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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지나면서 지난 일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것이 인간 문화의 이상한 특성 중 하나다. 그 시절에는 이딴 건 가치도 없어라고 언더들은 외치지만...시간이 지나면 미래 시대의 언더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이게 진짜야!라고 외치게 되는 현상도 벌어진다. 물론 누구나 많이 경험하는 일들이기도 하다. 정도의 차이일 뿐. 그러다가 그 시절의 진짜 언더를 뒤늦게 경험하고 놀라 까무러치는 일도 벌어지긴 하지만...

어쨋든 옛 시절 뮤지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떠했을까?
태생 자체가 행복함의 세뇌라는 뮤지컬을 보고 기뻐만 했을까?
아니면 전쟁의 상처를 애써 지우려는,혹은 정책과 이데올로기의 세뇌라는 정책에 대해 분노했을까?

이 영화에 대한 요점은 "뮤지컬이란 환상의 장치를 가지고 우매한 대중들의 자위행위"를 도와줌으로서 이 영화를 봄으로서 내 할 일은 다했다라는 '경험'을 영화관 안에서 하게 해준다는 것.
따라서 화관이라는 신비적 공간을 벗어낫을 때 내 할일은 다 했음으로 (윤리적 가치관의 달성이라는 착각을 심어줌으로서)  다시 자본주의 사회의 노예로 다시 돌아가게,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서는 모든 뮤지컬은 다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라는 매체의 완성도를 가지고 볼 때 헤어스프레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지나치다 싶을 장면들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랑말랑하고 신나는 음악과 율동에 심취에 사회적인 동물으로서의 책임감을 다 했다는 안심을 하게 된다...
그것도 두 시간이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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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헤어스프레이]를 보며 첫 30분 간 엄청나게 웃어버렸다... (너무 재밋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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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30분이 지나고 "이거 좀 너무하지 않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더니 끝무리와 중간 중간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나 아니면 (받아들임을 이미 포기한 상태임으로) 견제를 해야 하나 고민을 안겨준 영화 였다.

재밋었다는 건, 인종적 (Racial) 이슈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코믹하게 다루는 것
역사에 근거를 둔 조크(joke)를 내보내는 것... (나름대로 미국인들만의 위티한 표현)
아주 쉬운 예를 들어 ... 헤어스프레이로 백인들이 멋진(?) 석고상 머리를 장식하고 있을 때
흑인들은 같이 머리를 손보며 멋낸 머리가 "시위드 Seaweed"(미역)으로 풀이된 것...(정말 정말 최고!!!!)  {{{{{{{왜 번역가는 시위드라고 번역했을까?왜 [미역]이라고 번역 안했을까>???????????????]

암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녀, 인종, 사회지위 등의 차별적 요소를 가지고 가벼운, 웃음거리의 이야기를 했을 때 일어나는 파장이다.
그 파장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만났을 때 일어난다.... 말 그대로 파장이... 그것도 아주 폭력적일 수 있는 안좋은...
하지만 어느 정도 서로 간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던지는 한 두번의 조크는 분위기를 정화시키는 기능도 한다... "헤이 니거~"
바로 이 정화와 동감 부분이 딱 영화의 30분 부분이다.

그 이후로는 상당히 무서워 진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하지만...거기다가 노엄 촘스키의 책을 읽고 있는 상황에 본 영화라 더더욱 미국이라는 나라의 대중 '병신 만들기'의 가장 큰 주역의 하나인 헐리우드의 무서움을 세삼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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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뮤지컬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의 정서는 어떠했는지 모르갰으나 지금 우리는 그 시절 헐리우드 뮤지컬을 클래식으로 칭송하며 힘든 사회에 꿈과 희망을 실어주며 행복을 느끼게 해준 그런 작품의 형식으로 느낀다. 그리고 헤어스프레이는 그런 '선입견'을 잘도 활용하며 도에 지나칠 정도로 이 선 저 선 (line)을 넘나들며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역사와 문화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굳이 왜곡시켜야 하는 액션을 취한 것은 명료하다.
인터넷 등을 통한 정보 혁명을 통해 대중들도 이제 웬만큼 알 사항은 알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왜 모르겠는가?
옛날에는 알면서도 못했지만 지금은 알기때문에 미디어 상에서도 꺼리낌 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요즘 세상에 못생기고 뚱보라고 무시하지 말것이며 유색인종이라고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덕적 윤리적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다 아는 윤리다. (단지 속 마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받아들일 수는 없어도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는 세상에 굳이 헐리우드가 애써 모른척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대중과 가장 친한 미디어 중에 하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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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미국의 대선이 얼마 안 남아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으나 영화의 시대적 설정인 50년대에서 60년대로 넘어가는 격변기는 곧 정권 교체에 의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처럼 보여진다. (영화에서는)

60년대를 맏이하며 인종차별의 해소의 분위기와 케네디라는 밝은 태양을 통한 사랑과 평등의 시대가 도래할 것 처럼 보인다.
인종차별주의자인 미셀 파이퍼는 철퇴를 맞고, 흑인과 백인이 아무렇지 않게 결혼하고, 뚱뚱보에 못생긴 얼굴을 가져도 더 이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 교회의 사회 장악에서 빠져나온,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경제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꿈과 희망, 달나라에 첫 발을 내 디은 60년대로!
하지만 지금 위의 말들이 진정으로 현실화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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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적어도 60년대는 그랬을까?
40,50년대를 벗어나며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비로소 이념의 싸움이 시작된 긴긴 냉전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로서 정책은 정치와 분리되었고 프로파간다를 앞세워 대대적인 대중 세뇌 운동과 미디어 선전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도태되며 위기를 맞고 본격적으로 '우매한 대중'은 더욱 소수의 큰 손들에 의해 휘둘리게 되었다.
그 뿐인가? 자본주의 시대의 바람 앞에 삶은 더욱 힘들어 지고 가정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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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타당치 못한 테러 전쟁을 시작했고 그의 영부인 재클린과 함께 미국 정부를 위한 화려한 전설 만들기의 일부로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남겨졌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대대적 행진을 본 딴 듯한 극중의 흑인들의 방송국 행진 장면을 볼 때 처럼 흑인들의 투쟁은 그렇게 얌전하지 않았다. 팔장만 끼고 바라보는 극중의 경찰처럼 백인들은 그렇게 잠자코 지켜 보지 만은 않았다. 그야말로 피를 튀기는 전쟁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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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고 못생겨도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60년대를 지나고 70년대가 도래하며 먹고 살만해지자 '웰빙'과 '헬스' 붐이 크게 일어나며 사람들은 패션과 몸짱과 건강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군중앞에서 튀는 것만이, 겉으로 아름다워지는 것만이 자신을 사회 안에서 살아남게 만드는 방법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 실행했다... 이것의 극치는 80년대 MTV의 탄생과 함께 극치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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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러티브를 만들고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이들은 자본주의에 몸을 판 창녀/남들이다... 말이 그렇다 뿐이지 그들은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 줄 아는 '엘리트 들이다.'

말이 좀 과했나?
어쨋든 엘리트는 몸을 팔았고 우리같은 대중은 이용당하는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우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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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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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mas Dirge by Nellie McKay

내용은 한 마디로 '자연보호'..
인간의 크리스마스 축제를 위해 자연을 훼손하지 말아달라는 메시지 (가사는 위의 상단 박스 클릭 )
어쨋든 개인적으로 우울한 기억이 더 많은 해라 분위기가 와닿는 넬리 맥케이의 크리스마스 장송곡

집에서 혼자 우울히 보낼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만한 멜랑꼴리 한 포크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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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M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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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See Me by Kalle J

항상 디스코의 밝은 분위기가 크리스마스와 어울린다는 생각에
크리스마스 음악은 아니지만
Tavares의 Heaven must be missing an angel을 샘플링한
북 유럽의 '신동' Kalle J의 When You See Me

연인과 함께나 하우스 파티에 어울릴 만한 업비트한 디스코 하우스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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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해보지 않아 원작은 잘 모르지만 어쨋든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준 영화였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금욕'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성직자의 모습과 자본주의와의 '거래'를 통해 사람을 '처형'하는 힛맨의 적스타포즈는 상당히 흥미 있는 컨셉이었다.

매력적인 여자를 옆에 두고도 떨쳐버리는...
감정에 눈을 뜰뜻하다가도 마는...
그래도 와이너리 하나 통채로 사주며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지 모를 감정을 표출하는 넘버49인지 47의 캐릭터도 맘에 들었다.

중세 시대나 십자군과 같은 역사를 떠올려보면 종교/믿음이라는 이름 하에 '이유있는' 처형과 전쟁을 일삼아 왔다.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것은 곧 죄악이었음으로 그들의 이유는 타당하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종교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하며 그 처형의 타당성은 국가와 자본으로 넘어간다. 그들이 믿음을 행하지 않음으로서 피를 뿌린 것 처럼 이제는 자본과 사회의 '질서'를 위해 인간을 처형한다. 옷만 바뀌었지 본질을 바뀌지 않았다.

힛맨의 금욕적 설정의 모습이 더 과하게 그려졌다면... 어차피 18금 영화였는데...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벨기에나 독일에서 만들었더라면 더 좋은 (?) 영화로 거듭나지 않았을까?
이제는 옛날 처럼 고어 영화나 페티시 영화를 많이 보진 않지만 (나이 먹었나 ㅜㅜㅋ) 하... 상당히 좋은 소잰데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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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 & Vibe Upon the World 13:  2007년  10월자
              2nd Summer of Love, the London tale: 두 번째 사랑의 여름

IBIZA; 발레릭 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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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러버들의 영원한 고향인 이비자 섬은60년대만 하더라도 아무것도 없었던 곳이었지만 그 시절 공산주의자였던 프랑코 장군의 정책에 의해 새로운 관광의 요지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특히 낮았던 스페인 환율 덕분에 이비자는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지 못한 젊은 중산/노동층 영국인들에게 고아와 카쉬만두와 함께 환영 받는 휴가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비자의 공짜 파티, 보헤미안적인 열린 분위기와 아름다운 달과 별빛은 어둡고 우울한 런던에 지친 젊은 브릿들을 따스하게 맞이 했다.

이 때 Pacha와 Amnesia는 이비자의 중심 클럽으로 히피 분위기에 흠뻑 젖어있었다. 그 시절 Amnesia는 전기 공급이 없는 농장 같은 곳에서 모닥불을 피고 레게와 사이키델릭락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70년대 디스코의 시대가 도래하며 히피 세상은 막을 내리고 이비자의 클럽들 또한 나이트클럽으로서의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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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접어들며 젊은 브릿들 뿐 아니라 게이, 뉴 에이지 전도사 등을 포함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비자를 찾게 된다. (이와 동시에 전설의 엘릭시르elixir로 통하는, 엑스타시도 슬슬 이 곳을 상륙한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1987년경 이비자의 산 안토니오에 The Project라는 바가 문을 열게 된다. 영국 DJ 트레버 펑과 이언 세인트 폴이 세운 이 곳은 브릿들만의 일종의 미팅 포인트가 되었다. 프로젝트에 모인 젊은 브릿들은 암네시아로 자리를 옮겨 엑스타시에 취해 DJ 알프레도 피오리오가 선사하는 몽환적인 여행을 떠났다. (Amneisa의 DJ 알프레도 피오리오 Alfredo Fiorillo는 서로 다른 연령과 사회 계층이 주를 이루는 특이한 환경에 의해 다양한 음악으로 그들의 여행을 책임 졌다. 레게와 Funk로 시작해 존 레논의 감미로운 이매진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식의 그 만의 디제잉은 트렌드를 떠나 폭넓은 사람들의 정서를 껴안을 수 있는 이비자 섬만의 에센스를 담아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아스라이 동이 터오는 새벽의 신비로움, 히피의 유산 그리고 쾌락의 요소를 담은 발레릭 코드가 탄생하게 되었다.)그리고 Cala Salada에서 새벽을 맞이하며 몇 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카페 델 마르Cafe Del Mar로 움직여 DJ 호제 파디야가 떨어뜨리는 Art of Noise의 Moments in Love를 들으며 상쾌한 오전의 공기를 흠뻑 마셨다. 그런 루틴을 반복하며 보낸 그들만의 여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환상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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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해 9월 훗날 폭풍처럼 휘몰아쳐올 영국 애시드 하우스 씬을 이끌어 갈 핵심 인물들이 이 프로젝트 바에 모이게 된다. 폴 오큰폴드, 쟈니 워커, 닉키 할러웨이 그리고 대니 램플링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이전 브릿들과 마찬가지로 엑스타시와 함께 발레릭 사운드를 처음 접하며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이비자의 주술에 휘말린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느낌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리라 결심한다.   


다시 우울한 런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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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이 가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 곳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좌파 정당과 잦고 길었던 스트라이크를 이끈 노동계급의 패배는 젊은 브릿들로 하여금 마가렛 데쳐의 보수정당을 향한 깊은 증오와 패배감만을 안겨 주었다. 또한 데쳐의 경제 정책으로 인해 빈부의 차이는 더욱 늘어나고 모두들 신용을 이용한 소비에 미친 듯이 열을 올렸다. 이는 무인지경의 이기적 개인주의를 불러일으키고 돈이 곧 신이요 법이라는 진리를 만들어 냈다. 이 흐름 속에 찾아온 영국의 경제 침체는 사회의 약자들에게 열등감과 허탈만을 안겨 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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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분위기는 런던의 클럽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런던의 클러빙이란 그저 술에 찌들어 이성에게 집적대고 디자이너 의상으로 화려하게 차린 자신의 쿨 함을 한 것 뽐내는 것뿐이었다. 물론 그들은 춤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대략 옛날 국내 나이트 실정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런던의 웨스트 엔드를 중심으로 한 스타일 컬쳐의 공간에는 당연히 돈과 힘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낄 수 없는 그런 성역 같은 곳이었다. 이러한 트렌디들을 향한 ‘가진 것 없고, 촌스럽고 지저분한’ 이들의 열등감은 팽배했다. ‘

   
          사운드적 맥락에서 볼 때 당시 영국은 Jazz와 Funk 등의 Rare Groove에 의해 주도 되고 있었다. 그 즈음에서 나온 섹스프레스나 M/A/R/R/S 등의 팝 차트 선전이 애시드 하우스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아직까지 영국에서 애시드 사운드는 일종의 페드fed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조금씩 늘어나는 브릿-이비쟌들의 여름의 향수를 채워줄 공간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클럽 노엘과 딜리리엄이 런던에서 유일하게 애시드 사운드를 제공하였지만 기존의 Funk, Hip Hop 그룹과의 충돌이 잦았다. 예를 들어 그 때 당시 선풍적이었던 디트로이트 테크노 트랙인 데릭 메이의 Strings of Life는 댄스 플로어를 싹 비워버리는 진공 청소기와 같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비자에서의 소중함 기억을 현실화 시키고자 결심했던 오큰폴드, 폴, 램플링, 홀로웨이 등이 각기 런던에 발레릭-애시드 클럽을 열며 영국 전체 클럽 씬은 물론 브릿팝의 판도 자체를 발칵 뒤집어 놓게 된다.   


The Project & Spectrum : 광란의 월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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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데 없이 방황하는 런던의 브릿-이비쟌들에게 오큰폴드와 이언 세인트 폴은 프로젝트 클럽이라는 안식처를 제공했다. 경찰 검문에 의해 금방 문을 닫게 되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이 둘은 생츄어리 클럽에서 Future 나이트 파티를 열게 된다. 이비자의 메모리를 바탕으로 한 퓨쳐 나이트를 이끌어감에 있어 오큰폴드에게 주어진 하우스 트랙 설렉션은 긴긴 밤을 책임 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DJ 알프레도의 섬머 앤썸 등을 활용하며 오큰폴드는 발레릭 클럽의 이미지를 부각 시켰다. 그때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통한 클러빙 경험은 생소했지만 브릿-이비쟌들과 많은 로컬들은 열광했으며 성공적인 하우스 열풍의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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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이비자의 발레릭 바람이 런던 언더그라운드 클럽 계를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을 무렵 이언은 오큰폴드와 쟈니 워커에게 엄청난 제안을 한다. 바로 1500명+ 수용의 헤븐 클럽에서 월요일 파티 이벤트를 여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시도해본 적도 없는 무모하게만 보이는 이 계획은 “Spectrum: a Theatre of Madness”라는 타이틀로 감행된다. 클럽 경영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로 실패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무렵 갑자기 엄청난 센세이션과 함께 기적적인 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웨스트 엔드 트렌디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디자이너 의상을 던져 버리고 춤추기에 편안한 트레이닝 복과 배기 팬츠로 무장한 클러버들은 황홀경에 빠져 월요일 밤을 뜨겁게 불살랐다. 세련된 드레스 코드 문화와 트렌디의 전통을 무참히 깨어버린 대 사건이었다. “우리의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이었으며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억압되었던 에너지의 폭발로 인한 오버나이트 센세이션이었다. 이 새로운 열풍은 곧 i-D매거진과 같은 팬진에 소개되기도 하지만 중심 요소인 엑스타시나 애시드에 관해서는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았다. 브릿-이비쟌들에게 있어 이비자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개인적이고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자신들만의 소중한 씬을 지키고 싶은 의식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The Shoom: 걱정일랑 접어두고 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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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큰폴드 등과의 이비자 여행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대니 램플링은 그의 아내, 제니와 함께 1987년 12월경 클럽 역사의 영원한 전설로 남을 슘 클럽을 열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멋지고 섹시한지를 과시하는 웨스트 엔드와는 달리 슘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에 관한 경험이었다. 사랑, 함께함, 나눔, 인생의 환희를 모토로 삼아 슈머Shoomer들은 애시드 음악에 빠져 사랑과 희열의 밤을 보냈다. 춤이라기 보다는 음악의 비트에 빠진 쿵푸 모션에 더 가까운 그들의 프릭키 댄싱 (Freaky Dacing)은 스타일에 찌들은 시대에 얼마나 사람들이 지쳐있었나를 보여주는 거침 없는 하이킥이었다. 뉴욕의 스튜디오 54를 방불케 할 만큼 까다로운 도어 폴리시에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단 인사이더로 인정 받으면 천국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 안에서 모두는 서로를 부둥켜 안으며 사랑을 외치고 있었다. 이 세상에 그들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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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비자의 유포릭Euphoric한 경험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시간 상 가장 가까운 모체인 히피 사상을 차용했다. 사랑, 평화, 존중을 외치던 히피의 60년대는 분명 이러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첫 번째 사랑의 여름은 바로 히피의 60년대를 지칭한다) 그러한 영향과 함께 대니는 히피의 상징이었던 노란 스마일리 로고를 슘의 마스코트로 도입한다. 그때부터 “the Happy Happy Happy Happy Happy Happy Shoom Club”의 글과 함께 수많은 스마일리 로고가 눈처럼 슘의 플라이어 위에 뿌려지고 있었다. (물론 스마일리 페이스가 레이브의 상징이 된 것도 이때부터다) 제2사랑의 여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슘은 철저한 뉴스레터와 클럽 멤버십 스킴 관리에서부터 물, 과일 등의 공짜 제공 등 훗날 레이브 프로모션의 좋은 지침서로 자리 잡았다.

             만약 누군가 갑자기 당신의 볼을 쫙 잡아당기며 “웃어요~”라며 스마일리 스티커를 붙여준다면? 당신은 그를/그녀를 꼭 껴안고 “사랑해요”라며 환한 미소를 건넬 것이다. 슘은 그런 행동이 가능하고 당연한 곳이었다.


 RIP party: 런던 블랙 컬쳐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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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비자 베테랑들과 백인 위주의 성향이 짙었던 애시드 하우스 열풍 속에 RiP파티는 이비자와는 상관없이 기존 런던의 흑인 문화를 위주로 자신들만의 파티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갔다. 시카고나 뉴욕의 웨어하우스 파티 그리고 레게와 소울의 전통을 지켜나간 폴 스톤과 루 뷰코빅의 RiP(Revolution in Progress)은 테크노,애시드,개러지 사운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파를 소화해 냈다. 슘이 연령, 성, 사회적 계급 등의 벽을 허물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백인들의 파티로만 보여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RiP의 경우 흑인 백인 등의 인종별 다양성을 넘어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이었다. 옛 클러버들의 증언에 따르면 RiP파티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과 가장 추악한 사람들 모두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펑크의 배경을 가진 루 뷰코빅은 여기서 애시드 문화가 가진 정치적 힘을 보았다, 바로 새로운 변화의 물고를 틀 수 있는 강력하고 순수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조화의 힘을.

자신들만의 씬을 지키기 위해 뷰코빅은 철저히 미디어의 개입을 막았기 때문에RiP파티는 슘과 스펙트럼만큼 오늘날의 클럽 전설로 회자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디어에 의해 상처받는 수많은 언더문화들을 보면 그들만이 간직했을 ‘열정과 순수함’은 충분히 상상해 볼 만 하다.


The Trip: 애시드 하우스의 폭발 그리고 여름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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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6월 런던 웨스트 엔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애스토리아Astoria에 트립 TRIP자리를 잡으며 제2 사랑의 여름이라 불리는 레이브 / 엑스타시 열풍은 오버그라운드화 되어 버린다. 하룻밤 만에 모든 런던 주류의 클럽 사운드가 애시드 하우스로 대체 되며 소수가 아닌 다수를 위한 문화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트립의 주인인 닉키 할러웨이는 수많은 비난을 면치 못했다. 슘 클럽 또한 ‘그들만의 파티’이기를 포기한 듯 웨스트엔드의 토튼햄 코트로 자릴 옮기고 유명한 셀레브리티들을 모시기에 급급했다. 더군다나 그들의 메인 파티 이벤트를 오큰폴드의 퓨쳐 나이트와 겹치는 목요일로 재설정하며 이비쟌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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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애시드와 엑스타시에 대해 떠들어 대자 아무 생각 없이 이 흐름에 너도나도 동참하는 애시드 테드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던 ‘그들만의 파티’는 종료되고 기존의 이비자 베테랑들과 애시드 테드들 간의 복잡한 갈등이 일어났다. 이비자의 기억과 히피적 사상이 전무했던 애시드 테드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엄청난 양의 엑스타시를 복용하고 “애시~~~~드!!!”를 외치며 미친 망아지들처럼 씬을 휘졌고 다녔다. 그때까지 영국의 클럽은 3시 이후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이들은 이후 거리로 뛰쳐나와 날뛰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차의 사이렌을 붙잡고 전율을 느끼며 “Can You Feel it?”을 외쳤다고까지 하니 그 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스펙트럼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었고 이 언더문화는 도태되기 시작했다. 순수함과 흥미에 의해 시작한 파티 관계자들도 파티 이벤트를 돈의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의 우정도 깨지기 시작했다. 마약의 유통과 파티 프로모션을 통해 ‘한 몫 챙길 수 있는 장사’의 가능성이 확인되며 갱들도 이 씬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고 경찰은 애시드 하우스 파티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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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and Groovy” 같은 기사를 통해 새로운 애시드 문화에 친근감을 표했던 미디어는 “요즘 아이들이 어떤 위험한 것에 빠져있나” 레퍼토리를 들고 나오며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미디어는 엑스타시와 LSD의 차이를 알지도 못한 채 아이들이 클럽에서 문란한 성생활과 폭력에 찌들은 것처럼 선전했다. 영국의 유명한 음악 차트 방송인 Top of the Pops는 Acid란 단어가 들어가는 모든 노래들을 차트에서 제외시키는 이래적인 모라토리움을 선언했고 팝 스타들은 라디오와 TV를 통해 마약 없이도 즐길 수 있는 깨끗하고 도덕적인 생활의 복음을 전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말이 절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주제에 대한 무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만의 일방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대중을 선도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파시즘적인 미디어의 폭력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어찌하였건 이런 기성 세대와 미디어의 소란은 아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청년들이 생각 없이 애시드 열풍에 동조하도록 불만 지핀 셈이었다. 이 때부터 애시드 하우스는 대중 문화를 뛰어넘어 민감한 국가적 이슈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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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애시드 하우스 클러버들도 큰 문제를 안고 있었기는 마찬가지였다. 미디어와 다를 바 없이 그들은 엑스타시를 마약으로 조차 여기지도 않았을 정도였다. 1988년 이후로 마약이 이른바 보편적 레져 문화로 올라섰고 황홀경에 빠진 사람들은 9 to 5로 대변되는 챗바퀴 같은 자신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너도 나도 일을 그만두고 쾌락의 나락에 빠져들고 있었다. 급기야 애시드 문화의 인사이더인 슘은 뉴스레터를 통해 “제발 당신의 직장을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들이 그 당시 잊고 있었던 것은 어떠한 좋은 경험이든 영원할 수는 없다는 간단한 인생의 논리였다. 문제는 그토록 그들을 괴롭히던 현실을 다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기에 정신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약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현상에 중심에 엑스타시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당시 젊은이와 노동계층에게 악마의 상징이나 다름 없었던 데쳐 정부에 대한 개인의 무력함에서 따라온 심리적인 거세와 억압이 음악과 춤을 통한 파티라는 대규모의 집단적 문화 현상에 의해 치유되고 있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맨 정신에 환희와 희열의 트랜스를 느낀 한국인들처럼) 이 논리를 깨달은 이비자 베테랑들은 현실을 직시하며 다시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 떠났고 그 중 많은 이들이 현대 전자 댄스 음악의 문화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오늘 날의 파티 문화가 세계 이곳 저곳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짧았던 제 2 사랑의 여름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은 채 그렇게 끝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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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감성...거스 반 산트의 명작!!!!

개인적으로 성장기 영화를 좋아한다.
불안한 그들의 심리적 감성을 표현하고 철도길의 로드 무비 처럼 목표점이 보이지 않는 끊임없는 여행...
언젠가는 사라질 순수함...

영활 보고 난 후 솔직히 감탄했다.
거스 반 산트의 감독 영화를 좋아하기는 해도 거장 중의 거장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이젠 '거장'이구나.

그 누가 틴에이져들의 감성을 이렇게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틴 에이져들의 감성을 파고 드는 요소는 두 가지다.  스케이트 보드와 이모 Emo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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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세대는 90년대 즈음에서 화두가 된 새로운 세대를 지칭한다.
연약하고 여성적인 남자아이들...
난 이런거 못해, 난 이런거 관심없어...
다 싫어...
부모가 보면 한숨만 푹푹 쉴 그럴...
간단히 말해 그런지의 광분이 180도 돌아가버린 형태다.
그들의 옷 스타일 자체는 그런지의 패션을 차용하며 고딕과 뉴로맨틱의 가학적 화장 및 스타일이 가미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분노를 더 이상 표출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으로 가두어 버린 복잡하고 유리처럼 부셔지기 쉬운 감정 상태와 끊임없이 억제되고 있는 분노의 표출 그리고 자각되지 않은 성숙의 외줄에서 한없이 발란스를 잡으려 뒤뚱뒤뚱하는 현대의 각박한 삶과 어른들의 사회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종족'이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스케이트 보드 영상은 바로 이 면을 강조하고 있다)

롭 라이너 감독의 [스탠드 바이 미]에게 오마쥬를 바침과 동시에 어메리칸 드림이라는 허구의 희망에 휩쌓여 그래도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며 성숙하게 되는 철도길 등장의 70년대 틴에이져들을 그린 로드 무비 형식과는 또 다른 길을 선택한다. (밀레니엄 이후의 세대를 바라보며)

음악 또한 한 몫 한다. 나는 Avant Pop 이라고 혼자 부르는 새로운 형식의 전자 음악과 포크 송이 한데 어우러지는 사운드트랙은 몽롱하고도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순수함을 향한 향수를 풀어놓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또한 거스 반 산트 특유의 게이와 롤리타 성향의 모습 또한 유감 없이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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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포스터가 말하듯.. '진실은 조작될 수 있다'를 뒤로 한 스릴러적 홍보 마케팅에는 관심도 없어야 하고고...
찾지도 말아야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기대하는 반전 스릴러도 아니요
화려한 액션을 선사하지도 않으며
[오션스 11]의 유머가 한 0.0005g정도 들어가 있는 아주 드라이한 영화다.

영화를 보며 괴로워하는 것을 즐긴다는 말이 있다. (SM..ㅜㅜㅋ)
영화가 얼마나 지루한지를 참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보며 일탈이 아닌 자신의 현실을 직시해보는 것이다.
괴로운 현실을 살면서 영화를 보면서까지 왜 괴로워 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할 이는 그냥 패~스하는게 좋을 영화.  

이 영화는 요즘 경마장 광고랑 비슷한 선상에 있다.경마장 광고가 "너만 회사 다녀?" 등의 현실의 괴로움을 사용해 인터넷과 블로깅으로 A4 반장짜리 사고를 하게 된 현대 문명인들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적어도 A4 50장 분량의 에세이를 통해 약간의 '사고'를 하게 해주는 영화다.

킬링타임용 혹은 스트레스 해소 용이지만 그래도 1g의 반전과 아주 쬐금이라도 두뇌를 자극할 반전 요소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마이클 클레이튼]의 옆관에서 [히트맨]을 보는게 차라리 좋은 선택일 것이다. (물론 히트맨도 좋게 봤다 ^^)

어쨋든 이 영화는 시드니 폴락의 뚝심, 거침없는 스티븐 소더버그와 죠지 클루니 그리고 틸다 스윈튼의 양념이 어우러진 내러티브의 승리다.

어쨋든 [마이클 클레이튼]에서 내가 좋았던 건 3가지.

1.비현실 적인 상황 설정 속에 놓인 탁월한 현대인의 심리적 현실 묘사
2.딜레마,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문제의 연속
3.그리고 연기 하지 않는 죠지 클루니와 연기 하는 틸다 스윈튼


이건 스릴러가 아니라 고품격 사이코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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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상황 설정 이랄 것 까진 없지만, 어찌하였건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한 '영웅'이 나타나 거대 기업체의 '잘못'을 '까발리고' 세상을 '구원'한다라는 설정자체가 비현실적이었다. 왜냐면 정의 'Justice'는 틀 안에서 '정의' 'Define'될 뿐이니까... 요즘 세상에 도덕이고 윤리고 나발이고 떠들어 대 봤자 뭐가 나오는가?

누가 말했듯 차라리 세상엔 나쁜 사람들과 사기꾼 천지라고 아예 생각을 해버리면 '못된'일 겪어도 그러려니 넘기게 되고 혹이나 '착한' 사람을 만나면 그가 '바보'라고 생각하기 보다 오히려 더 존중 'appreciate' 가치가 더 높아진다.

어쨋든 영화가 한 명의 개인이 아닌 여러명의 땀에서 비롯되는 집단 지식 창작물인 만큼 만드는 이들도 이 고리타분한 상황설정에 대해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형적인 스릴러/액션에서 빠져나와 탈많고 문제많은 자본주의 속 현대인의 심리적 상황을 드라이하게 까발리는 형국으로 진득하게 몰고 나간다.

여기서 [제이슨 본] 시리즈의 액션을 기대한 관객과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인간의 심리적 묘사와 폐쇠된 '공간' (실체적/심리적)에 대한 감독의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관객을 생각하는 영화란 여러가지 측면을 볼 수 있다. 그들의 편의를 생각해 재미적인 요소를 부각시킬수도 있었다. 그리고 충분히 재밋게 풀어나갈만한 역량을 가진 토니 길로이 감독은 오히려 '솔직'해 지려 한다.

그리고 감독은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로베르토 롯셀리니의 네오 리얼리즘처럼 때로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심리적 리얼리즘 처럼 자본주의 말기의 현대인의 삶을 아주 드라이하게 '보여줄 뿐이다.'


누가 미친놈인지...무참히 짓밟히는 순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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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계의 전설 아서가 까발리려는 U/North의 행각, '현실'을 직시하는 이들은 그를 미친놈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미친짓은 그가 정신질환 치료약을 먹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라 굳게 '믿는다.'
언제부턴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현실'의 직시란 체제에 순응하는 것이 되었다.
고로 자본주의 체제 속의 현실이란 당연히 '돈'과 '사회적 지위'가 우선한다.
양육강식과 자본의 축적, 그것은 자본주의 현실의 진리다.
그 곳에서 신화적/도덕적 정의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고 멍청한 것이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대부분이 제각각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이제 '미친놈'의 정의는 희미해진다. 아서가 미친놈인가 그를 미친놈이라 부르는 인간이 미친놈인가? 정의할 수 없다.

 바로 그 체제 속의 전설 아서, 30년이 넘도록 쉬지도 않고 치밀하게 일을 해오며 자본주의 사회 속의 영웅이 된 아서는 한 순간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이 내막은 영화 시작의 연극적 모놀로그와 빨간 책 속에 들어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일구어온 사회적 성공에 갑자기 신물이 난다.
사람을 위한다는 마케팅과 미디어의 가면을 쓴 기업체를 경멸한다.
그는 꺠달았다기 보다는 순수에 대한 향수를 강하게 느낀 것이다. 왜 그가 수많은 소송자들 중 아나에게 그토록 집착했을까?
아나는 성인의 캐릭터가 아니다
. 아마도 대학생 혹은 대학을 갓나와 사회에 찌들지 않은 상태의 아주 순수한 존재로서 아서에게 그가 로스쿨을 갓나와 책의 정의 속 '정의'와 앞으로의 '성공'을 꿈꾸는 그 순수한 시절로 돌려보낸 존재다. 그래서 아서는 그녀를 천사 혹은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게 만든다.
마이클의 아들과 심각한 대화를 하고 어른들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아이가 권하는 책을 읽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체제와 체제가 만들어낸 현실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유와 취지가 어찌하였건 기둥을 흔드는 일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마이클 클레이튼 = 수퍼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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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사, 죠지 클루니...
위험에 처할 때 나타나 구원해주는 수퍼맨처럼 그는
회사의 숨은 해결사, 곧 수퍼맨 같은 존재이다.
적어도 타인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도 우리가 생각하는 해결사의 완벽한 모습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고급 양복과 최고급 벤츠 그리고 회사의 영웅 아우라를 지닌 그는 누가 봐도 성공한 사회인이지만 도박 중독에 부업 실패에 의해 빚만 떠안은 빈털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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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 설정이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게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미국과 국내의 실정만 봐도 그렇다. 변호사, 의사, 금융계와 같이 성공으로 정의 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 중에 부채에 시달리는 이들은 널리고 널렸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이것은 '사'자 직업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회인을 향한다)
주말이건 밤이건 새벽이건 엄청난 일량을 풀어나간다.
이미
그들에게 회사와 개인의 삶의 경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 그들은 소가족 체제를 고수한다.
부담되는 아이는 한명 내지 두명이며 거기다가 별거 혹은 이혼 중이라 위자료 문제 뿐만 아니라 가정의 삶도 순탄치 않다.
삶의 질이고 자시고 모든 것은 망각되어있고 앞길로 나아갈 뿐이다.
그리고 그 앞길은 자신이 세운 것인가? 그렇지도 않다. 체제가 시간마다 던져주는 문제를 푸는 일 뿐이다. 이미 그들은 노예다. 하지만 그것을 떨쳐버리는 순간 그들은 빈털터리는 물론 삶의 의욕자체를 잃어버릴 것이다.

성공의 시작은 이미지 구축에서 시작해서 이미지 구축에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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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자신의 이미지 구축밖에는 없다. 자신이 원해서 그래서일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타인들은 그 이미지를 보며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 이미지를 구축해야만 삶도 약간은 편해진다. 돈 없어도 외제차를 사야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다.
난 일개의 청소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꺠달은 마이클이 아무리 난 '무능해'를 외쳐도 회사 내부에서 마이클이 구축해온 이미지와 아우라에 넘어간 이들은 믿지 않는다. 언제나 그는 그들에게 '해결사'다.


이 해결사 아우라는 틸다 스윈슨에게 철처히 해체된다.
틸다 스윈슨은 분명 젊은 나이부터 현실체제의 삶의 방식을 일찍이 받아들이고 그 공식에 맞추어 살아온 캐릭터다. 그녀의 끈질기고 엄청난 노력은 그녀의 일과 스타일에 포커스 되어있다.
치밀한 프레젠테이션 준비와 거울앞에서 그녀의 군살을 감추고 어엿한 커리어 우먼의 모습을 변신하는 모습은 그녀가 누구보다도 더 이미지를 먹고 사는 사회의 현실에 대해 직시하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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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도 프레젠테이션 전 후 심장이 벌렁벌렁거린다. 그리고 그 멋진 커리어 우먼의 스타일 안에는 삼겹살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
. 이런 '이미지 구축은 곧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사상을 가진 그녀가 15년간 한 회사에 있으면서도 임원자리에 오르지 못한 마이클 클레이튼의 해결사 아우라를 느끼지 못하고 우습게 보는 것은 당연한 논리다. 마이클의 아우라는 내부인 외에는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 돈 없어도 벤츠 몰아야 하고, 돈 없어도 10만원 짜리 점심을 먹고, 무식해도 갤러리 안 작품에 대해 '유식한' 한마디를 던저야 하는 수퍼맨 이미지의 사회...
하지만 언제나 영화는 '가르치거나' '타이르지' 않는다. 제대로라고 혹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현실을 관조하며 보여줄 뿐이다. 선택과 판단은 언제나 관객의 몫이다.


딜레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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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에게 현실은 엄청난 실타래에 꼬여있는 복잡계다.
하나가 해결 된 듯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
연쇄작용과 같다. 문제가 터지면 곧바로 다른 문제가 터지고 또 터지고...
순간 순간 우리는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두 번째 매력인 '딜레마'의 부분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연극과 문학책에서만 보는 고상한 사상적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매 상황 햄릿의 딜레마에 빠져 살고 있다
.
그리고 그 결과는 선택한 후에만 알 수 있다는 지독한 상황 속에 있다.
마이클을 보라... 회사에서는 아서 문제를 풀어내라 한다. 동시에 그는 일주일내에 빚까지 갚아야 하며 이혼한 후 애도 정기적으로 봐야하고 형제 지간 사이도 좋지도 않고 아주 골머리에 골머리를 썩는다.
그가 도박중독에 빠져 있었다는게 이해가 될 정도이다.
오히려 아서처럼 약물 치료도 받지 않고 계속 현실을 헤쳐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하지만 그만 그렇겠는가....
40대 후반과 50대 초반 아주 애매한 나이에 이미 사회안에서 어느정도의 자리는 꽤차고 있어야 할 그 불혹의 나이의 유리같이 쉽게 부셔질 수 있는 정신적 심리적 결정체를 보여주는게 마이클의 캐릭터다.
그룹 넥스트 1집에 들어있는 아버지에 관한 노래가 떠오른다.
어쩔 수 없다. 심리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거세'를 당한 그 나이의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침묵이다. 그것이 그가 가정과 사회 속에서 일구어 온 자신의 권위를 지켜나갈 마지막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아직 마이클은 그런 막장의 불혹은 찾아온 것 같지는 않다. 아직까지 현실을 살아갈 일말의 에너지와 희망이 남아 있다.

가족주의적 결말 하지만 기분나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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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헐리우드 제품 답게 고질적인 '가족주의'로 흘러간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가족주의다.
갑자기 차를 멈추고 언덕의 말 3마리를 보러 올라가는 마이클.... 그리고 그의 벤츠는 꽝 하며 폭탄이 터진다.
세마리의 말은 내 생각에는 마이클, 마이클의 형, 그리고 티미를 의미하는 것 같다.
결국 신화적인 결말이긴 하지만 어찌하였건
가족의 신비한 힘은 마이클의 생명을 구함과 동시에 형제들을 다시 친밀한(?) 관계로 이어놓는다. 그리고 모든 사건의 결말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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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거의 2/3는 이렇게 상황과 캐릭터의 관조로 일관한다. 지루할 듯 느껴지지만 오히려 탄탄한 내러티브에 의해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다.
그리고 마이클이 아서의 집에 몰래 들어가고 경찰에게 잡히는 순간 기존 액션/스릴러로 돌변하는 맥빠진 결말을 선사할 거라는 의혹을 잠깐 품게 하지만 이내 초심으로 돌아가며 (감독의 뛰어난 재량이다 이건...) 아틀란티스와 같은 [Realm & Conquer]의 발견과 함께 사이코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죠지 클루니, 앞으로도 연기는 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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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클루니...
정말 연기 안하는 배우다...
옆 사진을 보라... 틸다 스윈슨이 아닌 어린아이와 불꽃튀는 연기 대결을 펼치고 있따!!
그는 항상 그다.
언제 어디서나 어느 영화에 나오건 그는 죠지 클루니다.
영화의 제목이 [마이클 클레이튼]이 아니라 [죠지 클루니]라고 해도 무방하다.
죠지란 이름도 마이클이란 이름처럼 흔한 이름이니 제목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도 해치지 않는 것 같고..
하지만 언제나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선택 혹은 제안 받는다...  이것도 복이다...
연기를 이렇게 하지 않으면서도 매력적인 배우가 있을까?
40후반~50대 초반의 남성이 가진 혹은 원하는 머스큘린한 이미지를 잘 충족시키는 그런...

그냥 오션스 시리즈에서 대니 오션의 더 개인적인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하다.
때거지로 나오는 오션스 시리즈에서 좀더 자신만이 부각되는 영화가 찍고 싶고 스티븐 소더버그와 상의 후 이런 플롯을 현실화 시켜줄 힘을 가진 인물은 시드니 폴락 밖에 없다는 결론 후 지들끼리 만들고 싶은 영화 뚝닥 만들어버린 느낌이다.

혼신의 연기를 편친 틸다 스윈튼을 보면 클루니가 성의 없어 보여진다는 착각까지 불러일으킨다, 어쨋든 이 영화는 죠지 클루니를 위한 죠지 클루니의 영화인 만큼 그에게 딱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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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D] Letting go of God by Julia Sweeney

현재 무신론자 중 가장 인기있는 사람 중 하나일 쥴리아 스위니...
그녀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며 한가지 생각할 수 있다면...
말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정말 당할 수 없다는것!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든지 '철촌살인'이라는 말이 마음에 딱 와닿는!

배우 경험 그리고 모놀로그로 다져진 그녀의 발표는 자료 사진 하나 없이 일사천리로 흘러나간다.

독실한 크리스챤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그녀가 어떻게 해서 신앙적인 믿음을 잃어버리고 무신론자가 되었는지를 특유의 유머 그리고 sarcasm을 통해 청취자를 사로 잡는다. 괜히 그녀가 리챠드 도킨스 어워드를 수상한게 아니었다!

한 아줌마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옛 경험의 말보따리를 풀어 놓으며 한바탕 수다를 떠는 동안 천천히 그녀에게 동화되버린다.

종교야 뭐  개인의 자유니 믿는 것에 대해 뭐라할 것 없지만 그 믿음이 강요 당하거나 절대적일 때 문제들은 상당히 심각하다.
종교 하나 때문에 끊없는 전쟁의 피로 물든 역사를 이끌고 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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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보기엔 저 별나라 사람들은 어떤 종교가 제일 평화로운지에 대해 싸우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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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박스 일본 영화제 엔딩이었던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 속편]..
그날따라 짜증나게 밀리던 교통 체증을 견디고 보았다...
제작자 아저씨들, 감독 아저씨, 잇페이 엄마도 오고...

암튼 전작의 감동에 이끌려 두둥! 열려진 속편의 내용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고질라 등장과 스즈키 오토의 3륜차 추격씬의 첫 장면은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중간 중간 [3번가]만의 위트와 감동 요소가 섞여 오락성을 던져 주었지만,

지나친 신파조의 전개 ---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넘쳐나는 감동 코드!!! 미칠것만 같았다.. 적절히 감동 코드를 섞어넣은 전편에 비해 너무 과했다.


아이들이 나이가 먹어 (변성기의 악재까지 겹침) 3편 제작은 완전 포기한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스토리를 종결 시키려 시도한 엄청난 스토리 압박의 3시간은 너무나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워낙 전편의 캐릭터 설정이 잘 되어있었던 만큼 그대로의 감성을 이어오는 것에는 어느정도 성공한 듯 보인다.

어찌하였건 여러 캐릭터의 이야기를 일사천리로 풀어나가는 내러티브에 대해서는 칭찬받을만 하다.
전편에 이어 속편을 보고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속출함으로 보아 '신파'가 지겹거나 혹은 좋거나의 개인차로 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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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yn Porco: Fly me to the moons of Saturn

옛날 일 때문에 존경하던 영상 아티스트인 갓프리 레지오 Godfrey Reggio를 인터뷰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그가 남긴 수많은 인상 깊은 말 중 하나가,
"하나의 사진이 천 개의 말보다 강하다"라는 말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이 말이 그만의 생각은 아니지만 얼핏 그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캐롤린 포르코의 토성으로의 여행 발표였다.

흥분에 가득찬 표정과 목소리로 캐롤린은 청중에게 무인 우주선 카시니가 보내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사진이 얼마나 굉장한 의미인지 말한다.

하지만 만약 캐롤린 포르코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녀가 다루고 있는 서브젝트나 발견에 대해 관심이 하나도 없는 이가 듣고 있노라면 그녀가 가진 기분을 절대로 쉐어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말솜씨 또한 그다지 '감동'적이거나 청중을 사로잡는 결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더욱 위험하다. (물론 뛰어난 프레젠터이며 이 의견은 상대적이다...다른 마스터 스피커에 비하자면 ...)

하지만 그녀가 두둥~ 꺼내 놓은 이미지의 힘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아름다운 토성...
토성을 둘러쌓고 있는 링,
그리고 타이탄의 이미지...

그녀의 발표가 주는 교훈이란,
정말 '힘'을 가지고 있는 이미지나 소리가 아니라면 그것이 너무 대단하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라는 평범한 진리다...

여기서부터는 음악과 함께...
Themes These Three (Tele:Funken Remix) by Avro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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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당시 포르코가 보여준 토성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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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아우터 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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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니 호의 여행 경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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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위성인 타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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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니가 타이탄에 착륙하는 광경은 아마 이러했을 듯...뒤켠에 토성이 보인다
인간의 손이 가장 멀리 뻐쳐지는 감격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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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니호가 보내준 타이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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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탄의 모습... 메타놀의 별... 강줄기가 보인다...
아마도 이 곳에서 생명체가 탄생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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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아마도 그곳은 어둡고 고요할 것이다... 아닌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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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른쪽이 카시니가 타이탄의 표면을 밟은 곳이다...
펼쳐져 있는 돌들....우주 저 먼 곳에 저런  낯익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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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놀의 별 타이탄은 아마도 이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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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universe is queerer than we can suppose by Richard Dawkins

"우주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보다 더 기괴하다"라는 해석이 알맞을 지는 모르겠지만...
<이기적 유전자>, <신은 없다>등으로 국내에서도 친숙한 리챠드 도킨스의 TED 발표...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답게 그의 대화 방식이나 유머 등은 상당히 "엘리트'적이다.
하지만 인테리들만이 가지고 있는 껄끄러움이나 '잰채'하는 듯한 분위기는 그다지 발견하기 힘들다.
그다지 재밋고 다이내믹하진 않지만 조용하고 컨스턴트한 분위기로 청중과 함께 질문을 해나가는 그의 모습에 탄성을 자아내게 된다.

내용을 떠나  이 발표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인간이 혹은 사람이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해나가는 것은 타인을 가르치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라는 이유보다 더 낳은 그리고 더 깊고 철학적인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교훈을 얻게 된다.

자신보다 아래의 사람이 문제에 봉착해 질문을 해왔을 때,
"넌 그것도 모르니?" 가   아닌,
"그건 이런거지"가 아닌,

"그럼 이런 것은?"이라는 더 높은 차원의 질문을 할 수 있는 것...
그 하나의 질문으로 지금까지 상상치도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을 발견하는 듯한 의미로 다가오는...
그것이 학습이며 경험을 해나가는 첫째 이유가 아닐까?

Suppose, 추측 혹은 가정...
여기서 그는 우리가 추측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능력 하에서라는 전제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벽이 고체라고 믿고 있는 인간과,
벽이란 고체는 원자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원자로 만들어진 인간이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벽을 통과하려하는 인간...

5감에 익숙한 우리는 영원히  3차원의 세계에 갇혀 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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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otta keep Dancing by Carrie Lucas

캐리 루카스의 모습은 볼 순 없지만 흥겨운 라인 댄싱에 사랑스러운 70년대 아웃핏!
손바닥 활짝 피고 로보트 처럼 흔들대는...ㅋㅋ
캐리 루카스 만의 에더리얼 한 보컬..아 빠진다...

The Whispers의 백킹 보컬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캐리 루카스..  소울 트레인 레코드 레이블를 통해 싱글 앨범 발표 시 위스퍼즈가 백킹 보컬 및 곡을 써주기도 했다.
1977년 나온 "SImply Carrie"에 속해 있는 곡이 바로 "I gotta keep Dancing"이며 클럽 차트를 휩쓸었다 (물론 큰 메인스트림 성공을 일군 아티스트는 아니다)
그녀의 솔로 커리어는 9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영화 람바다의 사운드 트랙에 참여하기도 하고 99년엔 12" 리믹스 베스트 앨범이 나오기도 했다.

Tic Toc (12") by Carrie Lucas

이 음악 또한 캐리 루카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
제목에서 연상 되는 틱탁 소리에 이어 떨어지는 디스코 특유의 피아노 인트로와 스트링
그리고 드라이하면서도 감미로운 루카스의 목소리가 절정을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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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ust's House
http://kinopravda.egloos.com/3935329#9003138

(전문은 위 링크로 가서..)
멜랑꼴리+희망... a Voice at the End of the Line by M. Ward

너무 좋은 글이라 블로그에 담아 읽고 싶어 퍼왔는데...
이 분 블로그에 댓글 쓰는 방법을 모르겠다...ㅜㅜㅋ
트랙백 거는 링크도 잘 몰겠고...
알림 없이 퍼왔음...ㅜㅜㅋ
(나  인터넷 세대 맞니?)
만일에 혹시 보시는 일이 있다면 한마디 던져 주시길...
암튼...
 

나 또한 20대의 마지막을 보내며 마음을 쿡쿡 찌르고...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고...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
자기 개발서가 시장 탑을 달리며 판을 치는 세상,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는 세상에...
한 방울의 이슬 같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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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예비 저자들을 위하여: 대기만성이 당신들의 길은 아니다

믿고 존경할 만한 어른 없는 세대에게


우리나라 근대사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이 살아야 한다는 명분하에 무엇인가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건국기를 맞게 된다. 나는 이들을 1세대라고 부른다. 이오덕 선생 같은 분들이 이 1세대에 속하는데, 좌파든 우파든 이 시기에는 정말이지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꿈이 있었던 것 같다. 한 번도 정리되지 않은 우리말 문법을 만들고 사전을 만들고 말꼴을 만들어내던 이 시기의 1세대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사회 전 분야에 새로운 나라를 만든다는 꿈이 있었다. 좋은 놈이든 나쁜 놈이든, 이들은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 1세대들이 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 돌아가셨다. 2세대가 등장했을까? 불행히도 이 땅에는 2세대가 등장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스템에 아직 새로운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80년대에 등장했던 민주주의 세대는 1세대와 비교하기에는 너무 일찍 부패해버렸고, 또 무능했다.


 지금의 우파들은 게으르고 파렴치하다. 논문도 슬쩍슬쩍 베끼고, 일반적인 우파들이 가지고 있는 심미적인 추구는 물론 독창성도 없다. 가끔 전형적인 우파학자들을 만나서 “요즘 공부 좀 하십니까?” 라고 물어보면, 새삼 왜 그런 얘기를 해서 날 곤란하게 만드느냐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정말 열심히 살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우파를 만나기가 어렵다.


 기 소르망은 전형적인 우파 학자다. 그래도 독서와 사색의 크기만큼은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다. 기  소르망 정도로 열심히 독서하고 정리하는 우파 인사가 있다면 인정해주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우파들은 지나치게 게으르고, 베끼기를 즐겨하고, 전형적인 우파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고독한 질문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황우석? 학자로서 그의 가장 큰 문제는 게으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 좌파들은 무능력하다. 그래서 우기기를 즐겨한다. 일제시대와 해방기에 활동했던 우리나의 좌파 지식인들은 고독한 학처럼 우아했다. 지금 고독하면서 우아한 좌파지식인이 있을까. 난 견문이 짧아서 잘 모르겠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든 우파든 떼로 몰려다니면서 별 내용도 없는 말을 하면서 서로 감격하고 박수치고 우쭐해 어쩔 줄을 모르는 것 같다. 자기들끼리 추천하면서 감격해하지만, 그들의 글과 책은 전혀 감격스럽지 않다. 생각이 머릿속에서 한 바퀴 돌아가는 일정한 반열에 올라간 사람은 좌파에도 우파에도 없는 것 같다(물론 나도 속이 꽉 막힌 바보 같은 말만 해대고는 한다).


 한마디로 믿고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세대를 우리는 사는 셈이다. 이정표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지만, 농촌에 지혜로운 촌로들이 사라지고 공동체의 주춧돌이 사라진 것처럼, 학계를 비롯한 이 사회 어느 구석에도 어른은 없어 보인다. 좌파에도, 우파에도, 그런 어른은 없는 것 같다. 지금 30대 후반부터 50대까지, 앞으로 10년 내에 어른이 될 만한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침묵의 관찰자 일부와 언제든 광란의 선동자가 될 만한 사람들은 있긴 하지만, 1세대가 사라진 이후에 어른이 될 만한 분은 어지간해서 보이지 않는다.


20대여, 글을 쓰고 책을 내기를 바란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선각자들은 20대에 자신의 논을 내었고, 자신의 첫 주장을 했다. 어떤 면에서 한 명의 사상가나 철학자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같이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 누가 이 시대의 어른이 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시대를 이끌어 갈 것인가는 개인에 관한 문제라기보다는 ‘어두운 시대에 누가 불을 밝힐 것인가’의 문제이며, 이 불은 한 사회가 같이 밝혀나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하다못해 이어령도 20대에 선배 문인들을 비판하면서 등장했고, 시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상가들이 다 20대에 논을 제시하면서 등장했다. 20대라는 나이는 “다 틀렸어!”라고 객기를 부려도 좋고, 대안이 없어도 좋을 나이다. “대안? 나중에 보여줄게”라고 객기로 치고 나가도 좋은 나이다. 어느 누가 20대의 작가에게 사려 깊지 못하다는 비판을 하겠는가. 그 나이의 그 시절에는 그런 질문이 필요한 시기이다. 20대 작가에게는 상업성과 기획력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질문 그리고 다음 세대의 시각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더 많은 20대들이 글을 쓰고 책을 내기를 바란다. 그건 좌파든 우파든 상관하지 않는다. 돈독에 찌든 일부를 제외한다면 언제나 다음 세대의 질문은 신선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게 될 때 비로소 새로운 세대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런 게 ‘협력진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파가 별 거 없기 때문에 좌파도 무식해졌고, 좌파의 질문이 날카롭지 않기 때문에 우파도 게을러진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위기가 아닐까. 이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혹은 어떤 목적으로든 더 많은 20대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책을 내고 서로 반박 가능한 형태로 논쟁하는 것이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20대에 책을 내고 데뷔할 수 있기를 나는 희망한다. 설령 덜 다듬어져있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할지라도, 어떠냐! 원래 20대의 특권이 그런데 말이다.


 나는 지금 인터넷에서 A4 한 장 짜리 글을 쓰는 이들이 A4 100장으로 자신의 생각과 시각을 정리할 수 있고,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이들이 작가로 물결처럼 데뷔하는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 나처럼 4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겨난 대기만성의 길을 모두가 걸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올해로 박사학위를 받은 지 11년째이다. 모든 사람이 학문의 길을 걸을 필요는 없고, 모두가 박사가 될 필요는 없기 때문에, 모두가 학자의 입장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상가와 행동가의 길을 걷거나 사색자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은 20대를 넘기지 않고 자신의 첫 책을 출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좌파든 우파든 그런 건 상관없다. 비록 나중에 부끄러움에 뼈를 깎는 듯 한 고통을 받을지 몰라도 생각을 정리하고 그걸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는 20대가 더 많아지면 그것이 비로소 우리 사회의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자신의 모자람과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어 남들이 알게 함’이라는 부끄러움을 통해서 한 세대가, 그리고 한 시대가 협력 진화할 수 있는 것 아닐까.


2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여, 부디 용기를 내시기 바란다.


 스물일고여덟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20대에 작가로 혹은 사상가로 데뷔할 수 있는 인생의 단 한 번의 기회가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명석함과 함께 부끄러움까지 모두 사회에 꺼내놓는 데 머뭇거리지 말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다. 한 청년의 방황과 갈등, 그것은 모두 사회의 것이다. 마지막 밑천까지 탈탈 털어낸 알몸의 모습으로 사화 앞에 홀로 서 있는 20대가 많아질 때, 이 사회는 비로소 좋은 방향으로의 진화를 시작할 것 같다는 것이 내 개인적 믿음이며 바람이다.


 실패! 어느 작가도, 그리고 어느 사상가도 자신의 첫 번째 책으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 번에 성공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설득력 있는 생각을 갖게 될 때까지 10년을 쓰게 될지 혹은 평생을 쓰게 될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인류 역사가 원래 그렇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1만 명의 20대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삶을 책으로 엮어낸다면, 예비 철학자 혹은 예비 사상가 1만 명이 나이를 먹고 생각이 굴절되면서 진화하는 과정을 이 사회가 같이 볼 수 있게 된다. 생활인은 직업으로 완성될지 모르지만 사상가는 책으로 완성된다. 동시대인들과 함께 1만 명의 20대가 한 명씩 나이를 먹어가고 생각이 변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완성되는 과정을 같이 보고 싶다.


 지금 책으로 데뷔하는 20대가 10만 명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10만 명의 젊은 사상가들이 서로 논쟁하고, 사회가 그걸 지켜보는 상황은 가히 학문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할 수 있다. A4 한 장짜리 글을 쓰면서 ‘인터넷 논객’이라는 호칭을 받는 것이 행복하신가. A4 100장 이상의 글을 쓰는 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부른다. 치고 빠지는 단타 전문으로 20대를 활용하는 지금의 세태는 잘못되었다. 더 진지하고 더 길게 생각을 한 바퀴를 돌리는 훈련을 받고 스스로를 단련시킬 수 있도록 30대와 40대가 도와야 한다.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20대 작가 기금’이라도 만들어서 발간을 돕고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인터넷 논쟁에 댓글이나 달고 있으면서 사상가나 철학자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젊은 작가들이 더 많이 필요하고, 이 사회는 이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30대가 되는 것이 무서운 많은 인문학도와 과학도, 이들에게 자신의 말을 책으로 엮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하고, 이들의 미숙함을 꼬집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격려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길’이 열린다.


 20대 후반의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이여. 그 고민을 책에 담고, 책이라는 형태로 사회에 꺼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장은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을지 몰라도, 한국의 사상과 문화는 지금 20대 작가들을 목놓아 찾고 있다.


 20대의 기자들과 학도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만들고 싶어서 오늘도 고통으로 점철된 하루를 보낸 이들이여. 제발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첫 책을 위해 고민을 시작하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시스템의 생존과 진화를 위해서 새로운 고민의 물결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하다.


 건투를 빈다.


우석훈,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159-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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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참으로 감동적인 글이라서 글의 전문을 적어본다. 고종석의 ‘내가 만일 국어선생님이라면’ 이후에 이처럼 가슴 한 구석을 지피는 글은 오랜만이다. 우석훈의 이 책은 전체적으로 노무현 시대를 바라보는 한 지식인의 성찰로 읽히지만(그러니까 그 자체로 저널리즘적인 가치도 있다), 앞서 크게 인용한 글은 한 인생의 선배가 후배들에게 해주는 극진한 전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들은 될수록 많이 읽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석훈의 말을 뒤집어본다면 나는 우석훈과 같은 선배들, 기성세대들이 10만명, 혹은 욕심을 내어 100만명 정도 한국사회에 존재하길 바란다. 이런 넉넉한 분들이 자신의 생각들을 후배들에게 많이 해주기를 바란다. 우리에겐 패기 넘치는 20대들의 용기도 필요하지만 이런 기성세대들의 지지 역시 똑같이 필요하다.


오늘 수능 치는 후배들, 학생들은 내년에 20대가 될 것이다. 우석훈의 20대가 이들에게서 많이 등장하기를 소망한다. 아무튼 나 역시 그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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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씬
(엔딩 장면이 뭐가 될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 있음)
크게 상관은 없을듯...ㅜㅜㅋ

...

영화에는 안어울리는 뜬금없는 노래지만 .. 어쨋든 제목만...ㅋㅋㅋ
Sexual Healing (Mercurius FM Soul of House Mix)  by Marvin Ga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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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위그라프는 마지막 용의 성배를 들고 바다 위에 떠있는 그렌델의 어머니 품에 안겼을까?

개인적인 생각의 답은 "아니다"

영화 상 시대는 어느덧 신화와 영웅이 사라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앞세운 크리스챤이 지배하는 세상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에쿠우스를 연상시키는 듯한 호르스가 왕의 똑같은 스텝을 밟은 베오울프 또한 신화적 영웅으로서 육체의 쾌락은 금기시 되지 않는다.
그 또한 오딘을 신으로 섬기는 마지막 영웅이며,
이 신화의 영웅은 나약하고  고독하고 섬세하다
.


하지만 크리스챤의 시대가 도래하며 변한 것은 무엇인가?
육체라는 것은 한 낫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천한 것이 되어버리고 정신적인 것에 대한 구원이라는 요소만이 강화되었다.
따라서 남녀 간의 (남남, 여여 간의 관계는 고사하고)  육체관계는 탐욕, 쾌락의 요소를 가짐으로서 금기처럼 여겨졌다.
오늘 날 현대 사회에서 꺼리낌없이 자신의 육체 관계를 말하는 사람을 보며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서 불편한 마음을 가지는 것도 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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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였건 신화와 영웅의 시대의 마지막 영웅인 베오울프는 호르스가 이전부터 이어졌음직 한 지독한 신화적 알레고리를 끊어버린다. 그럼으로서 동시에 신화의 시대도 막을 내린다.
육체를 불사르며 끊임 없이 이어지는, 돌고도는 여행, 고독, 싸움을 통해 신의 경지로 오르게 되던 시대는 지고,
그런 힘겨운 육체를 버리고 정신적인 구원만을 기다리는 '나태(?)'의 시대에 올라선 것이다.

베오울프를 뒤를 잇는 위그라프는 더 이상 "아들-아버지" 관계로서 오른 왕이 아닌 친구로서, 동지로서 신화적 알레고리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인물이다.
따라서 이성적? 이상적으로 볼 때,
크리스챤니티와 함께 중세를 벗어난 접점기 혹은 그 시작에 선 위그라프는 분명 크리스챠니티가 중요시 여기는 '금기'에 대해 순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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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지로 , 그 육체의 쾌락을 떨쳐 버림으로서 순수한 혈육 관계의 아들을 나았을 것이다.
 동시에 그렌덜의 어머니 괴물 또한 신화시대의 마지막 괴물로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프로이드가 등장 할 때에 맞추어 인간의 정신 속 혹은 심리 속에서 다시 부활 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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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고등학교 영문학 시간에 어려운 고전 영어에 낑낑대며 읽은 기억만이 남아있다....
물론 내용이며 메타포에 대한 기억은 '클리어'되어 있다...
그러니 오히려 더 주관적인 나름의 시나리오가 나오게 되더라는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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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가끔 300을 연상 시키는 시퀀스들도 그저그랬고...
그래도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주는 스펙터클과 내러티브에 침 질질 흘리면서 보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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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엔젤리나 졸리...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우라 그런지...
베어울프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영화 상에서) 신화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괴물, 팜므파탈, 애증의 관계...
이런 요소를 소화내기엔 뭔가 세련됨과 깊이가 모자른 캐릭터라고나 할까?
아니면 스칸디나비안의 냄새가 너무 나지 않아 어울리지 않을 것일수도...
갑자기 스칸디나비안에서 왠 라띠노+이딸리안 삘이 나는지... 이건 좀 삑사리 같다...
신화의 원조인 중동을 바라보는 마음에서 중동삘을 원한건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누가 어울렸을까?
밀라 요보비치는 영상 분위기 상 어울렸겠지만... 졸리보다 더 싼티가 팍팍 났을테고...
잘 모르겠다...ㅜㅜㅋ 암튼 졸리는 미스캐스팅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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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애절한 처지에 어울릴까나?
A Dear John Letter
by Nada Ubankova & Ladislav Vodic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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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요약 하자면,

아마도 레드포드는 영화미학에 대한 많은 걸 포기하면서까지
관객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싶었겠지만
아무리 그런 간단한 교육영화 순준의 깊이라도,
그 진의들은 뉴스 속 자막과 같이 밑에 읽혀지지 않은 채로 흘러갈 뿐
대신 메인 뉴스거리가 된 연예인 가십에 집중하는 현대인처럼
레드포드, 스트립, 탐 크루즈의 늙어버린 모습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태반일 듯 싶다.


실망
정치 영화를 좋아하고 요즘 워낙 기근 현상을 보이는 지라 아주 반가이 맞이한 레드포드의 라이언즈 포 램즈..

뚜껑을 열어보면 그 화려한 캐스팅과 포장에 비해 많이 실망스러운 영화다...
한마디로 받은 느낌은 어느정도 알맹이와 깊은 논의를 다 짤라버린 대중용 교육 영화랄까?

더군다나 교수라는 캐릭터를 직접 떠맡고 관객에게 '강의'하고 '설득'시키려는 레드포드를 바라보는 내 입장은 거침없는 선댄스키드도 아니오 일저리 동분서주하는 대통령의 사람들의 기자도 아닌 저 구름 위 신의 의자에 앉아 있는 레드포드의 모습이라 심이 불편했다.

같은 '테러' 테마의 영화인 [킹덤]의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전쟁터, 의회, 학교 이렇게 3부분으로 나뉘어 6 명의 메인 캐릭터를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완전히 실패한 듯 보인다. (물론 연출에 있어서도)

또한 이러한 느슨한 전개와 연결성에 의해 맥이 풀리는 내러티브와 이러타 할 평가도 내릴 수 없는 그저 안정스럽기만 한 영상 또한 마지막의 애매한 클라이맥스 (1.항복하려 한걸까? 2.탈레반 따위에게 잡힐 바에 죽자라고 총쏘는 척을 한걸까?)를 더욱 애매하고 맥 풀리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도 한 번 쯤 보고 생각할만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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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가 감동이라던지 어떠한 깊이를 가진 것 처럼 '치장'한 반동스러운 상업 주류 영화라고는 평가하기도 애매하다. 오히려 자본주의에 몸과 정신을 팔며 너무나 가벼운 삶을 살아가는 무지해진 우리 현대인에게 한번쯤 봐볼만한 영화가 아닐까도 생각한다. 물론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 영화다. 하지만 중학교 수준의 교육 영화라 하더라도 과연 현대 성인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이런 문제 말고도 신경쓰고 스트레스 받을 일 많은 성인들에게...

레드포드가 모두에게 보여주고픈 교육 영화로서 사람들이 너무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미학적인 요소, 예를 들어 메타포의 사용 등을 과감히 절제했고, 또 너무나 재미 면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자극적인 면도 차단해버린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주관적으로 받은 영화의 핵심은 바로 '가상 Virtual'이었다.
이 한 단어가 모든 내러티브와 영상의 핵심이 된다.
로스트 라이언즈의 뒤에는 보드리야르의 그림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듯 했다.

현실을 살아가며 현실에 대한 액션을 취하는, 현실과 부딪히며 사는 이들의 모든 배경, 근거, 논리, 경험 등은 가상적인 경험에 베이스를 두고 있다.
이 얼마나 위험하고도 허튼 짓거린가 싶지만...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다.

탁상공론에 대한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가상 경험에 따른 현실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물론 거시적으로는 똑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1.탐 크루즈 (정치 의회)와 메릴 스트립 (미디어)의 대립
 -역시 똑같다. 정치나 미디어나 우매한 대중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전설 따위를 만들며 현실의 가상을 꾸며 현실화 시킨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서있는 우두머리들은 지독하게도 가상적 경험에 따라 모든 것을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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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를 통해 대중을 선동해 테러 관련 공화당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탐 크루즈는 육군 사관학교 출신 고급 엘리트라는 아우라만을 뒤집어 썼을 뿐 그의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정책에 대한 베이스는 너무나 초라하게도 사무실 안 전화기라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뿐이다.

메릴 스트립 또한 탐 크루즈와 대치하며 베트남 전의 히피나 민주당 배경적 성격을 약간 불러 일으키고 전형적인 '정의'의 심볼이 되지만 그녀 또한 정확한 현실이 아닌 가상에 따른 가상을 만들어내는 저널리스트에 불과하다. 이 부분은 마지막 장면에서 참전 용사 무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릴 듯한 여기자... 하지만 그녀의 감정 또한 자신의 직업이 제공하는 물리적 공간에 갖혀 끌어낸 가상적 경험에 따른 판단에 의한 슬픔과 정의의 감정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탐 크루즈나 메릴 스트립이나 가상적 경험주의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모두 동일하다. (메릴 스트립 또한 그녀가 만들어 내는 현실은 펜촉과 메모장에서 시작한다)
 
2.레드포드와 학생
 -신이시자 교수님이시자 스토리텔러이시자 설교자이신 레드포드를 보느라 불편하지만 어찌하였건 정치 과학학도 학생 또한 자신의 머리와 마음에서 나오는 '학교 안의 학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더군다나 마지막 장면에서 이 학생이 보는 뉴스의 메인은 연예인 가십거리였고 밑에 자막으로 테러 관련 자막이 짧게 흘러나온다. 분명 자극적인 미디어의 수용에 의해 길들여지고 가벼워지는 우리 현대 대중을 질책하는 씬이긴 해도 너무 너무 직설적이기에 너무 너무 뻔하고 가벼워 보일 뿐이다.


3.전쟁터
 -두 명의 마이노리티 출신 학생 지원군들보다도 아미 베이스가 더 인상적이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나며 한 때 '유행'했던 미디어 자극의 극치였던 그 녹색영상!
가상적 토대를 통해 두 명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그 작은 아미 베이스야 말로 영화에서 보여주는 가상 경험에 의해 돌아가는 의회, 미디어, 학교 등의 사회 공간의 가장 작은 집합체다
.
언제 꺼져버릴지도 모를 것 같이 치직 데는 영상 안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조무래기인냥 꼼지락 거리는 작은 점들이 바로 현실 속의 숨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우리는 알아도 깨닫지 못한다. 그 영상 자체가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논의 또한 상당히 진부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상황은 더욱 지독하게 악화 되가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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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가들과 미디어가 순간순간 던져주는 떡밥을 물고 이리저리 따라다니기만 하면 된다.
우리 대중이라는 물고기 무리가 사는 곳이 연못이던, 강이던, 바다던 무슨 상관인가?
떡밥만 보고 쫒아다니면 공간이 넓건 좁건 벽(땅)의 경계에 맞딱뜨릴 염려는 없다
왜? 그들이 인도해주니까... 그들이 그런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머리를 박으면 대중이 정신 차리게 될테니까
대중이 재정신을 차리면 모두 상황이 무섭게 격변해 버릴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으니까...
자본주의에 의해 정신과 몸이 황폐해져 이젠 노예라고도 부를 수 없는 사회...
적어도 노예에겐 근성이라도, 혹은 희망이라도 존재할 지 모르지만,
자본주의의 노예를 초월해 몸을 파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대인에게는 오히려 떡밥의 존재에 감사해 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딘가에서 한없이 우리를 비웃으며 피를 빨아먹고 사는 '그들'의 논리에 따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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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밴드, The Whip의 Sister Siam

반가운 소식은 윕의 음악 저 뒤에 간질 간질 거리는 일렉트로 노이즈를 담고 있는 주인공이  Bitchee Bitchee Ya Ya Ya비찌비찌 야야야라는 것!

작년인가 년 초에 처음 알게 된 아티스트인데 깔끔한 사운드 배경의 일렉트로 펑크가 인상깊었다
얼굴 공개도 없어서 좀 궁금했었는데...
요 뮤직 비디오에서는 시원하게 공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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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거이 비찌비찌 야야야의 Fuck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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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달래 줄 음악...?...To Be Gone by Anna Tern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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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받은 160기가 iPod...n_n
기존 80기가가 꽉 차버려 오랜 시간 동안 트랜스퍼 작업을 끝마치고...

클래식만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컴퓨터에 부아주기를 견디며 차곡차곡 90기가가 차나가고 있을 무렵...

앨범 사진 넣다가 갑자기 모든 음악이 사라졌다.ㅜㅜㅋ

새 가슴 되어 iPod 뮤직 폴더에 들어가니 파일 자체는 날라가지 않았지만 iPod의 데이타 베이스가 손상되었다며 인식이 되질 않는다..

방법은 원래대로 복구 ㅜㅜㅋ
90기가를 백업받을래도 90기가짜리 하드 디스크가 없다..

그래서 샀다.ㅜㅜㅋ  택배로 달려오는 중...

iPod Rip, iPod Data Recovery, Recover MyiPod 등 모든 아이포드 관련 리커버리 프로그램을 돌려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TransDoctor가 고칠 수 있다 하는데 US$ 50 정도이고 paypal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나는 나는 절망한다..ㅜㅜㅋ

iPod Classic 너무 실패작 아닌가요? 애플 너무해 너무해....ㅜㅜㅋ

아, 우울해.. 출퇴근길이 너무 외롭다...ㅜㅜㅋ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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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영화보면 듣고 싶은 음악 The Mountain by PJ Ha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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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쳐블스와 드레스드 투 킬로 친숙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예전에 비해 영화 보는 빈도 수도 줄고 내 머리 속에 거의 잊혀졌던 이름 중에 하나였다.
기분도 꾸리꾸리한 날 공짜 티켓을 어따 사용할까 하다가 브라이언 드 팔마의 이름을 발견하곤 "블랙달리아 두장이요"

사실 드 팔마 감독의 영화가 어딘가 나사가 빠져 있는 듯한건 사실이다. 특히나 내러티브 상의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계성 같은 부분도 고질적인 약점으로 꼽힌다.

자주 가는 코엑스 극장 매표소엔 '쪽집게' 언니가 한 분 계신다. 잘 모르겠는 영화면 대충 '재밋어요?' 물어보면 몇 마디 던지시는데 거의 쪽집게다.. ^^ㅋ
헌데 그날 그 분 안계시더라는...

어쨋든 옛날 기억과 느낌도 되살릴겸 달리아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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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부터 말하자면

역시 예상에 벗어나지 않게 스토리 꽝, 개연성 없음, 후다다닥 결말...꾸당 쾅쾅쾅...
그리고 연기.... 흠...
가장 욕먹을 대상이 스칼렛 요한슨이 아닌지.. 뭐..
한국 드라마에서 얼굴 이쁘장한 신인이 처음나와 하는 연기보다는 괜찮다만...
조쉬 하트넷.. 감정 표현 안되는 연기는 못봐주겠지만.. 오히려 그게 코믹적인 요소를 더하는 듯..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여자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눈빛하나 감정 표현 하나 없고 시종 일관 같은 감정으로 승부하는 그는 냉혈인인가?
어찌하였건... 그 썩소와 썩은 표정은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듯 하다. 플러스... 그의 분위기에서 나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브래드 핏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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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에크하트는 오버연기긴 하지만 그나마 볼만했고, 힐러리 스웽크는 기본 가다가 있으니 연기는 볼만하나... 미아 커쉬너와 닮았다는 설정은 정말 억지 중에 억지였고 캐릭터에 잘 어울리지도 않아보인다.

이런 이유인즉슨 내 머릿 속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할배의 '밀리언달라 베이비'의 이미지가 너무나 박혀 있어서리... 팜므파탈로서의 힐러리 스웽크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정말 이스트우드 할배가 한 여배우 이미지 제대로 아작냈다는 ^^ㅋ
오히려 벅키와 만났을 때 '서로 복싱선수끼리 만났네'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며..아, 이건 블랙달리아지..ㅜ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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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아 커쉬너... 그 옛날 영화에 빠져 살았을 때 어톰 에고이양 감독을 통해 처음 만났던 미아 커쉬너.. 그 빠질 수 밖에 없는 매력 덩어리...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빠져들게 만드는 캐릭터를 뽑으라면 미아 커쉬너일 것이다. 테스트샷 영상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모습은 더욱더 신비롭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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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름은 기억 안나지만 단골 조연 배우... 힐러리 스웽크의 어머니 역할.. 이분도 전율이 싹 돋을 만큼 엄청난 연기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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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여러 단점들을 뒤로 하고 나는 왜 이 영화를 보며 순간순간 눈을 떼지 못했을까? 스토리 전개는 전형적인 B급 스릴러에 명단은 화려하다만 연기력은 다들 제각각이고... 하지만 단 하나 이 영화가 엄청난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아닐까? (이미 그에게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인다.)



이 드 팔마라는 관음증의 대 마왕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영화의 카메라가 되어 영화 속의 공간에 실제하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뛰어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오히려 그의 그런 능력은 예전을 초월해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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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도적으로 관객의 감각을 빨아들이는 복싱 오프닝 씬,
취조실에서 캐릭터들의 주위를 한바퀴 도는 동시에 낮아지는 시선 등은 물론이고
두 형사가 자동차를 타고 흑인 여성과 함께 살해당하는 악당의 씬은 동선과 운동 미학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한 여인이 시체를 발견하고 도움을 외치며 뛰어가는 장면부터 시작해 그녀를 외면한 자동차가 천천히 코너의 골목길을 돌아 악당의 길 건너편까지 정차하는 모습을 카메라는 버즈 아이 뷰의 동선을 타고 천천히 따라간다. 거기다가 이 카메라  동선의 운동은 인간의 실제  지각하는 시간, 자동차를 따라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움직이는 신체의 움직임의 시간등과 기가막히게 일치하며 관객을 영화 속의 공간으로 단번에 옮겨 놓는다. 거기다가 두 가지의 다른 사건을 (여성이 발견한 시체와 자동차에 타고 있던 형사들) 마지막에 다시 합쳐 놓는 이 장면은 정말 기가막히다라고 밖에는 표현 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가 힐러리 스웽크의 집 안 장면들은 마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공간에 옮겨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온몸을 서스라치게 만드는 괴기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한 드 팔마 감독 특유의 미장센 연출도 빠질 수 없다. 기가막히게 떨어지는 라이팅에 의한 그림자 실루엣 등은 여전히 드 팔마 감독의 감각은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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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블랙 달리아에서 영상 미학을 보았다.
이 영상 미학이 너무나 잘 떨어지는 나머지 조잡한 연기들과 스토리 전개 등을 지각할 여유 조차 없었다.
아마도 내러티브와 연기의 비중을 더 두는 이들에게는 심한 반감을 일으킬 수 있겠지만 드 팔마 감독의 연출력을 통한 동선과 운동의 영상 미학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강추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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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조잡한 스토리 전개에 의해 임팩트 없고 장면 장면마다 파편적이지만 눈을 뗄 수 없고 빠져드는 이유는 바로 이 영상에 있다.
마치 내가 그 곳에서 그들과 함께 있는듯한,
하지만 그들은 나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그런 관음증적 미학을 여지 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숨막히는 반전과 깜짝 놀래키는 선정적인 장면도 부재한 이 영화는 극장을 나선 순간에도 몸안에 칠을 계속 느끼게 한다...

하지만... 정말 정말... 스토리 중요하고 연기력 따지면 보지 않는 것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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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 This On by The Knife
힙노틱 한 빈티지 영상

과연 노래 부르는 이는 여성일까 남성일까?
저 가득한 중성미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빈티지 느낌의 배경과 사람들...
그리고 정제된 움직임의 연출..
 댄스 또한 슬로우 모션과 같은 약간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힙노틱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어딘가 오지 말았어야 할 그런 금지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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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ool by Adam Tensta
일렉트로 사운드를 중심으로 한 랩 음악 중 하나...
귀에 찰싹 달라붙는...
전형적인 80,90년대 레트로의 공식을 따르고 있는 패션과 색상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여성보컬... 모습이며 사운드며 열라 귀엽다...^^ㅋ
(원더걸즈의 "떼떼데떼떼엘미"를 연상하는 사람이 있을수도...Stacey Q...쩝..ㅠㅠ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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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 Town Rock by Holy Hail
좋은 음악은 거의 (항상) 좋은 뮤직 비디오와 좋은 앨범 디자인과 같이 온다...
홀리 헤일의 새로운 뮤직 비됴...
다다나 칸딘스키 등을 연상시킨다.
 조형성에서 삐져 나와 도형들이 왔다갔다 제각각 자기들만의 말을 하며 돌아다닌다
이정도면 모더니즘의 향수를 일으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영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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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of a Star by Holy Hail
그들의 퍼스트컷..
정적인 카메라 워크에 현란한 짜집기로 심지어 벌레같아 보여 징그럽게 보였던...
이것도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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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뉴 어버니즘 (New Urbanism)의 선두주자이며 작가, 사회 비판가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위성도시 팽창의 문제점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보여준다.


Presentation Style

다른 TED 발표자들처럼 프레젠테이션 마스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캐릭터라면 비판가의 명성에 걸맞게 sarcasm에 의한 독설 섞인 유머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독설이 유교 문화가 뿌리 박힌 국내 사정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무브일지도 모른다. (독설의 대가라고 불리우는 진중권씨가 그의 논지를 떠나 태도에 대해 욕먹는 것처럼)
아마도 독설 섞인 유머 이용에서 중요한 점은 대다수가 수긍할 수 있는 서브젝트여야 하며 그 타당성이 직관적으로 와 닿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쿤스틀러의 독설은 상당히 설득적이다 - 건축가 아이엠 페이의 건축물을 신랄하게 비판할 때 특히 빛을 발한다)

항상 중요한 것이지만 프레젠테이션에서의 적절한 이미지 사용의 예를 보여 준다.
퍼블릭 스페이스의 좋은 예와 나쁜 예를 들며 설명하는 이미지도 건축 문외한들에게도 쉽게 통할 수 있었다. 또한 스타워즈나 한니발 렉터 등 대중과 친숙한 서브젝트를 이용하며 유머를 섞는 것은 쉬운 연상작용을 통해 그의 논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마지막으로 쿤스틀러 특유의 강한 어조는 정치적 주제와 맞물려 미국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라던지 자긍심에 설득적으로 호소하고 있다.
 그가 미국 위성도시의 문제점을 드는 많은 예들 중,
 
"과연 우리가 사는 이 공간이  먼 나라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지켜나갈만한 것인가!"
의 대목은 잦은 테러와 전쟁으로 인해 애국으로 똘똘 뭉친 미국인 정서에 효과적으로 부합하고 있지 않나 한다. (물론 더 나아가서는 문명이라는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Living Locally

미국 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 벌어지는 urban sprawl현상의 문제점은 모빌리티, 즉 자동차와 같은 탈 것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에너지 자원의 소비를 의미하며 지국의 에너지원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는 하이드로젼 라이프에 대해 믿지 않는다)
더군다나 메트로폴리스 이후 메갈로폴리스의 개념은 자동차보다 훨씬 더한 에너지 소비를 요하는 고속 기차나 비행기의 수단을 요하고 있다. 따라서 군스틀러는 여기서 근 미래의 쟁점, 근 미래에 다가올 우리의 civic life는 "Living Locally"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리빙 로컬이 의미하는 것은 사노 히로시의 '작은 마을'이나  파올로 솔레리의 '버티컬' 컨셉트와 같은 맥락에 있다. (위성도시 식의 도시의 horizontal한 팽창은 도시는 물론 더나아가 문명과 지구라는 별의 파멸만 가지고 올 뿐이다. 따라서 파올로 솔레리는 수평적인 팽창을 최소화하며 수직적인 솟아올름으로서의 새로운 도시 생활을 권하고 있다. ) 군스틀러는 리빙 로컬을 주장하며 우리에게 준비하라고 말한다,
   "좋은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Do not refere to yourselves as Consumers!

자신을 소비자로 생각치 말라고 군스틀러는 말한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도시인이다라는 것.
그에 따르면 소비주의자는 이웃에 대한그리고 도시인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감이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정말 가꾸고 싶고 지킬만한 그런 가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면 생각의 전환은 지금 바로 이 순간 필요하다.
근 미래에 소비주의자는 지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사이즈나 문화면에서 미국과 한국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양국 간의 위성도시의 문제점이 똑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위성 도시라는 것 자체가 건축적인 잣대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인 만큼 그 유사성과 핵심적인 문제점은 일맥상통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 등 큰 돈벌이의 직접적 수단이 되는 이 놈의 심각한 땅문제를 앓고 있는 국내에서 한번 쯤 생각해볼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프레젠테이션이 아닌지...
예를 들어 경기도에서 멋들어진 전원주택을 가지고 있더라도 서울까지 지옥같은 출퇴근 생활을 하며 소비되는 에너지원 및 개인의 체력과 심리적 스트레스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공동체적 (가족, 소사회 등) 문화의 붕괴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진정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망할 놈의 신도시 지어봤자 결국 서울로 몰려드는 트래픽은 늘어날 뿐, 그 공간이 과연 '도시'라 부를 만한 것인가?

이 밖에 쿤스틀러의 블로그에서 볼 수 있는 서버비아 비평은 꼭 읽어봄직한다. 강추!
Clusterfuck Nations
 
http://www.kunstler.com/mags_diary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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