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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나간다. 신기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힘들었던 치료도 끝난지 벌써 시간이 좀 지났다.

비인두암으로 방사선과 항암 치료한지 3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고 폐전이로 인한 항암치료 한지 11개월 가량이 지났다.


자주 해두면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생각날 때 몸이나 정신 상태를 기록해 놓는게 좋을 것 같다.

물론 무엇을 위해 좋을 것 같은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기록을 해 놓는게 중요한 것 같다.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항암치료가 너무 힘들다 보니,

끝난지 얼마 안되는 시점까지는 정말 살아있다는게 너무 고마운 거구나, 세상 모든게 소중하구나라는 걸 깨닫고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게 되는데,

일상 생활에 돌아오며 그런 느낌과 결심들이 해이에 지는 것 같다. 

치료 때 그렇게도 우주의 티끌만도 못하게 여겼던 일상의 그런 것들이 다시 짜증과 화의 요인들로 찾아오곤 한다. 


그런거에 반응하는 횟수는 당연히 건강하던 시절 대비 확 줄었지만,

여전히 참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후회 한다.

몸이 조금 돌아오니 옛날 힘들었던 생각 못하는 것 마냥 정신 수양이 아직 덜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전과 같은 정신과 생각의 체계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확실히 변하긴 변했다. 

나라는 전체적인 정신 구조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여기저기 나사와 톱니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설치된 느낌이랄까?

그리고 뭔가 즐기고 싶은 것은 즐겨야 한다는 것에 대한 욕심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이것이 충동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 -_-ㅋ)


약간 YOLO 비슷한 성향일 수도 있겠는데 무언갈 아끼고 킵 해두는게 더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자주 찾아 온다.

갑자기 이유없이 공황장애가 올 때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해 진다. 

다시 정신과를 다닐 생각이다. 

이렇게 불안하게 고생할 바에 약을 처방 받아 이 순간이라도 나의 삶의 질을 높이는게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가시지 않는 몸의 후유증들이 짜증나게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전이로 인해 6개월에서 다시 2개월 주기로 줄어든 추적검사의 기간이 제일 힘들다. 

MRI와 CT를 찍고 검사결과를 들으러 갈 때까지의 그 1주일은 정말...... 정말 정신적으로 힘들다....

그 외 시기엔 잊고 있다가도 이 기간은 정말 사람을 괴롭게 한다. 

아마도 폐에 알 수 없는 종양으로 추정되는 알갱이들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은 채 살아 있기 때문에 오는 공포 때문인 것 같다. 


5년을 바라보며 완치의 목적을 가지고 검사를 하는게 아니라 (물론 비인두 쪽은 그러하지만),

폐에 붙어 있는 이 놈들이 혹시라도 없어지진 않았을까, 깨어나진 않았을까 하는 그 생각이 참 괴롭다. 


마지막으로 죽음에 관해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곧 죽을 거야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죽음 자체에 대한 생각을 옛날 보다 더 많이 하게 된다. 

일반인이라면 죽음에 관해 생각할 나이는 아니다. 

노년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 순간은 얼마나 외로울까, 나이가 들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몸이 더 안 좋아지면 어떻게 될까...

특히 노년의 극심한 몸 상태는 이미 치료 때문에 경험을 해 본 것이라 더 두렵기도 하다. 


죽음에 관해서는 정말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좋은 생각을 아프기 전 보다는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에 소중한 것들이 참 많아졌고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되었다. 


근데 그만큼 마음이 잘 동요되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했다. 

신문에서 생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많다. 

이것저것 세상 사에서 감동과 슬픔의 감정을 유독 자주 느끼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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