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점들은 2021년 돌아다닌 곳들

2021년 나름 2주간 시도 한 해안도로 따라 전국일주였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정리도 못하고 있다가 더 이상 기억 속에서 잊히기 전에 틈틈이 기록하려 한다. <오션드라이브>, <중형 다견 여행>, <백반탐방> 이렇게 3가지의 테마로 떠나 본 2주간의 해안도로 따라 전국일주의 기록 (아래는 요약 포스팅)

 

2주 간 의 해안도로 따라 전국 일주 - 요약

이번 여행의 테마: - - 이번 포스팅은 요약본이고 시간 날 때마다 인상깊었던 곳들의 포스팅을 따로 올리려고 한다 구글 지도에 가본 곳 정리하다가 우선 중형견 3마리가 가능한 애견펜션과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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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 시작 전 3~4개월 안에 이미 가서 할 수 없이 제외된 곳:
- 서해: 인천 (강화도, 영종도) > 안산 (대부도, 선제도, 영흥도) > 당진, 서산 (태안반도), 변산-군산 애견숙소 없음

 

Day 1.

서천

요약

1. 서해안고속도로 따라 충청도 가는 길
2. 경기도 화성휴게소
3. 서해대교 중간의 섬, 행담도 휴게소
4. 충청 보령 죽도 관광지
5. 충청 서천: 홍어와칼국수 백반 

| 서해안고속도로 따라 충청도 가는 길

- 서해안 고속도로: 행담도 휴게소에서 첫 충청도 쪽 바다를 맛보며 대륙을 뚫고 대천 IC에서 빠져 보령 남포면 대천방제대로 로

- 충청도 부사방조제 > 갯벌 체험로 : (홍어와 칼국수 백반, 빨간풍차 에띠앙 펜션 1박)

이미 날이 밝아지고 있었다...

출발은 항상 설레지만 준비 때문에 늦어져 새벽의 뻥 뚫린 고속도로를 즐길 수 없었다. 계획은 4시 30분 출발이었는데 결국 6 시 다 돼서 출발... 토요일인 관계로 차 밀림 ㅜㅜ

 

| 화성 휴게소 (경기도)

여행 첫날은 항상 공식처럼 아침은 대충 휴게소에서 때우는 것 같다. 이번엔 경기도 화성 휴게소에 멈춰 우동, 김치 우동 한 그릇씩.. 맛은 걍 그랬다 ㅎㅎ

오징어게임이 흥행했던 때라 저런 굿즈들이 있었는데 걍 올망졸망 + 고속도로 휴게소 감성 섞인 느낌이 좋아서 찍어봄

화성휴게소의 ROBOSITA 24시간 로봇 카페

로봇이 서빙하는 커피는 신기해서 첨 먹어 봄. 맛은 사람이 해주는 거랑 그닥 차이 없어서 살짝 놀라긴 했다

화성휴게소 꽃길 미술공원 산책로
우리 푸들이는 잠이 아직 덜 깬 모습이다

다행히 강아지들과 갈만한 산책길이 있어 강아지들도 몸 한번 움직여 준다. 강아지들 산책 때문에 작더라도 이렇게 산책길이 붙어 있는 휴게소들이 좋다. 암튼 위의 모습이 여행 첫날의 딱 평범한 모습 같다. 해뜨기 전 출발 > 휴게소 > 우동 > 산책 > 해 뜨고 출발

 

| 서해대교 중간의 섬, 행담도휴게소

서해대교에서 행당도휴게소로 진입하는 길

사실상 바다를 좀 본 건 충청도 보령에 근접하며 시작되었다. 태안 쪽으로 해서 드라이브로 거쳐 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했었는데 거기는 그냥 터널 (보령해저터널)이라 뷰를 경험할 순 없을 것 같아 그냥 계속 내륙 길로 찍었다 

낯의 푸른 하늘에 뒤덮인 하얀 구름. 이번 여행엔 소소하더라도 어떤 에피소드가 펼쳐질까?

휴게소에 들러 서해대교의 멋진 모습이 보여 사진 한 장 찰칵. 다리라는 구조물은 참 멋있다

 

여기는 행담도 휴게소라고 평택과 당진을 잇는 서해대교 중간에 아주 작은 섬 속 휴게소다. 그냥 섬에 휴게소인데, 내려서 서해대교 배경으로 사진 찍기 괜찮다. 국내 유일의 섬 위의 휴게소인데 규모도 꽤 커서 아울렛도 있다

행당도휴게소에서 다시 잠깐 바다를 보며 서해대교를 탄다

후다닥 화장실을 마치고 갈 길을 떠난다 벌써 오전 11시 27분, 아직 갈 길이 멀다. 점심은 충청도 서천 비인면에 꼽아 놓은 곳이 있기 때문에 아침은 허접하게 먹었을지언정 휴게소에서 간식 안 먹는다

 

|보령 죽도관광지

내가 향하는 곳은 저 충청도 서천군 비인면의 쪽이었다. 와중, 가는 길에 죽도관광지라는 곳이 가는 길이 있는데 방조제로 이어지는 길이 꽤 긴 와중 중간에 조그맣게 똑 삐져나온 섬이 하나 있어서 가던 길에서 잠깐 빠져 잠깐 구경하고 가기로 했다 (진짜 잠깐)

급 궁금해서 챗GPT에게 물어보니, 방파제와 방조제는 둘 다 수로와 해안을 보호하는 구조물이지만, 방파제는 파도의 충돌과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되는 반면, 방조제는 풍랑과 조류의 영향을 조절하여 수로 안정화를 목적으로 설치됩니다. 또한, 방파제는 주로 돌로 만들어지는 반면, 방조제는 화강암 등으로 강화된 콘크리트 혹은 강철로 만들어집니다.... 고 한다

방조제 길을 따라 죽도 입성

 관광지 안으로 들어가진 않고 그냥 바다 기분만 느끼려 죽도항이 아닌 죽도슈퍼 쪽 길만 잠깐 걸었다. 주변 시설들은 뭔가 8,90년대에 멈춰 있는 그런 느낌? 같아서 조금이나마 향수가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 맑은 11월의 하늘 

파노라마 샷

특히 오랜만에(?) 보는 듯한 뻘 없는 서해안 바다를 보니 벌써 바다 느낌도 나고 좋았다

상화원 공홈에서 이미지 퍼 옴

이 죽도는 저 상화원이라는 한옥 정원이 유명하다고 한다.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간 김에 함 둘러보고 오면 좋았으련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점심이 다 되어가니 보령팔경의 하나라고 하는 죽도는 입구만 즐기고 일단 밥집을 향해 ㄱㄱ~ (참고로 한옥 숙박도 가능한데 애견 불가지만 산책로는 애견과 함께 할 수 있다고 한다)

 

| 서천: 홍어와칼국수 백반

서해 비인면, 저기 A라고 표시된 곳이 비인 해수욕장 홍어와칼국수 맛집

충청도의 서천인데, 지도 동선을 보니 바다의 환경이라는 조건에서 운전 시간 상 중간 첫 숙박 및 점심에 안성맞춤인 곳 같아서 이 근방에서 첫날을 보내기로 했다

홍어와칼국수 가는 길

(늦으막에 떠나는 여름여행 치고)나무들이 뭔가 시원한 느낌이 나서 좋았다. 일단 밥 먹을 동안 강아지들을 위해 최대한 최적의 그늘을 찾아 주차

 

밝은 햇살이 우릴 반긴다

첫 번째 이번 여행의 백반 타깃, 홍어와 칼국수 발견. 상당히 낙후된 외관에 '음?' 하긴 했다

백반 맛집이라고 듣고 아침 이후 암 것도 안 먹고 찾아온 홍어와칼국수, 1시 도착이 계획이었지만 벌써 2시가 다 되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외관이 허름하다

밖이 너무 허름해서 처음엔 살짝 걱정했으나 내부는 우려와 달리 나름 깨끗이 잘 정리/관리되고 있어 맘이 놓였다

뭐가 많긴 한데 그 맛있다고 소문난 2인 기준 8,000원 백반 간다. (참고로 2023년 7월 기준 메뉴 확인해 보니 아직도 8천 원이다...) 다른 포스팅에서도 언급하 긴 했는데 뒤에서 "좀 도와주세요" 이러길래 속으로 '뭔가?"하고 뒤돌아 보았더니 서빙하시는 분이 엄청난 양의 반찬 그릇들을 들고 오시는데 순간 마주친 그 비주얼이 그냥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아, 네!"하고 튀어나가게 된다

저걸 한 번에 다 지고 오신 거... 쨋든 식탁에 쌓이고 "우와~ 맛있겠다! 이게 8천 원이라고?" 하고 먹으려는데...

... 계속 뭐가 더 나온다. 더 나오고 더 나왔다. 나중엔 몇 첩인지 세다가 포기해버렸다. 근데 여기가 양으로만 승부하는 곳도 아니었다. 맛.있.다. 우린 소식간데 최대한 하나하나 다 먹어 보려고 노력했고 진짜 많이 먹었다. 내 인터넷 하면서 '쩐다', '찢었다', '미쳤다', '레전드다', '꼭 드세요' 등 이런 말 진짜 극혐 하는데 한 마디 한다. 8천 원 기준으로 갠적으로 이건 '레전드 급'이었다. 첫날 여행, 이른 아침 맛없는 휴게소 가락국수 한 그릇 먹고 2시까지 버틴 보람이 있었다. 

사진에 보다시피 몇몇 빼고는 대부분 따듯하지 않은 분위기의 반찬들인데, 이걸 따땃한 밥과 국물과 함께 하는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거다. 참... 행복하다. 이 한 끼.

맛있었다. 8천 원의 가성비. 그저 행복함. 아니 무슨 통영 다찌집의 반찬 버전을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요!

이 문구가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가는 곳이다

최대한 싹 다 비우고, 반찬 그릇도 많으니 뭔가 이렇게 알아서 짬 처리 하는 게 뭔가 관습(?) 같은 것 같았다. 밥만 먹고 "아, 배부르다, 나가자" 할 뻔했는데 옆 테이블들 보고 배워서 우리도 실천. 너~! 무 잘 먹었어요. 아.. 저녁은 못 먹을 듯싶다... ㅜㅜ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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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담골 정식1인+게장정식1인

차 정비 맡길 일 있어서 잘 봐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일산에 갔다. 원래 카메라가 좀 이상해서 갔는데 뭔가 믿음이 가서 기본 차정비도 맡겼는데 아니다 다를까 하부 쪽 꽤 고쳐야 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귀찮아서 계속 간단 정비만 하다 보니 하마터면 클 날 뻔했다. 

암튼 이번 정비소는 맘에 들어서 담에 하부쪽 싹 다 고치기로 했고, 아점 시간이 다 돼 가서 그냥 일산에서 먹기로 해서 찾아간 곳

위치는 한양상가라고 일산 서구와 동구의 중간 지점 즈음, 원마운트에서 한 두 블록 정도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뭐 딱히 멀지도 않고 검색해 보니 평들도 좋아서 ㄱㄱ~ 상가 건물에 있으니 뭐 주차도 신경 쓸 필요 없고 (이 날은 지하 안 들어가고 야외에 자리 있어서 좋았음)

 

크게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첫 손님? 이었던 듯

공간은 그냥 신도시 상가 음식점 느낌인데 첫 인상이 좋았던 게 저 덮게로 가려진 접시들이었다. 

최근 들어 음식점 가면, 따지 않은 생수를 준다거나, 젓가락과 숟가락이 종이 덮개에 일일이 덮여 있는 집을 좋아했다. 여기도 거기까진 아니지만 일단 접시에 대한 저런 세심한 터치 하나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말 많은 신뢰감을 준다. "아, 이 집은 위생에 대해 신경 쓰고 있구나." 특히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업종사 분들께서 항상 조리부터 전달까지 마스크를 착용한다거나 위에 말했던 물, 식기, 접시에 대한 위생에 대한 신경 쓰는 부분들이 많아진 건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날씨가 추워지는 지라 땃뜻한 (뭔진 모르겠으나 ㅜㅜ) 차가 저 보온병에 담겨 있다. 

(차 쪽은 약해서 종류는 모름.. 보리차일 수도... ㅜㅜ) 암튼 이러한 일련의 첫인상이 좋은 곳이었다

우리 집은 게장을 참 좋아해서 보자마자 간장게장 반상이랑 토담 반상을 시켰다. 아무래도 처음 가는 곳이니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기본도 먹어봐야지 하면서 ㅎㅎ

게장 반상, 토담 반상

여긴 게장은 물론이고 위에서 언급한 가게 들어설 때 첫인상의 느낌만큼이나 이것 저것 다 맛이 괜찮았다

소식이라 반찬이 너무 많으면 다 못 먹는 편인데 이것저것 줏어 먹게 되더라

반찬도 기본들이지만 다 맛이 좋았다. 굳이 빼라면 김이야 걍 김인데 암튼 다른 반찬들..

양념게장 사이좋게 먹으라 두 개 나오고

밥도둑 간장게장

젓갈도 넘 짜서 보통은 안 먹기도 하고, 이미 밥도둑인 간장게장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갔다

아.. 그리고 저 전... 일반인들한텐 앙증맞은 사이즈일 텐데 나오자마자 먹으니 참 맛있었다

왼쪽 반찬들도 다 밥도둑 들이다. 그냥 게장만 타깃으로 맘먹고 시킨 건데 막상 반찬들도 다 정갈하니 맛있다 보니 그냥 기본 반상만 시킬 것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집은 다 소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역시 지나칠 수 없는 누룽지... 신기하게 배가 불러서 디저트 배는 없는데 누룽지 배는 항상 남는다. 누룽지까지 뚝딱... 배터지게 먹고 왔다.

나가는 출구 쪽인데, 반찬들이 맛있어서 그런지 따로 팔기도 했다. 따로 사지는 않았지만...

두번 째 방문~ 짜잔~

그리고.. 한 달 후에 또 일산갈 일이 있어서 또 토담골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직화구이 생선을 시켜보았다

생선반상 (임연수였나.. 삼치였나...)

이번에도 맛있게 뚝딱하고 나왔다. 지방 여행 가서 느끼는 백반의 맛을 느낄 수 있었던 곳. 두 번째 방문도 대 만족이었었다. 일산에 가면 항상 들를 곳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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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의 금요일 시리즈의 제이슨 부어히

 

슬래셔 영화의 그 뻔한 전통적 공식 5개

최근 를 보고 이 나온다는 얘기에 흥분하며 다시 슬래셔 무비의 매력에 빠져 을 쓰려다가 언제나 그렇듯깊이 빠져버려 또 서문만 엄청 긴 포스팅이 될 까봐 인트로 식으로 (뻔하지만) 슬래셔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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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공식을 다룬 1탄에 이은 슬래셔 영화 시리즈 2탄은 슬래셔 장르가 어떻게 각 시대상을 반영해 왔나를 10년 주기로 바라보았다. 3탄은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를 다룰 예정이다. 참고로 각 시대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장르의 탄생지이자 진화지인 미국이 기준일 수밖에 없었다

70~90년대 대표 슬래셔 악당들&nbsp; &nbsp;출처&nbsp;https://www.thequiz.com/

슬래셔 영화는 일반적으로 고찰적이거나 심각하다기보다는, 자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오락 영화 장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장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바로 그 시대의 상황과 문화를 반영하며, 동시대 관객들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70년대 맨하탄 출처 www.theguardian.com

슬래셔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사회/현실적 공포와 불안을 통해 '자아'를 실현시킨다. 특히 미국은 역사 속에서 항상 다양한 요인의 사회적 폭력과 범죄에 시달려온 대표적인 나라다. (현재의 경찰총기사고나 학교 총기 테러 등) 이러한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슬래셔 영화는 어떻게 장르적 공식에 충실하거나 뒤틀며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시겼을까?

제이슨과 프레디, 출처 https://brokehorrorfan.com/

장르가 태어난 70년대부터 슬래셔 영화들이 그려온 시대상을 살펴보면, 사회의 불안감과 공포의 공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시대를 되돌아보며, 대표적인 슬래셔 영화들이 어떻게 그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반영하며 작품을 펼쳤는지 살펴보고 장르의 공식에만 묻혀 잊혀진 슬래셔 영화들과 기억에 남는 대표작들 간의 차이도 함께 알아보았다


| 1970년대

미국의 시대별 강력범죄 통계를 보면 60년대를 시작으로 90년대 초반까지 범죄율이 크게 치솟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는 이미지 안에.

70년대의 미국은 Suburb(근교)를 포함한 어번 Urban(도시 지역)에서 범죄율이 상승하고 집행 기관의 대처 실패에 대한 우려가 컸던 시기였다. 이는 주거 지역에서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낳았다. (슬래셔 뿐만 아니라 유독 이 시절 갱, 형사 영화, TV 시리즈가 특히 넘쳐났었다)

영화같지만 실제 70년대 미국 범인 검거 중 사진이다. 출처는 이미지 안에.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적인 통념과 전통적인 권력구조와 규범에 도전하는 시민, 여성,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운동이 본격화되었고, 1975년의 베트남 전쟁 종전 또한 미국인들에게 큰 사회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던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공산주의를 상대로 한 전쟁의 패배 및 이후 사회로 돌아온 베트남 전쟁 베테랑들과 기존 사회의 불협화음 등)

미국 특유의 서버브 배경에 서 있는 살인마, 마이크 마이어스. 살인마로 다시 돌아오기 전 그의 첫 살인은 1962년으로 미국 범죄율 상승시기와 얼추 잘 맞아들어간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1978년의 "할로윈"은 슬래셔 영화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1980년대 초중반 슬래셔 영화 부흥의 불쏘시개였다. 이 영화는 미국의 Suburb(근교)를 배경으로,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나는 안전한가?라는 불안감을 대중에게 안겼다. 벽도 없고 울타리도 없고 대문도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그림 같은 환경의 서버브 환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마가 나타나 청소년들을 살해하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것도 미국의 상징적 축제 문화인 '핼러윈 데이'에...

영화가 나은 파이널걸이라는 또 하나의 상징적 캐릭터인 로리 스트로드 (제이미 리 커티스)

이 작품은 슬래셔 영화의 전형적인 요소들을 담아내면서도 70년대의 미국의 사회적 불안과 공포를 효과적으로 반영하였다. 할로윈의 살인마가 주변의 평화롭기 그지없는 환경에서 조용히 범행을 저지르는 모습은, 편안하게 '느껴/보여지는' 현실 세계에서의 잠재적 위협에 대한 불안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 (the Texas Chainsaw Massacre)의 살인마, 레더 페이스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74년의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이 있다. 이 작품은 미국 사회의 폭력성과 소비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았다. (미국 소비문화는 언제나 많은 각종 영화 장르들의 탐구 대상이긴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비정상적인 행동과 폭력은 시대적인 불안과 공포를 강조하며 관객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전달했다 (심지어 실화 바탕이라는 것 또한 크나큰 충격이었던...)

좌측부터 투어리스트 트랩, 커뮤니언, 웬 어 스트레인저 콜스, 블랙크리스마스

이 두 영화가 슬래셔 역사에 있어 장르적 정의를 세운 가장 상징적인 작품들로 꼽히며, "블랙크리스마스 (1974)", "투어리스트 트랩 (1979)", "커뮤니언 (1976)", "웬 어 스트레인저 콜스 (1979)" 등등 70년대의 슬래셔 영화들은 시대/사회적 문제와 불안감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관객들에게 재미와 긴장감을 제공했다

 

| 1980년대

유원지나 대형마트 같은 대규모 다중이용 공간에서 신속히 미아를 찾는 제도인 코드아담을 촉발시킨 1981년 애덤 월시 미아 납치 사건의 부모의 인터뷰 모습, 그리고 1986년 마약 퇴치 캠페인을 선언하는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

1980년대 또한 70년대와 마찬가지로 혼돈의 시기였으며 다양한 사회적 불안과 범죄 요인들이 증폭되었다. 이 시대의 특징으로는 코카인이나 헤로인을 넘어 엑스터시 등과 같은 새로운 마약의 등장과 갱단들의 폭력 범죄, 애덤 월시 미아 납치 살인사건 등의 각종 범죄들에서 비롯된 사회적 불안이 두드러졌다. 레이건 정부는 마약과의 전쟁 선언 및 사회적 범죄에 대한 제재를 위해 더욱 강력한 처벌과 교도소 시스템의 대규모 확장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들이 국민들에게 더 큰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기도 했다. (일례로 마약과의 전쟁 선언 후 미국 내 마약 사용은 더 늘어났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어찌하였건 90년대에 이르러서는 범죄율의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긴 했다. 물론 이전 대비...)

1편 포스터, 오른 쪽에서 두 번 째에서 조연으로 나오는 케빈 베이컨을 확인할 수 있다


<13일의 금요일 (1980)>은 이러한 사회가 야기하는 대중의 불안을 잘 꿰뚫은 작품으로 80년대 슬래셔 영화의 엄청난 부흥을 이끈 작품이었다. 이 시리즈는 제이슨 보헤스라는 슬래셔 하면 연상되는 대표적 아이콘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이후 이를 모방하거나 영감을 받은 많은 영화 및 시리즈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으며 캠프, 산, 숲과 같은 고립된 장소에서의 살인을 다루는 스토리가 흔해지게 되었다. 아무튼 <할로윈>의 모방이자 아류작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할로윈>이 불쏘시개고 <13일의 금요일>은 거의 화염방사기급 레벨로, 이 영화의 매력이 실로 대단했던 나머지, 슬래셔 장르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였고 오랜 시간 동안 시리즈물로 이어지게 되며 슬래셔 영화 역사에 큰 정점을 찍었다. (시리즈물로 이어져가며 캐릭터로서 제이슨의 실질적 활약은 2탄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1982년 13일의 금요일 3탄

참고로 제이슨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하키 마스크는 1982년의 3탄에나 가서 등장한다. 중간에 쉘리라는 캐릭터가 사람들 놀라게 하기 위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마스크였는데 그를 죽인 후 그것을 쓰게 되는 것이 이후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제이슨의 모습이다 

 

나이트메어 1 포스터 1984

<나이트메어> (1984)도 슬래셔 장르에 있어 기가막힌 발상의 전환이 눈에 띄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반적인 슬래셔 영화들이 피지컬과 물리적인 측면의 공포를 선사했다면 이 시리즈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꿈속에서 주인공들을 쫓는다는 새로운 개념의 긴장감과 공포감을 선사했다. 특히 이 부분은 80년대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마약과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동시에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경계 불분명을 통해 경제와 사회적 불안정성이 공존하던 그 시절의 불안과 공포를 더욱 극대화했다

일례로, 프레디는 자는 동안의 인간을 목표로 삼는다. 수면은 개인들이 물리적 휴식을 취하기도 위함이지만 외부 세계의 현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후퇴'하는 심리적 잠재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안전한 피난처로 추정되는 꿈이라는 영역에 침투하고 테러한다. 이는 지속적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통상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영역들의 취약성과 무력함을 가감 없이 보여둔다

프레디가 출현하는 주인공들의 꿈들의 연속을 따라가다 보면 침실, 복도, 병원, 집 안 공간과 같은 비교적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익숙한 환경들을 접하게 된다. 어디서나 프레디라는 공포의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현실 어디에서도 '안전한' 공간은 없다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훗날 스크림을 만들며 슬래셔 영화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이정표를 남긴다

프레디 크루거는 인간이었던 시절 자신 또한 아버지에 의한 아동학대와 학교에서의 '왕따'를 당했었고, 자해는 물론 동물학대 등의 극도의 정신불안적인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이후 성인이 된 후 수많은 아이들의 연쇄 유괴/살인범이 되고, 결국 이 사건에 분노한 마을 주민들에 의해 불태워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악령과 같은 존재로 태어나며 주로 10대를 자신의 타깃으로 삶는데 이는 자신을 죽인 그 부모들에 대한 복수(그들의 아이들을 해치는)로서 해석되는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트라우마와 그것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 및 복수와 폭력의 끝없는 순환을 영구화시킴으로써 영화 속 피해자들은 물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의 잠재의식적 영역까지 침범하며 공포와 서스펜스를 펼쳐낸다

이 외에도 이 프레디 캐릭터는 장난기 섞인 유머를 가진 코믹적 성격으로 유머와 장난을 가미한 공포라는 점도 독특한 감성으로 다가오며 슬래셔 캐릭터의 새로운 해석과 표현 방식을 통해 빼 놓을 수 없는 대표 슬래셔 캐릭터로서의 인상을 남겼다

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통해 슬래셔 장르가 대중의 정신적 영역의 불안감을 시각화하여 건드렸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그리고 웨스 크레이븐 감독은 이후 90년대를 뒤집어엎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스크림> 시리즈를 감독하게 된다. 아무튼 국가적, 사회적 불안감은 고스란히 개인의 몫이 되어 개개인의 정신적 불안감의 영역까지 깊게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정신이 건강해야 몸도 건강하고,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한 법. 음... 아무렴...

 

쳐키, 헬레이져

암튼 앞서 말했듯이 뻔한 공식, 일방적인 모방과 자극적 요소만 추구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작품들의 질도 떨어졌음은 물론 이러한 반복되는 유사성에 의해 장르에 대한 관객들의 피로도 또한 극도로 높아졌다. 이로 인해 90년대에 가까워지며 슬래셔 영화는 암울한 쇠퇴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몇몇 대중의 사랑을 받은 영화들도 꾸준히 등장하기는 했는데 대표적으로 <헬레이져> (1987)와 <쳐키> (1988) 등이 있다

 

|1990년대

1992 LA 폭동 당시 기록 사진 출처&nbsp;www.businessinsider.com

60년대부터 시작한 꾸준한 범죄율의 흐름에 이어 1992년의 'LA 폭동' 등 폭력과 범죄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해서 미국의 사회적 문제와 관심사였지만, 90년대가 흘러가며 미국은 범죄율이 대폭 감소하는 징조를 보이며 안전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아래 표 참조) 

 

이러한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그 알다가도 모를 포스트모더니즘은 물론,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경제적 번영과 기술적 발전이 돋보였던 시기였던 만큼 대중의 사회적 관심사도 더욱더 다각화되었다.

 

1992년 Arsenio 홀에서 색소폰 연주를 하는 빌 클린턴 대통령 후보 (캠페인 중). 정치적 입장을 떠나 글에서 언급한 이 시대의 그나마의 '평화'를 느껴지게 한 상징적 모습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출처  electionwalldotorg 유튜브

이러한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미 80년대부터 대중의 외면을 받은 슬래셔 영화가 설 자리는 더욱 좁아 보였지만 이는 어떤 면에서는 미국이 현대 역사에 있어 그나마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적어도 2000년 9/11이 터지기 전 까지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nbsp; 출처&nbsp;https://www.vanityfair.com/

80년대에서는 말도 안 되는 과장된 표현이 지배적이었으나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경향은 점차 사그라들고, 자기반성과 자기 인식이 중요시되는 시기로 변화하고 있었고 특히  X-세대가 부각되면서 새로운 문화와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도 서태지를 통한 하이틴 문화와 자기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했다.) 2000년대를 향한 밀레니엄의 공포도 사회적 불안의 요소로 작용했겠지만, 이러한 요소들은 오히려 90년대 X-세대들에게는 더 큰 실험, 새로움, 즐거움을 선사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90년대 세대들은 밀레니엄을 향한 사회적 불안의 상황을 더욱 즐기며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92 캔디맨, 최근 인어공주 리메이크 사태를 바라보며, 영화라는 매개체가 어떻게 인종 이슈에 대한 트위스트를 통한 대중의 감성과 지지를 얻는 것에 대한 교훈와 대안의 좋은예 중 하나로 본다

그 와중에도 몇몇 슬래셔 작품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극복하며 90년대에 흥행 역사를 기록했다. 위에서 말했듯 이 작품들은 기존의 공식의 한계를 어느 정도 뛰어넘으며 작게는 또 크게 새로운 장르적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대안=얼터너티브=그런지=너바나=90년대라는 공식이 갑자기 생각나는 건 왜일까...)

(좌)부터 나는 지난 여름에..., 캠퍼스 레전드, 캔디맨, 스크림

대표적으로 도시전설과 흑인 빌런을 통한 트위스트로 인종문제 이슈를 역으로 잘 소화해 낸 1992년의 <캔디맨>, 슬래셔 장르의 문법 자체를 완전히 전복시켰다고 볼 수 있는 걸작인 1996년의 <스크림>, 로맨스 요소의 강조 등을 통해 관계와 갈등의 요소를 좀 더 깊게 활용하며 지난 실수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처벌이라는 테마를 더욱 강조하며 캐릭터 및 스토리 개발에 힘쓴 '어린' 성인들의 이야기인 1997년의 <나는 지난여름에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도시 전설을 살인의 동기와 연결시키는 동시에 대학생들의 일상과 공포를 결합시키며 클리셰를 재해석하고 활용한 1998년의 <캠퍼스 레전드>를 들 수 있겠다. 이런 작품들은 90년대의 슬래셔 영화 시장에서 굉장한 서프라이즈로 평가받을만한 작품들이었다

스크림의 한 장면. 정말 드류 베리모어의 존재감도 큰 몫을 했다

이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상징적인 작품은 80년대 <나이트메어>의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스크림>이다. 슬래셔 영화의 오래된 공식을 철저히 깨뜨리고 전복시키며 많은 평론가와 관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전통적인 관습과 클리셰에 대한 유머러스한 조롱과 자기반성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장르적 의미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슬래셔의 기본은 유지하면서도 그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 팝 컬처 속에 젖어있던 대중의 감성의 정곡을 제대로 찌르며 공감대를 이루어 냈다는 것에도 굉장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1990년대의 슬래셔 영화는 그 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관심사를 반영하며,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OOO처럼) 대중이 사랑했던 슬래셔 장르에 기본은 갖추되, 예측 가능한 공식을 더 깊고 넓게 개발하거나 지나치게 관습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 독창적이라고 인식될 만한 작품들이 주목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80년대의 과장된 표현에서 벗어나 자기반성과 자기 인식이 중요시되는 시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동시에 그 안에 스며들어 있는 동시대적 불안감과 공포를 끄집어내며 호응을 이끌어 낸  특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니멀리즘 음악의 거장 중의 거장, 필립 글라스의 <캔디맨> OST 중 'Helen's Theme'을 들어보자...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디맨,

캔..ㄷㅣ...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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