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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뉴 어버니즘 (New Urbanism)의 선두주자이며 작가, 사회 비판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위성도시 팽창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보여준다.


Presentation Style

다른 TED 발표자들처럼 프레젠테이션 마스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라면 비판가의 명성에 걸맞게 sarcasm에 의한 독설 섞인 유머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설이 유교 문화가 뿌리 박힌 국내 사정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무브일지도 모른다. (독설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진중권씨가 그의 논지를 떠나 태도에 대해 욕먹는 것처럼)
아마도 독설 섞인 유머 이용에서 중요한 점은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서브젝트여야 하며 그 타당성이 직관적으로 와 닿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쿤스틀러의 독설은 상당히 설득적이다 - 건축가 아이엠 페이의 건축물을 신랄하게 비판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항상 중요한 것이지만 프레젠테이션에서의 적절한 이미지 사용의 예를 보여 준다.
퍼블릭 스페이스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들며 설명하는 이미지도 건축 문외한들에게도 쉽게 통할 수 있었다. 또한 스타워즈나 한니발 렉터 등 대중과 친숙한 서브젝트를 이용하며 유머를 섞는 것은 쉬운 연상작용을 통해 그의 논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쿤스틀러 특유의 강한 어조는 정치적 주제와 맞물려 미국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라던지 자긍심에 설득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가 미국 위성도시의 문제점을 드는 많은 예들 중,
 
"과연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먼 나라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지켜나갈만한 것인가!"
의 대목은 잦은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애국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 정서에 효과적으로 부합하고 있지 않나 한다. (물론 더 나아가서는 문명이라는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Living Locally

미국 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 벌어지는 urban sprawl현상의 문제점은 모빌리티, 즉 자동차와 같은 탈 것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에너지 자원의 소비를 의미하며 지국의 에너지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는 하이드로젼 라이프에 대해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메트로폴리스 이후 메갈로폴리스의 개념은 자동차보다 훨씬 더한 에너지 소비를 요하는 고속 기차나 비행기의 수단을 요하고 있다. 따라서 군스틀러는 여기서 근 미래의 쟁점, 근 미래에 다가올 우리의 civic life는 "Living Locally"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리빙 로컬이 의미하는 것은 사노 히로시의 '작은 마을'이나  파올로 솔레리의 '버티컬' 컨셉트와 같은 맥락에 있다. (위성도시 식의 도시의 horizontal한 팽창은 도시는 물론 더나아가 문명과 지구라는 별의 파멸만 가지고 올 뿐이다. 따라서 파올로 솔레리는 수평적인 팽창을 최소화하며 수직적인 솟아올름으로서의 새로운 도시 생활을 권하고 있다. ) 군스틀러는 리빙 로컬을 주장하며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말한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Do not refere to yourselves as Consumers!

자신을 소비자로 생각치 말라고 군스틀러는 말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도시인이다라는 것.
그에 따르면 소비주의자는 이웃에 대한그리고 도시인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정말 가꾸고 싶고 지킬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생각의 전환은 지금 바로 이 순간 필요하다.
근 미래에 소비주의자는 지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사이즈나 문화면에서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국 간의 위성도시의 문제점이 똑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위성 도시라는 것 자체가 건축적인 잣대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그 유사성과 핵심적인 문제점은 일맥상통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등 큰 돈벌이의 직접적 수단이 되는 이 놈의 심각한 땅문제를 앓고 있는 국내에서 한번 쯤 생각해볼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레젠테이션이 아닌지...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멋들어진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울까지 지옥같은 출퇴근 생활을 하며 소비되는 에너지원 및 개인의 체력과 심리적 스트레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공동체적 (가족, 소사회 등) 문화의 붕괴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망할 놈의 신도시 지어봤자 결국 서울로 몰려드는 트래픽은 늘어날 뿐, 그 공간이 과연 '도시'라 부를 만한 것인가?

이 밖에 쿤스틀러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서버비아 비평은 꼭 읽어봄직한다. 강추!
Clusterfuck Nations
 
http://www.kunstler.com/mags_diary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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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9월자
              Krautrock과 Kraftwerk: 독일 김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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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의 음악 씬은 히피의 문화 혁명을 겪고 프로그레시브 락과 아트 등이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죠지 해리슨에 의한 후기 비틀즈 사운드(‘I am a Warlus’ ),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 등이 선봉장을 맡았었다. 이들의 Hedonistic 헤도니스틱 (쾌락주의적) 사운드는 아직도 기존 음악이 가지고 있던 (히피의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 LSD 영향과 정치적 성향을 극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혹은 논외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사운드는 어느 정도 엠비언스와 기계음의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편에서는 Stockhauzen 쉬톡하우젠과 같은 전위 음악가들이 에드가 바레즈의 바톤을 이어 받아 좀더 깊이 있고 자유로운, 하지만 아직 엘리트적인 틀에 갇혀 있는 전자 음악 사운드의 실험을 추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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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맥락을 2 세계 전쟁의 범인이라는 엄청난 죄의식은 자존심과 민족성이 강한 독일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처였다. 또한 전쟁 이후로 세계 1 파워가 미국의 문화적/예술적 식민주의 정책 또한 독일의 아티스트들에게는 뼈저린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60년대가 막을 내리고 있을 무렵 세계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는 독일에서 크라우트락 Krautrock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Faust 파우스트, CAN , Neu! 노이!, Kluster 클러스터, Popul Vuh 포폴 , Tangerine Dream 탠져린 드림,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 등에 의해 주도 흐름은 60,70 Rock 밴드의 형태 (ex. 기타, 드럼, 베이스) 취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에드가 바레즈에서 쉬톡하우젠으로 이어지는 독일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의 실험 정신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열어놓은 -전자음악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을 확장 시켰다. 이들은 주류 시대 정치적/문화적 사상에 반항적이었던 락과는 별개로 테크놀로지에 의해 정의 되는 세상을 직시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해 나갔다. 따라서 이들의 사운드는 미국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맥락에서는 정치적이지만, 음악적으로 좀더 학구적/미학적 이였고 서민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엠비언스가 가득한 '공장 심포니' 가까웠다. (선형적이고 직설적인 기존 락과는 달리 자유롭고 해체주의를 지향하는 Freeform Rock 프리폼 또는 사운드 꼴라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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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의 가장 특징은 전자 음악 평론가 Peter Shapiro <Modulations>에서 묘사하고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나의 손가락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있는지를당신은 나를 보고 감탄 것이다 대해 빠져 있었다면, 크라우트락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내가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보다는 그들을 치유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크라우트락이 200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지를 찾을 있다. 째는 앞으로 (70년대를 기준으로) 다가올 암울하고도 희망적인 모순적 테크놀로지 중심 사회를 인지한 그들만의 외로운 외침이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넘어 랩탑, 핸드폰, Mp3, PDA, PMP 각종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에 의해 네트워크화 지금 디지털 사회에 의해 우리 인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컴퓨터 없이 업무 생활이건 불가능 사회가 왔다.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보여주듯 네트워크가 이상을 일으키면 국가뿐 아니라 세계가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는 사회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까지 변할 것이라 그들 또한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사운드 안에는 충분히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번째 성격으로 말할 있는, 그들이 추구했던 기계적 사운드에 담긴 깊은 엠비언스다. 바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담겨 있던 너무나 완벽한 아트 뮤직의 한계를 소리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선지에서 벗어난 무한한 우주의 세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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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만도 하루에 억만 건이 넘을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에 왔다 갔다 정보들의 흐름에 대해 상상해 있는가? 만년 전과 다를 없이 인간은 신체를 움직여 일하고 있지만 그런 동시에 수많은 정보들의 움직임과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보들의 움직임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받아 들일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건축의 관점에서 월드컵에 의한 시청 앞의 광장화 라던지 운하 건설 계획 같은 당장 앞에 보이는 것만 갈아 치우는 개발주의적 마인드가 낡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 말로 누구를 선동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밝혀두고 싶다) 어차피 땅을 파해 칠수록 지구의 수명을 단축할 뿐이고 좁게는 그루의 나무가 살아 숨쉬는 맑은 공기의 공간을 없어지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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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기회와 성공을 향한 말초적인 본능과 이에 의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소중한 꿈까지 포기하며 매달릴 밖에 없는 사회 그리고 그것이 헛된 병아리의 날갯짓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할 밖에 없는 사회, 바로 이것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현대 사회이며 예술품이다. 그리고 말초적인 사회 안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가벼운 메이져 영화와 대중 음악 속에서 우리는 순간마다 위안을 얻을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음악 가수들의 생명이 짧은 것도 이유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가지지 못한 다수들에게 작위적인 꿈과 희망과 안심을 선사하려면 만큼 분위기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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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이 현대의 우리에게 선물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 만이 빠져들 있는 깊은 공간 ,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떠올려 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칸트.) 처음에 언급 했듯 정형화된 오선지에서 벗어난 자유롭고도 무한한 세계로의 창문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음악에서의 엠비언스다. 엠비언스란 말이 난해하게 들릴 뿐이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이유와 해결을 찾을 있게 도와주는 치유의 음악이고 소리 조합이다. 영화 <라따뚜이> <초밥왕> 같은 만화에서 여러 음식들의 조합을 통해 무한한 우주와 형이상학적인 세상에 눈을 뜨는 것처럼 엠비언스는 소리의 새로운 공간으로 듣는 이를 유도한다- 마치 소시지 맛만 보다 사우어크라우트 (독일 김치) 맥주를 곁들이며 환상적인 조화에 의한 새로운 맛의 공간에 눈을 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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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은 70년대 뉴웨이브와 펑크의 등장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흔적은 훗날 Tortoise Coil 등으로 대변되는 인더스트리얼과 포스트 펑크 뿐만 아니라 뉴에이지, 포스트락 음악 영역 전반을 통해 발견된다. 물론 대부분 크라우트락 밴드의 사운드는 대중 손쉽게 접근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가득한 소음과 난해함으로 여겨질 있었던 사운드가 대중들로 가까이 다가갈 있도록 것은 바로 크라프트베르크가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끌어 안으면서부터 였다. (물론 엄격한 장르적 의미에서는 시점 이후의 크라프트베르크 사운드를 크라우트락이라 부를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미학적 사상과 가치 추구는 크라우트락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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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의 수용은 1972 <아우토반> 세계적 성공으로 들을 훗날 다가올 전자 댄스 음악 문화의 아버지로 만들게 된다. 이후 철저한 과학문화의 수용과 기계 안에서 존재하는 영혼의 믿음 그리고 미래 기계문명 사회의 공허함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었다. 자동차와 라디오의 찬양을 거쳐 인터넷이 나오기도 이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미래 인간의 허무함과 절망감등을 노래한 것이 좋은 예다. 당시 쉽게 없었던 최고의 테크놀로지, 기계음을 통한 미래적 사운드와 그들을 대신하는 로보트 인형의 등장, 미니멀리즘적 전개로 인한 간결함과 몽환적 분위기 등은 그들의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깊은 철학을 배경으로 그들은 미래에 어울리는 음악을 구현하고자 것이다. 그들의 앨범 하나하나는 모두 완벽하리만큼 철저한 컨셉트 앨범이었으며 여기서 기계의 영혼화, 인간의 기계 제어라는 미래 사회의 예시와 지나간 역사의 향수라는 미래에 다가올 테크놀로지 사회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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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이미 70년대 데이빗 보위 등의 당대 내노라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80년대 미국과 영국의 주류 음악인 일렉트로 (Electro) 신스 (Synth Pop)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미래주의적인 기계문명의 미학은 80,90년대를 뒤흔들 디트로이트 테크노(Detroit Techno)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지향적 현대 문명의 사운드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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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거의 모욕에도 가까운 크라우트락의 명명은 역시나 시절 악명 높은 영국의 음악 평론가가 지어준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Krautrock으로 알려지는 것에 꽤나 불쾌해 한다고 한다. (타국인이 '김치음악이라 명명하는 행위 속에 내포될 있는 은근한 조롱의 맥락). 어찌하였건 메탈이나 기존 주류 음악에만 빠져있던 리스너들에게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사할 음악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뉴에이지나 엠비언트,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대한 깊은 포용도 가능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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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Krautrock Music
1. <Neu!2> by Neu!
2. <The Faust Tapes> by Faust
3. <Tago Mago> by CAN
4. <Musik Von Harmonia> by Harmonia

5. <Yeti> by Amon Düül II

Recommended Kraftwerk Music
1.<Autobahn>
2.<Trans-Europe Express>
3.<Computer World>
4.<Radioactivity>

5.<The Man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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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간만에 파티에 다녀왔다. (저 파티란 단어 쓰기 너무너무 싫고 역겹지만 암튼...)
이제 몸도 부치고 이벤트성 분위기에 찌들은 씬도 싫고 거의 굿바이 상태였지만  John Digweed 가 온다는 얘길 듣고 뿌리칠 수 없었다.
결론은 이젠 정말 이딴거 가기 싫다....이다.

파트너 몫까지 거금 10만원을 내고 12시즘 워커힐로 들어감...

지난번 M-Flo 사태로 시끄럽던 02pro주최라 조금 망설여지긴 했으나..디그위드 한 사람때문에 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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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딩이여...
우선 놀란건 언제부터인지는 몰겠으나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어 있었다.
화장실에선 대규모 고딩들이 화장하고 옷갈아입고 있고...
정말 황당하게도 아이디 검사라니!!!!

"신분증 있으신가요?"
"아녀... 없는데요..."
"요즘 고등학생들이 많아서요..."
OMG!

ok.. 이런 이벤트에 고등학생 몰려다니는 거 솔직히 상관안한다.
오히려 그들도 '권리'가 있을 망정 오히려 그들을 배척하는 밤문화가 더 이상한 것일 수도 있다.
뭐가 그렇게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으로 가득찼기에...
술,담배 그리고 야한 옷차림의 여인들?
뭐 그 3가지 요소로 이 이야기는 걍 넘어가고

이 현상이 시사하는 문제점은 바로 ted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teddy boy: 분별력 없이 그저 유행에 따라다니는 이들을 일컫는다)
그 그지같은 미디어가 씬을 붕괴 시키는 현실을 다시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그나마 그 옛날 영국처럼 엑스타시가 맘대로 돌아다니지 않아 망정이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고딩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그 ted들이 늘어나며 씬은 점점 더 막장에 치달을테고 상업적으로 변할 것이다. 이건 문화적 경험주의에 따른 진리다.

밖에 좀 나갔다 올 수 없나요?
하두 오랜만이라 이런 문화는 또 언제 생겼는지 몰겠따.
왜 팔찌를 안주나 했다...
어두컴컴 공기도 나쁜 곳에 질식사 하기 전에 바깥 바람 좀 쐬고 오려는데...팔찌가 없으니... 황당..

"여기 나갔다 와도 돼요?"
"1시 이후부터 됩니다"

이건 또 무슨 논리인지... 명 당 5만원 내고 지하실에 좋건 싫건 쳐박혀 있으라는 얘긴지...
그 소리 듣고 나니 대충 디그위드는 1시쯤 나오겠거니 생각했다...
과연 프로덕션 내의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아니면 무언갈 노리는건지..
혹시라도 국내 DJ 활성화를 위한 대처 방안이라면 이건 너무 가혹한 건 아닌지..

Staff 영역이면 잘 보이는 싸인이라도... 디자인의 기본 아닌감?
암튼 거의 예상한 썰렁 분위기라 별 개의치 않고 술이나 사러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앞 사람들 따라 무작정 오른쪽으로 꺽게 됬다.
들려오는 목소리,

"어이, 여기 들어오지 마요" "저리 가요"
거기다가 팔짱끼고 있다가 한심 하다는 듯 팔을 바깥 쪽으로 휘져으며 나가라는 싸인을 줌...

황당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스태프 영역인듯...
우선은 개인적으로 누가 그런 식으로 말 표현을 하고 손짓을 해대면 기분이 상할 것은 누구나 다 인정할 듯. 또한 고귀하신 스태프의 영역에 들어온 나같은 '민간인'의 잘못인 것은 알겠으나..
그렇게 비싼 장비있고 컨트롤할 구역이면 당연히 사람들 햇갈리지 않을 사인 하나는 떡 하니 붙여놓든 매달아 놓든 해야 할 듯...
공간적으로 볼 때 특별 영역의 공간이 따로 만들어지지 않고 자신들이 영상 잘 보일만한 곳에 꾸린 '임시적' 공간에서는 당연히 사용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은 UI 디자이너나 정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디자인 센스가 있는 이라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이 기기의 안전은 물론이고 그들이 원하는 안정되고 원활한 작업의 최적화가 아닐지...
플러스, 뮤지컬이나 영화처럼 지정된 좌석이 아닌 그런 스탠딩 형식의 복잡한 공간에서는 그런 공간의 차별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은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영상.... 이젠 친숙한 영상
이 이야기는 길게 하고 싶지 않으나 ...
제발 쓰던 영상 계속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싱크 제대로 안되는 건 상관 안하지만 리사이클되는 영상보면 정말....ㅜㅜ.

외국인들 제발... 우리나라 6.25 당시 대하듯 하지 말래?
옛날부터 국내에서 클러빙 갈 때 제일 짜증 났던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외국인!'
그 중에서도 버릇없고 도덕성 없는 짜증나는 '외국인!'
그런 외국인들이 꼭 있다!
지네 나라 지네 땅에서는 예의 지키고 질서 지키고 할 지 모르겠으나...
문화적 상대주의에 찌들은 어떤 외국인들은 거지 나라 대하듯 하는게 뻔히 보인다.
그나마 요번에 갔을 때는 조금 줄어든 것 같아 다행이었지만...
못사는 나라 인간들 거지 보듯 하지 말았으면...
그리고 제발 술 살때 줄 좀 서라 이 거지 자식들아!

홍콩에 있던 시절 보았을 때도 우리나라 영어강사들처럼 영어 가르치며 떠도는 롱텀 배낭족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처럼 돈은 많이 못 벌었을 지언정 적어도 그때 그들에게서는 보헤미안의 냄세와 분위기가 있었다. 요즘 여기서 보는 그들에게서는 별로 그런 것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와있는 외국인들이 거의 미국인이여서 그럴까?
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땅에서 한국여자 걸레로 보고 한국 남자 병신으로 생각하는 그 마인드는 과연 우리가 만들어 준 것인지...그들이 만들어 낸 것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표현이 좀 과하긴 하지만)
문화적으로는 아직 척박해도 이제 니들로부터  "쬬꼬래또 기브미"는 필요 없거든?
(본의 아니게 인종차별 주의자처럼 되버린 기분이라 기분 더럽다)


오...초절정 사운드 시스템...
디그위드가 드뎌 등장했다.
근디 뭐가 이상하다.
몇 분간 베이스 비트만 길게 나오고 DJ 덱에서 뭔가 분주히 말이 오고 갔다.
급기야 디그위드 뒤에서는 긴급회의 비스무리한게 열린 것 같기도 하고..
디그위드는 기기의 놉을 이리저리 돌려대고 있고...
분명 척박한 사운드 시스템 때문이리라...
오...디그위드여 ... 우린 좋은 사운드 시스템 따위는 기대하지도 않았노라...
사운드 신경 쓰지 말고 트랙을 떨어뜨려 달라면 우리가 Dj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일까?
그렇게 디그위드의 등장부터 단추는 잘못 맞추어 지기 시작했다.
 
광고 할 때 국내 최고의 사운드 시스템을 자랑한다류의 광고는 ... 아마 없었겠지?

디그위드...당신은 수줍은 건가요 화가난건가요? 원래 그런가요?
원래 그리 무뚝뚝한 사람인지..
아니면 뭐가 그리 꿍해 있는건지...
목뼈가 뿌러져 고개 못드는 사람처럼 등장해서 사라질 때까지 무대 한번 바라보지 않은 그...
끝에 박수치는 것도 내 눈엔 정말 성의 없어 보였음...
근디 국내 오는 유명 DJ들 상당수로 부터 그런 모습을 봐서 많이 상처받았었음.
옛날부터 꼭꼭 들어오던 DJ라 개인적인 바램이 너무 컸는진 몰라도 디그위드가 선사(?)한 음악들도 감흥이 한층 떨어졌었음...
물론 짧은 스피닝 시간은 이미 익숙한지라...패스...


기타
환경 정말 열악하다.
그건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안다.
대문에 걸쳐진 Godskitchen의 푯말이 왜 그렇게 애처롭게 보였는지...
문화가 상업화 되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생리이긴 하다..
하지만 레이브가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하던 90년대에도,
그 장본인이었던 토니 콜츤 헤이터는 레이브를 돈지랄 파티로 만들어 버렸다는 악명에도 불구하고 ,
그가 여는 이벤트에서 많은 이들이 소중한 경험을 했고,
많은 것을 얻어갔다...
씬의 순수함을 지켜달라고 말하는 건 지금 시점에서는 말도 안돼는 소리다...
하지만 대안은 정말 없는 걸까?

간만에 기대하고 간 이벤트라... 상처를 많이 받았나보다...
텅빈 초기 스테이지와 왠지 늘어간 것처럼
결국 이눔의 땅에서는 나이먹어가면 낄 자린 없어지는 건가?
근데 왜 레이브에서는 애들부터 노인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걸까? 또 다시 푸념만...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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