽤나 인상적이면서도 화려한 연출을 하고 있었다. 밤에 되면 훨씬 화려할 것 같다

조명과 거울의 조합은 언제나 환상 적이다. 내부까지는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딱 이 앞마당만 구경하고 나왔다

 

이 공간에 있던 예뻐 보이던 샵

 

다시 인사동의 가을...

인상적인 갤러리 건물, 가이아. 이름이 참 어마어마하다 가이아... 것은 좁고 길고 약해 보이지만 안에는 무언가 대단한 것을 품고 있을 듯한 느낌이다

 

다시 길의 끝까지 와서 뒤 돌아 사진을 찍어 보았다

이 끝까지 와서 안국 빌딩 기점으로 동영상 모드로 360도 돌려 봄

이 즈음에서 내 저질 체력은 이미 오래전 바닥났고... 황진단 한 알 삼키고 반짝하는 체력을 더 해 좀 만 더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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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앞 행단보도 낙옆이 많이 떨어져 있다

추적 검사 후 결과까지의 일주일 간의 심적 고생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몇 년이 지났지만 이 일주일 동안 짓눌려 있는 심적 무게감은 항상 버겁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고 혼자 꽁꽁 싸매고 있는 이 일주일 간의 심적 괴로움과 불안함은 알프람 몇 알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특히 결과 들으러 문 열고 들어가기 10~15분 전의 미칠듯한 강박감은 정말...

암병원 발코니에서 창경궁을 한 번 보고 다시 밖으로 나간다

보통 병원에 일찍 도착하는 편이지만 병동 안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우울하기 때문에 한 5~10분 전까지는 진정을 위해 알프람 한 알 먹고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는 편이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2

참고로 알프람은 신경안정제로 <낭만닥터김사부2>에서 이성경이 수술 전 먹었다가 기절한 신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알려졌는데, 처방만 가능하고 웬만하면 인생에서 안 만나거나 멀리하는 게 좋은 약이다. 그리고 저것도 처음에다 잘 듣지, 계속 먹다 보면 내성 생겨서 계속 먹고 먹고 먹고의 연속이다...

서울대학교병원 본원
대한의원 병동 터

우울한 암병원에서 11시 방향으로 서울대병원 본원 빌딩이 있고 고 앞에 대한의원 병동 터가 남겨져 있다. 이걸 가지고 뭐라하는 건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아파트들 재건축하기 전 이전 아파트 흔적을 조금 남기고 뭐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뭐라 할 말이 없다. 대한민국 혹은 서울 최초의 아파트.. 뭐 이런 정도의 상징성 정도면 모를까, 터 까지 남겨 놓으면서 까지 역사와 기억을 기릴만한 그런 아파트 건축이 애초에 있나? 당장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

공홈의 밀레니엄 힐튼 남산의 전경

기리는 거 가지고 뭐라 할 건 없겠지만 더 중요한 근현대 건축물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으로 볼 순 없는) 부동산 논리에 의해 사라져 가는 마당에 그런 걸 보면 맘이 좀 그렇다. 좋은 예로 당장 남산 밀레니엄 힐튼 건물이 2022년 12월 30일 영업 종료와 함께 철거된다. 그 시절 전 세계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정수가 들어가 있는 그 상징성이 어마어마한 건물이다. 당장 남산만 해도 철거해도 마땅할 흉측한 건물이 한 두 개가 아닌데 참으로 아쉽고 애통한 부분이다. 무너질 때 무너지더라도 근현대 건축물의 중요성에 대한 화두라도 여기저기 던져지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암튼 말이 또 딴 곳으로 새어나갔는데.. 서울대병원 본원 앞에는 지금 의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대한의원 건물이 있다. 이제는 현대 식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서울대병원에서 유독 눈에 띄는 구한말 (1908년에 지어진) 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명동성당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적색벽돌과 화강암이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중후함을 느낄 수 있다.

대한의원을 둘러싼 산책 길

그 대한의원을 360도 둘러싸고 두 명이 같이 지나가면 꽉 찰 만한 작은 오솔길 너비의 길이 종종 나오는 산책길 있는데 가깝기도 하고 특히 예쁜 곳이라 주로 이 곳을 한 두 바퀴 씩 돌며 대기 시간을 흘러 보낸다

가을이라 그런지 단풍진 나무들, 떨어진 낙엽 때문에 굉장히 아름답고 맘이 편해지는 곳이다.

바로 앞 건물이 서울대암병원이다

곳곳에 벤치도 나 있어 방문객들, 입원 환자 들 등이 쉬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도시락을 먹거나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특히 서울대암병원 건물이 바로 앞이라 그런지 종종 암투병 환자로 보이는 분들도 보인다. 오늘은 뒤 쪽 좁은 길 벤치에 초등학생 돼 보이는 소년과 이제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되었을까 해 보이는 아버지가 조용히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소년은 스쳐 지나가면서 보기에 소아암이 아닐까 추측한다.

젊은 아버지의 표정은 무덤덤해 보였지만 측은한 맘을 감출 수는 없었다. 암 투병 당시 MRI 실 내에서 대기하며 내 앞의 한 어린아이가 무섭다고 소리 지르고 생떼를 쓰는 것을 보며 복받치던 눈물을 참지 못하고 결국 터뜨려 버렸던 한 아버지의 안타까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이 두 아버지들의 모습은 지금도 가끔 생각나고, 생각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힌다. 단순한 측은지심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런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일까...

저런 돔 형태의 요소를 좋아한다. 뚫린 천장으로 쓰일 때는 내부에서 느끼는 높이의 절대감과 웅장함을 더 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하부 공간과 단절된 경우는 저 위에 뭔가 판타지스러운 비밀 공간이 있을 것 같은 동화같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가을 단풍 속 뭔가 초록사과 같은 상큼한 느낌을 주는 나무가 있다. 잎들이 어케 보면 행운의 네잎 클로버 같아 희망을 주는 것 같다.  저건 무슨 나무일까? 궁금하다

마음 한 켠은 불안하고 어둡지만 나무와 하늘, 이런 자연의 모습들이 정말 위로가 된다.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들이다

대한의원 뒷 켠, 지석영 선생 동상 쪽으로 걸어가면서 보이는 누가 봐도 오래 돼 보이는 나무. 이 쪽은 아주 잼뱅이라 모르겠는데 소나무가 맞나...

쭉 돌아나오면서 보는 대한의원의 파사드. 아무래도 근대 건물이라 그런지 그 고풍스러움과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멀지많은 않을 것 같은 시간 속 존재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현재에서 바라보는 역사의 교차점 같은 그 알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 참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키거나 보존할 순 없지만 남아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 또한 중요한 것 같다

여긴 산책길에서 본원을 바라본 방향인데 가을 단풍들이 참 예쁘고 안심을 주었다. (포스팅의 사진들은 동선대로 올리진 않았다)

토핑처럼 쌓여있는 낙옆들도 참 상큼한 느낌이었다

도심 방향 쪽의 스카인 라인을 바라보니 남산타워가 보인다. 어느덧 의료실 근처에서 대기하라는 문자를 받고 산책을 멈추고 병원으로 향한다

MRI/CT의 결과는 좋았다, 6개월 후에 다시 보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일주일 동안 쌓였던 체증이 다시 내려간다

결과 검진이 끝나면 다시 의료실 앞에서 기다렸다가 간호사 분과 다음 일정 조율을 하는데 그 기다리는 텀에 일주일 동안 참아왔던 감정에 복받쳤는 듯, 눈물이 내 눈에서 주르륵 흘렀다. 아마도 쌓아왔던 긴장이 한순간 탁 풀리면서 주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이 일주일의 기간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티 안 내고 참아오는 일주일의 숨 막히는 시간. 악몽도 자주 꾸는데 이 날은 특히 내 앞에서 유리병이 산산조각이 나며 이 유리가루들에 휩싸이는 기분 나쁜 꿈을 꾸기도 했는데, 재수 없을까 봐 해몽은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간호사 분이 결과가 이렇게 좋게 나왔는데 왜 우시냐며 괜찮다고 톡톡 치며 다듬어 주신다. 담당 의사분의 환자들이 '굉장히' 많아서 같이 고생하실 텐데 환자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웃음으로 대해주시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따뜻하게 보듬어 주시는 정말 고마운 분이다

병원에 오는 긴 운전도 운전이지만, 일주일 간의 걱정과 스트레스, 그것들이 만들어 낸 긴장감이 한 순간 풀리는 충격 등 심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지만 그래도 1년 중 가장 좋은 뉴스를 접하는 날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날은 집으로 바로 안 가고 가까운 종로에 가서 오랜만에 좋아하는 종로의 칼국수 집에 들르기로 했다

창경궁 방향 출구

일단 처방 받은 진통제 받으러 약국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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