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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길고 전개는 지루하다.
그리고 그런 영화들이 대게 그렇듯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액션은 마지막 10~20분에 펼쳐진다. 누가 아직도 헐리우드 간판을 들고 이런 영화를 만들고 있나 했더니... 엔딩 크레딧에 오래된 기억을 꺠우는 이름이 나왔다.... 제임스 만골드...
감독인 제임스 만골드의 이름은 먼저 부담으로 다가 온다. 내 기억이 맞다면 십 년 전쯤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과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호평으로 세인의 관심을 끈 [Cop Land 캅 랜드] (맞나?)의 감독이 맞을 것이다.
그 때 그 영화도 [투 유마]와 굉장히 비슷했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나지만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지루한 전개의 영화였다.
하지만 웃긴 것은 '잘 만든 영화'라는 것. 그래서 "재미 없다"라고는 말할 수 있어도 "못 만든 영화다"라고 말하긴 커녕 "잘 만든 영화"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아주 가혹한 영화다.
만골드는 그 만의 철학을 뚝심있게 관철 시킨다. 그 철학은 관객가 쉽게 공유될 수 있을 지언정 그가 내러티브를 끌어나가는 연출 방식은 공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하고 정적으로 흘러간다.
[3:10 To Yuma]도 마찬가지다. 그 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관객에게 인정사정 없이 그 만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끌어나가는 그런 영화다.
따라서 이런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지루함에 의해 극장 자리에서 꽈배기를 틀 수 밖에 없다.
광활한 자본 주의 공간에 같인 '좁디 좋은' 사람들
여러 가지 해석들이 존재하지만 우선 자본주의 세상에 대한 냉소가 물씬 느껴지는 작품이다.
영화의 배경은 남북 전쟁 직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미국 땅 안에 그 뿌리를 박기 시작하는 시기다. 가축을 키우는 농경 생활에서 아직 대다수가 몸을 담고 있고 자본과 경제에 눈을 뜬 지주들과 '기업'들은 광활한 미국 땅을 서로 네트워크화 시켜 줄 '철로'를 놓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철로 사업이라는 경제 개발 때문에 자신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될 크리스챤 베일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다.
시대의 마지막 신화적 영웅이자 로맨티스트, 벤 와일더
럿셀 크로우 분의 벤 와일더는 이름 처럼 와일드하게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무법자이자 자본주의 세상에 등을 돌린 무법자다.
그가 깨닫고 있는 것은 틀에 박히고 세뇌 당하고 이용 당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 도래했고 그는 굴복할 수 없다. 그가 성경에 꿰뚫고 있으면서도 식 전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에게 성경이란 자본과 경제의 꽉막힌 틀에 박혀 자신의 삶을 위로하는 것도 아닌, 하나님과 예수라는 혹은 신이라는 이름 하에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는 그런 도구가 아닌 인생의 지침서다.
그리고 그가 던진 "녹색 눈빛의 여인"의 문학적/미학적 중얼거림은 바로 그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마지막 신화적 '영웅'이자 질풍노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것을 확인 시켜 준다. 그는 참 모습의 '인간'과 '자유'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다.
이 시대 마지막 양심이자 권력에 희롱당하는 소수자, 에반스
크리스챤 베일 분의 에반스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이다.그는 영화에서 깔아놓은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덫에 걸린 불쌍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제도화된 결혼, 가족, 자본, 경제... 이 모든 것이 근대 자본 주의 사회가 인간을 권력의 틀 안에서 쉽게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덫이고 에반스는 이 덫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쌍한 우리의 모습이다.
개인 사업이지만 따지고 보면 국책 사업이나 다름없는 철로 사업에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되고 '자본'이라는 것에서 일어나는 권력의 힘에 한 없이 무력한 사회인이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그의 아들에게서 무시 당하고 그의 부인 또한 그를 애정어린 눈빛으로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다. 그가 이러한 상화에 처해 있는 것은 전쟁으로 다리를 잃은 그의 신체에서 보여진다. 그것은 일종의 정치적/사회적 '거세'의 상징으로서 근대화의 법칙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벤 와일더가 말을 타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정 반대다.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버린 그의 움직임은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나라를 위해 싸웠을 지언정 나라가 그에게 해준 건 없다 그에게 남은 건 총 한자루 뿐이고 그에게 있어 총이란 한 남자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사회를 견뎌내야 하는 한 인간으로서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그런 근대 사회적 테두리 안에 갇힌 에반스를 벤 와일더는 '또 하나의 답답한 인간'으로서 바라본다. 하지만 유마 행 기차를 향해 가며 이들 사이에 우정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믿음이 생겨난다. 바로 신념이라는 믿음이 서로 통한 것이다.
그때문에 와일더는 점점 에반스에게 같은 인간애를 느끼고 에반스 또한 같은 심정으로 마지막 와일더에게 '나를 알리고 싶어서...'라는 고백을 하고 자신의 신념을 관찰 시킴으로서 아들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며 마지막을 장식한다.
때묻지 않은 순수의 상징, 에반스의 아들
마지막으로 에반스와 와일더를 연결 시켜 주는 고리는 바로 아들이다.
그 아들은 아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청년으로 그 자유에 대한 열망과 정의감이 와일더로 하여금 자신을 보게 만든다. 즉, 같은 부류의 인간임을 알고 와일더가 영화에서 나오는 캐릭터 중 유일하게 '겁'을 내는 이가 바로 에반스의 아들인 것이다. (마지막 아들이 와일더에게 총을 겨눌 때 벌벌 떠는 그의 모습에서 이는 잘 나타난다.)
자본주의 코드로 뚝심있게 풀어낸 제임스 만골드
서부영화라는 장르의 틀을 깼다면 깬것이 [투 유마]의 큰 장점이다. 근대 자본 주의의 출발이라는 맥락을 받아들임으로서 진부한 형식에 둘러 쌓인 서부극의 장르를 [용서할 수 없는 자]와는 또 다르게 풀이해냈다.
이 자본 주의 코드 때문에 노예로서의 흑인이 등장하지 않고 대신 자본주의의 개미 같은 존재로서 동양인, 중국인 노동자들이 등장하고 인디언과의 혈투는 절제 시킨 것이 바로 이 이유 떄문일 것이다.
어찟하였건 영화는 지루하였으나 이처럼 자신만의 철학을 끈질기게 끝까지 밀어 부친 감독 제임스 만골드에게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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