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2007년 ... 더 우울한 2008년 새해... 처음 우울한 맘을 자극한 이 노래... 앨범은 지난 해 8월에 나왔다고 함.. TV 사운드트랙에 다수 참여 했던데... TV를 전혀 안보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고... 이제야 처음 듣게 되네... 앨범 커버에서 느낄 수 있듯이 감미로운 오케스트랄 팝에 보컬 클레어의 애절한 듯 퍼져 울리는 목소리가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자극한다.. ㅜㅜ ㅜㅜ ㅜㅜ
2008년엔 좋은 일이 생길까나... 우울한 지난날들이여...
PLUTO by Clare & the Reasons [MV]
Cook for You by Clare & the Reasons @ the SONIC BERLIN
2008년 1월 16일 싱글 발매 예정인 퍼퓸 신보 뮤직 비디오 흠... 아직까지 Chocolate Disco의 충격을 가져다 주는 싱글은 나오지 않았지만... 뭐랄까 ... 아직 20살도 안된 소녀들이 성숙해져 돌아 왔다고 말하는게 좀 이상한가... 어쨋든 지금까지 퍼퓸이 중학생 만화주인공 분위기였다면... 한 1밀리정도 성장해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듯한 분위기다...
억지정도까지 내지 않는 애기 목소리...많이 차분해졌다 음악의 성향 또한 옛날 보다는 조금 성인 취향 (ㅎㅎㅎ)에다 굉장히 pop 스럽다... 그리고 퍼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미니멀 댄스 또한... 에센스를 잃어 버리는 듯... (그래도 "크루징"하는 제스쳐는 역시 귀엽다) 옛날보다 점잖은 이미지를 풍기는 음악이어서 그런지...
문득 지금까지의 퍼퓸 플레이 리스트를 살펴보니 제작자인 Capsule의 야수타카 나카타의 머릿 속에는 퍼퓸을 통해 크라프트워크 Kraftwerk의 아니메 버젼을 꿈꾸고 있는 듯 하다... 과연... 이룰 수 있을까?
'절대' 러블리한 캔디 슈가 팝 그룹 피펫츠의 새 뮤직 비디오가 나왔다~~ 기다렸노라~~~
초창기 시절 보다는 확실히 돈이 많이 들어가 보인다 모든 사운드나 패션들이... 뭐 어찌하였건 요즘 이런 신나는 50년대 캔디팝 사운드를 선사해주는 그룹이 어디있는가? 그녀들은 동시에 그 옛날 'Thee Headcoatees'가 가지고 있던 펑크의 냄세도 어디선가 은근히 풍기고 있다.
처음엔 그들이 직접 만들어 입고 다녔다는 트레이드마크인 폴카도트(일명 땡땡이) 원피스도 전문가의 손을 탄 듯하다... 신발이나 스타킹 레깅즈 등도 마찬가지다... 머리 모양도 많이들 바뀌고 ...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피펫츠 후발 멤버인 그웨노인 듯...
가장 아쉬우면서도 그래도 좋은 건.... 그녀들의 막춤이 처음에 비해서 어느정도 진정되었다는 것... 어쨋든 어엿한 메인스트림으로 들어가는 팀이라 어쩔 수 없겠지만... 노랜 여전히 신난다..
그리고 뮤직 비됴 뒤의 남자들은 추측하건데 분명 피펫츠의 백 밴드인 카세츠다! (The Casettes) 피펫츠와 카셋츠...ㅋㅋㅋ
보너스로 솔로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는 그웨노 버젼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피펫츠 버젼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Christmas time may always be the saddest time of year But if misery loves company let's play at solitaire If you've any thought to our forgotten dream Here's a swallowed prayer and not so silent scream
Please don't chop another Christmas tree Please just let her live and let her breathe Spare the little flower as you didn't spare my heart Tend each thirsty flower, don't tear her apart Please don't axe another evergreen Please don't make that cut however clean Bless each fragrant nettle and how happy she will be Cradle every blossom and kiss them for me
Please don't slice another Christmas fir Please don't kick another to the curb Put away the hog's head and the fetish for the flesh Death is no requirement for your happiness
Please don't kill another living thing Please don't sap her veins but let them sing Don't tether her branches to the chair or kitchenette Whether our romance is a thrill or regret
Please don't squeeze another Christmas crown Just to build her up and break her down Please don't slowly starve her whilst the party rages on I know what it feels like to shiver in the sun
Please don't chop another Christmas tree Every wild soul craves liberty Cherish every being, any species, any size I'm a weeping willow yet I still empathize So though you've got your life and family Though you've chosen and it wasn't me Though my future's decked in misery Oh please oh please don't chop that Christmas tree
(Spoken) Merry Christmas everybody!
내용은 한 마디로 '자연보호'.. 인간의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 (가사는 위의 상단 박스 클릭 ) 어쨋든 개인적으로 우울한 기억이 더 많은 해라 분위기가 와닿는 넬리 맥케이의 크리스마스 장송곡
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10월자 2nd Summer of Love, the London tale: 두 번째 사랑의 여름
IBIZA; 발레릭 사운드
클러버들의 영원한 고향인 이비자 섬은60년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었던 곳이었지만 그 시절 공산주의자였던 프랑코 장군의 정책에 의해 새로운 관광의 요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낮았던 스페인 환율 덕분에 이비자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지 못한 젊은 중산/노동층 영국인들에게 고아와 카쉬만두와 함께 환영 받는 휴가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비자의 공짜 파티, 보헤미안적인 열린 분위기와 아름다운 달과 별빛은 어둡고 우울한 런던에 지친 젊은 브릿들을 따스하게 맞이 했다.
이 때 Pacha와 Amnesia는 이비자의 중심 클럽으로 히피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 시절 Amnesia는 전기 공급이 없는 농장 같은 곳에서 모닥불을 피고 레게와 사이키델릭락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70년대 디스코의 시대가 도래하며 히피 세상은 막을 내리고 이비자의 클럽들 또한 나이트클럽으로서의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80년대에 접어들며 젊은 브릿들 뿐 아니라 게이, 뉴 에이지 전도사 등을 포함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비자를 찾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전설의 엘릭시르elixir로 통하는, 엑스타시도 슬슬 이 곳을 상륙한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1987년경 이비자의 산 안토니오에 The Project라는 바가 문을 열게 된다. 영국 DJ 트레버 펑과 이언 세인트 폴이 세운 이 곳은 브릿들만의 일종의 미팅 포인트가 되었다. 프로젝트에 모인 젊은 브릿들은 암네시아로 자리를 옮겨 엑스타시에 취해 DJ 알프레도 피오리오가 선사하는 몽환적인 여행을 떠났다. (Amneisa의 DJ 알프레도 피오리오 Alfredo Fiorillo는 서로 다른 연령과 사회 계층이 주를 이루는 특이한 환경에 의해 다양한 음악으로 그들의 여행을 책임 졌다. 레게와 Funk로 시작해 존 레논의 감미로운 이매진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식의 그 만의 디제잉은 트렌드를 떠나 폭넓은 사람들의 정서를 껴안을 수 있는 이비자 섬만의 에센스를 담아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아스라이 동이 터오는 새벽의 신비로움, 히피의 유산 그리고 쾌락의 요소를 담은 발레릭 코드가 탄생하게 되었다.)그리고Cala Salada에서 새벽을 맞이하며 몇 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카페 델 마르Cafe Del Mar로 움직여 DJ 호제 파디야가 떨어뜨리는 Art of Noise의 Moments in Love를 들으며 상쾌한 오전의 공기를 흠뻑 마셨다. 그런 루틴을 반복하며 보낸 그들만의 여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환상 그 자체였다.
그 해 9월 훗날 폭풍처럼 휘몰아쳐올 영국 애시드 하우스 씬을 이끌어 갈 핵심 인물들이 이 프로젝트 바에 모이게 된다. 폴 오큰폴드, 쟈니 워커, 닉키 할러웨이 그리고 대니 램플링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이전 브릿들과 마찬가지로 엑스타시와 함께 발레릭 사운드를 처음 접하며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이비자의 주술에 휘말린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리라 결심한다.
다시 우울한 런던으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가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좌파 정당과 잦고 길었던 스트라이크를 이끈 노동계급의 패배는 젊은 브릿들로 하여금 마가렛 데쳐의 보수정당을 향한 깊은 증오와 패배감만을 안겨 주었다. 또한 데쳐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빈부의 차이는 더욱 늘어나고 모두들 신용을 이용한 소비에 미친 듯이 열을 올렸다. 이는 무인지경의 이기적 개인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돈이 곧 신이요 법이라는 진리를 만들어 냈다. 이 흐름 속에 찾아온 영국의 경제 침체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열등감과 허탈만을 안겨 줄 뿐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런던의 클럽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런던의 클러빙이란 그저 술에 찌들어 이성에게 집적대고 디자이너 의상으로 화려하게 차린 자신의 쿨 함을 한 것 뽐내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들은 춤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대략 옛날 국내 나이트 실정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 컬쳐의 공간에는 당연히 돈과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낄 수 없는 그런 성역 같은 곳이었다. 이러한 트렌디들을 향한 ‘가진 것 없고, 촌스럽고 지저분한’ 이들의 열등감은 팽배했다. ‘
사운드적 맥락에서 볼 때 당시 영국은 Jazz와 Funk 등의 Rare Groove에 의해 주도 되고 있었다. 그 즈음에서 나온 섹스프레스나 M/A/R/R/S 등의 팝 차트 선전이 애시드 하우스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직까지 영국에서 애시드 사운드는 일종의 페드fed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조금씩 늘어나는 브릿-이비쟌들의 여름의 향수를 채워줄 공간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클럽 노엘과 딜리리엄이 런던에서 유일하게 애시드 사운드를 제공하였지만 기존의 Funk, Hip Hop 그룹과의 충돌이 잦았다. 예를 들어 그 때 당시 선풍적이었던 디트로이트 테크노 트랙인 데릭 메이의 Strings of Life는 댄스 플로어를 싹 비워버리는 진공 청소기와 같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비자에서의 소중함 기억을 현실화 시키고자 결심했던 오큰폴드, 폴, 램플링, 홀로웨이 등이 각기 런던에 발레릭-애시드 클럽을 열며 영국 전체 클럽 씬은 물론 브릿팝의 판도 자체를 발칵 뒤집어 놓게 된다.
The Project & Spectrum : 광란의 월요일 밤
갈데 없이 방황하는 런던의 브릿-이비쟌들에게 오큰폴드와 이언 세인트 폴은 프로젝트 클럽이라는 안식처를 제공했다. 경찰 검문에 의해 금방 문을 닫게 되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둘은 생츄어리 클럽에서 Future 나이트 파티를 열게 된다. 이비자의 메모리를 바탕으로 한 퓨쳐 나이트를 이끌어감에 있어 오큰폴드에게 주어진 하우스 트랙 설렉션은 긴긴 밤을 책임 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DJ 알프레도의 섬머 앤썸 등을 활용하며 오큰폴드는 발레릭 클럽의 이미지를 부각 시켰다. 그때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한 클러빙 경험은 생소했지만 브릿-이비쟌들과 많은 로컬들은 열광했으며 성공적인 하우스 열풍의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렇게 이비자의 발레릭 바람이 런던 언더그라운드 클럽 계를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을 무렵 이언은 오큰폴드와 쟈니 워커에게 엄청난 제안을 한다. 바로 1500명+ 수용의 헤븐 클럽에서 월요일 파티 이벤트를 여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해본 적도 없는 무모하게만 보이는 이 계획은 “Spectrum: a Theatre of Madness”라는 타이틀로 감행된다. 클럽 경영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무렵 갑자기 엄청난 센세이션과 함께 기적적인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웨스트 엔드 트렌디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디자이너 의상을 던져 버리고 춤추기에 편안한 트레이닝 복과 배기 팬츠로 무장한 클러버들은 황홀경에 빠져 월요일 밤을 뜨겁게 불살랐다. 세련된 드레스 코드 문화와 트렌디의 전통을 무참히 깨어버린 대 사건이었다. “우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었으며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에너지의 폭발로 인한 오버나이트 센세이션이었다. 이 새로운 열풍은 곧 i-D매거진과 같은 팬진에 소개되기도 하지만 중심 요소인 엑스타시나 애시드에 관해서는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았다. 브릿-이비쟌들에게 있어 이비자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개인적이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자신들만의 소중한 씬을 지키고 싶은 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The Shoom: 걱정일랑 접어두고 웃어요~
오큰폴드 등과의 이비자 여행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대니 램플링은 그의 아내, 제니와 함께 1987년 12월경 클럽 역사의 영원한 전설로 남을 슘 클럽을 열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섹시한지를 과시하는 웨스트 엔드와는 달리 슘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관한 경험이었다. 사랑, 함께함, 나눔, 인생의 환희를 모토로 삼아 슈머Shoomer들은 애시드 음악에 빠져 사랑과 희열의 밤을 보냈다. 춤이라기 보다는 음악의 비트에 빠진 쿵푸 모션에 더 가까운 그들의 프릭키 댄싱 (Freaky Dacing)은 스타일에 찌들은 시대에 얼마나 사람들이 지쳐있었나를 보여주는 거침 없는 하이킥이었다. 뉴욕의 스튜디오 54를 방불케 할 만큼 까다로운 도어 폴리시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단 인사이더로 인정 받으면 천국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 안에서 모두는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사랑을 외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이비자의 유포릭Euphoric한 경험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시간 상 가장 가까운 모체인 히피 사상을 차용했다. 사랑, 평화, 존중을 외치던 히피의 60년대는 분명 이러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첫 번째 사랑의 여름은 바로 히피의 60년대를 지칭한다) 그러한 영향과 함께 대니는 히피의 상징이었던 노란 스마일리 로고를 슘의 마스코트로 도입한다. 그때부터 “the Happy Happy Happy Happy Happy Happy Shoom Club”의 글과 함께 수많은 스마일리 로고가 눈처럼 슘의 플라이어 위에 뿌려지고 있었다. (물론 스마일리 페이스가 레이브의 상징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제2사랑의 여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슘은 철저한 뉴스레터와 클럽 멤버십 스킴 관리에서부터 물, 과일 등의 공짜 제공 등 훗날 레이브 프로모션의 좋은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만약 누군가 갑자기 당신의 볼을 쫙 잡아당기며 “웃어요~”라며 스마일리 스티커를 붙여준다면? 당신은 그를/그녀를 꼭 껴안고 “사랑해요”라며 환한 미소를 건넬 것이다. 슘은 그런 행동이 가능하고 당연한 곳이었다.
RIP party: 런던 블랙 컬쳐의 자존심
이비자 베테랑들과 백인 위주의 성향이 짙었던 애시드 하우스 열풍 속에 RiP파티는 이비자와는 상관없이 기존 런던의 흑인 문화를 위주로 자신들만의 파티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갔다. 시카고나 뉴욕의 웨어하우스 파티 그리고 레게와 소울의 전통을 지켜나간 폴 스톤과 루 뷰코빅의 RiP(Revolution in Progress)은 테크노,애시드,개러지 사운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파를 소화해 냈다. 슘이 연령, 성, 사회적 계급 등의 벽을 허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파티로만 보여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RiP의 경우 흑인 백인 등의 인종별 다양성을 넘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이었다. 옛 클러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RiP파티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가장 추악한 사람들 모두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펑크의 배경을 가진 루 뷰코빅은 여기서 애시드 문화가 가진 정치적 힘을 보았다, 바로 새로운 변화의 물고를 틀 수 있는 강력하고 순수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의 힘을.
자신들만의 씬을 지키기 위해 뷰코빅은 철저히 미디어의 개입을 막았기 때문에RiP파티는 슘과 스펙트럼만큼 오늘날의 클럽 전설로 회자되지는 않고 있다.하지만 오늘날 미디어에 의해 상처받는 수많은 언더문화들을 보면 그들만이 간직했을 ‘열정과 순수함’은 충분히 상상해 볼 만 하다.
The Trip: 애시드 하우스의 폭발 그리고 여름의 끝
1988년 6월 런던 웨스트 엔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애스토리아Astoria에 트립 TRIP자리를 잡으며 제2 사랑의 여름이라 불리는 레이브 / 엑스타시 열풍은 오버그라운드화 되어 버린다. 하룻밤 만에 모든 런던 주류의 클럽 사운드가 애시드 하우스로 대체 되며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문화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트립의 주인인 닉키 할러웨이는 수많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슘 클럽 또한 ‘그들만의 파티’이기를 포기한 듯 웨스트엔드의 토튼햄 코트로 자릴 옮기고 유명한 셀레브리티들을 모시기에 급급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메인 파티 이벤트를 오큰폴드의 퓨쳐 나이트와 겹치는 목요일로 재설정하며 이비쟌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했다.
여기저기서 애시드와 엑스타시에 대해 떠들어 대자 아무 생각 없이 이 흐름에 너도나도 동참하는 애시드 테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던 ‘그들만의 파티’는 종료되고 기존의 이비자 베테랑들과 애시드 테드들 간의 복잡한 갈등이 일어났다. 이비자의 기억과 히피적 사상이 전무했던 애시드 테드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엄청난 양의 엑스타시를 복용하고 “애시~~~~드!!!”를 외치며 미친 망아지들처럼 씬을 휘졌고 다녔다. 그때까지 영국의 클럽은 3시 이후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들은 이후 거리로 뛰쳐나와 날뛰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의 사이렌을 붙잡고 전율을 느끼며 “Can You Feel it?”을 외쳤다고까지 하니 그 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스펙트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었고 이 언더문화는 도태되기 시작했다. 순수함과 흥미에 의해 시작한 파티 관계자들도 파티 이벤트를 돈의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의 우정도 깨지기 시작했다. 마약의 유통과 파티 프로모션을 통해 ‘한 몫 챙길 수 있는 장사’의 가능성이 확인되며 갱들도 이 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경찰은 애시드 하우스 파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Cool and Groovy” 같은 기사를 통해 새로운 애시드 문화에 친근감을 표했던 미디어는 “요즘 아이들이 어떤 위험한 것에 빠져있나” 레퍼토리를 들고 나오며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디어는 엑스타시와 LSD의 차이를 알지도 못한 채 아이들이 클럽에서 문란한 성생활과 폭력에 찌들은 것처럼 선전했다. 영국의 유명한 음악 차트 방송인 Top of the Pops는 Acid란 단어가 들어가는 모든 노래들을 차트에서 제외시키는 이래적인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팝 스타들은 라디오와 TV를 통해 마약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깨끗하고 도덕적인 생활의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대중을 선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파시즘적인 미디어의 폭력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찌하였건 이런기성 세대와 미디어의 소란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청년들이 생각 없이 애시드 열풍에 동조하도록 불만 지핀 셈이었다. 이 때부터 애시드 하우스는 대중 문화를 뛰어넘어 민감한 국가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물론 애시드 하우스 클러버들도 큰 문제를 안고 있었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디어와 다를 바 없이 그들은 엑스타시를 마약으로 조차 여기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1988년 이후로 마약이 이른바 보편적 레져 문화로 올라섰고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은 9 to 5로 대변되는 챗바퀴 같은 자신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너도 나도 일을 그만두고 쾌락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었다. 급기야 애시드 문화의 인사이더인 슘은 뉴스레터를 통해 “제발 당신의 직장을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들이 그 당시 잊고 있었던 것은 어떠한 좋은 경험이든 영원할 수는 없다는 간단한 인생의 논리였다. 문제는 그토록 그들을 괴롭히던 현실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기에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약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현상에 중심에 엑스타시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당시 젊은이와 노동계층에게 악마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데쳐 정부에 대한 개인의 무력함에서 따라온 심리적인 거세와 억압이 음악과 춤을 통한 파티라는 대규모의 집단적 문화 현상에 의해 치유되고 있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맨 정신에 환희와 희열의 트랜스를 느낀 한국인들처럼) 이 논리를 깨달은 이비자 베테랑들은 현실을 직시하며 다시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 떠났고 그 중 많은 이들이 현대 전자 댄스 음악의 문화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오늘 날의 파티 문화가 세계 이곳 저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짧았던 제 2 사랑의 여름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채 그렇게 끝나갔다.
캐리 루카스의 모습은 볼 순 없지만 흥겨운 라인 댄싱에 사랑스러운 70년대 아웃핏! 손바닥 활짝 피고 로보트 처럼 흔들대는...ㅋㅋ 캐리 루카스 만의 에더리얼 한 보컬..아 빠진다...
The Whispers의 백킹 보컬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캐리 루카스.. 소울 트레인 레코드 레이블를 통해 싱글 앨범 발표 시 위스퍼즈가 백킹 보컬 및 곡을 써주기도 했다. 1977년 나온 "SImply Carrie"에 속해 있는 곡이 바로 "I gotta keep Dancing"이며 클럽 차트를 휩쓸었다 (물론 큰 메인스트림 성공을 일군 아티스트는 아니다) 그녀의 솔로 커리어는 9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영화 람바다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기도 하고 99년엔 12" 리믹스 베스트 앨범이 나오기도 했다.
과연 노래 부르는 이는 여성일까 남성일까? 저 가득한 중성미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빈티지 느낌의 배경과 사람들... 그리고 정제된 움직임의 연출.. 댄스 또한 슬로우 모션과 같은 약간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힙노틱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어딘가 오지 말았어야 할 그런 금지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My Cool by Adam Tensta 일렉트로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랩 음악 중 하나... 귀에 찰싹 달라붙는... 전형적인 80,90년대 레트로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패션과 색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보컬... 모습이며 사운드며 열라 귀엽다...^^ㅋ (원더걸즈의 "떼떼데떼떼엘미"를 연상하는 사람이 있을수도...Stacey Q...쩝..ㅠㅠㅋ)
Cool Town Rock by Holy Hail 좋은 음악은 거의 (항상) 좋은 뮤직 비디오와 좋은 앨범 디자인과 같이 온다... 홀리 헤일의 새로운 뮤직 비됴... 다다나 칸딘스키 등을 연상시킨다. 조형성에서 삐져 나와 도형들이 왔다갔다 제각각 자기들만의 말을 하며 돌아다닌다 이정도면 모더니즘의 향수를 일으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영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Born of a Star by Holy Hail 그들의 퍼스트컷.. 정적인 카메라 워크에 현란한 짜집기로 심지어 벌레같아 보여 징그럽게 보였던... 이것도 수작.
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9월자 Krautrock과 Kraftwerk: 독일 김치의 유산
1960년대후반의음악씬은히피의문화혁명을겪고프로그레시브락과아트락등이그맥을이어가고있었다. 그리고죠지해리슨에의한후기비틀즈사운드(‘I am a Warlus’ 등), 벨벳언더그라운드, 롤링스톤즈등이그선봉장을맡았었다. 이들의 Hedonistic 헤도니스틱 (쾌락주의적)한사운드는아직도기존락음악이가지고있던 (히피의뿌리를벗어나지못한) LSD의영향과정치적성향을극적으로극복하지는못한상태였다. (혹은논외대상이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그들의사운드는어느정도엠비언스와기계음의미학이가지고있는가능성을인지하고있었다는것을보여주고있었다. 그리고한편에서는 Stockhauzen 쉬톡하우젠과같은전위음악가들이에드가바레즈의바톤을이어받아좀더깊이있고자유로운, 하지만아직엘리트적인틀에갇혀있는전자음악사운드의실험을추구해나갔다.
정말 정말 간만에 파티에 다녀왔다. (저 파티란 단어 쓰기 너무너무 싫고 역겹지만 암튼...) 이제 몸도 부치고 이벤트성 분위기에 찌들은 씬도 싫고 거의 굿바이 상태였지만 John Digweed 가 온다는 얘길 듣고 뿌리칠 수 없었다. 결론은 이젠 정말 이딴거 가기 싫다....이다.
파트너 몫까지 거금 10만원을 내고 12시즘 워커힐로 들어감...
지난번 M-Flo 사태로 시끄럽던 02pro주최라 조금 망설여지긴 했으나..디그위드 한 사람때문에 가게 됨...
아, 고딩이여... 우선 놀란건 언제부터인지는 몰겠으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어 있었다. 화장실에선 대규모 고딩들이 화장하고 옷갈아입고 있고... 정말 황당하게도 아이디 검사라니!!!!
ok.. 이런 이벤트에 고등학생 몰려다니는 거 솔직히 상관안한다. 오히려 그들도 '권리'가 있을 망정 오히려 그들을 배척하는 밤문화가 더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그렇게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으로 가득찼기에... 술,담배 그리고 야한 옷차림의 여인들? 뭐 그 3가지 요소로 이 이야기는 걍 넘어가고
이 현상이 시사하는 문제점은 바로 ted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teddy boy: 분별력 없이 그저 유행에 따라다니는 이들을 일컫는다) 그 그지같은 미디어가 씬을 붕괴 시키는 현실을 다시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나마 그 옛날 영국처럼 엑스타시가 맘대로 돌아다니지 않아 망정이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고딩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ted들이 늘어나며 씬은 점점 더 막장에 치달을테고 상업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건 문화적 경험주의에 따른 진리다.
밖에 좀 나갔다 올 수 없나요? 하두 오랜만이라 이런 문화는 또 언제 생겼는지 몰겠따. 왜 팔찌를 안주나 했다... 어두컴컴 공기도 나쁜 곳에 질식사 하기 전에 바깥 바람 좀 쐬고 오려는데...팔찌가 없으니... 황당..
"여기 나갔다 와도 돼요?" "1시 이후부터 됩니다"
이건 또 무슨 논리인지... 명 당 5만원 내고 지하실에 좋건 싫건 쳐박혀 있으라는 얘긴지... 그 소리 듣고 나니 대충 디그위드는 1시쯤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과연 프로덕션 내의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아니면 무언갈 노리는건지.. 혹시라도 국내 DJ 활성화를 위한 대처 방안이라면 이건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Staff 영역이면 잘 보이는 싸인이라도... 디자인의 기본 아닌감? 암튼 거의 예상한 썰렁 분위기라 별 개의치 않고 술이나 사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앞 사람들 따라 무작정 오른쪽으로 꺽게 됬다. 들려오는 목소리,
"어이, 여기 들어오지 마요" "저리 가요" 거기다가 팔짱끼고 있다가 한심 하다는 듯 팔을 바깥 쪽으로 휘져으며 나가라는 싸인을 줌...
황당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태프 영역인듯... 우선은 개인적으로 누가 그런 식으로 말 표현을 하고 손짓을 해대면 기분이 상할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듯. 또한 고귀하신 스태프의 영역에 들어온 나같은 '민간인'의 잘못인 것은 알겠으나.. 그렇게 비싼 장비있고 컨트롤할 구역이면 당연히 사람들 햇갈리지 않을 사인 하나는 떡 하니 붙여놓든 매달아 놓든 해야 할 듯... 공간적으로 볼 때 특별 영역의 공간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고 자신들이 영상 잘 보일만한 곳에 꾸린 '임시적' 공간에서는 당연히 사용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UI 디자이너나 정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디자인 센스가 있는 이라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기기의 안전은 물론이고 그들이 원하는 안정되고 원활한 작업의 최적화가 아닐지... 플러스, 뮤지컬이나 영화처럼 지정된 좌석이 아닌 그런 스탠딩 형식의 복잡한 공간에서는 그런 공간의 차별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은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상.... 이젠 친숙한 영상 이 이야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으나 ... 제발 쓰던 영상 계속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싱크 제대로 안되는 건 상관 안하지만 리사이클되는 영상보면 정말....ㅜㅜ.
외국인들 제발... 우리나라 6.25 당시 대하듯 하지 말래? 옛날부터 국내에서 클러빙 갈 때 제일 짜증 났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 그 중에서도 버릇없고 도덕성 없는 짜증나는 '외국인!' 그런 외국인들이 꼭 있다! 지네 나라 지네 땅에서는 예의 지키고 질서 지키고 할 지 모르겠으나... 문화적 상대주의에 찌들은 어떤 외국인들은 거지 나라 대하듯 하는게 뻔히 보인다. 그나마 요번에 갔을 때는 조금 줄어든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못사는 나라 인간들 거지 보듯 하지 말았으면... 그리고 제발 술 살때 줄 좀 서라 이 거지 자식들아!
홍콩에 있던 시절 보았을 때도 우리나라 영어강사들처럼 영어 가르치며 떠도는 롱텀 배낭족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처럼 돈은 많이 못 벌었을 지언정 적어도 그때 그들에게서는 보헤미안의 냄세와 분위기가 있었다. 요즘 여기서 보는 그들에게서는 별로 그런 것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들이 거의 미국인이여서 그럴까? 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에서 한국여자 걸레로 보고 한국 남자 병신으로 생각하는 그 마인드는 과연 우리가 만들어 준 것인지...그들이 만들어 낸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표현이 좀 과하긴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직 척박해도 이제 니들로부터 "쬬꼬래또 기브미"는 필요 없거든? (본의 아니게 인종차별 주의자처럼 되버린 기분이라 기분 더럽다)
오...초절정 사운드 시스템... 디그위드가 드뎌 등장했다. 근디 뭐가 이상하다. 몇 분간 베이스 비트만 길게 나오고 DJ 덱에서 뭔가 분주히 말이 오고 갔다. 급기야 디그위드 뒤에서는 긴급회의 비스무리한게 열린 것 같기도 하고.. 디그위드는 기기의 놉을 이리저리 돌려대고 있고... 분명 척박한 사운드 시스템 때문이리라... 오...디그위드여 ... 우린 좋은 사운드 시스템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노라... 사운드 신경 쓰지 말고 트랙을 떨어뜨려 달라면 우리가 Dj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일까? 그렇게 디그위드의 등장부터 단추는 잘못 맞추어 지기 시작했다. 광고 할 때 국내 최고의 사운드 시스템을 자랑한다류의 광고는 ... 아마 없었겠지?
디그위드...당신은 수줍은 건가요 화가난건가요? 원래 그런가요? 원래 그리 무뚝뚝한 사람인지.. 아니면 뭐가 그리 꿍해 있는건지... 목뼈가 뿌러져 고개 못드는 사람처럼 등장해서 사라질 때까지 무대 한번 바라보지 않은 그... 끝에 박수치는 것도 내 눈엔 정말 성의 없어 보였음... 근디 국내 오는 유명 DJ들 상당수로 부터 그런 모습을 봐서 많이 상처받았었음. 옛날부터 꼭꼭 들어오던 DJ라 개인적인 바램이 너무 컸는진 몰라도 디그위드가 선사(?)한 음악들도 감흥이 한층 떨어졌었음... 물론 짧은 스피닝 시간은 이미 익숙한지라...패스...
기타 환경 정말 열악하다. 그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안다. 대문에 걸쳐진 Godskitchen의 푯말이 왜 그렇게 애처롭게 보였는지... 문화가 상업화 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이긴 하다.. 하지만 레이브가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하던 90년대에도, 그 장본인이었던 토니 콜츤 헤이터는 레이브를 돈지랄 파티로 만들어 버렸다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 그가 여는 이벤트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얻어갔다... 씬의 순수함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건 지금 시점에서는 말도 안돼는 소리다... 하지만 대안은 정말 없는 걸까?
간만에 기대하고 간 이벤트라... 상처를 많이 받았나보다... 텅빈 초기 스테이지와 왠지 늘어간 것처럼 결국 이눔의 땅에서는 나이먹어가면 낄 자린 없어지는 건가? 근데 왜 레이브에서는 애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걸까? 또 다시 푸념만...ㅜㅜ
어느 날 정말 자신의 감성을 제대로 건드리는 아티스트를 만나면 인생의 동반자를 얻은 기분이다. 내게 닉 케이브는 그런 나를 항상 '건드려주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수많은 논란을 이끌어내고 발매 정지도 당했었던 문제작 <Murder Ballad>과 수많은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음악을 통해 만난 이 사나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퇴폐함과 거칠음의 이미지와 반대로 희망에 가득찬 노래를 하고 있다. 혹독한 고생과 절망 속에서 참된 희망을 발견하는...그런...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결국엔 구원의 메세지와 함께 성난 여행이 종식되듯 이의 음악도 그렇게 구원의 메시지와 막을 내린다. 블루스와 락 큰 롤의 사운드를 구사하며 이미지나 사운드 면에서도 Tom Waits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리틀 톰 웨이츠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위의 사진을 보면 정말 판박이다) The Pogues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소호의 비내리는 밤'은 닉 케이브 만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주옥같은 명곡이다. 가을 날 ... 비온 뒤 촉촉히 젖은 도시의 맨 콘크리트 땅과 벽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멜랑꼴리에 빠져들게 만드는... 그런 노래다.
음침한 이딸로 디스코 밴드 글라스 캔디의 새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사실 그들 싱글 만큼 뮤직비됴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잡스런 디지털 색상이라고 해석해야 하나... 암튼 요번 뮤직비됴는 언제나 반가운 여인의 도시 배회다. 도시의 살아있는 연극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Full of wonder!) 거리를 배회하는 여성 여기서도 유감없이 음침한 느낌은 되살아난다.
'직업여성'인지 혹은 하이 라이프를 살아가는 도시 여성인지 모호한 여성 캐릭터.. 세련되지만 그리 세련되지는 않은 레트로풍의 패셔너블한 원피스는 그녀에게 도시의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부여한다. (80년대 글램과 뉴웨이브를 통해 나타나는 밴드의 하이소사이어티 지향적 패션을 소화해 내는 글라스 캔디의 내러티브적 브레인이자 보컬, 아이다 노와 일치되는 듯 하다) 하지만 이 여성이 거닐고 있는 도시의 모습은 밴드의 무대 만큼이나, 지저분하고 외곽이며 위험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들의 충돌은 디지털 화면의 정말 '잡시런' 색상들로 인해 더욱 거칠고 '야하게' 표현 된다. (데이빗 린치가 <인랜드 엠파이어>를 통해 보여준 디지털의 매력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또한 소비주의/인간중심/기술 지향적 사회에서 나오는 폐해들의 흔적이 성과 관련된 페티시즘적 표현으로 유감없이 나타난다. 지나치는 남성들을 경계하는 그녀는 남근 사회에서의 지나친 피해의식일까? 일회용 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 스타킹을 간이 세탁소에서 빠는 장면이라던지, 비누를 뭍힌 손을 닦으려 하자 물이 나오지 않자 휴지로 닦아내는 장면은 , 굉장히 적나라하다.
과연 그녀가 기다린 것은 애인일까, 손님일까...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을 듯 싶다... 손님을 길거리에서 기다리는 듯한 직업여성의 모습과 애인인듯한 남성과 함께 인형을 가지고 행복히 미소짓는 그녀의 중첩은 숨가쁜 현대 생활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이미 몸을 파는 그것과 일치되었다는 씁슬한 현상 비판을 보여준다.
정서 상 유해할 수 있는 컨텐트를 가지고 있으므로 19세 미만이나 여러가지 섹슈얼 컨텐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보지 말아 주세요 !!!! (there's no nudity)
거의 1년 만인가, Simian Mobile Disco의 허슬러 새 뮤직 비디오를 보고 약간 실망 했다. 소비주의 사회의 노예 테마 (성적인 코드로 풀어 낸)는 어느 정도 마음에 들지만 베니 베나시 뮤직 비디오류나 여느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의 부티 베입들의 난장판 상업 비디오랑 뭐가 다른지... 더군다나 오리지널의 충격적 소녀들의 원형적 동선을 탄 뮤직 비디오가 훨씬 나았기에 작품의 질 면에서 약간 씁슬한 맛이 느껴지긴 한다.
허슬러의 오리지널 뮤직 비디오.. 홈메이드 영상처럼 돈 들인 티가 안나는게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삥 둘러앉은 소녀들을 원의 동선을 타고 돌며 일종의 사이키델릭한 트립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 것도 성적인 표현이 적나라 해서 모두의 구미에는 맞지 않을 듯 하지만... 틴 에이지 소녀들과 그들만의 약간(혹은 아주) 빗나간 파자마 파티의 적스타포즈가 아주 훌륭하다고 느낀...
헤드 칸디 레이블 앨범에서 들을 수 있는 Solu Music의 Fade...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가 헤드 칸디를 사버리면서 오리지널 커버 디자이너 Jason Brooks도 Vault 49으로 바뀌었다. 풍자와 조롱이 섞인 Jordi Labanda와는 (이 사람은 아날로그다) 또달리 디지털 일러스트레이션의 새 장을 연 제이슨 블룩스의 커버 디자인에 빠져 무슨 음악인지도 모르고 앨범을 사는 이들도 많았다. 대세면 대세라는 코스모폴리탄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는 요즘 여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여성상의 이미지를 제공했던 ... 암튼 요번에 다시 칸디 커버 디자인으로 컴백했다던데...
그리고 이 뮤직 비디오는 앨범의 칸디걸 이미지를 실제로 영상화 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암튼... 바이바이 여름
요건 옛날 오리지날 헤드칸디의 에센스를 담은 피어스 엔젤 걸... 역시 맨 위의 볼트49의 칸디걸보다는 훨 매력적이다.
우탕 클랜의 새 노래가 나왔다. 죠지 해리슨이 쓴 비틀즈 원곡을 써서 샘플링 한 The Heart Gently weeps... (개인적으로는 비틀즈에서 죠지 해리슨의 음악성이 가장 뛰어나지 않았을까 한다... 싸이키델릭한 측면에서 볼 때...그리고 인도에서 그 만트라의 깊은 수풀 속을 헤매는 경험을 견딘건 해리슨 밖에 없었다는 사실) 위에서 RZA 인터뷰를 대충 들어보면 원래 이 음악 넘 좋아서 RZA 앨범으로 낼려다가 Wu Tang 앨범으로 내기로 맘을 바꿨다는 그리고 러셀 크로우에게서 1961년 기타 샘플을 받고 감동한 나머지 "요, 대박 선물 열라 고맙다... 반드시 역사의 한줄을 장식할 음악으로 쓰겠다." (그 뜻인즉 우탕 앨범에 낸다는)라고 말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