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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ent 이후 클럽컬쳐 매거진 BLING에 연재되는 새로운 음악 컬럼입니다. 잡지와는 한 달 정도의 시차가 있습니다. 혹시 퍼가시게 될 때에는 꼭 출처를 밝혀주시는 센스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ELECTRONICA world: 04 July 2009

Beached! : 한 여름의 사운드트랙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모두들 산으로 바다로 떠나있거나 혹은 아직도 막판 계획에 머리를 싸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여행 속을 시원하게 날려 줄 하우스 및 일렉트로팝 / 인디팝 계열의 사운드트랙 10선을 소개한다. 물론 일렉트로니카 월드 컬럼인만큼 음악들은 불과 몇 개월 안된 따끈따끈 한 놈들이다. 해안도로와 해변의 분위기에 딱 어울릴 사운드 속으로 떠나보자.


 


1.     American Dream (Happy Song) ft. Robyn by Troy This (3:18)

[Indie Pop] 스웨덴의 인디팝/일렉트로팝 스타인 로빈이 피쳐링한 곡으로 깔끔한 업비트의 인디팝 음악으로 설레는 여행길의 초반 부를 장식하기에 딱이다. 데이빗 보위와 티나 터너를 자신의 가장 큰 음악적 영감이라고 말하는 트로이 디스는 미국 출신이지만 세계 최고의 팝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미국을 포함하여) 80년대의 느낌의 전형적인 해피 팝송의 성향을 보여주는 그는 자신의 음악을 모두 무료로 다운로드 제공하고 있기까지 한다.





 2.     Dorchester Hotel by The Sounds (4:08)

[Indie pop / Rock] Seven Days a Week 등으로 인기 몰이를 했던 스웨덴의 댄스락 밴드 더 사운즈의 3번째 앨범인 [Crossing the Rubicon]에 실려 있는 음악으로 지금까지의 제작자들과 결별하고 자신들이 직접 투자하고 제작한 첫 앨범으로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전형적이고 솔직한 댄스락 사운드에 드리미한 기타 리프까지 더한 이 곡은 블론디와 B-52’s의 감성이 가득 담겨 있어 초반 여행길의 흥을 더욱 높여 줄 것이다.



 


3.     Arrows of Eros by The Golden Silvers (3:48)

[Indie Pop/Art Rock] 2008년 글라스튼베리 신인왕을 수상했고 09년 첫 싱글인 True Romance와 함께 화려하게 데뷔한 영국 런던 출신의 밴드다. 키보드와 보컬 담당인 그와일림 골드의 꺼벙한 매력이 돋보이는 골든 실버즈의 에로스의 화살은 그 옛날 맨체스터 밴드인 스미스와 큐어 등의 향수를 진하게 전해준다. 이제 지루한 현실의 감각이 여행길의 중반에 어느 정도 잊혀질 듯 할 때 더욱 휴가의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산뜻한 댄스락 사운드다.



 


4.     Bernadette (Louis La Roche) by Amplid (3:45)

[House/French/Funk] Tracy 레코딩 소속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팀인 Amplid의 곡은 활발하고 동적인 해변가의 분위기를 더할 나위 없이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워낙 많은 리믹스들이 존재하지만 역시 그 중에서도 포스트 프렌치 하우스 움직임을 책임지고 있는 런던보이 루이즈 라 로쉐의 Funky함이 가미된 이 리믹스가 햇살 가득한 해변가에서 듣기에는 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5.
    
Give My Love a Try (Leon Du Star Remix) by Hugo Van Dyck (8:20)



 

[House/French/Funk] 지난번 소개했던 네덜란드의 포스트 프렌치 하우스 레이블인 Us2Music 소속 아티스트인 휴고 반 딕의 트랙으로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해변가의 클럽 사운드에 적합한 트랙이다. (지난 호에 충분한 설명이 들어있음으로 여기까지 ^^)













 

6.     How Do I Let You Know by Coeur de Pirate & Le Matos (5:06)

[House/Pop/Synth] 80년대 레트로 하우스를 책임지고 있는 발레리 레이블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는 Le Matos의 리메이크 트랙으로 09년 초 CBC Radio 차트 1위에 등극하며 모두의 신금을 울렸던 Commes des Enfants의 주인공인 캐나다 여가수 Couer de Pirate가 보컬로 참여했다. 80년대 피비 케이츠 주연의 틴에이지 영화, Private School에서 그녀가 불렀던 음악을 현대적인 감성으로 잘 표현한 곡으로 환희와 절정의 순간에 어울릴만한 킬러 트랙이다.




 



7.
    
What You Need by Priors (6:08)

[House/French/Funk] 프렌치 하우스하면 대중의 기억에 가장 남아 있는 건 아무래도 Lady Modjo가 아닐까? 모죠가 그리운 이들에게 크나큰 선물과 같은 트랙으로 바로 모죠의 얀데스탈과 Raw Man으로도 알려진 로메인 서의 09년 새로운 프로젝트가 바로 이 프라이어즈다. 환희의 클라이맥스에서 서정적인 밤하늘로 이어지는 그 로맨틱한 순간에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바칠만한 트랙.   



 



8.
    
Night Vision (Daft Punk Cover) by The Twelves (4:57)

[House/Funk/Chill Out] 다프트 펑크의 디스커버리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2분도 채 안되는 필러트랙을 가지고 리믹스한 트랙으로 처음과 시작의 엠비언트 사운드는 흡사 트웰브즈가 온 브라질의 시원한 열대아를 떠올리게 하며 세련된 스트링 사운드는 프렌치 하우스가 가진 그 세련됨을 부각시킨다. 아마도 애프터 파티를 향하기 전의 그 허전함과 설레임을 달려줄 수 있는 트랙이 아닐까.



 



9.
    
Over You by I Haunt Wizards (1:11)

[Pop/Freestyle] 영국 브라이튼 출신의 팀으로 80,90년대 레트로 감성이 충만한 이들은 불과 16~17세에 불과한 어린 소년/소녀들이다. 특히 이 트랙의 경우 90년대 프리스타일 음악만이 가진 그 로맨스와 댄서블한 요소가 깜찍할 정도로 잘 담겨 있는 트랙으로 늦은 밤 가벼운 인하우스 파티음악으로 너무나도 잘 어울릴 것이다.



 



 

10.  The Ocean, The Sand, The Lorenzo by The Telephones (7:18)

[House/Chill Out/Electro] 항상 분위기가 여물어져 가면 집단에서 모래 사장으로의 연인들끼리의 집단 탈출이 시작된다. 밤 바다와 모래 사장, 그 들만이 즐길 수 있는 특권의 분위기에 어울릴만한 칠 아웃 트랙으로 트로피칼 사운드가 특징인 노르웨이의 텔레폰즈의 트랙이다.



 



 

11.  The Rich Cry Too by the Fear of Tigers (4:48)

[House/Electro/Synth] 발레리 레이블의 간판 스타 중 한 명인 피어오브타이거즈의 가장 아름다운 트랙 중 하나로 해변의 새벽을 지나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느끼는 그 감동의 순간에 너무나도 어울릴 것 같은 트랙이다. 이 음악의 다른 버전은 트랜스 팀인 4 Strings Turn it Around.






 



    12.
 
Gateaux Blaster (Jesus Juice Edit) by Futurecop! (4:55)



 

[House/Electro/Synth] 이젠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의 트리뷰트가 될 수밖에 트랙으로 87년 발표된 Bad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Man in the Mirror의 보컬이 Futurecop! Gateaux Blaster와 절묘하게 블렌딩 되었다. 여행의 대단원을 마감하며 돌아오는 길의 그 아쉬움과 허탈함을 달래줄 단 하나의 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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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바라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란 [맥락]과 [역사]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현 일렉트로니카 문화를 바라보기 위해 그 관점에서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시차는 한 5년 정도가 있으니 지금와서 조금 안맞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은 등록이 되어있는 글이므로 불펌 바랍니다...

이번은 지난 인트로에 이어 일렉트로니카를 하나의 음악적 사건과 현상으로 바라볼 때 그 컨텍스트를 확인하기 위해 찾아보았던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미술과 음악의 상호적 관계를 인트로 식으로 정리해본 것입니다.


ELECTRONICA의 역사2:

Context ::: Art History & Music



"음악은 그 시대나 세대가 지닌 심리적인 현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음악은 감정표현, 미적 즐거움, 오락, 커뮤니케이션, 상징적 표현, 신체적 반응, 사회적 규범, 사회와 문화의 연속성에 기여 등의 기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도시" 또한 회화의 경우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시대별의 주제를 통해 음악과 마찬가지로 (과학과 달리) 주관적인 평가와 과정을 통해 표출 된다. 하지만 음악과 회화는 그 주관적 특성으로 인해 중요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 받는데, 이는 음악과 회화가 그 시대마다의 사람들의 생활과 조건을 반영해 왔으며 어떻게 사회와 삶에 영향을 미쳐왔는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과 회화는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보여준다는 성격에 있어서 상호적 관계를 가지게 된다. 중세기 기독교적 신앙이 사람들의 세계관을 지배하던 시절 회화와 음악의 주 테마가 대부분 신앙과 전설이었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고대 시대의 벽화에서 볼 수 있던 글들의 주제는 신성한 자연과 신에 관한 것이었다. 고대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아 그 특성을 알기에는 불분명 하지만 이미 기원전 1만 8000년 경에 그려진 동굴 벽화에는 이미 음악가들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다 - 웍스. 또한 악보를 옮겨 놓은 듯한 그림들에서는 그리스와 같이 음악을 우주와 인간의 연결점으로 생각하고 있었음이 발견된다. 그리스와 로마 왕국의 파멸 이후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던 중세기에도 표면만 기독교적인 것이 되었을 뿐, 코랄 Choral과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의 음악과 회화의 주제는 신성함과 인간의 정신적 믿음 그리고 커뮤니티에 대한 책임 의식 등을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에서 고대 시절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르네상스 Renaissance시대에 접어들며 회화가 발전하고 원근법 perspective 등이 처음 도입되었다. 이는 회화의 주제가 아직도 종교적이고 신상한 성향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인간의 손을 통해 실상이 왜곡 된다는 인식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또한 회화에서 보다 인간 중심의 표현 기법과 세계관이 시작되었다는 효시가 되었다. 세큘러 음악 Secular, 세레나데 Serenade 등 음악의 표현 기법 또한 그 전문성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데스페레즈 Desperez 같은 전문 음악인들도 등장했다. 바로크 시대 Baroque의 특징은 회화에서 주를 이룬 주제들이 르네상스의 정적인 측면에서 벗어나서 훨씬 역동적이 된, 신이 아닌 인간의 모습들이었다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 또한 16세기에 그 시대의 대중 음악이라 볼 수 있는 오페라 Opera가 탄생했으며 17세기 중후반의 바하 Bach의 등장으로 음악은 더 이상 신앙 사회의 중심이 아닌 보편적 인간 중심의 문화적 사회적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즈음해서 Classical 음악이 탄생했고 이는 비발디 Vivaldi, 하이든 Hydn, 모차르트 Mozart, 베토벤 Beethoven 등의 손을 걸쳐 그 전성기를 맞는다.


19세기에 이르러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그리고 민주주의가 발달하게 된다. 이로 인해 교회와 군주세력이 그 장악력을 잃어버리는 급변의 시대가 도래한다 - 스트릭랜드. 인간의 세계관 또한 보다 기계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변해 갔으며 이는 인류 문명에서의 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 즈음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같이 하나의 양식이 오랜 시간 지속되는 현상 또한 멈추었고 사회의 급변화에 맞물려 예술 분야도 과도기를 맞게 된다. 이 과도기에는 사조 -ism가 탄생한다. 그리고 "음악은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거나 귀족들을 위한 점잖은 오락이어야 한다는 사고는 점차 자기 표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 윅스.


제국주의의 팽창,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도시화와 이에 따라 심화된 빈부 격차, 그리고 프랑스 혁명 등은 인간의 권리에 관한 정치적 문제들을 야기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들은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이성과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낭만주의 Romanticism가 시작되었다. 생산과 소비를 통한 진보와 축적을 향해 자연을 갈취하며 끝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산업 사회에 대한 반발로 신성한 자연 그리고 초자연적인 힘 등에 대한 느낌과 내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중세에 눈을 돌리기도 했다. 바로 "인간과 자연은 어떤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 서로 감응할 수 있으며 인간 내부에 숨겨진 신성함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으며 직관에 의지하며 그들의 신조를 지키려 한 것이다-스트릭랜드."


낭만주의와 같은 사조 이후, 서로에 대해 반동적인 수많은 사조가 끊임없이 탄생했다. 18세기 중반의 만국 박람회를 기점으로 아르 누보 Art Nouveau와 같은 상업적 예술이 태어나기도 했으며 사실주의 Realism, 자연주의 Naturalism회화들은 주로 평범한 서민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 즈음해서 음악의 분야 또한 서민을 위주로 한 플라멩고 Flamenco, 럼바Rhumba, 칼립소 Calypso 등이 유행했다.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모두 사실, 현실, 과학이란 요소로 축약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산업혁명에 의한 기계론적 세계관과 과학과 수학을 진리로 보는 근대 사회의 모습이 역설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상주의 Impressionism와 같은 예술 운동은 낭만주의를 계승하여 인간 내면의 모습과 고뇌를 표현했다. 인상주의는 신과 자연의 신성함이 무의미해진 근대 사회에서 기댈 곳을 잃고 내면으로 파고 드려는 인간의 의지와 고독함에 대한 페티쉬적 성향을 보여준다.



20세기에 이르러 음악과 회화는 모두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디자인 Design이란 개념의 탄생과 발달 그리고 재즈 Jazz의 등장 등에서는 르네상스나 바로크와 같이 통합적인 예술 과학 대신 예술과 과학 그리고 대중 문화가 서로 분리 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쇤베르크 Schoenberg의 음렬주의 Serialism는 전통적 작곡 양식에서 과감히 탈피했으며 현 시점까지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인상주의 작곡가인 드뷔시 Debussy를 비롯하여 사티 Satie, 말러 Mahler 등은 음악의 해방과 새로운 표현을 위해 노력했다. 이른바 전통에서 탈피한 음악의 해체주의 Deconstruction가 시작 된 것이다 - 질버만. 20세기 초반의 많은 작곡가들이 과학의 발달로 등장한 새로운 악기와 그에 따르는 음악적 가능성을 시사하였고, 1940년대에 이르러 이른바 전자음악 Electronic Music이란 장르에 대한 구체적인 예술적 탐구가 시작된다. 이것은 곧 기계와 인간의 합성화 Synthesis, 기계를 통한 음악의 본질로의 접근, 기계를 통한 인간의 내면적 성숙과 인간성의 재발견으로 이어진다.


20세기 초에는 보다 많은 사조 -ism들의 탄생을 볼 수 있다. 또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통해 상업화된 예술과 보다 더 과학적인 측면의 예술적 표현 방식을 볼 수 있었으며 회화의 주제들 또한 음악과 같이 해체되기 시작되었다. 이것은 고대 및 중세의 회화들과 대조하면 잘 드러난다. 시대별로 살펴보면 회화의 주제는 공통적으로 그 시대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생활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한 예로, 고대 시대의 주제는 신이 만들어 놓은 세상과 자연의 신성함에 대한 숭배와 책임감이었다. 하지만 입체주의 Cubism, 구조주의 Structuralism등 현대 미술의 주제는 신과 자연의 세계가 아닌 인공적인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더니즘 Modernism에서 비롯된 그리드 Grid 및 모듈러 Modular의 개념과 맞물리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세상을 다시 해체 함으로서 그 본질을 파고 드는 것이다.


또한 재즈 Jazz, 팝 Pop, 락큰롤 Rock n Roll 등의 음악은 대중 문화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대중음악과 문화 또한 예술사조와 상호적인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달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와 같이 과학, 예술, 문화의 발달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 3가지 요소가 세분화되고 서로 간의 색깔이 뚜렷해 졌으며, 그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bridge의 모습이 희미해졌을 뿐이다. 그 좋은 예는 60년대 사이키델릭 락 Psychedelic Rock의 부흥을 들 수 있다. 표면적으로 사이키델릭 락의 발달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류 문명이 우주에 대한 이미지를 확인 하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근원은 미래주의 Futurism와 초현실주의 Super Naturalism다. 회화의 사이키델릭적 표현은 옵아트 Op art, 팝아트 Pop Art에서 나타난다. 미지에 대한 신비와 자연에 속한 인간의 책임과 의무감을 통한 구원이라는 고대의 사상이 현대 문명의 과학과 맞물려 그 실제를 확인하려 하는 노력이 예술과 대중 문화의 결과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의 발달이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 질버만이 그의 저서에서 지적했듯이 "중요한 것은 기술적 힘이 사회질서를 선도하고 구조화시키는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만 이것은 기술에 의해 역사가 결정된다는 개념을 우리가 지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음악적 경험의 거래 수단, 즉 집단의 도구 장비가 어떤 의미에서는 집단 성원들에게 사회적 질서를 인도하고 결정하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생산과 소비 중심의 대량 생산에 의해 무의미하게 터져 나오는 대중 문화 산물이 곧 사회는 과학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역사 속에서 보아 온 그리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창의적인 예술과 문화의 생산자들과 수용자들에 의해 과학이란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다시 되찾기 위한 도구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그 자체적인 필요에 의해 제기하는 문제들을 예술이 다루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것으로부터 기술이 가져오는 영향들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 질버만". 따라서 이러한 요소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내체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음악과 문화의 보다 많은 연구와 확장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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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돼었던 일렉트로니카 이야기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시리즈로 잡지 원고 종료 이후 블로그에서만 계속되는 컬럼입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Vibe Upon the World 25:

CREAM 1992~2002

매시브 클럽 씬의 절대 왕정 Par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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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피터팬=클럽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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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파티 이벤트와 클러버들이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 하나가 있다면 바로 젊음이다. 클럽 파티 이벤트는 항상 젊음의 경험이고 입맛을 맞추며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클러버들은 인간일 밖에 없는 나머지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회의 조직원이 되어 각박한 현실과 직시해야 한다.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옛날 청춘의 노스탈지어에 빠져 끝없이 열정을 불태우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클럽 이벤트 자체는 나이를 먹지 않는 영원한 피터팬이지만 피터팬에게 삶의 공기를 불어 넣어주는 물리적 공간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클러버들의 취향도 끊임 없이 세대에 걸쳐 변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실의 논리를 망각한 호황기의 수입에만 정신이 나가있던 나이트 이벤트는 90년대 하우스와 트랜스를 통한 클러빙 열풍이 식어 내리며 강한 철퇴를 맞았다.

 

90년대 대형 클러빙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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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복합적 요인들의 작용이었다. 클러버들의 세대 변경은 물론이고 매시브 수퍼 클럽의 호황은 지나친 파티의 상업화와 DJ 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았. 물론 티에스토나 다익 같은 수퍼스타 DJ 인정 받은 이들에게 한한 것이지만 이러한 위험 요소들은 결국 매시브 파티 씬의 몰락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를 낳았다. MOS 함께 파티의 이비자를 점령하며 세계적 성공 가도를 날리던 게이트 크래셔 Gatecrasher, 갓즈키츤 Godskitchen 등의 메이져 클럽 나이트가 주말에서 이벤트로 횟수를 줄이는 전반적인 사업의 축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철퇴를 맞은 것은 바로 크림 Cream이었다. 리버풀의 대표 클럽으로서 MOS 함께 매시브 하우스 씬의 중심에서 많은 젊음의 욕구를 채워주고 가슴 벅찬 추억거리를 만들어준 크림은 클러버들의 세대 교체에 민감하게 반응한 갈란드 Garland 치부쿠 쉐이크 쉐이크 Chibuku Shake Shake 등의 소형 클럽을 앞세운 신진 세력에 의해 위력을 상실해나갔다. (따라서 크림의 마지막은 리버풀의 클러버들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영국 젊은이들의 영원한 로망, 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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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젊은이들이 리버풀의 대학 지원의 동기 하나가 만큼 도시의 문화를 책임졌던 크림은 1992 네이션 클럽의 주말 나이트 이벤트로 시작되었다. 당시 설립자인 제임스 바튼과 데런 휴즈라는 20 초반의 젊은이들이 하우스 열풍에 동참하여 순수한 파티 이벤트의 목적으로 시작된 이벤트는 로컬 DJ였던 DJ 유세프의 동참으로 수많은 클러버들을 열광 시켰다. 회에 거듭한 성공으로 크림은 이른바 리버풀의 센터 스팟으로 성장하며 여러 수퍼스타 DJ들을 불러들였고 오큰폴드, 반다익, DJ 사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이들이 크림을 거쳐갔다. 크림의 최고 전성기는 오큰폴드가 레지던트 DJ였던 97년과 99 사이였다. 영국 런던의 애시드 하우스 열풍이었던 번째 사랑의 여름 '2nd Summer of Love' 핵심 인물이었던 오큰폴드는 1300 수용의 크림 코트야드를 뜨겁게 달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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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b Fontaine의 레지던트 DJ 선택이 불러온 Progressive의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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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대형 나이트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크림의 전략은 수퍼스타 DJ 통해서였다. 대형 클럽의 전성기이자 크림의 전성기이기도 했던 97년과 99 사이 레지던트 DJ였던  오큰폴드가 떠나면서 크림은 명의 레지던트 DJ 후보를 올려 놓고 고심하게 된다. 결국 한창 클럽가를 달구기 시작하고 있던 신예 퍼기 Fergie (여성 가수 Fergie 아님) 포기하고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던 폰테인 Seb Fontaine 선택했지만 결국 '보장된' 안전을 선택한 것이 화근을 불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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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클러빙의 성공은 당시 들끓던 트랜스와 하우스 음악의 세계적 장악을 불러왔다. 언제나 부담 없는 사운드의 하우스와 좀더 규모의 군중을 제어하기에 안성맞춤인 트랜스 장르가 본격적으로 상업화의 길을 들어 스며 사샤 Sash, 디그위드와 같은 트랜스 황제들이 프로그레시브 Progressive라는 새로운 흐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레시브 락과 마찬가지로 좀더 미학적이고 프로그레시브 측면이 가미된 새로운 장르에는 크림의 새로운 DJ 폰테인도 가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음악에 트랜스와 하우스의 가볍고 흥겨운 리듬에 맞추어 즐기던 클러버들이 쉽게 적응하기에는 힘든 이었다. 결국 폰테인의 '서정적이고' '학구적인' 프로그레시브 사운드는 3000 수용의 크림의 댄스 플로어를 비워버리는 참극을 초래했다. 이에 대해 "마지막 6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트랙들이라구... 근데 사람들이 나가버리는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폰테인은 털어놓았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을 따른 소형 클럽의 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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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의 대중화 실패 수퍼스타 DJ들에 대한 클러버들의 잃어버린 신뢰뿐만 아니라 작은 소형 클럽들의 약진도 타격을 불러 일으켰다. 대형 나이트의 침체 속에서도 같은 리버풀 위치의 치부쿠 쉐이크 쉐이크 Chibuku Shake Shake이나 갈란드 Garlands 같은 소형 클럽들은 연일 클러버들로 북적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흐름에도 줄곧 대형 DJ 나이트만을 고수하던 크림은 엄청난 경영난에 시달리게 되었다. 하룻밤 스핀에 엄청난 개런티를 가져가는 수퍼스타 DJ 비해 비어버리는 클럽의 금고 사실 이상 이벤트의 진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트랜스 나이트로 대형 이벤트의 절대 강자들이었던 갓즈키친 Godskitchen처럼 크림은 결국 클럽의 문을 닫고 월별 홀리데이 원샷 나이트 이벤트로 전략을 고치게 되었다.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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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림의 메인 클럽인 네이션은 3 개의 공간으로 구성 되어 있다. 1000 수용의 메인룸, 700 수용의 에넥스 Annexe, 1300 수용의 코트야드의 스펙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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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운지 붐에 의해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의 미니바와 성격이 비슷한 베이비 크림 Babycream 리버풀의 알버트 선착장에 만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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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클럽의 죽음 이후에도 크림필드 이벤트와 컴필레이션 앨범 발매는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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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돼었던 일렉트로니카 이야기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시리즈로 잡지 원고 종료 이후 블로그에서만 계속되는 컬럼입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Vibe Upon the World 24:
            Ministry of Sound,
                                           매시브 클럽 씬의 절대왕정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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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발식 사업확장

철저한 상업위주 전략으로 무장한 MOS 어쩔 없이 언더그라운드 클러버들과 아티스트들에게는 공공의 적이자 악의 축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댄스 음악 컬쳐=MOS'라고 여겨질 만큼 문화 제국의 음악부 장관의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는 MOS 지금도 세계적인 브랜드 사업 확장과 젊은 층의 빠르게 바뀌는 입맛을 맞추게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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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
클럽은 사업 수익 원의 3%밖에 차지 하지 않지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사운드 시스템과 다양한 이벤트로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클러버들의 밤의 고향이나 다름 없다. 또한 유럽 뿐만이 아니라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으로 클럽 사업을 확장 시키고 있다. 음악 음반과 클럽 사업을 포함해 웹사이트를 통한 e-커머스, 라이센스 제품, 이벤트 투어 등으로 MOS 글로벌한 프랜차이즈 확장은 확고한 세계적 클럽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통해 MOS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체들을 열거하자면 펩시콜라, 코카콜라, 하이네켄, 말보로, MTV, 소니, 바카르디-마티니, 버진 항공 세계 1 브랜드기업들이 수두룩하다. (MOS 클럽 내부에는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 룸과 앱솔루트 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밖에도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해 웰빙 Well-Being 바람에 초점을 맞추어 아웃 컴필레이션에 요가 테마를 더하는가 한편  발표한 미니바 Minibar 통해 라운지 외식 사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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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 최근 시장의 중심이 IT 디지털 관련 사업에도 분주히 열을 올리고 있다. 미니바는 디지털과 IT 기술이 결합된 터치 스크린을 통한 주문 방식을 도입하여 웨이터/웨이트레스의 존재를 없애며 바에서의 좀더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향상시키는 전략을 선보였다. 또한 2006 런던 MOS 클럽에서 핸드폰을 통한 티켓팅 시스템을 도입하며 음악 관련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 있어 모바일을 핵으로 하는 젊은 층의 문화를 향한 시장 공략 대한 선두주자 임을 유감 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철저한 상업적 시작과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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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트리 오브 캐쉬 Ministry of Cash라고 불릴 만큼 지독한 상업 위주 전략과 무차별 적인 사업 확장 의해 욕을 먹고 있는 MOS 태생부터가 기존의 파티 문화와는 상반된 차이를 보였다. 1993년에 발표된 MOS 로고가 상징하는 또한 기존 언더그라운드 파티 문화나 80년대 성행하던 레이브 파티와의 이상과  차이를 보였다. MOS라는 (미니스트리 Ministry 국가 행정 조직인 외무부나 법무부에서 쓰이는 '~' 의미한다) 선동적인 이름에 걸맞게 거대한 디스코 위에 얹혀진 황실 왕관은 흡사 영국의 제국주의를 연상시키듯 절대성을 상징했다. 부분만 보더라도 스마일리 페이스과 같은 아이콘을 통해 평화, 평등, 행복, 사랑 등을 의미하던 70,80년대 언더그라운드 파티나 레이브 문화의 이상과는 전혀 달랐다.

 

클럽 문화에 재등장한 알콜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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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째로 로고 발표와 함께 획득한 알콜 음료 판매 허가 라이센스는 알콜-프리가 주를 이루던 기존의 파티 문화와의 차이를 보였다. 춤과 음악을 통한 신체와 정신의 일체감의 희열을 맛보았던 초기 클럽 파티 그리고 애시드를 통해 알콜 의존도가 현저히 떨어져 버린 레이버들로 인해 알콜 업체가 일대 혼란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 사실을 살펴볼 새로운 젊음의 문화를 선도해가는 MOS 알콜 라이센스 획득은 다시 알콜을 댄스 클럽 문화에 탑재 시키며 업체들로 하여금 하우스 문화에 빠진 젊은 층을 겨냥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디자인을 고려하게 만드는 다시 호재를 불러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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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인정 받을 있는 알콜을 받아들이고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마약의 대중적 거부는 지금까지 성공한 여러 대형 댄스 음악 관련 프로모션, 브랜드 들의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깨끗함' 내세우는 선전 전략에 불과하지 않다. 오히려 당시 젊은이들이 빠져 있던 레이브의 겉모습, 디자인이나 라이프 스타일들을 여전히 자신들의 마케팅 전략에 활용하였음은 물론이고 자체 브랜드 매거진인 <Ministry>에서 장장 6 페이지에 걸쳐 안에서 어떻게 대마초를 키우는가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는 지나친 젊은 층의 거부 반응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진보적 성향을 과시하기도 했다. 또한 창립자인 팔룸보는 대외적으로 마약과 담배에 대한 개인적 혐오감을 자주 들어내면서도 담배 회사로부터의 스폰서쉽을 멈추지 않는 클럽 이벤트의 내부 장식을 담배 회사의 로고와 포스터를 수놓는 모순을 연출하는 것도 비난의 중심이 되고 있다. ( 문화의 성격이자 골칫덩어리인 마약거래와 갱들의 개입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듯한 컴필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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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 MOS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이들의 성공 요인이자 수입원인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클럽이나 파티에서의 음악적 경험은 어디까지나 특정 이벤트에서만 얻을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번의 외도를 제외하고 곳에서만 레지던스를 고수한 하우스 DJ 래리 러반이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은 패러다이스 개러지에서만 가능했다. 또한 성행하던 레이브나 파티 이벤트 또한 - 개념이 주를 이루며 그날 밤의 경험은 다음 날의 경험과는 전혀 다른 신비롭고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MOS 경우 수퍼스타 DJ 특정 클럽 나이트에서 울려 퍼지던 '클럽에서만 경험할 있는' 음악을 레코드 형태로 제공하며 공간과 시간의 확장을 꾀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MOS 경험을 알면서도 가지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귀중한 선물 보따리였음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MOS 특유의 문어발 사업 확장처럼 이를 통해 나오는 컴필레이션 앨범들 또한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듯 봇물이 터진 것이 질적인 결함을 초래했다.
 
세간에서 MOS 컴필레이션을 가리켜 "나오는 만큼 사라지는 속도도 빠르다"라는 비아냥이 속출한 것도 바로 문제점이 원인이었다. 최근 세계 하우스 댄스 음악 브랜드의 다크호스로 등장했던 헤드칸디의 매입을 통해 한번 헤드칸디 팬들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매입 이전 질적인 면에서 뛰어난 수준을 자랑했던 헤드칸디 컴필레이션의 'MOS'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커버의 섹시한 여성 클러버, 드레스 코드의 정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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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컴필레이션 하면 빠질 없는 것이 커버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섹시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비키니, 클럽, 코스튬 등의 의상으로 강하게 어필하는 섹시녀들의 모습은 컴필레이션 뿐만이 아니라 주류 대형 클럽의 댄서들의 모습으로도 자주 있게 되었다. 이는 클러버들의 드레스 코드 또한 '섹시함' 'cool'함으로 정형화 시켜버리는 영향을 주었다. 상업화의 폐혜를 다시 한번 느낄 있는 섹슈얼 어필은 동안 레이브와 언더그라운드 하우스 파티 문화에서 중요시 되던 호모섹슈얼, 마이노리티, 유니섹스 등의 요소를 단번에 거세시켜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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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돼었던 일렉트로니카 이야기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시리즈로 잡지 원고 종료 이후 블로그에서만 계속되는 컬럼입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Vibe Upon the World 23:
           the Ministry of Sound,
                     
                             매시브 클럽 씬의 절대 왕정1991-present Par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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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ive Clubbing 문화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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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과 90년대 사이 애시드 하우스 붐이 영국을 뒤덮으며 지하에서 움츠려 있던 클럽은 오버그라운드로 뛰쳐 나왔다. 자신들만의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중요시 하던 '파티' 개념의 클러빙은 이제 돈벌이의 중요 수단이 돼어버렸다. 도시에게는 문화를 통한 수익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함은 물론이고 프로모터들에게는 단번에 일확 천금을 안겨줄 당시의 '블루 오션'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작은 지하에서 형성되던 클럽들은 규모를 엄청나게 키워갔으며 각종 단발성 대형 레이브/파티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흐름에 동조하며 1990 모습을 드러낸 리버풀의 크림 Cream 런던의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 Ministry of Sound 각각 영국을 대표하는 대형 클럽으로서 지금까지 클럽뿐만 아니라 레이블, 외식, 라운지 라이프 스타일 관련의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영국뿐만이 아닌 세계 하우스 클럽 문화에 지대한 영향력을 과시해 왔다.  


Ministry of Sound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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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인 이튼 출신의 제임스 팔룸보가 애시드 붐에 가세해 런던에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를 (이하 MOS) 세웠을  아무도 작은 클럽이 영국의 댄스 음악 문화를 손에 쥐고 흔들 거대 브랜드로 거듭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현재 세계의 하우스 클럽 컬쳐의 거대 공룡으로 상징되며 지금까지 천오백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아 치웠다. 영국에서만 해도 팔리는 앨범 5 중의 하나는 MOS 것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애시드로 대변되는 하우스 댄스 문화가 미국에서 건너온 만큼 이에 영향을 받은 팔룸보의 MOS 미국의 웨어하우스 파티를 표방하고 있었다. 따라서 1991년부터 시작된 MOS 하우스 음악을 핵심 사운드로 지켜 왔다.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대한 빠른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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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을 치달을며 뜨거웠던 영국의 애시드 하우스 붐은 열기가 점차 식어갔다. 대신 정글, 테크노, 개러지 새로운 장르의 음악들이 댄스 음악 씬을 점령했다. 흐름에 편승한 MOS 1995 정글 나이트를 개시하며 하우스 중심이었던 클럽 사운드의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온다. 좀더 다양한 소비자 층을 확보한 MOS 핵심 사운드를 하우스에 두면서도 트렌드에 맞게 정글, 개러지, 트랜스 등으로 확대하며 빠르게 변하는 클러버들의 입맛을 맞춰 나갔다.

 

ATB 9pm Till I Come, MOS 싱글 성공신화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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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나이트의 성공가도를 달리던 MOS 1999 밀레니엄을 앞두고 ATB '9 pm Till I Come' MOS에서 나온 싱글 최초로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레이블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이를 계기로 세계적으로 트랜스 신드롬을 낳고 수퍼스타 DJ 시대를 초래했다. 이때부터 MOS 컴필레이션 앨범이 불티나듯 흥행 고를 올리기 시작했고 유럽, 오세아니아, 아시아 세계에 MOS 클럽 확장에 불을 붙였다. 영국을 벗어나 세계 댄스 클럽 음악 문화의 우두머리가  MOS 싱글 성공의 번째 쾌거는 2004 스웨덴 출신 DJ 에릭 프리즈의 "Call on Me" 발표되었을 때다.


80년대 Retro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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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가수 스티브 윈우드의 히트 팝송인 'Valerie' 원곡으로 에릭 프리즈의 'Call on Me' '발레리' 클라이맥스인 'call on me~' 부분만을 따와 리믹스한 전형적인 업템포의 클럽 하우스 댄스 트랙이다. 발매와 동시에 장장 16  영국 댄스 차트 1위를 차지한 트랙은 영국을 들썩이게 만들며 90년대 시작되었던 80년대 일렉트로 사운드를 주류로 올려놨다. 바로 최근 패션, 음악 분야의 트렌드를 장악하고 있는 80년대 레트로 붐이 시작 되었던 것이다. 8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에어로빅을 테마로 뮤직 비디오는 천연색상, 라이크라와 줄무늬 패턴, 레그워머, 박스와 카세트 테이프 등의 요소와 MOS특유의 섹시한 여성 댄서 향연의 조화로  가장 섹시한 뮤직 비디오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특히 뮤직 비디오의 주인공인 딘 베리는 호주 출신으로 이 영상의 안무까지 맡았는데 일략 스타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휴즈 프로덕션의 What a Feeling (아이린 카라의 리메이크)의 뮤직 비디오에 다시금 출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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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때부터 80년대 히트곡들의 하우스 리메이크 트랙들이 무차별하게 쏟아져 나오며 물량공세의 의한 질적인 비판이 일기도 했다. 이미 MOS 컴필레이션은 80년대를 향유하던 ( 적인) 일렉트로 사운드로 범벅이 되어 있을 정도다. 질적인 비판을 떠나 MOS 보여주는 시대 트렌드 흐름에 대한 파악 능력과 알맞은 타이밍을 통한 마케팅적 공략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규모의 레이블이라는 절대왕권을 거머쥐게 있는 원동력이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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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 블링에 연재 돼었던 PVUW의 마지막 회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ㅋ
    앞으로 [Ambient: Film& Electronica]라는 새로운 시리즈로 만나 뵙겠습니다.
                                                                                                                                      -Groovie


PLUR & Vibe Upon the World 22:
               
최초의 Invitation-Only 파티,
                          David Mancuso’s Loft Party


고아원의 기억, 그리고 로프트 파티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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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스코가 언더그라운드 음악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던 1965년 경 데이비드 만쿠소라는 한 사나이가 뉴욕의 647 브로드웨이에 로프트 하우스를 처음으로 얻게 되었다. 거주 공간이 아닌 사무 공간으로 꽤 넓은 규모를 가졌던 이 곳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의 머리 속에는 고아원에서 보낸 자신의 어린 시절이 필름처럼 스쳐갔다.

고아원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녀님이 차려준 저녁을 먹으며 함께 했던 그 식탁 위에는 항상 레코드 플레이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이 버려진 어린 아이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제공했고 그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일종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 고아원의 넓지만 텅 빈 듯한 내부 공간과 허름한 건물은 이 작은 아이들의 외로움과 고독을 상징하는 듯 했지만 맛있는 음식과 분위기를 한층 돋구는 음악 그리고 여러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은 그들에게 작은 파티나 다름 없었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마련한 만쿠소의 로프트 하우스의 넓고 낡은 공간은 마치 그를 어린 시절의 행복한 시간으로 돌려 놓는 것만 같았다. 언제나 음악과 사람을 사랑했던 만쿠소는 자신의 로프트에서 그 때의 경험을 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이 때가 바로 뉴욕에서 가장 오래 지속되었던 전설의 언더그라운드 파티인 로프트 파티 The Loft Party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참여자들이 만들어 가는 순수한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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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쿠소의 파티는 여느 클럽 이벤트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입장하기 위한 티켓을 팔지도 혹은 배포하지도 않았으며 음식과 마실 것들은 제공될 뿐, 팔지 않았다. 참여자들 하나하나의 작은 기부를 통해 파티와 렌트 자금을 마련하고 음식을 준비했다. 지인들 간의 인비테이션 온리 Invitation-only 파티였기에 준비하는 과정 속에 친구와 공동체를 위한 정성이 들어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더군다나 사랑과 어우러짐의 모토와 함께 로프트 파티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훈훈'했다. 프로모터나 DJ가 밥상 차려주듯 내놓는 것이 아닌 참여자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는 분위기와 경험이 바로 로프트 파티만이 가진 '특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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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트 파티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람들 간의 평등함이었다. 자신의 옆 사람이 부자였건, 높은 사회 지위를 가진 사람이건, 게이나 레즈비언이건 혹은 유색인종이었든 간에 로프트 안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 로프트를 꽉 매운 음악과 행복의 열기 속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 만쿠소가 파티를 진행해가며 원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면서도 감사하고 신기했던 현상이었다.

로프트 파티가 그 규모와 유명세를 쌓아가며 서서히 연예인들과 같은 유명인들도 참석하기 시작했지만 로프트 공간 밖에서 '특별했던' 사람들은 내부에서는 똑 같은 로프트 베이비들이었다. 보통 식당이나 파티에 갔을 때 유명한 영화 배우라도 목격할 때 사람들은 대부분 "야, 야, 저기 XX가 왔어 봐봐, 우와"하며 수군거리곤 하지만 이런 촌극은 로프트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참여자 한 명 한 명 모두가 로프트의 경험에 작은 일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한 시공간에 대해 서로 의무감과 보람을 느꼈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만쿠소의 마술 같은 음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Loft Party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DJ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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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시절 수녀님이 마련해준 레코드 플레이어처럼 사람들의 유대감을 높여주는 것은 바로 음악이었다. 파티를 위해 만쿠소는 정성껏 그의 설렉션을 테이프에 담았으며 이 테이프들 속에는 다양한 장르의 빠르고 느린 음악들이 섞여 있었다. 오늘 날 하우스 클럽 음악의 모태가 되는 라틴 리듬과 소울 풍의 보컬 음악 등이 흥을 돋구는 한편 밴 모리슨의 애스트랄 위크 <Astral Weeks>의 음악들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여러 배경의 사람들을 상대로 했던 이비자의 DJ 알프레도 피오리오와 비슷한 맥락의 선상에 서있었다.

또한 기본적인 DJing 스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만쿠소는 로프트 파티를 이끌어가는 DJ로서 믹서나 헤드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음악이 끝나기 전 다른 음악으로 넘어가버리는 트랜지션도 없었다. 음악 하나하나가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울려 퍼졌다. 음악에 가해지는 볼륨, 피치조정, 리믹싱과 같은 어떠한 인위적 '조작'과 '분절'은 원작자가 의도하고 그 음악만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감성과 듣는 이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단절 시키는 행위라고 만쿠소는 믿고 있었다. 시작과 끝의 결말을 맺음으로 그 음악으로부터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감정을 표현하게 하는 음악에 대한 존중과 배려라는 그의 독특한 DJ 철학이었던 것이다. 만쿠소에게 DJing란 오히려 하나의 긴 여정과 같았으며 파티가 시작해서 끝나는 시점까지의 음악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세트를 이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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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파 사운드 디자이너 리챠드 롱 Richard Long과 함께 일구어낸 로프트의 사운드 시스템 또한 한 몫 했다. 주류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만쿠소의 손을 떠나 매킨토시 McIntosh 앰프를 타고 클립쉬혼 Klipschorn 스피커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사람들은 완전히 빨려 들어갔고 로프트의 바이브Vibe를 최 절정으로 끌어냈다. 알콜 음료도 제공되지 않았던 이 곳에서 만쿠소의 음악에 취해 행복의 눈물을 흘리는 로프트 베이비들을 볼 수 있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 이었다. (로프트의 사운드 시스템은 그 당시 패러다이스 개러지와 함께 거의 세계 최고 수준으로서 아직까지 전설로 회자 되고 있을 정도다.)


언제나 되돌아오게 되는 로프트 베이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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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의 생일 파티나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상 시키듯이 준비된 여러 풍선 장식과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거대한 디스코볼이 반사하는 불 빛 아래 수많은 사람들… 그렇게 30년 정도의 시간 동안 지속된 로프트 파티에 당시 젊은이에 불구했던 로프트 베이비들은 성인이 되고 가정을 가진 후에도 자신들의 아이들과 함께 로프트를 찾았다. 만쿠소에게 있어 이 보다 큰 보상과 보람은 없었다. 이런 특별한 로프트 만의 경험은 수많은 로프트 베이비들로 하여금 인생의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로프트 파티는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당시 성행하던 주류 바Bar나 클럽club에 대한 작은 반란이기도 했지요. 전 항상 무언가 개인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정형적인 주류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아주 단순한 일 말이죠."라고 만쿠소는 지나간 시간들을 이렇게 회자하고 있다.


Trivia:

*로프트 파티 이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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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Love Saves the Day' (대략 '사랑으로 오늘을 구원하다'라고 풀이된다)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파티가 거듭나며 사람들 사이의 대화 속에서는 "오늘 (만쿠소의) 로프트로 간다"라는 식의 말이 자주 오고 갔다. (한국말로 풀이해 봐도 "사랑으로 오늘을 구원하다 파티에 간다" 보다는 훨씬 덜 어색해 보이듯)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파티의 명칭도 '로프트'로 변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로프트 파티에는 수많은 전설의 DJ들도 함께 했다. 그 이름을 몇 열거하자면, 디스코 DJ인 프랑수아 케보르키안 Francois Kevorkian, 시카고 하우스의 대부 프랭키 넉클스 Frankie Knuckles, 데니 크리빗 Danny Krivit, 역사 상 가장 위대한 DJ로 칭송 받는 래리 러반 Larry Levan, 데이비드 모랄레스 David Morales, 닉키 시아노 Nicky Siano 등이 있다. 만쿠소의 로프트 하우스 파티는 이들 모두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음악적 영감과 경험을 선사했다.

현재 데이비드 만쿠소의 Loft Party는 런던에서도 1년에 4회씩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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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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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Vibe Upon the World 20:
2008년 5월자
My House in Montmarte:
French House

몽마르트 언덕의 하우스: 프렌치 하우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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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간단역사: 테크노와 하우스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국은 엑스터시의 요소를 집어 넣어 애시드 하우스에 사이키델리아를 추가했다. 바톤을 이어받은 이태리는 피아노 리프 등의 멜로딕한 요소를 통해 좀더 말랑말랑한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마지막 타자인 프랑스는 특유의 "French Touch" 앞세워 디스코의 Funky 함을 되살려 냈다.


 

70's Disco & Cerrone: 프랑스식 디스코 사운드의 방향성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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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디스코의 가장 흐름을 본다면 Salsoul 레이블 식의 funk, 소울, 오케스트랄, 보컬이 가미된 미국식 디스코와 조지오 모로더와 그의 아이스 도나 섬머를 중심으로 하는 차갑고 반복적인 유럽식 일렉트로 디스코가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디스코의 사이드 장르라고 있는 우주적인 테마의 스페이스 디스코 분위기에 매료되었었는데 Cerrone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가 1977 [Super Nature]라는 스페이스 테마의 일렉트로 디스코를 들고 나오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비록 조지오 모로더의 아류라는 원성도 많았지만 모로더 사운드의 공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소울과 섹슈얼한 요소를 더했고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다라는 진정한 예를 보여주며 훗날 프랑스를 전자 댄스 음악의 중심으로 올려 놓을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모방 카피를 통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 있다라는 관점 그리고 기계음의 조작을 통한 안드로이드적 이미지는 훗날 다프트 펑크에게 까지 이어지는 "French Touch" 통한 하우스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초석이 된다.


 P.S
. 디스코텍이라는 명칭 자체는 프랑스에서 왔지만 어원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사운드는 세론의 등장 이후에서야 터져 나오는 듯싶었다.


 


French House
의 탄생: Daft Punk와 Motorb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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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은 프렌치 하우스가 위용을 들어낸 중요한 시기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가 바로 다프트 펑크와 모터베이스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는 하우스 음악의 생산자라기 보다는 즐기는 입장에 가까웠기에 미래의 프렌치 하우스 아티스트들은 80년대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레이브를 통해 테크노와 하우스 사운드에 매료 되어있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사운드에 빠져 있던 Z'dar 힙합에서 하우스 DJ 거듭나며 Etienne de Crecy 함께 Motorbass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96 [Pansoul] 앨범을 통해 전형적인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연상케 하는 하우스 사운드를 내놓았다. 디스코 시절 세론이 보여주었던 모방의 미학은 다시 부활하게 셈이었다. (Z'Dar 본인도 자신은 디트로이트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라고 토로한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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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터베이스 말고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프랑스에 새로운 아티스트가 혜성처럼 등장했는데 이들에 의해 잠시나마 디트로이트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초기 프렌치 하우스는 시카고 애시드 하우스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세론의 모방의 미학은 물론이고 70년대 스페이스 디스코의 향수와 성향을 겸비한 새로운 듀오는 바로 다프트 펑크였다. 작은 게이 클럽에서 시작된 Respect 파티를 시작으로 다프트 펑크는 버진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99 [Home Work] 앨범을 내놓았고 듀오의 반쪽인 토마스 뱅갤터는 여러 프렌치 디스코 아티스트들과의 깊은 연계를 통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프렌치 사운드를 구현했다. 당시 지속 되던 유로 하우스 특유의 디바 보컬과 멋들어진 남성 , 몽롱한 신스 패턴에 식상해 하던 클러버들과 리스너들은 로우패스 필터 스윕을 무기로 다프트 펑크가 만들어 내는 신종 프렌치 사운드에 즉각 매료되었다. 시절 (90년대 중반/) 오랜 문화적 라이벌 영국이 내놓은 트리합과 정글 사운드에 어깨를 견주며 스타일쉬한 프렌치 특유의 감성을 세계에 다시 한번 떨어뜨려 놓았다.


P.S.
Urban Dictionary에서 다프트 펑크를 검색하면 세계가 프랑스를 우습게 없는 한가지 이유라는 말이 나온다. 전자 댄스 음악사에서 프랑스를 살펴보면 그들은 항상 발짝 물러서 있었다. , 생산자라기 보다는 항상 즐기는 입장에 가까웠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의 자존심은 다프트 펑크다라는 정의가 그다지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1998
년, 프랑스에 의한 전자 댄스 음악의 지각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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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은 모든 것이 끝장 나면서 전혀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던 해였다. Cassius "1999' Stardust "Music Sounds Better with You" 연달아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대체 이게 뭐야?" 외치며 새로운 프렌치 사운드에 열광했다. 그리고 2000 Chic Soup for One 샘플링 Modjo Lady 성공은 프렌치 하우스가 이제 세계 점령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 사살이나 다름 없었다. 이때부터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나 크림과 같은 대형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앨범 그리고 영원한 파티의 고향인 이비자는 즉각 프렌치 사운드를 채용하며 좀더 상업적인 렌더링을 가미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고 싱클라는 유럽 MTV 프렌치 하우스 특집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02 동안의 프렌치 하우스 사운드의 집대성이라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My House in Montmarte 발매 되며 기념비적인 성격을 더하게 된다. ( 앨범에 수록된 프렌치 하우스 아티스트로는 Daft Punk, Cassius, Air, I Cube, Dimitri from Paris, Alex Gopher, DJ Mehdi, Superfunk, Alan Braxe 등이 있다)


P.S.
 Motorbass Z’dar 몸담은 Cassius, 아웃 라운지 하우스의 Air, 프랑스에 처음으로 하우스 음악을 소개한 Dimitri from Paris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최초로 국가에서 내리는 예술을 통해 국가를 빛낸 이들을 위한 기사작위를 수여 받았다는 사실은 프렌치 하우스가 세계의 문화에 끼친 영향력이 실로 엄청났음을 있다.


 


Present: 세대 교체 그리고 90년대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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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초반부터 이미 일렉트로에 관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레트로가 문화 영역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만큼 전반적인 전자댄스 음악도 일렉트로 성향을 띄며 점차 바뀌어 나갔다. 즈음해서 Funky 프렌치 디스코 하우스도 퇴색되어갔고 이들은 일렉트로에서 대안을 찾아냈다. 당시 주류 클럽 사운드였던 트랜스와 하우스 모두 일렉트로 사운드를 장착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트랜스 쪽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돋보였던 베니 베나시의 펌핑 하우스 스타일 또한 프렌치 하우스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에드 뱅거와 키추네 레이블을 위시로 프랑스는 뒤에서 하니 버티고 있는 다프트 펑크의 백업과 뮤직 블로그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일렉트로와 성향을 가미한 강하고 헤비한 일렉트로 하우스를 선보였다. 2 다프트 펑크라 불리며 나타난 이들이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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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현재까지 동안 프랑스의 Justice 전선의 사령관이 되어 Simian Mobile Disco, 독일의 Digitalism, 캐나다의 MSTRKRFT 함께 세계 클럽 사운드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댄스 성향에 오픈 Klaxons, the Teenagers 등의 밴드들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80년대 뉴웨이브 시절을 떠올리는 락과 댄스의 크로스오버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 현상을 이끌고 있는 군단은 키추네와 에드 뱅거 레이블을 주축으로 하며 소속 아티스트들로는 Uffie, Yelle, SebastiAn, DJ Mehdi, DJ Feadz, Mr.Oizo, Hot Chip, Gun ' n Bombs, Cut Copy, Crystal Castle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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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특징이 있다면 90년대 출현했던 다프트 펑크 등의 프렌치 아티스트들이 소싯적 80년대 문화를 향유하며 에센스를 그들의 사운드에 담아낸 만큼 이들은 다음 세대임에 걸맞게 90년대를 향유했고 향수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테크토닉 댄스의 불을 당긴 Yelle A Cause des Garcons (Tepr Mix) 뮤직비디오에서도 펌프 운동화, 원색적인 색상 등이 이미 90년대를 향수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일렉트로 하우스 DJ들의 믹스셋을 들어봐도 80년대는 물론90년대의 팝송들이 간간이 끼워져 있음을 확인할 있다. 5 떠들어 대던 80년대 레트로 현상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로 넘어가던 레이브 문화 시절의 감수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듯하다. 90년대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들이 학생의 신분을 떠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90년대 레트로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고 있다. 단지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시점이 언제가 것인지가 문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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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008 4 이제 사라진듯한 90년대의 프렌치 하우스와 관련된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었는데, Louis La Roche라는 십대 영국 DJ 자신의 처녀작을 토머스 뱅갤터의 신보로 알리며 데뷔한 깜짝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일렉트로 하우스가 아직까지 약발이 빠지지 않은 만큼 10 전의 사운드의 부활시킨 청년이 전체 댄스 음악의 판도를 바꾸지는 못할 보이지만 지독하리만큼 90년대 프렌치 하우스의 감성을 담아낸 그의 데뷔 앨범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뜻하지 않게 받은 반가운 안부편지와 같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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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nch House Play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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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월요일 시작을 도와주는 기분좋은 음악이 하나 새로나왔다.
Titiyo의 음악으로,
Kleerup의 점진적이면서도 차분한 일렉트로 사운드가 편안하다.




Longing for Lullabies by  Kleerup ft. Titi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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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18:
 
       Shibuya-Kei Part 2.: 왜 된장의 사운드트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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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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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초반 일본은 버블 경제 붕괴와 부동산 공황의 여파로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경제적 침체기를 지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10년 전 일본의 모습은 IMF 이후 경제적으로 악화 되어 가는 지금의 한국과 많이 닮았다 그리고 옆의 그래프는 잃어버린 10년 간의 미취업률 분포도이다.)

하지만 언제나 경제가 힘들 때 놀랍게도 언더문화는 발전해 왔다. 영국의 하우스 문화와 일본의 시부야케이가 아주 좋은 예다. 시부야케이는 경제의 침체 속에서 체제를 거부하며 젊음으로부터 발산되는 열정과 창의력 그리고 철학과 실험정신을 통해 시작된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결국 경제 침체 속의 분위기에서 그 새로운 문화는 어느 때보다 영광의 빛을 뿜어 내며 가, 애니메와 함께 전 세계에 일본의 선진 문화를 널리 알린 일등 공신이 되었다.
 

경제가 힘들때면 문화는 꽃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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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경제 침체는 소비 시장의 위축을 불러 왔지만 이 새로운 물결은 그 공허한 빈자리를 신선함과 또 다른 열정으로 채웠다. 젊음의 언더문화는 뒷골목의 음침함을 걷어버리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춤을 추었다. 대기업의 유통망을 통하지 않은 새로운 패션 스타일과 브랜드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곧 음악 취향의 변화도 이끌고 왔다. 통기타와 락 그리고 대중 가요라는 뻔한 선택권 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은 테크노, 힙합, 하우스 같은 다양한 음악 장르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이 것이 꽃피는 곳은 바로 클럽이라는 공간이었다.

더욱 많은 이들이 모여든다는 것은 무언가 흥미로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고 테크놀로지의 발달과 정보화의 흐름에 탄력 받은 디자인과 미디어 매체의 활성화도 따라왔다. 바로 창조적이며 열정적인 실천과 실험에 의해 문화적 다양성이 실현되는 숨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90년대 이 열정적인 문화적 움직임의 주역이 바로 시부야케이였던 것이다.    
 

정치적이지도 반항적이지도 않은 별난 언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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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시부야케이는 언더문화로서 특이한 면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한번 질문해 보자. 언더문화의 특징이 뭐냐 물으면 반항, 무정부주의적, 파괴, 폭력, 정치성과 같은 격한 이미지들이 보통 떠오를 것이다. 왜냐면 지금까지의 언더문화들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펑크건 하우스건 그런지건 기성세대와 절대 권력을 향한 강하고 파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났던 이모(Emo) 현상도 별 다를 바 없다. 겉으로만 찔찔 짜고 있을 뿐 내적으로는 철저히 자기 파괴적이라는 성향은 꼭 닮아 있다. 근데 시부야케이는 비폭력적이고 정치적 성향도 없다.

그 뿐인가, 히피와 LSD, 하우스와 엑스타시 처럼 마약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도 없다. (항상 언더문화의 부록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마약이건만) 그럼 대체 뭔가? 말 그대로 언더문화도 아닌 것 같은 것이 언더문화였던 괴물 같은 변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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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상의 원인은 그 출발 시점의 상황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서구의 언더문화를 보면 대부분 억압받고 위축된 젊은 세대들의 과격한 반항적 성격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주역들은 노동계층의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지만)

하지만 시부야케이의 경우 (서구보다 덜 반항적이고 순종적인 일본인들만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억압된 노동계층의 반란이라기 보다는 좀더 여유 있고 학구적인 중산층들이 시작의 발단에 서있었다. (그렇다고 선택된 엘리트들의 세련된 선택이라는 반 민주주의적 발언은 아니다.)

그리고 철학과 인문적 소양을 발판으로 한 이들의 문제는 마케팅 혹은 프로파간다적 미디어 세뇌를 무기로 한 주류문화에서 어떻게 탈출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60,70년대 반전을 외치며 정치적 선상에 서있던 우두스톡의 무리들과 정 반대편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져 물질/소비주의 사회의 실체를 바라보려 했던 벨벳언더그라운드와 앤디 워홀과 더 닮아 있다.
 
시부야케이는 이를 위해 두 가지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세계화라는 거대한 흐름의 핵심인 소비주의 사회를 끌어 안으며 자신들이 어릴 적 즐겨 듣던 음악들에 대한 향수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글로벌리스트 소비 사회의 무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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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는 어디까지나 일본이 지향했던 미국 경제 모델이 발판이었고 그들의 현실을 힘들게 만든 주체임에도 불구 하고 그들은 반감은커녕 오히려 품에 안았다. 소비주의의 특성인 소비하고 수집하고 꾸미는 행위에 대해 언제나 열려있던 현대 일본 문화의 특징을 보면 시부야케이는 물론이고 무라카미 타카시, 요시모토 나라와 같은 걸출한 팝 아티스트들이 터져 나온 맥락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더욱 극적인 것은 그들이 찾아낸 표현의 탈출로가 그들이 소싯적 즐겼던 60년대 유럽 문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90년대 세계의 음악적 흐름이었던 샘플링 컬쳐가 만나 하이브리드적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동시대 흐름이었던 힙합, 하우스, 테크노와 그들의 향수 속에 존재했던 프렌치 팝, 이탈리안 사운드 트랙, 보사노바, 매드체스터, 아노락팝, 크라우트 락 등의 여러 요소들이 만나 일종의 짬뽕 세레나데를 일구어 냈다.) 열거한 음악 종류들을 보면서 현기증이 날 듯 하듯이 시부야케이는 어중간한 크로스오버의 레벨을 넘어선 새로운 변종이었다. (이는 1920년대 디자인의 극단을 보여준 다다의 브리콜라쥬와 패스티시를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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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민족주의, 특정문화와 같은 절대적 도그마가 사라지며 '정체성'이란 것은 투명하게 사라졌고 테크놀로지, 모더니즘, 팝 아트가 묘하게 혼재된 아주 인공적이고 플라스틱한 레트로 퓨처리즘을 탄생 시켰다. 특히 이 인공적이고 플라스틱한 측면은 소비주의가 내세우는 '세계화' 혹은 글로벌리즘과 꼭 맞아 떨어진다. 세계화의 특징은 특정 문화에 영향 받지 않고 어디에나 침투할 수 있는 '무정체성'이다.

미국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주체로 유럽피안적인 미학을 가미한 시부야케이의 동양적이지도 서양적이지도 않은 사운드의 무정체성은 현재(혹은 그 시대) 글로벌리스트 소비사회를 그대로 비춰주며 세계화 시대의 진정한 사운드 트랙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미국식 소비 사회의 찬양이라고 무작정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 같다. 오히려 하이테크, 기업, 미디어, 소비 그리고 도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동시대적인 현실의 감수성을 그대로 담아낸 헬로키티의 괴기한 거울과 같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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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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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외로 짧게 나마 다루고 싶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Digging이라고 하는 수집의 미학이다. 숨어있는, 혹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내는 DJ의 필수 요소로 DJ Shadow와 DJ Spooky와 같은 턴테이블리스트들이 그 대명사로 꼽힌다.

     시부야케이가 샘플링 컬쳐를 껴안은 만큼 이 디깅의 미학도 빛을 보았다. 옛 유럽 음악들과 새로운 인디 밴드들의 사운드의 소개는 물론 일본에서 들을 수 없었던(그리고 전 세계에서 잊혀졌던) 사운드들이 시부야케이 음악 속에 샘플링 되어 담겨졌다. 저작권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지만 이 디깅의 미학은 시부야케이 아티스트들의 보물 창고로서 그들의 음악성에 있어 절대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다. 시부야의 HMV에서 시부야케이 음악을 찾던 이들의 행위 또한 일종의 디깅이었고 이는 결국 시부야케이라는 용어를 탄생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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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부야케이의 죽음 또한 디깅의 미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부야케이가 거대한 대중문화 현상으로 떠올랐을 때 미디어는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시부야케이가 가지고 있었던 디깅을 통한 희소성은 사라졌고 인사이더가 되거나 공들여 찾지 않아도 카페나 미용실에 얹혀져 있는 잡지에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쿨한 트렌드 아이템으로 전락한 것이 바로 몰락의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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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는 여성 아이콘에 관한 것이다. 이 것 또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부분이지만 우선적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대한 상징적 의미 부여라는 점을 뽑고 싶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그룹에서 여성은 귀여움, 섹시함 혹은 아름다움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얼굴 마담의 역할을 전통적으로 행해 왔다. 하지만 그 기괴함을 떠나 카히미 카리에의 철학성과 음악성 그리고 최전선에 나서 코니시 야수하루의 음악에 피치카토 파이브의 그 퍼포먼스/행위적 성격을 더한 당차고 '멋진' 마키 노미야의 모습은 분명 동시대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각개약진 하고 있던 여성들과 억압받던 소수에게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시부야케이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에 필적할 만한 아이콘적 위상을 얻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과 지위 향상에 대한 상징은 있었을지언정 시대의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마키 노미야 폰'이라던지 하는 10대, 20대의 지갑을 노린 우스꽝스러운 소비주의적 마케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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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주의 사회에 대한 말이 나온 마당에 하는 얘긴데,
90년대 중반 일어났던 일본의 카페 성황 속에 자리잡았던 시부야케이는 이미 상업전선에 합류된 이후의 일이다. 그 시절 잘 나갔던 카페 아프레미디, 엑셀시오르 커피샵(프랜챠이즈) 등의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커피와 보사노바 음악, 미용과 패션 정보 그리고 대화들은 시부야케이 문화의 대중화 속에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는 유럽이라기 보다는 '시부야케이가 지향했던 유럽에 대한 판타지적/페티시적' 성향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에 대한 좋은 예가 바로 유럽지향적 카페의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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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미국식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명사인 스타벅스의 일본 상륙으로 다양한 커피들이라는 선택의 욕구는 채워졌지만 결국 승리자는 유럽지향적인 (특히 프랑스 파리) 카페였다.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의 틀을 부수며 사회 진출을 하고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20,30대 여성들과 패션에 민감한 어린 세대를 위해 카페는 커피와 수다 뿐만이 아닌 혼자 커피 한 잔도 즐길 수 있는 그런 편안하고 세련된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실내 공간감을 더욱 살려주는 음악 그리고 커피와 더불어 다양하고 전문화된 이른바 Café Cuisine이라고 하는 음식의 요소를 더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그 공간은 '유럽'이 아닌 '유럽에 대한 페티시를 담은 판타지적'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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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스타벅스나 섹스 엔 더 시티를 통해 느끼는 것은 바로 뉴욕의 정서가 아닌 '자신이 상상하고 느끼고 싶은 뉴요커에 대한 판타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는 이미 세계화를 특징으로 한 물질/소비주의 사회가 배출해낸 하나의 떳떳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약 5~10년 사이 국내에서도 스타벅스, 브런치 문화와 함께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한바탕 된장 열풍도 겪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누가 스타벅스를 사고 미니 홈피를 시부야케이 음악으로 수놓는 그녀들을 향해 된장녀라 감히 욕을 하고 돌맹이를 던질 것인가? 그 '된장'이란 키워드가 만약 소비와 물질주의와 맞물려 있다면 시부야케이만큼 어울리는 음악도 없을 텐데 말이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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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7:

             Shibuya-Kei Pt1: 살롱뮤직에서 아방가르드 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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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years: Salon Music & Flippers Gui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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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통기타 포크 음악을 시작으로 90년대 마초 락 밴드까지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씬은 락의 영향이 지배적이었다. 또한 J-Pop의 어쩔 수 없는
대중 성향에 의해 일본에서 흘러나오는 사운드에 고리타분함을 느끼는 이들도 슬슬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유럽 지향적 사운드를 장착한 80년대 Salon Band 살롱 밴드의 출현은 시부야케이의 전초전을 알리는 조용한 알람 시계였다.

비록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살롱 밴드는 시부야케이의 시초로 불리는 Flipper's Guitar 플리퍼스 기타를 발굴해낸다. 그리고 1990년 심야 드라마 [클램 스쿨 부기]의 테마송인
Young
, Alive, in Love가 대 성공을 거두며 플리퍼스 기타는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1991년 플리퍼스 기타는 해체되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시부야케이의 물결이 시작된다. 플리퍼스 기타의 오자와는 상업적 노선을 밟으며 시부야케이와의 연계성이 단절 되지만 오야마다는 Cornelius 코넬리어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시부야케이를 통한 일본 문화 장악에 들어간다.    



시부야케이의 시작, 9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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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플리퍼스 기타(이후 코넬리어스)와 함께 안티-대형 레이블의 이름을 걸고 다양한 음악적 접목을 시작한 이들로 샤다라파(SDP)Pizzicato 5 피치카토 5가 있다. 특히 피치카토 5는 오야마다와의 합작품인 1993년 앨범 <Bossanova 보사노바>에서 동시대 댄스 음악의 흐름과 60년대 유럽 지향적인 사운드의 크로스 오버를 통해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전형적인 시부야 사운드를 구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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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오자와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있을 때 코넬리어스는 Tratoria 트라토리아 레이블을 설립하며 당시 일본에서 구하기 힘들었던 외국 앨범의 발매와 일본 인디 그룹의 양성을 통해 시부야케이의 발전에 이바지 한다. 이 때 Towa Tei 토와 테이가 그룹 딜라이트를 떠나 흐름에 합류하고 Denki Groove 덴키 그루브, Love Tambourine 러브탬버린, Venus Peter 비너스 피터 등의 신진 세력들이 씬의 활력을 불어 넣는다. 코넬리어스의 애인인 Kahimi Karie 카히미 카리에 또한 데뷰 앨범을 발표하는데 Jane Birkin 제인 버킨과 Serge Gainsbourg 세르지 갱스부르그의 영향이 극단으로 나타나며 시부야케이의 유럽지향적 성격을 확고히 다지고 코넬리어스의 95년 작 <69/96>는 일본 베트스 셀링 앨범으로 기록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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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어쿠스틱, 매드체스터, 이탈리안 사운드트랙, 재즈
, 하우스 등 유럽의 여러 음악 요소들이 하이브리드를 이루는 이들의 사운드에 일본 젊은이들은 매료 되고 이내 언더그라운드 씬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80년대 주를 이루었던 일본의 클럽 씬은 말 그대로 쿨하고 댄디한 이들의 모임이었지만 곧 클럽과 패션 일번지인 우라 하라주쿠 일대는 대형 레이블과 대중 문화에 반감 어린 시부야케이에 영향을 받은, 보드 셔츠로 무장한 중산층 중고등 학생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 때 Bathing Ape 베이딩 에입 패션 레이블은 코넬리어스와의 깊은 연계를 통해 젊은 층 패션디자인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문화의 출현을 감지한 미디어는 곧바로 시부야케이에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전성기, 90년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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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 온 일본 열도는 시부야케이에 의해 들썩거린다. 트라토리아 레이블에 이어 나카 마사시의 Escalator Record 에스컬레이터 레코드, 코니시 야수하루 (피치카토 5)의 Ready Made 레디 메이드 레이블 등을 통해 Yukari Fresh 유카리 프레시, Losefeld 로즈펠드, Fantastic Plastic Machine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Manfield 맨스필드, Minekawa Takako 미네카와 타카코 등 시부야케이의 얼굴 격인 이들이 본격적으로 데뷰한다. 그리고 코넬리어스의 97년작 <Fantasma 판타즈마>는 지금까지 시부야케이 씬을 집대성한 명작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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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의 시부야케이 전성기는 그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는 시기기도 했기에 이 때부터 그 하이브리드 형태의 음악적 접목의 뿌리가 되어온 철학, 디자인, 패스티시, 탈 대중 문화적 성격을 잃어 버리고 일종의 트렌드와 문화 현상으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  2000년이 찾아오며 이미 시부야케이는 카페나 대중 잡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쿨한 문화 아이템으로 전락한다. 2001년 코넬리어스의 <Point 포인트> 앨범은 이미 식어버린 원조 시부야케이들의 입장을 반영하며 씬의 죽음과 아방가르드적인 새로운 실험적 형태의 방향을 제시한다. 에스컬레이터 레코드 또한 뉴욕과 베를린에서 한창 진행 중이던 일렉트로와 댄스 펑크로 전환하고 레디메이드는 보다 성숙했지만 그 전과 똑 같은 시부야케이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 마저 시부야케이를 버리고 하우스 DJ로서 새로 거듭났다.)



죽음, 2000년대 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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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2000년 이후 음악계에서는 신진 세력에 의한 세대교체가 일어난다. 이것은 일종의 시부야케이의 후기 현상으로서 Havard 하바드 등과 같이 기존 시부야케이 멤버들에게 발탁된 직계 손들이 나타난 반면 Quipthone 큅쏜, Paris Match 파리스 매치, Akakage 아카카게, Cymbalse 심벌즈 등은 시부야케이와의 직접적 연계를 거부하며 자신들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들은 시대의 문화와 사운드적 흐름에 동참 했을 뿐 시부야케이의 정통을 이어나가는 식의 장인 정신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논란의 요지는 있지만) 따라서 엄격히 따질 때 이들을 시부야케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이고 이들 또한 자신들이 그렇게 불려지는 것에 언짢을 것이다. 이 밖에 시부야케이 원조들이 어린 시절 유럽 음악에 영향을 받았듯이 중고등학교 시절 시부야케이를 들으며 자란 Aprils 에이프릴즈, Dahlia 달리아, Petset 펫셋, Pictogram Color 픽토그램칼라, Capsule 캡슐 등이 있다. 이들도 파리스 매치와 같은 부류와 마찬가지로 시부야케이의 정통성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과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성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초기 아티스트들이 유럽지향적이었다면 이들은 ‘유럽지향적이었던 시부야케이’ 지향적이었다. 즉 샘플링에 의존한 크로스오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운드만 더 세련되어졌을 뿐 똑 같은 과정의 반복이었다..



후기 현상: Perfume, YMCK 그리고 아방가르드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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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케이의 죽음 이후 눈에 띄는 3가지 후기 현상이 있다. (필자가 주관적으로 주목하고 싶은 현상 일 뿐 정의 내리는 것은 아니다) 첫 번째는 이번에 j-pop 아이돌, Ami Suzuki 아미 스즈키의 싱글 참여로 화제가 된 캡슐의 Nakata Yasutaka 나카타 야수타카가 배출해 낸 그룹 Perfume 퍼퓸으로 기존 J-Pop 영역의 문을 두드리며 좀더 상업적인 성격을 더한 일렉트로 팝과 기존 일본 아이돌의 귀여운 이미지를 접목하고 있다. (아마도 야수타카는 퍼퓸을 통해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의 헬로키티 버전을 구상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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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Usagichang 우사기짱 레코드의 YMCK, Fine AM 파인 AM, Sonic Coaster Pop 소닉 코스터 팝처럼 아방가르드와 디즈니랜드의 유치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접목된 퓨처팝으로 퍼퓸과 거의 비슷한 맥락에 서있지만 좀더 비 상업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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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2000년대 초 코넬리어스와 카히미 카리에가 취했던 실험적인 측면과 비슷한 맥락에서의 Avantgarde Pop 아방가르드 팝 현상을 들 수 있다
. 제시한 3가지 흐름 중 가장 엘리트 적이고 순수한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한 흐름으로서 포스트락과 엠비언트 음악의 성향을 가지고 있고 형식적인 면에서 Glitch 글리치 음악이라고도 불린다. (시부야케이는 죽었고 그 이후의 음악적 현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몇 몇의 시부야케이 원조들이 이러한 엠비언트와 아방가르드의 노선을 선택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아직은 티비나 라디오를 통해서 보다는 비엔날레나 Sonar 소나르 페스티벌에서 더 듣기 쉬운 이 음악들은 오선지에 뿌려놓은 콩나물이라는 정형적인 음악적 한계에서 훨씬 벗어나
소리의 레이어를 통한 텍스쳐 구축이 더 돋보인다. Tsujiko Noriko 츠지코 노리코, Piana 피아나, Takaki Masakatsu 타카기 마사카츠 등은 이미 이 영역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구축해 나가고 있는 대표적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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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나 그룹이라기 보다는 사운드 디자이너/아티스트들에 더 가까운 이들의 음악은 최근 덥스텝 (Dubstep) 현상과 같이 미니멀리즘과 아방가르드의 요소가 주류 음악 요소에 침투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퍼퓸과 YMCK의 음악이 아직도 시부야케이가 가지고 있었던 모더니즘과 페티시적인 레트로 퓨처리즘 그리고 소비주의 사회의 찬양에 대해 빠져 있다면 그 어느 때 보다 환경 오염과
느린 삶이 대두되고 있는 현 사회에 있어 올가닉한 가이아의 개념이 스며든 이들의 음악이야 말로 진정한 미래 지향적인 퓨쳐팝Future Pop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러한 흐름은 비단 일본의 것만이 아닌 유럽을 필두로 한 전 세계적 언더그라운드/사운드 디자인적 현상이다.)     




Spike Me into Space by Salon Music               Youg, Alive, in Love by Flipper's Guitar


         Twiggy, Twiggy by Pizzicato 5                       Good Morning World by Kahimi Karie


Cherish Our Love by Love Tambourine                  Hands by VenusPeter


Flashback Disco by Denki Groove                          Butterfly by Towa Tei


Dear Mr.Salesman by FPM ft Nomiya Maki       Star Fruits Surf Rider by Cornelius


Beautiful, but Noir by Dahlia                                  PLastic Girl by Capsule



Chocolate Disco by Perfume                                   Milky Blue by YMCK


White Film by Tujiko Noriko                                Something's Lost by Piana


                             Camera! Camera! Camera! by Flipper's Guitar
                         (미켈란젤로 안토니니의 영화 Blow Up을 패러디 한 듯한)


              보너스 Bonus: 상업전선을 선택하고 성공한 플리퍼스의 오자와 켄지의 Lov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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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Heartb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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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 벅차 오르는 순간!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올망졸망한 그런 기분들...
사랑이 시작될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닐까?

어찌하였건 소비주의 사회가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걸작품인 발렌타인 데이가 요번 주다.
바로 그 날이 오며 꽁꽁 얼려 놓았던 우리들의 지갑은 열린다...
이 무슨 열려라 참깨도 아니고 알라딘의 요술 램프도 아니고...
하지만 덫은 아주 깊게 놓여져 있어 빠져나가긴 힘들다..
지갑을 열고 즐기던지..
지갑을 닫고 투쟁하던지...

어쨋거나 저쨋거나 이런 저런 사랑 테마의 음악들~^^


 
Love's Theme
[Disco/Soul]  by Love Unlimited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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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테마라 하면 단연 베리 화이트를 뽑고 싶다.
사랑, 희망, 행복에 관한 수 많은 음악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베리 화이트의 프로젝트 격 그룹인 무한한 사랑의 오케스트라 ^^ㅋ의 사랑의 테마는 바로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랑의 벅차오르는 느낌을 그대로 소리에 실어 전해 준다..

디스코의 여명기에 다른 한 편에 서서 소울이 흠뻑 담긴 사운드로 여러 사람의 맘을 자극했었던 역사적인 트랙이기도 하다.







First Love
[Electro Rap]  by Uff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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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 샘플링이 먼지 잘 생각은 안난다.. Time After Time이었나....가물가물
암튼 문근영이 울나라 국민 여동생이라면 Uffie는 힙합계의 국제 여동생이다. ^^ㅋ

첫사랑이라는 노래 제목만큼 무언가 첫 시작을 알리는 듯한 리듬이 좋다.

근데 왠지 언제부턴가 보코더 섞인 음성 조절이 나오면... 상업으로의 전환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나는지...ㅜㅜㅋ






Together Forever in Love
[Rock-Garage] by Go Sai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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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항상 자주하는 말이 "사랑해 영원히.."
그리고 헤어져 지난 날 생각하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이었는지 깨닫는다.. 혹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는 사람들도 있겠고...

암튼 그런 맥락을 생각해 보면 장난감 같은 이 갸라지 락 튠에 정말 잘 어울리는 간편하고 귀여운 곡이다...








One in a Million

[Electro Pop] by Priv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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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번 중의 하나...
바로 너다라고...
가사나 비트나 굉장히 프로그레시브한게 상당히 확고한 느낌을 전해 준다..
사진의 분위기에서도 느껴지듯 오히려 남성적인 강한 마음이 더 나타나는 듯한 그런 느낌...
확고하고 힘이 있으면서도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일렉트로 팝

음...운명을 만날 확률 보다는 로또 대박 날 확률이 더 낮다는..
.ㅜㅜㅋ





Summer of Love
[Pop]  by Helen Hoff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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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호프너의 사진이 없어 페이 웡의 사진으로 대신...
이유는 한 10년 전 페이 웡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하며 홍콩 전체를 발칵 뒤짚었었기 때문... ㅜㅜㅋ

제목에서 느껴지듯 여름 햇살 안에서 듣는 가벼운 팝송
가사는 뭐 여느 사랑 노래가 그렇듯 뻔하다.. ^^ㅋ












You Make Me Feel Like (Peace & Love & Happiness)

[House Deep]  by A:x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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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처럼 좋은 약도 없다 했나..
당신 때문에 평화, 사랑, 행복을 느낀다는...
거의 이 정도면 콩깍지 수준의 상태에 다달은...
두 눈은 하트로 불켜지고...

헤드칸디 비치 하우스 컴필레이션에 수록되었던 곡으로 칠한 딥하우스의 편안함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Love is You

[Disco] by Carol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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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행복 이런 요소라면 디스코처럼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도 드물 것이다.
디스코는 설명이 필요 없다...그냥 듣고 몸으로 표현하는 거다...

이 노래 들음 Modjo나 Spiller의 Groovejet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









Tell Her (You Love Her Each Day)

[Pop-Oldies]  by Frank Sina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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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노래라면 이런 올디한 팝 분위기 하나 정도는 끼워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ㅋ

아주 간단한 사랑 공식에 대해 노래한다.

매일 매일 "사랑해" 한 마디 씩 그녀에게 해줘라..
그 간단한 한마디가 그녀에겐 삶의 의미가 되리니...

음... 로맨틱 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면에선 상당히 마초적인 것 같기도..

자꾸 프랭크 시나트라와 갱단을 연계시키게 되서 그런 느낌이 나는지도.. 암튼 피날레로는 이 노래 만한 것도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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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ectronica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
엄밀히 따지면 1995년 테크노 등의 전자 댄스 음악의 대중 활성화를 위해 MTV와 미디어가 만들어낸 미디어 용어다.
이 단어는 테크노 뿐만 아니라 정글, 트랜스, 하우스 등 셀수 없이 존재하는 전자 음악 장르들을 그럴싸하게 표현한 것 뿐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니 오죽 세련되었겠는가.. 일-렉-트-로-니-카... 어감도 좋지 아니한가?

어쨋든 단어의 탄생이야 어쨋든...
미국과 영국을 떠나 전 세계 전자 음악 팬들에게 그동안 일렉트로니카 단어는 '희소성'의 프라이드를 안겨 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테크노의 미국 공략 실패는 곧 대중 친화와의 결렬을 뜻했고 이 음악들은 다시 언더그라운드 지하세계로 들어갔다...
따라서 이 일렉트로니카라 불리는 변종의 전자 음악들을 듣는 이들은 나름 '언더지향적'이고 '희소성'의 음악을 독차지한 일종의 프라이드를 얻었다.... 쉬운 말로 ... 나 "음악 좀 들어.."

이런 현상은 비단 일렉 음악 쪽에만 속한 말은 아니지만...

언제 부턴가 부비부비니 뭐니 하면서 사랑과 열정으로 개척해 왔던....그래도 척박했던 한국 클러빙 환경을 한순간에 쑥대밭 개판으로 만들어 놓더니.. 이젠 일렉트로니카란 용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다.. (쓰는게 뭐 잘못 되었겠냐마는...)
시대정신 따위는 아예 바라지도 않지만 맹목적인 상업효과만 의식한 이 짓거리도 이젠 적응하다 못해 따를때도 되었건만.. 볼때마다 화는 치밀어 오른다..

여기서 저기서 일렉음악이건, 시부야 케이 비스므리한 음악이건, 쌍팔년도 유로 댄스 팝시런 음악이건 뭐건 뭣 좀 들어가면 '무슨 무슨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 떠들어 댄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엄연히 따지면 유치뽕짝 쌍팔년도 식 댄스 음악도 엄격히 일렉트로니카 범주에 들어간다...)

어쨋든 '일렉트로니카' 음악을 들어 온 이들에게 만족을 안겨준 그 희소성의 가치는 이제 다 한 듯 싶다..
이렇게 해서 일렉트로니카는 그 태생으로 돌아간다...
그 천박하고 저주받은 1995년의 미디어 과대 선전의 의미 속으로 ....

이제부터 일렉트로니카 하면 ARS ELECTRONICA를 떠올리는 것이 심신에 도움이 될 듯...

Bonus:
WOW by Sirius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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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9월자
              Krautrock과 Kraftwerk: 독일 김치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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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후반의 음악 씬은 히피의 문화 혁명을 겪고 프로그레시브 락과 아트 등이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죠지 해리슨에 의한 후기 비틀즈 사운드(‘I am a Warlus’ ),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 등이 선봉장을 맡았었다. 이들의 Hedonistic 헤도니스틱 (쾌락주의적) 사운드는 아직도 기존 음악이 가지고 있던 (히피의 뿌리를 벗어나지 못한) LSD 영향과 정치적 성향을 극적으로 극복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혹은 논외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사운드는 어느 정도 엠비언스와 기계음의 미학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편에서는 Stockhauzen 쉬톡하우젠과 같은 전위 음악가들이 에드가 바레즈의 바톤을 이어 받아 좀더 깊이 있고 자유로운, 하지만 아직 엘리트적인 틀에 갇혀 있는 전자 음악 사운드의 실험을 추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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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맥락을 2 세계 전쟁의 범인이라는 엄청난 죄의식은 자존심과 민족성이 강한 독일인들에게는 크나큰 상처였다. 또한 전쟁 이후로 세계 1 파워가 미국의 문화적/예술적 식민주의 정책 또한 독일의 아티스트들에게는 뼈저린 고통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60년대가 막을 내리고 있을 무렵 세계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는 독일에서 크라우트락 Krautrock이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Faust 파우스트, CAN , Neu! 노이!, Kluster 클러스터, Popul Vuh 포폴 , Tangerine Dream 탠져린 드림, Kraftwerk 크라프트베르크 등에 의해 주도 흐름은 60,70 Rock 밴드의 형태 (ex. 기타, 드럼, 베이스) 취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에드가 바레즈에서 쉬톡하우젠으로 이어지는 독일 아방가르드 전자 음악의 실험 정신과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의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열어놓은 -전자음악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을 확장 시켰다. 이들은 주류 시대 정치적/문화적 사상에 반항적이었던 락과는 별개로 테크놀로지에 의해 정의 되는 세상을 직시하며 새로운 미학을 추구해 나갔다. 따라서 이들의 사운드는 미국 문화 식민주의에 대한 반발이라는 맥락에서는 정치적이지만, 음악적으로 좀더 학구적/미학적 이였고 서민적이면서도 기계적인 엠비언스가 가득한 '공장 심포니' 가까웠다. (선형적이고 직설적인 기존 락과는 달리 자유롭고 해체주의를 지향하는 Freeform Rock 프리폼 또는 사운드 꼴라쥬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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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의 가장 특징은 전자 음악 평론가 Peter Shapiro <Modulations>에서 묘사하고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나의 손가락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있는지를당신은 나를 보고 감탄 것이다 대해 빠져 있었다면, 크라우트락 아티스트들은 보아라, 내가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우리는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보다는 그들을 치유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크라우트락이 200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가지를 찾을 있다. 째는 앞으로 (70년대를 기준으로) 다가올 암울하고도 희망적인 모순적 테크놀로지 중심 사회를 인지한 그들만의 외로운 외침이다. 데스크탑 컴퓨터를 넘어 랩탑, 핸드폰, Mp3, PDA, PMP 각종 디지털 기기와 인터넷에 의해 네트워크화 지금 디지털 사회에 의해 우리 인간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컴퓨터 없이 업무 생활이건 불가능 사회가 왔다.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보여주듯 네트워크가 이상을 일으키면 국가뿐 아니라 세계가 순간에 정지될 수도 있는 사회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까지 변할 것이라 그들 또한 인지하지 못했겠지만 그들의 사운드 안에는 충분히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번째 성격으로 말할 있는, 그들이 추구했던 기계적 사운드에 담긴 깊은 엠비언스다. 바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담겨 있던 너무나 완벽한 아트 뮤직의 한계를 소리와 테크놀로지를 통해 확장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오선지에서 벗어난 무한한 우주의 세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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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에서만도 하루에 억만 건이 넘을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에 왔다 갔다 정보들의 흐름에 대해 상상해 있는가? 만년 전과 다를 없이 인간은 신체를 움직여 일하고 있지만 그런 동시에 수많은 정보들의 움직임과도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정보들의 움직임이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은 우리보다 빨리 그리고 멀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받아 들일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건축의 관점에서 월드컵에 의한 시청 앞의 광장화 라던지 운하 건설 계획 같은 당장 앞에 보이는 것만 갈아 치우는 개발주의적 마인드가 낡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 말로 누구를 선동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 밝혀두고 싶다) 어차피 땅을 파해 칠수록 지구의 수명을 단축할 뿐이고 좁게는 그루의 나무가 살아 숨쉬는 맑은 공기의 공간을 없어지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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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기회와 성공을 향한 말초적인 본능과 이에 의해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소중한 꿈까지 포기하며 매달릴 밖에 없는 사회 그리고 그것이 헛된 병아리의 날갯짓이라는 것에 대해 절망할 밖에 없는 사회, 바로 이것이 테크놀로지와 자본주의가 합작해서 만들어낸 현대 사회이며 예술품이다. 그리고 말초적인 사회 안에서 홍수처럼 밀려드는 가벼운 메이져 영화와 대중 음악 속에서 우리는 순간마다 위안을 얻을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음악 가수들의 생명이 짧은 것도 이유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가지지 못한 다수들에게 작위적인 꿈과 희망과 안심을 선사하려면 만큼 분위기도 빨리 바뀌어야 한다는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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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이 현대의 우리에게 선물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자신 만이 빠져들 있는 깊은 공간 ,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떠올려 보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칸트.) 처음에 언급 했듯 정형화된 오선지에서 벗어난 자유롭고도 무한한 세계로의 창문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음악에서의 엠비언스다. 엠비언스란 말이 난해하게 들릴 뿐이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이유와 해결을 찾을 있게 도와주는 치유의 음악이고 소리 조합이다. 영화 <라따뚜이> <초밥왕> 같은 만화에서 여러 음식들의 조합을 통해 무한한 우주와 형이상학적인 세상에 눈을 뜨는 것처럼 엠비언스는 소리의 새로운 공간으로 듣는 이를 유도한다- 마치 소시지 맛만 보다 사우어크라우트 (독일 김치) 맥주를 곁들이며 환상적인 조화에 의한 새로운 맛의 공간에 눈을 뜨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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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우트락은 70년대 뉴웨이브와 펑크의 등장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흔적은 훗날 Tortoise Coil 등으로 대변되는 인더스트리얼과 포스트 펑크 뿐만 아니라 뉴에이지, 포스트락 음악 영역 전반을 통해 발견된다. 물론 대부분 크라우트락 밴드의 사운드는 대중 손쉽게 접근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가득한 소음과 난해함으로 여겨질 있었던 사운드가 대중들로 가까이 다가갈 있도록 것은 바로 크라프트베르크가 적극적으로 사운드를 끌어 안으면서부터 였다. (물론 엄격한 장르적 의미에서는 시점 이후의 크라프트베르크 사운드를 크라우트락이라 부를 없을 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미학적 사상과 가치 추구는 크라우트락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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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의 수용은 1972 <아우토반> 세계적 성공으로 들을 훗날 다가올 전자 댄스 음악 문화의 아버지로 만들게 된다. 이후 철저한 과학문화의 수용과 기계 안에서 존재하는 영혼의 믿음 그리고 미래 기계문명 사회의 공허함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었다. 자동차와 라디오의 찬양을 거쳐 인터넷이 나오기도 이전에 컴퓨터를 사용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미래 인간의 허무함과 절망감등을 노래한 것이 좋은 예다. 당시 쉽게 없었던 최고의 테크놀로지, 기계음을 통한 미래적 사운드와 그들을 대신하는 로보트 인형의 등장, 미니멀리즘적 전개로 인한 간결함과 몽환적 분위기 등은 그들의 철학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깊은 철학을 배경으로 그들은 미래에 어울리는 음악을 구현하고자 것이다. 그들의 앨범 하나하나는 모두 완벽하리만큼 철저한 컨셉트 앨범이었으며 여기서 기계의 영혼화, 인간의 기계 제어라는 미래 사회의 예시와 지나간 역사의 향수라는 미래에 다가올 테크놀로지 사회의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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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라프트베르크의 음악은 이미 70년대 데이빗 보위 등의 당대 내노라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80년대 미국과 영국의 주류 음악인 일렉트로 (Electro) 신스 (Synth Pop) 그리고 힙합 음악과 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크라프트베르크의 미래주의적인 기계문명의 미학은 80,90년대를 뒤흔들 디트로이트 테크노(Detroit Techno)에서 절정을 이루게 된다. 그들이 꿈꾸던 미래지향적 현대 문명의 사운드가 마침내 탄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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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거의 모욕에도 가까운 크라우트락의 명명은 역시나 시절 악명 높은 영국의 음악 평론가가 지어준 것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아티스트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Krautrock으로 알려지는 것에 꽤나 불쾌해 한다고 한다. (타국인이 '김치음악이라 명명하는 행위 속에 내포될 있는 은근한 조롱의 맥락). 어찌하였건 메탈이나 기존 주류 음악에만 빠져있던 리스너들에게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선사할 음악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뉴에이지나 엠비언트, 인더스트리얼 음악에 대한 깊은 포용도 가능하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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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mmended Krautrock Music
1. <Neu!2> by Neu!
2. <The Faust Tapes> by Faust
3. <Tago Mago> by CAN
4. <Musik Von Harmonia> by Harmonia

5. <Yeti> by Amon Düül II

Recommended Kraftwerk Music
1.<Autobahn>
2.<Trans-Europe Express>
3.<Computer World>
4.<Radioactivity>

5.<The Man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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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 Vibe Upon the World 12:
이 시대의 디지털 좀비를 위한 사운드트랙 ,

                         Nu-Italo D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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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행이란 너무 빨리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 이게 유행이다 싶어 좀 맛보려 하면 벌써 한물가고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트렌드가 그 빈자리를 채운다. 정말 정신 없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하루 바삐 변하는 유행에 적응하기 위해 더욱 발을 동동 구른다 . 따지고 보면 항상 새롭게 태어나는 ' 유행'이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특정 세대가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지 않았던 과거의 무언가를 미디어가 억지로 끄집어내어 세련되고 그럴듯한 포장을 하는 것뿐이다. 블링 독자들이 몸담고 있는 클럽 문화도 별 다를 것 없다. 최근 2년 사이에 세계 클럽 /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계는 벌써 두 세가지 이상의 유행의 파도를 맞았다. 대표적으로는 지난 회들에서 언급했던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 뉴레이브 Nu-Rave, 블로고하우스 Blog-house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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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미국에서는 락 밴드를 위주로 한 댄스펑크 Dance Punk의 화려한 크루세이드가 진행 중이었고 이에 질세라 영국도 80,90년대 레이브의 재탕인 뉴레이브를 선보였다. 또한 전 세계 mp3 블로그들에 힘입어 다프트펑크 Daft Punk로 대변되는 90년대 프렌치 하우스 French House의 르네상스 제 2기인 신종 프렌치 사운드가 전 세계 언더그라운드 클럽계를 접수했다 . 아니, 아직도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뉴레이브와 블로그하우스들의 열풍이 수면 위에 떠오른 건 1년 남짓한 일인데 또 하나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고 있다. 바로 이탈로디스코 Italo Disco의 재 출현이다. 뭐라고 불러야 할까? 뉴이탈로디스코 Nu-Italo Disco? 미국의 클라스캔디 Glass Candy를 필두로 러스 마이어의 <Beyond the Valley of the Dolls 인형의 계곡을 넘어서> <록키 호러 픽쳐 쇼 The Rocky Horror Picture Show>를 연상 시키는 camp 캠프 미학에 젖어든 Freak Show 프릭쇼의 경험을 선사하는 이 움직임은 <After Dark> 콤필레이션 앨범 출시와 함께 전 세계 언더 음악 및 클럽계를 술렁거리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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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떠오르는 느낌을 말하자면 전 세계 어느 곳을 훑어 봐도 미국처럼 하위 문화 (언더 문화)가 다양하고 탄력을 잘 받는 곳도 없다는 것이다. 나라 없이 떠도는 유대인들, 노예 시절을 겪은(혹은 겪는) 흑인들, 영국에서 도망 온 백인들, 핍박 받았던 동양인들과 히스패닉들 이렇게 '어둠' '고통 '의 경험을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나라라서 그럴까? 비록 200년 남짓의 역사는 그들로 하여금 유럽처럼 오랜 문명을 가진 나라들을 향해 (혹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기에 충분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유럽의 ' '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열정적인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창출해 왔다 . 히피, 레이브, 90년대의 뉴욕 클럽 문화 등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미국 주류 문화는 언제나 이 언더 문화들을 강하게 저지 시켰고 결국은 외국으로 역 수출되어 성공한 케이스가 흔하다 .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흑인 음악이었던 테크노가 유럽으로 건너 간 것이나 레이브 열풍이 미국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유럽에서 그 결실은 맺은 것처럼 말이다. 그나마 움직이고 있던 Dance Punk 문화도 영국에게 빼앗겨(?) Nu Rave 로 포장 된지 얼마 안돼 Nu Italo Disco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70,80년대 조지오 모로더 Giorgio Moroder에 의해 탄생 된 유로 디스코 Euro Disco와 사일베스터 Sylvester로 대변 되는 후기 디스코 사운드인 하이에너지 Hi NRG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이 움직임은 언더 중에 언더 문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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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년대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 Kraftwerk가 기계문명을 찬양하며 신스팝 Synth Pop과 테크노Techno 사운드의 초석을 마련하고 있을 무렵 그들의 업적에 버금가는 사건을 터뜨린 이가 바로 유로디스코의 창시자인 조지오 모로더다 .(이 또한 독일인이다) 무그 Moog, 프로펫5 Prophet5 같은 새로운 신디사이저에 심취해 있던 모로더는 독일의 락 뮤지컬에서 활동하던 무명의 여가수 도나 섬머Donna Summer를 발탁하여 1975년 수많은 컨트로버시를 낳은 17분짜리의 문제작 ' Love to Love You Baby'를 발표한다 . 섬머의 차가운 목소리와 모로더의 미니멀하고 순수한 일렉트로닉 디스코 사운드의 환상적인 조화는 1977' I Feel Love' 가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 결실을 맺는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반복과 흑인 특유의 Soul Funk의 난해한 리듬을 단순화 시킨 4-to-the-floor 리듬 , 10분이 넘어가는 12" extended 믹스 싱글 그리고 이들의 케미스트리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는 하우스와 테크노의 또 다른 초석인 유로 디스코를 탄생시키고 도나 섬머를 시대 최고의 섹스심벌이자 아이스 퀸으로(기계적 에로티시즘) 등극시켰다 . (모로더와 섬머의 에로틱한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성적인 흥분이 얼마나 강했는지 레코드사 사장의 환상적인 ' 밤 생활'을 위해 17 분의 익스텐드 믹스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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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디스코라는 음악에 기계와 섹스라는 성적인 코드를 부여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크래프트베르크 Kraftwerk나 탠져린드림 Tangerine Dream 같은 그룹이 신디사이저 사운드를 통해 기계 문명 안에서의 스피드 , 사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본 기계 문명으로 인한 불안한 미래 등과 같은 ' 엘리트'적인 담론을 내포하고 있었던 반면 모로더와 같은 유로디스코의 선봉장들은 신디사이저를 통해 인간 내면의 원초적이고 성적인 페티시즘 /섹슈얼 코드와 기계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만들어 주었다. 이는 70년대 디스코가 지향하던 '기계적이면서도 에로틱한 사운드와 리듬, 그로 인한 환상과 쾌락의 유토피아 '의 주춧돌이 되었다. 흑인 음악 특유의 Funk, Soul, Groove한 리듬 요소가 드럼 머신에 의해 차갑게 변모하고 '쾌락의 정치학' 은 핍박 받던 사회적 마이너들인 흑인이나 히스패닉 게이 커뮤니티에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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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년대 후반 미국의
' 디스코 죽이기 운동'의 직격탄은 다시 디스코를 주류에서 지하로 끌어내렸으며 여기서 모로더가 추구하던 기계미학과 마이너들의 '쾌락의 정치학 '의 계승이 사일베스터 Sylvester의 하이에너지 Hi NRG와 함께 다시 이어진다. 하지만 사회에서 버림 받은 외톨이가 더욱 더 삐뚤어지듯이 이 지하 세계의 디스코 사운드는 좀더 괴기해져만 갔다 . 인간인지 안드로이드인지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속도는 빨라지고 사운드는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다. 그 후로 피펑크 P-Funk, 하우스 House, 트랜스 Trance, 하드코어 Hard Core의 새로운 장르들이 제각기 옛 유산을 버리고 자신의 개성을 찾아 떠남에 따라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은 점점 잊혀져 갔다 . 그리고 2007년 지금 뜬금 없이 그 오랜 공백을 <After Dark> 앨범이 다시 메우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올가즘 Orgasm이나 성적인 코드와는 상관 없이 Hi NRG와 함께 떠오른 유럽의 몽환적인 스페이스 디스코 Space Disco의 코즈믹 Cosmic한 사운드 역시 After Dark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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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닉 유스 Sonic Youth로 대변되는) 노웨이브 No Wave 음악 성향에서 어두운 이탈로 디스코 사운드로 변모한 글라스캔디Glass Candy를 주축으로 한 이탈리언즈 두 잇 베터 Italians Do it Better 레이블의 콤필레이션 앨범인 <After Dark>는 확실히 10 년에 나올까 말까 한 명반임에는 틀림 없다. 하지만 이들이 표방하고 있는 뉴이탈로 디스코는 블로그 하우스나 뉴레이브처럼 선동적이거나 대중적이지도 않고 그들만큼 주류로 호응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언더그라운드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씬이 그러했듯이 언더그라운드의 그 깊고 어둡고 음침한 우물 속에 고여있지 않을까 싶다 . 이 움직임은 포스트 모던 사회 안에서의 극단적 해방, 탈출의 염원과 절망, 그로 인한 변태성의 표출이라는 사회적 마이너의 정신의 DNA를 그대로 간직하기 때문에 영원한 언더 중의 언더 씬으로 자리 잡을 운명은 그 시작부터 부여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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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여기서 이 앨범과 참여 아티스트들이 주목 받아야 하는 것은 단지 앨범 및 각 트랙의 완성도와 더불어 70,80년대 일렉트로의 유행에 힘입어 쏟아져 나오는 현재 복고풍의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사운드적/문화적 어설픔의 충족 뿐만이 아니다 . 전자 댄스 음악 문화에 있어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포스트 디스코 사운드와 옛날 B-급 영화의 캠프 Camp 적인 성향의 귀환이라는 점은 하루의 24시간도 모자라듯 초 급변하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살아가며 비상구를 찾을 수 없어 자포자기 해버릴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마지막 정신 분열적 상태를 대변해주고 있다는 것이 이 움직임의 진정한 의미다 . 지금의 80년대 복고 열풍이 대중문화로서의 랑데부를 가진 것은 몇 년 전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를 통해서 였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던 속도감의 직접적인 차용은 사운드보다 더 빠른 심리적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현대인에게 그다지 큰 어필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 . 오히려 지금 듣기엔 어딘가 너무 느려터진 듯한 Kraftwerk
' 아우토반 Autobhan' 의 사운드가 속도감속의 몽환적 경험을 더욱 깊게 선사하는 것처럼 <After Dark> 앨범의 뉴이탈로 사운드는 일렉트로클래시와 그 잔재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속도감과 거침없음의 직접적 표현을 뒤로 감추고 은유적인 미학을 취하고 있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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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는 조지 로메로 감독 영화에 나오는 자본주의의 상징인 쇼핑몰에 몰려든 좀비들을 떠올리면 된다. 그들 앞에 놓인 무언가를 향해 맹목적으로 전진하는 좀비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지도 않고 정체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걸림돌에 계속 걸리며 불편하고 또 그만큼 느리게 전진하는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점점 더 극성을 부리는 자본주의 후기의 각박한 삶 속에 살고 있는 우리를 떠오르게 한다 . (같은 시간과 행동을 반복하는 샐러리맨들을 보라!) 더군다나 After dark, 어둠이 사라지며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햇빛 속에 주춤하는 좀비들이 경험하는, 그 짧지만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 , 바로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여명의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After Dark>의 사운드다. 물론 이 사운드가 자리잡고 있는 클럽의 물리적 장소와 경험 또한 음침하고 더럽다. 하지만 그런 역겨움과 퇴폐함의 이물질이 현대의 정신분열적 이상인 우리 좀비들에게는 더욱 편하고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 . Kraftwerk가 현대 기계문명을 찬양하면서도 인간이 기계에 속박되는 어두운 문화를 표현했다면 <After Dark>의 사운드는 그와는 정반대로 기계의 인간화를 표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디지털 사회의 물결 속에 진정한 안드로이드가 되어버린 우리들이 알지도 못하는 혹은 망각해버린 인간의 감정과 감성을 되찾고자 하는 슬프고도 소용없는 몸부림이랄까 ?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면 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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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 Dark>가 추구하는 코즈믹하고도 정신분열적인 포스트 이탈로씬은 그 자체로서 마약이며 알코올이다 . 이들의 사운드와 함께 한다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무언가에 취해 비틀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아직까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행복과 희망에 자신감을 가지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어설프고 저질적인 경험이겠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차마 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자살조장이 아니라 생명이란 한정되어 있기에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의 현실 도피 성향의 회의주의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 혹은 심리적 시간의 '지체' 일 뿐 손목에 찬 시계는 0.1초의 흐트러짐 없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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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 (언제나) 지면 상의 문제로 못하는 얘기가 있다. 하나만 언급하자면 After Dark의 어두운 사운드와는 반대로 이탈로 사운드의 회귀는 여러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다 . 피치포크미디어가 지적했듯 이탈로의 낭만주의적 인디팝을 표현하는 샐리 셔파이로 Sally Shapiro, 쎄론 Cerrone의 에로티시즘과 비 에로티시즘격인 스페이스 디스코의 접점인 블랙데블디스코클럽 Black Devil Disco Club, 변태적 롤리타 보컬 성향의 Cloeatta Paris, 라이엇걸 Riot Grrrrl 미학에 블루스/소울을 가미한 캐시 다이아몬드 Kathy Diamond 또한 뉴이탈로 움직임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대표주자들이다 .



Recommended Nu Italo Disco Tracks:

1.    http://www.nowtoronto.com/issues/2005-02-24/music_feature4-1.jpg  Rolling Down the Hills by Glass Candy


2.     photo_128.jpg Night Drive by The Chromatics



3.      You’re the One by Farah


4.     http://www.exclaim.ca/images/up-cloetta_sml.jpg St.Elmos Fire by Cloeatta Paris


5.    http://www.villagevoice.com/blogs/statusainthood/diamond.jpg I need you by Kathy Diamond



6.      Lake of Dreams by Mirage




7.   http://this.bigstereo.net/wp-content/uploads/2006/07/sallyshap.jpg  Anorak Christmas by Sally Shapiro


8.     http://www.almostcool.org/mr/art/1880On Just Foot by Black Devil Disco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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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Candy 공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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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insman.epix.net/patricia/images/gcvt2.jpg

Blogged with Flock



수많은 리메이크를 낳은 Ben E King의 히트 곡 스탠드 바이 미...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아이들 같지 않게 영악해졌다 하더라도..

동심은... 항상 신비롭고 부럽다..

젊음 VS 동심... 이 중 한가지를 택한다면 뭘 택할까?


어쨌든 디제이 체크의 리믹스 버젼을 듣고 또 다시 감동..그리고 몇 가지 다른 리메이크 버젼을 올려본다.

Stand by Me Remix by Czech

BReak 비트가 돋보이는 체크의 리믹스 버젼..
Stand by Me III by John Lennon & Paul McCartney [A Toot And A Snore In '74]

Stand By Me Damien Rice w/ the "Bear" & Rachel Yamagata

Stand by Me by Ben E King Original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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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R & Vibe Upon the World 11: Rave Typology

* 분류는 로빈 사일비안의 트랜스포메이션 <Trance Formation>을 참고했음을 밝힌다.

 

인터넷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자동차에 대해 말할 때 요즘은 그저 스포츠카라고 부르는 것을 뛰어 넘어 로드스터와 쿠페를 구분할 줄 아는 세대로 접어 들었다고 한다. (사실 난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시대에 뒤떨어져 가는 것인지) 마찬가지로 그저 파티가 아니라 자신이 어느 형태의 레이브 혹은 클러빙의 경험을 하고 있는 지 알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웨어하우스 언더그라운드 레이브 (Underground Warehouse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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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형태다. 하우스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프랭키 넉클스의 시카고 웨어하우스(창고) 파티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웨어하우스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듯이 참여와 준비에 있어 상당히 비밀스러운 과정을 요하며 레이브 시절 초기에 성행했다. 대게 버려진 창고 같은 곳을 찾아 원-샷 이벤트 식으로 열렸기 때문에 경찰의 눈을 잘 피해야 했고 당연히 모이는 사람들도 소위 말하는 '인사이더'들이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가 계획되면 지인들이나 동네 언더그라운드 레코드 가게들을 통한 플라이어를 얻어 (혹은 이메일이나 자동응답을 통해) 날짜와 연락처를 받게 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벤트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녹음된 메시지로 장소를 확인 하는 경우가 많았다. 혹 더욱 비밀스럽게는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 레이브 관련자가 그 곳에서 직접 장소를 말해주고 레이버들은 그에 따라 다시 방향을 돌리는 식이었다. 또한 클럽과는 달리 오프닝과 엔딩 세레모니가 따로 마련되어있기도 했다. 이런 비밀스러운 '모임' 의 분위기는 레이버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유대감을 더욱 강화시켰고 일종의 '자신들만'의 이벤트로서 일종의 종교적인 측면을 강조 시키기도 했다. 물론 이벤트 플래너들의 일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그 날의 '확실한' 경험을 위해 DJ 부킹은 물론 사운드, 비쥬얼, 데코레이션, 먹거리 (특히 물), 경찰로부터의 안전 보장 등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레이브와 클러빙의 성공여부는 바이브를 끌어낼 수 있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웨어하우스 레이브의 경우 이 '바이브'를 느끼기에 가장 수월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초기 레이브의 첫 경험은 단순한 행복과 쾌감을 뛰어 넘어 인생관의 전환점을 맞게 했다고 많은 1세대 레이버들은 증언하고 있다. (흔히 레이브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It went-Off’란 텀을 쓴다)

대게 밤 10시~12시 이후에 시작되고 피크타임은 새벽 3,4시 정도이다. 레이브가 끝난 후 레이버들은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거나 오후까지 열리는 애프터 파티로 향하기도 한다.

90년 대의 초기 미국 샌프란시스코 레이브 씬이 이 웨어하우스 파티로 유명하다. 그레그 해리슨 감독의 영화, '파티는 시작되었다 (Groove,2000)'이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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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바, 라운지 (Club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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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국내에서 '클러빙','파티'라고 하는 이벤트의 대부분이 이 분류에 해당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이브/클러빙의 첫 경험을 하게 되는 공간이다. 앞서 말한 웨어하우스 레이브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웨어하우스가 '언더그라운드'인 반면 이들은 어느 정도 혹은 완전히 '오버-그라운드'라는 것이다. 법적으로 승인을 받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만큼 언더그라운드 파티와는 달리 마약이 규제되고 술이 합법적으로 판매된다. 또한 이 곳을 가기 위해 '인사이더'일 필요도, 지인을 알아서 때와 장소를 알아내야 할 필요도 없다. 입장료만 있으면 언제나 '웰컴'이다. (따라서 엄격히 따질 때 요즈음의 클럽을 순수한 차원에서 레이브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이러한 상업적 측면은 그만큼 시공간적 접근성을 높이기 때문에 클러빙과 레이빙의 첫 경험을 이곳에서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비주류 레이브보다는 덜 유토피안적이고 타인과의 허물없는 시간을 보내기 힘들기 때문에 레이브에서 느낄 수 있는 바이브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 (엑스터시 때문이라기 보다는 현재 클럽 씬의 분위기 그 자체의 문제로 보여진다)

클럽 오너가 직접 주기적으로 파티를 계획하는 경우도 있고 이 공간을 빌려 서로 다른 프로모터들이 돌아가며 자신들의 파티를 여는 경우도 있다. 상업적 측면이 강한 유명 DJ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웨어하우스 레이브와는 대조적으로 종교적이고 유대적인 오프닝, 엔딩세레모니, 애프터 파티가 생략되고 새벽 2~5시 사이에 (법적인 문제로)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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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부분의 클럽이 이 형식에 속하며 80년대 후반 애시드 하우스로 물들은 영국 씬은 이른바 클러빙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토니 윌슨의 하씨엔다와 더불어 이비자의 발레릭 씬에 영향을 받은 닉키 할러웨이, 폴 오큰폴드, 대니 램플링의 트립, 스펙트럼, 슘  클럽 등이 유명하다. 특히 슘은 영국 최초의 레이브 클럽으로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랑과 환희의 바이브는 아직까지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다. (아무래도 이 때는 초기 애시드 하우스 시절이었던 만큼 언더그라운드 적 현상으로서 클럽과 레이브에서 엇비슷한 바이브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대규모 상업 레이브 (Massive and Commerci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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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가 엄청난 만큼 '매시브'라고도 불린다. 실내/야외 이벤트를 포함하며 몇 백에서 몇 만까지의 인파가 몰려든다. 큰 이벤트인 만큼 기업체의 스폰스를 받기도 하고 매체를 통한 광고도 대대적으로 펼친다. 따라서 장소가 '공개'된다는 측면에서 언더그라운드 레이브와 대립된다. 사운드 시스템, 조명 등 화려하고 압도적인 분위기 연출에 있어서 많은 투자를 하며 주 라인업은 로컬이 아닌 수퍼스타 DJ들이 장식한다. 따라서 일종의 락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레이버들 간의 유대감은 소규모 클럽 보다도 더욱 줄어들게 된다. 이러한 이벤트를 준비하는 프로모션 또한 이상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레이브 분위기의 연출 보다는 상업적 목적을 주로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참여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고 비교적 어린 층으로 한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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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레이브 (Outdoor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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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이브의 유토피아적인 이상을 창고라는 갇혀진 공간에서 자연이라는 넓고 포용적인 공간으로 확대 시킨 개념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야외 레이브 또한 영국,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전 세계적인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야외에서 펼쳐지는 만큼 여느 클러빙이나 레이브처럼 20,30분 운전해서 갈 거리가 아니다. 따라서 각자의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야 하는 만큼 이벤트에 가기 위해서 좀더 많은 시간과 체력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이 결과 자동적으로 참여자의 '필터링' 작업이 펼쳐진다. 간단히 말해 이런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진짜 '모일 사람들'만 모이니 그 유대감과 경험의 레벨은 당연히 높아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숨막히는 자연경관과 함께 일체감을 느끼는 초월적인 경험은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트라이브의 풀 문 게더링 (Full Moon Gathering)이 대표적 사례로 꼽히며 다큐멘터리인 '베터 리빙 스루 서키트리 (‘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1999'가 야외 레이브 씬을 잘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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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Living Through Circuitry, 라스트씬>


 

페스티벌(Festival 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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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레이브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다. 하루가 아닌 2,3일 또는 일주일 동안의 기간 동안 진행되는 일종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녹아 들은 이벤트다. 유명한 페스티벌들인 글라스튼베리, 크림필드, 홈랜드, 코첼라, 버닝맨, 러브 퍼레이드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여기서 몇 가지의 성격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우선은 두 가지로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상업적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며 우드스톡적 성격을 어느 정도 계승하는 것 (히피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인 성향: 스톤헨지)과 그렇지 않은 것 (크림필드).

자연 경관이 뛰어난 사막이나 초원 등지에서 펼쳐 지기 때문에 위에 언급했듯이 장소에 가기 까지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도심지에서 열리기도 한다) 또한 몇 일이 넘도록 수많은 인원들이 같이 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에 하루, 이틀에 불과했던 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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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브의 일시적 커뮤니티 개념이 좀더 확장된다. 우드스톡도 그러했지만 이런 대규모 야외 음악/예술 페스티벌을 향한 기성세대의 시선은 오래 전부터 좋지 만은 않았다. 그 결과 (70년대 이후 포스트 히피 세대들) 테크노와 에시드 하우스, 락이 혼합된 페스티벌의 주역들인 영국의 피스 콘보이 (뉴에이지+히피), 지피(히피+80년대 후반 테크노), 스파이럴 트라이브 등이 정부와 기성 세대에 맞서 스톤헨지, 캐슬모튼, 글라스튼베리 등지에서 때로는 피를 흘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지금까지 지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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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주목할 것은 단연 독일의 러브 퍼레이드다. 요번 '하이 서울 페스티벌에 왔던 DJ 닥터 모트에 의해서 음악을 통한 평화와 이해라는 모토로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서 (89년 100명 남짓한 인원으로 시작해서 2003년엔 75만명, 2006년에 이르러 120만 명을 끌어 모았다) 베를린 전체가 레이버들과 클러버들의 잔치판이 된다. 이는 레이브로 대변되는 전자댄스음악 문화가 얼마나 주류 문화에 깊이 파고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오후, 저녁 시간을 이용한 도심 퍼레이드로 시작해 새벽을 향한 광란의 크고 작은 애프터 파티들로 이어지는 베를린의 러브 퍼레이드는 레이버들에게 일종의 성지 순례이며 정부,시청 입장에서도 나치 국가의 이미지 쇄신과 관광, 문화 수입원이 대단한 만큼 안전, 화장실 제공, 청소 등 아낌 없는 지원을 펼친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이 일장일단이 있듯 몇 일간 시끄러워지는 이 도시를 견딜 수 없어 시간에 맞추어 딴 곳으로 여행을 떠나버리는 베를린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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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스튼베리 페스티벌

 


                        <Love Parade 2006 Anthem- United States of LOVE by Westbam>

리트리트(Retr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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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상의 문제로 자세한 설명은 못하지만 위에 언급한 형태들보다 새로운 개념의 진화된 레이브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이 리트릿을 레이브로 부를 수 있는 타당성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다.)  게더링 오브 트라입스(Gathering of Tribes), 리듬 소사이어티 (Rhythm Society), 트라이벌 하모닉스(Tribal Harmonix) 등이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데 종교적이고 유토피안 커뮤니티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음악과 댄스가 난무하는 레이브 뿐만 아니라 워크샵이나 명상 활동 등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레이브의 원형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개념을 (사랑, 평화, 평등, 존중 등) 가르치고 토론하고 실천한다. 바로 서로 존중하고 평화로운 ‘건강한 커뮤니티 구축’에 깊은 뜻이 있다. 더 나아가 이 리트릿에 참여 했던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에 이 이상이 녹아 들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들 그룹은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있으며 참여 또한 추천에 의해 가능한 ‘작고 닫힌’ 사회다. 그런 만큼 자신들의 덩치를 키우는 것에도 민감하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할 줄만 알아도 얼마나 편한 세상이 될까… 정말 이상적이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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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ntion 6 - Tribal Harmonix Community 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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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Candy, Dandi Wind 이후 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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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센스 있는 뮤직비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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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peranza---> Hope ---> 희망

한창 트랜스에 빠져있던 시절 즐겨듣던 anthem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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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Air의 신보 Pocket Symphony
그 플레이 리스트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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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 du Japon, 즉 일본해라는 음악이 있다...
air 가 일본과 한국 사이의 텐션은 당근 몰겠지만
국내에 상당 수 팬을 보유한 air의 이 음악에 국내 팬들은 어케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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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Once Upon a Time 뮤직 비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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