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ger Avery [Killing Zoe],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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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의 감독의 영화들에 항상 붙어다니는 이름이 하나 있다. 타란티노가 영화 긱(Geek)이였던 시절 죽이 잘 맞던 친구였던 로져 에버리.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과 트루 로맨스의 스크립트 작업에 부분적으로 참여 했고 펄프픽션의 스토리를 쓴 장본인이다.
킬링 조이는 프랑스 간판 배우인 쟝 위그 앙글라드와 쥴리 델피 그리고 에릭 스톨츠가 출연하는 B-급 느와르 영화다. 단지 컬러로 만들어졌을 뿐...  타란티노의 연출이 촐싹맞다고 느껴지는 이들에게 진정한 한방을 선사해줄 명작이다.

영화의 배경은 파리지만 오프닝 씬만 파리에서 찍었을 뿐 모두 로스엔젤레스 로케이션 촬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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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신이 속해 있던 세대에 대한 극한의 예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비록 세상을 더 밝게 만들려는 희망에 찬 낙관 주의자들도 존재하지만 당시 에버리에게 90년대의 세대는 병들은 문화에 찌들은 세대였고 그는 그 속에 들어 있는 극단의 폭력성을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비록 LA 로케 촬영이었지만 파리를 표방한 설정과 느와르 그리고 블랙 코미디의 전개는 그 옛날 느와르 영화의 고향이었던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느와르 영화들에 대한 오마쥬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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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 Pop] In the Night by Basia Bu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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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추리틱한 보컬에 라이블리한 Instrumental 백킹이 조화를 잘 이루는 흥겨운 트랙으로 무슨 미국 남부 컨츄리 파티 댄스에 어울릴만하다. ^^ㅋ

카나디언 출신으로 <Oh My Darling> 데뷰 앨범은 2007년 발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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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 Pop] Divine by Sebastien Tell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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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같이 장난스러운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음악을 항상 선사하는 세바스티앙 텔리에.
80,90년대 샴푸 선전이나 레모나 광고를 떠올리는 듯한 전형적인 업비트 팝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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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nt Pop] Ames Room by Silje 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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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말을 몰라 아티스트 이름은 어케 발음 하는지 모른다. 어찌하였건 북유럽에서는 좋은 팝송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요즘 일본과 북유럽에서 엄청 튀어나오는 아방가르드 팝 사운드로 올망졸망한 글리치 사운드와 달콤한 목소리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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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 Pop] Far Away from Love by Sing-S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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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그레그 아라키 감독의 Nowhere라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에 있던 Lush의 음악을 들었을 때 참 편안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근데 이 Sing-Sing의 멤버가 옛날 Lush의 에마 엔더슨이라니!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 울려퍼지는 소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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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 Pop] Donna Donna by Tennisco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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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 도나~
일본의 인디 밴드 테니스코츠....
울 나라도 이렇게 좋은 실험적 음악을 하는 인디 밴드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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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ie Pop] Aski Kucing by White Shoes & the Couples Comp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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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도 은근히 좋은 팝 음악들이 고개를 내밀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모카 라던지...
이 밴드는 처음 들어보는데...
토속미가 물씬 풍기는게 딱 좋은 라운지 음악이다.
자카르타 대학에서 2002년에 결성된 밴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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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마켓의 거대한 유리입구는 미디어에 노출된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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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의 미스트 포스팅에 이어 이건 또 다른 생각을 해봤다.
생각이라기 보다는 워낙 영화가 메타포 투성인지라 그만큼 할 말도 많아서 어제 밥먹다가 나누던 얘기 중 흥미로운 관점이 튀어나왔었다..

바로 영화가 미디어에 대해서도 코멘트를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
바로 수퍼마켓의 큰 창문을 바로 TV화면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
그리고 왜곡된 현실에 좌지우지되는 우리같이 우매하고 불쌍한 대중의 군상을 보여주었다는 것...

요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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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안개=알수 없는 현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는 바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과 현실들이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만 그 현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현실은 관점이지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결국 우리는 어떠한 사고를 당했어도 그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 그 사고라는 현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고로 현실은 알 방법이 없을 뿐더러 현실에 대한 앎은 전적으로 미디어의 관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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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수퍼마켓의 유리 = TV 화면 (혹은 미디어 매체)
-가장 간단히 말해 TV일 뿐이다. 어떠한 미디어 매체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TV처럼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괴물이 쉽게 부셔버릴 수 있는 유리...유리는 약하다... 깨지기 쉽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
혹은 그것이 현실로부터 우리를 '막고' 있다.
이것을 미디어 매체라고 생각한다면 수퍼마켓의 입구가 유리에 쌓여 있다는 것은 엄청난 미디어 매체에 노출된 현대 대중을 의미하고 있음이 설명된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지만 현실에 대해 손을 뻗칠 수 없다.
미디어의 보호를 내던지고 현실로 나간다는 것은 괴물에게 잡아 먹힐 수도 있다는 엄청난 위험이며 도박이며 결국은 ... '안전한' 공동체를 뒤흔드는 배신행위까지 될수도 있다.
현실의 입구인 수퍼마켓 매장의 입구와 반대로 마켓의 뒷편엔 무엇이 있는가?
창고가 있다. 단단한 셔터로 잠겨진 그곳은 현실의 저 편에 자리한 막다른 곳이다.
그곳에는 현실도 없을 뿐더러 미디어가 손을 뻗칠 필요도 없는 전형적인 비주류의 공간이다.

TV를 보지 않고는 사회생활 원만히 하기 힘들다.
왜냐면 모두 TV를 보니 TV얘기 뿐이다.
드라마에 빠져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고,
오락프로그램에 빠져 힘든 하루와 일주일의 보상을 받고,
뉴스를 통해 왜곡된 현실을 바라보고,
르뽀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큰 손'들이 원하는 곳을 향해 웃거나, 울거나 , 화낸다
.
일주일에 5시간을 훨씬 넘게 TV 앞에 앉아 있는 현대인은 자신들이 얼마나 세뇌당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원만한 삶의 방식으로 정당화 시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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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기독교 아줌마 = 미디어의 선동/세뇌 장치

-사람들을 극장에서 박수치게 까지 만들었던 이 기독교 아줌마의 짜증남의 설정은 비단 종교적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더군다나 이 영화처럼 절대 집약적이고 복합적인 메타포가 혼재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의심해 볼만하다)
기독교라는 종교의 선동적 성격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미디어라는 선동 장치에 대해 더 이야기 하고 싶었던 듯 하다.
앞서 말했듯... 안개라는 보이지 않는 현실, 그리고 유리라는 미디어 매체, 그리고 바로 이 기독교 아줌마를 통해 미디어가 어떻게 매체를 통해 대중을 선동하는가에 대한 장치의 작동 그리고 그에 쉽게 영향 받는 대중들의 우매한 모습이 담겨 있다.

1920년대 즈음 미국은 자본주의를 통한 정복을 위해 (선동)'프로파간다'의 개념을 확고히 다진다.
그리고 40년대 2차대전 시 히틀러가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서 프로파간다라는 단어 자체는 사라지거나 불순한 성격을 가지게 되지만 어느새 '홍보' '마케팅'이라는 그럴싸한 경제 용어로 탈바꿈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아주 정당하고 엘리트적인 방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업체의 광고다..
간단히 주위를 살펴보라,
홈쇼핑 광고에 홀딱해 서슴없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재끼는 일이 얼마나 흔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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