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DB의 모든 것 2
Glass Candy, 결성부터 지금까지
이번 판은 FADER 온라인의 인터뷰를 대강 번역...
08년도 버젼인 이 인터뷰를 통해서 글라스 캔디의 팩트에 관한 것들을
좀더 자세히 알수가 있다.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들과 사생활들...
팬이라면 궁금해할 만한 그런 것들...
거기다가 글라스 캔디와 크로마틱스 사이의 사랑이야기 까지!
(아... 저질스러운 이 연예가통신 근성...-_-ㅋ)
출처: http://www.thefader.com/features/2008/4/8/fader-53-glass-candy
FADER Magazine 53: Glass Candy
Story by T Cole Rachel
Welcome to the Good Life
튼실한 삶에 온 것을 환영해요~^^
글라스 캔디는 10여년 전 결성돼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치 못했던 글래머러스한 디스코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
아이파드의 셔플 기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그 마법같은 우연의 순간처럼 나는 로레아타 린의 "포틀랜드, 오레곤"을 들으며 포틀랜드, 오레곤으로 운전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로레아타 린이 마지막으로 이 지역에 온 순간 이후로 참 대단한 일들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음악에 따르면 광부의 딸은 실연의 아픔만 얻은게 아니라 아예 미쳐버렸다지.
뚫린 대로변을 지나가며 거리에 박혀있는 빈티지 부티크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커피샵들이 보였다. 그 때 내가 보기에 포틀랜드는 조바심은 만들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미쳐버리게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포틀랜드는 휘발류 대신 식용기름을 쓰고 나이키를 위해 디자인을 하거나 에코관련 잡지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 때 포틀랜드는 나무들이 빽빽한 산들에 둘러쌓여 있는 신비롭고 편안한 도시였다.
절대로 서른 몇 살의 아름답고 포스트글램한 커플이 "호러와 아름다운 것에 대한 힘찬 환희의 비젼을 선사하는" 심각한 디스코 음악을 만들어 내는 글라스캔디 같은 그룹을 만나리라곤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 듀오는 정녕 이런 따분하고 히피 친화적인 타운에서 결성돼었다. 또 하나의 일어날리 없는 음악 커리어에, 일어날리도 없는 우연과 모순인 것이다.
10여년동안 쟈니 쥬웰과 아이다 노는 '락','일렉트로' 혹은 '이탈로 디스코'의 댄스 버젼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매력적인 열망에만 꽉찬 실력없는 아트 펑크에서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어떤 숭고함이 담겨 있는 변신을 일궈냈다. 그들을 아는 팬들,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은 이 둘을 가르켜 무뚝뚝하고, 부끄럽고, 괴짜이며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포틀랜드 사람들은 그들은 미친듯이 좋아하거나 미친듯이 경멸하는 듯 하다. 어쨋든 모두가 동감하는 것은 최근 물결처럼 쇄도하는 글라스 캔디의 인기는 꽤 오래걸린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유명해지는 것에 신경을 좀 썼더라면 이미 오래전에 일어날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인기 따윈 개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이 만약 포틀랜드로 이주하지 않았었더라면 글라스캔디의 결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다는 뱅쿠버 출신으로 데어리 퀸 (아이스크림 체인점...아이스크림계의 맥도날드정도로 생각하면 됨..-_-ㅋ)에서7년 동안 일했다. 반면 쥬웰은 텍사스 오스틴 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집안의 종교적 양육에 반기를 들었다. 정상으로 살기 힘들정도로 간섭이 많고 편협한 사상으로 꽉찬 포틀랜드의 음악씬에서 정말로 구체적이고 모순적인 미학이 이 둘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아이다: "그(쥬웰)는 길가 식품가게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전 제가 키우던 애완 토끼에게 먹일 당근을 하려고 그 가게에 들렸는데 그에게 딱 눈길이 갔죠. 1995년 포틀랜드에서는 보기드물게 머리 손질이 잘돼어 있는 남자였죠. 그 때 쥬웰이 쫌 귀엽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기서 일하고 있던 사람한테 물어봤죠, 저 사람 게이냐구요. 별다른게 아니라 그 때 보기드물게 헤어스타일도 좋고 해서요.. 나중에 안건데 제가 물어봤던 그 사람 당시 쥬웰이랑 엄청나게 사이가 나쁜 사람이였더라구요. 제 질문이 끝나자마자 쥬웰한테 걸어가더니 가게 안 모든 사람 다 들리게 큰 소리로 너 게이냐고 묻더군요. 너무 쪽팔려서 금방 당근만 가지고 가게에서 톡 꼈어요..ㅜㅜ"
몇 주안 쥬웰과 아이다는 같이 살게 되었고 아주 괴상한 소리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아이다: "주웰이 말하길 만약 내가 음악이 하고 싶다면 나만의 로보트가 돼어 준댔어요. 근데 그는 썩 좋은 로보트가 아니었더랬죠. 우린 어떻게 음악을 만들고 연주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걍 윙윙거리고 괴팍한 소리만 만들어냈죠. 그리고 전 그저 니코 (Nico)와 비슷하게 목소릴 내려고만 했구요.. 으이구... 그 때 우린 정말 모든걸 FM방식으로 어렵게 다 배워야 했어요."
글라스 캔디의 초기 작인 "Metal Gods,2001"과 조시 코튼의 캠프 클라식인 "Johnny, are you Queer,2002"를 듣고 있노라면
이 사람들이 정말 악기 연주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글라스 캔디는 원래 Glass Candy & the Shattered Theatre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이 직접 낸 두 개의 싱글이 있었다. 그리고 K 레코드에서 EP로 출시하고 결국 지금의 홈베이스인 뉴 저지의 트러블맨 언리미티드 레코드로 오게 된 것이다.
초기 시절 가지고 있던 그들의
신스 사운드와 모드타스틱한 비쥬얼은 지금까지 그들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오리지널 멤버인 아발론 카린의 탁한 드럼비트, 꽥꽥 거리는 쟈니 쥬웰의 기타 -그때 이름은 존 데이빗 브이-, 그리고 섬찟한 디스코에서나 들을 수 있음직한 성난 리니 로비치 혹은 겁먹은 데비 해리같았던 아이다의 보컬로 설명되는)
뒤죽박죽이었던 그들의 초기 사운드에 대한 반응은 딱 두가지였다. 미친듯이 짜증나거나 아님 컬트 영화처럼 꽤 신선하게 받아들거나...
어쨋든 당시 평론가들은 이들을 매몰차게 내던질 건지 찬양할지 어리둥절해 있었고 팬들은 좋아서 광분했다 (그들의 사운드보다는 그들을 보는 걸 좋아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드러머가 사라지며 Shattered Theatre의 모니커도 사라졌다. 첨엔 날카롭게만 보이던 미학적 요소를 품고 있던 그의 라이브 쇼 퍼포먼스 스타일도 점차 캐쥬얼하고 세련되게 변해갔다. 스테이지에서 "영상적인 흥미"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던 라이브 드럼과 기타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2003년
Love Love Love 앨범을 발표했다.
10여년 동안 거쳐온 그들의 설정과 사운드적 진화를 테스트하고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06년 모든 것이 확실해 졌다.
글라스캔디의 핵심 요소는 쥬웰, 아이다 그리고 신디사이저 3 가지 뿐이라는 것.
2008년 이후 글라스 캔디는 괴상한 영향의 총합체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 이탈로 디스코, 프리스타일, 크라우트락, 힙합, 스푸키 뉴웨이브. 그리고 그 총합체가 글라스 캔디를 통해 내뱉혀 질 때 나오는 사운드는 정말 친숙하면서도 놀랍게도 신선했다.
쟈니 쥬웰: "사람들이 우리 사운드를 여러 케테고리에 집어 넣는 것에 대해서는 이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다는 리디아 런치를 듣기 보다는 옛날 마릴린 몬로 영화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하죠. 그리고 저는 이탈로 디스코를 전적으로 선호하며 80년대 경찰 TV 드라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아요."
최근에 일어난 이탈로 디스코의 붐이 글라스 캔디의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큰 불을 집힌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쥬웰이 프로듀서로서 그리고 듀오가 송라이터로서 성장한 과정이야 말로 글라스 캔디의 인지도를 높인 원인이다. 오늘 날 댄스 음악이 대부분 생각없는 샘플링과 디지털 비트의 남용 (괜시래 국내 대중가요의 현주소가 떠오르는군요..-_-ㅋ 쥔장 주)과 얼굴에 철판을 깔고 하는 자신의 패러디들로 난무한다면 글라스 캔디는 마치 태초의 진공상태에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그들의 사운드는 항상 몽환적이고 미세함의 상태를 선사한다.
쥬웰과 트러블맨 언리미티드의 마이크 시모네티의 합작품인 이탈리언즈 두 잇 베터라는 새로운 레이블의 탄생과 함께 글라스 캔디의 인지도는 더욱 높아 졌다. 비슷한 일렉트로닉 액트들을 장려하기 위해 탄생한 이 레이블에는 크로마틱스, 미라지, 파라가 속해 있다. 2007년 레이블이 내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인 [After Dark]의 예상치 못한 대 성공은 글라스 캔디의 [B/E/A/T/B/O/X] 풀렝스 앨범의 발매로 이어졌다. (원래는 투어때만 배포할 앨범으로 기획돼었었죠) 앞으로 EP와 새로운 앨범 그리고 바이닐 릴리즈가 속속들이 나올 것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중이라 한다.^^
내가 글라스 캔디와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하기 전 몇 번의 이메일을 통해 그들과 대화했음에도 불구 하고 만약 그들이 내 인터뷰에서 성의없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난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얼마 전 그들은 자신들과 그 몹쓸 하입에 둘러쌓였던 일렉트로 클래시 씬과의 연관성에 대해 상당한 전쟁을 치룬 후 였다. 진솔한 락 음악과 정치적인 펑크 잼으로 유명한 미국의 태평양 북서부 지역은 글라스 캔디처럼 번쩍 거리며 휘황차란한 비쥬얼을 자랑하는 밴드에게는 그리 좋은 터전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그 지역의 대부분 미디어는 글라스 캔디의 겉모습에만 신경을 썼다. 아이다 노는 완전 뻑간 코즈믹 글래머 요정으로 쟈니 쥬웰은 데이빗 보위를 따라하는 삼류 임프레사리오 정도로. 급기야 플레이보이지는 아이다를 인디락계의 가장 섹시한 여자 중 한명으로 지정했다.
아이다 : "적어도 제가 3등은 했죠...-_-ㅋ"
이 정도가 북서부 미디어의 호의적인 반응이었고 나머지는 암울했다. 어느 한 잡지는 (사실 이 잡지는 바로 여러분이 보시고 계신 FADER 입니다.-_-ㅋ) 그들을 향해 "엉망진창"이라고 혹평했다. 하지만 더 심한 혹평은 그들의 홈타운인 포틀랜드에서 나왔다. 2000년 포틀랜드 머큐리는 정말 섬찟한 짓을 했는데, 글라스 캔디의 사진을 찍어 그들의 얼굴을 딜리버런스 (Deliverance)에서 나온 힐빌리 (남부 미개척지 촌닭) 얼굴로 합성해 놨다. 그 후 글라스 캔디는 미디어와의 접촉을 모두 끊었다. 그 관심이 좋건 나쁘건 간에 개 상관 안했다.
쟈니 쥬웰: "좋은 호평을 읽어도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냥 우리는 숨어서 우리 일만 하는 것이 더 기뻣던 거죠.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거나 성공을 좇는 행위자체가 모든 것에 치명적인 독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어요."
포틀랜드에는 드레드락 헤어스타일을 한 사람만큼 스트립 클럽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글라스 캔디가 레코딩을 하는
수트 304는 그 스트립 클럽 주위에 있다.
쟈니 쥬웰: "스튜디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허슬러 (사기꾼)로 오해받은 적이 꽤 많아요."
전 프린팅 공장이었던 이 곳에는 오래된 매트레스와 망가진 욕조로 채워진 버려진 방들이 있다. 한때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곳에서 일했지만 밴드가 들어오기 직전까지 노숙자들로 가득찬 공간이었다. 오늘 날 이 공간에 남아 있는 유일한 보석은 쥬웰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인디 락 밴드들이다. 내가 스튜디오 안에 들어서기 전 쥬웰은 포틀랜드의 스카이라인이 훤히 보이는 한 동굴같은 방을 보여줬다. 이 곳에서 포틀랜드를 바라보는 느낌은 끊임없는 빗속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 아래 빛나는 도시의 느낌이랄까... 방의 한 벽은 펩토-비즈몰 핑크로 뺑끼칠이 되어있었다.
쟈니 즈웰: "저랑 아이다가 칠한 거에요. 우리 사진을 붙힐 때 배경이 좀더 밝았으면 해서요"
오늘 날의 댄스 음악이 디지털화된 보컬과 컴퓨터로 만들어진 비트를 통한 번지르르한 겉치장에 신경쓰고 있을 동안 글라스 캔디는 좀더 날카롭고 거칠게 토막낸 듯한 버젼의 댄스 사운드를 들려준다. 모로더의 (조지오 모로더) 냄새가 짙게 풍기지만 그들의 신스 사운드에는 인간의 면모가 담겨있다. [B/E/A/T/B/O/X]에 담겨있는 Beatific과 Candy Castle에서 들려주는 인공적인 스트링과 카시오 트럼펫은 컴퓨터의 키보드를 눌러 만들어 낸 소리라기 보다는 직접 신디사이저의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쟈니 쥬웰: "전 컴퓨터를 전혀 쓰지 않아요.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나쁘다거나 믿지 않아서가 아네요. 걍 쓸 줄을 몰라요 -_-ㅋ 저희가 쓰는 장비들은 정말 기본적인데다가 전 오랜 시간 동안 혼자서 그걸 어떻게 쓰는지 익혀왔거든요."
이 말을 한 후 쥬웰은 빈티지 신디사이저 밑에 쌓여진 책들을 가르켰다.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한마디 했다.. 저거 다 매뉴얼이라고...
글라스 캔디와 같이 일하고 싶어하는 DJ들의 리스트는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추세다. (Diplo부터 시작하여 DFA 레이블의 멤버들까지) 하지만 절대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밴드의 레코딩 스타일 때문에 항상 제안을 거절하곤 한다.
쥬웰은 자신만의 상세한 프로덕션 방식을 구축했고 아이다는 헤드폰을 끼거나 고정된 스튜디오 마이크를 사용한 녹음을 거부한다.
쟈니 쥬웰: "아이다는 항상 마이크를 손에다 쥐고 녹음을 해요. 음악이 시끄럽게 울려퍼지는 녹음실 안에서 계속 춤추고 이리저리 방방거리며 돌아다니는 거죠. 모든 녹음 작업이 한번에 다 이루어져요. 그게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리믹스하기 힘들어하는 이유죠. 모든게 한방입니다. 가사(보컬)는 음악과 별도로 존재할 수 없는 거에요."
다음 날 아침 난 내가 묵고 있던 호텔과 연결된 Doug Fir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이 곳은 레스토랑, 바, 음악 퍼포먼스를 합친 아주 쉬크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 바에서 쥬웰을 발견했다. 그 때
그는 자신의 팬케잌에 위스키 퍼붓고 있었는데 그 때 시간 오전 10시 였다.
쟈니 쥬웰: "맹세코 저 알콜 중독자 아닙니다. 어제 밤세 내내 스튜디오 안에서 작업했어요. 가끔 일이 고되면 엄청난 량의 아침과 술을 마셔야 잠이 들곤 해요."
쥬웰과 아이다가 정상적인 직업생활을 포기한 후 쥬웰은 매일 저녁 아홉시부터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수트 304에서 보낸다.
쟈니 쥬웰: "제가 왜 5명의 친구 밖에 없나 이유가 거기서 나오죠. ㅋㅋㅋ 제가 깨어있는 시간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이에요. 제가 사람들과 같이 보내는 유일한 때는 사람들이 스튜디오 안에 있을 때 뿐이에요."
여기서 지난 몇 년간 어떻게 쥬웰이 미친듯이 많은 량의 일을 소화해내고 발표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글라스 캔디 뿐만 아니라 크로마틱스의 일원이기도 하다. 크로마틱스는 또 하나의 포틀랜드 베이스 밴드로 [After Dark] 컴필레이션과 섬뜩할 정동의 사운드를 보여준 [Night Drive]의 성공 이후로 곽광을 받고 있다. 크로마틱스의 멤버로서 쥬웰은 아담 밀러와 보컬인 루스 라델레 (쥬웰의 오랜 여자 친구)와 함께 하고 있다. 아이다 노는 크로마틱스의 드러머인 네티 큐와 연인사이다. 두 밴드 사이에 얽힌 사랑의 그물이 외부인에게는 조금 복잡하고 인텐스해 보일지는 몰라도 쥬웰과 아이다에게는 별 문제가 안된다. 쥬웰은 이에 대해 단 한마디만 곁들였다.
쟈니 쥬웰: "우리들의 드라마는 (아마도 아이다와 그의 관계를 지칭하는 듯...쥔장 주) 그저 역사일 뿐이에요."
쥬웰의 그의 거의 모든 시간을 스튜디오에 할애할 동안 아이다는 스튜디오에 안가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그냥 집에 있는 걸 좋아한다 - 독서하고, 글을 쓰고, 요가를 하고, 다이아나 로즈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이 좋다고 한다.그녀는 분명 퍼포먼스와 투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외 밴드의 일은 모두 쥬웰에게만 맡겨버린다 - 녹음, 부킹, 프로모터 상대하기 등. 그녀와 딱 5분만 지내보면 글라스 캔디의 음악이 만들어내는 광적인 디스코 퀸에 대한 판타지는 싸악 사라져버린다. 아이다는 아주 달콤하고 재미있으며 말투도 아주 얌전하며 세상 스트레스는 전혀 없어 보인다 - 이 점이 그녀와의 정반대인 밴드 메이트 쥬웰과 아주 괜찮은 케미스트리를 만들어 낸다.
쟈니 쥬웰: "우리 각자의 캐릭터를 지역에 비유해서 묘사한다면 저는 도시고 아이다는 시골이에요. 아이다는 침착하고 여유를 가지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죠. 저는 아니에요."
아이다의 몸집 큰 애완 고양이를 내 무릎에 놓고 그녀의 소파에 앉았을 때 비로소 그들이 포틀랜드 출신이다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예술적으로 꾸며 놓은 듀플렉스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괴상한 골동품과 악마의 모습을 한 동물들로 가득했다. 쥬웰이 주방에서 뭣 좀 끄내 먹고 있었을 때 아이다는 나를 그녀의 지하실로 데려갔다.
아이다: "여기에 모든 겁나게 괴상한 것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에요"
지하실이야 말로 글라스 캔디의 아카이브 다웠다. 복고풍의 스테이지 의상들과 쇼 포스터들 그리고 오리지널 앨범 슬리브 아트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서로 사랑에 빠졌던 것은 초기 시절 뿐이었고 동거를 그만둔지도 꽤 오래되었건만 아직도 지하실에는 쥬웰의 어린 시절 소품들이 남아 있었다. 이 지하실이야 말로 글라스 캔디 멤버들간의 우정과 신뢰를 대변해주는 곳이었다.
아이다 노: "우리가 초기 시절 가졌던 단 하나의 문제점이라곤 그땐 정말 모든 상황이 암울했다는 거에요. 되는 일이 없었죠. 생존을 위해 낑낑 기고, 서로에 대해 힘들어하고, 세상살이에 힘들어하고... 제 생각엔 이제야 정말 우리가 성숙해진 것 같아요. 언젠가는 모든 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죠. 어떤 확신을 가지기 위한 것은 모두 어렵다는 어린시절의 사고방식과 꼭 불행해져야만 현실을 알게 된다는 사고방식은 떨쳐버리는 거죠. 그저 삶을 즐기는 것을 배우는 거에요... 뭐 그런거 있잖아요... 젠장.. 나도 잘 몰겠네요 -_-ㅋ"
우리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끝...-_-ㅋ 휴우....)
2008/07/11 - [MUSIC/Italo-Craze-Disco] - Glass Candy와 Italians do it better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