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 컬쳐 매거진 블링에 연재 중인 일렉트로니카 이야기 관련 칼럼인 PLUR & Vibe Upon the World 옛 하드카피 원고들입니다.
hyperlink를 통해 좀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올려봅니다.
아직 연재 중인 컬럼이니 잡지와는 시차를 두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퍼가시게 될 때는 출처를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PLUR&Vibe Upon the World 20: 2008년 5월자
My House in Montmarte: French House
몽마르트 언덕의 하우스: 프렌치 하우스의 역사
하우스 간단역사: 테크노와 하우스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국은 엑스터시의 요소를 집어 넣어 애시드 하우스에 사이키델리아를 추가했다. 바톤을 이어받은 이태리는 피아노 리프 등의 멜로딕한 요소를 통해 좀더 말랑말랑한 사운드를 만들어냈고 마지막 타자인 프랑스는 그 특유의 "French Touch"를 앞세워 디스코의 Funky 함을 되살려 냈다.
70's Disco & Cerrone: 프랑스식 디스코 사운드의 방향성 제시
70년대 디스코의 가장 큰 흐름을 본다면 Salsoul 레이블 식의 funk, 소울, 오케스트랄, 보컬이 가미된 미국식 디스코와 조지오 모로더와 그의 아이스 퀸 도나 섬머를 중심으로 하는 차갑고 반복적인 유럽식 일렉트로 디스코가 양 대륙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디스코의 사이드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우주적인 테마의 스페이스 디스코 분위기에 매료되었었는데 이 때 Cerrone이라는 걸출한 아티스트가 1977년 [Super Nature]라는 스페이스 테마의 일렉트로 디스코를 들고 나오며 공전의 히트를 쳤다. 비록 조지오 모로더의 아류라는 원성도 많았지만 모로더 사운드의 공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소울과 섹슈얼한 요소를 더했고 모방은 곧 창작의 어머니다라는 진정한 예를 보여주며 훗날 프랑스를 전자 댄스 음악의 중심으로 올려 놓을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모방 즉 카피를 통해 전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라는 관점 그리고 기계음의 조작을 통한 안드로이드적 이미지는 훗날 다프트 펑크에게 까지 이어지는 그 "French Touch"를 통한 하우스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초석이 된다.
P.S. 디스코텍이라는 명칭 자체는 프랑스에서 왔지만 이 어원의 종주국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사운드는 세론의 등장 이후에서야 터져 나오는 듯싶었다.
French House의 탄생: Daft Punk와 Motorbass
1990년대 초 중반은 프렌치 하우스가 그 위용을 들어낸 중요한 시기였다. 이 때 가장 주목할 만한 아티스트가 바로 다프트 펑크와 모터베이스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프랑스는 하우스 음악의 생산자라기 보다는 즐기는 입장에 가까웠기에 근 미래의 프렌치 하우스 아티스트들은 8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레이브를 통해 테크노와 하우스 사운드에 매료 되어있었다. 그 중 디트로이트 테크노 사운드에 푹 빠져 있던 Z'dar는 힙합에서 하우스 DJ로 거듭나며 Etienne de Crecy와 함께 Motorbass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96년 [Pansoul] 앨범을 통해 전형적인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연상케 하는 하우스 사운드를 내놓았다. 이 때 디스코 시절 세론이 보여주었던 모방의 미학은 다시 부활하게 된 셈이었다. (Z'Dar 본인도 자신은 디트로이트 사운드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라고 토로한바 있다. )
하지만 모터베이스 말고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프랑스에 새로운 아티스트가 혜성처럼 등장했는데 이들에 의해 잠시나마 디트로이트 쪽으로 방향을 틀었던 초기 프렌치 하우스는 시카고 애시드 하우스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세론의 모방의 미학은 물론이고 70년대 스페이스 디스코의 향수와 락 성향을 겸비한 이 새로운 듀오는 바로 다프트 펑크였다. 작은 게이 클럽에서 시작된 Respect 파티를 시작으로 다프트 펑크는 곧 버진 레코드와 계약을 하고 99년 [Home Work] 앨범을 내놓았고 듀오의 반쪽인 토마스 뱅갤터는 여러 프렌치 디스코 아티스트들과의 깊은 연계를 통해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프렌치 사운드를 구현했다. 그 당시 지속 되던 유로 하우스 특유의 디바 보컬과 멋들어진 남성 랩, 몽롱한 신스 패턴에 식상해 하던 클러버들과 리스너들은 로우패스 필터 스윕을 주 무기로 한 다프트 펑크가 만들어 내는 신종 프렌치 사운드에 즉각 매료되었다. 그 시절 (90년대 중반/말) 오랜 문화적 라이벌 영국이 내놓은 트리합과 정글 사운드에 어깨를 견주며 스타일쉬한 프렌치 특유의 감성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떨어뜨려 놓았다.
P.S. Urban Dictionary에서 다프트 펑크를 검색하면 “전 세계가 프랑스를 우습게 볼 수 없는 단 한가지 이유”라는 말이 나온다. 전자 댄스 음악사에서 프랑스를 살펴보면 그들은 항상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즉, 생산자라기 보다는 항상 즐기는 입장에 가까웠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프랑스의 자존심은 곧 다프트 펑크다라는 정의가 그다지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1998년, 프랑스에 의한 전자 댄스 음악의 지각 변동
1998년은 모든 것이 끝장 나면서 전혀 새로운 물결이 시작되던 해였다. Cassius의 "1999'와 Stardust의 "Music Sounds Better with You"가 연달아 터져 나왔고 사람들은 "대체 이게 뭐야?"를 외치며 새로운 프렌치 사운드에 열광했다. 그리고 2000년 Chic의 Soup for One을 샘플링 한 Modjo의 Lady의 대 성공은 프렌치 하우스가 이제 세계 점령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 사살이나 다름 없었다. 이때부터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나 크림과 같은 대형 레이블의 컴필레이션 앨범 그리고 영원한 파티의 고향인 이비자는 즉각 프렌치 사운드를 채용하며 좀더 상업적인 렌더링을 가미하기 시작했음은 물론이고 밥 싱클라는 유럽 MTV의 프렌치 하우스 특집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그 동안의 프렌치 하우스 사운드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인 My House in Montmarte가 발매 되며 그 기념비적인 성격을 더하게 된다. (이 앨범에 수록된 키 프렌치 하우스 아티스트로는 Daft Punk, Cassius, Air, I Cube, Dimitri from Paris, Alex Gopher, DJ Mehdi, Superfunk, Alan Braxe 등이 있다)
P.S. Motorbass의 Z’dar가 몸담은 Cassius, 칠 아웃 라운지 하우스의 Air, 프랑스에 처음으로 하우스 음악을 소개한 Dimitri from Paris가 일렉트로니카 아티스트 최초로 국가에서 내리는 예술을 통해 국가를 빛낸 이들을 위한 기사작위를 수여 받았다는 사실은 프렌치 하우스가 전 세계의 문화에 끼친 영향력이 실로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Present: 세대 교체 그리고 90년대로의 전환
2000년 초반부터 이미 일렉트로에 관한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레트로가 전 문화 영역의 트렌드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만큼 전반적인 전자댄스 음악도 일렉트로 성향을 띄며 점차 바뀌어 나갔다. 이 즈음해서 Funky한 프렌치 디스코 하우스도 퇴색되어갔고 이들은 일렉트로에서 그 대안을 찾아냈다. 이 당시 주류 클럽 사운드였던 트랜스와 하우스 모두 일렉트로 사운드를 장착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고 있었다. 트랜스 쪽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돋보였던 베니 베나시의 펌핑 하우스 스타일 또한 프렌치 하우스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고 에드 뱅거와 키추네 레이블을 위시로 한 프랑스는 뒤에서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다프트 펑크의 백업과 뮤직 블로그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일렉트로와 락 성향을 가미한 강하고 헤비한 일렉트로 하우스를 선보였다. 이 때 제2의 다프트 펑크라 불리며 나타난 이들이 Justice다.
그로부터 현재까지 근 몇 년 동안 프랑스의 Justice가 최 전선의 사령관이 되어 Simian Mobile Disco, 독일의 Digitalism, 캐나다의 MSTRKRFT와 함께 전 세계 클럽 사운드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이들은 댄스 성향에 오픈 된 Klaxons, the Teenagers 등의 락 밴드들과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 80년대 뉴웨이브 시절을 떠올리는 락과 댄스의 크로스오버를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 현상을 이끌고 있는 군단은 키추네와 에드 뱅거 레이블을 주축으로 하며 소속 아티스트들로는 Uffie, Yelle, SebastiAn, DJ Mehdi, DJ Feadz, Mr.Oizo, Hot Chip, Gun ' n Bombs, Cut Copy, Crystal Castles 등이 있다.)
또 하나 특징이 있다면 90년대 출현했던 다프트 펑크 등의 프렌치 아티스트들이 소싯적 80년대 문화를 향유하며 그 에센스를 그들의 사운드에 담아낸 만큼 이들은 그 다음 세대임에 걸맞게 90년대를 향유했고 그 향수를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테크토닉 댄스의 불을 당긴 Yelle의 A Cause des Garcons (Tepr Mix) 뮤직비디오에서도 펌프 운동화, 원색적인 색상 등이 이미 90년대를 향수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일렉트로 하우스 DJ들의 믹스셋을 들어봐도 80년대는 물론90년대의 팝송들이 간간이 끼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근5년 간 떠들어 대던 80년대 레트로 현상은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로 넘어가던 레이브 문화 시절의 감수성을 많이 지니고 있는 듯하다. 즉 90년대 문화를 향유했던 세대들이 학생의 신분을 떠나 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90년대 레트로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지 미디어에서 떠들어 대는 시점이 언제가 될 것인지가 문제일 뿐이다.
P.S. 2008년 4월 이제 사라진듯한 90년대의 프렌치 하우스와 관련된 작은 사건이 하나 터졌었는데, Louis La Roche라는 한 십대 영국 DJ가 자신의 처녀작을 토머스 뱅갤터의 신보로 알리며 데뷔한 깜짝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일렉트로 하우스가 아직까지 약발이 빠지지 않은 만큼 10년 전의 사운드의 부활시킨 이 청년이 전체 댄스 음악의 판도를 바꾸지는 못할 듯 보이지만 지독하리만큼 90년대 프렌치 하우스의 감성을 쏙 담아낸 그의 데뷔 앨범은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에게 뜻하지 않게 받은 반가운 안부편지와 같은 느낌을 선사할 것이다.