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angelo Antonioni [Beyond the Clouds (Par Dela Les Nuages)],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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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로 인해 사실 상 원활한 인간의 의사소통 능력을 잃어버린 안토니오니 감독을 위해 빔 벤더스가 조감독을 하겠다고 참여한 과정자체가 감동적인 영화...(당시 안토니오니 감독은 Yes/No 정도의 의사 표현 정도가 가능했다고 한다)

옛날 안토니오니 감독이 끄적여 놓았던 단편 영화 시나리오들을 그 부인이 대신 창고에서 꺼내주어 태어나게 된.. 사실 상 장편으로서는 안토니오니 감독의 유작이 되어버린 영화..
그래서 그런지 왠지 감독의 지난 날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듯한 애절한 마음이 찡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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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ch Sequence

U2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말코비치와 소피 마르소의 비치 시퀀스 중 한 장면인데... 사실 말코비치가 좁은 골목을 통해 소피 마르소를 천천히 뒤쫓아 가는 장면이 더 압권이지만... 유튜브에 없다.ㅜ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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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렌느 쟈코브와 빙상 페레의 씬으로.... 정말 달콤쌉싸름한 마지막 장면 쟈코브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양심 상 스포일러는 올리지 않는 것이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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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6:

                                   Madchester Part2


808 State & A Guy Called 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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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파트1에서는 매드체스터의 시작과 그 중심에 있던 밴드들을 소개했다. 그렇다면 대체 DJ들은 어디 있었는가? 표면 상으로 볼 때 먼데이즈와 로지즈는 인디밴드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여기서 들여다 보고 있는 것은 애시드 '하우스' 붐의 한 사건인 매드체스터다. 역사의 기록이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일 수 밖에 없듯이 정통 인디밴드의 역사를 자랑하는 맨체스터를 향한 미디어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즉 기존의 락 관련 미디어는 흑인 태생의 하우스의 영향을 무시했고 백인으로 구성된 락의 정신을 가진 듯한 인디밴드를 띄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먼데이즈와 로지즈 모두 댄스 문화를 받아들이며 비로소 애시드 문화의 한 일원이 되었다. 먼데이즈의 경우 워낙 복합적인 음악 성향과 리믹스의 활용 그리고 하우스씬에 대한 관여도 면에서 애시드 문화와의 이질성이 발견되지 않지만 로지즈의 경우 'Fool's Gold'를 통해 하우스 음악과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는 있어도 어디까지나 정통 인디락 밴드의 성향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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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애시드 하우스의 사운드를 품은 초기 그룹은 바로 808 State. 퓨전 재즈, 일렉트로, 신스팝을 중심으로 한 808 State 1988 'Pacific State'를 통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그룹의 멤버였던 제랄드 심슨은 '가이 콜드 제랄드'라는 이름을 통해 808 state에서 탈퇴하고 'Voodoo Ray'를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 애시드 하우스 클럽의 앤섬이 될 만큼 Pacific State에 못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제랄드 심슨은 차기 앨범 준비에 있어 레코드 회사의 상업화 아이디어의 신물을 느끼고 언더그라운드로 잠적하고 90년대 중반 철저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한 프로듀서의 모습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드럼 엔 베이스'의 모태가 되는 '정글' 씬을 탄생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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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을 떠나 보낸 808 State는 오히려 상업 레이블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애시드 하우스의 선봉장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들의 성공은 동시대 아티스트들 (칠아웃 장르를 탄생시킨 KLF, 뉴에이지 이상을 담은 The Shamen, 사이키델리아를 통한 하우스의 정치적 좌파 성향을 더한 Primal Scream )이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애시드 하우스가 오늘 날 회고될 때 먼데이즈와 로지즈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이들이야 말로 사운드적 크로스오버와 댄스를 통해 음악과 몸이 하나가 되는 진정한 하우스 문화의 이상을 사운드로 풀어낸 주역들이었다
. (그들에게 있어 하우스 문화의 폭발은 펑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펑크가 자신의 팔의 완력을 최고조화 시켜 기타를 부셔버리는 물리적인 분노의 폭발이었다면 하우스는 몸의 완력을 댄스에 맞추어 완화 시키며 일체화 시키는 트랜스적 경험에 관한 것이었다.)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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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과 마찬가지로 마약에 의한 갱들의 개입과 정부의 불법 클러빙 및 레이브 탄압이 시작되었다. 1989 7월경 16살의 클레어 레이튼이라는 소녀가 엑스타시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런던과 같은 운명의 스텝을 따르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미디어는 야단 법석이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트렌디/애시드 테드로 구성된 어린 청년들을 애시드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드는 역효과를 내버렸다.

그리고 당시 악명 높았던 살포드 폭력단의 개입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서브컬쳐의 죽음의 상징이 되어온 마약, 코케인이 다시 등장했다. (갱들은 엑스터시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주 수입원은 언제나 코케인이였기에) 잦은 갱들 간의 마찰과 살인 사건, 마약의 유통 등은 경찰의 강한 제지를 불러들였고 하시엔다에서는 총기류 검문을 위한 메탈 디텍터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맨체스터는 매드체스터에서 건체스터Gunchester로 불렸고 물론 파티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클러빙/레이브 프로모터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매드체스터의 기간 동안 사랑과 우정, 이상과 희망으로 쌓아 올린 공동체 의식이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하며 파도와 같은 사이코시스와 파라노이아를 불러일으켰다. 91년 즈음 하시엔다가 문을 닫은 것은 물론이고 하시엔다와 어깨를 겨누며 시대를 풍미했던 썬더돔과 컨스퍼러시 클럽들 마저 문을 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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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체스터를 대표하던 먼데이즈와 로지즈 또한 비슷한 운명을 걷는 것 같았다. 로지즈는 스파이크 아일랜드 이후 종적을 감추었고 먼데이즈는 저명 음악지 NME지와의 인터뷰에서 매드체스터의 종결을 알리는 듯한 사건을 터뜨린다. 그들은 그 동안 지켜 왔던 노동계급층의 대변자의 위치를 던져버리고 소비주의적 시선에서 돈에 대한 찬양, 게이에 대한 혐오감, 여성 비하 발언 등을 늘어뜨려 놓았다. 물론 이것은 미디어와 대중에게는 용서될 수 없는 비윤리적 발언이었고 즉각 모든 이들이 먼데이즈의 몰락을 예감하게 되었다.

또한 밴드 리더 션 라이더의 헤로인 중독 이후 빚어진 차질과 이로 인해 연기된 뉴오더의 차기 앨범 등의 문제로 인해 팩토리 레이블이 부도가 나는 참사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90년도 말에 출시 된 먼데이즈의 <Pills 'n' Thrills and Bellyaches> 앨범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떠나 매드체스터 시대를 총망라한 마지막 위대한 앨범으로 기록된다.)  


Epi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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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매드체스터 향연의 빛이 서서히 꺼졌을 때 맨체스터의 클럽들은 다른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까다로운 도어 폴리시를 완화하는 곳도 있었고 도시의 외각지역에서 이벤트를 여는 클럽도 생겨났다. (갱들과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대표적인 예가 게리 매클라란의 딜라이트 클럽으로 이곳에서 알렉산더 코이라는 새로운 전설의 DJ 클러버들을 광분의 도가니로 이끌었다. 매드체스터의 마지막 자락에 혜성처럼 나타난, 믹스매그 매거진이 신의 아들이라고 칭송한 그의 또 다른 이름은 Sasha 사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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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주목할 점은 갱들과 경찰의 탄압을 피해 사람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게이 클럽이었다는 것이다. 억압받는 사회적 소수의 하나인 게이 커뮤니티는 그 특성 상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구축하고 있었고 이는 디스코와 마찬가지로 애시드 하우스가 그 숨결을 다시 내 쉴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마련했다. 이로서 백인 남성 성향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우스 클럽에서 디스코 댄스에 맞추어 옷을 벗고 춤을 추는 근육질의 남성들, 레즈비언, 드래그퀸들이 씬의 모습을 채워가고 있었다. 물론 도어폴리시가 강한 곳이 태반이었으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갈 시에는 바운서 앞에서동성'의 친구에게 프렌치 키스 등을 감행하며 자신이 '스트레이트'가 아니란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는 비화도 있다. 이 움직임에 하시엔다 클럽도 맨체스터의 새로운 게이 클럽으로 변모했다. 맨체스터가 매드체스터, 건체스터에 이어 '게이체스터 Gaychester'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매드체스터의 한파로 인한 나이트 라이프의 때 아닌 붐은 곧 도시 수입의 기특한 효자 노릇을 했다. 따라서 광기의 분위기가 잠잠해지고 길들어졌을 때 즈음 혹독했던 클럽 라이센스 규제들은 완화되었다. 종전에 비해 바와 클럽은 두 배로 늘어났고 24시간 쉬지 않는 문화와 클러빙 레져의 메카로 맨체스터는 거듭났다. 하지만 갱들 간 마찰, 마약 뒷거래와 같은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특성의 문화가 이제는 도시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어쩔 수 없는 딜레마를 남겼다. 어찌하였건 96년 즈음되어 애시드 하우스는 이제 '올드 스쿨' 사운드가 되어 정글, 테크노, 개러지와 같이 세분화 된 다양한 장르에 문화의 중심 자리를 내 주게 되었다.  

 


 

Recommanded Acid Tracks (순위 기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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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Give Me Some Love by Love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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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eat Dis by Bomb the 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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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Activ-8 (Come with Me) by Altern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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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Everything Starts with an E by E-Zee Pos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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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What Time is Love? By The K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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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Theme from SExpress by SEx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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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Pacific State by 808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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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Voodoo Ray by A Guy called Ger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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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We Call it Acieed by D M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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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ove Any Mountain by The Sh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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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nica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
엄밀히 따지면 1995년 테크노 등의 전자 댄스 음악의 대중 활성화를 위해 MTV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미디어 용어다.
이 단어는 테크노 뿐만 아니라 정글, 트랜스, 하우스 등 셀수 없이 존재하는 전자 음악 장르들을 그럴싸하게 표현한 것 뿐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니 오죽 세련되었겠는가.. 일-렉-트-로-니-카... 어감도 좋지 아니한가?

어쨋든 단어의 탄생이야 어쨋든...
미국과 영국을 떠나 전 세계 전자 음악 팬들에게 그동안 일렉트로니카 단어는 '희소성'의 프라이드를 안겨 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테크노의 미국 공략 실패는 곧 대중 친화와의 결렬을 뜻했고 이 음악들은 다시 언더그라운드 지하세계로 들어갔다...
따라서 이 일렉트로니카라 불리는 변종의 전자 음악들을 듣는 이들은 나름 '언더지향적'이고 '희소성'의 음악을 독차지한 일종의 프라이드를 얻었다.... 쉬운 말로 ... 나 "음악 좀 들어.."

이런 현상은 비단 일렉 음악 쪽에만 속한 말은 아니지만...

언제 부턴가 부비부비니 뭐니 하면서 사랑과 열정으로 개척해 왔던....그래도 척박했던 한국 클러빙 환경을 한순간에 쑥대밭 개판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일렉트로니카란 용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다.. (쓰는게 뭐 잘못 되었겠냐마는...)
시대정신 따위는 아예 바라지도 않지만 맹목적인 상업효과만 의식한 이 짓거리도 이젠 적응하다 못해 따를때도 되었건만.. 볼때마다 화는 치밀어 오른다..

여기서 저기서 일렉음악이건, 시부야 케이 비스므리한 음악이건, 쌍팔년도 유로 댄스 팝시런 음악이건 뭐건 뭣 좀 들어가면 '무슨 무슨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 떠들어 댄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엄연히 따지면 유치뽕짝 쌍팔년도 식 댄스 음악도 엄격히 일렉트로니카 범주에 들어간다...)

어쨋든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들어 온 이들에게 만족을 안겨준 그 희소성의 가치는 이제 다 한 듯 싶다..
이렇게 해서 일렉트로니카는 그 태생으로 돌아간다...
그 천박하고 저주받은 1995년의 미디어 과대 선전의 의미 속으로 ....

이제부터 일렉트로니카 하면 ARS ELECTRONICA를 떠올리는 것이 심신에 도움이 될 듯...

Bonus:
WOW by Siriu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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