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해가 지며 가로등과 건물 조명이 하나씩 켜질 때 즘이면 남을 사람 남고 떠날 사람은 다 떠나는 시점이다. 보통 낯 시간대 당일치기로 여행하는 곳이라 텅텅 빈 느낌이 난다. 때문에 홍콩 란타우섬 타이오 마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거의 낯의 풍경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궁금했던 저녁과 밤 풍경의 기록도 남겨본다.
해질녘 타이오마을 앞바다
시장 대부분 가게가 영업을 마쳤다. 남아 있는 곳도 물건을 팔기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분위기다.
다른 가게보다 늘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저녁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던 수산물 가게 (왼쪽)
금요일 저녁 8시 풍경. 대부분 가게는 문을 닫았고 가게 앞 테이블과 의자만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직 불이 켜진 가게도 있었지만 판매보다는 여름밤공기를 맞으며 쉬고 있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HSBC 현금 인출기. 현지 주민은 물론 관광객을 위한 곳. 24시간 운영이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지만 주변은 이미 조용하다.
🔎 위치 - HSBC Express Banking : Block D, G/F, 25 Tai O Market St, Tai O
숙소로 가는 길목에 있어 자주 마주쳤던 곳. 낮에도 밤에도 사장님은 늘 문 앞에서 사람을 살피고 있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후 검색해 보니 짠내투어 방송에 나왔던 식당이다. 구글맵과 오픈라이스에 하도 안 좋은 리뷰가 너무 많아서 가진 않았다.
펜스에 쳐져 있어 볼 때마다 뭔가 했는데 타이오 마켓 (大澳街市)이라 써져 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닌데 뭔가 현지인을 위한 시장 같은 분위기다.
🔎 - 그럼 타이오 마켓 스트리트와는 무슨 차이? 타이오 마켓 (Tai O Market)은 홍콩 식품환경위생처(FEHD)가 운영하는 공영 실내 시장. 마켓 스트리트 Market Street는 노점과 임시매대 중심의 야외거리형 상권으로 기념품, 즉석 간식 등 관광객 대상 품목이 주를 이룬다 - FEHD Hong Kong Market List / islet Forum
우연히 들어간 식당인데 늦은 시간까지 먹을 수 있게 배려해 준 고마웠던 집, Zhen Zhen Restaurant (진진찬청). 하이난 식 치킨 계란 볶음밥과 초이삼(채심)을 사이드로 먹었다. 아주 맛있었다.
딱히 놀라운 건 아니지만 타이오처럼 작은 마을에도 무인 인형 뽑기 건물이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한국/일본과 마찬가지로 24시간 뽑기 공간은 어디에나 있나 보다.
벤치의 길냥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다 빠져나간 게 심심했는지 내 옆에 다가와 하도 앵겨서 1분 정도 같이 놀아주었다. 타이오마을에서는 큰 개, 고양이가 모두 주인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서울도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문득 그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
에어컨 실외기와 투박한 성당 유리창의 조합. 십자가 위에 실외기가 박혀 있는 모습이 흥미롭다. 창문은 성당에서 흔히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나 란셋창은 아니지만 저렴한 재료로 대체되어 투박한 모습이다. 재료나 완성도는 다르지만 성당 창문의 기본 틀과 비율은 유지한다. 종교적 느낌 또한 시골 동네 풍경 속 패턴처럼 녹아 있다.
성당이 운영하는 초등학교 건물 내부. 간단히 천으로 덮은 제단, 플라스틱 의자, 수납 박스들. 모든 것이 기능 중심으로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보통 성당 예배 공간은 뭔가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곳은 누군가 정리하다 말고 잠시 자리를 비운 것 같은 친근함이 있다.
그 공간의 외벽에는 철망 너머로 내부가 드러나고 있다. 건물 아래쪽 외벽엔 아이들과 십자가, 책이 그려진 벽화가 이어진다. 장식이라기보다 이 건물이 어떤 장소인지를 자연스럽게 말해주는 표식 같다.
철제 게이트는 홍콩 주거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인데 디자인 자체가 낡아서 그런지 레트로한 느낌이 좋았다.
타이핑 거리 (Tai Ping Street) 쪽 수상가옥 풍경. 정박된 보트들이 있는 걸 보니 여기까지 물이 들어와 배로 왕래가 가능한가 보다.
셕차이포 거리 (Shek Tsai Po Street) 주거지역 풍경. (물론 외적 아름다움 보다는 현실적인 생활방식 관점에서의 유사성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지만) 타이오마을을 흔히들 '홍콩의 베니스'라고 부르는데 딱히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바로 흔히 접할 수 있는 낯선 느낌의 깡통 같은 컨테이너 형태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옛 대형화제의 피해 영향도 있었을까 생각 해 보았다.
🔎 - 2000년 대형화제로 인해 약 100여개의 수상가옥이 손실되었다
푸른 조도 아래 보이는 깡통 건물 그리고 전선과 안테나. 신기한 느낌이다. 만약 팀 버튼이 동양인 감독이었다면 이런 세트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깡통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심지어 마을 뒤쪽 지역으로 가면 고층 아파트도 있다 :)).
타이오 마을 주거지의 특징 중 하나. 앞마당/코트야드 공간을 가진 집들이 그 공간을 자율적으로 꾸며놓았다. 어떤 집은 휴식을 위한 야외 거실이나 미니 카페처럼, 어떤 곳은 공방 혹은 창고처럼, 또 어떤 집은 정체불명의 '생활 복합 공간'으로. 가구 배치와 물건 종류, 구성이 집집마다 다르고 독특하여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의 호코라처럼 이곳에서도 중소형 규모의 신단 같은 구조물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관광객이 떠나고 수호신들이 텅 빈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 분위기다.
작은 신당들과 이런 깃발이 있기에 홍콩 시골마을의 정취를 더 진하게 느끼게 해 준다. 드래곤보트 이벤트가 열리면 이런 모양의 깃발 수십수백 기가 마을 전체를 수놓는다고 한다. 전통적인 기운을 풍기며 옛 홍콩 무술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빛을 비춰주는 아기자기한 등룽들, 역시 소박한 느낌의 시골길 정취다.
마을을 걷다 보면 DIY 스럽게 조합된 다양한 구조물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고정하고 연결하는 방식은 꽤나 원초적인데 주위에서 손에 잡히는 재료들로 당장이라도 조립해 만든 듯한 투박한 모습이 오히려 정겹다. 줄로 묶고, 매듭을 짓고, 엮어 이어온 옛 어촌의 방식이 전선과 철제 봉, 장식 조명과 같은 현대의 재료들과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지금 이 마을의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길어져서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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